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column)
-대학에서 국문학과, 역사학과, 철학과 폐과되는 현실에서-
지온 김인희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오늘에 이르러 목 놓아 통곡하노라!’는 1905년 <황성신문 (皇城新聞)>에 게재된 논설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1905년 매국대신들에 의해 굴욕적인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황성신문>의 주필 장지연은 우리나라의 굴욕을 알리고 일본의 흉계를 공박하는 논설문을 써서 국민에게 알린 후 <황성신문>은 3개월간 정간되고 장지연은 90여 일간 투옥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에서 취업난에 국어국문학과(國語國文學科)가 사라지고 있다. 대학에서는 국문과를 굶는과(?)라고 비하하고 신입생들은 인문학계열을 기피하고 있는 현상을 보고 마음에 큰 바위를 얹은 듯 무거웠다. 필자는 망극한 작금의 대학 현실에 가슴을 치면서 탄식하는 심정으로 ‘시일야방성대곡’을 부르짖는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고 국토를 짓밟히고 말과 글을 감금당하고 역사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었던 36년 치욕의 식민지 역사를 우리는 치를 떨면서 기억할 것이다.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 되는 아프고 슬픈 역사! 지금 대학에서 국문과(國文科)와 역사학과(歷史學科)와 철학과(哲學科)를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폐과(廢科)하는 현실이 일제강점기 주권을 잃는 것처럼 참담하다. 하여 필자는 시일야방성대곡!
학문과 진리 탐구의 전당, 지성으로 쌓아올린 높은 탑을 상징하는 대학에서 경쟁 논리에 의해서 국문학과(國文學科), 역사학과(歷史學科), 철학과(哲學科를) 홀대하는 현실이 심히 염려스럽다. 우리나라의 역사(史學科)와 세계가 과학적인 훌륭한 글이라고 인정하는 한글(國文學科), 인간의 삶을 알파와 오메가로 규정하는 학문(哲學科)을 홀대하는 스스로 멸망을 재촉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필자는 목 놓아 통곡한다.
필자는 가난한 농부의 육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필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힘든 가정형편으로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고 친구들 대학에 다니는 나이에 직장생활을 했다. 필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업에 대한 한(恨)이 많았고, 존경하는 국어선생님께서 마지막 가르침으로 주셨던 수불석권(手不釋卷)을 지켜내기 위해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결혼하고 두 자녀를 양육하면서 대학교를 마쳤다. 대학을 마치고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마쳤다. 필자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을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왔고, 초등학교시절부터 마음으로 품고 있었던 시인(詩人)이 되는 꿈을 불혹(不惑)의 나이에 이루었다. 필자는 남들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결코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부끄러워 한 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가난한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하늘을 우러러 맹세컨대 결코 없었다. 필자의 부모님께서는 한없는 사랑과 엄격한 훈육으로 우리 육남매를 양육하셨다. 부모님께서는 남을 위해 양보하고 손해를 당하는 일이 있어도 웃음으로 넘기는 넉넉한 철학을 가진 멋진 삶의 주인공이었다. 우리들이 이룬 가정에서 올바르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리들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역설하셨다. 그런 부모님의 가르침(哲學)을 마음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두었기 때문에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견고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다. 필자의 초라한 과거를 고해성사(告解聖事)하는 심정으로 열어 보이는 까닭은 마음에 품은 작은 별 같은 꿈을 이루기위해서 긴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 행복이었고 진정으로 기쁨이 충만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학 총장님들께 엎드리어 고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유구한 역사에서 961번 침략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36년의 치욕과 원통함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세계 모든 분야를 쥐락펴락하는 유태민족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역사를 견디어 냈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아픈 역사를 잊지 않도록 교육하고 민족의식을 철저하게 심어주고 있다. 그 민족이 세계의 금융을 잡고 있고 그들의 명석한 두뇌로 노벨상을 휩쓸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능지수가 유태인보다 높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이루어낸 결과는 무엇이 있는가? 유태민족과 견주어 볼 때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겠다. 지금처럼 돈을 잘 버는 직장을 얻기 위해 우물 안 개구리같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우리의 미래에게 물어보고 싶다.
국어국문학과(國語國文學科), 역사학과(歷史學科), 철학과(哲學科)교수님들께 무릎접어 고한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하고 절망의 순간에 희망을 잃지 않았던 명장 이순신제독을 기억해주기를 간곡하게 바란다. 등대는 어두운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배가 길을 잃지 않도록 묵묵히 빛을 비추고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장군처럼 지금 교수님들께 남아있는 소수의 학생이 이순신장군께 남아있는 12척의 배가 될 것이다. 그 소수의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희망이 될 것이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등대가 될 것이다. 교수님들께 남아있는 12척의 배로 목표를 잃고 노선을 이탈하여 위태위태한 우리나라를 구해주기를 합장하고 빈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말을 생각해 본다. 물론 작금의 합리적인 학생들은 막연한 미래를 위해 현실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할 것임에 틀림없겠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미래를 위해 현실의 고통을 거 룩하게 인내하는 것이 지혜요 미덕이요 교육이었다. 그 정신으로 수많은 외침에서 나라를 구했다. 미래의 우리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36년간 일제 식민지로 있었던 나라를 목숨을 바쳐서 지켜냈다. 명나라를 사대하는 조선에서 스스로 읽고 쓰는 글을 만들기 위한 세종대왕의 용감한 업적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우리의 한글은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위대한 글이라는 자부심을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 선조들이 물려준 삶과 지혜는 우리 저마다 가슴에 아름답고 향기롭게 빛나는 별이 되었고 삶의 항해에서 좌표로 삼아 살고 있잖은가!
오늘날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잠시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면서 생각했으면 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고스란히 떠받치고 살아온 기성세대여! 자녀들에게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고 악착같이 일하면서 열정과 경제를 교육에 쏟아 붓고 있는 부모여! 학교에서 학생들을 바르게 선도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교사여! 환경이 풍족하여 공부만 하면 되는 학생들이여! 우리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 안아주고 뜨거운 눈물로 위로해 주는 사람 향기 나는 사람으로 살수 없을까?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에 경쟁하면서 모두 밀쳐내고 혼자 올랐을 때 누구와 축배(祝杯)를 들 것인가?
서로 부축하고 끌어주면서 함께 갈 수 있다면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모두 행복한 축제(祝祭)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 사랑하는 오천만 국민이여,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처절한 울음소리 들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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