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상오리 칠층석탑, 이상향 우복동에 깃든 고려 석탑의 역사적 명암
Dragon ・ 2026. 4. 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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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속리산 천황봉의 줄기가 뻗어 내린 아늑한 분지에 거대한 석조 구조물이 홀로 우뚝 서 있습니다. 바로 보물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이다. 화려한 사찰의 울타리도 없이 민초들의 삶터 한복판에 서 있는 이 탑은, 단순한 유물을 넘어 조선 시대 민중들이 갈망했던 이상향 '우복동(牛腹洞)'의 상징적 지표이자 역사의 산증인이다.
■ 잃어버린 사찰 ‘비천사’와 칠층석탑의 부활
상오리 칠층석탑이 위치한 이곳은 과거 비천사(備天寺) 혹은 장각사로 불리던 대사찰이 존재했던 터다. 현재 사찰의 건물은 모두 소실되었으나, 남아 있는 탑의 규모(높이 9.2m)는 당시 이 도량이 가졌던 장엄한 위상을 웅변한다.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 (보물)
이 탑은 임진왜란 당시 사찰과 함께 수난을 겪었으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완전히 붕괴되어 장기간 방치되었다. 이후 1977년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쳐 현재의 당당한 풍모를 회복했다. 억겁의 세월과 전란의 풍상을 견디고 다시 일어선 모습은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 건축적 특징: 통일신라의 정교함과 고려의 경쾌함
상오리 칠층석탑은 전형적인 2층 기단 위에 7층 탑신을 올린 형태다. 전체적인 양식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으나, 세부적인 수법에서 고려 전기 석탑 특유의 미감이 돋보인다.
탑신의 균형미: 9m가 넘는 거구임에도 전혀 둔중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위로 올라갈수록 일정한 비율로 줄어드는 치밀한 설계 덕분이다. 이를 통해 탑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나가는 경쾌한 상승감을 준다.
세밀한 조각 기법: 1층 몸돌(옥신)은 세 개의 커다란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네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인 우주(隅柱)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동쪽 면에는 부처님을 모신 공간임을 상징하는 문짝 모양(문비형) 조각이 있어 신앙적 경외심을 더한다.
지붕돌의 곡선: 2층 이상부터는 지붕돌(옥개석)과 몸돌을 하나의 돌로 깎아 만든 점이 특징이다. 얇게 깎인 지붕돌은 완만한 경사를 그리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올려져 있는데, 이 버선코 같은 곡선이 석탑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받침의 변화: 지붕돌 밑면의 층급받침은 5층까지는 5단을 유지하다가, 6층과 7층에서는 4단으로 줄어든다. 이는 고층 탑에서 시각적 안정감을 주기 위한 고도의 건축적 장치다.
■ 역사적 배경: 전쟁의 상흔과 ‘우복동’ 전설
이 탑이 서 있는 상오리 일대는 조선 후기 민중들 사이에서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하나인 ‘우복동(牛腹洞)’으로 지목된 곳이다. 십승지란 전쟁, 흉년, 전염병이라는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명당을 뜻한다.
소의 배 속 같은 안식처: 우복동은 이름 그대로 '소의 배 속'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분지 지형을 의미한다. 실학자 이규경은 속리산 천왕봉 아래, 청화산과 도장산이 이루는 삼각형의 안쪽 공간인 상오리, 용유리 일대를 우복동이라 보았다.
전란의 기록: 역설적이게도 명당이라 믿었던 이곳 역시 역사의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선조 26년(1593년)의 기록인 조정의 『임난일기』에 따르면, 이곳 속리산 인근까지 왜군의 침략과 역질(전염병)이 번져 민초들이 굶주림과 병마에 시달렸음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도망친 왕과 남겨진 백성: 임진왜란 초기, 국왕 선조는 탄금대에서 신립의 패전 소식을 듣자마자 도성을 버리고 피란길에 올랐다. 왕조가 백성을 팽개치고 도망치던 시절, 갈 곳 없는 민초들은 정감록을 품에 안고 이 험준한 우복동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에게 칠층석탑은 어쩌면 무너진 국가 대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였을지도 모른다.
■ 주변 경관: 장각폭포와 금란정의 비경
칠층석탑 인근에는 자연의 웅혼함을 느낄 수 있는 장각폭포가 있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맑은 물줄기가 6m 절벽 아래 소(沼)로 떨어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수량에 따라 물줄기가 하나 혹은 둘로 갈라지는 이 폭포는 예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의 사랑을 받았다.
폭포 옆에는 금란정(金蘭亭)이라는 정자가 서 있다. 1962년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세운 이 정자의 이름은 '금란지교(金蘭之交)'에서 따왔다. 쇠처럼 단단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우정을 나누며 험난한 세상을 함께 헤쳐나가자는 마을 공동체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곳은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 무인시대의 촬영지로도 활용될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는 영원한 지표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은 단순한 고려의 유적을 넘어, 환란의 시대에 이상향을 꿈꿨던 민초들의 절박한 염원과 공동체적 의지가 응축된 결정체다.
비천사의 가람은 사라졌으나, 거대한 석탑은 여전히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한 '우복동'은 지리적 좌표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하려는 선한 의지 속에 있는 것인지를 말이다. 숭고한 정제미와 처절한 역사성을 동시에 함축한 이 탑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대를 관통하는 무거운 울림을 전하고 있다.
[출처] 상주 상오리 칠층석탑, 이상향 우복동에 깃든 고려 석탑의 역사적 명암|작성자 Dra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