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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卷第三十四
二十六, 十地品 1
강 의 내 용
正 宗 分
七, 第一歡喜地
상강례上講禮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제불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존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현성승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아제자등 강론삼장 유원삼보 위작증명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나무 본사 석가모니불 南無 本師 釋迦牟尼佛
나무 본사 석가모니불 南無 本師 釋迦牟尼佛
나무 본사 석가모니불 南無 本師 釋迦牟尼佛
무상심심미묘법 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 百千萬劫難遭遇
아금문견득수지 我今聞見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 願解如來眞實意
오늘은 4월 둘째 주입니다.
구산 권영순 능견행 다혜화 대광월 대명화 대자비 대자행 대해심 대혜심 지혜 혜자? 덕산 도문 마니주 명봉 무금 무진향 문수화 미소 미타심 민서영 법경 법지행 보덕화 보명 보문심 보연 보원 보현수 복덕월 비로심 삼보화 삼희성 상불행 선다향 선정월 소진연 여래명 여법성 여선진 여선화 여여명 여여심 여연화(금강장), 여연화보살 금강장으로 바꿨지. 여일행 여정명 여지수 여진옥 연화성 오도화 이봉숙 일선 일성 일심덕 일여 자성월 정락월 정토행 준제심 진불문 진여심 또 진여심 천동화 청암 청정행 최은숙 길상정 해탈향 혜광 혜등화 혜안 혜일문 홍련화 현익행 황미현 문수화
자꾸 지각하세요. 바쁩니까? 그렇게 지각 있게 사시지 마십시오. 저보다 더 지각 하시는 분들 조금 심각합니다. 금생에. 우리가 이제 사람 몸을 받고 이렇게 살면서 바깥에 살면 이름을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이름을 전부 다 부모님께서 잘 지어 주셨습니다.
절간에 와가지고는 어떤 인연과 계기가 됐든지 간에 일생의 그 뭐라 할까? 일생의 그 타고난 복덕은 부모로부터 받는다 하지만 다생겁래에 영원을 기약하면서 자기의 이 가녀린 육신이 마음의 해탈을 기약하면서 지은 것이 이 법명입니다.
그래서 그런 공부를 하는 순간이라서 속명을 자꾸 이렇게 한 번씩 부르는 분들도 있고 대부분은 법명을 불러드리는데, 이름이라고 이렇게 지어져가지고 이렇게 깝작거리고 이렇게 살 바에는 거기에 걸맞게 살아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번 가져봅니다.
(8) 善根成就의 三十一法
佛子야 此菩薩이 以大悲爲首하야 廣大志樂을 無能沮壞하며 轉更勤修一切善根하야 而得成就하나니 所謂信增上故며 多淨信故며 解淸淨故며 信決定故며 發生悲愍故며 成就大慈故며 心無疲懈故며 慚愧莊嚴故며 成就柔和故며
(8) 일체 선근(善根)을 성취하는 길의 31가지 법
"불자여, 이 보살의 대비(大悲)로 으뜸을 삼는 광대한 뜻을 저해할 이가 없고, 점점 부지런히 모든 선근을 닦아서 성취하나니, 이른바 신심이 느는 연고며, 청정한 신심이 많아지는 연고며, 지혜가 청정한 연고며, 믿음이 결정한 연고며,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내는 연고며, 크고 인자함을 성취하는 연고며, 고달픈 마음이 없는 연고며, 부끄러움으로 장엄하는 연고며, 화순함을 성취한 연고며, 선근(善根), 착한 뿌리 성취의 31가지 법이라.
자~ 오늘 진도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가지고 계신 교재 33페이지 일체 선근을 성취하는 길의 서른한 가지의 법이라고 하는 대목부터 시작되겠습니다.
먼저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8) 善根成就의 三十一法
선근(善根), 착한 뿌리 성취의 31가지 법이라.
우리가 이런 말 있지요, 선근(善根)은 이소(易消)하고 악근(惡根)은 난발(難拔)이라. 선근은 쉽게 녹아 버리고, 악근(惡根)은 난발(難拔)이라. 악한 뿌리는 뽑기가 힘이 든다. 나무도 좀 지저분한 것들은 캐면 악한 뿌리가 많이 번져 있죠. 그런 것들도 이제 우리가 한 번 잘 생각해봐야 될 대목들인 것 같습니다.
한문 먼저 읽도록 하겠습니다.
佛子불자야 此菩薩차보살이 以大悲이대비로 爲首위수하야 廣大志樂광대지락을 無能沮壞무능저괴하며
"불자여, 이 보살이 대비로써, 以大悲 대비로써, 爲首위수라, 으뜸을 삼아서 대비로써 으뜸을 삼는다,
이런 대목을 지난 시간에도 짧게는 언급을 했습니다만 우리가 어떤 일을 대할 때는 항상 정의로움을 생각해야 되고, 정의로움을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는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나에게 이익을 또 손해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人之常情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도 손익을 떠나서 정의로운 것이 어느 것이 정의로운가? 일을 대할 때는 정의로움을 생각해야 되고, 사람을 대할 때는 그 사람을 또 내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 이건 두 번째 치고, 모든 것을 접어두고 수행자라고 한다면 자비로써 이 사람을 어떻게 해줄까 하는 생각을 가져야 모든 답이 풀리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자야, 이 보살이 무엇으로써 으뜸을 삼는 광대비로써 으뜸을 삼는 광대한 뜻을 저해할 사람이 없다, 막고 무너뜨릴 것이 없고(廣大志樂광대지락을 無能沮壞무능저괴하며),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지금 십지품이라고 하는 어마 무시한 경전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에는 어떠실지 모르지만, 저는 한 인간으로서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재산이라고 해봤자 리어카 두 대밖에 없는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가지고 그렇게 태어나서 이날 이때까지 이 몸을 가지고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 중이 된 것만 해도 가사를 입고 삭발위승(削髮爲僧)이 돼가지고 승려가 돼서 부처님의 길을 또 따라 간다고는 하지만 구차하게 그냥 業量업량에 이리 파도 저리 파도에 휩쓸리면서 따라가고 있습니다만 따라 간다고 하지만 이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아!~ 참 숱한 거룩한 성인들이 이속에서 자기 인생을 묻으면서 숱한 아름다움을 연출해 내었던 화엄경을 내가 강설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내게 어떻게 금생에 이런 복이 주어졌을까? 정말 내가 화엄의 이치를 알고 십지품의 뜻을 알고 강설을 하고 있느냐? 우와! 이것 참 대단한 일이다. 정말 눈물겹도록 감동스런 일이 나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구나! 이러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생각하기로 여러분들께서 지금 마음을 가지고 십지품을 배우고, 화엄경을 배우시고, 또 능엄경을 배우시고, 기신론을 배우고, 금강경을 배우고, 또는 염불을 익히고, 염불기도를 하고, 절을 하고, 참선을 하시고, 비파사나나 사마타를 또 익히기도 하고, 갖가지의 선행을 베풀면서, 이 마음을 닦아간다고 합니다만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하나의 술수에 불과하다는 거죠.
