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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커트라인
2024.07.21 일
저는 이것이 본문에 대한 새 해석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걸 깨닫다 보니까는 그 정교함이 끝이 없어요.
또 그 깊이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번에 서론에서 이 설교의 총 서론에서 시편 119편 96절을 인용했죠.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이 넓으니이다.
이 말씀을 인용하고 난 다음에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심이 넓고 끝이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떤 말씀들을 부어주실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 시리즈 설교가 개신교의 아킬레스건이 된 칭의의 교리와 함께 제 설교와 책의 최고봉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시편 119편 96절을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진리에 대한 한없이 깊고 한없이 정확한 깨달음이 끝없이 쏟아져 쉴 새 없이 녹음하고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 정확성과 깊이에 내내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언컨대 이 설교와 책은 기독교 역사상 기념비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이런 말을 가끔 하기 때문에 과장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정확하고 더 깊은 말씀들을 얼마나 끝없이 부어주시는지 제가 이 설교 전체가 아니고 이 부분에 대해서 녹음하고 녹취한 것만 a4 용지로 200페이지가 훨씬 넘어요.
실제로는 250페이지가 넘습니다. 어마어마한 분량이죠.
저는 하나님께서 소나기처럼 부어주시는 계시적인 깨달음을 통해서 지난 수십 년간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가 있었어요.
설교를 듣다 보면 하나하나 여러분들이 알게 되실 건데요.
그래서 참으로 경이로웠고 기적 중에 기적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부터 그것을 정리할 것을 정리한 것을 오늘 이 사람이 발음이 잘 안 되네.
오늘부터 그것을 정리한 것을 여러분들에게 설명해 드릴 텐데 여러분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살아서는 알 수 없을 줄 알았던 구원의 커트라인.
믿음에는 행함이 따르죠.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완전히 순종하는 것은 완전 성화예요. 그리고 완전 성화된 사람만 천국에 가는 거는 아니죠.
그래서 제가 개척 초기부터 항상 뭐라 그랬냐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커트라인이 뭐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커트라인은 습관적인 죄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말했죠. 습관적인 죄가 없는 것이다. 그 근거는 다음 구절입니다.
요한일서 3장 9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오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데릭 프린스나 바샤부다 목사님 스승이라고 그러는데 데릭 프린스나 케네스 해인 목사님은 이 말씀이 거듭난 영에 대한 것이다.
그렇게 주장을 해요. 거듭난 영에 대한 것이다. 거듭나지 않은 혼는 죄를 짓는다.
거듭나지 않은 육도 죄를 짓는다. 근데 거듭난 영은 절대로 죄를 짓지 않는다.
그래서 이게 거듭난 영에 대한 말씀이다. 근데 예수님께서 혜인 목사님에게 뭐라 그러셨냐면은 구원받은 신자도 버림받을 수 있다.
그거 직접 가르쳐 주셨잖아요. 그런데 이 주장이 옳다면 혜인 목사님의 말이 옳다면 여러분 거듭난 이후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영을 혼이나 몸과 함께 지옥에 던져놓는 게 되잖아요.
영어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 그죠? 그 영이 혼과 육과 함께 지옥에 간다.
그게 말이 안 되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이 견해가 옳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굉장히 소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이 문자 그대로 거듭난 자는 죄를 짓지 않거나 범죄하지 못한다 그런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 교역자 중에도 그런 극단으로 나간 목사가 있었어요.
그런 극단으로 당한 목사가 있고 권면해도 말을 듣지 않고 그러더니 결국 사표를 내고 나가버렸는데, 여러분 거듭난 신자들이 전부 죄를 지을 수 없거나 죄를 안 짓는 거는 아니죠.
그죠? 그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성경인 요한일서에 보면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2장 1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원 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절대로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그러면 이 구절이 어떤 뜻이냐 확대 번역 성경에 보니까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을 했어요.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아니한다.
이 말씀이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또 블레이크 록은 헬라어 동사에 있어서 현재 시상은 습관, 계속성 중단 없는 연속을 뜻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이 구절에 나오는 표현들을 죄 가운데 머무르지 않고 죄를 연습하지도 않고 또 범죄를 계속할 수 없다 이렇게 옮겼어요.
여기서 습관적인 자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 얘기죠.
또한 로이드 존즈는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모든 동사들이 현재형이며 계속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데 문법의 권위자들이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구절들은 어떤 특정한 행위보다는 성품이나 주된 습관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상태나 습관에 대하여 그리고 죄를 계속해서 짓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게 옳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 구절의 뜻은 거듭난 신자는 습관적인 죄를 짓지 않는다 그런 뜻이에요.
진짜 거듭난 사람은 습관적인 죄를 짓지 않는다. 이것이 여러분 성경적이에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또 수많은 설교자들이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많은 예를 들 수 있지만 오스왈드 스미스 박사는 하나님이 쓰는 사람이라는 책에서 두 가지 예를 들었는데요.
하나는 나침반을 예를 들었어요. 나친 반의 바늘은 항상 북쪽을 가르치잖아요.
왜 때때로는 흔들립니다. 때때로는 흔들리면서 북쪽이 아니라 다른 쪽을 가르칠 수도 있죠.
그러나 결국은 북쪽으로 돌아가요. 신자가 바로 이와 같다는 거예요.
신자가 때로 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곧 자백하고 곧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거예요.
또 진흙 웅덩이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요. 제가 이 산에 다니다 보면 이 웅덩이들이 있어요.
산에 산에 웅덩이들은 거의 멧돼지 목욕탕이에요.
그래서 멧돼지 발자국하고 멧돼지가 등으로 비빈 그런 자국들 그런 것들이 있어요.
여러분 멧돼지는 진흙탕을 굉장히 좋아해 진흙탕이 있는데 멧돼지는 진흙탕을 보면 달려들어간다는 거예요.
스스로 자발적으로 그게 좋아서 달려들어간다는 양은 진흙탕으로 달려들어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근데 양이 진흙탕에 빠질 때도 있다는 거죠. 멧돼지는 거기서 좋아서 뒹굴고 놀지만 양은 진흙탕에 빠져도 곧 빠져나온다.
거기서 빠져나온다. 신자가 바로 이와 같다. 참된 신자와 거짓 자 신자를 구분할 때 이거를 통해서 누가 참된 신자고 또 누가 거짓된 신자를 구분할 수 있다는 거예요.
참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참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하고 훌륭한 설명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오랫도록 이렇게 가르쳤어요. 그리고 습관적인 데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제가 입버릇처럼 뭐라 그랬냐면은 성경에는 습관적인 죄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게 안개 속에 쌓여 있다. 하나님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가 구원의 커트라인에 머물기를 원치 않으시고 계속 자라가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감춰놨는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게 말했어요. 실제로 제가 쓴 여러 예전에 쓴 습관적인 죄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는 책에 보면 이렇게 기록이 돼 있습니다.
구원은 큰 구원이고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정확한 커트라인을 성경에 명시해 놓지 않으셨을까요?
왜냐하면 구원은 어느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갑니다.
그 중생에서 성화로 그리고 성화에서 영화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간신히 턱걸이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외에 이제 여러분 잘 아는 베드로후서 1장 5절에서 7절 11절 모르는데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걸 인용을 했어요.
그다음에 베드로의 권면대로 우리는 믿음의 덕을 덕의 지식을, 지식의 절제를, 절제의 인내를 인내의 경건을, 경건의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의 사랑을 공급하면서 성화의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구원의 정확한 기준을 몰라도 그것을 뛰어넘게 됩니다.
그 결과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고 상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방금 그 요약한 구절에 뭐라고 그러냐면 이같이 하면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렇게 기록돼 있거든요.
그걸 설명한 거예요. 저는 주님이 그래서 구원의 커트라인을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해 두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커트라인에 관심을 갖기보다 거룩에 관심을 갖고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주님을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이렇게 여러분 기록을 했습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연구해도 답을 모르겠는 거야.
정확하게 구원의 커트라인이 뭐니 뭐지 습관적인 죄가 없는 거야 그러면 어디까지가 습관적인 죄지 어디까지가 습관적인 죄가 아니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기준이 성경에 안 나와 있어요.
그거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저는 습관적인 죄에 대해서 정확하게 규정하고 싶었어요.
여기까지는 습관적인 죄야. 여기부터는 습관적인 죄가 아니야.
여기까지는 지옥 가는 사람이야. 여기부터는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이야.
그래서 정확한 구원의 커트라인들을 이 성도님들에게 제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구해도 이게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만 알 수 있다. 그래서 성경에 게시해 놓지 않았다.
뭐 이렇게 설명을 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오래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다가 몇 번 시도했지만 불가능해가지고 그걸 포기해버렸어요.
포기한 지가 굉장히 오래됐어요. 그런데 이번에 7장 14절에 25절을 연구할 때 정말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기대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습관적인 죄에 대해서 깨달아지기를 시작했어요.
이거는 여러분 오늘 제목이 밝혀주는 것처럼 오랫동안 안개 속에 있었어요.
습관적인 인재가 정확하게 무엇인가? 이건 오랫동안 안개 속에 있었어요.
