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식의 시간 (신명기 5:12~25)
12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떤 시간을 거룩하게 한다. 어떻게 해야 안식일이라는 특정한 시간을 거룩하게 하는 것?
그 뒤에 방법이 나온다. 엿새 동안에 힘써 모든 일을 행하지만 일곱째 날은 아들이나 딸이나 남종 여종이 무조건 안식하게 하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안식과 우리의 안식이 다르다. 바꿔말해 우리가 편히 쉬는 시간이 하나님이 제시하신 안식의 날일 필요 있음? 시험 끝난 날이 안식일. 월급날이 안식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멋대로 안식일을 만들어놓고 지켜라.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안식의 시간이 있는데.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보러가는 시간. 하필 엑소 콘서트 하는 날이 안식일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나의 안식을 누리기 위해 엑소를 보러가야 하나,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정하신 안식을 지키러 교회 와야 되나.
인간의 시간 편집 방식과 하나님의 시간 편집 방식 다르다. 우연히 맞으면 좋지만 다를수도 있다.
하나님 멋대로 편집해서 제시하는 안식일의 패턴과 우리가 지정한 안식 패턴이 맞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모든 인간은 안식일을 지킬 수 없다.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애굽 땅에서 종 되었었다. 다시 말해 애굽에서 살던 시간 패턴을 하나님께서 허물어버리심. 애굽 패턴- 월급날 되면 기쁘고 시험 끝나서 기쁘고 애인 만나는 날 기쁘고. 우리 나름의 시간표를 따라 살아가는 장소가 애굽. 우리가 좋아하는, 원하는. 그녀를 만나기 100미터 전. 100미터 전부터 안식.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안식일 지키는 근거- 종 되었던 땅에서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냄.
여기서 중요한 것. 과연 나는 종 되었던 땅에서 구원 받았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절대 안식일을 지킬 수 없다. 애굽에서 내가 키우던 소가 송아지를 낳아 기쁜 날, 돼지가 우물에 빠져 슬픈 날.. 임의대로 만들어놓은 시간표가 있다.
월급날 월급 때문에 기쁘다. 우리 아들이 서울대 가서 기쁘다. 공무원 시험 붙어 기쁘다. 그러면 공무원 시험 준비하느라 고생했던 날들로부터 안식.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 취업 결혼 출산 모든 문제로부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장소가 애굽. 바꿔말해 종의 시간.
네가 종으로서 종이 누리는 안식을 누릴 것이냐? 아니면 자녀로서 안식을 누릴 것이냐.
종들도 안식한다. 애굽에서의 삶이라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 전체가 종의 안식. 우리는 늘 종의 안식을 기다린다. 회사 나가는 사람들은 퇴근시간을 기다린다.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안식은 다 종의 안식. 다 억지로. 엑소 콘서트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지금 내 삶이 힘드니까. 드라마를 보고싶은 이유. 드라마 볼 때 쉼을 얻으니까
소망팀 공부. 무당을 살려주지 말라. 왜 이스라엘 사회에서 무당이 인기가 있었음? 왜 무당을 찾아갈까? 사는게 힘드니까? 삼재가 언제쯤 끝남? 언제쯤 출근안하고 로또맞아서... 올해는 대운 들겠음? 애굽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안식이 종의 안식. 사는 것 자체가 힘드니까 어쨌든지 삶의 무게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공부하는 아이들도 시험기간에 스트레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추구하는 종의 안식
거기서 우리를 인도했다. 인도해서 광야로. 광야에 가면 자동적으로 안식이 된다. 할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농토가 있어야 농사를.
주일날 상추 뽑고 매실 담그고.. 타고난 일복. 뒷마당 텃밭이 있어야 가꿀 수 있는데. 광야에 들어가면 텃밭은커녕. 자동적으로 안식. 직장이 있어야 일을하는데. 애굽에선 쉬고싶다 하는데 광야에서는 강제적 안식. 거기서 매일 만나가 내려오고 반석을 치면 생수가 나오고.
