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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第六會
修因契果生解分
差別因果周
他化自在天宮
如來放眉間光․相光 金剛藏菩薩 入菩薩大智光三昧 十地法門
金剛藏菩薩 說十地法門. 自三十四卷 至三十九卷. 共一品經
二十六, 十地品
♧ 제목 차례
序分
1. 說法因緣
(1) 설법할 곳과 장소
(2) 함께한 대중들
① 대중들의 덕을 찬탄한다
② 대중들의 이름을 열거하다
2. 삼매에 들다
3. 명훈가피력을 내리다
(1) 부처님의 출현이라
(2) 가피의 내용
① 자리
② 이타(利他)
(3) 가피의 모습
① 말씀으로 가피하다
② 마음으로 가피하다
③ 몸으로 가피하다
4. 삼매에서 일어나다
5. 십지(十地)의 강요(綱要)를 말하다
6. 자세히 설(說)해줄 것을 청하다
(1) 해탈월(解脫月)보살이 법을 청하다
① 회중(會衆)의 생각을 받들어 법을 청하다
②법이 깊고 어려우므로 설하지 아니 한다.
③ 회중(會衆)의 덕(德)을 찬탄하고 다시 청하다
④ 감당할 수 없는 이를 염려하여 설하지 아니하다
⑤ 사람과 법을 함께 찬탄하고 또다시 청하다
(2) 법회의 대중들이 법을 청하다
(3) 여래가 광명을 통해서 법을 청하다
(4) 금강장보살이 설법할 것을 허락하다
① 의미의 광대함
② 설법(說法)의 광대함
반갑습니다.
오늘 이제 화엄경 4월달 첫 강의가 시작되겠습니다.
어제가 삼월 삼짇날
강남 갔던 제비가 Come back 하는 날입니다.
올해는 보면 지난 시간도 약간은 언급했지만
모진 추위 때문에 꽃이 유난히 향기롭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도처에 보면
나무들이 잎이 동백 같은 경우는
시들지 않는 잎들인데 배짝 말라가지고 동해(凍害)를 입어서 죽었고,
또 잔가지들도 꽃나무들을 드문드문 보면
바람을 탄 것들, 바람이 들어간 가지들은 못 쓰게 되어서
꽃을 피울 수가 없고 말라 비틀어졌습니다.
잎사귀나 가지가 꺾어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닌데
뿌리까지 냉해를 입은 나무들은
그대로 뭐 고사(枯死)를 하고 이렇게 마는가 봅니다.
지난~ 어떤 스님께서 작년 이맘 때
봄에 진달래가 막 피기 시작하던 무렵에
진달래를 조그만 토굴에 옮겨 심었는데
한 그루는 좀 일찍 옮겨 심어가지고 한 열흘 차인데
뿌리를 다행히 내려서 잘 살고 있고,
욕심이 나서 나무를 큰 나무를 몇 그루 더 해가지고 심어놨는데
한 열흘 늦게 심은 것은
가을에 봄부터 가을까지 그 뿌리를 내리는 속도가
한 열흘 차이가 나는데 더디어 가지고 다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예년 같으면 그 진달래 나무가 살만할텐데
올해는 유난히 혹독하게 추운 날씨 때문에
열흘 차이로 사는 것은 살고 죽는 것은 죽었습니다.
우리가 여름이 되면
백중(百中) 무렵 되면
오곡백과(五穀百果)가 다 무성(茂盛)하게 익어갈텐데
특히 나락도 그 무렵에 이제 영글고 알이 차고 그래 익습니다.
그런데 백중이 지나고 난 뒤에 찬 바람이 불 때
나락이 벼가 고개를 숙이지 못하면 쭉정이가 돼버립니다.
이제는 우리는 다들 오늘 오신 분,
젊은 분들도 더러 계시기는 하지만
그렇게 인생에 여유를 부릴 여가가 없다는 겁니다.
모내기를 할 때 모를 일찍이 가물어가지고
일찍 내지 못하고 모가 웃자라고
행여 늦게 모내기를 했을 때 찬바람이 불 때까지
고개를 숙이지 못하고 쭉정이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연세가 환갑이 지났는데도 쭉정이처럼 사시는 분이 계신다 이 말씀이죠.
여하튼 우리는 지금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화엄경을 본다고 하면
어떤 혹독한 추위나 또 찬바람이 불 때
고개를 빨리 숙여야 되겠다,
하루 빨리 보살심이 익어가야 되겠다,
안쪽으로 옹골차게 영글어져야 되겠다,
이런 심정을 가지고 화엄경을 봐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의 근본까지 신심(信心)까지 그렇게 꽁꽁 얼어서는
햇빛이 아무리 비춘다 하더라도
따뜻한 봄바람이 아무리 분다 하더라도
새이파리나 꽃과 하물며 열매는 더 기약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현재 위치해 있는 데 대해서
신심을 다시 한 번 재고해 보고 다시 한 번 두드려 보고
이래서 늘 점검해야 됩니다.
그것이 이제 도(道)의 근원이고 모든 바라밀을 짓는 근본이 됩니다.
그 믿음이란 것은 이런 것입니다.
제가 오늘 로또 복권을 샀는데
예를 들자면 3일 뒤에 이것이 백 억에 당첨될 거라고 부도날 리가 없다고
확신을 가지는 로또를 샀다 이러면,
3 일만 참으면 되니까 항상 희망 찰 것입니다.
한 3 일은 놔두고 3 년 뒤라 합시다.
지금 사놓은 로또가 3 년 뒤에는 절대 부도 날 일 없고
백 퍼센트 저한테 천 억을 갖다 준다고 하면
거기에 대한 확신이 선다면
지금 살아가는 게 조금 곤궁하고 하더라도 어떻겠습니까?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믿고 있고 가지고 있는
서푼어치 사구게(四句偈) 하나 화엄경 하나가
기필코 언젠가는 나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할 수 있는 꽃이 되고 근원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그 자리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걸 확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이거 무슨 종이 쪼가리겠지...이거 뭐 그 때 가봐야 알겠지...'
이런 불확실성을 가진 제명 거사님처럼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 가시겠습니까?
확신을 가지십시오!
확실합니다!
지식적인 것으로는 겉모습이나 움직이는 형태나
이런 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혜는 움직이지 않는 것 허공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생멸을 참 온전하게 살아내고
거기서 또 다른 남을 위해서 이익을 던져주고 그렇게 사는 분들이죠.
그런 길을 가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화엄경 십지품을 하고 있습니다.
산에 이렇게 올라가 보면
사냥꾼도 산을 오릅니다.
목동들도 소를 몰고 양떼를 몰고 또 산을 오릅니다.
약초꾼도 산을 오릅니다.
사냥꾼은 산에 익숙해서 짐승 잡는데는 익숙하지만
어느 정도 약초는 알지만 효능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목동도 산에 오래 살다 보니까
어느 정도 약초에 대해서는 알지만 자세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또 산을 오른다 하더라도 약초를 구분 못합니다.