그래서 전보다 더 이해가 된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 그게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그냥 습관적인 죄가 습관적인 죄라는 말이 아니라 그게 더 구체적으로 뭔가 이해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그 뒤에 더 세부적인 깨달음들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게 도대체 뭐지 단지 습관적인지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된 것도 이게 놀라운 일인데 깨달음이 계속 임하다 보니까 습관적인지에 대해서 이제는 80%나 90% 정도를 알 수 있게 됐다.
그거를 어떻게 분간하고 정의할 시키게 됐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이거는 불가능한 영역인데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굉장히 경이로웠어요. 그리고 여러분 굉장히 좋아하고 속으로 케즈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어요.
습관적인 죄에 대한 더 깊고 더 정확한 깨달음을 죄가 완벽하다고 느낄 때까지 제가 이제는 완벽하다고 느낄 때까지 여러 주 동안 저에게 계속해서 반복해서 부어주셨어요.
그러니 여러분 습관적인 죄에 대한 구원의 커트라인에 대한 게시들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거를 경험하면서 저는 마치 제가 조각가가 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조각가가 된 것처럼 제가 초등학교 때 목공작 때 학교 대표로 나가서 특등했거든요.
측정을 했는데 여러분 상을 못 받고 울산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랬는데 아무튼 여러분 제가 조각가처럼 느껴 조각을 할 때는 어때요?
나무를 갖고 조각을 하든지 돌을 갖고 조각을 하든지 맨 처음에는 예를 들어서 말을 조각을 한다 그러면 그 말의 모습이 아니죠 그냥 나무 덩어리고 돌덩어리에 그래 이제 크게 딱 잘라내잖아요.
그렇죠 머리 부분 다리 부분 꼬리 부분 이렇게 나눠가지고 크게 잘라내고 그리고 점점점점 정교하게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이게 맨 처음에는 나무였는데 처음에는 돌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거기서 말의 모습이 점점 선명하게 나타나는 거 아니에요?
그죠? 말의 모습이 점점 선명하게 나타나게 되죠.
여러분 제가 이 습관적인 죄에 대한 깨달음이 계속 임하는데 그 과정하고 너무 흡사한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제는 정말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론이 뭔지 구원론을 어떻게 재정립해야 되는지 그 구원론이 점점점점 정확해지는 거야.
점점점점 정확해지는 거 혹시 제 손바닥을 보고 오상이 아닌가 그럴 리가 없죠.
지난주에 산에 갔다가 넘어졌어요. 그래서 이제 나뭇가지에 찔렸는데 하필이면 여기를 찔렸어요.
아무튼 여러분 그래서 저는 점점점점 구원론이 정교하게 드러나고 정교하게 이렇게 완성이 되는 걸 보면서 마치 구원론을 조각하는 영적인 조각가처럼 느껴지고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굉장히 흥미롭고 저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너무 자주 부어주셨어요.
말씀을 너무 자주 부어주시고 너무 많이 부어주셔서 정리하느라고 생고생을 했어요.
녹음하는 건 별거 아니야. 근데 그 수많은 것들을 다 정리하려고 그러면 그거는 정말 막 중노동입니다.
중노동 그건 시간이 무한대로 들어갑니다. 아직도 아직도 절반도 못했어요.
몇 줄을 달려들었는데 절반도 못했어요. 지금도 여러분 생고생을 하고 있어요.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것들을 정리하고 정립하고 이제 완전히 원고로 작성하기 위해서 보통 설교를 준비하는 것보다 7배 정도는 신경이 많이 써야 되고 집중해야 되고 굉장히 피곤한 작업이에요.
그러나 드디어 습관적인 죄에 대해서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정말 기가 막힌 거거든. 그래서 여러분 얼마나 감격하고 또 여러분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에게 설명해 드릴 것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에요.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불가능의 영역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도 끝까지 침투에 들어가서 깨닫고 정립하게 된 그런 보배로운 진리, 지극히 법외로운 진리들을 여러분과 나눌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초집중해서 여러분들이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따라 해보겠습니다. 구원론 재정립을 위한 실마리 전에 제가 설명해 드린 것 지난 시간까지 설명해 드린 대로 로마서 7장 14절에 25절에 대한 대표적인 견해가 두 가지입니다.
많이 들어서 이제 다 외우셨죠? 하나는 구원받은 신자의 경험이다 이런 견해가 있고 다른 하나는 율법 아래에 있는 불신자의 상태다 이런 견해가 있습니다.
그런데 둘 다 구원받은 신자가 어떤 상태인지 그거를 보여주거든요.
어떤 견해든지 간에 둘 다 구원받은 신자는 그러면 어떤 사람인가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상태인가 그거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구원의 커트라인을 가늠할 수가 있어요.
만약에 이 단락이 구원받은 신자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라면 수많은 목사들이 설교하고 있는 것처럼 불신자들은 단순한데 신자는 복잡하다.
어떤 미국 목사님이 그렇게 한인 목사님이 그렇게 방송 설교하는 걸 제가 들었는데 불신자들은 단순한데 신자는 복잡하다.
불신자들은 마음 편하게 죄를 짓고 살지만 신자들 속에는 갈등이 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갈등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걸 제가 들었어요.
그런 의미가 돼버립니다. 즉 구원의 커트라인이 뭐가 되느냐 갈등이 돼버린 거예요.
갈등 죄를 짓지만 죄 가운데 살지만 속에 갈등하고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다.
여러분 불행하게도 적지 않은 목사들이 이렇게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구원파적인 매우 잘못된 가르침이에요.
반대로 만약에 이것이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라면 구원받은 사람은 이 단락에서처럼 죄의 법에 매여 있는 사람이 아니죠.
죄의 법에 매여 있는 사람이 아니고 8장 2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이 되는 것이 그런 의미가 되죠.
그 결과 구원의 커트라인이 뭐가 되겠어요? 갈등이 아니라 해방이 되는 거죠.
해방 갈등이 아니라 해방된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다.
갈등만 하고 계속 죄 가운데 해산한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다.
갈등할 뿐만이 아니라 해방된 사람이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다.
죄에서 자유케 된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다 이런 말이 되는 거죠.
그런데 새 해석을 통해서 밝게 드러난 대로 이 단락은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죠.
그러므로 갈등이 구원의 커트라인이냐 아니에요.
사실 여러분 신자만 갈등하나요? 불신자도 갈등할 수 있어요.
타 종교인들도 갈등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갈등이 구원의 커트라인이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해방이 구원의 커트라인이냐 해방이 구원의 커트라인이냐 그것도 아니에요.
왜냐 그러면 우리가 그동안 해방을 부정확하게 이해를 했습니다.
해방을 정확하게 이해했으면 해방이 구원의 커트라인 중에 하나로 생각할 수가 있는데 분명히 해방이 구원의 커트라인 중에 하나인 것은 맞는데 그냥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해방이 여러분 정확하게 구원의 커트라인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정확한 구원의 커트라인은 뭐냐? 이 정확한 구원의 커트라인을 우리가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해결이 돼야 됩니다.
첫째는 해방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돼. 바울이 말하는 해방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여러분 구원의 커트라인을 알 수가 있어요.
그다음에는 두 번째로는 8장 2절과 4절을 비교해야 돼 8장 2절과 4절을 비교하면서 구원의 커트라인이 무엇인지를 유추해내야 됩니다.
왜냐 왜냐하면 이 두 가지가 구원론을 재정립하게 해줄 수 있는 실마리예요.
우리가 무조건 구원론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정립할 수는 없는 거예요. 성경에 근거가 있어야 돼요.
근데 구원론을 재정립하게 해줄 수 있는 성경의 근거가 뭐냐 바로 해방의 참된 의미다.
첫째로는 그다음에 두 번째로는 2절과 4절을 비교할 때 거기에서 구원론을 재정립할 수 있는 근거가 나온다는 거 이게 실마리가 되어 진다는 거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해방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규명을 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2절과 4절을 비교해서 여러분 구원의 커트라인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유치해 나가야 돼요.
그런 작업을 해야 돼요. 그래서 이런 순서대로 작업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어떤 기본적인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만 구원론 재정립을 위한 이건 실마리니까 말 그대로 그런 기본적인 설명을 해드릴 건데요.
오늘은 또 첫째로 첫째로 한번 따라해볼까요? 첫 번째 실마리 바울이 말한 해방 오늘은 이제 요것만 설명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것만 설명드릴 수 있는 것 같은데 오늘 본문으로 읽은 1절 2절에 보니까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이렇게 나옵니다.
너를 해방했다. 이 구절에 나오는 해방이 구원론의 재정립을 가능하게 해주는 첫 번째 실마리 혹은 첫 번째 근거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나오는 해방은 정확하게 어떤 뜻인가?
근데 여러분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처음에 설교 들을 때는 안 들은 내용 같았는데 해방 해방 해방을 지난번에 다 설교하지 않았어 맞아요.
지난번에 다 설교했어요. 근데 그때는 언제 설교한 거예요?
본문에 본문 그러니까 7장 14절에서 25절에 대한 해석이 뒤집히기 전에 설명한 것.
근데 그 해석이 뒤집혔어요. 그러니까 영향을 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바를 수밖에 없어요.
성경 해석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이 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가 뒤집히면 뒤집히든지 최소한 어떤 변화가 생기든지 다행히 이게 뒤집히지는 않아요.
해방에 대한 해석이 그 뒤에도 연구를 해봤습니다만 뒤집히지는 않더라고.