스님들이 암으로 많이 돌아가십니다. 왜 돌아가시느냐? 너무 많이 알아서. ㅎㅎㅎ 많이 앎으로써 죽습니다. 그래서 범어사에는 일주문에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입차문내(入此門內)면 막존지해(莫存知解)하라. 이 문을 들어서면 제발 아는 소리 하지 마라. 앎으로써 죽는다. 알 수가 없는 세계가 있다. 그래서 절에는 큰 절에서 안 죽으면 다 앎으로 죽습니다.
금강암에 죽고 계명암에서 죽고 다 암으로 죽습니다. ㅎㅎㅎ 너무 많이 아는 게 병이라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금 십지품을 배우시고 지식을 습득하려고 하는 것은 많이 알려고 하는 앎으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철저히 경계해야 될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딱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 마음에는 아무 하자(瑕疵)가 없다. 한번 반복해 따라해 보십시오.
마음에는 하자가 없다! 하자라고 하는 것은 티끌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마음에 티끌 번뇌가 없다. 마음에는 아무 티도 없다. 한 점의 티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는 티끌이 없고 번뇌가 없는데 왜 그러면 참선을 해야 되고, 화두를 들어야 되고, 염불을 해야 되고, 기도를 해야 되고, 갖가지 방법을 모색하느냐?
그거는 술수와 하나의 기술을 익히는데 불과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기술을 왜 익히느냐, 이런 지식을 왜 익히느냐, 그러한 방법을 왜 익히느냐, 부처님께서 그렇게 위대하시다고 하면 일체중생이 당시뿐만 아니라 미래 중생까지도 영원히 다 제도해서 글만 보면 다 해탈해야 될 것인데 왜 부처님 글을 보고 일체 중생이 여전히 번뇌에 사로 잡혀서 해탈하지 못하느냐?
기신론에 써 놓기를 이렇게 해놓았습니다. 부처님은 한결같이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중생이 업(業)의 파도(波濤)가 업의 모양이 각각 달라서 그것을 다 제도 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업이 깊기도 하고 업이 얕기도 하고, 아! 그러면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직업 따라 맡아진 직분의 업을 따라서 살아가는 길이구나. 그러면 이제 영리한 사람들은 깨닫습니다.
업에 따라 흘러가면서도 업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본심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는 겁니다. 자~ 한 마디 더 한 번 복창을 해보실까요?
‘근심은 내일 하고 행복은 지금 한다.’
근심은 언제요? 내일. 근심 있는 일은 무조건 내일입니다. 그거는 내일 하께. 살~살 미루고 행복한 일은 지금 당장! 행복하다는 것이 욕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고요하고 청정한 세계로 자기를 몰입하면서 정의롭고 당당하게 이끌어 나가는 것을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여러분들께서 이제 십지품을 배운다고 해서 더 이상 좋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지만 그러나 생각은 좋아지고 나빠지고 하실 겁니다. 그 마음과 생각을 착각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기 점점 부지런히 거기부터 들어가겠습니다.
轉更勤修一切善根전갱근수일체선근하야 而得成就이득성취하나니 所謂信增上故소위신증상고며
점점 부지런히 모든 선근을 닦아서 성취하나니(轉更勤修一切善根전갱근수일체선근하야 而得成就이득성취하나니), 점점 부지런히 모든 선근을 닦아서 성취하나니, 여러분들께서 지금 만약에, 신심이 반쯤뿐인가. 왜 물이 이만큼만 따라 놓았노. 확실하구만요.
자! 이게 벽돌이라고 칩시다. 어떤 길을 매일 하루에 세 번은 벽돌을 저기 건너서 저기 갖다 놓아야 되는 길이 있다고 합시다. 천길 낭떠러지에 길은 獨木橋독목교 외나무 길입니다. 그런데 그거는 일정한 하중을 받습니다. 벽돌 하나를 들고 가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하루는 조금 놀다가 하루에 세 개씩 반드시 저 건너편에 갖다 놓아야 됩니다. 저녁 무렵에 세 개를 들고 가니까 그 정도까지는 독목교 외나무 다리가 하중을 견딜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지금 말하는 점점 부지런히 모든 선근을 닦아서 성취한다는 말은, 매일매일 찰나찰나에 쉬지 말고 하시라 이런 얘깁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한 열흘쯤 놀았다, 열흘쯤 놀면 벽돌 몇 개 들고 가야 되죠? 30개를 들고 가니까 그 외나무 다리가 어떡해요? 조금 하중을 견디기가 버겁습니다.
