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8.9.18.(화) 오후
장소 : 희망 단톡방
시간 : 15 : 20분
강사 : 박건규(건후)
[제목] : 박작가 철학 북 콘서트.
"이것이 인생이다"
박작가의 북 철학 콘써트-----
“ 이것이 인생이다” 첫 시간입니다.
[본 내용은 작가의 개인사상과 철학입니다.
모든 분이 동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용중 자신과 맞지 않아 이질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먼저 양해를 구하고 콘써트를 시작합니다.
본 콘써트의 목적은 결국은 글 잘쓰기 위한 기본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 이것이 인생이다”
좀 신파적이면서 무거운 주제입니다.
제가 영감을 얻어 정한 것인데 잘 풀어 갈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본 주제를 가지고 북 콘써트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두 가지 선물 중 하나 글을 잘 쓰기 위해서입니다.
말 잘하는 사람은 많아도 글 잘 쓰는 사람은 많지않습니다.
그것은 신이 준 하나의 선물 포장을 뜯지않은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이 선물보따리를 뜯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생각지도 않았던 인생의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말은 잘 하는데 글을 잘 못쓰는 이유는 왜일까요?
첫째 안해봤기 때문입니다.
둘째 글과 말의 구사하는 방법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자꾸 해보고 구사하는 공식을 알기만 하면 누구나 말하는 것처럼 글을 잘 쓸 수 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막 생각하고 한참있다 쓰지 않습니다.
나오는대로 막 씁니다.
그래도 멋진 말이 됩니다.
어떤 강사가 원고를 읽으면서 강의를 한다면,
그 강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거의다 졸아 떨어질 것입니다.
목사가 설교할 때 원고를 힐끔힐끔 보면서 교과서 읽듯이 읽어 내려가면 그 교회에서 은혜 받았다는 신도가 몇사람이나 있을까요?
남을 설득시키는 언어는 감정이 풍부한 언어입니다.
제가 아는 영업 사원이 있는데 판매왕,
영업의 신이라 불리웁니다.
그가 멘트 하는 것을 보면 상대가 빠져 나갈 틈도 없이 열정적으로 브리핑 합니다.
빠져 들어가게하는 맛깔난 말솜씨에 카드를 내놓게 됩니다.
이것은 말이 정확하고 설득력 있으면서 감정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잠깐 생각하고 하거나 원고 읽듯이 하지 않습니다.
말이나 글이나 내가 생각하는 것을 상당에게 전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글이냐 소리냐 차이 뿐입니다.
상대에게 여러분은 글이 훈련 되지않았았기 때문에 버벅 거리는 것일 뿐이죠.
여러분의 글이 버벅 거림없이 생각을 글로 펼쳐 나갈 수 있다면 엄청난 일들이 일어납니다.
신이 준 말과 글 두가지 선물을 다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이 아닌 글로써 여러분과 콘써트를 합니다.
콘서트 (concert)란 연주회를 말합니다.
음악이란 언어로 사람들은 감동을 하고 마음의 치유와 풍요로움을 얻습니다.
자 지금부터 글로써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음악을 연주하겠습니다.
화가 벼리영님의 생동감 있는 색감처럼,
이강복님의 아름다운 필치로 그려낸 옛사랑처럼 말이죠.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인에 날 생자인 인생(人生)! 사람의 삶을 말합니다.
이것이 인생이다 라고 딱 정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말하겠습니까?
나이가 젊은 분도 있을 것이고 오십 육십이 넘어 인생에대해 조금 맛을 아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 대하 딱 뭐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
짐승과 같지 않고 각기 다른 삶을 살아 왔기 때문에 가치관과 기준이 다릅니다.
북한 사람이 다르고 일본 사람이 다릅니다.
서양인이 다르고 동양인이 다릅니다.
종교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철학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연구만 했지 정의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비롯한 공자 맹자도 당시의 상황에 따라 연구하고 설(設)만 무성했습니다.
우리는 자기 입맛에 맞는 철학을 받아 드릴 뿐입니다.
저는 인간과 인생을 생각 할 때 아주 원론적인 것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한(란)?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나온사람 한번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한분도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던져진 내 인생은 내의도와 전혀 상관이 없이 나온 것입니다.