근데 좀 더 균형을 잡아야 돼. 정교하게 균형을 잡아야 돼.
모자들은 지난번에 여러분들이 해방에 대해서 들은 내용이지만 그게 좀 부정 면이 부정확한 면이 있다.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래서 이게 굉장히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좀 반복해서 듣는 내용이 있더라도 그냥 처음 듣는다고 생각하세요 말씀을 쌩까는 거야 말씀을 생각하고 이제 못 들었다 모른다 나는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그럼 이제 처음 듣는다고 처음 듣는다고 생각하고 오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또 첫째이네.
첫째가 굉장히 많아요.
이 설교가 보통 긴 게 아니래 가지고 계속 대지에서 막 소대지로 계속 들어가면서 되기 때문에 첫 자로가 아직도 또 첫 자루가 또 남았어요.
이거 말고도 지금 세 번째 첫째로 따라해보겠습니다.
해방의 정확한 뜻 많은 사람들이 해방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생각을 해요.
저도 그랬어요. 해방이 어렵나 해방이 해방이지 죄에서 자유케 된 거지 죄 지배에서 자유케 된 거지.
그래서 죄를 이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 된 거지 그게 해방이지 뭐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번에 제가 연구하면서 정확한 해방의 의미를 그동안 놓치고 있었다.
그거를 발견하게 됐어요. 또한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의 의미를 깨달은 후에도 방금 전에 설명한 것처럼 균형을 잡지 못했어요.
7장 본문에 대한 해석이 달랐기 때문에 그래서 은 거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정확한 균형을 잡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24년 6월 20일 제가 아침에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의 정확한 의미가 정확한 의미가 캐치가 됐어요.
그래서 비로소 균형을 잡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해방에 대해서 전에 가르친 거를 좀 수정해 드릴 필요가 생겼어요.
성도님들이 해방이 뭔지를 정확히 알아야 되는데 해방에 대해서 이렇게 균형 잡힌 정확한 설명을 다시 해드려야 되겠다.
그래서 이제 그걸 4가지로 정리를 했는데 그 4가지로 정리한 것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나누고자 합니다.
마지막 첫 번째로 마지막 첫 번째로 따라 해 보겠습니다.
바울이 말한 해방은 죄의 지배에서 자유케 된 실제적인 해방이다.
전하고 약간 달라요. 뉘앙스가 그죠 바울이 말한 해방은 죄의 지배에서 자유케 된 실제적인 해방이다.
제가 그때는 뭘 말씀드렸냐면 루터의 노예 의지라는 책이 있는데 그 루터의 노예 의지라는 책이 옳은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되는 사람이 에라스무스인데 에라스무스는 자유의지라는 책을 썼는데 이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라는 책이 틀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루터가 틀렸고 에라스무스가 옳다. 제가 루터와 에라스무스에 대한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왜 루터가 종교 개혁을 했는가 에라스무스가 종교 개혁을 했어야지 더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에라스모스가 종교개혁을 했으면 개신교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참 여러분 탄식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여러분 책 내용이 아니라 제목을 사용해서 설명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는 자유요지가 있었어요.
하나님이 수많은 동물과 동물들을 지었는데 하나도 자유요지가 없어 본능만 있지 하나도 자유지가 없어요.
아담에게만 자유를 주셨어요. 그래서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있었고 따먹지 않을 수도 있었어요.
어쩔 수 없이 따먹은 게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 선택이에요.
아담이 스스로 선택해서 선악과를 따먹었어요. 그런데 그 후에 인간의 자유 의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에는 자유로웠어요. 누구의 종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죄의 종이 돼버렸어요. 아담 이후로 모든 사람이 죄의 종이 됐어요.
여전히 이 사람에게는 자유 여지가 있습니다. 연화적인 사람에게는 자유 요지가 있지만 마치 노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바울이 고백하는 것처럼 원하는 선을 행할 수가 없게 됐어요.
원치 않는 악을 행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자유 의지가 있는데 없는 것처럼 돼버렸어.
자유 의지가 마치 노의 의지처럼 돼버렸어요. 로마서 7장이 뭐냐?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의 불행한 상태 그 실상을 묘사를 한 것이 아담의 후에 타락한 인류의 실상을 묘사한 것이 바로 이 로마서 7장입니다.
또한 바울이 2절에서 말한 8장 2절에서 말한 해방이 뭐냐 그 해방은 다른 게 아니에요.
바로 이 상태에서 자유해야 되는 거예요. 이 상태에서 자유케 된 원하는 대로 못해 원치 않는데 해야 돼.
진짜 자유가 없어 이 상태에서의 해방이 해방은 뭐예요?
자유를 주는 거예요? 해방의 반대는 뭐예요? 종 노릇이 뭐예요?
자유가 없는 거예요. 근데 해방은 반대로 자유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8장 2절에서 말하는 해방은 뭐냐 바로 여러분 자유가 주어진 걸 말하는 거야.
자유 자유가 주어진 거 자유가 회복된 거를 말하는 거예요.
7장은 죄의 법이 룰처럼 작용하며 사람을 다스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그것을 죄의 법이라고 부른 이유예요. 그런데 바울은 8장 2절에서 뭐라고 말했어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바꿔 말해서 뭐예요?
죄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 그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
그러니까 노의 의지처럼 되어버린 우리의 의지를 자유 의지로 회복시켜 주셨다는 거 자유가 없는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는 거 바울이 말한 해방이 뭐냐 정확하게 그것이 바울이 말한 해방이라는 것이에요.
이해가 되시죠. 한편 이것은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해방이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또 이것은 참된 해방이에요.
북한에는 자유가 없어요. 남한에는 자유가 있어요.
엄청난 차이가 됩니다. 북한에는 국민이 아니에요.
노예들이에요. 2500만이 노예예요. 여기는 여러분 국민이에요.
국민이 개떡 같아가지고 좀 문제지만 아무튼 이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에요.
그래서 더 문제야. 얘기가 그냥 글로벌. 그러나 여러분 남한의 사람만 자유가 있고 이 땅에서는 북한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북한 사람은 거의 짐승 같은 수준의 삶을 산다고 보면 됩니다.
저는 배주산에 가요. 운동하기 위해서 금강산 옆에 있는 사람도 북한 주민이 금강산을 못 가요.
백두산 옆에 있는 사람도 백두산을 못 가요.
고위직들이 나가고 아니면 여러분 외국 관광들이 나가고 이게 무슨 사람을 개도 아니고 끝만 없이 다 묶어놨어요.
다른 도시로 갈 수도 없어요. 친척을 마음대로 방문할 수도 없어요.
다 허가를 받아야 돼요. 자유가 없어요. 세상에 이런 나라가 없어요.
세상에 이런 나라가 없어요. 트럼프 참 걱정이에요.
핵 가진 사람하고는 친하게 지내야 된다. 뭐 이런 게 지금 닿아서 설치는지 난 도대체 이해가 안 가 너무 혐오스러워 너무 혐오스러워 저기 대통령이 되면 도대체 어떻게 되겠나 우리나라도 봐도 마찬가지야.
그만하고 맨날 얘기해도 답도 없는 것 같고 말하고.
근데 아무리 자유 대한민국에서 산다 할지라도 여러분 바울이 말한 이 자유를 얻지 못하면 죄의 노예예요.
그거는 진짜 노예예요. 진짜 노예 미국에서 살아도 한국에 살아도 진짜 노예요.
그 사람은 여러분 진짜 너예요. 그리고 지금은 얼마나 비참한지가 영적으로 둔감해서 육적인 것, 세상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아서 몰라요.
그러나 이게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곧 알게 됩니다.
영원한 지옥불에서 고통을 당해야 돼. 북한은 아무것도 아니야.
영원한 지옥불에서 영원히 여러분 고통을 당해야 돼.
그래서 여러분 이것이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해방이고 참된 해방이라는 것이 참된 해방이라는 거지.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태생적으로 다음과 같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이것이 여러분 구원받지 못한 모든 인류의 상태예요.
로마서 7장 15절에서 20절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의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우리는 이 구절들을 한 구절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약간 온도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자꾸 먹
목소리가 갈려고 그래가지고 한 구절로 요약할 수가 있는데요.
예레미야 13장 23절에 보면 구수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데,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기록돼 있어요.
이것이 타락한 아담의 의외인 전 인류의 절망적인 상태, 구원받기 전의 상태, 교회 다니고 있어도 예배드리고 있어도 진짜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의 실제적인 상태.
그런데 바울이 말한 해방은 바로 이 상태에서의 해방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해방이에요. 바울이 말한 해방은 실제로 해방이에요.
또 바울이 말한 해방은 가장 중요한 해방이에요. 그리고 바울이 말한 해방은 참된 해방입니다.
이 해방이 없으면 진짜 자유가 없는 거예요. 이 해방이 있으면 북한에 있어도 자유가 있는 거예요.
종 노릇을 해도 자유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진짜 해방이고 이것은 참된 해방이고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받아야 되는 해방이다.
믿습니까?
