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초원 뜨거운 사막 내몽고
2005년 제남에서 몽골의 교사들과 함께 중국어 공부를 하였는데,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그들과 친분이 생겨서 몽골에 오면 확실한 가이드를 하겠다는 분이 몇몇 있었는데, 초원과 사막을 빼면 뭐 볼 것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크게 관심 두지 않고 20년이 지났다.
다른 것은 제쳐놓고 뛰어난 경치를 즐기는 편이라서 중국 여행을 자주하여 중국의 32개 성급(省級) 행정구역(23개 성, 5개 자치구, 4개 특별시) 중에 8개를 제외한 24개를 거친 바 있다. 예전부터 존경하던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의 아들이 운영하는 클럽코인여행사가 있는데, 평소 가성비가 뛰어나서 가끔 이용하던 곳이다. 어느 날 메일이 왔는데 내몽고를 여행하는 상품이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아직 가보지 않았던 내몽고 자치구라서 아내에게 같이 가자고 말을 꺼냈더니 그러자고 대답하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인천 공항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새벽 1시가 넘어 내몽고의 후허하오터(呼和浩特) 공항에 도착하였다. 후허하오터는 내몽고 자치구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수부(首府)인데,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도청 소재지와 같다고 생각하면 되는 곳이다. 사실 내몽고에 대한 상식은 거의 없는 상태로 원래는 몽고 땅인데 중국에서 무력으로 합병하였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였고, 사막과 초원만 있는 아주 낙후된 지역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이드 김금화씨에 소개에 의하면 내몽고는 중국 여러 성 중에서도 GNP가 매우 높은 축에 속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희토류, 태양광 전력, 풍력 발전, 기타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인하여 높은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장개석의 국민당과 공산당의 모택동이 싸우는 국공내전에서 일찍 공산당의 편에 섰고, 또 독립하지 않고 중국에 편입되기를 희망하였기 때문에 통일 후에 중국 공산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서 경제, 사회면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한다.
내몽고는 한국의 12배 정도에 해당하는 약 120만 km2의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인구는 약 2,400만명이고 몽골족과 한족이 주로 살고 있지만 오히려 한족이 80% 가까이 다수라고 한다. 나머지 몽골족은 대부분 초원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 수부인 후허하오터는 의미가 푸른 도시(靑城)라는 뜻으로 대략 서울 면적의 28배인 17,200 km2이며 인구는 약 360만 명인데 도시 전체가 해발 1,000m 이상이라고 한다.
첫 관광지는 샹사만 사막(響沙灣沙漠)이었다. 평소에는 사막 관광은 차창으로 보이는 넓은 사막을 보면 될 것인데 하루 종일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넓은 사막에 중국에서는 나름대로 녹화사업(綠化事業)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곳은 사막을 보존하고 관광지로 개발하여 사막 자전거, 낙타 체험, 서핑카, 서커스 공연 등을 하는 AAAAA 풍경구라고 한다.
낙타를 타는 체험을 하고, 서핑카를 타고 난 뒤에 서커스 공연을 관람하였다. 서커스 공연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고도의 기술로 공연을 하였는데 사실은 사막의 풍경, 고도의 공연 보다도 우리들을 감탄시킨 것은 파란 하늘,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하얀 구름이었다. 너무 아름다운 하늘이라서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에 올렸더니 중학교에 다니는 손녀 가현(嘉賢)이가 “사진 합성한 것 아니야? 너무 비현실적인데...”하고 답장이 왔다.
다음날은 초원의 우람타라(烏蘭塔拉) 목장이었다. 먼저 원주민 게르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을 위해서 음악을 연주해 주었고, 몽고말 세 구절을 알려 주었는데 부실한 기억력으로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여기에 적어 둔다.
謝謝 塔拉日哈拉 타라르하라 (감사합니다.)
再見 白衣日太 바이이르타이 (또 만나요)
你好 賽音白努 사이인바이누 (안녕?)
몽고족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도둑이라고 한다. 그들의 전통은 차지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정정당당히 싸워서 쟁취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몰래 훔치는 것은 최고의 악으로 여긴다고 한다. 사진 속에 솥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들이 게르를 비우고 다른 곳으로 여행할 때는 문을 잠그지 않고 저 솥에 음식과 밀크티를 차려 두고 간다고 한다. 만약 지나가는 사람이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으면 이곳에서 자고 먹으라고 배려한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한 사람은 양을 한 마리를 두고 가던지 적당한 댓가를 놓고 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차 체험과 미니 버터카를 타고, 대규모 홍거얼(紅格尔) 마상쇼를 구경하였다. 민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민담을 극화한 것으로 보이는 데 규모도 크고 빠르고 통쾌한 마술이 볼 만 하였다. 관람이 끝나고 몽골전통가옥 게르 숙소로 향하였다.
겉모양은 게르이었으나 방 안은 현대식 호텔과 같았다. 텔레비전이 없어 아쉬웠으나 화장실로 깨끗하고 침대도 정갈하여 아쉬움은 없었다. 저녁 식사에 가이드가 양고기 바비큐를 희망하면 1인당 5만원이 필요하다고 하여 지원하였는데, 양고기 커팅하는 커플로 당첨되었다. 단순히 바비큐 고기를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을 거쳐서 바비큐를 분해하고 나누어 주는 행사였다. 중요한 순간이라 가이드에게 사진을 부탁하였는데 평소 사진을 잘 찍던 가이드가 겨우 2장을 찍었는데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아쉬웠는데, 동행하던 전주의 장영권씨가 동영상까지 촬영하여 이메일로 보내줘서 재미있는 자료가 남게 되었다.
