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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남진 11회차 언 제 : 2015 . 03. 25 (수) 어디로 : 삽당령(6.3km)~석병산(8.92km)~헬기장(3.28km)~백봉령 : 계 18.5km 누구랑 : 나홀로 시 간 : 6시간 38분 날 씨 : 맑음 산행지도 : 대중교통 : 삽당령 : 안목~고단 508번 시내버스가 삽당령 경유 안목 출발 : 05:30(공단 출발), 16:00 고단 출발 : 06:20, 17:10 고단 출발 5분 후 도착 강릉과 정선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삽당령을 경유 강릉~정선 : 07:00~17:00(1시간 간격 운행), 19:00 : 매시 35분 통과(강릉 출발 후 35분 소요) 정선~강릉 : 07:10~16:10(1시간 간격 운행), 18:10, 19:10 : 매시 15분 통과(정선 출발 후 1시간 5분 소요) 백봉령 : 동해~임계 15-3번 시내버스가 백봉령 경유 동해→임계 : 05:40, 16:30 (동해 출발 1시간 10분 후 백봉령 통과) 임계→동해 : 08:05, 18:20 (임계 출발 30분 후 백봉령 통과) 임계→강릉 : 08:05, 09:05, 10:05, 11:05, 13:05, 15:05, 16:05, 17:05, 19:05, 20:05 (45분 소요) 강원여객 033-534-6628, 임계택시 033-562-2400 산행사진 : 삽당령까지 남진을 마치고 2달여동안 지맥에 매달리다가 오랫만에 대간길에 나섰다. 동서울에서 06:31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강릉에 도착하니 08:55이었다. 동서울 홈페이지에는 2시간 50분이 소요된다고 하였는데 새벽이라 차가 막히지 않아 빨리 도착한 것 같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10:00에 정선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09:00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매표창구로 가서 버스표(4,000원)를 구매하고, 터미널 내에 있는 식당에서 김밥을 사가지고 버스에 오르니 1분 정도 지나서 버스는 출발하였다. 터미널에서 삽당령까지는 40여분이 소요되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지난 구간에 내려왔던 곳을 보니 산불감시초소에 감시원 2명이 근무를 하고 있었고 백봉령으로 향하는 들머리에는 입산금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혹시라도 출입을 통제할까 싶어서 정상부 사진을 몇장 찍고 재빨리 들머리로 들어섰는데 다행히 출입을 통제하지는 않았다. 삽당령(揷唐嶺:680m)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평창군 임계면을 잇는 35번 국도가 지나는 해발 680m의 고갯마루로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하여 지팡이를 짚고 넘었으며 정상에 오르면 짚고 왔던 지팡이를 버리고(꽂아 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揷)'자를 써 삽답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유래는 정상에서 북으로는 대기(大基)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는 고단(高丹) 가는 길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하고, 고갯마루에 당집이 있어 당집 사이에 있는 고개란 뜻의 샅당령이 변해서 삽당령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이 곳의 옛이름은 삽운령(揷雲嶺)인 것을 보면 백두대간의 마루금에서 수시로 변하는 기후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해 보인다. 삽당령에는 2개의 정상석이 있다. 삽당령의 산신각 삽당령 정상에서 임계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동물이동통로가 있다. 정상 한편에서는 포장마차가 영업중에 있다. 09:42 백두대간 안내문 뒷편 계단을 통해 산행 시작 들머리에서 2분정도 진행하면 삽당령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나는데 대간길은 임도를 가로 질러서 이어진다. 09:47 석병산을 향한 오름길에 급경사 계단이 설치되어있다. 급경사계단을 오르니 첫 이정표가 나온다. 첫 이정표 : 겨우 300m 왔다. 10:06 헬기장 헬기장에는 좌표가 적혀있는 철주가 세워져 있다. 10:10 외고단 갈림길 산죽군락지가 시작된다. 10:17 삼각점이 있는 866.4봉 866.4봉 삼각점 : 지자체가 아닌 건설부에서 설치를 했다. 10:27 두리봉까지 2.4km 날씨가 풀리면서 등로가 질척거리고 등산화에 흙이 잔뜩 묻어 걷기가 불편하다. 나무 사이로 두리봉이 조만된다. 11:06 얼레지 안내문 두리봉으로 가는 등로에는 좌우로 철쭉나무 군락지가 있어서 꽃이 피면 장관을 이룰 것 같다. 11:10 두리봉 정상 전경 두리봉 정상에는 등산객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식탁과 평상이 여러개 설치되어 있다. 