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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시를 짓는 공부
공을 들여야 할 곳은 세 가지이다.
이다.
시의 큰 요체
시의 큰 요체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여유롭고 조급하지 않은 것(優遊不迫)이요,
하나는 침착하면서도 통쾌한 것(沉著痛快)이다.
시의 최고 경지
시의 궁극적 경지는 하나뿐이다.
곧 「입신(入神)」이다.
시가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면
이미 지극한 데 이른 것이며,
더 보탤 것이 없다.
오직 이백과 두보만이 그 경지에 이르렀고,
다른 사람 가운데 그 경지에 도달한 이는 매우 드물다.
시와 선(禪)
선가에는
소승과 대승이 있고,
남종과 북종이 있으며,
바른 길과 그릇된 길이 있다.
정법안(正法眼)을 갖춘 자가
제일의(第一義)이다.
성문승과 벽지불의 경지는
참된 최고 경지가 아니다.
시를 논하는 것도 선을 논하는 것과 같다.
한·위·진의 시와
성당의 시는
곧 제일의이다.
대력 연간 이후의 시는
이미 제2의 경지로 떨어진다.
만당의 시는
성문과 벽지불의 경지에 불과하다.
묘오(妙悟)
대체로 선의 도는 묘오(妙悟)에 있고,
시의 도 또한 묘오에 있다.
맹호연은 학문과 공부의 깊이에서
한유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시만은 오히려 한유보다 뛰어난 까닭은
오직 묘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깨달음이 있어야
참다운 길이며
본래의 면목이다.
그러나 깨달음에도
얕고 깊음이 있다.
한정된 깨달음이 있고,
철저히 꿰뚫는 깨달음이 있으며,
어렴풋이 반쯤 이해하는 깨달음도 있다.
사령운에서 성당 제시인들에 이르는 경지는
철저한 깨달음의 경지이다.
시를 배우는 방법
엄우는 이어서 말한다.
한위의 시,
진송의 시,
남북조의 시,
심전기·송지문·왕발·양형·노조린·낙빈왕·진자앙,
개원·천보의 여러 시인,
그리고 이백·두보,
대력십재자,
원화 시인,
만당 시인,
송나라 소식·황정견 이하의 작품까지
차례로 깊이 읽고 비교해 보면
누가 참되고 누가 그렇지 못한지는
자연히 드러난다고 한다.
시에는 별재(別才)가 있다
시에는 특별한 재능이 있으니
단지 독서의 많고 적음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
시에는 특별한 흥취가 있으니
단순한 이론과도 관계되지 않는다.
그러나 옛 시인들이 독서를 하지 않았거나
이치를 탐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치의 자취를 드러내지 않고,
말의 설명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높은 경지이다.
성당시의 특징
시는 성정을 읊는 것이다.
성당 시인은 오직 흥취에 있었다.
영양이 뿔을 걸고 떠난 듯
찾을 흔적이 없다.
마치
허공의 소리,
형상 속의 빛,
물속의 달,
거울 속의 그림자와 같다.
말은 끝나도
뜻은 끝이 없다.
송시(宋詩)에 대한 비판
엄우는 당시 송대 시풍을 비판하며 말한다.
근세 사람들은
문자를 가지고 시를 만들고,
의론을 가지고 시를 만들고,
재주와 학문을 가지고 시를 만든다.
비록 공교롭기는 하지만
끝내 고인의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래하듯 여운이 남는 풍미가 부족하다.
또한
고사 사용에만 힘쓰고,
흥취는 돌보지 않으며,
한 글자마다 출전을 찾고,
운자마다 근거를 따진다.
그러나 시를 다 읽고 나면
정작 어디에 감동해야 할지 알 수 없다고 비판한다.
결론
나는 단언하노니,
마땅히 성당을 법으로 삼아야 한다.
후에 특별히 성당을 말하는 것은
당나라 율시에서 그 체제가 완전히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비록 세상 군자들의 비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나는 이 주장을 거두지 않겠다.
이 「시변(詩辨)」은 중국 시론사에서 가장 유명한 글 가운데 하나로, 선생님께서 평소 말씀하시는 수함경미(受含景味), 기승전결, 격조와 풍골, 성당시 숭상의 사상적 근원이 되는 대표적인 시학 이론입니다. 특히 엄우가 제시한 다섯 기준인 체제·격력·기상·흥취·음절은 오늘날 한시 평론에서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