인생이라는 것은 너희들이 종의 마인드로 사방에 굽신거려가면서 머리 숙여야 먹고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 여호와가 내려주시는 양식으로 먹고산다. 세상에서는 누군가에게 굽신거리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종의 안식.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종의 안식이 따로 있고 하나님 백성의 안식이 따로 있다.
애굽이라는 것은 아무튼 누군가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면 살 수 없다 - 안식할 수 없다. 그런데 광야에 들어가면 그 누군가에게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매일 내리시니까.
로마제국 천 년. 번성의 이유 중 하나. 로마에서는 로마 시민권자들만 로마 병사가 될 수 있다. 시민권자 아닌 사람들은 전쟁에 나갈래도 나갈 수가 없다. 많이 배운 노예든 건장한 노예든 노예를 전쟁에 데리고 나간 적 없다. 종 따위가.. 동맹국과 관계를 맺었을 때에도 유사시에 요구한 조건은 병사를 보내달라는 것. 돈이 아니고. 동일한 전쟁에 같이 피를 흘리는 사람만이 동맹국. 로마 시민권, 로마 군병.
예수를 못박았던 사람은 정통 로마병사 아님. 정통 로마병사는 그런일 하지 않는다. 앞잡이. 로마 시민권자가 내는 유일한 직접세는 전쟁 참여. 전쟁에 나가 고생한 로마병사와 집에서 편히 노는 노예.. 로마 시민들이 봤을 때 진정한 자유인은 로마를 위해 싸우는 자기들. 편히 놀고 있는 노예들은 자유인 아니고 종.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할 자를 부르심. 예수님의 행하심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이 자유를 얻은 하나님 백성의 안식을 누릴 자격이 있다.
우리가 교회 나오는 이유 - 그리스도 예수의 전쟁에 우리를 부르시는 것.
사도바울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받았다. 합류된 이상 사령관인 예수 그리스도의 패턴에 따라 갈 수밖에 없다. 그 분이 쉬면 쉬고 일하시면 일하고. 우리는 종? 아니면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
사도바울이 성경 쓸 때는 로마제국이 뻗어가던 시기. 로마 군병의 입장에서 쓴 것. 노예들은 전쟁에 참여할 권리 없다. 걔들은 노예니까. 그러나 전쟁 나가 피를 흘려도 자유인. 하나님이 부르시는 목적. 예수님의 전쟁의 패턴을 따라 같이 호흡할 자들을 부르심. 그 사람들이 비로소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사람.
교회를 나왔다. 목사의 바람. 그리스도 예수의 전쟁에 함께 참여할 사람. 자리 채우는 사람을 바라는 것 아니고. 모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 예수 이외에 인간적 도리 교회의 성장을 말하는 모든 세력을 공격, 헛된 것임을 지적. 인간과 인간의 친목 도모 아님. 옛 그리스도 전쟁에 참여할 의사없으면 나올 필요 없음. 가정 행복 윤리 도덕 삶의 경건 추구하면 따라가면 됨. 모든 성경을 통해 성경이 말씀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함.
예수가 십자가 사건 말할 때 토를 다는 것은 반역. 베드로가 토 다는 심정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 진심의 이면에 마귀가 들어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사단아 물러가라. 활자로 봤기 때문에 그렇지만 우리 면상에 대놓고 한다면?
사람을 더 많이 모아 의자를 채워야 될 예수님이 무슨 망발?
보기싫은 친구 연락. 다단계의 냄새. 예수님도 다단계처럼 최대한 사람을 끌어모아야? 예수님 따라간다 할적에 한 명당 백명씩 모으면 다이아몬드 회원.....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면 가능한 군중을 많이 끌어모아서 한 방에 예수 능력을 보일 중요한 타이밍. 그러나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 은밀히 데리고 들어와서 절대 말하지 마 단속시킴. 다단계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다 피라미드. 교인 많이 데리고 온 집사가 짱먹음.
