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
습관 habitude 개념0904습관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18. (P.304)
[살아가면서] 획득된 방식이다.
사람들은 자주 습관의 수동적 특성에 관해서 강조한다. 이 특성은 어떤 행위의 반복의 결과로 조금씩 무의식적이고 기계적인 되는 것을 말한다. 사실상 개인에게는 협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은 사물들에는 완전하게 습관화되지 않는다. 반대로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사물에는 한 두 번에도 습관화된다.
습관의 효과들은 긍정적이다. 습관은 우리들 속에서 행동의 자동성을 만든다. 즉 노력은 덜들고 성공은 더 많이 얻는 결과를 생산하는 노동을 행하도록 하는 성향을 만든다.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어서 자주 습관들을 사회 생활에 의해 획득된 모든 것(전통, 관습, 제도들)에 동화시키는 경향이 있고, 이 때는 이 습관을 제2천성으로 여겨 인간본성과 대립시킨다. 이 인간본성은 제2천성과 포개져 있는데, 한편으로 습관을 강제하기 위해서든지(사회적 습관들을 자연적 욕망을 제어하도록 하는 도덕적 엄격함처럼) 또는 다른 한편으로 습관을 펼치도록 허락하는 점에서(문화는 우리 정신의 자연적 씨앗을 풍부하게 한다는 습관이란 점에서)이다.
건전한 사회적 삶의 원칙은 인간 본성의 경향성과 조화로운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42OLF)
알바쉬 Maurice Halbwachs 1877-1945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18. (P.304)
프랑스 수학자이며 사회학자이다.
알바쉬는 1877년 샹파뉴 아르덴(Champagne-Ardenne)지역의 마른(Marne 51)주 랭스(Reims)에서 태어나 1945년(68살) 독일 바이마르(Weimar)부근에 부센발트(Buchenwald)의 강제 수용소에서 죽었다.
뒤르껭의 제자이며 카앙(Caen), 스트라스부르, 파리에서 교수를 지냈다. 그는 특히 삶의 수준들에 관한 문제, 사회 속에서 욕구들의 진화의 문제를 연구했다. 기억에 과한 그의 작업을 통하여, 추억은 특히 추억들의 ‘위치화’(localisation)가 사회적 삶(양식)에서 빌려온 기준으로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기준들이란 축제날들, 타인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사건들 등이다.
그는 기억을 사회적 사건으로 보았다. (사람들이 자신에게만 신경 써야하는 것보다 그만큼 덜 자신에 신경을 쓸 때) 사회적 고독(solitude)관련이 있는 자살이란 개념 정립에서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연관을 깊이 파헤쳤고, 그것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작품으로는
박사학위 논문인 노동자계급과 삶의 수준들(La classe ouvrière et les niveaux de vie, 1913), 기억의 사회적 틀(Les Cadres sociaux de la mémoire, 1925) 자살의 원인들(Les Causes du suicide, 1930), 노동자 계급에서 욕구들의 진화(L'Evolution des besoins dans les classes ouvrières 1933), [집단기억(La Mémoire collective, 1950)] (43TKI)
환각 (la) hallucina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18. (P.304)
실재 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감각적 대상에 대해 각성된 주체가 갖는 지각을 말한다.
사람들은 기본적 환각과 복합적 환각을 구별한다. 기본적이란 빛, 소리, 내적 불편함의 모호한 인상을 말하며, 복합적이란 인물 모습들의 보임(vision 환시), 말투들의 들림(환청) 등이다. 환각은 매우 자주 감염(열대열, 뎅그열 등)[열에 들떠서]의 기원으로 하는 망상(délire) 속에서, 또는 두뇌 종양의 과정이나 심리학적 혼란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즉 편집증적 착란(démence parnoïde), 박해망상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집단환각은 훨씬 드물지만, 정신적 공황상태나 군중의 열광과 같은 “암시”(suggestion)[집단최면] 또는 집단 히스테리에서 유래한다. 환각은 신비적 접신(vision mystique)과 연관없다. 이 신비적 접신은 극히 정확하고 엄격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서 (적어도 진지한 신비주의가 일어날 때) 진행된다. 예를 들면 성자 장 들라크르와(saint Jean de la Croix 1542-1591, 스페인 신비가 Juan de la Cruz)를 참조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철학적 반성과 과학적 탐구의 합리적 이해와 매우 가깝다. (43TKI)
아믈랑 Octave Hamelin 1856-1907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18-119. (P.304)
프랑스 철학자.
아믈랑은 프랑스 멘느-에-르와르(Maine-et-Loire 49)주의 르리옹-당제(Le Lion- d'Anger)에서 태어나 1907년(51살)에 랑드(Landes, 40)주의 위세(Huchet)에서 죽었다.
그는 표상의 원리적 요소들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éléments principaux de la représentation, 1907)에서 자신의 철학을 닫힌 체계로서 발전시켰던 드문 철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닫힌 체계란, 말하자면, 우리들의 인식의 모든 요소들에 대한 순수하게 합리적이고 증명적인 설명이다. 여기서 요소들이란, 운동, 양, 시간, 공간, 관계, 수, 인과성, 목적성 등이며, 이 모든 요소들은 인간 존재의 인격성에서 종합된다고 한다. (43TKI)
해밀턴 sir William Hamilton 1788-185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19. (P.304)
스코틀랜드 철학자이다.
해밀턴은 1788년에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글라스고우(Glascow en. Glasgow.)에서 태어나 1856년(68살)에 스코틀랜드의 에딘버그(Edimbourg, en Edinburgh)에서 죽었다.
그의 철학은 신념(croyance)에 의해 인식을 완전히 하는 것으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와 리드(Thomas Reid, 1710-1796)의 인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형이상학과 논리학 강독(Lectures on Metaphysics and Logic, 1859-1860)은 그의 아들에 의해 편집되었다. (43TKI)
하르트만 Eduard von Hartmann 1842-190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19. (P.304)
독일의 철학자이며 과학자이다
에두아르 폰 하르트만은 1842년 독일 베를린(Berlin)에서 태어나, 1906년(64살)에 베를린 가까이 그로스리히터펠데(Grosslichterfelde)에서 죽었다.
그는 헤겔주의자이며, 생기론자(vitaliste)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무의식의 철학(Philosophie des Unbewußten, 1869. fr. Philosophie de l'inconcient 1869), 헤겔과 쇼펜하우어의 통일로서 셸링의 실증 철학(Schellings positive Philosophie als Einheit von Hegel und Schopenhauer 1869; fr. Néokantisme, Schopenhauérisme et Hégélianisme, 1877), 인간의 진화 발전 단계에서 인간의 종교의식(Das religiöse Bewusstsein der Menschheit im Stufengang seiner Entwickelung, Berlin 1882; fr. Religion de l'avenir 1882 등이 있다.
하르트만 Nicolai Hartmann 1882-1950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19. (P.304)
독일 철학자이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1882년 현재 레토니(Lettonie, deu. Lettlands)의 수도인 리가(Riga)에서 태어나 1950년(68살)에 니더자하젠(Niedersachsen)의 괴팅겐(Göttingen)에서 죽었다.
그는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의 동일성의 철학과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을 동시에 영향을 받아서, 인식 형이상학의 개요(Grundzüge einer Metaphysik der Erkenntnis, 1921: fr. Métaphysique de la connaissance, 1927)을 전개하였다. .