조금 더 놀았습니다. 한 달쯤 놀았습니다. 90개를 짊어지고 가면 외나무 다리가 어떨 것 같아요? 부러질 가능성이 있다. 한 백일쯤 놀았다, 300개를 옮겨가려고 한다. 어떻겠습니까? 건너지도 못하고 중도에서 벽돌과 함께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보시를 한다든지 인욕을 한다든지 정진을 한다든지 참선을 한다든지 이런 공부를 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는 요로 결석 신장 결석 뭐 어디 여기 뭐지? 담석증 이런 것 걸리지 마시고 결석하시지 마시고 매일매일 부지런히 하시기 바랍니다.
한 3 일 굶었다 해서 한꺼번에 3 일 밥을 한 끼에 다 먹어버리면 배 터져 죽습니다. 그런 얘기를 제가 전에 그래 했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내일 설날이라고 섣달 그믐날 나무 하러 갔다가 나무 두 짐 지고 내려오다가 다리가 부러졌다는 겁니다.
지금 감기가 저 하고 지금 싸우고 있습니다. 3일째. 지는 들어오려 하고 나는 들어오지 마라 이러고 지금 안 보이는 저 하고 계속 밀고 당기고 싸우고 있는데 이것도 재미가 있네요.
그러니까 지금 부지런히 모든 선근을 닦는다, 이런 것은 매일매일 밥 먹을 때 충실하고 사람 만날 때 충실하고 하는 일에 그냥 아첨이나 군더더기 없이 그냥 쉬운 말로 쌈박하게 사시는 것이 여기 부지런히 모든 선근을 닦는다, 일어날 시간에 일어나고 잠 잘 자리에 잠자면 그것이 번뇌를 떨어버리는 길이 되겠습니다.
모든 문제에 대해서 순응하면 따라 가면, 隨順수순 색성향미촉법 하면 색성향미촉법을 따라 간다면 得力득력을 합니다. 힘을 얻게 되지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따라 가게 되면 힘을 얻게 되지만 배척하든지 외면하든지 착 달라 붙어서 집착하든지 하면 그것은 힘을 즉시에 잃어버리게 됩니다.
친구를 배척하면 친구의 힘을 잃어버리고 돈을 외면하면 돈의 위력을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집착하고 배척을 하지 말고 순응하며 사는 일을 부처님은 衆之去來중지거래에 無追無拒무추무거라. 생각이 오고 가는데 있어서 거부하거나 막거나 쫒아가지 마라.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마라는 이런 대목으로써 우리에게 應無所主응무소주 而生其心이생기심을 가르쳐놓은 바가 있으신데 그것이 바로 점점 부지런히 모든 선근을 닦아서 성취하나니, 이런 대목들이 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른바 신심이 느는 연고며 또 청정한 신심이 많아지는 연고며(所謂信增上故소위신증상고며 多淨信故다정신고며), 이런 얘기. 신심이 는다 준다 이것은 조금 아직 부족한 얘기죠. 신심이 확고부동한 사람은 절벽에 박힌 앵커처럼 그냥 빠지지 않고 사람이 의지해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우리 스님께서 돌아가신 스님께서 저에게
‘너 요새 왜 그러냐?’
이렇게 한 번 물으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을 드렸습니다.
‘제가 요즘 신심이 좀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너는 참 신기하다. 니 신심은. 어떻게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그렇게 하느냐.'ㅎㅎㅎ
신심이 어떻게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그렇게 하느냐. 신심이라는 것이 여기서 는다는 말이 조금 부족하다는 얘기가 그런 이야깁니다. 신심은 늘 리도 없고 불어날 리도 없고 처음부터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힌다라면 그 신심이 될 때까지 노력할 뿐이다, 이런 얘기들입니다.
그래 여러분들 신심은 제가 이렇게 볼 때는 고무줄 신심이라서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하시는 것 같고 제 신심은 껌 같아서 떨어졌다가 붙었다가 하는 것 같습니다.
지혜가 청정한 연고며 믿음이 결정한 연고며 (解淸淨故해청정고며 信決定故신결정고며), 믿음이 결정적이라는 것은 정말 불퇴전의 신심을 가지고 그렇게 산다면 이 정도가 되면 이렇게 믿습니다.
자~ 눈을 들고 우리가 허공을 아무리 살펴봐도 그 높이를 알 수가 없고 넓이를 알 수가 없고 크기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양이 있는 것은 산이 크고 바다가 크고 항공모함이 크다고 하지만 모양이 있는 것은 가히 크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모양 없는 허공이 큰 줄 여러분이 짐작하셔야 되고, 모든 성품 가운데서는 선한 성품도 있고 악한 성품도 있고 여러 가지 자질이 많을 것입니다. 마음에서 뿜어내는 여러 가지 음악성도 있고 천재성도 있고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품은 자성 청정의 불성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계시고 제가 지금 가지고 있고, 이 십지품을 본다는 것은 그 불성이 정말 아무 하자 없는 티 하나 없는 깨끗한 비단 위에다가 錦上添花금상첨화, 요즘 봄 바람에 피는 꽃처럼 봄 바람에 돋아나는 새싹들처럼 새 잎사귀처럼, 온 세상을 금상첨화로 장엄하는 것을 인생에 와가지고 마음 하나 가지고 사는 것도 아름다운데, 이것을 가지고 부처님의 불법으로 내 인생을 장엄한다고 하는 것은 가히 거룩한 일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모양이 있는 것은 가히 크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마음도 모양이 없기 때문에 크다고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구차하게 세종 대왕께서 만들어 놓은 한글이라는 문자를 가지고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만 그 이전도 산스크리트가 됐든지 한문이 됐든지 그렇게 문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문자들이 없는 시대에도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에 형체도 없고 글자도 없고 지식도 없는 그 세계지만 마음은 본래무일물이라. 한 물건도 없다, 어떠한 흔적도 없다, 하물며 거기에 근심 걱정이 붙을 리도 없고 선과 악이 붙을 수도 없는 그 자리, 그 본래무일물의 텅 빈 세계를 가지고 하루종일 말씀 하셔도 끝이 없고 일 년 내~도록 사구게 하나가 아니라 한 글자도 없는 걸 가지고도 일 년 내도록 설하실 수 있습니다.