그냥 산만 가서 도시락만 까먹고 옵니다.
김밥만 보입니다.
화엄경 십지품에 들어와서
이미 자기의 소견을 열고
좁쌀만큼이라도 제가 말씀드리는 안목의 견해를 가졌다면
이미 십지품 속에 들어가면서 온통 약초밭이고
자기의 마음의 병든 부분 부분을 고칠 수 있는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사냥꾼이나 목동이 되지 마시고
어쩌든지 아주 지혜로운 명의가 되어서
자기의 병은 자기가 다 십지품을 통해서 치료하시기 바랍니다.
그 생전에 살 때 아귀 다툼하고
맨몸뚱이에 그냥 활~활 진심(嗔心)이 타오르고
눈이 그냥 빠질듯이 그저 진심(嗔心)이 돋고 탐심(貪心)이 돋고
그 기갈(飢渴)에 시달려가지고
그렇게 인생을 생각을 마비시켜가지고 산란스럽게 살 바에야
차라리 그 뭐 축생(畜生)으로 사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보배가 가득찬 섬에 보물섬에 살았습니다. 보물섬에.
그 분이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는 분인데
선장을 오래 하셨던 보물섬을 찾아가는
선장 법경 거사님이라고 합니다. 법경 거사님.
법경 거사님이 보물섬에 오래오래 살았는데
거기에 행주좌와(行住坐臥)
가고 눕고 앉고 내 집처럼 보물섬에 참 편안하게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보물을 못 봤습니다.
왜냐?
눈이 멀어가지고 보물을 한 번도 보지를 못 했습니다.
영리한 사람은 보물이 있는 자리를 알아서
그 보물을 가지고 나도 살고 가족도 살리고
그 보물로 내 이웃도 윤택하게 할 것인데
눈이 먼 사람은 보물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보물섬에 살면서도
나도 이롭게 못 하고 남도 이롭게 못 하고
온 세상 사람에게 별 도움도 안 됩니다.
법경 거사님 눈 크게 뜨십시오.
안경이라도 맞추셔요.
이만하게 잠자리 안경.
그래서 인생을 살다보면...
오늘 환희지품에 들어갈텐데
환희지품에 들어가면
환희지(歡喜地),
마음이 정말로 한 생각이 끊어지면 기쁨이 샘 솟듯이 솟아나옵니다.
일반 사람들의 환희로움 하고
이 십지보살(十地菩薩)의 환희로움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그래서 환희지에 들어가지 못 한 사람은
‘화내지’ ㅎㅎㅎ 내지는 그건 ‘아니지’
이렇게 인생을 살다가 갈 것인지 환희지로 살다 갈 것인지
잘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간 밤에 새벽 한 2시 30분 쯤 되어 일어나서
한 용운 스님보다도 더 아름다운 시를 한 점 남겼습니다.
이 봄에 한 번 씨앗을 생각해보고 싶어서
‘씨앗’이라고 해서 하나 남겨 놓았습니다.
씨 앗
용 학
떠나고 싶은 것은
날개가 있고
붙잡고 싶은 것은
미늘이 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씨앗은
날개와 미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새의 날개처럼
더 멀리 자유롭게
낚시바늘의 미늘처럼
더 깊이 단단하게
비로소 땅에 닿아
미늘에 티끌 하나 얹히면
시나브로 파고들어
뿌리를 내린다
삼월 삼짇날 다음 날 새벽
범어사 패엽실에서 용학
멀리 떠나고 싶고 자유로운 것은 날개가 있고
어디 안주하고 싶고 안착하고 붙잡고 싶은 것은 미늘이 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씨앗은 날개와 미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새의 날개처럼 더 멀리 자유롭게
낚시 바늘의 미늘처럼 더 깊이 단단하게
비로소 땅에 닿아 미늘에 티끌 하나만 얹히면
시나브로 조금씩 조금씩 땅을 파고 들며 그 뿌리를 내린다.
무슨 뜻인고 하니
이 모든 이런 씨앗들은
이 보십시오.
이게 씨앗이라고 합시다.
씨앗들은 솔씨를 보면 뒤에 날개가 있습니다.
단풍도 보면 뒤에 날개가 있고
앞에는 씨앗이 이렇게 붙어 있습니다.
씨앗이 날개를 가진 것은
어디 전하고 싶고 자유롭고 싶고
영원히 이어지고 싶고 종족을 보존하고 싶어서
씨앗이 날개를 달아서
현 형편에서 좀 더 편안한 곳으로 날아가고자
씨앗도 날개를 답니다.
마치 새의 날개처럼
그리고 이 씨앗이 볍씨가 됐든 보리씨가 됐든
뭐 옥수수가 됐든 콩이 됐든지 어떤 씨앗은 풀씨가 됐든지
사람이 뿌리는 곡식이 됐든지 잡초의 씨가 됐든지 나무의 씨앗이 됐든지
씨앗은 전부 다 이 꽃잎
이런 것처럼 거꾸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돼 가지고 낚시 바늘 보면
갈고리 모양으로 된 것을 미늘이라 합니다.
딱 잡아가지고 한 번 갈고리에 걸리면 빠지지 않습니다.
화살촉에 옆에 이렇게 박힌 것 있죠.
들어가긴 들어가되 뒤로 빠지지는 않습니다.
씨앗이 날개를 타고 땅에 떨어집니다.
그러면 이 미늘 위에다가 흙 한 티끌이라도 얹히게 되면
그걸 무게로 삼아서 씨앗은 땅으로 파고듭니다.
다시 갈고리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위로 빠져 나오지는 않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괜찮습니다.
비가 오고 땅이 젖으면 조금씩 조금씩 바람 불 때 조금씩 조금씩 어디로?
땅속으로 한 티끌씩 한 티끌씩 밀고 들어가서
마침내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싹을 틔우고 그렇게 안착해서 삽니다.
중국에 황산에 이제 가보신 분들 많이 계시지만
황산에 가면 저를 닮은 소나무가 있습니다. 황산 소나무라고
황산에는 아시다시피 흙이 한 줌도 보이지 않고
둘러 봐도 온통 반석반옥(半石半玉)이라.
바위 투성인데 그 바위에 300 년 200 년
심지어 오륙백 년 자란 소나무가
제 이 손목만큼 이만하게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삽니다.
