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블락 윤
홍 경 화
해발 3,200미터의 쉼블락은 카자흐어로 ‘산봉우리에 있는 샘’이라는 뜻이다. 높은 쉼블락 봉우리는 여름까지도 눈이 쌓여 하얗다. 카자흐인들의 사계절 휴식처이기도 하다.
고려인 윤을 만난 장소는 쉼블락 2,300미터쯤의 산 중턱에서였다.
카자흐스탄 여행 삼 일째 되는 날에 쉼블락을 올랐다. 일행 셋이 1단계 2,200M를 통과하고 2단계 2,630M를 오르는 케이블카에 올라탔는데 문 닫히기 직전 한사람이 뛰어서 올라탔다. 가족과 떨어졌나? 보통은 가족과 놀러 오는 곳인데 혼자 타길래 좀 의아한 생각으로 바라보았다. 동서양이 어우러진 듯 하면서 동양적인 외모를 가졌다. 그녀가 먼저 어색한 말을 걸어왔다.
--한국 사람입니까. 나는 고려사람 윤입니다.
일행들이 나누는 대화를 알아들었나 보았다. 고려인이라는 말에 뜻밖의 반가움에 물었다.
--여기 살면서 쉼블락엔 자주 오시는 가봐요? 경치가 멋지네요.
이곳은 리조트도 있어서 나는 그녀가 가족과 휴식차, 스키 타러 오는 사람인 줄 알았다.
--여기 일하러 옵니다.
--아, 그렇군요. 한국에는 와봤어요?
--네, 가봤어요.
부모님 고향은 북한이라고 한다. 길지 않은 시간, 몇마디 나누는 사이에 케이블카는 도착하였다. 50줄로 들어서 보이는 윤은 케이블카를 내려서 앞길을 안내해주더니 카페와 식당이 들어선 방향으로 가면서, 뒤돌아 손을 흔들어주었다.
우리는 윤이 일러준 방향, 2,960M를 오르는 3단계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스치듯 헤어진 고려인 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중한 인연인데 기념사진이라도 남겨둘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4월 하순, 쉼블락 3천M쯤에는 아직도 하얗게 눈이 쌓인 산봉우리와 푹푹 빠지는 눈길을 밟으며, 겪어보지 않았어도 근면과 부지런함이 배어 나오는 윤의 삶을 잠깐 상상했다.
고려인, 어쩔 수 없이 동족애가 우리 피속에는 남아있다. 구소련에서 카자흐스탄으로 황무지에 버려졌던 고려인 1세대들이었다. 고려인은 구소련에서 가장 먼저 강제 이주를 당한 민족으로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황무지로 쫓겨난 동포들이다.
구한말 국내의 혼란과 생활고를 피해 우리 동포들이 연해주 땅으로 이주를 시작했고, 스탈린이 강제 시행한 연해주 거주 한인들의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는 1937년쯤이다. 60, 70년대에 뜨거운 뙤약볕에서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양파를 재배해 구소련 전역에 제공한 민족도 고려인뿐이다. 다른 민족들에게 우수한 농업 기술을 전수해주었고 강제 이주를 자행했던 스탈린 정권으로부터 땀 흘린 공로를 끝내 인정받았다.
불굴의 정신으로 개간하여 옥토를 일구어서 세계 최고의 벼수확량을 올렸던 고려인, 세계인을 놀라게 한 고려인 후손의 피를 물려받은 윤…….
눈 덮힌 하얀 봉우리, 높고 깊은 쉼블락은 숭고한 고려인 1세대의 정신처럼 신성해 보였다.
첫댓글 홍선생님
올리신 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카자흐에도 단군신화가 존재하죠. 단군은 신화가 아닌 실존인물이라는 설도 솔솔 나오고.
쉼불락의 의미는 뭘까.
홍선생님 잘 감상하고 갑니다. 낼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