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 운동 / 박병상
광우병이 매개한다고 알려진 변형 클로이츠펠트 야곱병으로 유럽인들의 육류 소비량이 급감하고 채식주의자가 급증한다고 한다. 맥도널드 햄버거의 매출고도 크게 감소했다. 맥도날드 햄버거의 해로움을 입증한 영화 <슈퍼사이즈 미>의 개봉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채식주의가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활동력 있는 시민운동으로 성숙하지 못한다. 동물 유전자까지 주입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세계 시장에 선보인 마당에 아직도 인터넷의 동호회 단계에 안주하고 있다. 채식주의 운동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양식 채식주의운동이 우리 사회에 거부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채식이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넘어 후손의 생명권을 위한 현 세대의 시민운동으로 성숙하기 위해 채식주의운동은 우리 실정에 맞는 운동의 논리와 가치 공유를 위한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시민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영어로 채식주의, 즉 베지터리어니즘(vegetarianism)은 ‘채소’, 즉 베지터블(vegetable)이 어원이 아니라 ‘온전한’과 ‘건강한’을 의미하는 라틴어 ‘베게투스(Vegetus)’임을 채식주의자들은 주장한다. 2000년 1월 9일,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국제 채식주의자 모임’에서, 참가자들은 “새로운 천년 시대는 고기 없는 채식 밀레니엄이어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채식 천년 선언’을 했다. “육식은 인간에 동물성을 길러 공격적으로 만들고 지구와 끊이지 않는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면서 “광범위하게 퍼지는 기아와 질병,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채식 중심의 식생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천명했다.
현대 축산은 목가적인 사육이 아니다. 사료는 물론 요구하는 물도 많아 쇠고기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데 약 20만 리터의 물이 허비될 정도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물의 절반 정도가 가축 사육에 들어가며, 이로 인해 텍사스 북부의 오갈랄라 대수층은 고갈되고 있다. 1900년대 이후 중앙아메리카 숲의 25퍼센트 이상이 목초지를 위해 벌채되었고 중앙아메리카 전체 농토의 3분의 2를 가축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화석연료 4만4천 킬로칼로리가 1킬로그램의 고기로 바뀔 사료용 농작물 생산 과정에서 낭비될 뿐이 아니다. 축산단지를 위해 삼림과 초지를 태우고 사료와 가축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가축들은 생산되는 곡물의 3분의 1을 먹어치운다. 채식주의자들은 칼로리 상 지금도 남아도는 곡물을 가축이 거의 허비하도록 하는 육류소비 농업정책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 채식으로 제3세계의 자급자족을 유도하고 적정한 경작을 유지하여 생태계를 보전할 계기를 마련하는 편이 후손에게 더욱 지속가능하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료 수입량만 줄여도 식량 자급 규모가 지금보다 크게 개선될 것이 틀림없다.
육식은 심혈관과 뇌출혈 질환과 관계가 깊다. 흥미롭게도 미국의 한 채식주의자는 625 사변 당시의 한국군과 미군 사상자의 혈관을 비교한다. 나이가 비슷한 두 민족의 젊은이 혈관을 조사해보니 한국군의 혈관은 깨끗했는데 미군의 혈관은 이미 절반 정도 막혀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한국 시민들이 육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 차이는 사라졌다고 전하는 그 채식주의자는 인간과 육식동물의 창자를 비교한다. 포화지방산이 많은 육식에 적합한 육식동물은 연통형인데 반해 주름진 대장을 갖는 사람은 천천히 이동하는 음식 소화에 적당하다는 것이다.
국제 채식주의자 모임은 110년의 역사를 넘어섰다. 산업혁명에 이은 일부 계층의 소득증가는 육식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가축에 대한 착취로 연결돼 이를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육식에 대한 도덕적 반대가 110년 전에 표출된 것이다. 18세기 말 인도주의 정신이 고조되면서 동물 복지 개념이 강화되고, 이를 계기로 유럽에서 채식주의자 협회(Vegetarianism Society)가 설립되었다. 이에 반해 우리 채식주의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1980년대 경제 성장 이후 소비가 늘어나면서 성인병과 퇴행성 질환이 증가했고, 육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리라.