처음에 안착을 할 때
그와 같이 그 바위에 솔씨가 내려서
그 단단한 바위를 솔씨가 용감하게도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지나가는 운무와 비바람속에서 꿋꿋이 몇 백 년을 버티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여기 해변가를 거닐다
이렇게 또 차를 타고 왔다갔다 하다 보면
해변가에 왔다갔다 하다 보면
갯바위 위에 해송(海松)이 얹혀져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 역시 용감하게도 바위마저 뚫고
그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말법시대에 살아가는 수행자,
그런 모습을 해송이나 바위틈에 박혀 있는 소나무를 보면서
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날개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항상 누군에겐가 해설해주고
서사(書寫)하고 글을 베껴 쓰고 전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되고
그리고 자기 안쪽으로는
수지(受持)하고 독송(讀誦)하고 읽고 외우고 해서
스스로의 신심(信心)을 미늘처럼 자기가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잡아야 될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써 놓은 시라고 해가지고
여러분들이 만만하게 보시는 것 같은데...ㅎㅎㅎ
이런 것은 소동파가 오더라도
저한테 꿇어앉아서 삼배(三拜)하고 이래 받아야 되지만
여러분들은 특히 같이 공부하니깐 드리는 겁니다.
다 이게 300원씩 받고 팔던 겁니다.
시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말씀만 하지 마시고 6**********1 국민은행 계좌번호입니다.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쨌든지 우리가 이제 오늘 미늘이란 말도 새삼 아시게 됐죠.
어디 단단히 안착해서
제발 큰 선박이 앵커를 내리듯이 닻을 내리듯이
그렇게 정박할 때 정박할 줄 알고,
떠날 때는 큰 선박이 날개 단듯이 돛을 올리고 가고,
언제 돛을 펴야 될지,
언제 돛을 내리고 닻을 내려야 될지,
그걸 잘 구분하신다면 공부가 한층 더 성숙해지실 것이라 믿습니다.
자~ 오늘 명강의 시작됩니다.
환희지 들어가겠습니다.
여기 오늘 서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환희지(歡喜地)!
환희지가 안 되는 분들은 뭐가 된다 했죠?
화내지. ㅎㅎㅎ
환희지歡喜地 | |
梵語 pramuditā-bhūmi. 音譯作波牟提陀步弭. 十地之初地;卽菩薩修行五十二階位中之第四十一位. 又作極喜地․初歡喜地. 略作初地. 菩薩歷十信․十住․十行․十迴向等修行階位, 經一大阿僧祇劫之修行, 初證眞如平等聖性, 具證二空之理, 能成就自利利他之行, 心多生歡喜, 故稱歡喜地. |
범어로는 ‘파라무디타부미’라고 한다. 음역으로 파모제타보미이며 십지의 처음 지위이다. 즉 보살수행 52계위 중의 제41위이다. 극희지 또는 초환희지라고도 하며 간략히 초지라고도 한다. 보살은 십신과 십주와 십행과 십회향 등의 수행계위를 거쳐서 일대아승지겁의 수행을 경과하여 처음으로 진여의 평등하고 거룩한 성품을 깨닫게 된다. 아공과 법공의 이치를 깨달으면 자리이타의 행을 성취할 수 있으며 마음에 환희심이 샘솟는 까닭에 환희지라고 말한다. |
據十住毘婆沙論卷二載, 菩薩得初地, 多有七相, |
십주비바사론 2권에 실린 바 보살이 초지를 얻으면 7相이 다분하다. |
(一)能堪忍受, 能爲難事, 修集無量福德善根, 竝於無量恆河沙劫往來生死, 敎化剛强難度之惡衆生, 心不退沒. |
첫째, 수용하는 바를 잘 견딤 어려운 일을 무난하게 처리하나니, 무량한 복덕선근을 닦으며, 아울러 무량한 항하사겁에 생사를 왕래하면서 억세어 제도하기 어려운 악한 중생을 교화하며 물러나는 마음이 없다. |
(二)不好諍訟, 菩薩樂於寂滅之道故, 而不與人諍競. |
둘째, 다투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 보살의 적멸도량을 즐기는 까닭으로 남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한다. |
(三)心多喜, 能令身得柔軟, 心得安隱;又能順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大悲. |
셋째, 마음에 늘 즐거움이 가득함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부드럽고 편안함을 얻게 한다. 또한 아뇩다라삼보리의 대자대비에 수순한다. |
(四)心悅, 於轉法輪時, 心得踊悅 ;又心安隱無患. |
넷째, 마음에 불법을 기뻐게 따름 불법을 설법할 때 기쁨이 샘솟으며, 또한 마음이 편안하고 근심이 없다. |
(五)樂於淸淨, 離諸煩惱垢濁, 於一切深經․諸菩薩及其所行一切佛法, 皆心信淸淨. |
다섯째, 청정함을 즐김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벗어나 모든 깊은 경전과 모든 보살과 그들이 수행한 모든 불법에 다 믿는 마음이 청정하다. |
(六)悲心愍衆生, 深切愍念衆生而豫其救護. |
여섯째, 대비심으로 중생을 애민히 여김 깊고 간절하게 중생을 애민하게 여겨서 그 구호를 즐긴다. |
(七)無瞋恚心, 菩薩雖結使未斷盡, 然瞋恨少而心常樂慈行. |
일곱째, 성내는 마음이 없음 보살은 번뇌가 다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성내는 일이 드물며 마음으로 항상 자비로운 행을 즐긴다. |
又同書載, 初地菩薩與初地以前之凡夫, 所得歡喜不同, 例如初地菩薩念諸佛有無量功德, 竝確知當來必能成就佛果, 故其心多歡喜, 凡夫雖勤念諸佛, 然不能作「我必當作佛」之念, 故其歡喜異於初地菩薩. |
또 십주비바사론에 실리기를 초지보살과 초지 이전에 범부의 얻는 바 환희가 같지 않으니, 예컨대 초지보살은 부처님이 무량한 공덕이 있음을 생각하며, 아울러 미래에는 반드시 불과(佛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마음이 매우 환희롭다. 그런데 범부는 비록 부지런히 부처님을 생각하지만 ‘내가 반드시 부처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환희로움이 초지보살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
범어로는 ‘파라무디타부미’라고 한다.
음역으로는 '파모제타보미'이라 하며 십지의 처음 지위이다.
십지가 뭡니까?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다시 한 번 더 해봅니다.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다시 한 번만 더 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神也者신야자는 반복이라. (神也者 不過習者之門)
신기하게 다 외우는 것은 반복하는 거예요.
일단 오래 하시면 여러분들은 생활의 달인이 아니라
십지의 달인으로 나가실 수 있습니다. ㅎㅎㅎ
환희지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
강 덕순 선생님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땡!~ 자~ 시간 없습니다.
자~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즉 보살 수행의 52단계 중에서 41번째이다.
52단계는 왜 52단계로 보살 수행을 나눠놨습니까?
포커가 52장이기 때문이다. ㅎㅎㅎ
그러면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가 50단계고,
등각 묘각이니까 52단계 중에 몇 번째다?
41번째.
이때가 起信論에 배웠다시피 隨分覺수분각이다.
진정한 아침에 눈을 뜨고 비로소 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거 환희지 이전에는
꿈속에서 좋은 꿈을 길몽을 꾸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부처님을 만나는 것이고
41번째 단계부터는
눈을 뜨고 부처님을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눈을 뜬다는 말은 이런 것입니다.
