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술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내 얘기를, 세상 이야기를 술과 함께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어쩌면 술의 힘을 빌어 사회적인 나에서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여하튼 술은 내게 사람을 사람으로 만나는 도구 중 하나다.
그런데, 다른 이유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움 보다는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일곱 편의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고통을 잊기 위해, 또는 무언가를 견디기 위해 습관적으로 술을 마신다. 아이를 빼앗긴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이별을 앞둔 부부와 오랜 친구가 함께 술을 마시고, 죽은 동생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며 술잔을 기울인다.
오랫만에 읽는 우리나라 소설이라 처음에는 친근감을 갖고 책장을 열었다. 그러나 첫 번째 소설 <봄밤>을 읽고는 두 번째 소설로 가기 전에 잠시 숨고르기를 해야 할 정도로 <봄밤>의 사연은 너무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두 번째 소설 <삼인행>, 이어서 <이모>, <카메라> 까지 읽고 나면 ‘아, 이들은 작가가 창조한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이 아닌가’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 지점이 작가가 의도한 지점인가.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하고 싶었는가 보다. 기존의 소설과는 다르게 ‘술’을 매개로. 작가 자신의 방식대로.
노동의 문제나 이념의 문제가 아닌,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크게 이슈가 되지 않는, 그저 개인 탓으로 돌려지는 사람들의 비극적 삶에 대하여 무심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고있는 비극적 삶이 현재의 나, 또는 가족이나 친구의 삶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여 현재에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일곱편의 에피소드는 다르게 읽혀지기도 한다. 소설 읽기를 함께 하고 있는 우리 세 사람은 북한산길을 걸으며 우선 대표작인 <봄밤>, <삼인행>에 대하여 감상을 나누었다. 이어서 각각 관심이 가는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였다. 나는 <이모>에 관심이 많이 간다고 하였다. 동기들 중에 유사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 부양의 의무를 짊어진 첫째 딸로서 젊은 시절을 다 보낸 이모. 이제 자신의 삶을 살기위해 작은 집에서 최소한의 소비만을 허용하는 그녀의 삶은 무료하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낮에는 독서 밤에는 술, 반복되는 삶이지만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고 오롯이 그녀만의 시간이라는 점에 그래도 의미를 두고 싶다.
어찌보면 일곱편의 에피소드는 굳이 들쳐내지 않으면 그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지나칠 수도 있다. 작가 권여선은 그런 사람들의 삶을 굳이 들추어낸다. 간결하고도 서늘한 문장으로. 권여선이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서 진정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개인의 비극적 삶에 대해 무심한 세상에 대하여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다음에 읽을 소설은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이고, 감상을 나누는 날은 6월 16일입니다 ~~
첫댓글 샘들이 읽어보신 책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혼자 훌쩍훌쩍 눈물 흘릴지도...
오랜만!! 거기는 더 덥겠지ㅜㅜ 건강히 잘 지내고 만날 수 있는 날 반갑게 봅시다.^^
소설의 세계에 풍~덩 빠져봐! 나오기 싫을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