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유은이
박보람
유은이는 또래보다 키가 크고 발육도 좋았다. 보통의 5학년 여자아이들은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자기들끼리 경쟁을 했고 수업 진도가 뒤떨어질까 봐 불안해하기도 했다. 쪽지 시험을 보면 점수를 가리기 바빴다. 자기 점수는 감추면서도 다른 아이들의 점수는 궁금해했다. 아마 그 나이라면 누구나 그럴 거였다. 예외는 유은이 하나였다.
수학공부방이었다. 나는 이십대 초반에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러 학년의 아이들이 섞여 공부하는 곳이었지만, 그중에 눈에 띄는 아이는 당연 유은이었다. 5학년인 유은이가 2학년 문제집을 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르치기 전에는 1학년 문제집을 풀었다고 했다. 그래도 나름 원장은 유은이의 문제집을 심화 문제집으로 선택했다. 그렇다 해도 보통의 2학년들이 풀 수 있을 정도로 문제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유은이는 응용된 문제들을 어려워했다. 덧셈과 뺄셈도 손가락으로 헤아려야 풀 수 있었다.
2학년짜리 한 아이는 3학년 문제집을 풀고 있었다. 유은이가 자꾸 틀리는 걸 보면서 그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언니 왜 2학년 거 풀어요? 저거 완전 쉬운데 다 틀리네.”
공부방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쏠렸다. 유은이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음, 언니가 복습하는 거야. 예전에 풀어서 까먹었다고.”
유은이가 당당하게도 얼른 말을 덧붙였다.
“맞아. 나 복습하는 거야.”
나는 식은땀이 삐질 흐르는 기분이었다.
유은이와 학년이 같은 아이들도 유은이를 이상하게 봤다. 여자아이들은 유은이가 없을 때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봤지만, 남자아이들은 유은이가 있는 자리에서 유은이를 놀렸다.
“어떻게 5학년이 2학년 문제집을 풀고 있냐.”
“바보다, 바보.”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유은이는 부끄러움 없이 대답했다.
“내가 너희보다 국어랑 사회 잘하거든?”
그러면 남자애들은 놀림을 멈추고 자기 할 일을 했다. 그때야 나는 유은이가 수학 말고 다른 과목은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유은이를 학습이 떨어지는 아이인 줄만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닌 걸 알게 되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을 때, 유은이가 자꾸 지각을 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하면 유은이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왜 안 와?”
“깜빡했어요. 이것만 마저 읽고 가면 안 돼요?”
“안 돼! 얼른 와.”
나의 재촉에도 유은이는 한참 후에나 학원으로 왔다. 내 퇴근 시간은 유은이에게 달려 있었다. 유은이가 오는 날엔 항상 1시간씩 늦은 퇴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유은이의 전화기가 계속 꺼져 있었다. 퇴근 시간은 다 되었고 나는 퇴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문밖으로 나서려는 길에 유은이가 들어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제가 휴대폰이 고장이 났는데, 오늘 학원 오는 걸 까먹고 책 읽다가 집에 갔거든요. 그랬더니 엄마가 학원 가는 날이라고 해서 지금 왔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으니 원장이 나왔다.
“너! 왜 늦었어. 당장 따라 들어와. 선생님은 가세요.”
유은이가 사색이 되어 원장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일하기 전에 유은이는 원장 반이었다고 한다. 학원의 대다수의 아이들은 원장을 무서워했다. 하지만 특히 유은이가 원장을 더 무서워했다. 이 일이 있기 몇 주 전에 원장이 유은이의 볼을 꼬집어 유은이가 눈물을 쏟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원장 방으로 들어간 유은이를 걱정하면서 퇴근을 했다.
다음번 수업에는 유은이가 지각을 하지 않았다. 휴대폰도 고쳤고, 학원 오는 날은 알람도 설정해 놨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의 말을 들어 보니, 내가 유은이를 두고 퇴근해 버린 그날, 유은이는 손바닥에 멍이 들도록 맞았고 한다. 내가 일찍 퇴근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 일은 금세 잊혔다.
