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명의 아이들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중턱에 다소곳이 안겨져 있는 분교 운동장에 휠체어에 앉은 백발이 된 노년의 남자 뒤에서
세상을 돌다 온 바람을 가슴으로 반기는 아홉 명의 중년의 남녀가 입가에 피어난 미소로 함께 분교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저기가 1학년 교실이었는데 기억나지예?“
"그럼.. 민자랑 짝지하게 해달라고 떼를 쓰던 때가 엊그제 같구나"
"샘은…. 제가 언제예..."
지금은 잡초만 무성한 운동장에서 지나간 그때를 되새기려 간장종지만큼 커져 있는 기쁨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놀듯 뛰어다니는 제자들을 보면서
선생님은 30년 전 그때의 기억을 되새겨 보고 있었다
"오늘 서울에서 선생님 오시는 날이다 뭐하노 얼렁 청소들 안 하고..."
장마철에 빼꼼히 나온 해님을 반기듯 신이 난 아이들의 눈길과 손길에 묻어나는 행복이 교실 안 가득 풍겨나고 있을 때
"야…. 선생님 오신다.."
6개월 만에 서울서 온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동자에
새하얀 꿈이.. 파릇한 희망이..
아로새겨져 있는 사이로 걸어들어 온 선생님은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샘예.... 먼 길 오신다고 멀미하신겁니꺼.?“
“길이 꼬불꼬불하지예”
아홉 명의 아이들이 반가움에 지저귀는 소리를 귓등으로 넘긴 선생님은 자습을 시켜놓고 창가에 붙어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도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는 듯 세상살이에 지쳐 보였습니다
ㅡ점심시간 ㅡ
철봉 밑 모래사장에 모인 아홉 명의 아이들은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한다 아이가..”
“전에 여자샘처럼 저러다 또 서울로 가뿌는거 아이가”
“우짜동동 샘을 귀찮게 하면 안된데이 전부 알았제?“
아이들은 시골로 온 선생님이 또 떠나갈까 가슴 조이며
우리라도 선생님을 힘들게 하지 말자며 주무시는 사택으로 향하고 있었고
“니는 방 청소부터 해라 내는 된장찌개 폴폴 긇일거니까네”
“니는 물걸레질 좀 하고”
“난 뭐하꼬 누나야?“
“샘이 기뻐할 일이라면 뭐든 해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방안 구석구석을 닦고 쓸고 해놓은 방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 온 선생님은 김이 피어나는 밥상을 바라보며
“이걸……. 누가 이렇게?“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 같다며 밤새 뒤척이다 게으른 해님따라 지각을 한 선생님을 기다리던 아홉 명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힘들지 않게 스스로 자습을 하면서 하루빨리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마주 보고픈 바람과는 달리
뒤늦게 교실로 들어온 선생님은 초대받지 않은 곳을 찾아온 불청객 처럼 몇 마디 내던지는 말이 하루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반장 누나야가 샘한테 따져봐라 와이라는지“
"그러다 샘 가면 우짤낀데.."
“맨날 자습만 하고 이게 뭐고”
"맞다 자습만 하다가 졸업하것다"
아홉 명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고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선택한 이곳에서 선생님은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요
“샘 마음이야 오직하것나 내 같았으면 벌써 팍 죽었을끼다“
“울 엄마가 그카더라 대문 밖이 저승이니까네 우짜동동 샘 마음 편하게 해드리라꼬....“
그날부터 아홉 명의 아이들의 보초 서기가 시작되었는데요
선생님이 계신 사택을 교대로 보초를 서고 있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번일지에 적어가며 총기 어린 눈빛들을 모아가고 있던 어느 날
“클났다..전부 모여봐라“는
6학년 대장 누나의 말을 듣고 모인 아홉 명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계신 방문을 밀고 들어가면서
“샘예 .. 우릴 놔두고 어딜가신다꼬예”
“안됨미더...“
“니네들 이 시간까지 안자고 어떻게.....“
“우린 다 암미더 학교 운동장에 있는 현수막 줄을 왜 가져갔으에..“
“그건 빨랫줄 하려고 가져온 건데…."
그날 밤 한바탕 자살소동이 벌어진 자리에 꼬마 별들을 머리에 이고 앉아 아홉 명의 아이들과 선생님은 아름답고 행복한 지난 이야기꽃을 피워놓고 있었고
"샘은 머리 위에 하늘이 있는 걸 고마워 한 적 있습미꺼?...."
"우리 발 밑에 땅이 있는 걸 감사해 한 적은예?……. " 라며 때 묻지 않은 순수함 마음으로 위로를 건네준 아홉명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선생님을 기다려 준 너희들이 너무나 고맙구나"
다시 시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고
“샘예... 저희랑 영원히 함께 해주실거지예“
"너거들 샘은 먼 여행을 다녀오신기다 마음 여행 말이다 알았제?"
((((((예))))
반장 누나의 말에 제비처럼 입을 모아 대답하는 아이들이 준 위로에
선생님은 아홉 명의 아이들을 끌어안고 어제 같은 내일이 아니길 바래고 또 바래보며
누구도 이별을 위해 미리 준비해놓은 사람은 없는 것처럼 행복한 눈물을 흘리던 그때를 회상해 보고 있었습니다
“그땐 너네들이 내게 선생님이었어...“ 30년 전 그때처럼 소리쳐 봅니다
“샘예... 저희랑 영원히 함께 해주실거지예“
라고.....
펴냄/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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