내몽고 여행의 핵심은 밤 하늘의 별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새벽 1시 이후에 보인다고 하여 너무도 피로한 상황에서 눈을 비비며 2시에 밖에 나와 별을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게르촌의 불빛이 밝아서 큰 별 서너개만 보일 뿐이라서 완전히 실망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게르촌에 2~3km를 벗어나서 보면 될 것 같았는데 한밤중에 피로한 몸을 이끌고 가기에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은 후허하오터 시내로 들어와 왕소군(王昭君) 박물관과 산소를 가는 일정이었다. 왕소군은 중국의 4대 미인으로 날아가던 기러기가 미모에 반하여 날개짓을 못하고 떨어졌다는 낙안(落雁) 미인으로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다. 독자를 위하여 왕소군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에서 인용하여 소개한다.
이름은 장. 자는 소군. BC 33년 흉노와의 친화정책을 위해 흉노왕 호한야선우에게 시집가서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뒤 호한야가 죽자 흉노의 풍습에 따라 왕위를 이은 그의 정처(正妻) 아들에게 재가하여 두 딸을 낳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왕소군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화되어 후대에 많이 윤색되어 전해졌다.
〈서경잡기 西京雜記〉에 따르면, 한 원제(元帝)는 화공들에게 궁녀를 그리도록 명하여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불러들였다고 한다. 궁녀들은 모두 화공에게 뇌물을 주고 아름답게 그려달라고 했으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아 추하게 그려졌다. 원제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왕소군을 호한야에게 보내기로 결정한 후 그녀의 뛰어난 미모를 알고 나서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외국과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어 그녀를 보내고는 화공들을 죽였다고 한다. 또 〈후한서 後漢書〉·〈금조 琴操〉에는 왕소군이 몇 년 동안 황제의 관심을 받지 못하여 자진해서 흉노의 왕에게 시집갔으며, 그녀가 호한야의 아들에게 재가하게 되었을 때 독을 마시고 자살했다고 되어 있다.
왕소군에 대하여는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고 보여진다. 하나는 절세의 미인이 불행하게도 흉노에게 시집간 비운의 여인으로 보는 것과 또 하나는 국가간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시각이다. 4대 미인 답지 않게 둔탁한 모습의 소군박물원(昭君博物院)을 지나서 묘를 찾아 가다보니 시비(詩碑)가 보여서 사진을 촬영하였다. 그 내용인 즉 북송(北宋) 시대의 정치가이자 문학가인 왕안석이 왕소군에 대한 여러 문인들의 관점을 비판하며 왕소군의 애국적인 업적을 찬양한 내용이다.
昭君自有千秋在 소군의 업적은 천추에 남아 있으니
胡漢和親識見高 오랑캐와 한나라의 화친에 식견이 높도다
词客各抒胸臆懑 문인들은 각자가 가슴 속의 번민을 펴지만
舞文弄墨总徒劳 글이나 붓을 놀리는 것은 모두 수고일 뿐이다.
소군박물원 관람을 마치고 청나라 옹정황제 때 건립한 오탑사(五塔寺)를 관람하고 내몽고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인데 내몽고 지역의 유적, 문물, 문화 등에 대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데, 중국 공산당 정부와 내몽고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강조하는 내용이 많은 것으로 보여진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복성자조고육(福成自助烤肉)’이라는 뷔페 식당에 들었다. 엄청나게 넓은 실내에 없는 것이 없는 육해공과 각종 채소, 과일을 무한 리필로 먹는 곳이었다. 실컷 양을 채우고 도대체 1사람당 얼마인가를 물어보니 종업원이 100원 조금 넘는다고 한다. 우리 한국돈으로 2~3만원이니 중국의 음식값이 싸기는 한 모양이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전보다 중국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한국 관광객들이 말하는데 실상은 중국 물가는 오르지 않았지만 한국 돈의 가치가 하락되어 환율 문제로 인하여 중국 물가가 올랐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가이드들이 참깨 5kg을 45,000원에 팔았는데 오늘은 50,000원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현금 살포와 같은 무책임한 통화 정책이 받을 때는 좋아 보이지만 나도 모르게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귀국하는 비행기가 새벽 1시 45분이라서 가이드가 지혜롭게 식후에 아라타한 광장과 연결된 옛거리를 관람하였는데, 찬란한 야경이 아름답고 광장 곳곳에 여러 팀이 스포츠 댄스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20년 전 중국의 여러 공원 광장에서는 태극권을 하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최근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각종 기념품 가게가 많이 있는데 다른 관광지 보다도 많이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같이 율시 한 수로 끝을 맺는다.
蒙古關心漸益時 몽고에 관심이 점점 늘어나는 때에
呼和浩特與妻之 후허하오터에 아내와 함께 여행했네
草原廣闊眞心篤 초원의 광활함에 참된 마음을 다지고
沙漠炎蒸根氣期 사막의 찌는 더위에 참는 힘을 기약하네
玉骨昭君徒土在 왕소군의 옥골은 한갓 흙으로 존재하는데
雄豪大汗豈方持 징기스칸의 호걸스러움은 어느 곳에 있는가?
白雲碧落無雙美 흰 구름 푸른 하늘 둘도 없는 아름다움은
不忘長長此旅思 오래도록 이 여행의 즐거움을 잊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