1990년대 중반부터 활동하고 나선 우리의 채식주의운동은 컴퓨터 통신을 중심으로 모였고 이후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1998년 하이텔 통신망의 ‘정신과학동호회’ 회원 일부가 별도의 채식 소모임을 만들었고 온라인 활동에서 벗어나 거리 캠페인을 벌이는 직접 행동도 병행한 것이다. 회원이 늘어나면서 ‘세계 NGO’대회에 참석하고 ‘국제 채식주의자 모임’ 가입하며 채식주의운동의 세계적인 추이와 정보를 확보하고, 채식주의 행동요강을 해외에서 지원받으며 기틀을 다질 수 있었던 우리의 채식주의자들은 중앙일간지와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사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가 주목하면서 시민사회에 채식의 가치를 알리는데 적지 않은 노력을 해왔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의 공식적인 ‘도살의 날’인 추수감사절 식탁에 백악관은 채식주의자인 대통령의 외동딸 첼시아를 위해 “두부로 만든 칠면조”를 특별히 준비했다는 미국 언론 보도를 소개하는 우리의 채식주의운동가는 젊은이에게 인기가 많은 미국의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채식주의자임을 밝히고 있다. 채컨聆퓽湄湧?신체나 체격 조건이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올림픽 육상 단거리 4연패의 신화를 세운 미국의 칼 루이스와 400미터 허들의 영웅인 에드윈 모제스를 단골로 내세우고 있으며 슈바이처 박사, ‘월든’의 저자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인도의 간디, 청백리의 표상인 태국의 잠롱 전 방콕 시장도 채식주의자 중의 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2000년 ‘세계 채식인의 날’을 맞아하여 “주위 분들에게 이날만큼은 동물 시체를 먹지 말고 채식을 하자고 권합시다.”라는 슬로건으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 퍼포먼스를 벌인 채식주의운동가들은 환경단체, 명상단체, 동물보호단체들과 연대하여 ‘생명의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같은 해 10월, 명동 맥도널드 앞에서 야채버거를 홍보한 채식주의운동가들은 11월 삼육대학에서 채식 시식회 겸 성인병과 채식에 대한 발표해 냉담한 시민들에게 채식주의운동의 가치를 인식시키려 애를 썼다.
이듬해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환경단체 신년 하례식에 참가한 채식주의 운동가는 환경운동의 한 분야로서 채식주의운동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며 참여자들에게 호소했고, 한 주부는 채식주의자와 이웃들을 집으로 초대, 채식 시식과 토론을 정례화하며 채식 보급을 위한 행동을 실천해왔다. 하지만 요즘, 그런 움직임은 세간에서 더는 감지되지 않는다. 시들해진 것일까. 채식주의 운동가들의 열정으로 채식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매우 우호적으로 바뀌었지만 광우병과 구제역에 대한 경각심이 식어가면서 채식주의로 가던 발길이 식상해하거나 소원해진 것일까.
서울 강남의 채식전문식당 주인은 “지난 1996년 문을 열 당시만 해도 하루 손님은 20명을 넘기가 힘들었”지만 “점점 손님이 늘어나 최근에는 하루 100명 이상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적자를 면치 못했던 서울의 다른 채식식당도 1990년대 들어서면서 손님이 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돌잔치, 회갑잔치를 하는 손님들이 생겨난다고 귀띔한다.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에 많은 채식식당과 뷔페 체인점이 생기고 모두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많은 고객들이 채식식당을 찾아가는 가운데 채식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드물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늘어가는데.
윤리와 사상적 이유로 엄격한 채식에 접근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 때문에 채식을 한다. 현대의학이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하는 암이나 당뇨병 따위의 난치병들을 식생활을 통해 예방하고 치료하려는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눈에 띄는 한 흐름은 환경운동 차원의 채식이다. 유기농산물 나누기와 공동체 운동에서 논리를 지원받는 환경운동 차원의 채식은 채식주의운동이라기보다 ‘채식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많은 회원을 가진 한살림과 생활협동조합은 회원들에게 육식과 환경오염의 관계를 설명하고 채식 위주의 식단을 권하고 있다.
한 채식주의운동단체는 ‘새 천년 생명채식 선언문’을 통해 “채식을 함으로써 드러나는 유익은 생명존중, 기아해결, 환경보호, 건강증진, 생명사회”라는 신념을 내세우며 채식주의운동을 추구하겠다고 그 실천의지를 천명한다. 물론, 이와 같은 방향설정은 매우 바람직하다. 시민운동으로 전개하는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감지되지 못하고 있지만 채식주의운동이 시민운동으로 정착하기 위해서 동호회 수준의 활동에서 탈피하고 우선 기존 시민단체와 연대하는 운동을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시민들에게 채식주의운동은 살갑지 않다. 경직되게 느끼는 채식주의를 앞세우기보다 환경과 생명의 위한 실천적 가치로 채식의 중요성을 시민사회에 인식시키는 운동이 현 단계에서 효과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제 채식주의자 모임이 추산하는 채식주의자는 세계 인구의 3퍼센트 정도였는데, 광우병 파동 이후 영국에서만 1,700만 명이 고기를 줄이거나 끊었다고 한다. 우리 채식주의운동도 회원 수를 늘이고 있지만 많은 시민들은 운동 차원보다 단순히 고기 먹기를 자제하고 싶어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불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인들은 종교적 신념으로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멀지 않았던 과거, 많은 시민들은 거의 채식에 의존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채식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채식은 그만큼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젊고 적극적인 채식주의 운동가들의 열정이 남아 있는 한, 아직 시작이지만 희망적이다. 다음 세대를 이어갈 후손들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채식을 새로운 시민운동 차원으로 전개할 여건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한 연대활동부터 환경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과 활발히 전개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