두리봉(斗里峰 1033mm) 두리봉은 강릉시 옥계면 북동리, 왕산면 목계리,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이다. 국토지리정보원과 조선시대에 발행된 지도에 ‘두리봉(頭理峰)’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는 다르다. '두리'는 '둥글둥글하다'는 순 우리말로 두리봉은 '둥근 모습을 한 봉우리'라는 뜻으로 한자어 표기는 우리말 두리봉을 음차한 것에 불과하며, 두위봉(斗圍峯)으로도 불리운다. 두리봉은 만덕지맥이 분기되는 봉우리이다. 만덕지맥이란? 백두대간 두리봉(1033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로(강릉시 왕산면과 옥계면, 정선군 임계면) 선목치(952m) 만덕봉(1,033.4m) 망기봉(755.2m)을 거쳐 파래산. 황학산. 괘장산. 봉화산과 함께 강릉시 강동면 임곡천 남쪽까지 30여km를 말한다. 두리봉에서 10여분간의 휴식을 즐기고 출발하기전에 한컷 11:34 헬기장 헬기장 이정표 나무 사이로 석병산이 조망되기 시작한다. 야생화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네 이름은 뭐니? 석병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급경사 구간인데 사진상으로는 평지로 보이네요. 석병산 전경 11:54 석병산 갈림길 석병산은 대간길에서 좌측으로 2~3분 거리에 떨어져 있어서 갔다가 다시 와야 한다. 갈림길에 있는 석병산 안내문 석병산 정상 직전에는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있다. 석병산 삼각점 11:56 석병산 정상 전경 상황지미골 갈림길 석병산 일월문 '맞은편 능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해와 달처럼 보인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나, 그 연유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석병산 일월봉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건너편에서 떠오른 달빛이 일월문을 비추면 장관이라고 한다. 석병산(石屛山:1055m)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깍아지른 듯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마치 산아래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돌 병풍처럼 보인다고 하여 자연스럽게 “석병(石屛)산”으로 불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석병산 정상석 지나온 능선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동해바다가 눈으로는 조망되는데 디카에는 찍히지가 않았다. 12:07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서 헬기장 방향으로 진행한다.
12:10 폐헬기장
12:13 상황지미골 갈림길
상황지미골은 강릉시 옥계면에 있는 마을로 상,하황지미가 있다.
옛날 沈來助(號:四一居士)라는 분이 무릉도원을 찾아가다가 이곳에 이르러, 이곳이 무릉도원과 비슷하여, 냇가 바위에 '訪桃溪'라 글씨를 써 놓고, 그 옆에다 봉황이 많이 날라 오는 곳 이라하여 鳳來亭(나중엔 迎鳳亭으로 고침)을 짓고 살았다 한다.
지금도 마을 입구 서낭 옆 냇가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황지미(凰池洞)란 봉황이 날라 오는 연당에 못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12:17 봉분이 있는 곳에서 좌측 방향으로 진행한다.
돌계단길을 오르면...
12:40 908봉 헬기장을 지난다.
헬기장 이정표
멀리 망가져가는 자병산이 조망된다.
등로 좌우에는 최근에 간벌 작업이 이루어진 것 같은데 그 바람에 시그널이 많이 제거되었다.
12:52 고병이재 전경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와 정선군 임계면 큰골의 동서로 잇는 고개이다.
쌩뚱맞게 석병산 안내판이 고병이재에 설치되어 있다.
고병이재 이정표
13:08 900봉 전경
900봉 삼각점
900봉에 설치되어 있는 백두대간 안내문
망가져가는 자병산이 조금 더 가까이 보인다.
석병산 방향 전경
13:25 복수초에 관한 안내문
야생화가 지천이다.
네 이름은?
900봉을 지나면서 등로가 좁아져서 나무가지가 잡아채고, 바닥은 잔돌이 많아 걷기에 불편하다.
13:39 뾰족한 바위로 이루어진 931봉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즐기고 출발....
931봉에서 바라 본 석병산
멀리 동해바다가 조망된다.
꽃이름을 아는게 별로 없으니....
931봉에서 내려서는 등로는 급경사 구간이라 지그재그로 내려간다.
14:03 위치목 통과
931봉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니 능선에 멋진 소나무들이 반겨준다.
14:26 서대굴 안내문이 있는 안부
강릉 서대굴(강원도 기념물 제36호:09:35)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약 4억8천만년 전)에 퇴적된 조선누층군 석병산층 석회암 내에 형성되어 있다.
석병산 석회암층(石屛山石灰岩層) 내에 형성된 수직동굴(垂直洞窟)이다. 일명 ‘범록굴’이라고도 한다.