오만 것을 비유와 그 사람의 방편을 만들어서 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31가지 조건이라고 얘기해놨지만 이러한 것들은 중생들이 알아 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 뒤에 지혜가 열린 사람들이 써놓은 것들입니다.
그 이전에 이런 분들이 썼든지 안 썼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이대로 넉넉하고 이대로 행복하고 지금 마음 가지고 탐진치만 따라 가지 않는다면 조금 더 한 발짝 떼고 조금 더 나를 가볍게 다스려 간다고 하면 우리는 늘 극락 속에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때는 라~멘! 하는 거예요. 라멘. ㅎㅎㅎ
그래서 천수경에도 보면 이런 일이 제일 큰 일입니다. 절에는 아무리 좋은 일이 있더라도 일이 없는 것만 못하다. 願我速會無爲舍원아속회무위사, 나는 빨리 아무 하는 일이 없는 것, 일없는 일을 이루기를 알기를 원합니다. 원아속회무위사 야! 정말 대단하죠.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일이 없는 것만 못하다 이런 말씀들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듣고 계신 이 지금 법문은 세계 제1의 법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성철스님이 살아오시더라도 한 백 명쯤 합쳐야 이런 법문을 할 수가 있지 않겠나. 믿거나 말거나. 다음 대목 넘어 가겠습니다. 그렇게 안 느껴집니까? ( 느껴집니다.) 아부를 그만 하시고.ㅎㅎㅎ 아~무 때나 저렇게 거짓말 하시면 안 됩니다.~ 맞다 해도 안 되겠고 안 맞다 해도 안 되겠고 말이야.
청정한 신심이 많아지는 연고며, 지혜가 청정한 연고며, 믿음이 결정한 연고며, 가엾이 여기는 생각을 내는 연고며( 發生悲愍故발생비민고며 ), 이런 것 아주 중요한 겁니다. 가엾게 여기는 생각을 내는 연고며, 이런 것을 이제 전라도 말로는 싸가지가 있다, 이렇게 하는 거죠.
경상도 말로는 얌체가 있다, 이렇게 얘기하지. 얌체. 사람이 뻔뻔스러우면 안 되거든. 남에 대해서 어떻게요? 의리 있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리고 크게 인자함을 성취하는 연고다. ( 成就大慈故성취대자고며). 그 다음에는
心無疲懈故심무피해고며, 고달픈 마음이 없는 연고다,
줄을 좀 그어놓으시면 좋겠네요. 고달픈 마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렇게 여기 와서 공부하시고 또 내지는 남을 도와주는 일들에 대해서 힘들고 고달픔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정진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대목이 어느 대목입니까? 환희지라고 하는 대목이고 환희지에서 우리 수행을 수반해야 될 대목은 뭡니까? 보시바라밀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보시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십바라밀의 대표이기도 하고 육바라밀의 대표이기도 한데, 물질적으로 남을 도와 줄 때는 보시바라밀이 성립됩니다. 재물 쪽으로 財施재시라고 하죠. 남에게 施無畏시무외라.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을 뭐라고 하죠? 시무외. 남들에게 두려움을 없도록 베풀어준다, 시무외. 다른 말로는 無畏施무외시라고 하죠. 무외시.
시무외, 무외시라고 하는데 이 두려움이 없으려고 하면 사람이 일정한 사회에서 정해놓은 규범을 지켜야 됩니다. 도둑질 하는 사람은 발 뻗고 자지를 못 합니다. 남을 해코지 한 사람도 발 뻗고 자지를 못 합니다.
하여튼 남을 해코지 하든지 도둑질 하든지 거짓말 한 사람은 항상 두려움에 떨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두려움이 많고 겁이 많은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제가 말씀드린 바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지계바라밀 하고 인욕바라밀은 어떤 괴로움이 있든지 즐거움이 있든지 간에 거기서 참고 내가 나를 칭찬하든지 나를 헐뜯든지 이런데 대해서 참을 수만 있다면 시무외라. 두려움으로부터 공포스러움으로부터 공포가 없어지는 무외를 자기에게 베풀어 주고 또 남에게 베풀어 줍니다.
그래서 재물의 보시, 재시라고 하는 것은 보시바라밀이요. 무외시라고 하는 것은 남에게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은 지계바라밀과 인욕바라밀이 되고, 법시라고 하는 것은 마지막에 뭔 보시가 있죠? 법보시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제대로 알고 어디 가서 설명을 하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특히 포교사분들이 많으시니까. 법보시라고 하는 사람은 일반 사람들은 법보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정진하고 그 다음에 삼매의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사마타의 능력이 선정의 힘이 있어야 되고 끝으로 이렇게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좀 웃는 분들은 설마 비...웃는 거는 아니시겠지요. ㅎㅎㅎ 이렇게 됐을 때 정진바라밀과 선정바라밀과 지혜바라밀이 갖춰졌을 때 남에게 법을 베풀어 줄 때 그것이 제대로 된 법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 베풀어 주는 법은 삿된 법인지 정법인지 분간이 안 갈 것입니다. 그래서 일전에 제가 말씀 드리기를 이렇게 했습니다. 정법을 수호하고 정견을 가지는 사람이 법을 설하면 삿된 포르노도 또 삼류 영화나 아주 소설 잡지라도 정법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잡초라도 약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약초로. 그러나 안목을 갖추지 못한 돌팔이가 법을 설할 때는 邪者사자가 법을 설할 때는 약초를 가지고도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왜 그러냐? 정진바라밀과 선정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제대로 수행하고 닦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이죠. 정진바라밀이 없는 사람은 지금 방금 여기 나온 대목에 고달픈 마음이 있어서 남들에게 법을 설할 수 있는 자질이 못돼서 불능설법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절대 남에게 법을 설해주지 못하고 설사 중이 됐다 하더라도 출가위승이 됐다 하더라도 머리를 깎고 중이 돼서 부처님 길을 가사 입고 따라 간다 하더라도 啞羊僧아양승이 돼서, 울지 못하는 염소처럼, 법문 한 마디도 못하고 평생 뭐 하느냐?