여러분들이 대부분 이 해방을 받으셨겠지만 이 해방을 받지 못한 분들은 오늘 여러분 설교 끝나고 난 다음에 작심하고 기도하셔야 돼 성령을 부어주셔서 나를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성령을 부어주셔서 나를 자유케 해 주시옵소서, 너의 의지 같은 저의 자유 의지가 진짜 자유 의지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저에게 참된 자유를 주시옵소서, 참된 해방을 주시옵소서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두 번째로 따라 해 보겠습니다. 바울이 말한 해방을 과도하게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저도 몰랐었는데 이번에 사람들이 해방을 실제보다 과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거를 알게 됐어요.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사람들이 해방을 실제보다 과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게 여러분 성경의 몇몇 구절들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에스겔은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내 윤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이렇게 예언을 했죠.
또한 바울은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가 없다.
희망이 없어요.
이 말을 하고 난 다음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구절들은 우리가 완전히 해방되었다. 완전히 자익케 되었다.
우리가 완전히 변했다 이런 인상을 줍니다. 그다음에 여러분 해방이라는 단어 자체가 굉장히 느낌이 강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해방을 성령을 믿고 의지할 때 죄를 이기고 순종하는 상태로 변화된 것을 뜻한다고 생각해 이게 해방이다.
변화된 것을 뜻한다고 생각해. 그러나 해방은 죄를 이기고 순종하는 상태로 변화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 증거로 만약 우리에게 그런 해방이 주어졌다면 죄와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해방이 되기 전에 우리는 일본과 싸워야 됐어요. 독립군이 필요했죠.
지금은 독립군이 필요하지 않아요. 근데 독립군이 많아 나라에 진짜 싸워야 되는 건 일본이 아니에요.
진짜 싸워야 되는 건 북한입니다. 동족이 아니에요.
여러분 진짜 적이에요.
김정은이 진짜 적이에요. 진짜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는 거는 일본이 아니에요.
여러분 과거에 어떤 일을 했든 말든 그건 과거고 진짜 우리에게 지금 주적은 일본이 아닙니다.
북한입니다. 진짜 우리 위태한 거는 여러분 북한이에요.
근데 북한에 대해서는 꼬리를 치고 일본에 대해서만 짓는 개들이 있어요.
국민들이 그 개들을 지지해 국민들이 그 개들을 좋아해.
그래서 이 나라가 희망이 없어. 국민이 잘못됐다.
국민이 잘못된 정치인이 잘못된 게 아니다. 정당이 잘못된 게 아니다.
국민이 그런 정당을 키웠다. 국민이 그런 지도자들을 키웠다.
지금 미국을 봐도 한숨밖에 안 나와. 어떻게 저런 것들이 대통령 후보라고 나오나 한국도 봐도 한 술밖에 안 나와.
어떻게 저런 것들이 정치인이라고 설치고 있나 도대체 국민들이요.
분별력이 없어요.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 보면 희망이 없어요.
신문 기사도 안 올려 올리면 뭐해 개에게 거룩한 걸 던지면 몰래 돼지에게 돼지가 진주의 가치를 알아 국민이 개돼지 같다.
희망이 없는 국민이다. 희망이 없는 국민이다. 희망은 하나님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긍휼밖에 없어요. 우리 여러분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는 사람 없습니다.
이 나라는 자격 없어요. 내가 볼 때 이 나라는 자격 없습니다.
목사들을 봐도 자격 없어요. 교회를 봐도 자격 없어요.
국민을 봐도 자격 없어요. 정치인들을 봐도 자격 없어요.
망해도 싼 나라예요. 하나님. 그러나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영혼들을 생각하고 이 나라의 영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영혼을 생각하고, 열방들의 영혼을 생각하고,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죄악만은 막아주시옵소서.
종교의 자유가 사라지는 공산화가 되어가는 그런 최앙만은 하나님께서 막아주시옵소서 우리가 여러분 끊임없이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어디까지 얘기하다 또 일로 가는지 모르겠는데 일제시대 얘기하다가 그로 갔구나.
일제시대 여러분 해방되기 전에는 독립군이 필요하고 싸워야 했지만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는 싸울 필요가 없어요.
싸울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바울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켰습니다.
언제 해방이 되고 난 다음에 자기가 해방하였음이니라 분명히 바울은 이걸 경험한 사람이죠.
그렇죠. 해방되고 난 다음에 싸웠어요. 자기 마음을 줘서 복종시켰어요.
또 우리도 싸워야 돼요. 그럼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해방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해방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또한 만약 그런 해방이 주어졌다면 모든 신자가 다 성화가 될 것이 모든 신자가 다 천국에 가야 됩니다.
그죠? 죄를 이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돼버렸는데 그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돼야 돼요. 그러나 한 번 구원은 절대로 영원한 구원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해방에 대한 그런 견해에 문제가 있다는 거죠.
그게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해방은 어떤 뜻이냐 어떤 것이냐 그것은 죄를 이기고 순종할 수 있는 상태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죄를 이길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 전에는 자유가 없어요.
전에는 할 수가 없어요. 선을 행할 수가 없어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어요.
도덕적으로 어느 정도 사는 것은 가능해도 하나님 말씀에 입각해서 선을 행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 말씀에 입각해서 여러분 죄를 안 지을 수가 없어요.
전에는 불가능했는데 과거에는 불가능하게 됐는데 그것이 여러분 가능하게 된 상태가 바로 여러분 바울이 말한 해방이라는 것이에요.
그것이 해방입니다. 그러므로 해방이 되었어도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해야 되는 거예요.
믿습니까?
그래야 율법의 의거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해방되었다고 무조건 율법에 의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해방이 돼야만 율법의 의를 이룰 수 있어요. 그러나 해방된 자가 육신을 따르지 않을 때 해방된 자가 성령을 따라 행할 때 그래야 여러분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게 뭐냐 그러면 우리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겠다고 진심으로 결단합니다.
그럼 진심으로 결단하면 항상 그렇게 살 수 있나요?
나는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할 거야. 그럴 때는 약간 또 이제 내려야 되겠죠.
땀삐질삐질 내려고 너랑 흘려라. 꼭 말해야 올리고 말해야 내리고 또 넘어내리면 안 되겠죠 이제 힘들어.
여러분 우리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가겠다고 진심으로 결단해도 항상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렇게 결단하고 보면 주로 율법의 욕구를 이루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로 죄를 이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살아가요.
그렇지만 우발적인 죄도 짓는다는 거예요. 또 일시적으로 죄에 빠진다는 거예요.
우발적인 죄뿐만 아니라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자세하게 다룰 것인데 일시적인 죄도 짓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신자가 우발적인 죄만 짓나요? 신자가 일시적인 죄도 지어요.
우발적인 죄가 일시 반복될 때도 있다는 것이에요.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 이게 여러분 구원받은 신자라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말한 해방을 막 그냥 우리는 죄에서 자의케 됐어.
우리는 죄의 지배에서 자의케 됐어. 우리는 이제 죄를 이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 됐어.
그런 쪽으로만 생각해가지고 우발적인 죄도 짓지 않고 일시적인 죄도 짓지 않고 그런 해방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거는 바울이 말한 해방을 과도하게 부풀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해방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 세 번째로 따라 해 보겠습니다. 바울이 말한 해방은 성령을 따르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삶으로 인도한다.
이 부분이 참 중요합니다. 바울이 말한 해방은 성령을 따르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삶으로 인도한다.
이게 전하고 달라진 또 부분이에요. 여러분 해방의 목적이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왜 해방시켰느냐 목적이 있어요.
마음대로 살려고 자유를 가지고 그게 아니죠. 왜 우리를 해방시켰느냐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려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삶을 살게 하려고 우리를 해방시키신 것이에요.
또 율법의 요구를 이르는 것이 곧 예수님이 말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예요.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봐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이런 의가 없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이런 의가 없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참신자는 모두 이런 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신자는 모두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달라요.
같으면 그건 외식하는 자지 같으면 가짜지 그죠? 참신자는 모두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이런 을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신자들 중에서 오직 이런 사람들만 천국에 들어갑니다.
근데 여러분 표현만 다는 거지 똑같은 말인 거예요.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게 무슨 의미예요? 예수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그거 아니죠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율법의 문자만 이해하고 행동으로만 지키는 게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이해하고 마음으로도 지키는 걸 말하는 거죠.
믿습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천국 못 들어간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에서 분명히 말씀했는데, 똑같은 것을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져야 된다. 왜 우리를 해방시켰나 왜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성령을 주셨나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면서 그 뒤에 가면 너희가 육신으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산다. 그게 율법의 우를 이루는 거거든.
그거 안 하면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반드시 멸망한다.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런 설명을 안 했는데 책에는 좀 보완을 해놓으려고 그러는데요.
여러분 많은 주석들을 보면 칼빈주의 학자들이 칼빈주의가 대다수예요.
칼빈주의자들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여야 산다. 그럼 이게 무슨 얘기예요?
멸망한다는 얘기예요. 지옥 간다는 얘기예요. 버림받는다는 얘기.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은 맨날 이게 그런 뜻이 아니다.
여러분 그런 뜻이 아닌 게 아니라 그런 뜻이에요. 그 증거가 없느냐 100%짜리 어떤 칼빈주의 목사나 어떤 칼빈주의 신학자도 부인할 수 없는 100%짜리 증거가 있다고 그게 뭐냐면요.
로마서 8장하고 갈라디아서 5장하고 구조가 똑같다는 거야.
로마서 8장에 뭐예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거 아니에요?