기독교가 바울 이후로 뻗어나감?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 공인한 다음부터 교회가 다단계처럼. 로마 공무원 되려면 기본적으로 세례증서 있어야. 그러면 당연히 뻗어나감. 그렇게 뻗어나간 교회가 교회? 그러면서 수많은 누룩 첨가.
지금 우리가 하는 전쟁- 어차피 예수님은 많은 수를 요구하신 게 아니다. 수를 원했으면 총독에게 진리를 설명했을 것. 진리가 뭔지 묻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쌩까버린다. 너와 말할 필요 없다.
종의 안식의 패턴에 익숙한 우리는 애굽에서 종이 그리는 안식. 혼자 있을 때 발 뻗고 쉬는 것. 주인만 안보면 늘어짐. 빨리 시간지나 월급날 오길. 사는게 힘들다. 그 사는게 힘든 걸 통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복음을 증거하심.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너희를 구원했다 하시면서 예수께서 걸어가신 구원의 패턴에... 예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 그 때부터 원치않게 합류. 따라서 안식일 계명은 애굽에서 구원받은 사람만 지킬 수 있다.
나머지는 모른다. 내 안식의 패턴 따로 있는데 굳이 예수 패턴 따를 필요 없다.
군사로 모집된 자는 개인적인 안식의 패턴 따라갈 수 없다. 아침 6시 나팔. 나는 가요들으면서 안식 취해야 되는데 군대가면 부르고싶지 않은 군가를 불러야. 고참쯤 되면 슬슬 개별적 안식을 찾는다. 쫄병때는 없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예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 여정으로 동참시킨다. 그리스도 예수는 자기와 함께할 자기 군사를 모집하신. 아무리 안식일 지켜라 해도 애굽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지킬 수밖에 없다. 주일 안지키면 하나님께서 나를 치실까봐.. 두려움으로 움직이는 건 다 종.
예배를 나왔다, 설교 듣는다 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취지, 여정을 밝히 드러내고 증거 참여하기 위해 모이는 것. 성경 어디를 펼쳐도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 흔적이 녹아있다.
목회의 초점? 모든 것 - 교회 청소 식사 설교 모든 과정 속에서 예수님의 피가 자박자박 스며나오는 교회.. 교회 나와 예배 드리고 졸린 것 참고... 청소하고 밥 하고 돌아갈 때마다 발자국 마다 예수의 피가 드러나야. 우리가 싸워야 될 싸움.
윤리학자 도덕. 교회 안나와도 바깥에서 하고있는 사람 많다. 사택 구입할 때 다운계약서 거부한 정도의 양심. 그 정도 양심 지키려고? 교회 안나와도 할 수 있다. 잡소리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나는 예수 그리스도 못박히신 것 외에는 자랑할 것 없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전쟁에 휘말려서 예수님 전쟁의 패턴을 따라 사도바울의 안식이 정해진다. 나의 달려갈 길과 복음 전도하는 일을 다 마쳤기 때문에 하늘에서 안식이 있다고 말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전파하고 증거하는 시간이 안식하는 시간.
종의 안식은 육체의 안식.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돈이 들어오면 안식.
자유자 그리스도인 안식. 예수님과 한 흐름. 예수님이 가고자 하는 곳에 가고. 따라서 예수의 안식은 아무도 못들어간다. 예수님 본인이 자기의 전쟁에 불러주신 자들만 원치않게 들어감.
이스라엘 광야에 들어가는 순간 원치않게 강제적 안식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수께서 광야로 부르시면 원치않게... 애굽에서의 안식. 취업 결혼 출산.. 육적으로 볼 때는 안식이 없다.