신도들이 갖다 주는 僞藥위약만 탐하고 그리고 살기 편하게 그냥 생멸에 기대서 살다가 한 세상 죽게 됩니다. 이것은 스님이나 신도님들이나 다 같이 반성해야 될 점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정진바라밀이 없는 사람들은 설법을 해도 설법을 할 수 없으니까 피곤하게 느낍니다. 남이 해 달라 해도 지가 게을러서 어릴 때부터 공부를 안 해가지고 화엄경 한 번 설해라 이러면 화엄경 설할 줄도 몰라. 금강경 설하라 하면 금강경 설할 줄도 몰라.
금강경 설할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어찌 해야 될 자리가 있고 꼭 자기가 먹고 살아야 되니까. 남의 것 죽죽 베껴서 하다 보니까 억지로 어거지로 그래가지고 윽박지르고 그냥 얼버무리고 이래가지고 대충 설법하고 부처님 설법을 그 좋은 그 찬란한 금강경의 다이아몬드 같은 내용들을 엉망진창으로 커팅을 제멋대로 해가지고 쪼개가지고 난리 굿을 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선정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돼냐? 사마타의 힘이 없는 사람들은 삼매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우리가 저기 아까 상강례도 했지만 상강례 할 때부터 앉을 때부터 죽비를 칠 때부터 들어가면 되는데, 예를 들어서 법경 거사님 같은 경우는 전체가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리지도 못하고 탁탁탁 탁탁탁 이래가지고 마음대로 쳐버리는 이런 분들은 선정 삼매가 없는 분들입니다.
전체가 고~ 요해지기를 기다렸다가 탁... 탁... 탁... 이렇게 들어가는 겁니다. 전체가 고~요해져가지고.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흔적이 있느냐 없느냐, 하! 이 허공이 있느냐 없느냐, 모를 정도가 됐을 때 이미 가라질대로 가라 앉았으면 대충 깨라.~~ 탁... 탁... 탁... 죽비 소리가 서로 다릅니다. 탁탁탁 탁탁탁 이 뭔 소리냐 이거야. 뭔소리냐고. 난리발광입니다.ㅎㅎㅎ
그래 선정의 힘이 없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존경 받기를 원해가지고 거룩하게 옷을 삐까뻔쩍하게 차려 입습니다. 내일 모레 되면 범어사도 이제 보살계 한다고 막 金襴袈裟 금란가사를 해가지고 야단으로 차려 입을 겁니다.
척~ 쳐다 보면 뭐 그리 떳떳할 일도 아닙니다. 그렇게. 보살계 하고 이런 것들. 또 그게 좋다고 우리 스님 저기 올라가셨다고 그렇게까지 하실 것도 없습니다. 비판하는 것 절대 아닙니다.
선정의 힘이 있어서 보살계를 설하고 금란가사를 입었을 때는 안팎이 딱 연결돼가지고 존경 받을만 하고 부처님 당연히 금란가사 입으셔야죠. 우리 같은 사람이 입으면 냄새 난다 이거라. 그러면 조금 있다 입으께요 하고 말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익을 탐하고 존경을 탐하고 남들에게 잘 나지기를 원하고 이런 사람들이 왜 그러냐? 선정의 힘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정의 힘이 그 사람들이 왜 없기 때문에 그러냐면 선정은 因戒生定인계생정이라. 계율이 철저할 때부터 선정으로 타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아! 그러면 그 앞에부터 무너졌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설법을 하면 오염 설법입니다. 음식을 해도 거기다가 썩은 음식을 내놓게 되는 겁니다. 부패한 유통기한 다 지난 것. 그러니까 삼매의 힘을 철저히 갖춰야 되고 그것은 내 일이 아니고 스님들 몫이겠지 이래 생각하는 분들은 십지품을 같이 공부할 까닭이 없습니다. 여기서.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지혜바라밀이 없는 사람이 설법을 하게 되면 顚到전도 설법입니다. 거꾸로 설법해서 생멸을 불생불멸이라 하고 불생불멸을 생멸이라고 하는 그런 착각 속에 삽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다고 하면 자기가 견주어서 야~ 이것은 내가 설명해낼 능력이 없다고 하면 아는 것은 자기가 제일 잘 압니다. 아! 내가 이 대목은 알고 있다! 이거는 모른다! 이것은 자기가 제일 잘 아는 거고 듣는 사람도 저 사람은 알고 설한다 모르고 설한다 대충 짐작이 갑니다.
호박을 가지고 자꾸 옆에 박을 가지고 호박이라고 우겨서는 안 됩니다. 박은 박이고, 호박은 호박이고, 콩은 콩이고, 팥은 팥이고, 그걸 또렷이 구분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잘 못하면 된장에 밥 비벼 먹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데 밥 비벼 먹는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냉정하게 잘 간파하시기 바랍니다. 지혜가 없는 분이 설하시면 무슨 설법? 전도 설법.
자~ 그 다음에 고달픈 마음이 없는 연고라고 하는 건 뭐죠? 정진바라밀이다. 정진바라밀이 되면 능히 설법을 할 수가 있고 樂說辯才요설변재라. 우리 법화경에서 청림회는 그렇게 배워 왔죠? 법문을 설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서 법을 설한다. 부처님처럼 그냥 입 다물고 계시면 입이 간지러워서 못 견디는 분 계세요. 하루종일 떠드셔야 됩니다. 요설변재라.