그는 주체와 객체의 절대적 동일성 안에서 “인식”의 이론과 인식 “대상”의 존재론을 통합시키고자 애썼다. 그는 철학적 반성을 통하여, 위와 상관하여 세 가지 계기들(moments)로 전개되었다. 1. 인식의 현상학. 2. 난제(aporétique, 궁지): 해결할 수 없는 의식. 3. 존재론(l'ontologie): 존재에 대한 이론. 게다가, 그의 저작으로는 윤리학(Ethik, 1925; Ethique), 존재론 1권: 존재론의 기초(Ontologie, 4 Bande: 1. Zur Grundlegung der Ontologie 1935; Sur le fondement de l'ontologie), Die Philosophie des deutschen Idealismus B.1. 1923, B.2. 1929; Philosophie de l'idéalisme allemand) 등이 있다. 주의: 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을 헤겔주의자이며 생기론자인 철학자 하르트만(Eduard von Hartmann 1842-1906)과 혼동하지 말 것. (43TKJ)
우연 hasard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19. (P.304)
우연이란 용어는 아랍어 아즈-자르(az-zahr)에서 나왔으며, 주사위나 주사위 놀이(jeu de dés)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사건과 사실의 전개(déroulement)를 예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건과 사실의 성격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부딪힘(rencontre) 또는 기회(chance)와 같은 우연들의 원인을 규정할 수 있는 지를 아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거리로 되었다. 권리상으로 우연은 원인이 없다. 왜냐하면 순수 우발(contingence pure)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우발은 한 계열 안에서발생하거나 발생하지 않거나 하는 문제이다] 꾸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가 인용했듯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기왓장의 예가 전형적이다. 내가 [기왓장이 떨어지는 순간에] 그 길 위에 지나가든지 지나가지 않든지, 기와장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 즉 확률의 계산(calcul des pobabilité)은 비결정성의 영역까지 연구의 범위를 넓혔다. 꾸르노에 따르면, 우연이란 사실항 “서로 서로 독립적인 (원인들의) 계열들에 속하는 사건들의 조합”(combinaison d'évenements)일 것이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실행에서 많은 경우의 수를 함수로 하여, 대포의 발사횟수의 정확한 양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포의 포신의 높이가 동일한 경우에, 그리고 그 발사의 수가 충분히 많은 경우에 즉 예를 들어 100회라고 할 때, 포탄이 “[일정한]차이 있는 범위들”(differentes zones) 안에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20세 남성을 모아 돌을 힘껏 던지면, 돌이 떨어지는 범위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 정해지는 것은 가우스의 곡선을 닮았겠지만 말이다, 다른 의미에서 주사위던지기를 어느 정도 많은 횟수로 던지면 각 수가 나올 가능성은 1/6이라는 계산 가능하다는 것이다. 싸리 횃불을 드는 높이에 따라 불똥이 떨어지는 범위가 한정될 것이다.] 따라서 과학에서는 용어의 넓은 의미에서 우연이라고 하는 순수 비결정이 없다. [이 때의 과학은 물리적 현상에 대해 말할 것이고, 그 현상의 일정한 부분에서 정합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우연은 통계적 예견 안에 들어있다. 이점에서 근대 물리학은 “전반적 결정론”(détermination global)이다. [과학의 이론은 개별적 특이성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 그 일정한 한계에서 외연을 넓히는 경우에 성립한다. 날씨처럼, 비가 올 확률과 안 올 확률은, 둘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과학이 아니라 논리라는 것이다.] (43TKJ)
쾌락주의 hédon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19. (P.304)
쾌락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철학적 이론이다.
퀴레네 학파의 아리스티포스(Aristippe, 기원전 435-356)는 그의 작품을 유실되었지만, 역사사들에 의하여 쾌락주의자들 중의 첫째 철학자로 꼽힌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제자들도 살아있는 존재는 자연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한다고 확정했다. 그리고 또 신체의 쾌락이 영혼의 쾌락보다 더 강하다고 할지라도, 이 신체의 쾌락은 또한 자주 신체적 도덕적 고통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도 매끼 먹으면 질리고 고통스러워 진다.] 따라서 지혜와 진정한 행복은 정신의 자유를 간직하는데 있으며 욕망과 착각에 저항하는데 있다고 한다.
도덕적으로 쾌락주의의 이론가들은, 도덕성이란 쾌락의 탐구에 있으며 이 쾌락의 탐구가 인간의 성숙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43TKJ)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19-120.(P.304)
독일 철학자. 177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태어나 1831년(61살)에 베를린(Berlin)에서 죽었다.
그는 튀빙겐(Tübingen)의 프로테스탄트 대학의 학생이었으며, 그리고 횔덜린(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1770-1843)과 셀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의 동료로서 그는 그들의 낭만주의 열정을 함께 참여했다. 우선 1793년에서 1796까지 가정교사를 지내다가, 1797년(27살)에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리고 1800년(30살)부터 예나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 당시는 그는 중요한 논문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체계의 차이 Differenz des Fichte'schen und Schelling'schen Systems der Philosophie, 1801, Différence des systèmes de Fichte et de Schelling)을 쓰고, 1806년(36살)에 정신현상학 Phänomenologie des Geistes, 1807: Phénoménologie de l'esprit)을 예나 전투가 일어난 난 저녁에 급속히 끝마쳤다. 1812년부터 1816년(46살)까지 논리학 Wissenchaft der Logik 1816: Grande Logique를 썼다. 1818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베르린 대학에서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를 대신하여 교수직을 지냈다.
그의 초기 반성들은 극히 구체적이었다. 그의 반성은 유대교와 크리스트교의 정신에 기반을 두었고,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관심을 증거하였다. 그에게 흥미로운 것, 그것은 종교의 정신, 인민의 정신을 발견하는 것이었고, 또한 인간의 역사적 삶과 인간의 현존을 인민(peuple, 민족) 속에서 또는 역사 속에서 번역하기에 알맞은 새로운 개념들을 주조하는 것이었다. 이런 삶의 사상(la pensée de la vie)은 정신현상학의 소재를 구성하고, 이 책은 세계에 감각적 참여 이래로, 즉 “여기 그리고 지금”에서부터 인간 영혼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경험들을 통과하여 절대지(le savoir absolu)에 이르기까지, 의식의 역사를 묘사한다. 추상의 언어로 쓰여진 이 책은 진실로 대 논리학의 입문이다. 대 논리학은 절대(l'Absolu)그 자체를 실현하고, 그 절대를 철학의 지식과 동일시한다.
헤겔은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의 철학은 두 가지 해석들의 원인이 되었다. 첫째는 논리학에 근거를 두고, 절대지를 인간 전역사의 최종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헤겔은 자신을 종교적 영감을 받는 사변적 사상가로서 소개한다. 둘째는 정신현상학에 근거를 두고 있고, 그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속에 인류성을, 즉 역사 속에 인본주의를 실현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의 심오한 독창성이 그를 사회적이고 정신적인 실재성(realité, 현실성)을 사유하는 첫째 철학자가 되게 하였고, 또한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 1804-1872)와 맑스(Karl Marx, 1818-1883)를 [나오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헤겔의 초기 저작들 중에 아브라함의 생애와 예수의 생애((La Vie de Jesus, 1796)에 매우 구체적이고 암시적인 작품도 있다. 정신현상학과 논리학은 반대로 특별한 철학적 학적 배경을 요구한다. (43SLD)
헤겔주의 hégélian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0.(P.304)
헤겔주의란 헤겔과 그 제자들의 철학적 학설을 말한다.
헤겔 사상의 수많은 해석들 가운데, 다음과 같이 구별할 필요가 있다.
1. “정통”(orthodoxe) 헤겔주의. 이것은 헤겔 사상을 변질시키지 않고, 헤겔의 교육을 계속해서 이어간다. 로젠크란츠(Rosenkranz 1805-1879), 비더만(Gustav Biedermann 1815-1890), 프란틀(Karl von Prantl, 1820-1888), 에르트만(Johann Eduard Erdmann 1805-1892), 피셔(Kuno Fischer 1824-1907), 젤러(Eduard Zeller, 1814-1908)가 있다. [피셔(Karl Philipp Fischer 1807-1885) 독일 철학자 헤겔 비판자로 되어 있다.]
