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트롯 방송을 기다린다
한 시대를 풍미한 트롯가수의 은퇴 시사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한다. 어느 순간 트롯이 한국의 대중음악을 점령했다.
쏘울이니 알앤비니 하는 가요는 특정 세대만 즐기는 희귀 음악이 된 느낌이다. 칼군무에 맞춘 아이돌 음악이나 중얼거리는 듯한 랩은 여전히 어렵다.
지금 공영 민영 할 것 없이 방송이란 방송은 트롯의 광풍이다. 오디션이 있는 곳이면 참여 가수야 당연하지만 이를 보고자 하는 청중이 몰린다.
방송국에 일하는 지인을 통해 입장권을 구하느라 여태껏 소원했던 친구와 연락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그럴 줄 몰랐는데 서운하다느니 고맙다느니 후일담도 풍성하다. 해외 유명한 공연 무대에도 심심찮게 트롯 콘서트가 열린다.
왜일까. 단순한 음악의 한 장르를 넘어 흥 많고 한 많은 한국인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음악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때 아이들은 동요만을 불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대중가요는 정서 발달 상 좋지 않다며 금지 시켰다. 학교에서만 부동자세로 부르는 동요는 딱딱하고 재미가 없었다. 어른들이 부르는 유행가를 알게 모르게 따라 불렀다.
요즘은 나이에 상관없이 트롯 경연에 참가한다. 성인 음악에 기웃거림으로써 인격 형성이나 감성 키우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 어린이를 보면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음악적 재능을 계발하고 세계적 가수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모르지만 어린이를 시청률 높이기나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트로트는 서민의 애환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힘들었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후 현대화와 산업화 시기를 견디게 해준 음악이다.
우리 세대 때는 마을에 몇 대 없던 유성기로 트롯을 접했다. 너도 나도 애수의 소야곡에 동백 아가씨를 읊조렸다. 라디오가 대중화되면서 트롯이 본격적으로 국민의 음악으로 자리를 잡았고 텔레비전이 전국노래자랑이나 가요무대 같은 프로그램으로 세를 넓혔다.
한때 트로트는 밤무대나 나이 많은 이들이 듣고 부르는 값싼 노래로 취급되었다. 일본 엔카에 뿌리를 둔 왜색 가요며 패배 음악이라 배척하기조차 했다.
세상에 원래 어디 것, 누구 것이란 없다. 지구촌 시대다. 우리가 발전시키면 곧 우리 것이다. 마찬가지, 고품격인 삶이라야 의미가 있고 속세 떠난 도인처럼 산다고 남이 부러워할 생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수입 고급주가 넘쳐나지만 한국적 술맛을 아는 사람은 전통적 풍미의 막걸리를 지금도 진정한 술이라며 즐긴다. 대중적이라 해서 고급이니 저급이니 하면서 함부로 가타부타 할 일이 아니다.
음악의 소용이란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표현하는 도구이자 방법의 하나다. 음악은 영혼을 흔드는 바람이며 감성을 깨우는 물결이다.
고급과 저급이 따로 있을 수 없고 고상함과 수수함 구분 또한 무의미하다. 한적하고 멋진 풍광이 펼쳐진 곳에서 막걸리 한 잔에 취해 부르기 편하고 단춤까지 저절로 추어지는 노래는 전통 국악이나 흥겨운 트로트이지 않을까.
예술이란 모름지기 일반 대중과 함께 해야 존재감과 생명력을 갖는다. 시나 수필 같은 문학도 마찬가지다. 혼자 개결하고 고상하다고 해보아야 유리 벽 안에 갇힌 죽은 조형물에 불과하다. 물론 세류에 영합하기 위해 일부러 아래로 내려 갈 필요는 없다.
트롯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처럼 사람도 어우러짐 속에서 익어가야 한다. 품격 있는 티를 낸다고 가즈러워 하는 것은 참으로 세상모르는 허릅숭이나 하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심각하고 무거운 사람보다는 유쾌하면서도 가벼운 듯 진중한 사람이 좋다.
누구든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남아래 서있기를 즐겨 하는 사람 곁에 다가가고 싶어 한다. 있는 척 높은 척하는 사또에겐 아첨꾼만 꼬이고 세상 풍류를 즐기는 선비에게는 멋있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황혼의 언덕길은 사람 냄새가 나야 쓸쓸하지 않다. 트로트의 진화는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의 좌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알려주는 듯하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통한 체중조절도 좋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과욕과 자만의 덩어리를 내려놓고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트롯처럼 남들과 어우러지고 멀어지는 이웃들에게 가직하게 다가가는 삶이 어렵다.
독자가 읽지 않는 글은 글로써 가치가 없다. 벽장 속에 넣어두고 가보(家寶)로나 전할 일이다. 세대에 관계없이 함께 호흡하는 글 한 줄 건지려 도량석하는 스님처럼 일어나지만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도 트롯 방송을 기다린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도전을 좋아하는 나는 음치만 아니면 도전해봤을 텐데요.../ 늘 최선을 다하시는 이선생님의 동굴저음 응원합니다.
ㅋㅋㅋ
저도 국대음치입니다.
음치란 음을 다스리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언제 한번 배틀 신청드려도 될지???
트롯이 대세가 된 지 꽤나 됐어요. 성악가가 트롯으로 전환해 트롯 가수가 되기도 했으니, 고상하게 품격 있게 만 고집하던 시대는 아주 먼 옛날이지요. 현세는 해외 음악인들조차 한류 k-pop 인기에 힘 입어 트롯에까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요. 물이 고이지 말고 흘러야 하듯, MZ 세대에 귀 기울여햐 하듯, 글도 웹의 시대의 곤전도 저만치 밀립니다. 끊임 없이 진화해야 하겠지요. 그래도 화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