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화마을~345.8m봉~지경재~청로굴
죽령터널을 들어서기 전까지는 비록 흐린 날씨였다고는 하지만
먼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으며, 온 산하와 들녘은 첫눈으로 희뿌연
모습을 띄고 있었다.그러나 터널을 빠져나오자 사위는 자욱한 안개로
잔뜩 뒤덮혀 천지사방의 삼라만상이 안개 속으로 다 사라져 버린거다.
멀쩡하기만 하던 시력이 그 틈에 반 당달봉사나 다름없는 꼴이 된 게
아닌가.불편스럽고 답답한 거야 참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가뜩이나 희미하고 심지어는 사라진 지맥의 산길을 찾아 애면글면
길을 물어야 하는 지맥의 산꾼들에게는 고충을 예고하는 신호가
아닐 수 없다.참가한 산우들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30여 분 지체된 뒤
시작이 되는 산행의 들머리는 대공리 척화마을이다(11시).
두 주 전, 첫 구간 하산 때의 마을 주변의 사과 과수원은 수확이 덜 된
과수밭이 태반이나 되었었는데 그동안에 사과 수확은 모두 끝이나고
사과나무에는 상품성이 떨어진 덜 된 열매들만이 이따금 눈에 띈다.
마을을 빠져나와 골짜기 윗 쪽으로 구불거리는 양회임도를 따르면
커다란 물탱크가 자리하고 있는 곳 뒤편으로 작은 저수지가 있는데
그 저수지 둑을 따르면 지맥의 숲길이 기다린다.
저수지도 숨을 죽이고 있으며, 희끗희끗한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소나무들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움직임도 없으며 뒤척임도
없이 숨을 머금은 채 미동을 않고 있다.후둑후둑 빗낱이 드는듯이
소나무 가지에서는 이따금 정적을 깨는 물방울들이 떨어지곤 한다.
내린 눈이 녹아서 수북하게 쌓여있는 산길의 낙엽들은 번질번질
희번덕거린다.산길을 잇다보면 자주 부대끼는 것은 작은 나무들이나
그들의 나무가지이고 넝쿨식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들 모두가 크고작은 눈덩이들을 온몸 이곳저곳에 매달고 있는데,
툭 건드리면 눈덩이들은 아래로 힘없이 떨어지곤 한다.
그 눈덩이들이 맨 바닥에 그냥 떨어지면 아무 상관이 없는데, 이것이
산객의 목덜미나 어깨 위로 떨어지면 기겁을 하거나 옷이 이내 물에
젖어서 산행이 끝이 날 때까지 눅눅한 불쾌감을 가져다 준다.
이런 경우에 자주 노출되는 산꾼들은 거개가 선머리를 차지하는
선두 산객들이다.이슬이 잦은 계절에는 이슬받이가 되어야 하며
거미줄이 많은 때에는 울며겨자 먹기로 거미줄걷이까지 맡아야 한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동절기에는 눈받이 신세까지 짊어져야 하니
선머리는 준족의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다가 하나 더 보탠다면 적설기의 산행 때 길을 잘못 들었거나
알바를 맞았을 때에도 그놈의 발자국때문에 뒤따르던 후미들의
지청구 대상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어쨋든,들머리를 들어선 뒤 처음으로 올라선 멧부리,해발 345.8m의
무명봉,백두사랑 산악회가 달아놓은 표식이 신갈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아직도 마른 가지를 지악스럽게 붙잡고 있는 신갈나무 잎사귀,
그 위에 내려앉은 눈덩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진다.멧부리의 외양은 접시를 엎어 놓은 것처럼 밋밋하고 펑퍼짐한
행색이다.그 멧부리를 뒤로하면 숲길은 소나무 숲길이다.
뿌연 안개가 숲 속 켜켜이 유령처럼 스며들어와 지맥의 산꾼들
방향감각 기관을 흔들어 놓는다.
흰 눈을 듬뿍 뒤집어 쓴 한 기의 묘지를 지나면 또 다른 두 기의
묘지를 만나게 되는데 봉분 두 개가 심하게 파 헤쳐져 있는거다.
산짐승의 행태로 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는 상태인데 사람이
저지른 거라면 엉성하게 치뤄진 이장(移葬)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상석은 원래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건데
산짐승의 짓이 틀림없다 하겠다.