잘되면 자기 탓 못되면 조상탓 이란 말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거지로 난 사람이 있고 재벌의 아들로 난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이렇기 때문에 인생에 대해 운명론이 설득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운명론을 믿지 않습니다.
예전에 불교미술화가 생활을 할 때 만나는 사람이 스님과 무당들이었습니다.
철학가도 있구요.
환경 자체가 운명론과 윤회론속에서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깊은 기독교 신앙을 체험하고 살아온지 삼십년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운명론을 믿을 수 밖에 없더군요.
이것은 도교나 불교 무교의 운명론이 아닙니다.
기독교적 운명론입니다.
숙명이라고도 하고 필연이라고도 합니다.
그 안에 들어가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더군요.
아무리 노력해도 내 뜻대로 인생이 살아주지 않는단 말입니다.
세상관점에서는 신념과 의지 노력이고 신앙적 관점에서는 믿음이겠죠.
이런 것을 많이 해봤습니다.
적잖은 인생을 돌아보면 내 뜻대로 된 것이 인생에 있어 과연 몇프로나 될까요?
여러분도 동감이 되리라 봅니다.
나이가 들면 열정과 패기보다 관조하고 통찰하는데 더 시간을 많이 할애합니다.
젊은날 용광로처럼 끓어 올으려 튀어 봤지만 생은 내가 원하는데로 그림을 그려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복있는 사람의 인생을 몇가지로 분류해 봤습니다.
첫째 부모 잘 만난 사람,
둘째 평생 짝을 잘 만난 사람,
셋째 자식 잘 만난 사람입니다.
그 외 친구 잘 만난 사람이 있고 사업 파트너 잘만난 사람도 있습니다만 크게 세가지로 나눴습니다
사실 부모만 잘 만나면 인생 90%는 재미나게 살다 갑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인생은 부모가 평범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하고 아이낳고 부모가 되었을 때 아버지 어머니가 가실 때 쯤 되면 기억 되는 것은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뼈품을 팔았던 어머니 아버지 모습입니다.
부모 하면 “희생”이라는 연상이 옵니다.
부모가 고생한 것처럼 나도 고생했습니다.
그 기억은 즐거운 기억이 아닙니다.
풍요롭고 재미난 인생이 아니란 뜻이죠.
저는 옛날 초등학교 들어가기 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폐결핵으로 가셨는데 지금은 쉽게 고칠 수 있는 병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깊은 기침만 연신하시고 짙은 가래를 뱉어 내셨습니다.
거동을 못하시니 큰 소리로 아들딸들을 불렀습니다.
느릿하거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긴 장대를 휘저으며 매를 때리셨는데 힘이 없어보였습니다.
아버지의 추억은 그것뿐입니다.
어머니와 누님들을 통해 들은 것은 무척 똑똑 하시다.
학벌은 낮지만 모르는 것 없으셔서 동네 감초 역할을 하셨다 합니다.
그러나 말년에 들어 술과 주색 담배로 인해 몸이 망가진 듯 싶습니다.
말년이라봤자 54세 나이게 가셨으니 요즘으로 치면 청년나이죠.
아버지를 잃고 과부가 된 어머니는 홀로 살아 남기 위해 가산을 팔아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아이들 특히 첫째 아들에 대한 각별한 교육열이 높았습니다.
교육을 위해 서울에 온 것이죠.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올라온 왕십리 시장 포장마차는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이 먹고 자는 난민촌과 같은 공간 이었습니다.
비니루로 얽기 설기 엮은 포장마차 공간 뒤쪽에 쪽방을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살다 나중 작은 방을 얻어 이사를 했지만,
서울 가난의 역사는 아주 오래동안 지속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던 어머니가 신이 내렸습니다.
내림굿을 하고 초보 무당으로 개업을 시작했죠.
무당도 잘 나가면 돈을 엄청 법니다.
어머니는 그렇지 못한 무녀였습니다.
아주 가난한 무녀로써 푼돈을 받고 점을 쳐주곤 했습니다.
이런 굴곡진 인생을 사시다 말년에 접어 들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날마다 찬송과 성경을 보시다 90세에 하늘로 가셨습니다.
제 위에 누나 두분과 형님이 계시지만, 유난히 어머니는 저를 좋아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성격이 맞았던 것이죠.
