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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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까뮈[프랑스]
알베르 까뮈 (Albert Camus) 프랑스의 소설가·극작가/출생-사망; 1913년 11월 7일, 알제리 - 1960년 1월 4일/1942년 《이방인》을 발표하여 칭송을 받으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 희곡 《칼리굴라》 등을 통해 부조리한 인간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소설 《페스트》 등의 작품을 남겼다.
활기를 띈 거리에는 한 겨울에도 햇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제방둑 근처에는 바다와 하늘이 한 빛깔로 융합되어 있는데, 이봐아르의 안중에는 그런 것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신작로 위로 힘껏 자전거를 몰고 있었다. 불구가 된 그의 한쪽 다리는 페달 위에서 쉬고 있었지만, 다른 쪽 다리는 아직도 밤 이슬이 내린 보도 위를 달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는 머리도 들지 않고 안장에 앉아서, 옛날에 전차가 다니던 레일을 피해가다가 갑자기 옆으로 핸들을 돌려서 뒤쫓은 자동차를 지나가게 하였다. 그는 아내가 꾸려준 점심이 들어 있는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는데, 그것은 사뭇 뒤로 밀려 나가곤 하였다. 그럴 때 마다 그는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점심을 생각하고 쓴 입맛을 다시는 것이었다. 두 조각의 빵 속에는 그가 즐겨하는 스페인식 옴렛과 기름에 튀긴 비프스텍 대신 떫트름한 치이즈가 들어 있었다.
일터로 가는 길이 이렇게 지루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것은 나이 탓이었다. 본래 청포도처럼 단단하기는 했지만, 40이 넘은 근육은 그렇게 재빠르지 못하였다. 그는 가끔 신문의 스포오츠 기사에서 30쯤 된 운동선수를 베테랑(老鬪士)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베테랑이라면 나는 이제 송장축에 들겠군 그래.」
그러나 그는 신문기사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이 30이 되면 두드러지게 나타나진 않지만 어느새 숨이 약해지고, 40이 되면 몰론 송장 축에 끼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듯 송장이 되어가는 징조가 엿보이게 마련이다. 그가 도시 변두리에 있는 통(桶)공장에 출근하는 동안에 바다를 거들떠보지 않게 된 것도 그의 나이 탓이 아니었는지?
30대에는 아무리 바다를 바라보아도 싫지 않았다. 바다는 언제나 그에게 행복한 주말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그는 절름발이인데도, 아니 절름발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수영을 좋아하였다.
몇 해가 지났다. 아내 페드랑드와 결혼하여 애기를 낳았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토요일에도 시간외 노동을 해야 했으며, 일요일에는 일요일대로 가정집에서 자잘구레한 일을 해왔다.
그리하여 그는 그를 만족시켜 주던 지난날의 즐거운 생활을 차츰 잃어 버리게 되었다. 깊고 맑은 강물, 타는 듯한 햇살, 계집들, 육체적 환락! 그곳에는 그런 것 이외의 행복은 있을 수 없었다. 그와 같은 행복은 젊음과 함께 가 버렸다. 이봐아르는 여전히 바다를 좋아하였지만, 그것은 조그만 만(灣)의 물빛이 검푸르게 짙어지는 저녁 때 뿐이었다. 그는 일을 마치고 자기 집 테라스에 앉아서 아내가 정성껏 다려다 준 깨끗한 와이샤쓰를 입고, 김이 오르는 아니젯트(술의 일종)의 술잔을 들고 앉아서 쉬는 시간은 즐거웠다. 밤이 되자 한동안 하늘에 아늑한 기운이 감돌고, 그와 이야기를 주고 받던 사람들의 말소리가 한결 가벼워질 무렵이면 그는 자기가 행복한 것인지, 혹은 몹시 불행한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튼 그 순간만은 마음이 흐뭇하였다. 그는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오직 막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일하러 가야 하는 아침이 찾아오면, 그는 이와 반대로 바다를 바라보는 것조차 싫었다. 바다는 약속이라도 하듯이 일정한 장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밤에나 바라볼 심산이었다. 그날도 그는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자전거를 몰고 있었다. 그는 마음조차 무거웠던 것이다. 전날 밤에 회합에서 돌아온 그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되었다고 말하자, 아내는 즐거운 낯으로 물었다.