그 영을 쫓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에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성령을 따라 행해야 된다. 그거 아닙니까?
육신을 따르는 자는 그 뒤에 성령을 따르는 자는 막 이렇게 나오잖아요.
그렇죠 갈라디아서 5장 10절에 뭐라고 했어요?
그러므로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러면서 갈라디아에서는 어떻게 됩니까?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육신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분명한 일들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위협으로 못 받는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그죠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위협으로 받게 된다. 그거잖아요.
로마서 8장에서는 뭐예요? 육신을 따라 행하면 그죠 죽는다.
성령을 따라하면 율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크랜사하면 산다.
근데 죽는다. 산다가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로 유업을 받지 못한다는 거하고 겹쳐지는 거예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신학자가 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목사들이 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교단이 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뜻이 무엇인지를 바울이 정해놨다는 거예요. 성경에 명시해 놨다는 거예요.
둘 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성령을 따라 행하면 어떻게 되고.
갈라디아서는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고 그죠 로마서 8장에서 성령을 따라가면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되고, 문자만 말하지 똑같은 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게 그거예요.
그죠? 근데 육신을 따라 행하면 성령을 따라 행하지 못하면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고, 천국 갈 수도 있고 지옥 갈 수도 있다.
반드시 지옥 간다. 반드시 죽는다. 반드시 멸망받는다.
죽는다. 근데 로마 갈라데서는 뭐라고 그러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그렇게 나오.
그러니까 여러분 절대로 칼빈에게 속지 말라는 거예요.
절대로 장로교에게 속지 말라는 거예요. 절대로 장로교 학자들에게 속지 말라는 거예요.
장로교 강의 서교자들 목사들에게 절대로 속지 말라는 거예요.
그거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갈라디아서 5장하고 로마서 8장하고 비교해 보면 그 문제가 아주 명백한 것이에요.
근데 너무 칼빈주의 학자들이나 목사들은 괴변을 많이 늘어놓기 때문에 아닌 거를 막 그것처럼 만들어놓고 목사들을 속이고 신자들을 막 500년 이상을 속여왔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들을 궤변론자라고 생각해 이 사람들은 개변론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변개시키고 여러분 그런 사람들의 궤변에 절대로 속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 설명했고 원고에 없는 거를 막 좀 얘기를 해가지고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동적으로 율법의 의가 이루어지나요?
그렇지 않아요.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야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이 반드시 강조해야 될 게 뭐냐 해방됐다.
이 얘기만 자꾸 하면 안 돼요. 우리는 해방됐다. 이 말만 하면 안 되고, 육신을 따르지 말고 성령을 따라 행해야 된다.
그리고 단순히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해야 된다.
이렇게만 말하면 안 돼.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멸망받는다.
니가 목사라도 멸망받는다. 장로나 권사라도 멸망받는다.
반드시 버림받고 지옥 간다. 이걸 가르쳐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믿습니까? 성경 읽고 설교하고 신학자들 말을 이용한다고 그게 제대로 된 설교가 아니에요.
성경대로 가르쳐야 그게 설교지.
설교라는 거는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성경 읽어놓고 지들 얘기 지들 생각 말하는 게 설교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설교가 너무 지금 잘못돼 있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자꾸 교회 개혁, 교회 개혁 그러는 거예요.
교회 개혁 이대로는 안 된다. 개신교가 이대로는 안 된다.
그냥 목사가 신자들 잡아먹고 지옥 보내고 이게 뭐 하는 짓거리들이야 교회 충성하게 만들고 목사에게 충성하게 만들고 그중에 80%는 결국 지옥 가게 만들고 이게 무슨 목회냐고 이게 이게 무슨 제대로 된 목사냐고 반드시 교회가 개혁이 돼야 돼요.
특별히 장로교가 개혁이 돼야 됩니다. 믿습니까?
이 거짓 결의에서 깨어나야 되고 벗어나야 되고 해방이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절대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은 성도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기대와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한번 따라해볼까요?
바울은 성도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기대와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전에 뭐라 그랬어요? 해방된 사람도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하지 않으면 멸망받는다.
버림받는다. 바울이 그걸 말했어요. 이게 참 중요해.
바울이 그걸 말하면서도 그러니까 너희 중에 많은 사람들이 버림받을 거야.
너희 중에 많은 사람들이 멸망받을 거야. 이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말하지 않고 성도들 중에 대부분이 성도들 중에 다수가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했어.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이유가 로마서 6장 2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로마서 6장 22절.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이 이 상태에 근거해 가지고 로마서를 받은 후에는 더욱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면서 율법의 의를 이루고 그래서 그들이 결국 궁극적인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또 그렇게 믿었어요. 로마 교회 성도들은 여기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원어에는 현지 으니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살고 있다는 거예요.
이 성도님들이 막 제 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들이 아니야 막 죗가운데 살고 있는 성도들이 아니야.
그런데 이제 바울을 통해서 로마서를 통해서 더 자세한 가르침을 받았어요.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 성도들이 어떻게 되겠어요? 더 열심을 내서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면서 여러분 율법의 고 이루고 그렇게 살다가 궁극적인 구원을 받을 거 아니겠어요?
그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바울은 여러분 그렇게 기대했다는 것이 또 바울은 그렇게 믿었어요.
또 이런 믿음에 근거해서 8장 31절 39절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무도 그럴 수 없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데 거룩한 삶을 사는데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받고 더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끊어집니까?
위험이나 핍박이나 칼이 그 사람을 어떻게 끊습니까?
기관이나 재난이 그를 어떻게 끊습니까? 죽음이 그들을 하나님과 그들을 핍박이나 죽음이 그들을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나눌 수 없는 거예요.
하나님 그들을 사랑하시고 믿습니까? 그들의 영혼은 궁극적인 구원을 받고 천국에서 영생 봉덕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8장 31절에 39절에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은 아무도 구원받 버림받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이렇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도들이 이렇게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또 거기에다가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서 마음과 각오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 성도들을 아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
아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 믿습니까?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은 로마서에서 곳곳에서 얘기를 했잖아요.
그거 하고 딴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러분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건데 칼빈에게 속아서 교리 안경을 끼고 보니까 신학자인데도 그게 그냥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으로 보이는 거야.
목사한테도 그게 한 번 구원의 영원한 그러니까 여러분 소경을 따라가면 안 되는 거예요.
맹인을 따라가면 안 되는 거예요. 믿습니까?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면 안 되는 거예요.
목사가 다 목사가 아니고 설교가 다 설교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그러므로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게 뭐냐 우리는 해방의 의미를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만들면 안 된다.
해방이 내가 죄를 이기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으로 변화된 거를 말하는 건 아니야.
그런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걸 말하는 건 아니야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해준 게 해방이에요.
그걸 우리가 알아야 되지만 여기서 자칫 잘못해서 좀 지나쳐 나가면 해방을 너무 소극적인 걸로 생각을 해가지고 그죠 그래서 여러분 그 해방의 의미를 축소시킬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도 조심해야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요.
우리는 해방된 신자들에 대해서 바울처럼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 대부분이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며 율법의 그걸 이루고 궁극적인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믿어야 된다는 거 그렇게 기대하고 믿어야 됩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이에요. 물론 이것은 로마서에처럼 칭의와 즉 복음과 성화와 견인의 교리가 성경대로 선포될 때에만 기대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선포했던 것처럼 올바른 복음이 선포가 되고 올바른 진리가 가르쳐지고 있을 때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성도들의 대부분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 될 것이다.
명목상의 신자 말고 외식자 말고 형식자 이거 말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대부분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게 될 것이다.
그다음에 구원받은 성도들의 대부분이 궁극적인 구원을 받게 될 것이 그 얘기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여기에 깔려 있는 거예요. 그냥 진리를 옳게 분별하는 거 그다음에 여러분 진리를 올바로 정립하는 거 그러니까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가르치는 거 이것이 여러분 너무 중요하다는 거예요.
바울이 나는 너희들의 핏값에 대해서 깨끗하다 그랬잖아요.
너무나 중요하다는 거 그다음에 여러분 교회의 선택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 교회가 성경대로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고 있는 교회냐 성경대로 회개를 강조하고 행함 있는 삶이 됨을 강조하고 거룩을 강조하고 성경대로 기도해야 될 거 강조하고 믿습니까?
성경대로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았다고 강조하고 이 성경대로 가르치는 열심히 신앙생활한다고 다가 아니에요.
여러분 믿음은 말씀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이 믿음의 질을 결정하는 거예요.
어떤 말씀에 어떤 걸 건강에 제일 중요한 중에 하나가 뭐예요?
운동뿐만 아니라 뭘 먹느냐고든 뭘 먹느냐 그죠? 북한 동포들 먹은 것도 없는데 옥수수 강냉이 먹고 맨날 운동하면 더운 날 탈진해서 죽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어떤 말씀을 듣느냐가 그 사람의 믿음을 결정짓는다는 거예요.
믿습니까? 교회의 선택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에요.
올바른 교회들을 선택하는 게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그럼 이제 여기서 다음 두 구절을 한번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두 구절을 읽어드리겠어요.
로마서 6장 4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8장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기서 이제 생명에 초점을 맞춰야 돼. 6장 4절에 보면 새 생명 가운데서 우리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8장 2절에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이 생명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에요. 새 생명을 얻었다는 거예요.