주굴의 길이는 약 800m이고, 총 연장은 1,500m이다.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석병산 중복벼랑에 위치하는 서대굴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동굴로, 약 250m까지는 탐사되었으나 그 이상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동굴은 세로로 땅 속 깊이 뻗어 있으며 주변의 동대굴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동굴 안에는 작은 공간들이 발달해 있으며 옆면에는 고드름처럼 생긴 종유석과 동굴 바닥에서 돌출되어 올라온 석순, 종유석과 석순이 만나 기둥을 이룬 석주, 그리고 꽃모양의 석화(石花) 등이 둘러싸여 있어 매우 아름답다.
서대굴이 위치하고 있는 산계리 지역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동굴들이 모여 있는 동굴지대로서 동굴들의 형태가 모두 같다.
강릉 서대굴은 동굴 안이 위험하여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에 의한 피해가 없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14:39 생계령(生溪嶺:640m)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와 정선군 임계면 큰피원을 잇는 고개이다.
옥계면 산계리 사람들이 정선 임계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었던 고개로 산계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고개에는 도토리나무가 많았다고 하는데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이 고개에서 도토리 열매를 채취했고, 생계령은 여기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생계령은 동쪽 산계리에서, 또는 산계리쪽으로 넘나드는 고개라 하여 ‘산계령’이라 일컫던 것이 변음(變音)되어 생계령이 된 것으로 보이며, ‘쌍계령’ 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산계령이 경음화 된 것으로 보인다.
생계령 이정표
또 다른 이정표
생계령 우측에는 넓은 밭이 조성되어 있다.
15:04 파묘를 한 넓은 공터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등로 우측 나무가지 사이로 백봉령으로 오르는 42번 국도가 조망된다.
15:19 위치목 통과
15:30 임도와 만나고 임도따라 좌측으로 진행한다.
부드러운 흙길로 이루어진 임도
15:37 카르스트지형 안내문
카르스트현상으로 생긴 함몰지
임도가 차단된 지점에서 좌측 통나무계단으로 오른다.
15:49 송전탑 통과
15:53 좌측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869봉 갈림길
대간길은 869봉을 거쳐 자병산으로 이어지지만 자병산은 한라시멘트에서 시멘트 재료인 석회석을 채취하기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대간길을 우회시켜놓았다.
869봉에 있는 감시초소 : 문짝이 떨어진채 방치되어 있다.
869봉에서 바라 본 자병산
자병산(紫屛山 :872.5m)은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사이에 있는 산이다.
태백산지의 산줄기 중 북쪽의 두리봉(1,033m) · 석병산(1,055m) · 생계령 · 자병산 · 백봉령으로 이어진다.
자병산은 온통 바위로 덮여 있다. 이들 바위는 석회암인데, 고생대에 열대 바다에서 형성된 해성퇴적암으로 풍화에 비교적 강한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노두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자병산이라는 이름은 이들 암석의 색깔이 불그스레하여 주위가 늘 붉게 보이는 데서 유래하였다.
암석의 붉은 색조는 산체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이미 석회암이 형성될 때 착색된 석회암의 색깔 때문이다. 이 산지 일대는 석회암 기반의 카르스트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석회동굴과 석굴 · 돌리네가 산재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16:03 송전탑 하부를 통과한다.
송전탑 번호는 44번
16:05 안부사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안부사거리에 있는 이정표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한라시멘트 진입도로를 만나고 도로를 건너 임도로 들어선다.
진입도로 우측으로 42번 국도가 지나간다.
잣나무가 우거진 임도를 따라서 간다.
백봉령 쉼터가 보이고....
16:20 백봉령에 도착하여 산행을 종료한다.
백봉령 전경
석병산 남동쪽에 자리한 ‘백복령’은 현금에 이르러 대체로 ‘白茯嶺’이라 쓰고, 예부터 이곳에서 한약재로 쓰이는 백복(白茯)이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그러나 한약재로 쓰이는 ‘복령(茯笭)’은 한 글자로 ‘복(茯)’이라고만 지칭한 예가 없으며, 또한 그 빛깔에 따라 ‘백복령(白茯岺)’, ‘적복령(赤茯?)’이라고는 칭하여도 이를 ‘백복’, ‘적복’이라 지칭하지는 않았다.