「그럼 주인이 품삯을 올려 준대요?」
주인은 품삯을 올리지 않았다. 적전이 서툴렀기 때문에 스트라이크가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하긴 홧김에 일으킨 파업이었으므로 그들도 이를 증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조합측에서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한 것도 일리가 있었다. 하긴 15, 6명의 노동자가 일으킨 파업이 그리 큰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조합 측으로선 이 파업에 합세하지 않은 다른 통(桶)공장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통 제조업은 조선(造船)과 액체 운반용 트럭 제조 공장의 위협을 받아 부진상태였으므로 이들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통과 보르드레에즈(大桶)의 생산량이 날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에 만들어 두었던 푸우드르(大桶一種)를 고쳐서 쓰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통 제조업자들은 그들의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물가는 오른데도 불구하고 품삯을 내리려고 하였다. 공장문을 닫으면, 그들은 달리 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긴, 애써 다른 일을 배워 두지 않은 한 직업을 바꾸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통 제조업은 오랜 숙련이 필요한 우려운 일이다. 라피아(종려나무 껍제기로 만든 纖維)나 삼부스러기를 쓰지 않고 거의 밀봉된 것처럼 단단하게 구은 통널판지를 맞추거나, 그것들을 불에 구워서 철대(鐵帶)로 졸라맬 수 있는 우수한 숙련공은 드물었다. 이봐아르는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자기의 기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직업을 바꾼다는 자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익숙하고, 세련된 솜씨를 버린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자리가 없으면 단념할 수밖에 없는데, 이 단념이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하여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입을 봉한채 피곤한 몸을 끌고, 살림이 날로 쪼들리는데 낮은 임금을 받아가며, 아침마다 똑 같은 길을 터덜거리며 간다는 것은 것은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참다 못해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 그들 중에는 망설이는 자도 두세 명 있었지만, 주인과 첫 단판을 하고 나자 그들에게도 분노가 치솟았던 것이다. 주인은 낸담하게 나왔다. 마음대로 해 보라는 배짱이었다.
「사람을 어떻게 알고 하는 짓들이야? 그런다고 내가 손을 들 줄 알어?」
하며 에지포지트는 화를 내었다. 그는 주인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업을 위해 공장에서 자란 사람이었으므로, 모든 직공들과는 거의 구면이었다. 그는 때때로 공장에서 직공들에게 대패바에 불을 붙여 싸르딘느나 소세지를 굽고 포도주까지 곁들인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설이 되면 해마다 직공들에게 포도주를 다섯 병씩 나누어 주었으며, 직공 중에서 병자가 생긴다거나, 결혼식이나, 혹은 성체배수(聖體拜受)와 같은 경사가 있을 때에는 빼놓지 않고 부조하였다. 또한 자기가 딸을 낳았을 때에는 모든 직공들에게 한턱 내기도 하였다.
이봐아르는 바닷가에 있는 주인집 임야(林野)에 사냥을 초대 받기도 하였다. 이같이 그는 자기의 직공들을 아끼는 듯이 보였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직공에서 출방하여 오늘의 경영주가 되었다는 말을 곧잘 들려 주었다. 그러나 직공들의 집에 가보는 일은 없었으므로, 그드르이 살림살이에 대하여는 알리가 없었다. 즉 그는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여, 남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생각만을 내세웠다. 그리하여 마음대로 해 보라는 배짱을 부리게 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주인쪽에서 강경하게 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그만한 여유도 있었다.
그들은 조합에 원조를 청하였다. 드디어 공장은 문을 닫아버렸다.