늘 니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탐심내고 진심내고 교만하고 의심하는,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살다가 그것이 툭! 끊어졌다는 거지.
一斷에 一切斷이라.
한 생각이 끊어진 상태가 바로 환희집니다.
그러니까 올챙이가 꼬랑지 다 떨어지고 개구리 되는 시절이
그러니까 알로 개구리 알로 있는 시절은 십신이야. 십신.
알이라도 이게 알이 부화하게 되면
발심이 돼서 올챙이처럼 꼬물꼬물꼬물 올챙이라 합니다.
올챙이 뒷다리 나올 때쯤 되면 십회향쯤 되는 거죠.
올챙이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한 마리의 개구리로 제대로 모양을 잡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십지로 이제 등장한다 이 말씀입니다.
비유는 다 틀립니다.
여러분들이 둔하시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비유로 설명을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바늘이 예를 들어서 하나 있다 이러면
이것 반드시 갖춰야 합니다.
바늘은 입도 소중하고 귀도 소중합니다.
바늘 끝이라고 하죠.
그것도 빼족해야 됩니다.
빼족해야 그게 똑 부러져버리면 쓸 데 없어요. 잘 못 써.
바늘 끝도 야물어야 되고 바늘귀도 터지면 안 됩니다.
그 두 개 다 정도와 조도가 다 같이 竹着磕着죽착합착으로 맞아져야 됩니다.
어떤 바늘은 코도 있죠.
어떤 바늘은 귀도 코도 없는 것도 있지요?
대바늘 같은 것.
바늘도 그냥 바늘이 아닙니다.
낚시 바늘은 미늘이고.
여러분들과 저 하고의 차이점은
유심하게 보는 사람과 멍청하게 보는 사람의 차이점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ㅎㅎㅎ
세상은 그와 같이 너무 와!~ 재밌어요.
지금 이 봄에 저 새 이파리 돋아날 때
달아서 붙이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새빠지는( 아주 많이 힘들다) 겁니다.
지금 느티나무 이파리가 싹~ 보들보들하게 돋아나는데
이맘 때쯤 저 느티나무 이파리 훅훅 훑어가지고 싹싹 훑어가지고
저때 보드러울 때 떡 해 먹으면 진짜 맛있거든요.
먹어보셨어요? 잡숴보셨어요?
처음 들으세요?
여러분과 저의 차이점은 느티나무떡 할 줄 아는 사람과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이런 차이점입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그것.
뭐 그 한 두 개뿐이겠습니까? 어디... ㅎㅎㅎ
지금 생각해보시오!
개나리 노란 것 저 색깔 칠하려고 하면
온~ 대한민국에 전 세계 페인트 다 묻혀도 저 노란 색깔 다 못 칠합니다.
빨간 색깔 핑크빛 이거 색깔 칠하면
저 꽃 색깔 그거 온 데 페인트 뿐만 아니고
그림 아이들 크레파스까지 다 빌려와도
온 세상은 색깔 칠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야!~ 세상은 어떻게 저절로 저렇게 아름다운가!
사람도 人人이 조작하는 마음을 만들어서 쓰려고 한다면
얼마나 피곤하겠느냐!
저절로 이렇게 마음이 자성이 청정하게 돼 있으니까
너무너무 아름답고도 감사한데
이걸 갖다가 생각을 완전히 뭐 콩가루 집안처럼
버무려 써서 되겠느냐 이거죠.
다시 한 번 들어갑니다.
봅시다.
한 생각을 끊고 나면
極喜地극희지다.
극락같이 환희로운 경지
또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환희를 느껴보는 경지라고도 한다.
初歡喜地초환희지라고도 하며 간략하게 初地초지다,
첫 경지다.
왜 그쪽에 여자 아이들 첫 월경할 때를 鸚血앵혈이라 그러지요. 앵혈.
初經이라고 그렇게 무식하게...ㅎㅎㅎ
그래 지금 분위기 풀려고 그렇게 잠시 짧게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느낌이 좀 올까 싶어서 제가 앵혈을 말씀드린 겁니다.
빨간 앵혈처럼 첫 앵혈처럼
이것이 바로 환희지다, 초지다, 이렇게 보는 거죠.
왜 갑자기 그것도 중답지 못하게 앵혈이 튀어나와가지고...
아이고~ 참! 얼마나 뻔뻔스러운지 얼굴도 안 붉어져요. ㅎㅎㅎ
아마 이 입은 제가 아닌 거 같아요. 볼 때 ㅎㅎㅎ
저 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와서 막 떠드는 것 같아요. 어떨 때 보면
나는 몸만 조금 빌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보살은 십신과 십주와 십행과 십회향등의 수행 階位계위를 거쳐서 一大阿僧祗劫일대아승지겁의 수행을 경과하여
아승지겁이라고 하면 굉장한 겁니다.
그러니까 발심을 해가지고
초지까지 올 때까지 일 아승지겁을 지납니다.
초지부터 8지까지 올라갈 때 또 일 아승지겁을 지납니다.
8지부터 9지 십지 통과할 때 또 일 아승지겁이 지납니다.
그래서 3 아승지겁을 통과해야
흔히 부처를 이룰 수 있다, 이렇게 합니다.
너무 촐랑거리고 넘치는 사람들 위해서 기간을 오래오래 잡아놨습니다.
그런데 너무 게으르고 실망할까 싶어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本來無一物이다.
衆生成佛 어디다?
刹那中이다.
'니 한 생각만 바꾸면 성불한다.'
이러니까 거기에 용기백배를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따지고 보면
가도가도 끝없는 대답이 없는 길이죠.
이정표도 없는 길이고...
어떤 때는 제가 한 몇 년 전에 써놓은 일기가 있습니다.
그대 아느냐?
이정표도 없이 끝없이 가야 되는 길
이정표도 스스로 만들며 가야 되는 길인 줄을 알기나 하는가!
누구한테 기댈 것도 없고
다행히 우리 화엄경이 있어서 좋은 이정표가 됐습니다만
이정표도 없이 스스로 만들면서 가야 되는 길들인 것 같습니다.
이때 초지의 경지 한 생각이 끊어질 때
처음으로 변하지도 않고 조건이 항상 여여부동한
진여의 평등하고
달라지지도 않고 그런 것,
마치 금을 탁! 쪼갰는데 안이나 밖이나 똑같은 황금이라면
여기저기 가도 그 황금은 항상 변하지 않는다는 것,
흔히 제가 말씀드리듯이 꿀맛이 안팎이 같다는 것,
이것이 진엽니다. 진여.
우리 마음 본 성품이 그 어디에도 침탈되지 않는다는 그것이
이렇게 완벽하구나! 영원하구나! 하는 것은
처음으로 진여의 평등하고
과거 현재 미래에 평등하고
동쪽으로 가나 서쪽으로 가나 그 어디에나 평등하고
그것을 깨닫게 되고 또
거룩한 성품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존재와 자신이 존재하는 주변의 환경
我空아공과 法空법공의 이치를 깨달으면 自利利他자리이타, 나도 이익되고 남도 이익되는 행을 성취할 수 있으며,
언제요?