그 다음에 부끄러움으로 장엄하는 연고며 (慚愧莊嚴故참괴장엄고며), 이건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이 뻔뻔스러우면 안 됩니다. 이걸 中隨煩惱중수번뇌라고 하죠. 無慙無愧무참무괴, 위의 성인들이나 윗 사람들에게 스스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또 밑에 사람들한테 이끌어 갈 지도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이러면 우리 모두가 해당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여기서 부끄러움으로 장엄하는 연고라 하는 것은 사람이 어느 정도 자기 나름대로의 인간 관계 속에서 내지는 자기 마음의 양심에 견주어서, 양심을 아는 사람 그것으로써 자기를 장엄하고 화장한다 이런 말이죠. 그다음
화순을 성취한 연고며( 成就柔和故성취유화고며), 이거는 무엇보다 중요한 대목이 되겠습니다. 和화라는 것은 화목이요. 順순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의 의견을 따라 주고 대응하고 맞받아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얘기죠.
그러니까 화목하고 수순하는 것이 화목하고 수순함을 성취하는 연고며, 이렇게 되면 이것이 선근이 성취 되는 11가지 법 중에 들어가는데 그래 돌아보면 됩니다. 우리는 한 마디라도 말 한 마디라도 아무 돈 드는 것 없는 말 한 마디라도 지기가 싫죠. 화순하는 사람들의 성격은 이렇습니다.
和順화순하는 사람은
'니 오늘 여기 문수선원에 뭐 하러 가노?'
'돈 안 되기 때문에 간다.'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니 그 사람 뭐 하러 도와 주노?'
' 뭐 아무 득 될 것도 없기 때문에 도와 준다.'
이게 정답입니다. 以無所得故이무소득고로 일체중생을 도와준다.
왜 포교사 일 해가지고
'니 오늘 떡 뭐 하러 해가지고 왔노?' 내한테 별 득이
'니한테 떡이 생기나. 밥이 생기나. 그 일 뭐하러 하노?'
'떡도 안 생기고 밥도 안 생기기 때문에 이 일 한다.'
이것이 바로 和順화순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이무소득고라는 것을 우리는 망각해버리고 내한테 어떤 이익이나 반사 이익을 기대하고 늘 일을 합니다. 부처님은 그런 것을 항상 경계해가지고 무슨 보시를 주장했습니까?
無相布施무상보시, 無住相布施무주상보시 내지는 상 없는 보시, 내 마음속에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습기를 흩어버리고 아상과 인상과 중생상과 수자상을 흩어버리고 모든 하는 일마다 열반 해탈의 길로 내가 가야 되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굳히는 것이 그게 무상보시인데 무상보시가 잘 되지 않는 것은 왜 그러냐?
익숙하게 전생부터 해오지 않았다는 저는 아닙니다. 저는 익숙하게 잘 합니다. 잘 하기 때문에 저는 해당 안 됩니다. 무조건 해당 안 됩니다. 나쁜 거에서는. ㅎㅎㅎ 나쁜 것은 저는 해당이 안 되고, 여러분도 해당 되실지 안 되실지는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에게 뭘 베풀어 주는 마음이 도대체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은 왜 그러냐? 전생부터 어릴 때부터 금생에 와가지고 또 늙어서까지 남에게 베풀어줘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익숙하지 못해서 그걸 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자주 베풀어 주고 남을 안 볶고 이런 스님 있잖아요. 참 남에게 좋은 말만 해주고 축생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하고 '여러분들은 다 부처님입니다.' 해주고. 이런 분들은 ㅎㅎㅎ 왜 조금 뭣이 양심에 찔리고 그래. 말도 곱게 하고 얼굴 표정도 곱게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ㅎㅎㅎ 이렇게 하는 분,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지 육체적인 것이든지 남에게...이렇게 그만 합시다.
자~ 조금 진도 나갑시다. 엉뚱한 소리 하다가... 이제... 아이고 참... 그런 걸 이제 자꾸 버릇을 들이셔야 됩니다. 언제 달에? 이 환희지가 끝날 때까지는 계속 그걸 연습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남에게 또 줄려고 하다 보니까 가진 재산이 넉넉하지 못하고 좀 빈약하지요. 그리고 물건도 이렇게 하나 줄려고 하다 보니까 뭐 염주도 좀 조잡한 것 같고. 꼭~ 저한테 학인 스님들이 제가 하도 뭐라 하니까 ‘은사스님한테 갈 때 금정산에 돌이라도 들고 가라. 빈손으로 가는 법이 아니다.’ 그리고 ‘갔다 올 때는 반드시 내한테는 물건을 니 성의껏 챙겨 오너라.’ ㅎㅎ
내가 받고 싶어서 그런 것 절대 아닙니다. 가져 오면 학인들한테 먹는 것 즉시 돌려줘버리고 쓰는 것은 또 남한테 주고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생전에 안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가져 오기는 가져 오는데 내한테 잘못 많이 한 학인들이 가져 옵니다. 조잡하기 이를데 없는 것 인도 여행 갔다 와가지고 삼천 원짜리 오천 원짜리 사면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사가지고 옵니다.ㅎㅎㅎ
그런데 신심이 있고 형편이 되든지 안 되든지 이런 사람들은 아주 작은 걸 사와도 전단향내가 나는 것 있잖아요? 거룩한 걸 사 옵니다. 그러면 선물 하나 딱~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이 확~ 느껴집니다. 때와 장소와 내 처지와 그 상대편의 처지와 이런 걸 맞춰서 가져올 때 되면 확~ 느껴지거든.
그런데 그런 것이 되지 않는 사람이 우리가 이제 십지품을 본다 이러면 좀 버겁기는 하지요. 사실은. 좀 뻑세죠. 남에게 주는 버릇이 안 돼 있는 사람은 그걸 자꾸 익혀야 되고.
‘아! 내가 전생부터 그리 남에게 보시하고 소탈하게 사는 버릇이 없었는가 보다. 이제는 어떻게 새삼스럽게 익혀야 되겠다.’ 단점 극복이 아니라 당연히 가야될 길이구나. 그것이 내가 해탈로 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니까.