「스트라이크로 이젠 머리가 흔들리네. 일을 중지하게.」
하며 주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공장이 쉬면 나로선 그만치 비용이 절약된단 말이야.」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직공들을 동정하여 일을 시키고 있는 듯이 말하였으므로, 사건이 원만히 해결되지 못하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에스포지트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호통을 쳤다. 그는 성미가 매우 꼬장꼬장한 사람이라 적당히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직공들의 충격은 대단하였다. 파업이 스무날씩이나 계속되자, 아낙네들은 집에서 살림 걱정을 하고, 서너 명의 직공은 기가 팍 죽어 버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조합의 조정으로 파업기간의 임금(賃金)은 시간외의 작으로 간주한다는 계약 아래 양보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들은 다시 일하기로 결의하였다. 투쟁을 단념하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린다는 허세를 부리면서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날 아침에 느끼는 피로는 그들의 패배감에서 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치이즈를 고기 대신 먹어야 하는 현실 앞에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태양이 바다 위를 내려쪼여도 그는 아무런 감흥도 받지 않았다.
이봐아르는 한쪽 페달만 밟으며 자전거를 몰았다. 바퀴가 돌아가는대로 자기도 조금씩 늙어가는 듯이 느끼면서. 다시 대하게 될 공장이며 동료들과 주인을 생각하면 그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아내는 근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그를 보고 뭐라고 하시겠어요?」
「말이 무슨 말이람.」
이봐아르는 이렇게 말하고 자전거를 잡아타고 머리를 휘저으며 이를 악물었다. 햇볕에 타고 주름이 잡힌 그의 개름한 얼굴은 침통해 보였다.
「일이나 하면 되지.」
그는 이를 악문채 자전거를 몰고 있었다. 서글프고 야속한 노여움으로 하늘마저 흐려지는 것 같았다.
그는 신작로와 바닷가를 지나 질펀하고 낡은 스페인 거리에 이르렀다. 길은 마차 공장, 고철(古鐵)창고와 차고가 늘어선 곳으로 통해 있었으며, 그곳에 바로 공장이 있었다. 공장은 일종의 헛간으로 벽 중턱까지는 벽돌로 쌓고, 주름진 함석지붕까지는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에 일터였던 낡은 광들로 에워싸인 마당에 면해 있었으며, 마당은 사업이 확장되자 낡은 기계나 헌 수통들을 놓아 두는 곳이 되어 버렸다. 마당 저쪽으로는 낡은 기왓장을 깐 통로가 있는데, 그 끝에 주인 집이 있다. 크기만 하고 볼품이 없지만 포도나무와 바깥 계단을 둘러싼 담장이넝쿨로 하여 별로 어색해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먼저 문이 닫힌 공장이 이봐아르의 눈에 띄었다. 직공들은 떼를 지어 문 언저리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그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이후로, 아침에 출근했을 때, 문이 닫힌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인은 일부러 배짱을 내밀어 보는 것이었다. 이봐아르는 왼편으로 돌아가서 지붕추녀밑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문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에스포지트를 보았다. 에스포지트는 밤색 머리에 온몸에 털이 많고 키가 후리후리한 청년으로 자기 옆애서 공장 일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테너 가수같은 머리를 한 조합대표 마르쿠, 공장의 단 한사람인 직공 싸이드, 그밖에 여러 사람들이 이봐아르가 오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봐아르가 미처 문앞에 이르기 전에 문이 비스듬히 열렸다. 모두 그쪽으로 돌아섰다. 직공 감독인 발레스테에르가 문턱에 나타났다. 그는 무거운 문 한쪽을 열어젖히고 직공들에게 등을 돌리고 그 문짝을 활차(滑車)의 레일 위로 밀고 갔다.