환희지를 얻었을 때.
마음에 환희심이 끝없이 샘 솟는 까닭에 이것을 환희지라고 말한다.
十住毘婆沙論십주비바사론 제 2권에 실린바
보살이 처음에 이 환희지를 얻게 되면 7 가지 모양이 다분히 나타나게 되는데
첫째, 수용하는 바를 잘 견딘다.
현재에 주어진 자기의 생멸의 조건에 대해서 불만이 없다는 거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교만하지 않고
없으면 없는 대로 불평하지 않는 그러한 수용하는 바를 잘 견딘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무난하게 처리한다.
여기서 깨달은 자와 못 깨달은 자의 성향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드는 사람은 업장이 두꺼운 사람이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무난하게 처리하는 사람은 생각이 트인 사람이다.
어떤 사람인가 하면
깨달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사람을 어떻게든 상생의 조건으로써 편안하게 하려고 하는
그 마음이 항상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은
호조건이 올 때마다 설사하고 배 아프고
맨날 어떻게든지 남을 옭아넣으려고 하고 피곤한 생각을 하죠.
꽈배기라 하죠. 꽈배기.
도너츠 꽈배기 있잖아요. 설탕 묻혀 먹는 것.
배배 틀린 꽤배기.
꽈배기 같은 사람 있잖아요.
흔히 이각형이라고도 얘기하고
사람 둥근 사람 원만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한 팔각형쯤 되는 사람도 있고
오각형 되는 사람도 있고
사각형 되는 사람도 있고
삼각형 되면 어지간히 모나잖아요?
삼각형보다 더 모난 사람을 이각형이라 하거든요.
금방 엎어졌다가 금방 자빠졌다가
하! 찰나적으로 변덕이 죽 끓듯이 하는 사람이 그 이각형이라 합니다.
완전히 흑백논리만 있고 반대를 위한 반대,
그런 사람들이 이각형이라 합니다.
여러분들 생전에 좀 잘 못 들어보시겠지만 제 논립니다. 이각형
삼각형만 돼도 그 사람은 조금 견딜만한데
이각형 되면 참~ 버겁죠.
데바닷타 같은 사람은 거의 이각형 수준이거든.
여기서 어려운 일을 무난하게 처리하나니,
이런 말들이 이제 수행자의 功能이 어떤 성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無量한 福德 善根을 지으며
하는 일마다 바라밀해가지고 복 있는 일을 짓는다 이거죠.
믿음이 있기 때문에
信爲道元功德母신위도원공덕모요
長養一切諸善法장양일체제선법이라는 말처럼
믿음이 확실하기 때문에 도의 근원을 잘 닦고
공덕을 잘 출생시키고 그렇게 하죠.
아울러 무량한 한량없는 시간 동안에 생사를 왕래하면서
이렇게 깨달은 사람은
생사를 왕래할 리도 없고 생멸법에 살 리도 없는데
왜 생멸에 왕래하느냐?
물에 빠진 중생이 있을 때는
그 물에 빠진 중생들을 다 건질 때까지
자기는 이미 물 밖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명이나 보존하면 되는데
물에 빠진 중생들이 하 불쌍해서
저 불쌍한 중생들을 어떻게 버리고 가겠느냐!
진흙탕에 빠진 중생들을 위해서
拖泥帶水타니대수 入泥入水입니입수,
진흙탕에 빠지면 진흙탕에 같이 들어가고
물에 빠지면 같이 물에 들어간다.
이래서 보살 정신이 십지 환희지부터 확실히 나타난다는 겁니다.
자기가 깨달았다고 해가지고
‘나는 니 하고 달라.’
'니 하고 달라'
이거는 이제 그 사람이 못 깨달았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겁니다.
부처님처럼 확실히 깨닫고 나면
‘니 하고 내 하고는 똑같아.’
그렇게 얘기하죠. 항상
‘니 하고 내 하고 달라.’
그러니까 가문의 영광이요 개인의 행복이요
이런 스님은 조금 모자라는 스님이요.
제 전생사죠. 사실은
생사를 왕래하면서 생멸을 왕래하면서 억세고
아~주 옆에 줄 그어보세요.
敎化剛强難度之惡衆生교화강강난도지악중생에 心不退沒심불퇴몰이니라.
옆에 줄 있죠. 한문에
언제?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항하사겁토록 영원토록
그 악중생 못된 중생 교화를 하기 위해서
剛强강강, 차돌박이 같이 야물어가지고
難度난도라,
제도하기 어려운 악한 중생들을 위해서도
무량한 세월동안 구제해주면서 마음이 물러나지 않는다.
이 정도가 되면 뭡니까?
법에 대해서 제대로 환희로움을 느껴본 사람들이다 라고 하는 거지요.
그래서 이 십지 보살들은
현미밥도 안 먹고 백미밥도 안 먹고 잡곡밥도 안 먹고 보리밥도 안 먹고
보리밥은 잡숫기는 잡숫는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밥만 잡숫고
꽁보리밥, 꽁보리밥 많이 먹으면 거짓말 잘 합니다.
꽁을 잘 칩니다. ㅎㅎㅎ
그러면 십지보살은 밥을 먹는데 무슨 밥을 먹겠습니까?
( 법...희식 선...열식 법희선열 )
뭐라고요?
여러분들은 거의 천잽니다.
法喜와 禪悅의 밥,
그러니까 아주 희열을 느끼는데
이 참선의 희열과 법에 대한 기쁨의 밥을
法喜 禪悅食 두 가지로써 식사를 합니다.
그래 안 먹어도 자식 잘 먹는 것 보면 배 부르다는 부모님 마음처럼
남 잘 되는 것 보면 무조건 좋은 사람들,
내 조그만 아집 덩어리를 이걸 갖다 던져버리고
아집 덩어리를 던져버리고 나서
전체와 조화를 이루고
전체의 그 아~ 주 서로 공존하면서 유기적인 관계에서
정말 아름답게 꾸며가는 것,
이것이 이제 제대로 된 사람이 어디서부터 나옵니까?
지금 환희지가 출발점입니다.
그 이미 여기서 환희지는 꽃피고 열매 맺는 시절이지만
그 이전에 뭐가 있었습니까?
아~ 주 먼먼 시절부터 신심을 다지던 시절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여기까지 이제 오게 된 겁니다.
여하튼 대단한 것은 첫 구절에 그래 해놨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교화하고 만나고 밥 먹고 서로 사귀고
그게 아니라 어떤 사람입니까?
도~저히 교화하기 어려운
예를 들자면 법경 거사님 같은 분
이 악한 중생을 교화하면서 물러나는 마음이 없다,
이렇게 이제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둘째는, 다투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니,
엉겨 붙는 것 이거 별로 안 좋은 거죠.
