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達
金富軾
溫達, 高句麗平岡王時人也. 容貌龍鐘可笑, 中心則𣈑然. 家甚貧, 常乞食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때 사람이다 그 용모가 크고 우람하여 우스꽝 스러웠다 집이 가난하여 항상 그 어머니를 걸식을 하여 봉양 하였다
以養母, 衫破弊履, 往來於市井間, 時人目之爲愚溫達. 平岡王少女兒好啼,
옷이 헤지고 떨어진 신으로 저자 거리를 왕래 하니 사람들이 보고
어리석은 온달이라고 하였다 ,평강왕의 어린공주가 잘울었다
王戱曰: “汝常啼聒我耳, 長必不得爲士大夫妻, 當歸之愚溫達.” 王每言之.
왕이 놀려주기를 너는 항상 울고 고집이세니 장차 사대부 집안에 시집 가기는 곤란 하구나 장차 바보온달에게로 시집 보내야 겠구나 라고 왕은 자주 말하였다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高氏, 公主對曰: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
어느덧 28세의 처녀로 성장 하였다 왕은 문벌이 좋은 고씨 집안으로 시집을 보내야 겠다라고 하자 왕은 아바마마 께서 항시 말하시기를 너는 온달에게로 시집 보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이제와서 무슨 까닭으로 말을 고치려 하십니까 필부도 식언을 삼가 하는 법인데
何故改前言乎?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故曰: ‘王者無戱言’, 今大王之
이제와서 무슨 까닭으로 말을 고치려 하십니까 필부도 식언을 삼가 하는 법인데 하물며 지존이신 아바마마께서 말입니다 자고로 임금된 자는 희언은 없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아바 마마께서는 잘못말씀 하셨습니다 어린 저는 감히 아버님의 말씀을 받들 수 없습니다
命, 謬矣, 妾不敢祗承.” 王怒曰: “汝不從我敎, 則固不得爲吾女也. 安用同居? 宜從汝所適矣.” 왕은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정녕 나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내 아이가 아니다 함께 살수가 없구나 너하고 싶은대로 가고 싶은대로 가거라 ..!
於是, 公主以寶釧數十枚繫肘後, 出宮獨行. 路遇一人, 問溫達之家, 乃行至其家,
이때에 공주는 팔찌와 보석들을 소매속에 매어달고 감추고 혼자서 궁문을 나서게 되었다 길에서 우연히 가는 사람에게 온달의 집이 어디냐고 묻고 또물어서 마침내 그집에 당도 하게 되었다
見盲老母, 近前拜, 問其子所在. 老母對曰: “吾子貧且陋, 非貴人之所可近. 今聞子之臭, 온달의 어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였다 가까이 가서 절하고 온 사유를 말하고 아드님의 소재를 물었다 그 어머니왈 내자식은 가난 하고 비천하며 더러우니 귀인 께서 가까이 하실수 없습니다
芬馥異常, 接子之手, 柔滑如綿, 必天下之貴人也, 因誰之侜, 以至於此乎?
제가 비록 소경이나 귀인의 손을 만져 보니 비단같이 매끄럽고 유연하며 지체높으신 분들의 화장품 냄새가 진동하니 그대는 반드시 귀인임에 틀림이 없소 누구신지 모르오나 늙은이를 속이지 마시오
惟我息不忍饑, 取楡皮於山林.” 久而未還. 公主出行, 至山下, 見溫達負楡皮而來,
나는 단지 굶주림을 면하고 산속에서 누릅나무 껍질로 연명만 하면 되오 라고 하면서 완강히 거절 함으로 오래 기다리다가 공주는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마침내 나뭇짐을 지고 오는 온달을 만나게 되었다
公主與之言懷. 溫達悖然曰: “此非幼女子所宜行, 必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공주는 온달에게 자기의 품은 뜻을 말하였다 이에 온달은 패연히 말하기를 여우가 오래되면 어린여자로 되어 남자를 홀린다고 하더니 너는 반드시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다 라고 하며 뒤돌아 보지도 않고 달아났다
遂行不顧. 公主獨歸, 宿柴門下, 明朝更入, 與母子備言之. 溫達依違未決, 其母 曰: “吾息至陋, 不足爲貴人匹, 吾家至窶, 固不宜貴人居.”
공주는 홀로 돌아와 사립문 아래서 자고 다음날 아침 다시 들어가 그모자에게 말하고 온달에게 의지 하고 살수 있게 결정을 하여 주도록 말하였다
그어머니 왈 내혼자 쉬기도 좁고 누추하요 반드시 귀인이 쉴곳이 못되오
내집은 가난 하여 예의도 못차리고 하니 어찌 마땅히 귀인이 있을곳이 되겠소
公主對曰: “古人言, 一斗粟猶可舂, 一尺布猶可縫,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可共乎?”