그죠? 본성이 다른 새 생명을 얻었다는 거예요. 아담과 같은 본성의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과 같은 그게 영생이에요.
새 생명을 얻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에요.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누가 새 생명을 주셨느냐? 8장 2절에서 생명의 성령이라고 불리고 있는 성령께서 생명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믿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어요.
엄마가 아이를 낳고 생명을 주는 거예요.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신 것이 새 생명을 주신 것이에요.
믿습니까? 새로운 본성을 주신 것이에요.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거듭남으로 새 생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해방과 거듭남을 같은 것이라고 보는 이유예요.
해방이 거듭남이 말은 다른 것 같다고 같은 것입니다.
바로 생명의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써 우리가 죄의 집에서 해방되는 것이지 뭐로 해방이 됩니까?
모르 그다음에는 성령 세례가 있어요. 성령의 내주 성령 세례.
그 사이에 또 뭐가 있나요? 없어요. 잘 들으세요.
여러분 성령의 내주 그다음에 성령 세례. 그다음에 성령 충만 성령의 권능으로 이는 거 세 단계뿐이에요.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면 여기 뭘 말하고 있는 거예요?
로마서 8장 1절에서 구원을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모든 자에게 들은 구원 그렇죠 그에게 생명의 성령.
그럼 이 성령이 뭘 말하는 거예요? 거듭나게 하는 성령 얘기하는 겁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거듭나게 하는 성령 얘기하는 거야.
그 말을 자꾸 해도 못 알아들어 그런 사람이 있어. 그래서 내가 좀 설명을 해주는 거 자꾸 이게 해방의 거듭남이 아니다.
막 이러는데 그거 아닙니다. 여러분 여기 나오는 해방은 생명의 성령에 의해서 우리가 거듭남으로써 죄에서 자게 된 거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의 집에서 해방되는 거를 말하기 때문에 실제 그렇지 않나요?
성화는 죄에서 자유케 된 게 아니에요. 죄에게 자유케 된 게 점점 성장하는 거예요.
우리가 처음에 죄의 지배를 받다가 로마서 7장 같은 상태에 있다가 자케 된 최초의 시점이 뭡니까?
성령이 내주함으로 성령에 의해서 거듭남으로 그 일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해방이 실제로 여러분 거듭남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해방의 그래서 제가 이게 해방의 거듭남이다.
이 같은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요.
그 이유 중에 하나예요. 그런데 이걸 이제 염두에 두고 기억하고 들어보세요.
그런데 사도 요한이 바울뿐만 아니라 바울도 그랬는데 사도 요한이 거듭남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말을 했어.
요한복음에서도 요한복음 3장에서 3장 3절, 3장 5절 그죠?
물과 성령으로 거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 거듭남에 대해서 또 여러분 요한일서에 보면 요한이 거듭 답에 대해서 아주 전문적으로 얘기를 했어요.
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거듭났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여러분 거듭남에 대해서 성경에서 가장 자세히 말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누구냐?
바울과 더불어 사도 요한이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근데 요한일서에서 요한이 거듭난 자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느냐 이렇게 말을 했어요.
요한일서 3장 9절에 보니까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거듭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그랬어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그다음에 요한일서 5장 4절에 보니까 물은 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거듭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또 5장 18절에 하나님께서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그랬어요.
중요한 게 뭐냐면요. 요한일서에서 요한은 구원받은 사람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을 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이야 17절, 24절, 28절, 3장 3절 이런 데도 얼핏 나타나는데 5장 16절에서 17절이 결정적인 거예요.
죄 중에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 믿습니까? 여러분 그러니까 구원받은 사람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거를 요한일서 자체에서 인정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도 요한이 또 뭘 하냐 거듭난 신자들이 죄를 짓지 않아야 된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거듭난 신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
굉장히 긍정적 이론, 거듭난 신자는 구원받은 사람이 버림받았다는 걸 인정했어요.
그러니까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거듭난 너희들은 죄를 짓지 않아야 돼 이렇게 말해야 되는데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버림받지 않으려면 죄를 짓지 않아야 돼 이렇게 말하지 않고 거듭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 이렇게 말했다는 거예요.
또 거듭난 자는 세상을 이겨야 돼. 버림받지 않으면 세상을 이겨야 돼 이렇게 말한 게 아니라 거듭난 자는 세상을 이기느니라 이렇게 말했다는 거 당연히 그럴 것처럼 당연히 그럴 것처럼 그렇게 여러분 얘기를 했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우리도 해방을 율법의 요구로 이루는 것과 완전히 분리시키면 안 된다는 거예요.
신자들이 대개는 여러분 글자가 너무 작아서 신자들이 대개는 그로 인해서 그렇게 살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와 전망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해방과 율법 해방과 율법을 율법의 요구를 이르는 것 사이에 학자들이 잘하는 말이죠.
불연속성뿐만이 아니라 연속성이 있다는 걸 인정을 해야 된다는 거.
해방이고 거룩 자체는 아니다. 해방이고 죄에 대해서 변화돼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거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거,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해방이 된 거를 말하는 것이다.
믿습니까? 아까 그렇게 말했잖아요. 이게 여러분 뭐예요?
불연속성이지 불연속성 해방하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 사이에 불연속성 근데 이런 불연속성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연속성도 또 있다.
불연속성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연속성만 있는 것도 아니고 두 가지가 다 있다.
그래서 해방을 이해할 때 이쪽으로만 이해해도 안 되고 이쪽으로만 이해가 되고 요만큼 이거를 인정해야 되고, 아까 설명한 것처럼 또 이만큼 이거를 인정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데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이것은 로마서나 로마서나 요한일서에서처럼 칭의와 성화와 견인의 교류가 성경대로 바르게 선포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바울은 구원받은 모든 신자 대부분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궁극적인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믿었어요.
버림받으시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면서도 그렇게 믿었어요.
사도요한도 그렇게 믿었어요. 이해가 되십니까?
사도 요한도 그렇게 믿었어요. 그러면 그러니까 지금 모든 교회가 그랬냐 안 그렇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구원받은 신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버림받고 지옥에 간다는 거예요.
바울이 지금 현대 교회를 해서 설교하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 사도 요한이 지금 장로교회 가서 설교하면 한국교회 대다수 교회 가서 설교하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거예요.
너희 중에 상당수가 버림받고 지옥에 가게 생겼다.
그러니까 회개해야 된다. 정신 차려야 된다. 죄와 싸워야 된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된다. 왜 복음을 똑바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진리는 성경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견인의 교리를 성경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칼빈에게 속고 장로교 교리에 속고 개혁신학에 속고 학자들에게 속고, 유명한 가게의 성기자들에게 속고 바울하고 다른 설교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사도 요한하고 타나 설교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초대교회 바울이 목회한 교회는 그랬습니다.
초대교회 사도 요한이 목회한 교회는 그랬습니다.
그들이 설교하는 교회는 그랬어요.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거기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대부분이 말씀대로 살다가 천국에 간다고 볼 수가 없게 생겼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교회가 개혁돼야 되는 겁니다. 반드시 교회가 개혁돼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어려운 설명들을 하는 거예요. 복잡한 얘기들을 하는 거예요.
씨름을 하는 거예요.
웰메그를 뒤엎기 위해서 이거를 바꾸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 교회는 어때요?
우리 교회는 성경대로 복음을 선포하고 있어요. 성경대로 진리를 선포하고 있어요.
성경대로 견인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저도 여러분도 우리 교회도 명목상의 신자가 일부 있고 우리 교회에도 위 신자가 일부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구원받은 진실한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천국에 갈 것이라고 기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잖아요.
제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나는 정혜영 전도사님을 너무 존경하는데 나는 가짜입니다.
뭐야 주님 내가 가짜입니다. 이게 이단이야 그거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믿습니까? 그거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여러분 우리 교회 대부분의 진실한 성도와 대부분의 진실한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이고 궁극적인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전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확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여러분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야 정상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균형이 필요하다는 거야.
이런 균형이 우리 교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마지막 네 번째로 또 사 사장 너무 길게 가면 안 돼 이게 마지막 네 번째로 따라 해볼까요?
해방되었다고 죄에 대한 승리와 순종이 반드시 쉬운 것이 아니다.
지금 계속 얘기했다 얘기했다 얘기했다. 왜냐하면 균형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는 인자와 어미가 있거든 한 면만 있는 게 아니거든.
한면만 말하면 치우치는 거거든. 인자 쪽의 진리도 얘기하고 어미 쪽의 진리도 얘기하고 인자 쪽에 얘기하고 어미 쪽에도 얘기하고 인사하는 신부 어미는 신랑 이래야.
여러분 이게 온전한 진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제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건데 하버드를 졸업한 허대니 목사님이나 서울대를 졸업한 이정우 목사님 사모님 이정호 목사님은 서울대 안 나왔어요.
이정우 목사님 사모님처럼 어떤 사람들은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재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수 없다. 밥맛이다.
이렇게 마찬가지로 김옥경 목사님이나 박세훈 목사님처럼 박세훈 목사님처럼 말씀대로 사는 게 제일 쉬웠어요.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죄를 이기고 말씀대로 사는 게 제일 쉬웠어요.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물론 여러분 성아나 완전 성화가 된 사람들은 말씀대로 사는 거를 쉽다고 느낄 수 있어요.
