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아(Fantasia 1940) : 클래식과 영상의 환상적인 만남
월트 디즈니(Walt Disney) 감독
월트 디즈니는 1937년 겨울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개봉했고, 이 작품의 엄청난 성공은 디즈니에게 해마다 장편 만화영화를 한 편씩 공개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는 곧 <피노키오>와 <밤비>, <판타지아> 등 세 편의 장편 만화영화를 동시에 제작한다는 계획에 착수했다.
해를 넘기면서도 승승장구하는 <백설공주…>에서 얻은 세계적인 명성과 결벽증에 가까운 완성도를 이어가기 위해 디즈니는 늘 그래왔듯이 <피노키오>의 줄거리를 완전히 개작하는 한편,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였던 레오폴드 스토코프키와 교류하며 <판타지아>의 명장면들을 구상해갔다.
<판타지아>는 1940년에 처음 발표되었지만,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장면들은 1990년에 영화 발표 50주년을 맞아 현대적인 영상기술과 과학에 힘입어 원작보다 세련되게 복원한 작품이다.
이 장편 만화영화는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디즈니 프로덕션의 화가들을 포함한)이 만들었음을 애써 강조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화면 중심에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뒷모습이 실루엣으로 우뚝 서고, 간혹 반사된 그림자로 처리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클래식 명곡이 도입부를 장식한다. 그 첫 삽입곡은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다. 이때의 화면은 디즈니의 작품 스타일로서는 의외라고 여겨지는 실험적 영상들로 꾸며져 있다.
음악과 어우러지는 선과 면의 움직임, 속도감과 중첩되는 이미지, 인류가 이루어온 음악의 성과와 새로운 영상인 애니메이션의 조화는 제목 그대로 관객들을 판타지아의 세계로 끌어간다. 그리고 독일의 표현주의 전위미술가 오스카 휘싱거의 추상 애니메이션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음 곡은 디즈니의 전형으로 굳어진, 금빛 가루 뿌리는 요정 팅커벨이 유도하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인형 조곡’이다. 이 부분을 구성하는 음악과 춤추는 장면들이 사실은 <미녀와 야수>의 황홀한 댄스 장면을 비롯해 이후에 제작된 거의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화면 구성에 정형적인 모범으로 재활용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디즈니의 미키마우스에 대한 집착은 이어지는 삽입곡을 담은 세 번째 장면에서 드러난다. ‘마법사의 도제’(폴 듀카스 작곡)라는 표제 음악이 선행하는 이 부분에서 디즈니는 미키가 첫 곡인 바흐의 삽입곡이 흐를 때와 똑같이 행동하도록 꾸며 자신이 공들여 창조한 만화영화의 주인공에게 인간의 예술을 향유하도록 한다. 클래식 예술을 향한 디즈니의 허영은 이어지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장면에서 우주의 창조와 지구의 탄생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하면서 진가가 드러난다.
완전 수공으로 제작되었을 당시의 작업 환경에서 이러한 교만에 가까운 작품을 지휘할 수 있었던 디즈니의 집착은 그의 감추어졌던 생의 진면목이 일부분 드러나면서야 차츰 이해를 구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판타지아>의 이러한 예술적 방황은 베토벤 6번 교향곡 ‘전원’을 삽입곡으로 하는 부분에 이르러 그리스 신화와 만화영화의 접맥을 시도하면서 나른한 로맨스를 표현한 뒤, 이윽고 발레 오페라인 ‘시간의 춤’ 장면에서 코끼리, 악어, 하마 등이 벌이는 잡탕적 무희로 이어지면서 한숨을 돌리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러시아의 작곡가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이 이어지면서 이 모든 것을 일거에 거부하는 듯 죽음을 부르는 악마의 흉측한 몸짓으로 비틀린다. 움츠린 악마의 몸뚱이가 험한 산봉우리에 교교하게 몸을 숨기면 카메라는 서서히 빠져나와 어느덧 신을 경배하는 길고긴 촛불 행렬로 이어지며, 슈베르트 곡 ‘아베마리아’의 선율만 남긴 채 ‘역사상 등장했던 더없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작품 하나’가 끝이 난다.
ㅡ이용배(만화영화 감독)
출처: 이승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