완만한 오르막을 올려치면 언덕 같은 멧부리에 묘 1기가 노송들
그늘아래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좌측 9시 방향의 가파른
내리막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내려서는 길에 가선대부 김가의 묘지를 가로지르게 되고,
마치 상고대처럼 눈이 달라붙어 있는 커다란 나목을 칩떠보며
그 곁을 지나면 곧바로 눈덩이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소나무
밑을 어쩔 수 없이 지나가게 된다.구가묘를 가로지르며 오른 멧부리,
삼각점이 옹골차게 박혀있는 해발 286.6m의 무명봉이다.
완만하게 내려섰다가 다시 올려친 멧부리는 잡목과 덤불이 무성하고
여기저기 베어져 나뒹구는 나무 토막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두어 차례 묘를 지나고 소나무 숲을 빠져 나오면 또 하나의 묘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곧장 비탈을 내리쳐서 소나무 숲으로
들어선다.그리고 올려친 멧부리는 밋밋한 봉우리의 행색인데
온갖의 수목들과 덤불 그리고 넝쿨들이 옥신각신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하다.여기저기 산길 주변으로 잘라진 나무토막들이 널려있는
산길을 올려치면 소나무와 신갈나무 등이 자리잡은 멧부리이고
그곳을 내려서면 생뚱맞게 산길은 수렛길로 내려서게 된다.
그 수렛길을 곧장 따르면 이내 시야가 툭 터진다.우측으로 온통
벌목지대가 펼쳐진거다.산길은 벌목지역과 숲 사이 언저리를 따라
이어진다.그렇게 멧부리를 넘어내리고, 너른 공터 한복판의 작은
봉분이 자리한 묘역을 거푸 벗어나면 수렛길이 다시 기다린다.
그리고 수렛길이 다하면 또 다른 네 기의 묘지가 층하를 두고 자리한
묘역의 곁을 따르게 되며 그 길은 곧바로 2차선 차도로 산객을
안내한다.지경재다.
지경재! 의성군 가음면과 군위군 의흥면을 잇는 2차선 지방도
'산성가음로'의 언덕배기다.지맥의 산길은 이 차도를 곧장 가로
지르면 임도가 나오는데 그 임도를 내처 따르면 된다.
그런데 그 어귀 공터에서 중화참을 치르자고 한다.듣던 중 반가운
이야기 아닌가,중화참도 없이 내처 남은 일정을 치를 줄 알았는데.
요기라고 해보았자 다들 간편식에도 못미치는 얼요기에 불과한
것이지만 어쨋든 허기를 메우려면 속은 어느 정도 채워주어야
남은 일정에 무리가 없을 터이다.과일 몇 조각에 작은 봉지의
우유 하나 그리고 물 한 모금 마신 거 밖에는 없는 데,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벌써 벌에 쐰 무엇처럼 온데간데 없고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게 아닌가.
모든 간편식을 액체화하여 한 모금 훌쩍 마시고 만 겨 뭐여?
서둘러 배낭을 걸머지고 뒤를 부리나케 따른다.곧장 따르던
수렛길은 삼거리를 내놓는데 이곳에서는 좌측의 길을 따라야 하고,
이 길을 쭈욱 따르다가 길 오른쪽 숲을 드는 지맥의 산길을 물어야
한다.흔적도 없는 산길을 GPS의 도움을 받아가며 헤쳐 오르면
묘 1기가 나오면서 산길은 좀 더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그 산길도 이내 거뭇한 물때가 덕지덕지한 양회임도로 내려서게
되는데.이 임도에서도 좌측으로 따르다가 우측의 숲으로 붙어야
한다.
영천이가의 묘를 지나고 소나무가 잔뜩 우거진 숲길을 올려치면
나목(裸木)의 대부등만한 덩치의 활엽수 하나가 소나무 숲으로
포위된 채 우뚝 솟아있는 밋밋한 멧부리에 오르게 된다.
이곳에서 지맥의 산길은 우측을 가리키고 있는데 앞서 간 동료들의
자취는 왼쪽의 희미한 산길로 뚜렷하게 남아있다.에멜무지로
그 길을 따른다.얼마 안가서 내려서는 선머리들을 만나게 되는데
324.2m의 삼각점을 찍고 되내려서는 길이라고.
삼각점이 옹골차게 자리한 해발 324.2m의 무명봉을 내려서서
조금 전의 갈림길로 되짚어 내려선다.
밋밋하지만 구불거리는 능선을 따르다가 홀연히 올려친 멧부리에는
발디딜 틈 없이 억세고 이악스런 잡풀과 넝쿨이 극성을 부리는 무명의
봉우리다.소나무 숲이 다하면 마른나무들의 숲길이 기다리고
그들이 모습을 숨기면 늘푸른 소나무 숲이 갈마들며 숲길을 이끌어
간다.흰눈을 다북하게 뒤집어 쓴 묘지를 지나면 숲길은 누런 빛의
덤불들이 함께하고 마른가지만의 참나무들이 숨을 죽인 산길이 된다.