2. “신헤겔주의”(néo-hégélianisme)는 철학적 도식의 측면에서 헤겔의 관념론을, 정치적 도식의 측면에서 총체와 최고 목표로서 국가의 이론을 유지한다. 이탈리아에서 스파벤타(Bertrano Spaventa, 1817-1883),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 젠틸레(Giovanni Gentile 1875-1944)가 있고, 독일에서 크로네(Richard Kroner 1884-1974), 마르크(S. Mark), 리베르트(Arthur Liebert 1878-1946)가 있다.
3. “좌파 헤겔”(hégélianisme de gauche)은 특히 변증법과 생성의 용어를 유지하며, 종교를 비판하는 상대주의에 이르는 철학자들도 있으며, 그들로서는 포이에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 1808-1874), 바우어(Bruno Bauer, 1809-1882)가 있다. 또한 확립된 제도들을 비판하며 상대주의에 이르는 철학자들도 있으니, 슈타인(Lorenz von Stein 1815-1890), 슈티르너(Johann Kaspar Schmidt, dit Max Stirner, 1806-1856)가 있다.
4. “맑시즘”은 헤겔의 변증법을 완전히 보존한다. 그것은 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실재적 주체를 만들려고 했다. (43SLE)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20-121.(P.304)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1889년 독일 [남쪽 끝 스위스 접경에 있는] 바드(Bade)지방의 메스키르흐(Meßkirch)에서 태어나, 1976년(87살)에 [서남쪽 끝에 프랑스와 스위스 접경에 있는 바드(Bade-Wurtemberg)주의 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에서] 죽었다.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가브리엘 마르셀, 이대조(리다자오 李大釗)은 히틀러와 같은 해 태어났다.]
그는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제자였다. 그는 1914년(25살)에 학위 논문심리주의에서 판단의 이론(Die Lehre vom Urteil im Psychologismus; Théorie du jugement dans le psychologisme)을 출판하였다. 마르부르크 대학에 교수가 되었고, 그는 1927년(38살)에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Etre et Temps, 1927)에 출판하였다. 이 작품의 영향으로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존재와 무(l'Etre et le Néant, 1943)에서 거의 모든 분석을 그 작품에서 빌어 왔고, 까뮈(Albert Camus, 1913-1960)는 현존(실존)의 부조리(absurdité)의 개념을 그 작품으로부터 가져왔다. 그 작품은 상황 속에서 인간의 현존(실존)적 분석으로부터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철학자의 그 다음에 쓰여진 글들이 존재와 시간의 입문임을 입증 해준다. 이 존재와 시간에 따르면, 하이데거에서 반성의 중심은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즉 진리의 본질(De l'essence de la vérité 1931-1932), 인문주의에 관하여(Uber die Humanismus; Lettre sur l'humanisme, 1946)이 증거이다. 인문주의에 관하여는 시적 언어의 분석의 방향으로 향하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Der Satz vom Grund. 1955-1956) Die Sprache[Unterwegs zur Sprache 1950-1959] 이 시적 언어가 존재의 계시의 유일한 장소로서 간주했다.
엄밀하기보다 영감을 받은 사상가로서 또 “퇴폐적” 시대이고 원자 시대의 예언자로서, 하이데거는 모든 정신들[지식인들]에게 현실적으로 심오한 매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저작으로서,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Kant et le problème de la métaphysique, 1929), 형이상학입문(Einfürung in die Metaphysik, Introduction à la métaphysique, 1935), 어디로도 나있지 않는 길(Holzwege, Chemins qui ne mène nulle part, 1950), 오솔길(Sentier, 1953),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한다고 하는가?(Was heißt Denken? 1951-1952; Qu'appelle-t-on penser? 1954), 철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philosophie? 1956), 동일성과 차이(Identité et différence, 1957), 시간과 존재(Temps et être, 1962) 등이다. (43SLG)
** 참조: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Etre et Temps, 1927),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métaphysique? 1929), 인문주의에 관하여(Uber die Humanismus, Lettre sur l'humanisme, 1946), 철학의 종말과 사유의 임무(La Fin de la philosophie et la tâche de la pensée, 1964), 헤라클레이토스(Héraclite 1966-1967)
엘베시우스(Claude Adrien Helvétius, 1715-177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1.(P.304)
프랑스 철학자. 1715년 파리에서 태어나, 1771 베르사이유에서 죽었다.
그는 매우 어려서,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인간오성론 시론(Essai sur l'entendement humain)을 읽었고, 로크는 그에게 철학의 스승이 되었다. 그의 저서 정신에 대하여(De l'Esprit)은 왕의 자문관에 의해서 그리고 파리 의회에서 단죄 받았다.
1772년에 나온 인간에 대해, 그 지적 능력과 그 교육에 대해(De l'homme, de ses facultés intellectuelles et de son éducation)에서, 그에 따르면 “모든 종류의 편견들에 불같은 일격을 가해야”한다고 표현하였다.
그의 철학은 유물론적 감각주의이다. 물질적 대상만이 존재하고, 인식이란 우리의 감각의 생산물일 뿐이다. 그는 절대적 무신론자라고 공언하였다. 많은 백과전서파들과 마찬가지고 종교와 전제군주제는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그 당시에 실행되는 부의 배분에 관하여 비판하였고, 또 봉건사회에서 결과하는 당시의 입법을 개혁할 것을 권고하였다. (41RMA)
헤라클레이토스 Héraclite v. 540-480 av.J.-C.)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1.(P.304)
그리스 철학자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기원전 540년경에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의 에페소스(Ephèse, gr. Ephesos)태어나 480년(60살)에 죽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가 60살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왕족 가계의 출신이라 하며, 고대 시대에서 그는 “세계와 인간의 창조자”인 불(le feu)의 철학자이다. 그가 쓴 자연에 대하여(De la nature)라는 책 조각들만 남아있으며, 이 글들은 이오니아 산문으로 쓰여졌다. 그는 모든 사물들의 생성과 변화를, 판타레이(panta rei, 만물은 변한다)를 주장한 철학자이다. 즉 추위는 더위가 되고, 낮은 밤이 되고, 살아있는 것은 죽는다 등이라고 한다. 생성에 심오한 민감성은 고대시대에서 그를 감성의 세계의 철학자로 만들었다. 이점에서 그는 존재의 불변성을 강조했던 엘레아 학파의 파르메니데스와 제논과 대립되고, “본질들”(essences)[이데아들]의 철학에도 대립된다. (43TKJ)
헤르바르트 Johann Friedrich Herbart 1776-1841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21-122.(P.304)
독일 철학자이며 교육학자이다.
헤르바르트는 1776년 독일 니더자하젠(Niedersachsen)의 북쪽에 있는 올덴부르크(Oldenburg)에서 태어나 1841년(65살)에 니더자하젠(Niedersachsen)의 남쪽에 있는 괴팅겐(Göttingen)에서 죽었다.
그는 스위스에서 페스탈로찌(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의 교육학적 방법론을 배운 후에 1805년(29살)에 괴팅겐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1809년(33살)에 쾨니히스베르크에 칸트가 차지했던 철학을 계승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1833년(57살)에 다시 괴팅겐으로 돌아왔다. 그의 모든 작업은 심리학을 정확한 과학의 위치에 올려놓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의 “역동적”(dynamique) 심리학은 심리의 “힘들”(forces)과 이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연구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철학 입문(Lehrbuch zur Einleitung in die Philosophie, 1813; Précis d'introduction à la philosophie), 과학으로서 심리학(Psychologie als Wissenschaft, 1824-1825; Psychologie comme science), 일반 형이상학(Allgemeine Metaphysik, 1828-1829; Métaphysique générale), 철학 백과(Encyklopädie der Philosophie 1831) Encyclopédie de la philosophie) 등이 있다.