그들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발레스테에르만은 파업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가 에스포지트로부터 주인에게 잘 봉사한다는 말을 들은 후로 통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는 어깨가 딱 벌어지고 키가 작은 사나이로, 푸른 메리야스를 걸치고 신을 벗은 채(맨발로 일을 하는 사람은 그와 싸이드 뿐이었다.) 문 옆에 서서 눈을 번뜩이며 직공들이 들어가는 것을 일일이 살피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햇볕에 그을은 늙은이의 얼굴이 분명히 보일 정도로 맑고, 아래로 처진 짙은 콧수염 밑의 그의 입은 비장하게 한일자로 꽉 다물고 있었다.
직공들은 패배자로서의 굴욕감을 느끼며 일을 해야 하는 분노로 말미암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침묵은 오래 계속 될 수록 더욱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발레스테에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 앞을 지나쳤다. 그들은 그가 자기들을 공장에 들여보냄으로써 어떤 명령을 준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어색한 표정은 자기의 입장을 그들에게 충분히 보여 주고 있었다. 이봐아르가 그를 쳐다보자, 평소에 이봐아르를 좋아하던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출입구 오른쪽에 있는 조그마한 갱의실(更衣室)로 들어갔다. 흰 널판지로 칸을 막고 한쪽에 자물쇠가 달린 옷장이 있었다. 공장 벽과 마주치는 제일 안쪽 방이 샤워실이며, 그 밑에는 굳은 흙바닥을 파서 만든 도랑이 있었다. 공장 한가운데는 직공들의 일손에 따라서 완성된 통과 아직 테가 허슨해서 불로 더 구워야 할 큰 통이며, 길게 사이가 벌은 두꺼운 대패판(그 중에는 아직 대패를 대지 않은 몇 개의 둥근 밑바닥 나무판들이 끼어 있었다.)과 새까만 숯덩이가 놓여 있으며, 입구 왼쪽 벽에는 잇달아 작업틀이 늘어서 있었으며, 그 앞에는 대패질을 할 나무 통판들이 쌓여 있었다. 한편 갱의실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오른편 벽에는 육중한 커다란 기계톱이 잘 손질되어 번득거리고 있었다.
몇 안되는 직곡들에게 공장이 너무 컸다. 그리하여 무더운 여름에는 좋았지만, 추운 겨울에는 몹시 불편하였다. 이 넓은 공장 안에 테 하나가 아랫도리에만 감기고 위는 헤벌어진 채 구석에에 처박힌 통들이며, 대패판, 연장통, 기계 위에 덮인 톱밥, 먼지―― 이 모든 것들이 오늘은 유달리 쓸쓸하게만 보였다. 직공들은 낡은 메리야스에 퇴색한 바지를 갈아입고 나와서 그것들을 바라보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발레스테에르는 입을 열었다.
「이제 일을 시작하지!」
직공들은 말없이 각각 제자리로 다가갔다. 발레스테에르는 두루 살피면서 다시 시작해야할 것과 끝마칠 것들을 대강 일러 주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곧 망치소리를 내면서 팽창한 부분에 테를 씌우기 시작하였다. 대패가 나무 옹이에 걸려서 거친 소리를 내었다. 이어서 에스포지토가 돌린 기계톱 하나가 날이 부딪는 바람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기 시작하였다. 싸이드는 시키는대로 송판조각을 나르고, 나무 부스르기를 모아서 불을 피웠다. 그러면 다른 직공들은 쇳날에 콜세트를 낀채로 통을 팽창시키기 위해 불위에 올려 놓는 것이었다. 싸이드는 아무도 부르지 않을 때면 작업대에 서서 망치로 녹이 쓴 커다란 테를 두둘겨 죄여 놓는 것이었다.
마무 부스러기 타는 냄새가 공장안을 메우기 시작했다. 에스포지토가 잘라 놓은 송판을 대패질하여 들어맞추던 이좌아르는 나무 탄 내를 맡자 마음이 다소 풀리는 것이었다. 아무도 말없이 일하고 있었지만, 공장 안은 차츰 활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푸른 연기가 햇빛을 받아 꼬리치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봐아르에겐 곁에서 윙윙거리는 벌레소리까지도 들려왔다.