욕심이 없고 이타적인 성격인 듯 싶었습니다.
그런 저와 평생 같이 살다 가셨습니다.
말년에 천식으로 무척 고생하셨는데, 그 아픈 와중에서도 저를 지극히 위해줬습니다.
제가 글을 쓴다 뭐한다 하면서 돈도 안되는 일을 할 때 어머님는 쌈지돈을 꺼내시며 힘들때마다 구원 투수가 되어 주셨죠.
임종하시고 영안실로 이동할 때 그 모습은 마치 천사가 있다면 이렇게 평안한 모습이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숨을 멈춘 차가운 어머님의 손과 머릿결 이마 뺨을 쓰다듬으면서 이별 인사를 했습니다.
짧지 않은 90평생의 인생을 고생과 얼룩 근심과 걱정속에서 있다 가셨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별반 다를 것이 없지않을 까요?
흙수저의 인생, 민초들의 인생, 뭔가 열심을 다하지만 별로 남기는 것 없이 힘만 쓰다 가는 인생!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 모든 영향은 거의 위로부터 왔습니다.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깨달아 개천에서 용날 정도의 성공을 하는 것은 드라마에서 많이 본 것이지 주변에는 별로 없습니다.
지금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런 선상에 있다면 너무나 억울하지 않습니까?
저는 깊은 심연의 묵상 속에서 이런 인생을 깨고 나올 방법에 대해 정리해봤습니다.
참된 인생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인생은 무엇인가?
인생에 대한 정리를 해야만 했습니다.
왜냐?
그대로 가기는 너무 억울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치있고 보람있으며 영원한 행복감을 이어 줄수 있는 인생 정립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차분히 천천히 여러분과 함께 인생에 대한 것을 정리해보는 북 콘써트 인생 철학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제가 쓴 책 중(출간했슴) 자기 인생 찾아 먹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인생을 찾아 먹지 못하고 남의 인생 들러리하다가 갑니다.
자기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자기 인생을 몇퍼센트나 찿아 드십니까?
아침부터 돈을 위해 뛰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뜁니다.
무엇을 위해 뜁니까?
결국은 자기 인생을 위해 뛰어야 합니다.
극단적이 개인주의 이기주의라 할 지 몰라도 자기 인생을 찾은 자는 남의 인생도 찾아 줄 줄 압니다.
우리는 이타적인 말이란 용어를 많이 들어 봤습니다
저는 살아 오면서 이타적인 말보다 이기주의 적이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남을 피해주고 빼앗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일을 하다보니 남이 그렇게 평가하더군요.
사람은 각자 자기 일이 있습니다.
화가 벼리영님의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일입니다.
글과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다른데가서 있으면 이타적으로 보일지 모르나 자기인생을 포기한 것입니다.
제가 다른것은 다 버렸어도 오직 하나 글쓰는 것만은 버리지 않은 것은 이것이 내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침부터 하는 일이 무엇때문에 일을 하십니까?
대부분 그것을 보면 자기일 보다 돈이나 다른 사람(가족포함)해서 남을 위한 이타적인 일을 할 것입니다.
이타적인 것은 어쩌면 집단 이기주의의 덫에 걸렸다 봅니다.
집단 이기주의 덫에서 벗어나야 자기 인생을 찾아 먹습니다.
이런 정리를 하고 돈도 버시고 일도하시고 사람도 만나면 내 인생을 찾고 족적을 남깁니다.
내 인생을 찾는 일은 어쩌면 극단적인 이기주의라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유명한이들은 거의 극단적인 이기주의 자들입니다.
예수,석가,공자, 베토벤, 소크라테스 어느 한분 할 것 없이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가족이란 공동체를 버렸습니다.
자기의 철학과 사상 영성을 위해 주변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이렇게 인생이란 보기에 따라 판이 달라집니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잘 정리해야 내인생을 찾아 먹습니다.
제가 제안 하는 것은, 주변사람 가족을 희생시키지도 않고 자기일을 하는 인생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데 오십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저는 53세에 철이 들었다고 합니다.
좀 복잡한 논리지만 이것을 분석해 제대로 인생을 살아보지 않으시렵니까?
오늘은 여기까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ㅡ박건규 작가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