헤르바르트는 “역동심리학”(psychologie dynamique)학파를 세웠고, 그 학파의 대표적 인물들은 드로비쉬(Wilhelm Drobisch 1802-1896)와 빈델반트(Wilhelm Windelband, 1848-1915) 등이다. (43TKJ)
유전 (l')hérédi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2.(P.304)
살아있는 존재가 자기 후손들에게 개인적 형질들의 전달.
유전에 대한 많은 중요한 사실들은 잘 알려졌고, 멘델(Gregor Mendel 1822-1884)의 법칙에 의해 설명되었다. 개체의 생명과정에서 획득된 형질들은 단지 염식체 수준에서 변형이 일어났을 경우에만 전달된다는 것이 오늘날 확립된 학설이다. 보다 분명하게 말하면 형질들은 한 세 대를 건너서[격세유전], 즉 할아버지 세대에서 손자세대로 전달된다. 만일 회색 생쥐와 흰색 생쥐를 교잡하면, 거기서 나온 첫 세대는 회식 생쥐들이 된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는 흰 생쥐와 회색 생쥐가 [확률 계산적으로] 반반이 될 것이다.
유전과 교육은 인격성을 드러내는 두 구성요소들이다. 쌍둥이를 대조하는 방식은 자주 유전에 의한 부분과 넓은 의미에서 교육에 의한 부분의 역할들을 구별하는 데 사용된다. 넓은 의미란, 한 개체의 발달, 성장, 생활 등을 포함하는 모든 환경을 의미하며, 게다가 영양 상태의 질과 양, 가족적 환경, 교육적 환경, 사회적 환경을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43TMD)
해석학 (l')herméneutiqu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2.(P.304)
그리스 동사 헤르메네우아인(hermeneuein)에서 나왔으며, 해석하다(interpréter)를 의미한다. 해석학(l'herméneutique)은 기호들(signes)에 대한 해석의 이론이다. 다시 말하면 해석학은 종교적 상징들, 신화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간적 모든 표현형식들(예를 들어 감동의 의미들, 예술작품의 의미들 등)에 관한 철학적 반성들을 의미한다.
해석과 이해가 요구되는 인간 현상들의 해석학은 자연현상들의 객관적 분석과 대립된다. 이것은 근대 철학의 주요 개념이다. 특히 실존[현존]적 현상의 주요 개념이기도 하다. 중요철학자로서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덱거, 야스퍼스, 사르트르, 리쾨르 등이며, 이들에게서 인간의 현존은 기호(signe)이며, 철학자는 이 기호의 의미를 탐구해야 한다. (43TMD)
연금술 (l')hermétisme ; 비법 [연금술사(hermétist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2.(P.304)
이해하기 난해한 것들에 대한 성질
연금술[비법]은 기본적으로 중세에 연금술사(alchimistes)의 비밀스런 학설을 지칭한다. 그 목적은 금속을 변성(transmutation)시키는 것이고, [다른 한편] 보편 의학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오늘날에는 ‘비전학문’(science occulte)[전수가 비밀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과 동의어이며, [회교나 흰두교의] 고행자(fakirs), 천리안(voyants), [수맥, 광맥찾기의] 방사능 감지자(radiesthésiste)를 포함한다.(43TMD)
영웅 (le) héros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22-123.(P.304)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헤로스(hērōs, ἥρως)이며, 반신(demi-dieu)를 의미한다. 즉 “넘어섬”(dépassement)의 의지가 인간의 그 위로 고양된 사람을 지칭한다.
고전적 의미에서 영웅이란 위험천만한 일에 대한 취향(le goût)을 가진 이로 정의되고, 그 전형은 군사적 행위에 성공으로 후광을 입은 전사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영웅은 무훈(hauts faits)을[명예를] 세우는 데, 특별한 신체의 힘을 발휘함으로써 자격을 얻는다. 예를 들어, 헤라클레스는 요람에서 두 손으로 뱀을 목졸라 죽였고, 아킬레스는 전장에 그의 출장으로 적의 군대를 두렵게 했다. 전쟁이 근대적 방식으로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군사적 의미에서는 [영웅은] 순수 복종에 의해 그들의 의무를 행했던 [위험한 의무를 행하고 살아남은] “생존자들”(rescapés)에게만 적용되고, 이 생존자들의 외부에 남아 있는 사건들은 회고적으로 보면 우리들로 하여금 영웅의 사건처럼 생각하게 한다. [현대의 총력전에서, 명령에 복종하여 완수된 사건들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죽고 운 좋게 살아 남은 자들이 영웅의 취급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사건들은 그 영웅들이 행했다가 보다 이름 없이 가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연계된 사건들일 수 있다. 레지스탕스의 사건들은 거의 이러할 것이다. 시대의 연계 사건이 영광스러울 때, 영웅을 만들 수 있다. 그 사건에 연관 있는 많은 인물들은 사라지고 즉 엉뚱하게 생존자에게 그 영광이 돌아가는 수가 있다. 일제의 잔재는 그런 의미도 포함하고, 개발독재에서 시혜를 입은 재벌가들도 유사하게 그 이득을 취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에서 죽은 이들이 잊혀지거나, 한 해에 한번쯤 기념식을 가지겠지만, 산 사람들은 그 해명 방식에 따라 명예를 남기거나 또는 이름을 욕되게 할 수도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솔직해야 다음에도 시련을 풀 수 있을 것인데, 이들이 막중한 임무의 수행이 아닌 그저 “잔존자”로서 남게 될 때, 현존적 의미에서 무의미(non-sens)로 회자되게 될 것이다.(43TME)]
반대로, 이 단어의 진솔한 수용은 긍정적 행위 또는 긍정적 창조를 함축하고 있다. 즉 영웅은 민족적이고 혁명적인 원인을 구현하는 자이며, 그를 중심으로 주위에서 만장일치가 이루어져서 또한 진솔한 역사적 힘을 구성하는 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위대한 인물들은 영웅들인 셈이다. 결국, 영웅은 중요한 문화적 가치의 창조자 일 수 있다. 베르그송은 그의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도덕적] 영웅으로 삼는다. 예수는 인류에게 이웃사랑(charité)의 가치를 표방하였고, 게다가 루소는 이와 같은 자격으로 인류에게 “본성의 감정”(sentiment de la nature)을 드러나게 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영웅은 “성자”(le saint)와 “현자”(le sage)와 마찬가지로, 범속한 삶과 대립되는 생의 스타일을 표현한다. 그 영웅은 특별하게 풍부한 창조적 활동을 특징으로 삼는다. 성자와 현자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창조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성자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추상할 줄 알고, 현자는 세상을 단순하고 소박한 관조를 즐길 줄 안다. 참조: 지혜, 성자. (43TME)
에나르 Angelo Louis Marie Hesnard 1886-196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3.(P.304)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앙젤 에나르(Angel Hesnard)는 1886년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모르비앙(Morbihan 56)주의 뽕띠비(Pontivy)에서 태어나 1969년(83살)에 뿌와뚜 샤랑뜨(Poitou-Charentes)지역의 샤랑트 마리띰(Charente-Maritime 17)의 로슈포르(Rochefort)에서 죽었다.