보시라고 하는 것은 내가 물질에 대한 탐욕과 사람에 대한 탐욕과 진심이 돋아나는 것을 억누를 수 있는 간탐심을 제압할 수 있는 원천적인 상태기 때문에 그 탐진치가 제압이 되고 나면 마지막에 구경열반이라고 하는 번뇌가 사그라드는 길로 갈 수가 있는 이 원천적인 소습니다. 소스.
그러기 때문에 그게 원천을 무시하고 난 뒤에 열반 해탈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해탈로 가시고 싶으면 뭐부터 하신다? 보시부터 하셔야 됩니다. 부처님은 항상 계를 받기 전에 사성제를 설하기 전에 보시부터 얘기합니다.
그러니 내 물건이 조잡할 때는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아! 내가 얼마나 남에게 보시를 안 하고 살았으면 이렇게도 남에게 주고 싶어도 마음은 조금 생겼는데 줄만한 물건이 제대로 없는가. 이것이라도 부끄럽지만 공양 올려야 되겠다. 貧女빈녀의 一燈일등처럼.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남에게 줄 때는 거지라도 던져줘서는 안 됩니다. 그거는 보시하는 마음이 백만 원이라도 아무리 큰 돈이고 일억이라도 던져 주듯이 귀찮은듯이 사람 떼버리는 심정으로 해서 이거 먹고 떨어져라는 심정으로 주는 것은 자기 공덕도 없고 얼굴에 먹칠만 됩니다.
십 원짜리 백 원짜리 하나라도 공손하게 꿇어 앉아가지고 바칠 때 그것이 이제 보시의 공덕과 돈의 공덕은 두 번째 치고 자기 마음이 그렇게 서서히 해탈의 길로 자리 잡아 가고 남을 귀하고 나를 귀하게 여기는 쪽으로 자리를 잡아 간다는 것이지요.
그래 조금 있다가는 좀 살게 되고 좀 형편이 나아져가지고 잘 살면 조금 집도 괜찮고 요새 같으면 차도 괜찮고 먹는 음식도 괜찮고 이러면, 또 다이아몬드도 굵직한 것 이만한 것 하나 가지고 있다 하면 어느 만큼 전에 내 잘 하던 것 있잖아. 이거 하나 다이아몬드 하나 가지고 있다면 이거 하나 남한테 줄려고 하면 아까워 죽는 거야. 이제.
하~ 이걸 주면 자기한테는 줘도 괜찮고 안 줘도 괜찮을 정도로 넉넉하지만 어때요? 웬지 아까운 생각이 드는 거야. 어떤 스님이 상좌가 너무 말을 안 들으니까 웬지 저놈이 능력이 제일 뛰어난데 저 놈에게는 주기 싫다는 거야. ㅎㅎㅎ 그런 것도 있어요.
그래 훌륭하고 아까운 것을 남에게 쉽게 주지 못할 때는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어떤 사람이 대충 요구할 때는 다 주고 요구하지 않아도 드릴 수도 있지만 못 드릴 때 섬칫 돌아봅니다.
야~ 내가 이것 밖에 안되나... 할 때가 많죠. 보살이 돼가지고 대단한 사람은 남에게 殺身成仁살신성인이라고 해서 목숨까지도 주는 수가 있죠. 그런분들은 정말 수행자답다고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거죠.
말로 천 마디 만 마디 떠들 것도 없죠. 자기 신장도 떼줘버리고 그죠? 눈도 줘버리기도 하고, 그런 분들은 대단하죠. 하물며 그 가지고 있는 재산 같은 것 그런 분들은 임의로 다 줄 수가 있는데, 간탐심이 많은 내가 하지 못할 때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을 남에게 주지 못할 때는 이것 역시 내가 제대로 이치를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리고 남에게 주고주다 보면 홀딱 다 없어져가지고 나는 빈 깡통 안 되겠냐, 이런 생각을 하실 때가 있잖아요. 그때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제행은 무상하다, 인연은 돌고도는 것이다, 때가 되면 내가 베푼 만큼 다시 또 돌아오는 것은 확연하니까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없다. 지금 내 마음이 정말로 진실했다면 주고 나서 미래에 후회는 없다. 주고 나서 이렇습니다.
보시를 할 때는 줄 때 마음, 주는 과정의 마음, 주고난 뒤의 마음, 앞의 마음 다르고 뒤의 마음 다를 때가 왕왕 있을 때는 내 수행이 견실하지 못하구나. 처음에 주기 전에도 이미 마음을 비웠고, 주는 순간에도 마음을 비우고, 주고 난 뒤에도 마음을 비운다면, 그것은 이제 수행자로서의 형태, 또 부처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저는 지금 이렇습니다. 주기 전에는 조금 아깝습니다. 줄 때는 이미 이제 생각을 놓습니다. 주고 나서는 좀 잊어버리는 편입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주기 전에는 조금 아깝습니다.
어떤 때는 시원찮은 것은 그러니까 돈 같은 것은 주기 전에 조금 아까워요. 주기 전에 조금 아깝고. 그런데 그것만 이제 없어지면 아! 당연히 줘야 되겠다, 찾아서 줘야 되겠다, 만들어서 줘야 되겠다, 이것만 생겨지면 좀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오늘 아침에 이제 우리 학인 스님들 어디 멀리 꽃구경 간다고 보내놨는데, 경주로 오늘 꽃 불국사 '꽃만 보지 말고 다보탑도 살살 만져 보고 석가탑도 살살 만져 보고, 천년의 탑 옆에 오늘의 꽃이 피는 거는 하루의 꽃이 피는 거를 잘 봐야 된다. 탑이 그리 무거운 것 옆에서 가벼운 꽃을 보면서 생각을 해야 된다.'