보살의 적멸도량을 즐기는 까닭으로 남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한다.
이런 것은 이제 금강경 얘기를 들면 이렇습니다.
수보리가 출가하기 전에 집에서 퇴출 됐습니다.
그거는 다 아시는 사실입니다.
수보리가 하도 성격이 안 좋아가지고 집에서 어떻게 됐어요?
퇴출 됐습니다.
엄마 아버지한테도 엉겨붙고 불효막심하고
형제간에도 조~그만 이익도 아니고 손해 보더라도 엉겨붙어 싸우는 거라.
손해 봐도 싸우고 이익 돼도 싸우고 여하튼 트집쟁이라.
가족들도 다 싫어하고 친척들도 다 싫어하고
결국은 나가거라 이래가지고 출가 아닌 퇴출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열심히 부처님을 만나서
공 도리를 깨치고 난 뒤에
가만히 보니까 인연의 도리를 보니까
모든 것이 공이고 세상에 미워하고 좋아할 일이 그다지 없거든.
그래서 수보리가 그 때부터 다툼을 그쳤어요.
남 하고 엉겨붙고 싸우는 걸 안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칭찬했죠.
뭐라고 칭찬했죠?
금강경에
無諍三昧人中무쟁삼매인중, 다툼이 없는 사람 삼매에 드는 사람 중에
最爲第一최위제일, 수보리야 니가 제일 낫다.
그렇게 엉겨붙어 싸우던 수보리가 변한 것이
제 살아온 세계하고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래 제가 이제 그렇게 별로 다투는 것 안 좋아하는 건
21세기의 기적이라고 이렇게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잘난 척 하는 것만 없어지면 제대로 될 거 같아요.
다투는 것을 좋아하지 않나니 보살의 寂滅道場적멸도량을 즐기는 까닭으로,
이 적멸도량이라고 하는 것은
겨울에 눈 하~얗게 내리는 범어사!
거기다 달빛 쏟아지는 범어사!
그리고 창창한 소나무!
松月 교감하는 섣달 보름밤!
아!~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주 땅은 얼어붙고...
그냥 적멸도량!
군더더기 한 점 없는
날파리 한 마리 모기 한 마리 날지 않는 그런 달 밝은 겨울밤!
너무 좋지 않아요!
별만 반짝거리고...
그 정도로 친다면
다투는 것 焚蕩분탕 일어나는 것 뜨거운 것 별로 안 좋아하고
아주 착~ 가라앉아가지고 싸~늘하면서도
환~하게 밝은 섣달 보름밤쯤 되겠어요.
그런 것으로 이제 자기의 도량으로 삼는다는 거죠.
셋째, 마음에 늘 즐거움이 가득하나니,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부드럽고 편안함을 얻게 한다.
몸도 너무 부드럽고
아무리 아픈 와중에 있더라도 그 아픔이 그 사람을 괴롭힐 수 없고
아무리 근심 걱정이 많은 속에 있더라도
'인연따라 흘러가서 잘 되겠지...'
하는 근심을 적시에 놓아버리는 편안함으로
'내 지은 대로 또 되는 대로 살아 가야지...'
하는 그런 마음이 십지 보살부터는 생겨지니까
이때 이 보살을 갖다가 흔히 우리 얘기하기를
성인에 들어간다 해서 入流라 합니다. 입류
성인의 무리에 들어간다, 입류라고 얘기를 하죠.
또 다른 말로는 隨順수순이라고 한다.
수순, 절대 거스르는 바가 없다.
수순을 엊그제는 뭐라 했습니까?
우리가 由他유타라고 해봤죠. 유타
그대를 말미암아서 니 하고 싶은대로 다 해봐라.
그런 사람들은 다 성공하죠.
예를 들어서 이제 미국 영화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경우도
'부모님이 나를 믿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중도에 학업을 포기할 때도
'나는 너를 믿는다.'
어릴 때 했고
에디슨 마찬가지고, 요즘 또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고,
여하튼 부모님이 由他해준 사람들은 그 재능을 양껏 발휘했습니다.
요즘은 이제 미국에서 유행이 타이거 맘이더만요. 타이거 맘
그 얘기가 서로 안 통하는 사람은 하지 맙시다.
뭔~가 싶어서 쳐다보시고 그러는데
여러분들은 지금 여기 오신 분들은
다 사회를 이끌어 가야 될 지도자 분들입니다.
자기 소임을 놓치시면 안 됩니다.
항상 아뇩다라삼보리에 대자대비에 수순한다.
여기 수순이라고 나왔네요. 그죠?
넷째, 마음에 불법을 기쁘게 따르나니,
마음에 이제 불법이 나는 너무 기뻐서 좋은 거야.
그러니까 자나깨나 스스로 누가 읽으라 소리 안 해도 읽고
외워라 소리 안 해도 외우는데
뭐 일 주일동안 책 저~기 어디 있는지 모르다가
오늘 겨우 책 찾아 오신 분,
뭐 이렇게 뭐 대충 그렇잖아요.
서로 깨놓고 얘기해가지고...
'그렇게 참회하겠습니다.'
한 마디면 될텐데
"스님 뭣 때문에 바빴습니다..."
그러면 자꾸 욕심 생겨집니다. 그래 하시면...
"내가 이거 안 보려고 하는 게 아니고 뭐 일이 바빠서 못 본 것이지..."
이렇게 얘기하면 뭐가 생긴다고요?
욕심이 덕지덕지 생겨가지고 그걸 덧칠해가지고...
어릴 때 보면 황칠한다는 것 있죠?
지금 이 맑은 현전일념에다가 황칠을 해버리는 거라.
변명하지 마십시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너무 좋습니다.
아까 조금 전에 이제 수업 시작하기 전에 말씀드렸죠?
남이 만들어놓은 위트나 들어온 위트나 이런 것들
별로 사실 재미가 없습니다.
여러분들 다 위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순간 순간 재밌게 살아낼 수 있는 순간 집중하고 다른 욕심 없으면
그런 위트는 샘 솟듯이 이렇게 날아오게 돼 있습니다.
어제 어떤 절에 우리 도반 큰스님 모시고 딱 갔더니
그 큰스님 모시고 간다 하니까
그 절에서 49재 법문도 하고 뭐 염불도 하고 이렇게 되는데
그릇을 깨끗이
"스님 이 보세요.
그릇을 큰스님 오신다고 잘 이래 차려놨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이래가지고 제가 그랬습니다.
“이 밥 그릇까지 먹어도 됩니까?” ㅎㅎㅎ
“아이! 스님 밥 그릇은 자시면 안 됩니다!”
이래가지고 참고 안 먹고 그냥 왔습니다. ㅎㅎㅎ
저 번 시간에는 또 쓸데 없는 농담을 해가지고
우리 미소 거사 집에 가서
또 티코 한 번 타 보신 것 아닌가 모르겠어요. 참 ㅎ
다섯째, 마음이 편안하고 근심이 없다. 청정함을 즐기나니
탁한 걸 즐기지 않지. 사람이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벗어나 부처님의 깊은 경전과 모든 보살과 그들이 수행한 모든 불법을 다 믿는 마음이 청정하다.