중간고사가 끝났을 무렵, 유은이 엄마가 학원에 찾아왔다. 유은이 엄마는 유은이가 이제 5학년 문제도 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2학년 1학기 문제집을 반 정도 풀었을 때였다. 원장은 알겠다고 했고 여느 5학년들이 푸는 문제집보다는 쉬운 문제집을 유은이에게 줬다.
첫 단원부터 난관이었다. 자연수의 곱셈 나눗셈도 힘들어하는 유은이에게 분수의 개념도 어려웠고 분수의 나눗셈은 더 어려웠다. 몇 번의 반복을 통해 이해를 시켰다. 하지만 다음번에 만나면 유은이는 백지가 되어 있었다. 나도 유은이가 오는 날엔 긴장을 해야 했다.
더군다나 유은이는 원래도 잘 해 오지 않던 숙제를 더 해 오지 않게 되었다. 내가 화를 내면 유은이는 항상 시트지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창밖을 쳐다보곤 했다. 하루는 화난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원장이 들어와 유은이를 끌고 갔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원장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유은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떠들던 아이들도 떠들기를 그쳤고 교실은 적막으로 뒤덮였다. 아이들이 다 떠나고 나와 유은이만 남게 되었다. 나는 얼굴을 가리고 문제를 푸는 유은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게 숙제 좀 잘 해 오지.”
그제야 유은이는 가려진 얼굴을 들었다.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는지 얼굴이 얼룩덜룩했다. 손바닥도 빨개져 있었다.
“저도 잘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걸 어떡해요. 문제를 풀려는데 어떻게 푸는 건지 기억이 잘 안 난단 말이에요.”
나는 한숨이 나왔다. 유은이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선생님 역할을 해야 했다.
“그럼 잘 기억해야지. 모르는 건 질문하고.”
내가 말을 걸어서인지 유은이는 다시 원래로 돌아왔다.
“근데요, 선생님. 저기 있는 책 빌려 가도 돼요?”
고개를 돌려 보니 책꽂이 꼭대기에 책들이 꽂혀 있었다. 아마 원장의 책들인 모양이었다. 나는 몇 달 동안 발견하지 못한 책들을 발견한 유은이가 신기했다.
“내 책 아닌데? 원장 선생님한테 빌려 달라고 해 봐.”
“헉. 아니에요. 안 읽어도 돼요.”
유은이는 질색을 했다. 내가 말해 볼까 하고 고민을 하는 사이 유은이가 또 의외의 말을 꺼냈다. 아마 책꽂이에 꽂힌 『어린왕자』를 보고 한 말 같았다.
“근데요, 선생님. 『어린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은 왜 코끼리를 삼켰어요?”
나는 눈만 깜빡였다. 어릴 때 읽어 『어린왕자』의 내용도 가물가물했다. 그저 그림 속 사물을 어른들은 모자라고 하고, 책에서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했던 것만 기억이 났다.
“글쎄 배고파서?”
“보아뱀은 코끼리처럼 커지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코끼리를 삼키면 코끼리처럼 커질 수 있잖아요. 코끼리처럼 커지면 아무도 보아뱀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나는 유은이의 말에 설득이 돼 버렸다. 유은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더 하다 보니 유은이가 수학 문제를 풀 때와는 다른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은이는 다만 수학을 못하는 아이였다.
얼마 후, 나는 원장이 준 몽둥이의 무게가 견디기 힘들어 학원을 그만뒀다. 원장이 시키는 대로 아이들에게는 그만둔다는 얘기도 하지 못했다. 홀가분한 마음 반, 서운한 마음 반이었다. 그만두면서 가장 마음에 걸린 아이는 유은이었다.
그만두고 며칠이 흐른 뒤 유은이에게 문자가 왔다.
- 선생님, 저 오늘 늦어요.
유은이는 여전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고, 지금쯤 유은이는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나이이다. 나는 그동안 문득문득 유은이 생각이 났다. 그럴 때마다 유은이가 방과 후에 수학 학원에 있을지, 아니면 좋아하는 도서관에 있을지 궁금해지곤 했다.
박보람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독자와 눈을 맞출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