때마침 예전 공장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주인인 랏살이 문지방을 딛고 들어섰다. 몸이 호리호리하고 밤색 머리를 한 그는, 나이가 겨우 삼십 남짓하였다. 고동색 양복에 흰샤쓰를 이은 그는 아주 태연스뤄워 보였다. 그의 얼굴은 살를 칼로 발려낸 것처럼 뼈가 드러나 보였지만, 스포오츠를 좋아하여, 행동에 구김새가 없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호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러나 문턱을 넘어서는 그의 표정은 다소 낙심한 듯하였다. 그의 인사말은 여느때보다 힘이 없었다. 그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망치 소리가 좀 뜸해지다가 다시 여란스럽게 울려왔다. 주인은 망설이며 몇 걸음 앞으로 내딛더니, 이 공장에서 일한지 1년 밖에 되지 않는 젊은 발르리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이봐아르의 곁에서 몇 발짝 덜어지지 않은 기계톱 옆에서 큰 통의 밑바닥을 맞추고 있었다. 주인은 그가 일하는 태도를 바라보다가 말없이 일만 하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여보게, 그래 요즘은 재미가 어떤가?」
그는 좀 당황해 하다가, 에스포지토쪽을 바라보았다. 에스포지토는 그의 곁에서 커다란 두팔에 송판쪽을 잔뜩 안고 이봐아르에게 가져다 구려는 참이었다. 에스포지토도 일손을 멍추지 않고 발르리를 바라보았다. 발르리는 주인에게 아무 대답도 않고 다시 커다란 통속에 코를 틀어박고 일을 계속하였다. 주인은 다소 어섹한 표정으로 젊은 직공 곁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개를 치켜올리며 마르쿠에게로 돌아섰다. 마르쿠는 말타듯이 대패틀에 걸터앉아 바닥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다듬고 있었다.
「봉쥬우르 마르쿠!」
주인은 아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마르쿠는 아무 대답도 않고 나무판만 열심히 깎아내고 있었다.
「모두들 왜 그러지?」
주인은 다른 직공들을 돌아보면서 큰 소리로 말하였다.
「우리가 원만한 타협은 보지 못했지만, 일하는데야 무슨 지장이 있겠오. 그러지 말고 잘해보시다.」
마루쿠는 통 밑판을 들고 일어서서 손으로 비딕의 둘레를 쓰다듬으며 흡족한 듯이 눈을 내려감는 시늉을 하고는 여전히 입을 다문채 큰 통을 맞추고 있는 다른 직공에게로 걸어갔다. 공장 안은 망치와 기계톱 소리만이 요란하였다. 주인은,
「알겠오. 모두들 마음이 가라앉거든 발레스테에르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하고 조용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 버리자 곧 공장의 소란을 뚫고 벨 소리가 두 번 울려왔다. 담배를 한 대 피우려고 막 걸터앉은 발레스테에르는 천천히 일어서서 안으로 통하는 작은 문으로 걸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망치 소리가 한결 뜸해졌다. 그가 돌아왔을 때는 몇몇 직공은 일손을 놓고 있었다. 그는 문어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마르쿠와 이봐아르, 주인이 브르네.」
이봐아르는 손을 씻으려고 하자, 마르쿠가 그를 만류하였다. 그는 쩔룩거리며 마르쿠의 뒤를 따랐다.
바깥 마당에서는 신선한 햇살이 이봐라르의 팔뚝과 얼굴에 포근히 내려쪼였다. 이들은 벌서 드문드문 꽃이 핀 포도넝쿨에 덮인 바깥 층계를 올라가고 있었다. 갖가지 면허장들을 즐비하게 걸어 놓은 복도에 들어섰을 때, 그들의 귀에는 어린애 우는 소리와 함께 주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점심을 마치고 애를 재워요. 그래도 낫지 않으면 의사를 부릅시다.」
주인은 이렇게 말하며 복도로 나와, 좁은 사무실로 그들을 불러들였다. 촌스럽고 변변찮은 가구들을 늘어놓고 벽에다 우승배(優勝盃)를 장식한 이 사무실은 그들과는 낯이 익었다.