그는 [그의 스승] 레지스(Emmanuel Régis)와 함께 신경증과 정신병의 정신분석학(La psychoanalyse des névroses et des psychoses, ses applications médicales et extra-médicales 1912)를 써서 프랑스에 프로이트 학설과 정신분석학을 도입했다. 결함 있는 침울한 세상(L'univers morbide de la faute 1949), 원죄없는 도덕(Morale sans péché 1954), 상호 인간관계의 정신분석(Psychanalyse du lien interhumain 1957), 공포증과 공포 신경증(Les phobies et la névrose phobique 1961), 프로이트로부터 라깡으로(De Freud à Lacan 1969) 등과 같은, 매우 엄격하고 매우 구체적인 그의 역작은 “개방 정신분석학”의 작품을 구성한다. 이 개방정신분석학에서 그는 프로이트의 생각들을 다시 검토하고, 생물학, 언어학, 현상학, 사회학 등의 최근의 자료들을 통해 풍부하게 했다. 이 정신분석학의 선구자는 아직도 프랑스 정신분석 운동의 현장에 남아있다. (43TME)
타율 hétéronom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3.(P.304)
자기 행동의 법칙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끌어내지 않고 자기 밖으로부터 그 법칙을 받아들이는 인격의 조건
칸트는 타율적 의지가 자유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타율로부터 결과한 행위가 도덕적 어떤 가치도 지닐 수 없다는 것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선행 또는 악행을 행하도록 “강제된” 자에게 그 행위의 책임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체면상(par convenance), 모방으로, 이해관계로 선행을 행한 사람의 행동은 지니지 못한다. 반대용어: 자율(autonomie) (43TMG)
역사 (l')histoir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23-124.(P.304)
인류 과거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확장하면] 인간살이의 현실적 전개과정을 말한다.
첫째 의미로서는, 역사는 인류, 특히 민족들과 국가들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인식이다. 이 주제에서 제기되는 근문적인 문제는 역사가 과학의 형식을 취할 수 있는 지를 아는 것이다.
1. 예전에 사람들이 이해한 대로 순수역사는 “사건들”(les événements) 만을 생각하는 데 익숙했다. 말하자면 이 사건들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인물들과 연관되어 유일하고 더 이상 반복 없는 사실들로 생각되었다. “나폴레옹의 장교들은 세계의 운명을 인식하기 위하여 그의 기분을 유심히 살핀다” 이런 관점에서는 과학은 없으나 사실들의 확인은 있는 셈이다.
2. 사람들은 이 [역사]과학을 법칙들의 인식이라 정의한다. 그런데 역사의 근대 분석은 이 과학에서 개인적 의지를 넘어서는 법칙들을 정확하게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역사의 “사회학적” 개념작업이다.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i 1828-1910)는 전쟁과 평화(Guerre et Paix)에서 어떠한 개인적 창의성도 발휘하기를 거부하는 쿠트초프(Koutouzov)를 설정하고, 거기에서,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법칙들 일체가 작동하기를 내버려두면서 인간은 그 장난감이 된다. 맑스는 한 나라의 경제적 하부구조 속에서 정치적 사회적 미래의 법칙을 탐구했다. 사실상 시미앙(François Simiand 1873-1935)이 제시했듯이 한나라의 경제적 발전은 일반 법칙들에 복종하는 것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역사는 역사의 구체적 실재성에서 절대적으로 예견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특히] 전쟁은 어느 누구도 그것을 검증할 수 없지만 세상을 뒤엎어버린다. 밑바탕에서 보면, 사회들의 역사는 정치적 본성을 지니고, 인간적 요소들의 절대적 법칙이 되는 못하지만 그 요소들에 의존한다. 상관 관계라는 측면에서 한 시대의 역사적 인식은, 그 시대를 표방했던 사실들의 과학이외에도, 공감, 환경의 내적 이해, 환경을 지배했던 인간적 분위기의 이해 등을 요구한다. 따라서 역사가는 과학자라기보다 해석가이다. 공산주의 역사가는 1789년 부르주아 혁명의 중요성을 무시할 것이고, 로베스삐에르의 역할을 길게 나열할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관적으로 이해한다.
둘째 의미로서, 현실 역사는 “전망”(prospective)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발전에 관련한 문제들, 그 나라의 경제적 분배의 문제, 주민들의 경향에 관련한 문제 등을 예견하고 해결하기 위해 그 나라의 행정가를 매일 만나는 사람이 있다. 과거와 결부된 경제적 법칙들과 심리학적이고 인간적인 실재성[현실성]에 대한 [실질적]인식은 이 전망들에 대해 객관적 가치를 줄 수 있다. (43TMG)
<사진 설명: 오펜하이머 (Julius Robert Oppenheimer 1904-1967), 원자폭탄의 아버지이다. 전쟁의 기술에 혁명을 일으켰던 그의 이론적 발견은 역사의 개념을 뒤집어 놓았다(boulverser).> (44LLF)
<[1. 왼쪽 위 사진] 1944년 6월 노르망디에서 연합군의 상륙. 만일 히틀러가 않았더라면 이날 저녁 전날에 일정분량의 약물(bariturque)을 흡수하지 않았다면, 역사의 흐름은 변했을까? [2. 왼쪽 아래 사진] 유엔의 회의. 세계 역사는 이 원탁회의에서 해결될 것인가?> (44LLF)
역사 철학 (la philosophie de) l'histoir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4.(P.304)
인간 역사를 합리적 계획의 실현으로서 생각하는 철학을 의미한다.
역사에 대한 현대철학들은 방법상으로 맑스(Karl Marx, 1818-1883)에서 영감을 받았고, 또한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영향도 받았다. 이 철학들이 제기하는 근본적 문제는 “역사의 의미”(le sens de l'histoire)의 문제이다. 세계의 역사는 도덕적 완성의 의미(le sens 방향)로 가는가? 문화의 진보의 방향으로 가는가? 또는 풍습들의 퇴폐를 표현하는가? 보다 구체적으로 그 역사는 공산주의로 또는 자본주의로 방향을 잡을 것인가? 가장 최근의 분석들에 따르면, 이 주제에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적 계획으로 정책수정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삶의 수준의 향상이라는 동시대의 요구에 따라 공산주의의 진화는 사적 소유의 방향과 개인적 창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표현된다. 역사의 철학은, [세계대전과 같은] 사고가 없는 시기에, 현실적 평화공존으로 향하는 두 체계들의 긍정적 종합의 가능성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한다. (43ULH)
역사성 historici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4.(P.304)
역사적인 것의 성격을 의미한다.
역사성이란 형이상학적 문제는 다음을 아는 것이다. 즉 왜 인간은 태어나서, 살다가 그리고 죽는지를 아는 것이다.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이 역사성을 보편적 생명(la vie universelle)의 문제로 끌고 갔다. 보편적 생명은 우선 스스로를 개화하고, 그리고 개별자들로 나누고, - 마치 나무의 생명이 잎들로 화창하게 전개하다가 계절에 맞게 사라지게 되어있듯이 - 개별 생명들 저넘어(au-delà)로 전개된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역사성을 인간의 유한성의 문제와동일시했다. 그의 모든 철학은, 원시적 역사성으로부터, 즉 덧없이 죽어갈 현존재의 감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인간 품행(la conduite)을 이해하는데 있다. (43ULH)
홉스 Thomas Hobbes 1588-167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25-126.(P.304)
영국철학자이다.
홉스는 1588년 영국 윌트셔(Wiltshire)의 웨스포트(Wesport)에서 태어나, 1679년(91살)에 하드윅 홀(Hardwick Hall)에서 죽었다.