우리가 그렇게 돼야 됩니다. 믿습니까?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여러분 그것이 죄 짓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어요.
우리가 그런 상태로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신자들이 다 그런 수준은 아니다.
구원파 참신자라고 다 그렇지는 않다. 다수는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것이 현실이죠. 또한 우리는 바울이 송화된 사람이고 완전 성화가 된 사람이었음도 불구하고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켰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왜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의 성냥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아무리 거룩해졌어도 아무리 성화가 됐어도 몸의 성냥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러므로 성화가 성화나 완전 성화가 되었어도 상대적으로 쉬울 수는 있지만 마냥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무조건 저절로 되거나 자동적으로 되거나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참신자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며 사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되거나 반드시 쉽지는 않습니다.
심지어는 그것이 반드시 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 버림받은 사람들이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타락한 사람도 나오고, 그래서 여러분 버림받은 사람도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도 오늘날 해방을 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길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아니면 갈등이나 탄식이 없고 의와 평, 평강과 신앙만 넘치는 것으로 그렇게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인데도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거야.
구원받은 사람인데 해방에 대해서 과도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균형 잡힌 이해가 없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사람은 주로 순종하는 사람이에요. 주로 순종하지 않으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주로 순종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때때로 우발적인 죄도 짓습니다.
또 때때로 일시적인 죄도 빠집니다. 일시적인 죄도 짓습니다.
이 일시적인 습관적인 죄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우리가 말하는 습관적인 죄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타락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우발적인 점만 항상 얘기했어요.
우발적인 죄만 있는 게 아니라 일시적인 죄도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 나는 우발적인 죄를 지으니까 또 나는 일시적인 죄를 지으니까 나는 거듭나지 못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구원의 약신을 갖지 못하고 항상 두려워하고 떨며 살아가는 많은 신자들이 있다는 것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바울이 말하는 해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그래서 오늘 제가 시간을 내가지고 바울이 말하는 해방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냐 네 가지로 정리해서 여러분들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고 있는 이유예요.
믿습니까? 우리가 여러분 올바른 진리를 알아야 여러분 착각하지 않게 됩니다.
착각하지 않게 되면 하나님은 여러분 우리가 늘 두려워하는 걸 원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늘 우리가 고민하고 떠는 걸 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여러분 정말 구원받은 신자고 타락한 자가 아니라면 부족해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믿습니까?
그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가고 더 거룩해지고 더 정결해지고 더 죄를 이기고 더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그렇게 성장해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거를 방해하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해방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해방에 대해서 제가 자세하게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그런 분들이 있으면 자유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분이 있으면 자유케 되시고 거기에 머무르라는 게 아니에요.
거기에 머무르라는 게 아니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믿습니까?
하나님께 마땅히 당당하게 은혜를 구하며 그러면서 여러분 싸우며 변화돼 나가려는 것이 더 성장해 나가려는 것이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으로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가 될 만한 얘기를 하나 해드리겠는데 오늘
꽃송이 버섯
30kg를 풉니다.
오늘 꽃송이 버섯 약 30kg 정도를 풉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께서 사는 일기를 놓치면 땅을 치고 털고 갈 일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우리 들은 말씀 기억하면서 기도하기를 원하는데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은 것도 감사, 바른 복음 진리를 듣고 깨닫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올바른 진리와 올바른 견인의 교리를 듣고 깨닫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믿습니까?
그 하나님 은혜에 대해서 먼저 하나님 앞에 깊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에 여러분 해방을 위해서 기도하세요. 해방되지 않은 사람은 여러분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죄 지배에서 해방되지 못해서 계속 습관적인 죄를 짓고 살고 있다면 반드시 지옥에 갈 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반드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부르짖어야 됩니다.
성령을 부어주시고 나를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미 회개하고 예수 믿고 거듭나서 해방된 사람도 여러분의 해방 수준에서 만족하면 안 됩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의 해방 수준에서 만족하지 말고 이제는 정말 죄를 이기는 게 너무 쉬웠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게 너무 쉬웠다. 오히려 죄를 짓는 게 더 어렵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 정도로 성령을 더 부어주시며, 성령이 내조하면 해방이오면, 성령이 충만하면 더 충만한 해방이 오른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게 노력으로 단순히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성령을 믿고,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주여 이 시간에 성령을 부어주시옵소서 주여 이 시간에 성령 충만 주시옵소서 나를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나에게 자유를 주시옵소서, 나에게 더 큰 해방을 주시옵소서, 나에게 더 큰 자유를 주시옵소서 그래서 더 철저하게 죄를 이기고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넉넉히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게 고 천국에서 큰 상을 받는 자가 칭찬을 받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가 이제는 해방된 자로서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율법을 이르며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되기를 결단합니다.
결단하고 기도하오니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옵소서 주님 내 안에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죄가 삼창하고 통성으로 간절히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인이요 주요 주의 이름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그 놀라운 은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로 하여금 천국 백성 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아버지 우리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가 더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하나님 안에서 자녀로서 누리는 행복을 누리며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삶인지 하나님 우리에게 참으로 진정한 자유 의지를 갖고 하나님 그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우리가 더 큰 은혜를 구하며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의 믿음의 질을 높여주시고, 하나님 이 귀한 말씀을 들으면서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그 어디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장성한 믿음의 불량에 이를 수 있는 놀라운 그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신 아버 아지 감사드리고 찬양드리고 주님을 높여 드립니다.
아버지 우리의 믿음이 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갈 때 로마 교회 성도들처럼 정말로 바울이 그렇게 기대하면서 정말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이런 말씀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죄와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로 생명의 성령의 몸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리고 찬양드리고 아버지를 높여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더 결단하고 나아갑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더 결단하며 나아갑니다.
우리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죄와 싸워 이기며 하나님 우리가 반드시 이기는 사,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 우리가 오늘도 다시 결단하오니 아버지 우리 안에서 침노하여 들어오시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성령 충만을 읽고 하나님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넉넉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주의 천국 백성들 다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아버지 오늘 거듭나지 않은 주의 백성들 있습니까?
거듭나지 않아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있습니까?
오늘의 시간이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하시고 완전히 해방되는 그 은혜를 쏟아부어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교회에 주신 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말씀 앞에 진리의 깊이 뿌리를 내릴 있도록 모든 사랑하는 교회, 우리 모든 성도들과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이 진리 안에 머무르 더 견고하고 더 단단한 신앙 안에서 참으로 하나님과 이 말씀을 아버지, 우리의 삶을 그대로 지켜 나가는 아버지,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율법의 용어를 다 이루며 사는, 정말 사랑으로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아버지의 은혜 위에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이 시간에 쏟아부어 주시옵소서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아버 아버지가 감사함으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교회를 세워주시고, 하나님이 담임 목사님 세워주시고, 놀라운 진리의 말씀과 복음 아리 땅 가운데 회복시켜주시는 아버 아버지 앞에 감사함으로 하나님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강력한 성령으로 주님 하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수많은 영혼들 열방의 교회를 개혁하시고 영혼들을 살려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넓고 크신 뜻과 계획 앞에 아버 아버지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여드리며 우리의 원망과 온 삶으로 우리의 영혼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며 아버지의 시간,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신 성령님을 간구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부으셔서 하나님의 자리에서 복음을 듣게 하시는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을 쫓아 행하게 하시고 아버 아버지의 모든 율법의 의를 읽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령님 하나님, 우리가 한 사람도 거듭나는 사로 거듭나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그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우리의 심령 깊이 깨닫게 하시고 아버지의 그 영광의 빛 앞에서 우리의 심령이 완전히 깨어지고 부서지고 회개케 하시고 아버지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은혜 우리 모두에게 쏟아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가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그 은혜가 어떠한 은혜인지를 하나님이여 우리로 성령을 쫓아 행하게 하시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기쁨으로 신앙생활할 수 있게 아버지의 마음을 여러분들을 위하여 충고하며 하나님 교회와 하나 되어 이 땅의 참된 교회 되어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에게 놀라우신 은혜를 찬양하며 하나님 우리가 주의 성령님을 간절히 구하며 나 자신 한 사람만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족과 수많은 영혼들을 위하여 아 아버지의 그 성령을 간절히 구합니다.
하나님이야 우리가 모든 이 계심에서 벗어나 주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의 성령이 우리의 심령을 강타하시고 우리가 더 온전히 주의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의 율법을 이루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은혜의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아버 아지 주님의 교회 안에서 하나님 우리가 마음을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주의 성령을 쫓아야하는 놀라운 은혜의 삶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성령님을 구합니다.
성령을 간절히 구하오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깊고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끝이 없습니다.
그 말씀을 우리에게 더욱더욱 날마다 하나님
뚜렷하게 전하여 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가 참으로 복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크십니다.
하나님 우리가 참된 진리를 찾습니다. 이 진리를 우리의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우리가 더욱 강력한 믿음 위에 서서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하나님 성령을 쫓아 율법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 죄에서 해방된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가지고 더욱 온전한 성령의 삶에 하나님 천국에 있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니 함으로 참으로 감사드리고 찬양 드립니다.