소나무와 참나무 등속이 자리한 무명의 멧부리를 내려서면 소나무
그득한 가파른 내리막이 기다린다.그리고 다시 올려친 멧부리도
행색과 외양은 다를 게 없는 모습이다.
봉분 두 개가 가지런한 묘지를 뒤로하면, 키가 꼿꼿하게 솟아있으며
빼곡하게 함께하고 있는 소나무 숲을 만나기도 하고 무슨 연유인지
베어져 사방에 나뒹구는 나무토막들이 난무하는 어수선한 곳도
지나치게 된다.
4거리 안부,가음면 구천리와 금성면 게일리를 잇는 산길이다.
안부를 곧장 가로지르면 두 기의 묘지를 만나게 되고 거푸 또 한 기의
묘지도 가로지르게 된다.그뒤를 잇는 빼곡한 소나무 숲길이 그윽하다.
그러나 그들을 뒤로하고 올려친 멧부리는 신갈나무와 아카시아 등의
온갖 활엽수들이 무질서하게 자리한 무명의 봉우리다.
이러한 수목들이 어지럽게 자리잡고 있는 밋밋한 멧부리를 내려서면
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과수밭 곁의 수렛길이다.
수렛길을 따르면 원두막이 눈에 들어오고,원두막 곁을 지나가면
수렛길을 버리고 직진방향의 과수밭 곁을 따라야 한다.
끌밋하며 헌걸차고 대부등만한 몸매의 노송 셋이 서로 몸매를
과시하는 언덕을 넘어서면 과수밭 울타리가 앞을 막아서는데,
울타리를 따르고, 묘지를 가로지르고, 자드락 밭둑을 내려서면,
눈 앞으로 보이는 멧덩이 비탈 자락에 층하를 두고 일궈놓은
자드락 밭이 앞을 막아선다.빈 밭을 가로지르며 멧부리로 올려치면
다시 과수밭 곁으로 지맥의 자락은 이어진다.
과수 밭 앞 양회임도를 따르다가 양회임도를 버리고 맞은쪽
수렛길을 따라 숲을 올려치면 누런 잔디가 널찍하게 뒤덮혀 있는
묘역이 기다리는 내리막 비탈길을 내려서게 된다.자드락 묵밭을
우정 넘어서고 2층농가가 자리한 과수밭 앞도 거쳐간다.
2층농가의 똥개 한 마리가 극성맞게 짖어댄다.
2층농가의 똥개의 새된 소리를 귓전에 흘리며 다다른 곳은 28번
차도가 된다.오늘의 날머리에 이른거다.
이 28번 차도를 따라 우측으로 달리면 영천과 대구에 이를 수가
있으며,좌측으로 향하면 의성을 거쳐 안동에 닿을 수 있는 경북
내륙의 영양가 있는 젖줄이나 다름없는 교통로다.
지맥의 다음 여정의 들머리는 이 차도를 곧장 가로지르면 만나게
되는 양회임도가 되는데,이 양회임도를 곧장 따르면 된다(15시30분).
오늘 둘 째 구간의 산행은 산줄기 행색에 어울리게 특이한 점이
없이 단순하고, 억세고 찰진 구석이 없는 그저 밋밋한 난이도에
불과하다 하겠다.여느 지맥이나 별반 다를 게 없지만, 묘지 순례길이
아닌가 하는 자괴지심에 빠질 때도 종종 있다.
거개가 나지막한 지맥의 멧부리이기에 수많은 묘지를 만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아닌지, 애써 위안을 삼을 뿐이다. 그러한 현실이
아쉽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산행후기를 쓸 때에도 특이하게
지목할 지형지물이 마땅치 않으니 수시로 모습을 드러내는 묘지를
자주 들먹이게 되는게다.
-산길 위에 눈이 쌓였을 거라 지레짐작으로 착용한 스패츠가
흠뻑 젖었다.이 스패츠가 방수기능이 결딴이 났던지, 그렇지 않다면
일 년 밖에 꿰지않은 등산화의 방수기능이 결딴 났던지 둘 중의
하나가 틀림이 없다.등산화 속으로 물이 스며든거다.툴툴거리며
마른 옷가지로 입성을 마무리 하고, 총무님이 마련한 뒤풀이 음식과
탁주 두어 잔으로 그동안 숨죽이고 눈치를 보던 걸귀들을 다스린다.
(2016,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