여섯째, 대비심으로 중생을 애민히 여기나니, 깊고 간절하게 중생을 애민히 여겨서 그 구제해주는 것을 또 보호해주는 것을 즐긴다.
자~ 우리 절에서는 서로 문답을 많이 합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문답,
또 선사들이 스승과 제자와의 문답이
끊임없이 전승되면서 이 불법을 가르쳐 가는 것이
경전이라든지 어록의 형태라고 이렇게 보여집니다.
저는 심지어 한 10 년까지도 한 가지 질문에 대해서
누구를 만나든지 어른스님이나 큰스님이나 똑같은 질문을 똑같이 합니다.
10 년 동안이나 해도 의문이 안 풀리는 게 있어서
똑같은 별로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묻습니다.
그러다 대답하는 어른스님께서는
어떤 스님은 마당 쓸다가도 대답하시고
차 마시다가도 대답하시고
밥 잡숫고 돌아서가지고 마당에서도 대답하시고
한 번 제가 질문을 잘못해놓으면
대답이 한 열흘은 들어야 됩니다.
어떤 분은 열 번 하고 스무 번 되묻고 묻고 해도
대답을 안 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모르시고,
어떤 분은 대답하는데
막 우기고 막 윽박질러가지고 당신이 맞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모르시니까 체면이 안 서니까 막 얼버무려버리고...
그러면 여러분들이 우리가 이제 법에 대해서는
저한테 물으러 오는 사람도 없고
저를 만만하게 보는지 이상하더라고...
낮춰 보는지 오시는 분도 없고...
희한하게 다 아시는지...
분명히 그게 분명하게 해야될 일들이 있거든요.
분명히 궁금하거든.
분명히 해보면 궁금하거든.
수 놓다가도 안 되면 잘 하는 사람한테 물어보고
바둑 두다가도 안 되면 어떻게 물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하는데
전혀 안 하니까 묻는 게 없는 건지
이게 궁금하지도 않은가...?
숨 쉬는 방법도 물어보지 않아요. 숨 쉬는 방법
참선할 때 숨 쉴 줄 모르면 그거 참선 못 하거든요. 잘
분명히 자기한테 맞는 방법은 있지만 기본틀은 있거든요.
그것도 안 물어요.
혓바닥은 어느 위치에 놔야
그게 숨이 편하게 쉬어지는지...
그것도 묻지도 안 하고 그거 희한하다 이러고 넘어가는데
여하튼 누가 무슨 질문을 하든지 간에
대답하는 사람은 반드시 명석한 두뇌와 지식이 많을 필요는 없습니다.
자비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대답은 언제나 정답입니다.
내가 모르면 옆에 묻고
내가 부족하면 상대에게 다시 물어가지고 다시 해결하려고 하고
그러면 지금 방금 여기 나온 이 대목이
바로 수행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또 나타내는 겁니다.
무슨 마음으로?
대비심으로 중생을 이 사람 문제를 지금 해결해줘야 되겠다.
그런데 내가 능력이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사람의 물은 바의 질문을
내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한테 여쭤가지고라도 어떻게요?
그 사람에게 가르쳐줍니다.
책을 뒤져가지고라도 가르쳐주게 돼 있습니다.
뭐 때문에?
대비심으로 정말 가르쳐주고 싶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그렇지 않고
'내 뭐 가르쳐줘봤자 돈 되지도 안 하고 저 사람 뺀질뺀질하고...
이렇게 지가 얘기해줘도 잘 안 될 것 같은데...'
이렇게 얘기하고 넘어가는데
그것은 성의가 없는 대답이고
그것은 아무리 보편적으로 그런 대답을 하면
객관성 있는 보편적인 대답, 누가 얘기해도 다 맞는 대답,
그런 대답을 했다 할지라도
이미 그거는 백 퍼센트 빵점입니다. 빵점.
그 어떤 상황이 되든지 간에
대자대비심을 가지고
내 교만심을 지식을 뽐내고 천재성을 뽐내고
뭐 이런 걸 해가지고 방대한 지식 그런 걸로써
남에게 대답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아닙니다.
또 제자들이 스승이 물었을 때
대답을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대답을 해가지고
선 어록에 보면 판판이 틀렸다 합니다.
그거는 책이고... 그거는 책이고... 그거는 책이고...
그거는 경이고... 그거는 논이고... 그거는 어록이고...
니꺼! 니꺼!
항상 현전일념을 묻습니다.
너 지금 정직하냐!
그래가지고 대답이 어느 날 되면
서로 딱 맞았다고 싱긋이 웃으면서
이심전심으로 이제 끝났다 그러죠.
이게 아주 중요한 이야깁니다.
대비심으로 중생을 애민히 여기나니 깊고 간절하게 중생을 애민히 여겨서 그 구호를 즐긴다.
결국은 생사해탈을 할 수 있도록
그 근심으로부터 괴로움으로부터 중생을 끄집어내는 길을
환희지보살부터는 한다는 겁니다.
성내는 마음이 없나니, 보살은 번뇌가 다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성내는 일이 드물며 마음으로 항상 자비로운 행을 즐긴다.
자비로운 행을 어떻게요?
즐긴다.
이것도 우리 흔히 얘기 이렇게 합니다.
아주 선천적으로 천재성을 가지고 타고나게 너무 잘 하는 사람들,
잘 하는 사람은 누구를 이길 수 없다 하죠. 흔히?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누구를 이길 수 없어요?
열심히 하는 사람은 또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그래 여기서 자비를 즐긴다!
이런 말들은 정말 아름다운 말입니다. 그죠?
자비를 즐긴다!
우리는 막 눈꼽만큼이라도 남한테 베풀어주고는
'내가 참 자비롭고 어질다.'고 나부터도 생색을 막 내잖습니까?
뭐 서푼어치 십 원짜리 동전 하나도 안되는 그런 정도를 가지고
그거를 몰라 지 돈 들였다고 자비라 하는지 그거는 잘 모르겠어요. ㅎㅎㅎ
그 다음에 또 十住毘婆沙論십주비바사론에 실리기를 초지 보살과 초지 이전의 범부가 얻는 바는 환희가 같지 않다.
그 기쁨은 십지 이전에 초지 환희지 이전에는
한 생각이 끊어지기 전에 사람의 환희와
한 생각이 끊어진 뒤에 환희는 天壤之差천양지차다.
어느 정도 비교냐?
한 잔의 컵과 저 바다를 비교하는 것이 낫다.
그래 이거 이 정도 비교하려면
메뚜기 하고 코끼리 하고 씨름 붙여놓으면 누가 이기겠어요?
이 정도 비교를 하면 딱 된다.