하나님 이와 같은 참된 진리가 우리를 진리로 자유롭게 하시고 해방시키시는 아버지의 참된 진리 구원론의 재창립이 하나님 이 나라의 교회와 열방의 교회 가운데 하나님이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위하여 하나님 전하고 계신 이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와 열망 가운데 하나님 속히 전파되게 하시고 하나님 많은 자들이 신자들이 그리고 불신자들이 주의 말씀으로 자유케 됨을 입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이루시는 이 구원의 여정 하나님 받아들이고 믿으며 순종하며 사육해 내고 구원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성령을 부어주옵소서 우리가 더욱 힘있게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교회가 이 진리에 또 든든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사랑하는 교회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그의 꿈 비전 상주하여 가시옵소서 영혼 구원을 향한 내 아버지의 뜻, 하나님 교회의 개혁 속히로 가시옵소서
진심으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주의 성령 하나님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하나님 아버지 더욱더 사랑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아버지 하나며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은혜로 하나님 우리에게 충만하게 충만하게 임하여 주시고 하나님 우리를 더 가까이 인도하여 주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아바 아버지 이 시간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가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가 원합니다. 아버지 우리가 더 간절히 바랍니다.
죄송이고 죄송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명목상에 진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오.
대신 아버지 하나님의 큰 생명의 말씀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자유를 주시길 원하시고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그 말씀대로 하나님 아버지 충만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네 아버지의 그 진리의 말씀을 우리가 붙잡고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기를 소원하시는 아버지 우리에게 더욱더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우리가 더욱더 성령 충만을 구합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내 아버지 우리가 더욱더 성령으로 충만하며 하나님 아버지 죄를 이기며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그 은혜로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쉬웠다고 하나님 아버지 말씀하며 하나님께 고백드리며 하나님 더욱더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 하나님 역사하여주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한국 교회를 보시옵소서 얼마나 많은 자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까?
아버지 하나님 성경적인 그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으므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주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적인 진리가 선포되어지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옵소서.
하나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진리를 듣게 하시고
진리로 자유케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 더 온전한 삶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희망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아프리카 땅에 이 진리가 선포됨으로 하나님 그 땅의 자유와 해방이 하나님 속히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방되고 자유를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프리카 선교팀을 지켜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모든 집회와 모든 세미나 가운데 함께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곳에 선포된 참된 진리로 아마 아버지 목회자들이 깨어나게 하시고 성도들이 깨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케냐 선교 본부의 설립을 주님이 주도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 승적하게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비자 발급이 충족하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마 아버지의 진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웁니다.
그 진리가 반드시 선포되어야 함을 배웁니다. 아버 아버지 우리의 기도가 간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프리카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땅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진리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일하시옵소서 주의 성령님 일하여 주시옵소서 케냐 선교 본부의 설렘이 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사람들을 자유케 하시려고 진리의 말씀을 이렇게 폭포수와 같이 부어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물러 씻어 깨끗게 되게 하시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그 말씀 그대로 우리의 모든 삶이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 그렇게 자유로운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해방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수많은 영혼들에게 아버지 그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구원론을 재정립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교회마다 강단마다 성경대로 가르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성경대로 진리를 듣고 수많은 교회들이 깨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옥으로 죽어가는 크리스찬들, 무이한 크리스찬인 사람들, 아버지 하나님 이 말씀에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진정으로 즐거이 순종할 수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교회를 깨우게 하시고 기독교의 역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이 말씀을 사랑하는 교회에 부어주셨사오니 이 말씀을 듣는 곳곳마다 선포되는 곳곳마다 주의 뜻을 다 이루어 주시옵소서.
특별히 아프리카에 하나님께서 2만 9천 명의 결심자들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그들이 진리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흩어져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교회 부른드리치 교회에 모두가 소속되고 정착되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장성하게 성장하고 자라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일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몸된 교회에 아버지 하나님 그 몸된 교회들이 아프리카 땅에서 일어나게 하시고 모든 전 세계 열방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영광스러운 교회들이 우죽순과 일어나서 아버지의 꿈과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 일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영혼들이 구원되는 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열방이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을 높여드리는 그 놀라운 추수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하여 사랑하는 교회를 주님께서 주목하시고 이 놀라운 꿈과 소원과 그 은혜를 부어주셨사오니 이 일을 통하여 기독교계에 구원론이 재정립되는 놀라운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의 생명은
깊은 감사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넘쳐납니다.
하나님 우리 안의 벅찬 기쁨과 감격이, 구원의 감격이 넘쳐납니다.
하나님 주의 성령님을 온전히 쫓으며 아버지의 주의 성령을 따라 행하며 반드시 율법의 의를 이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 사랑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이 땅의 교회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아버 아버지께서 행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이 땅 교회의 개혁들을 주님 반드시 이루시고 성취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일을 이루고 대한민국과 열망의 교회들을 변화시켜가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 우리가 더 성령으로 충만하고 날마다 성령님을 쫓기를 구하오니 아 아버지 이 시간 결단한 우리 모든 심령 가운데 죄의 성령을 발받듯 쏟아부어주시고 주님의 그 사랑 안에서 우리가 힘있게 전진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 은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하나님 우리의 심령 깊이 마음 가운데 새기고 붙잡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성령님을 힘입어 날마다 놀랍게 기쁨 하는 것이 생활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주의 성령의 우리를 사로잡으시고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대에
하나님의 크신 기대, 하나님의 크신 꿈 하나님 우리가 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대를 우리 안에 넣게 하여 주시 하나님 죄와 사망에서 그 굴레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우리에게 참된 해망을 주신 자유의 길을 주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그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국의 소망이 우리 가운데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성장 성숙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에 대해서도 하나님 한편으로 쏠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구원 잡힌 균형 있는 구원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신뢰하되 하나님 약속하지 아니하도록 그러나 죄와 싸워 하나님 육신의 정욕과 싸워 이기는 자의 삶들, 하나님 이기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정한 구원의 선포를 통하여서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열방의 교인들이 하나님 아버지 살아날 수 있도록 이 말씀이 아버지 하나님의 열방 가운데 선포되어질 수 있도록 주 하나님 아버지 역사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을 알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반드시 이 일을 성취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교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 오시거나 온라인 등록 후 참석하신 분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예배 후 방송 안내를 따라 오른쪽 스크린 앞으로 나오시면 환영과 함께 교회 생활에 대해 친절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신기록 경신 소식입니다. 할렐루야 지난주 25만 7,310명이 출석하여 최고 인원이 경신되었습니다.
제13차 아프리카 선교 소식입니다. 부룬디 부준불라 치유 전도 대성회에 연인원 7만 6천 명이 참석하고 종양들이 즉시 사라지는 등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역대 최다인 2만 6천 명이 결신했습니다.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고 치유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자세한 내용과 나머지 광고는 주보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담임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드려진 예물 위해 축복해 주시고 축도로 주일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아버지 감사드리고 찬송드리고 찬양드리며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올바른 복음과 올바른 진리를 분별하고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드리고 찬송드리고 찬양드립니다.
진리의 성령이신 성령님,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찬송드리고 찬양드립니다.
또한 생명의 성령이신 성령님 우리를 자유케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찬송드리고 찬양드립니다.
죄의 지배에서 자유케 해 주시고 아버지 자유 의지가 회복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찬송드리고 찬양드립니다.
아버지 우리가 더 원합니다. 더 성령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더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더 자유케 되기를 원합니다.
철두철미하게 성령의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율법의 글을 온전히 이루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온전히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통로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과 동행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렸습니다.
주일 헌금, 11조 감사 헌금 각종 예물을 주앞에 올려드렸습니다.
주님 영광 받으시고 높임 받아 주시옵소서. 정성껏 예물드린 성도님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양손에 재물 얻을 능력을 부어주시옵소서 심은 대로 풍성하게 거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브라함에게 부어주셨던 큰 복을 부어주시옵소서.
아버지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열방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될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아버지 그렇게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아버지께서 큰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번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창대케 하여 주시옵소서 손대는 일마다 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큰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아버지 또한 우리들 모두에게 성령을 물 부어 부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성령을 믿습니다. 성령의 자유케 하는 능력을 믿습니다.
성령을 해방시키는 능력을 믿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새 생명의 능력을 믿습니다.
아버지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해서 우리에게 배에서 우리의 영에서 생명수 강물이 넘쳐 흐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생명이 강물처럼 넘쳐 흐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담의 본성과 생명을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삼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도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쉬워질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들에게 성령을 물 붙들어 부어주시옵소서 아버지 또한 모든 질병 가운데 고통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질병을 치유해 주시옵소서 고쳐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될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될지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될지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크고 작은 모든 질병은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될지어다.
강건하게 될지어다 강건하게 될지어다. 모든 악하고 더러운 영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받고 물러갈지어다.
결박받고 불러 갈지어다. 예수의 이름으로 자유케 될지어다.
아버지 성령으로만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은혜로만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임재로만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 일으켜 주시는 거룩한 소원만, 아름다운 소원들만 우리의 심령 속에 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놀라운 승리와 놀라운 변화를 주시옵소서 주님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거룩한 주를 맞이해서 주님을 예배하고 돌아가는 사랑하는 성도들의 심령이 가족과 자녀와 사업이 몸된 교회와 서울시민과 북녘 땅의 굶주린 동포들이 이스라엘과 아프리카와 열방들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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