공주 말하기를 “옛사람이 말하기를 곡식 한되 베 한필만 있어도 구차하지만 한마음으로 살수 있다고 하였소 어찌 부귀한 연후 에만 함께 살수 있다고 말씀 하십니까..?” 간곡히 당부 하여 마침내 허락을 받고
乃賣金釧, 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 資用完具. 初, 買馬, 公主語溫達曰:
“愼勿買市人馬, 공주가 가지고온 팔찌와 패물을 팔아 살림 밑천이 될 그릇등 기물과 우마와 노비와 전택을 사서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에 말을 살 때 공주가 온달에게 말하였다 ”시장에서 말을 살 때 삼가 조심 하십시오 “
須擇國馬病瘦而見放者, 而後換之.” 溫達如其言. 公主養飼甚勤, 馬日肥且壯. 高句
“나라에서 기르다가 병이들어 파리한 말이 있을 것이니 그말을 사십시오“ 이후에 바꾸면 되니까요 온달은 공주의 말을 따라서 나라에서 기르다가 파는 파리하고 병든 말처럼 보이는 말을 사서 공주와 함께 부지런히 말을 사육하였다 날로 말이 살찌고 장대 하여지게 되었고 공주는 사서오경 헌책을 구하여 공부하게 하고 활쏘기도 배우도록 하였다
高句麗 常以春三月三日, 會獵樂浪之丘, 以所獲猪鹿, 祭天及山川神. 至其日, 王出獵, 群臣及五部兵士皆從.於是,
고구려때 삼월 삼일 봄날은 항시 낭락 언덕에 모여 사냥 대회를 하였는데 사슴과 되지를 잡아 하늘과 산천의 신에게 제사를 하는데 그날이 되어서 왕이 직접 사냥에 나서고 군신과 오부병사들이 모두 따라나서게 되었다 이때에
溫達以所養之馬隨行, 其馳騁常在前, 所獲亦多, 他無若者. 王召來, 問姓名,
驚且異之. 온달은 그가 기른 말을 타고 따라가게 되었다 사냥이 시작 되자 그는 말을 달려 항상 출중하엿고 사냥 역시 따라 올자가 없었다 마침내 왕은 그를 불러 이름을 물어보고 깜짝 놀라며 그후로 아끼고 특별하게 대하였다
時後周武帝出師, 伐遼東, 王領軍逆戰於拜山之野. 溫達爲先鋒, 疾鬪斬數十餘級,
그후 주나라의 무제는 요동을 정벌 하러 고구려를 침략 하였다
諸軍乘勝奮擊大克. 及論功, 無不以溫達爲第一. 王嘉歎之曰: “是吾女壻也.” 備禮迎之, 賜爵爲大兄. 由此寵榮尤渥, 威權日盛. 여러군사들은 크게 떨치고 일어나 적을 공격하여 이겼다 전공을 논때 온달이 제일 잘싸웠다 왕은 기쁨에 넘쳐서
“ 오 ~! 과연 내 사위다 ” 하고 일어나 예를 갖추어 맞이 하고 대형이라는 작관직을 하사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임금의 총애는 날로 두터워지고 그의 권세는 날로 번성 하여지게 되었다
及양강왕즉位, 溫達奏曰: “惟新羅割我漢北之地爲郡縣, 百姓痛恨, 未嘗忘父母之國. 願大王不以愚不肖, 授之以兵, 一往必還吾地.”
이어서 양강왕이 즉위하자 온달은 상주 하여 신라에게 뺀긴 우리의 한강이북의 우리땅을 찾고자 하나 이를 이루지 못함은 백성들의 통한의 한이 되옵니다
일찍이 선제의 나라이었던 땅을 되 찿을수 있도록 불초 어리석은 소생에게 군사를 내어 주시면 반드시 다시찾아 오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王許焉. 臨行誓曰: “鷄立峴·竹嶺已西, 不歸於我, 則不返也.” 遂行,
與羅軍戰於阿旦城之下, 爲流矢所中, 路而死. 欲葬, 柩不肯動,
왕이 이에 대하여 허락 하자 온달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출진 하면서 맹세 하기를 “계림고개 죽령을 지나 서쪽을 반드시 탈환 하지 않으면 나는 돌아 가지 않으리~!” 라고 하면서 출전 하였다 마침내 신라군과 계림현 고개에서 밤새도록 전투가 벌어져 용감히 싸웠으나 불행하게도 적의 화살에 맞아 마상에서 장열한 전사를 하게 되었다 전투가 끝나고 마침내 장례를 치르려고 장군의 관을 들려고 하였으나 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公主來撫棺曰: “死生決矣, 於乎歸矣.” 遂擧而窆. 大王聞之悲慟.
비보를 접한 공주가 달려와서 그의 관을 껴안고 어루 만지며 목놓아 통곡 하면서 말하기를 “죽고 살고는 하늘에 달린 것 인데 어찌하여 당신은 가지 않으려고 하오 이미 생사가 결정된 일인데 제발 부디 저세상으로 가서 편히 영면 하십시오 ”
라고 하자 관이 움직여 지게 되어 무사히 하관하여 장례식을 치루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양강왕은 슬픔을 못이겨 큰소리 로 통곡 하였고 나라안의 온 백성들도 슬퍼 하였다. 끝.
2004년 12월 6일 번역문 입력 키페지기 정천석
三國史記 卷45 「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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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동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