메뚜기 지 나름대로의 환희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코끼리의 그 역량은 미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의 이 환희력,
힘이라고 하는 것은 재력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박력도 아니고
또 더 좋은 것 정력도 아니고
수행하는 사람의 힘은 법력입니다. 법력
그래 수행하는 사람은 스님들이겠거니...
스님들이면 여러분들께서 지금 앉아 계실 이유가 없어요.
이제는 人人이 각자가 해결해아 될 길이니까
이 차원에서는 뭐 중이든지 아니든지 상관 없어요.
마음을 가진 자는 凡有心者는 皆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향해서 가야 될 그 뭐라 할까...
당위성이라 할까요?
이렇게 그걸 지금 얘기하는 거지.
예컨대 초지 보살은 부처님께서 이미 부처님의 그런 무량한 공덕 있음을 생각하고,
믿는다는 거죠.
아울러 미래에는 반드시 佛果불과를 나도 부처가 될 수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마음이 매우 환희롭다.
아까는 뭐라 했죠?
'로또 복권이 언젠가는 확실히 내 돈이 머지않은 날에 될 것이다.'
혹은 먼 훗날에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하면
사람이 그 기쁨과 로또 복권 하나 사놨는데
'그게 될지 안 될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버리면 안 된다는 거죠.
그 다음에 뭐죠?
그런데 범부는 비록 부지런히 부처님을 생각하고
로또 복권은 열심히 사지만 당첨 될지 안 될지
'운 좋으면 되겠지 뭐.
그래도 안될 확률이 많을 거야.
나는 부처 안 될 거야.'
내가 반드시 부처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환희로움이 누구와는 다르다? 십지 보살의 초지 보살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렇게 해서 십지 보살을 찬탄하면서
글을 이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십지 보살은 아까 뭐라 했습니까?
초지는 아침에 꿈을 깨고 비로소 찬란한 세계를 바라보는 거와 같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正 宗 分
七, 第一歡喜地
(1) 深種善根
佛子야 若有衆生이 深種善根하면 善修諸行하며 善集助道하며 善供養諸佛하며 善集白淨法하며 爲善知識善攝하며 善淸淨深心하며 立廣大志하며 生廣大解하며 慈悲現前하나니라
정 종 분 (正 宗 分)
7. 제1환희지(歡喜地)를 설하다
(1) 중생이 선근(善根)을 깊이 심다
"불자여, 이런 중생이 선근을 깊이 심고, 모든 행을 잘 닦고, 도(道)를 돕는 법을 잘 모으고, 여러 부처님께 잘 공양하고, 청정한 법을 잘 쌓고, 선지식의 거두어 주심이 되고, 깊은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 광대한 뜻을 세우고 광대한 지혜를 내면 자비가 앞에 나타나니라."
正 宗 分
七, 第一歡喜地
正宗分
십지 보살의 正宗
序分은 끝나고
그 근본종지를 얘기하는 分분에 들어가겠다 이말이죠.
第一歡喜地라.
한문을 보시겠습니다.
(1) 深種善根
善根, 착한 뿌리를 깊이 심는다.
佛子불자야 若有衆生약유중생이 深種善根심종선근하면 善修諸行선수제행하며 善集助道선집조도하며 善供養諸佛선공양제불하며 善集白淨法선집백정법하며 爲善知識善攝위선지식선섭하며 善淸淨深心선청정심심하며 立廣大志입광대지하며 生廣大解생광대해하며 慈悲現前자비현전하나니라 慈悲現前자비현전하나니라 慈悲現前자비현전하나니라
십지 보살이 환희심이 돋으면 뭐가 눈앞에 늘 나타나요?
자비심이 나타납니다.
불자야, 이런 중생이 선근을 깊이 심고
(佛子불자야 若有衆生약유중생이 深種善根심종선근하면)
어떻게요?
아까 미늘처럼 그죠?
깊이깊이 자기를 요지부동하게 확고부동하게 단단히 주춧돌처럼 심고
그리고
모든 행을 잘 닦고
(善修諸行선수제행하며),
하는 일마다 如履薄氷여리박빙이라.
살얼음 밟듯이 조심조심 하고,
獨木橋독목교를 건너듯이
(獨木橋寃家遭독목교원가조: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천지 낭떠러지 절벽에 외나무 다리 건너듯이
코끼리가 외나무 다리 건널 때 조심조심 해야 되죠.
코끼리가 천 길 아프리카에서 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
코끼리가 외나무 다리를 건너다가 총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코끼리 이 머리 위에다가
개미 세 마리가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을 갔어요.
하도 걸어 다니다가 힘드니까
코끼리 머리 위에 이래 앉아가지고
"야! 경치 좋다"
이러고 가는데 앞에 포수가 총을 쾅! 쏘는데
코끼리는 떨어져서 죽지 않고 누가 죽었죠?
개미가 한 마리 죽었습니다.
개미가 왜 죽었을까요?
총 맞아 죽었을까요? 놀라서 떨어져 죽었을까요?
어쨌든 간에 개미가 한 마리가 죽었다.
개미 한 마리가 죽고나니까 야단이 난 거야.
그래 개미 두 마리가 남아가지고
" 니 임마 내려가서 저거 다리 거둬버려라!"
밑에 가서 다리 거두니까 잘 안 되니까
"야! 니가 목 좀 더 졸라라!"
이렇게 이제 개미가 했다는 애기는 들었죠?
그런데 그 개미가 사실은 왜 총 맞아 죽었으면
포수한테 달려들어가지고 개미가 막 물어뜯고 해야 될텐데
포수는 가만 놔두고 누구?
코끼리를 죽인다.
왜 그러냐?
코끼리가 총을 맞으니까 신경질 나니까 이랬다.
세영아! 코끼리가 눈에 주름 있는데 주름에 끼어 죽은 거라.ㅎㅎㅎ
코끼리 이마 이래 총 한 방 맞고나니
성질 나니까 딱 찡그려버리니까
개미 한 마리 거기서 끼어 죽고난 뒤에
개미 두 마리의 처절한 복수혈전이 펼쳐졌다고 하는
옛 얘기가 있습니다.
참 십지품 하다가 여러 가지 한다.ㅎㅎㅎ
개미가 어디 끼어 죽었어요?
주름살에 끼어 죽었는데
그게 그 코끼리가
코끼리한테 주름살에 끼어 죽은 개미가
人道還生인도환생해서 왔으니 그 이름이 법경 거사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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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도하기 어려운 악한 중생들을 위해서도 무량한 세월동안 구제해 주면서 마음이 물러나지 않는다...이 어찌 배가 부르지 않으랴....그득한 법희선열식 ....고맙습니다._()()()_
마음을 가진 자는 凡有心者는 皆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마땅히 해야 함을 일러주시니 고맙습니다_()()()_
한 생각 끊고 들여다 보니
이렇게나 자성이 청정한데~~ㅎ
지선화 님!! 수고 하셨습니다..고맙구요..^^*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