갬성 제주 11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그곳에 가기 전에 용눈이 오름에 들렀다 가면 더욱 좋다
제주 들러야 할 곳 추천하는 친구의 말을 따라 용눈이 오름에 들렀거늘
휴식년 보호중이라 주차장에서 행로를 돌렸습니다
올려다 보는 오름 한켠이 제법 가파르더군요
제주도를 사랑한 사진가 김영갑을 눌러앉힌 오름들 중에
그가 가장 사랑했다는 용눈이 오름
오늘은 작품으로 우선 보고 훗날에 만나리라
김영갑
사진으로 제주의 너른 자연을 둥그스름한 원과 열린 곡선으로 담아낸 선구자
그가 1957 년에 나서 2005년에 돌아갔다는 사실에서 잠깐 어지럼증을 느꼈습니다
아, 내가 너무 오래 살고 있는 건가
생년도가 같다
그런데 누구는 돌아갔고 나는 그를 작품으로 만난다
더 산다는 건 분명 축복일진대 진정성 꽉 채운 그의 작품들 앞에 나는 금방 미안해진다
그리고 고맙고 감사한다
루게릭병
사전을 보니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이란다
원인 불명 희귀질환인데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근육이 움직이거나 멈취버리는
아, 저런 절망감
그가 50생애 후반부를 이 병으로 시달렸고
암도 고친다는 세상인데 꼼짝없이 돌아갔구나
전시장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의 생애가 끝나던 해였던 2005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사진전이 열렸더군요
전시나 끝나고 돌아갔을까
4월과 5월, 전시와 장례일정이 연결되는군요
2002년에 이 두모악 갤러리가 오픈했으니
중앙 사단에서는 그를 변방인으로 푸대접했던 건 아니었나
억지 짐작도 해 봅니다
두모악
그가 명명한 한라의 옛이름
제주 사랑의 명백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공업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이군요
제주에 사진을 찍으러 드나들 적만 해도 제주의 자연에 쏟아진 국제적 명성이 아직일 때였구나 싶습니다
중앙대나 신구대학 사진학과도 아니니
아무튼 저희끼리 놀거나 말거나
그는 제주에 눌러 앉았고
그야말로 미친듯이 오름들을 오르내렸답니다
약초꾼조차 없이 한적해서 오히려 작업하긴 좋았다네요
그의 많은 작품들이 가로가 훨씬 긴 파노라마 기법입니다
오름과 그 주변의 너른 풍광을 담아내기에 마춤한 구조이긴 해도 당시는 별도의 장비와 후속 작업이 필요한 고난도 일이었을 겝니다
디지털 카메라도 나오기 시작했을 것입니다만 필름 사진의 색감이 좋아 바꾸지 않았겠지요
섬에 홀려 필름에 미쳐
1996년 나온 그의 작품집 제목에서 그 힌트를 얻습니다
삽시간에 붙잡힌 한라산의 황홀 1997년 나온 또다른 작품집 제목에서는 제주 어디서곤 숨을 곳 없게시리 따라다니는 한라영봉을 직접 렌즈로 들이민 작가의 명민함도 읽어내 봅니다
어쨌거나 김영갑
그는 제주에서 폐교를 얻어 작업실로 삼을 수 있었고
실내에 자기 작품들을 걸어 놓을 수가 있었고
학교 운동장과 맞붙어 나무를 심고 돌담을 쌓고 요망진 정원 하나도 완성합니다
요망지다
제주말로 아기자기 두루 갖추고 볼 만하다는 뜻입니다
루게릭병이 놀라서 잠시 주훔했던 것일까요 갤러리 담장 안 어디고 요망진 구석구석이 눈길을 잡습니다
잔디광장을 건너가서
한 작품 설치미술같은 두 길 높이의 담장을 봅니다
햇살 좋고 맑은 바람결
올려다보는 봄하늘이 비단결같습니다
무인카페
숙직실 정도로 쓰였을 공간을 개조한 찻집에서 찬 잔의 차를 마시리라
소박한 꿈도 다음으로 미룹니다
역병 예방 차원에서 운영을 잠시 중단했답니다
대신 장독대를 돌아 뒷동산 같은 산책로를 올라가 봅니다
담 저쪽의 당근밭 수확을 끝낸 고랑에 낙수라도 떨어졌을랑가 기웃거려보기도 했습니다
다시 앞마당
마당 정원 자체에 떨어졌을 김영갑 님의 땀방울 냄새가 나는 듯하고
중간담 돌 위로 마삭줄 덩굴이 겨울을 이긴 다갈색으로 봄볕에 꿈틀댑니다
김순자 도예가 조각가의 토우들
작거나 크거나 도란도란하거나 다정하거나 불쑥 혼자이거나
방문객을 반기고 말을 건넵니다
저는 결국 김영갑 그를 만납니다
그의 뼛가루를 뿌린 곳
화단 한 구석
국기게양대가 있었을 법한 자리
거기 돌 하나를 껴안고 감나무 한그루 서 있습니다
비자림 송이 산책길에서 밟아본 붉은 송이를 다시 밟아 봅니다
경건한 침묵과 응시
감나무는 과연 김영갑 님의 고통을 편안하게 안아주고 있으려니
삼가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기를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