그는 영혼의 현존을 부정하는 유물론자이다. 그리고 감각들로부터 관념들과 인식들을 연역했다. 그의 공리론적 도덕론은, 자연법과 정치법의 기본(Eléments de la loi naturelle et politique)(1640년 작성, 1650년 출판)과 레비아단(Leviathan, 1651)에서 나타나데, “인간에게 늑대”가 될 인간의 자연적 소질에 따라서 전제군주제의 기원들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자연 상태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에 대해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신적 권리의 군주제”에 대립시켰다. 그는 어떤 냉소주의가 없지도 않지만, 계약에 근거한 절대주의(l'absolutisme)를 마련했다. 계약에 의해 개인들은 모든 권리들을 하나의 (군주든 의회든)주권(souverain)에만 부여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왕정의 권리들을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계약 이론가들과, 특히 루소와 싸우게 될 것이다. (43LUJ)
올바흐(Paul Henri Thiry, baron d')Holbach 1723-178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26.(P.304)
프랑스 철학자이다.
올바흐는 1723년 독일 팔라티나(Palatinat)주의 에데스하임(Edesheim)에서 태어나, 1789년(66살)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18세기 후반에 유물론의 확산에 본질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자연체계(Système de la nature, 1770)의 저자이다. 그는 종교를 세 가지 이유에서 비판하였다. 종교는 이성에 반대되고, 인간을 행복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며, 정치적 전제정(참주)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접근을 막는다는 것은 자연주의 전통의 대부분인 것 같다. 게다가 종교가 이성에 반대되어 전제정으로 간다는 것은 식민지 국가가 제국에 구걸하는 사대주의와 닮았다. 2008년 명박산성은 그러하다.] (41RMC)
인간 (l')hom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26-128.(P.304)
이성을 부여받은 살아있는 존재. [생물학과 진화론이 있기 전까지 인간은 외부 또는 상층과 연관해서 다루었다. “인간은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묻게되는 것은 생물학과 더불어 심리학의 도래에서이다. 이 시기를 살았던 베르그송은 불가분이면서 움직이는 하나의 단위 인격을 구출했다. 이 인격은 개체적으로 심리적이고 종적으로 생물적이며, 공동체 안에서 이상을 만들려는 종교성의 존재이다. 첫째에서(DI MM)로 심리적 단위의 직관을 끌어내고, 둘째에서(EC) 의식의 총체성을 만들고, 셋째에서(MR) 행동하는 특권자(특이자)를 서술한다.]
인간의 본성(la nature)에 대한 형이상학적 의문, 또는 인간의 운명(la destination)에 대한 도덕적 의문 등 인간에 대한 의문은 근대[후기 근대] 철학의 근본적 관심을 구성한다. 근대[후기근대] 철학은 과거[근대]의 철학과 구별된다. 과거철학의 중심 문제는 버클리, 흄, 칸트처럼 외적 세계의 현존의 문제였거나, 데카르트처럼 영혼(l'âme)의 현존과 본성만의 문제였다. 그 인간은 영혼있는 신체(le corps animé)과 지성적 영혼의 구체적 일체(la totalité concrète)를 지칭한다. 사람들은 무엇이 인간적인지, 어떻게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지 진실로 알 수 있는가? 그러한 것은 오늘날 철학적 문제이다.
*인간과학의 구성La constitution de la science de l'homme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에 따르면, “역사”(histoire)는 인간적 실재성(la réalité humaine)들에 대한 인식의 방법일 수 있음을 발견했다. 꽁트(Auguste Comte, 1798-1857)는 인간과학(la science de l'homme)을 말했던 첫째 철학자이다. 그의 문제는 진실한 과학, 즉 “실증”사회학과 “실증”심리학을 기초하는 것이었다. 이 실증과학들은 인간의 인식을, 우리에게 정념들과 감동들을 암시하는 주관적 해석들로부터, 구분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연과학들의 방법들을 “인간적 실재성”의 영역에 옮겨놓는 것 이외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 관점에서 “실증철학”은 내재성(intériorité)와 인격성(personnalité)와 같은 인간 인식에서 적용된 어떤 방식도 가져오지 않았다.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는 진실로 “인간과학”(la science de l'homme, 정신과학 Geistewissenschaften)의 창시자이다. 딜타이는 인간과학을 “세계의 직관들에 대한 이론”(théorie des institutions du monde, Weltanschauungslehre)라고 정의하고자 했다. 그는 세계의 직관들을 세 가지 묶음으로 정리했다. 즉 그 속에는 종교 같은 감정의 요소들, 과학과 같은 합리적 요소들, 도덕과 같은 의지의 요소들이 지배하고 있다. [딜타이는 종교성을 자아에, 합리적 학문을 세계에, 그리고 의지적 노력을 도덕 즉 세상(사회)에 부여하려고 했다면 그럴듯하지 않는가!] 따라서 인간과학은 종교의 철학, 과학의 이론, 도덕의 이론으로 분해된다. 인간과학의 일반적 방법은 “이해”(compréhension)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딜타이는 물리적 실재성에 대한 “설명”(l'explication)과 인간현상의 “이해”를 대립시켰다. “사람들은 화가 난 인간을 설명하지 않고, 그를 이해한다.”고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쓰고 있다. 모든 인간들은 모욕과 분노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물리적(신체적)전형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관계이다. 이런 보편성은 어떤 객관성을 이해의 방법에 부여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사실의 인식은 심리학과 사회학의 덕분에 깊이있게 탐구되었다. 1. 정신분석학[프로이트] 또는 “심층 심리학”(la psychologie)[베르그송]은 사회적인고 피상적인 인격성의 특성 아래 감추어진 부차적이고 무의식적이며 작동하는 인격이 현존함을 폭로하였다. 2. 사회학은, 한 개인을 따로 분리하고서 어떤 그룹 속에 넣었을 때, 그 개인이 총체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회학자는 인간의 적응이 무한한 자질(les resources)이 있다고 확인했고, 심리학자는, 분석된 개인들에게서 보면, 그들에게서 발견했던 이미지들의 자체에서 총체적으로 그 자신들을 재인식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 인간의 철학적 문제 Le problème philosophique de l'homme
이 문제는 인간의 모든 측면에 대한 전반적 종합을 탐구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 임무는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가 말하듯이 “인간의 모든 창조물을 배열하고, 는 일반적 기능을 폭로하는 것이며, 신화, 예술, 종교 등을 동일한 주제 위에 변항들(variations)로 제시하는 것이다”. 인간은 여전히 자기의 모든 표출 속에서 자기 자신에 동일할 것이다. 이 모든 난점들은 현대철학이 전체적[단위적] 인간을 “활동성, 애정성, 인식” 등을 임의적으로 나누어 가지고 있는 것을 파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동, 감정, 이성을 동시에파악할 수 있기를 바라는 데서 온다. 여기서 현대철학이란 실존주의, 현상학, 반성철학, 맑스주의 등이다. 그러나 현대철학은 아직도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해두자. 그러나 “그것의 사유”에 의해서 그것 자체 속에 비합리적 존재(l'existence 현존)를 인식하기를 원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그리고 왜냐하면 인간이 실재적으로 인간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단지 삶의 경험에서 있을 뿐이기 때문에, 그 해결이 사변적인 해결 방식이 없다는 점에서 “참여철학”(la philosophie engagée)에 있다고 결론 지울 필요가 없는가? 인간은 “인식하기” 보다 오히려 “실현하는”(réaliser)데 있다. [맑스의 포이에르바하 테제 11번을 원용한 것 같다.]