「앉게.」
주인은 사무 책상 건너편에 놓인 의자에 앉으면서 말하였다. 그들은 덤덤히 서 있었다.
「마르쿠! 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다름 아니네. 자네는 공장 대표이고. 이봐아르! 자네는 우리집에서 발레스테에르 다음으로 오랫동안 알해왔으니까 부른거야. 이미 끝난 일에 왈가왈부하긴 싫네. 나는 자네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네. 사건은 원만히 타협되어 우리는 다시 일하기로 결말이 났지 않나. 그런데 나 보기엔 자네들이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네. 나는 느낀대로 하는 말일세. 특히 이것만은 분명히 말해 두네. 사업만 잘 되면 지금 내가 들어 주지 못하는 요구조건을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네. 내게 그만한 힘만 있다면 자네들이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심을 쓰려고 하네. 우선 서로 합심하여 일을 해 주게나.」
그는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는 듯 싶더니 자시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떤가?」
그대 마르쿠는 밖을 내다보고 있었으며, 이봐아르는 단단히 결심을 하고 말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 말을 들어 보게.」하고 주인은 말을 이었다.
「자네들은 너무 고집이 세네. 아마 앞으로 차차 나아지겠지만, 마음이 가라앉거든 내 말을 명심하게.」
그는 일어나서 마르쿠에게 손을 내밀며 <자!>하고 악수를 청하였다. 마르쿠의 표정은 싸늘해지며 긴장된 그 가수 같은 얼굴이 매섭게 변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는 발꿈치를 돌려 밖으로 가 버렸다. 비위가 상한 주인은 이봐아르에겐 손도 내밀지 않고 있다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자네도 어서 나가 보게.」
그들이 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다른 직공들은 점심을 먹고 있었으며, 발레스테에르는 눈에 뜨이지 않았다. 마르쿠는<개수작>이라고 한마디 내뱉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에스포오지는 빵을 먹다 말고 주인 말에 뭐라고 대꾸했느냐고 물었다. 이봐아르가 아무 대꾸도 안했노라면서 자기 자리로 가서 보자기를 풀어 점심을 먹기 시작하였다.
싸이드가 저쪽에서 대패밥 무더기 위에 누어서 누구러진 하늘빛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아르는 그에게 점심 먹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무화과(無花果)로 요기를 했노라고 대답하였다. 이봐아르는 먹던 빵을 밀어 놓았다. 주인의 말을 듣고 난 그는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불쾌감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는 일어나서 싸이드에게 빵을 나눠 주면서 내주쯤은 일이 잘될 거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자네가 한턱 내지.」
싸이드는 한번 피식 웃으면서 이봐아르의 쌘두위치를 마치 배부른 사람처럼 천천히 먹는 것이었다.
에스포지트는 대패밥과 나무 부스러기에 불을 당겨 병에 넣어 온 커피를 남비에 쏟아 데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 이웃에 있는 식료품 상인이 파업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내온 선물이라고 하였다. 겨자(芥子)병이 손에서 손으로 돌아왔다. 에스포지트는 성탈을 탄 커피를 따루었다. 사이드는 싱글벙글 하면서 담숨에 마셔 버렸다. 에스포지트는 나머지 커피를 수선스럽게 입맛을 다시며 남비째 마시고 있었다. 그때에 발레스테에르가 잡업을 시작하라고 들어왔다.