제가 볼 때는 가서 탑이고 뭐고 만질 여가도 없고 꽃도 안 보고 꽃 구경 온 아가씨들 구경하다가 ㅎㅎㅎ 32상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나. 32상이 부처님 상호가 아니고 사팔이가 다 되지 않았나. ㅎㅎㅎ
꽃 구경 하다가 꽃 구경 나온 아가씨들 구경하다가 우리 학인들 눈이 이래 될 것 같아. 이래가지고 가재미 도다리가 될 거야. 아마. 사팔이 32상. 거의 32상이 오늘 돼서 지금 범어사에 와가지고 왔는지 집으로 갔는지 모를 지경으로 돼 있을 거야.
아침에 가면서 꽃 구경도 제가 가라고 했는데, 그냥 보낼려니까 뭐 하고 경비도 있고 종무소에서 사중에서 준다고 그러지만 또 가라고 했는 것도 제가 했으니까. ㅎㅎㅎ 그렇지만 주고 나서는 아까운 것 없습니다.
주는 것이 또 제 목적이기도 하고. 또 줘야 되고 당연히. 또 안 줘도 그만인데 안 주면 누가 손해예요? 학인들 손해 절대 아닙니다. 간탐심을 가진 제 손햅니다. 줄 수 있는 한 껏 주는 것이 가장 편합니다.
이런 것은 상을 내고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제 이제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주기 전에는 조금 아깝고, 머뭇거려지고, 주고 나서는 잘 했다 싶고, 이제는 잊어버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게 바람직한 도리들이죠.
그래서 모든 것은 어떻다 했습니까? 제행은 무상하다. 처음에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마음을 일으켜야 되고, 일어났는데 줄 게 없으면 조잡한 거라도 아까 벽돌 하나 나르는 심정으로 계속 날라서 줘야 되고.
그러다가 어느 날 크고 훌륭한 것 큰 덩치까지도 줘야 될 때는 그런데도 아낌없는 큰 걸 주고 나면 내한테는 이보다 더 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길이 있지 않느냐. 이렇게 당당하게 가야 되고.
내가 지금 정등정각 부처의 길을 이루러 간다는데 지금 여기에 이렇게 이걸 갖다가 아름답다 해서야 내가 참 꼬라지가 뭐냐. 진짜 마음의 다이아몬드를 찾아서 가는 사람이 이게 뭐냐. 이렇게 해버려야 되고.
그 다음에 여기 다 주다가 이것 하나도 없어져버리면 어떤 생각이 들 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돼요? 제행은 무상한데 또 인과응보는 확실한데, 이런 것에 대한 신심만 가지고 있으면 사는 것이 나날이 즐겁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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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근심은 내일하고 행복은 지금한다...고맙습니다._()()()_
[마음에는 한 점의 티끌도 없다...] [근심은 내일 하고, 행복은 지금 한다..] 지금 이대로 넉넉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이지 님!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_()()()_
선근(善根)은 이소(易消)하고 악근(惡根)은 난발(難拔)이라. 선근은 쉽게 녹아 버리고, 악근(惡根)은 난발(難拔)이라. 악한 뿌리는 뽑기가 힘이 든다.
업에 따라 흘러가면서도 업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본심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 마음과 생각을 착각하지 말기.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품은 자성 청정의 불성! 제행은 무상한데 또 인과응보는 확실한데...지선화 님, 고맙고 고맙습니다_()()()_
봄 바람에 피는 꽃처럼 봄 바람에 돋아나는 새싹들처럼 새 잎사귀처럼, 온 세상을 금상첨화로 장엄하는 것을 인생에 와가지고 마음 하나 가지고 사는 것도 아름다운데, 이것을 가지고 부처님의 불법으로 내 인생을 장엄한다고 하는 것은 가히 거룩한 일이 아닌가!- 얼쑤~~~ 신명 나네! 이지님 감사합니다
업에 따라 흘러가면서도 업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본심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근심은 내일 하고 행복은 지금 한다.’ 고맙습니다 _()()()_
순간 순간 백회를 뚫을 것 같은 성냄, 욕심등의 어리석음의 뿌리깊은 아만심이 독사처럼 도사리고 있습니다. 엎드려 절하옵건대 제 죄를 참회합니다.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바하! 옴 살바못자모지사바하! 옴살바못자모지사바하! _()()()_ 이지님, 정말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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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지금은 그냥.. 이순간 행복한 마음만 가질께요...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_()()()_
선근은 이소하고 악근은 난발이라. _()()()_
업에 따라 흘러가면서도 업에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본심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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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심은 내일하고..,
행복은 지금한다..
'자성청정불성..금상첨화 ...금상첨화 금상첨화 ..광목에 바늘이 들어가지 않아 부러뜨린날들이
수없으메 ..이좋은 비단에 수를 놓는다는 ..이아름다운 공부방 열강을 하시는 큰스님 정말정말 마음은 깊게 ..
손은 두손모아 합장하여 큰절을 올립니다....이시간 이귀한 법문을 들을수있음에 너무나 감동하고 감흡합니다
스님이 법문은 대단한 묘력이 있는것 같습니다 흘러 흘러 ........언제 읽으며 내려왔는지 볼때뿐....인데도 뭔가 얼굴이 웃음이 나는것은..?
대단한 가피가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감사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_()_
지금 부지런히 모든 선근을 닦는다. 매일매일 찰나찰나에 쉬지 말고...
항공모함이라도 모양이 있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허공이나 마음은 모양이 없으므로 큰 것이다.
지선화님, 다시 십지품 공부 계속합니다. 고맙습니다. _()()()_
수행자라고 한다면 자비로써 이 사람을 어떻게 해줄까 하는 생각을 가져야 모든 답이 풀리게 되어 있다.....
入此門內면 莫存知解하라...... 마음에는 하자가 없다!
지선화님 ! 고맙습니다._()()()_
_()()()_
_()()()_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제행은 무상한데 또 인과응보는확실한데,
이런 것에 대한 신심만 가지고 있으면 사는 것이 날마다 즐겁다
_()()()_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