*진실한 인간과학은 도덕론이다.La véritable science de l'homme est la morale
이 문제는 세상에서 인간의 운명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이 주제에서 “형식적” 도덕과 “구체적”도덕을 구별할 수 있다. 전자는 칸트의 것으로 인간이 실현해야 할 의무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함이 없이, 인간은 “의무에 의해”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후자는 피히테와 막스 셀러(Max Scheler 1874-1928)가 주장하듯이, 의무를 소명(vocation)과 동일시하며, 소명은 인격성의 심층적이고 창조적인 법칙이라 본다. 어떻게 인간은 자기 운명을 알 수 있을까? 인간은 운명을 긍정적(positive)이고 이론적 인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이고 실천적 의식(conscience)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주어진 거짓 방향들을 의식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실한 운명은, 셀러의 표현으로 “실천적으로 체험된 부정적 신학”에 의해, 자신의 오류로부터 구별된다. 인간 각각은 자신의 한계와 자신의 가능성을 의식하면서 자기의 길을 실현할 수 있고,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표현대로 인간은 “만들고, 그리고 만들면서, 스스로 만들어진다”(faire, et en faisant, se faire").
두 개의 도표가 있다. (128-129쪽)
*인간과학들: 서술과학들Les sciences de l'homme: sciences descriptives
• 심리학 psychologie 개인의 관찰
∙객관적 행태, 그 행태의 신체적 반작용에 대하여. 행태심리학(behaviorisme)
∙개인적 “자아”에 대하여 : 내성(introspection_
∙행실에 대하여: 쟈네(Pierre Janet, 1859-1947)
- (행실(conduite) = 행태(comportememt)+의미화(signifcation)
• 사회심리학: 타르드(Jean-Gabriel de Tarde, 1843-1904)
- 조직화되지 않은 군중들의 행태.
• 사회학: 그 창설자는 꽁트(Auguste Comte, 1798-1857)
- 사회의 조직화된 그룹들의 과학
∙문화 인류학: 제도들의 과학
∙이해의 사회학: 사회적 행실의 과학
∙인종학 : 인민들(peuples 민족들)의 서술적 연구
• 역사: 인류의 과거의 과학
∙객관적인 역사: 사건들의 과학
∙이해의 역사: 진화의 일반적 운동에 작용하는 일반법칙(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등등)의 과학
*인간 철학: 인간의 규범적 과학 La philosophie de l'homme: science normative de l'homme
• 미학: 아름다운 것에 대한 이론
∙안락한 감각에 대한 심리학적 이론
∙미학적 지각의 이론 : 미학적 쾌락의 감정에 대하여)
∙미학적 창조에 대한 이론 : 인간적인 모든 창조물의 불가사의에 대하여.
• 인식의 이론
∙우리의 인식의 토대와 한계에 대한 이론 : 칸트
∙우주를 지배하려는 인간의도로서 과학이론
- 후설은 이것을 형상적 분석이라 부른다.
∙ “내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내가 왜 알기를 바라는가?”에 대한 응답.
• 도덕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계 안에서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라는 의문데 대한 대답
•자연권의 이론 theorie du droit naturel
∙인간 본성으로부터 합리적으로 흘러나오는 것같은 것으로 인간적인 연관들의 조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술.
- 개인적 자유와 존경이라는 자연권을 사회의 또는 자연적 필연성과 화해시키는 것
• 종교의 철학
∙인간의 열정에 대한 해석: 헤겔
∙숭배와 신화에 대한 해석: 셸링, 바호펜, 카시러, 리쾨르
• 실존(l'existence 존재)의 철학
∙하이데거의 현존재의 존재론처럼 인간 존재(Etre de l'homme)의 분석
∙인간과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 질문이 직접적으로 제기되는 근본적 철학에서 정점을 이룬다. (43RME)
호르크하이머 Max Horkheimer 1895-1973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0.(P.304)
참조: 프랑크 푸르트 학파 (l'Ecole de Francfort) (43RME)
인문주의 (le) human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0.(P.304)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 에라스무스(Erasme, 1466-1536), 뷔데(Guillaume Budé, 1467-1540),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 등은 그리스 라틴 고대 문학과 인간적 반성을 동시에 새롭게 존중하였다.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가 있을 인정하는 도덕적 이론이다. 이것은 종교적 열광(fanatisme)에 대립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을 국가이성에 희생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국가주의에도 대립된다. 인문주의의 도덕원리는 관용(tolérance)의 원리이다. 인문주의에 고유한 철학은 인류의 이상적 형식을 향한 문명의 진보(progrès)라는 생각을 옹호하는 것이다. 이상적 형식 속에서 인간은 기술적 진보 덕분에 자연의 우연성에 비추어서(추위, 더위, 질병에서) 자유로울 것이고, 또한 이상적이고 세계적인 헌법(une Constitution)의 제정 덕분에 다른 인간들에 비추어서(투쟁 없고 계급 없지만 잘 조직된 사회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인문주의”란 용어는 역사적으로 “인류종교”(la Religion de l'humanité)에 적용되었다. 이 인류종교를 꽁트(Auguste Comte, 1798-1857)는 신의 종교 대신에 대체하기를 바랐다. 오늘날 사회 정치적 철학적 모든 이론의 최고 목적은 인간의 무제한적 발전에 있으며, 인간 인격의 존엄성을 실재로 존경하는데 있다. 이러한 것은 도덕적 목표와 경제적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43UMI)
흄 David Hume 1711-1776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0.(P.304)
스코틀랜드 철학자, 역사가이다. 흄은 1711년 에딘버러(Edimbourg)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1776년(65살)에 죽었다.
그는 상업으로부터 시작하였으며, 프랑스를 여행했고, 영국 대사의 보좌를 맡았으며, 에딘버러 변호사협회의 사서로서 생을 마감했다.
인간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 Traité de la nature humaine, 1739-1740)과 인간 오성의 탐구(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748)에서 그는 경험론 철학을 발전시켰으며, 이 경험철학은 감각과 경험으로부터 인간 이서의 모든 원리를 연역하였다. 그는 자연의 법칙들을 인간의 습관으로 귀결시켰다. 이것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를 심하게 동요시켰다. 도덕과 정치론(Essays Moral and Political; Essais moraux et politiques, 1741-1742) 작품은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경제학 이론과 시장자유의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는 국가들 사이에 금(l'or)의 할당(répartition)의 고전적 이론을 정식화했던 첫째 학자이다. 또한 그의 저작으로는 도덕원리 탐구(An Enquiry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Morals, 1751; Enquête sur les principes de la morale), 종교의 자연사(The Natural History of Religion, 1757; Histoire naturelle de la religion), 영국사(The History of England, 1754-62; Histoire d'Angleterre) 등도 있다. (43UMI)
후설 Edmund Husserl 1859-1938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0.(P.304)
독일 철학자이며, 현상학의 정초자이다.
후설은 1859년에 옛 모라비(Moravie)의 프로스니쯔(Proßnitz, 현 체코 공화국의 Prostejov)에서 태어나서, 1938년(79살)에 바덴 뷔르텐베르크(Baden-Württemberg)지역의 프라이부르크 임 브라이스가우(Freiburg im Breisgau)에서 죽었다.