발레스테에르는 직공들이 밥그릇을 보따리에 집어넣는 동안, 그들에게 어린애들같이 나대는 것은 점잖지 못한 일일뿐더러 파업은 각자에게 타격을 주며, 소동을 부려도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손에 남비를 든 에스포지트가 그를 향해 돌아섰다. 발레스테에르의 두툼하고 기름한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는 것이었다. 이봐아르는 그가 어떤 말을 할려는지 알고 있었다. 시은 직공들이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사람이 그들의 입을 틀어막았으며, 이제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 단계이며 분노와 무력함은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것이어서, 소리조차 지를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들 에스포지트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남자였다. 마구 웃는 얼굴을 하거나 부질없이 체면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에스포지트는 일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는 드디어 마음이 누구르져서 발레스테에르의 어개를 다정스럽게 두둘겼다. 모두들 다시 일을 시작하고 망치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이었다. 넓은 공장 안은 귀에 익은 소음과, 나무 토막과, 땀에 젖은 낡은 옷등으로 충만해 있었다. 에스포지트는 커다란 톱으로 밑통판 생나무를 천천히 켜고 있었다. 잘라지는 나무 사이에서 축축한 톱밥이, 나무토목을 쥐고 있는 그의 큼직한 손등 위를 빵가루처럼 뒤덮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무토막이 다 잘라지자 방동기 소리만이 요란스럽게 드려왔다.
이봐아르는 허리를 굽히고 대패질을 하면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여느때 같으면 아직 그렇게 피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며칠 동안 노는 사이에 맥이 풀린 것이다. 그러나 하는 일이 정밀작업이 아닌데도 피곤한 것은 역시 나이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피로는 일종의 노쇠현상이기도 하였다. 근육만을 혹사하는 노동은 몸서리가 났다. 그것은 으레 죽음의 그림자가 뒤따르게 마련이며, 심하게 일한 날 밤에는 송장처럼 곯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아들놈은 장차 교사가 되길 원하였다. 잘 생각한 것이다. 수공업이 이러니 저러니하며 추켜세우는 것은 그 내막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이봐아르가 숨을 좀 돌리고,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몰아내려고 몸을 일으켰을 때, 다시 벨이 울려왔다. 짧게 울리다가 맞고, 다시 성급하게 울려왔으므로 직공들은 일손을 멈추었다. 발레스테에르는 당황하였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문으로 달려갔다. 그가밖에 나가자 잠시 후에 벨은 멎었다. 직공들은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 발레스테에르는 요란스럽게 문을 열고 갱의실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운동화를 꺼내 신고 웃저고리를 팔에 끼는둥 마는둥 하고 이봐아르곁을 지나가면서 말하였다.
「딸 아이가 발작을 일으켰네. 의사를 부르러 가는 걸세.」
그는 대문쪽으로 뛰어 나갔다. 제르맹 의사는 공장 단골로서 교외에 살고 있었다. 이봐아르는 들은대로 소식을 전하였다. 직공들은 이봐아르의 주위에 모여서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서로 마주 쳐다보고 있었다. 헛바퀴를 도는 기계톱의 엔진 소리만이 들려왔다.
「별일 없을 테지.」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들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공장에서는 다시 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직공들은 마치 무슨 소식을 기다리듯 천천히 일을 하고 있었다.
약 1분쯤 지나자 발레스테에르가 돌아와서 웃옷을 벗어놓고, 말없이 작은 문으로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유리창에는 햇빛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잠시 후에 기계톱이 헛돌아가는 틈을 타서 거칠고 둔한 모오터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멀리서 들리다가 점점 가까이 오더니 멎어 버렸다.이윽고 발레스테에르가 돌아왔다. 직공들은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에스포지트가 모터를 껐다. 발레스테에르는 고개를 저으며, 공장을 향해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당황한 모양이었다. 다시 거친 모오터 소리가 들려왔다. 직공들은 물을 끼얹은 듯이 고요한 공장 한 구석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저물어가는 햇빛 아래서 그들의 거친 손을 톱밥이 묻은 낡은 바지 아래로 어색하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오후의 남은 시간은 지루하였다. 이봐아르는 이제 피로와 답답증 밖에 느끼지 못하였다. 그는 입을 열고도 싶었으나, 너 나없이 할 말이 없었다. 말없는 그들의 얼굴에는 비애와 일종의 집념만이 엿보일 뿐이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불행>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다가는 마치 거품이 생겼다가 사그러지듯이 꼬리를 감춰 버리곤 하였다. 그는 집에 돌아가서 아내와 아들과 그리고 테라스를 보고 싶었다.