이는 1915년 전후에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 이 고개 이름을 일제가 ‘白茯嶺’이라 잘못 표기한 데에서 유래된 왜곡된 표기로, 곧 한약재 ‘백복령’과 고개 이름 ‘백복령’의 음의 동일성에서 호사가들이 착각하고 오해한 이름일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강원도에 속한 여러 고을의 토산물로서 거의 모두 복령(茯笭)을 언급하고 있음을 볼 때 백복령이란 토산물이 단지 이곳 석병산 구간의 백복령에만 많이 나는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백복령’이란 본래의 고개 이름은 동국여지희복승람과 동국여지지 삼척조에 의하면, ‘희복현(希福峴)’ 또는 ‘희복령(希福嶺)’이었다. 이는 글자 그대로 새긴다면 ‘복을 바라는 고개’, ‘복을 희망하는 고개’ 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아마도 이 고개 일원에 부근 지역 사람들이 복을 빌던 산신당 같은 당집이나, 신수(神樹)로 여기는 당목 따위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되기도 한다.
뒤에 ‘희복현(희복재)’은 발음하기가 좀 불편하여 ‘희’ 자를 희다는 ‘白’ 의 훈(訓)을 빌어 ‘백복령(白福嶺)’ 이라 칭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뒤에 또 ‘白福’ 이 의미상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다시 음은 그대로 두고 복이 많다는 의미로서 ‘百福嶺’이라 개칭된 것으로 추측된다. 곧 조선 전기까지의 기록에는 ‘希福峴’이라 일컬은 것으로 보이나, 조선 후기 유형원의 동국여지지 삼척조에 의하면, 본명으로서 ‘白福嶺’, 그 일명으로서 ‘希福嶺’이라 기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후 조선 영조 때 편찬한 여지도서 삼척조에 의하면, 희복현의 일명으로서 ‘百福嶺’을 언급하고 있고, 또 산경표와 증보문헌비고의 여지고 산천조에도 ‘百福嶺’ 이라 표기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자연스러운 변천 과정에 의하면, 백복령은 ‘百福嶺’이라 표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또는 19세기 후엽의 대동여지도에서도 ‘白福嶺’ 이라 표기하고 있는 것처럼 원 이름을 미루어 살펴볼 수 있는 ‘白福嶺’으로 표기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백복령은 또 택리지 팔도총론 강원도조에 의하면, 이를 소리 나는대로 표기하여 ‘白鳳嶺(백봉령)’으로 표기하기도 하고, 또 해동지도에 의하면, ‘百復嶺’, ‘百腹嶺’으로 달리 표기한 예도 살필 수 있다.
백두대간보전회에서는 백복령(白福領) 보다는 주민 정서에서도 좋고 택리지에 근거가 있는 흰 봉황의 뜻인 백복령(白鳳領)으로 부르기를 홍보하고 있다.
다음 구간 들머리
백봉령 정상에서 동해방향으로 50m 정도 내려가면 간이매점이 있다.
산행을 마치고 시간을 보니 16:20이 조금 지났다.
백봉령을 거쳐 임계로 가는 버스가 동해에서 16:30에 출발하니까 아마도 17:00경에는 이 곳에 도착하리라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장비를 정리하고 과일을 안주로 남은 막걸리를 마시고 시간을 보니 16:45이다.
정확한 버스 시간을 알아보려고 간이매점에 가서 물어보니 헐~~~~~
동해에서 출발하면 1시간 10분 정도가 지나야 이 곳을 통과한단다.
버스가 오기 까지는 한시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하기에 택시를 부를까 하고 고민을 하며 정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마침 승용차 한대가 쉼터에 들어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염치불구하고 동승을 부탁했더니 조금 망설이더니 백봉령 밑에 있는 신흥마을에는 버스가 자주 있으니 그 곳까지 태워다 준다고 한다. Thank you very much
승용차를 타고 신흥마을에 도착을 하니 동해로 가는 버스가 막 출발을 하려고 하기에 손짓으로 차를 세우고 간신히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버스는 동해시 구석구석을 돌고 돌아서 40여분만에 버스터미널레 도착을 하였다.
터미널에서 19:00 버스를 예매한 후 근처식당에서 김치찌게를 안주로 소주 한병 마시고 버스에 승차하여 꾸벅꾸벅 졸다보니 서울에 도착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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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많으셨습니다~~~ 청노루귀와 복수초가 지천으로 피어 있네요...
흐으~~~
어느게 청노루귀고
어느게 복수초인지....
후기 보구 아이젠이 필요 없다는걸 알았어요..덕분에 고민없이 갈수 있었지요..사진도 너모 좋아요.
아이젠은 필요없었지만 달라붙는 흙때문에.....
그나저나 30km나 되는 다음구간이 걱정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