그는 브렌타노(Franz Brentano 1838-1917)의 제자였다. 그리고 할레대학, 괴팅겐 대학,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가르쳤다. 수학으로 시작했던 후설은 우선 논리학자로서 정신(l'esprit)의 작용들(l'opération)을 서술하는데(décrire), 그리고 지성이 논리적 관계 속에서 지각하는 본질들을 구해내는데 집착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정신적 작용들의 아래에 깔려있는 “체험된 경험”의 이론가가 되었다. 그는 특히, 논리탐구(Logische Untersuchungen, 1901; Recherches logiques),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Ideen zu einer reinen Phanomenologie und phanomenologischen Philosophie 1913; Idées directrices pour une phénoménologie pure et une philsophie phénoménologique), 형식논리와 선험논리(Formale und transzendentale Logik 1929; Logique formelle et logique transcendantale), 데카르트 성찰과 파리의 강연(Cartesianische Meditationen und Pariser Vorträge, 1929; Méditations cartésiennes), 경험과 판단(Erfahrung und Urteil, 사후 1939; Expérience et jugement) 등을 썼다. 그의 현상학은 우선은 논리학이었고, 그리고 정신철학으로 전개되었으며, 결국에는 생(la vie)의 철학으로 나갔으며, 셀러(Max Scheler 1874-1928)와 하이덱거(Martin Heidegger, 1889-1976) 그리고 프랑스 실존주의의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에 깊은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논리학자들 중에 직관주의자인 브로우베르(Luizen Egbertus Jan Brouwer, 1881-1966)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의 현상학은 철학적 문화풍토 속에서 현상학의 조류에 자극하였다. 즉 프랑스에서 르와이요몽(Royaumont) 국제 학술대회와 독일에서 크레펠트(Krefeld) 국제 학술대회를 열었다. (43UMI) [이 두 국제학술대회의 개최 연도는 프랑스판 인터넷에는 찾을 수 없다.(43UMI)]
히파티아 Hypatie 370년경-415년경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1.(P.304)
그리스 여성 철학자 수학자이다.
히파티아는 370년경에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Alexandrie)에서 태어나, 415년경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녀는 400년경에 신플라톤주의자 학파의 선두에 섰다. 그녀는 크리스트교인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43WKG) [반성없는 무지의 신앙을 선동하는 크리스트교 성직자들이야말로 역사에서 악마들이다. 권력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니깐 폭군이라 부르지만, 성직자는 무지자를 위하는 척하면서 무지자를 통해 온갖 악을 행하고 자신이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량한체 하는 것은 조폭 두목이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43WKG)]
최면 (l')hypnos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1.(P.304)
인공적으로 일으키는 잠.
최면은 심리학적인 독특한 절차들에 의해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은 세 가지 국면을 구별한다. 1. 혼수상태(昏睡狀態, la léthargie, 마비상태)의 국면. 이 국면은 일상적으로 시선의 고정에 의해 일으킬 수 있다. 2. 강경상태(强硬狀態, la catalepsie)의 국면. 이 국면은 감성과 의지적 운동들의 정지 상태이다. 이것은 생생한 빛의 갑작스런 투사에 의해 또는 강한 소리의 예기치 않는 발생에 의해 일으킬 수 있다. 3. 유발(誘發)된 몽유상태(le sonmambulisme provoqué)의 국면. 이 국면은 무의식의 자동적인 표출의 국면이다. 따라서 최면은, 의식이 망각했거나 억제했던 과거 또는 최근의 추억들(즉 개인의 “비밀들”)을 유발하게 하여 말투들(paroles)로 번역되면서, 잠재의식 또는 망각의 표출을 일어나게 한다.
최면, 그리고 특히 최면의 암시, 즉 인위적으로 일으킨 최면은 개인의 무의식을 발견하기 위하여 또한 불법행위들이나 범죄들을 고백하게 하기 위하여 심리학적 분석의 수단으로서 사용된다. 사람들은 최면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순수 심리학적 절차에 의해서 수술을 개입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취(l'anesthésie)를 가능하게 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이 최면에 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우 인상을 잘 받는 인물들이나 의지적으로 최면에 동조하는 사람만이 최면에 걸릴 수 있다. (43WKG)
가설 (l')hypothès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1.(P.304)
진리일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은 증명되지 않은 관념.
가설은 하나 관념이며, 그 관념을 통해서 사람들은 사실을 해석한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 또는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에 따르면, 철학적 반성으로 학문(la science)은 사실들과 관념들 사이에 영속적으로 왔다갔다하는 데 있다. 사실들의 관찰은 모든 탐구의 첫째 계기이며, 설명적인 가설은 둘째 계기이고, 실험적 증명은 셋째 계기이다. 인격의 발명적 정신이 어느 정도인가 측정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가설들을 만들 수 있는 능력에 따른다.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가설-법칙(l'hypothèse-loi) 즉 소가설(la petite hypothèse)과 대가설(la grande hypothèse) 즉 가설-이론(l'hypothèse-théorie)을 구별하고, 전자는 은 법칙의 예상에 쓰이고, 후자는 우주 일체의 설명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라플라스(Pierre Simon de Laplace, 1749-1827)는 인식과 인식형성에 대한 설명을 제안하고, 원자론자들은 물질의 본성에 대한 설명을 제안한다. “가설적”인 것은 “실재적”인 것에 대립되듯이, “개연적”(probable)인 것은 “분명한”(certain) 것에 대립된다. (43WKG)
이폴리트 Jean Hyppolite 1907-1968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1.(P.304)
프랑스 철학자이다.
장 이폴리트는 1907년에 샤랑뜨-마리팀(Charente-Maritime 17)주의 종작크(Jonzac)에서 태어나, 1968년(61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소른본 대학, 그리고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였다. 그리고 파리고등사범학교의 학장을 역임을 하였다. 그는 프랑스에서 헤겔 사상의 확산에 심도있게 기여했다. 그는 1931년에서 1941년에 헤겔의 정신현상학(Phénoménologie de l'esprit)을 번역했고, 그 주석으로 헤겔 정신현상학의 발생과 구조(Genèse et structure de la Phénoménologie de l'esprit de Hegel, 1946)을 썼다.
그는 1948년(41살)에 헤겔의 역사철학입문(Introduction à la philosophie de l'histoire de Hegel 1948), 1953년(45살)에 논리와 현존(Logique et Existence, 1953)을 통하여 헤겔에 관한 반성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맑스와 헤겔에 관한 연구(Etudes sur Marx et Helgel, 1955)의 작품은 칼 맑스의 젊은 시절 저술들의 독창성을 제시했다. (43WKI)
히스테리 (l')hystér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31.(P.304)
일반적으로 신경의 발작들에 의해 어떤 과장된 흥분이라고 특징 지워지는 신경증(névrose) 그럼에도 또한 마비에 의해 표현되는 수도 있다. 과장된 흥분을 자극적 히스테리(l'hystérie extative), 마비의 표현을 결함 히스테리(l'hystérie déficitaire)라 한다.
삐넬(Pillippe Pinel 1745-1826)과 에스키롤(Jean-Etienne Dominique Esquirol 1772-1840)은 애정의 발생에서 성적인 선입견에 어떤 중요점을 결부시켰다. 이 중요점에 “자궁의 욕망”(fureur utérine)이란 이름을 붙였다. 샤르꼬(Jean Martin Charcot, 1825-1893)는 1882년에서 1885년에 이것을 연구했으며, 여기서 [성적인] 생리기관의 애정(affection) 흔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당시에는, 바빈스키(Joseph Babinski 1857-1932) 뒤프레(Ernest Dupré 1862-1921)가 나중에 증명하지만, 정신의학적 애정만이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8)가 1893년에서 1895년에 히스테리를 연구했는데, 여기서 특히 여성의 경우에서 성적 경향의 억제(refoulement)을 보았다. 그런 것이 어떠하든지 간에, 히스테리는 과장증 (mythomanie, 뒤프레의 용어)과 유사한 상상적 고양(exaltation)을 동반한다. 히스테리의 동인들은 애정적 영역에서 온다. 우리는 쟈네(Pierre Janet, 1859-1947)의 박사 학위논문 히스테리 환자에서 정신적 사고들에 관한 연구 논문(Contribution à l'étude des accidents mentaux chez les hystériques, 1893), 샤르꼬의 히스테리(L'hystérie, textes choisis(1971판), 프로이트의 다섯가지 정신분석들(Cinq Psychanalyses)(1973 판) (Dora 1905, L'homme aux Loup 1914, L'homme aux rats 1909, le petit Hans 1909, President Schreber 1911을 포함하고 있음)을 참조할 수 있다.(43W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