마침 발레스테에르가 종업시간을 알려왔다. 기계들이 일제히 멎었다. 천천히 불을 끄고 자리를 정돈한 다음에 한 사람씩 갱의실로 들어갔다. 사이드는 끝까지 남아있었다. 그는 작업장을 청소하고 곧장 바각에 물을 뿌려야만 했다. 이봐아르가 갱의실에 갔을 때, 건장하고 털 투성이인 에스포지트는 벌서 샤워를 하며, 다른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온몸에 비누질을 하고 있었다. 여느때는 모두들 벌거벗은 그를 놀려주곤 하였다. 사실 그는 귀한 부분을 한사코 감추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만은 아무도 그를 거들더보지 않았다. 그는 뒷걸음을 치며 샤워에 나와 허리에 파아뉴(흑인들이 두르는 치마 같은 것)처럼 수건을 둘렀다. 다른 직공들도 샤워를 하였다. 마르쿠가 벌거벗은 자기 배를 세차게 문지르고 있을 때, 공장 정문이 레일 위를 구르며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주인이 들어왔다.
그는 성장(盛裝)을 하고 있었으나 머리는 약간 흩어져 있었다. 그는 문지방에 서서 넓고 쓸쓸한 공장을 살피더니 몇 발걸음 걸어서 갱의실을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수건을 두르고 있던 에스포지트는 그에게 등을 돌렸다. 벌거벗어 당황한 그는 몸을 비꼬고 있었다. 이봐아르는 마르쿠가 무슨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르쿠는 쏟아지는 물줄기에 가려 있었으므로 잘보이지 않았다. 에스포지트는 재빨리 내의 하나를 주워있었다. 그때 주인은 목메인 소리로,
「봉 수와아르」
하며 작은 문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이봐아르가 그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문은 벌써 닫혀 버렸다. 이봐아르는 몸도 씻지 않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동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였다. 모두들 그와 다정하게 인사를 하였다. 그는 재빨리 자전거를 꺼내어 올라앉자 등이 쑤시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혼잡한 시가지를 벗어나 저물어가는 오후의 거리를 달렸다. 그는 서둘렀다. 정든 집과 테라스가 유난히 그리웠다. 그는 세탁실에서 몸을 씻고 테라스에 앉아서 신작로 너머로 아침보다 한결 빛깔이 짙은 바다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공장 주인의 어린 딸 생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놈이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아내는 그에게 사건의 전발을 물었다. 그는 아무 대꾸도 없이 세탁실에 가서 몸을 씻고 나더니, 테라스 벽에 기대 놓은 의자에 앉았다. 여기저기 기운 빨래가 머리위에 널려 있었다. 하늘은 맑게 개이기 시작하였다. 저 너머를 저녁 한때의 고요한 바다가 배가 보였다. 아내가 아니셋트주(酒)와 컵 두 개와 냉수병을 가져왔다. 그녀는 남편 곁에 앉았다. 그는 신혼시절처럼 아내의 손목을 꼭 쥐고 모든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야기를 마친 그는 환혼의 수평선 저 끝으로 펴져가는 바다를 향해 앉아 있었다.
「아, 그야 그의 잘못이지었지.」
그는 이렇게 줄얼거렸다.
그는 나이가 좀더 젊다면 오죽 좋으랴 싶었다.
그리고 아내 역시 젊었다면……그들은 멀리 바다 너머로 떠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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