교회는 왜 모인 것? 호남향우회? 세상에서 우리를 주님이 구원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예비하신 안식에 참여하라는 것. 나는 죽고 내 안에 사는 이가 주님. 내 명의가 날아가고 예수님께서 내 삶의 명의 되심. 주체가 바뀐 것.
시4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보너스 월급 곗돈까지 합친 날. 새 아파트에 입주한 날. 원금주고. 내 아들이 사법고시 붙은날. 그런데 주님이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다. 주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동참한 자, 주님의 안식의 기쁨을 맛본 자의 고백.
우리가 바라는 기쁨은 이런 것. 내 육체의 욕망이 이뤄진 날.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인도하심을 따라 전진하다가 쉴 때 쉬고... 자유인의 안식. 종의 안식 아니고. 집에서 편히 노는 노예의 잠보다 전쟁에서 사령관을 따라 종군하며 텐트에서 자는 순간이 달다. 종은 절대 알 수 없는 기쁨. 자유롭게 된 자만 누릴 수 있는 안식.
주님께서 이 만나를 40년간 먹여서 그들로 하여금 강제적 안식을 취하게 하시다가 가나안 땅 들어가면 만나가 안내린다. 그 이유는 그동안 광야에서 40년간 거저 먹었으니까 이제부터 니들이 일해서 살아라?? 만나를 거쳐서 가나안 땅에서 먹게 되는 양식은 겉으로 볼 때는 양식. 겉으로 볼 때는 똑같다. 대통령이 먹는 밥이나. 그리스도밥이나 이방인 밥이나 똑같다. 그러나 애굽, 광야, 가나안의 양식은 다 다르다.
애굽의 양식은 종의 마인드. 자기가 일해서. 내 노동의 결과로 벌어먹는 밥. 애굽에서의 양식은 자기 노동, 자기 의의 결정체
광야에 들어가면 자기 노력으로 살 수 없는 패턴. 40년간 인간의 의를 잘라내는. 너의 노동 머리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가나안 땅에서는 농사를 지어도 애굽에서처럼 자기 힘 자기 노력으로 짓는 게 아니다. 거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 고통, 괴로움 자체를 공감하면서 거두어들이는 추수가 된다.
출근. 애굽에서의 함정 - 아이고 힘들어. 빨리 퇴근하자. 자기 노동밖에 안보인다. 때로는 본인이 애처롭다.
광야에 들어가면 내 노동 내 힘이 아니고 은혜로 산다는 것을 안다. 애굽 - 광야 늘어진 시간 아니다. 우리 삶에서 애굽 광야 겹쳐있다. 성도의 경우에만. 광야에 들어가면 괴로운 직장생활 자체가 나를 대신하여 이 땅에 와서 .. 예수 그리스도의 아픔이 묻어나는 삶으로 바뀐다.
짧은 순간 애굽 광야 가나안 마인드 혼재. 사람들이 왜 이렇게 예배시간 늦을까- 이 자체가 주님이 허락하신 배경... 그 와중에 마지막에 나오는 것 - 이 소녀가 죽은 게 아니라 자는것이라 할 때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님이 무슨 얘기할 때 비웃는다. 미쳤다고. 귀신 들렸다고 한다.
청중이 없게 하신 것은 예수님의 고난을 알게 하시기 위해. 짧은 순간 애굽 광야 가나안의 삶 자체가 순간적으로 겹치면서 마지막에 예수님의 고난이 드러남.
직장 다니며 피곤할 때마다 힘들다 때려치고 싶다.. 마지막에 예수 고난- 그 순간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 그 때 비로소 안식이 주어진다. 내가 뭘 해서가 아니라 예수께서 홀로 완성하신 안식의 혜택
애굽에서 인도해냈기 때문에 안식일 지켜라 말씀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뜻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축복. 애굽의 종으로서 누리는 축복 아니라 괴롭고 힘들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자유인의 안식.. 우리 삶의 발걸음마다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의 피의 흔적.. 우리 평생 예수 증거 예수 자랑 예수 참여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