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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배불뚝이 웨이터>의 줄거리: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끝 부분에 거짓 선지자와 거짓 신앙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구약 예언서에서도 거듭 반복 되어 언급 되었던 이 거짓 선지자들의 기준을 너무 간단하고 명확하게 제시하십니다. 바로 굶주림과 포학함입니다. 이 기준에서 신앙 일반의 거짓과 참도 드러내시며 산상수훈을 마치십니다.
배불뚝이 웨이터
(마7:15-29)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배불뚝이 웨이터>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배불뚝이 웨이터’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진짜 배불뚝이 웨이터 많이 볼 수 있지요.
뚱뚱한 아저씨들이 까만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깨끗하게 입고 시중을 드는 모습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배불뚝이 웨이터’가 오늘 말씀의 제목이요, 산상수훈의 결론입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이 뭐냐 하면 주님께서 내려주신 말씀에 입각해서 우리가 그 결론을 조금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배불뚝이 웨이터’에 대한 말씀으로 산상수훈을 맺으셨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거짓선지자들과 거짓신앙에 관한 언급을 주님께서 해주십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이루게 될 십자가사건을 통하여 너희가 절대로 이 거짓된 길에서부터 빠져나와 참된 길을 가거라!’ 하는 그런 당부의 말씀으로 거짓선지자에 대한 이야기 거짓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계시는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구약성경을 쭉 관통해오는 동안에 예언자나 선지자들을 통해서 끝없이 거짓선지자들에 대한 심판과 책망과 경고가 반복되어 나타났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그렇게 다양하게 언급되었던 구약의 거짓선지자의 기준을 아주 명확하게 제시를 하십니다.
그리고 거짓신앙의 기준을 또 그렇게 제시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지금 현재 내가 신앙생활 하는 모습,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거짓선지자와 거짓신앙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주님의 산상수훈의 결론을 통하여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시든, 신앙생활을 하시든 기도의 제목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기준에 해당되어서 거짓선지자나 거짓신앙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분별과 중보기도로 이어질 일이지, 그것이 비판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전제하에 과연 주님께서 거짓선지자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도록 우리 눈앞에 제시하시느냐?
간단합니다, 너무 간단하고 명확하고 명쾌하게 주님께서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뭐라고 하시는가 하면,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표현을 하십니다.
‘양의 옷을 입고…’ 양의 옷을 입은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께 인도받고 있다는 말을 표방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인도받고 있다’
거짓선지자들이 표방하는 바가 양이 목자에게 인도받는 것처럼 ‘나는 목자 되시는 여호와하나님께 인도받고 있는 자다’ 이렇게 표방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옷을 입고 있지만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라.
이 ‘노략질하는 이리’라는 말 속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있습니다.
굶주림이라고 하는 말과 포악함이라고 하는 말이 들어있습니다.
이 굶주림과 포악함이 거짓선지자의 내용이고 정체라는 겁니다.
이 굶주림과 포악함이 거짓선지자의 신앙적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말이에요.
굶주림은 그 속성이 무엇이든지 내 배를 채우려고 움직이게끔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비교하십니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바로 굶주린 상태의 인격, 이게 바로 나쁜 나무죠.
그래서 이 굶주린 상태로 성도들 앞에 서게 될 때, 겉으로 표방하기에는 ‘나는 하나님께 인도를 받는 양과 같은 선지자이다’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내 배가 굶주려 있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성도들을 통해서 내 배를 채우는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포악함이라고 하는 것은 내 배를 채우기 위하여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것이 포악함이에요.
굶주림에 이어서 나오는 잔인성이 포악함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양의 옷을 입고 자비로운 미소로 긍휼의 제스처를 쓰고 하나님의 뜻을 표방하더라도 내 배가 굶주려 있는 동안에는 결국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지 내 배를 채우려는 행동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건 진공청소기가 청소할 때 전기케이블들이 가득 놓여있는 곳에 갖다 대면 케이블도 빨아들이듯 뭐든지 갖다 대면 빨아들이게 돼있어요, 그것이 돌멩이든 뭐든지 간에, 심지어는 귀중한 영수증이 떨어져 있어도 빨아들이게 돼있습니다.
하여간 내 배가 굶주려 있으면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내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거짓선지자의 기준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겠습니다.
산상수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관통하고 있는 기둥이 무엇입니까?
천국입니다, 천국. 천국에 계신 하나님.
그 천국으로 내 마음을 채우는 겁니다.
내 마음이 천국으로 가는 것이에요.
앞으로 이루시게 될 십자가복음을 받아들일 자들에게 일어날 천국으로 배부름, 천국의 티내기가 이 산상수훈의 주제입니다.
‘십자가복음으로 천국의 티내기’ 이게 주제예요.
그래서 배부른 자로서만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참선지자의 노릇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교인들 앞에 나서기 이전에 이미 십자가 붙잡고 이 세상에 대해 죽는 겁니다, 내가 목회하는 현장도 세상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하려고 하는 현장에 대해서도 죽습니다.
내 마음이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께로 가고 성령의 관문을 통해 하늘나라로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천국으로 내 마음이 배불러옵니다.
천국으로 배부르고 있는 상태에서 교인 앞에 나올 때에 참선지자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천국으로 배부른가 안 부른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목회가 지금 싹 다 없어진다고 해도, 내게서 목회 자리를 빼앗으신다고 해도 나는 만족하고 기쁘고 감사할 수 있는 상태인가를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주어진 게 아무것도 없는 맨몸으로 오직 하나님과 천국으로만 배부른 상태에서 참선지자노릇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의 배불뚝이만이 오직 참선지자이고 참 목사님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천국으로 배부르지 못한 상태에서 주님의 십자가복음의 효능이 뭔지를 몰라서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목회현장에 대해서도 완전히 죽은 자임을 자처하며 성령의 관문이 열려서 하늘나라로 배부를 때까지 기다릴 줄을 모르는 목사가 교인 앞에 서서 성수주일을 얘기할 때, 이 성수주일은 내 배를 채우려고 하는 성수주일의 권고가 됩니다.
하늘로 배불뚝이가 되지 않은 목사가 전도를 얘기할 때는 교회를 숫자적으로 부흥시키겠다고 하는 사특한 이리의 포효가 됩니다.
성전을 아름답게 건축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자고 하는 이 양의 옷을 입고서 하는 이 권고는, 이 종용은, 이 강요는 결국은 목회현장에서, 노회에서, 총회에서, 그리고 좋은 장소를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겠다는 내 배를 채우려고 하는 이리의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예배당건축도 예배당건축을 느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하늘나라로 만족한 목사님에게 하나님이 예배당건축을 지시할 때 그게 하나님 뜻일 수 있어요.
오히려 교인들은 하자고 그러는데 목사님은 전혀 예배당건축에 관심 없이 ‘아, 됐습니다, 예배당건축이 뭐가 중요합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제대로 성전이 돼야지요, 많으면 2부, 3부, 4부 예배드리고 그래도 안 되면 다른 교회로 좀 가시고…’ 또 부목사님들 개척교회 해서 교인의 무리를 떼 내서 내보내드리기도 하고.
이런데도 어쩔 수 없어서 예배당을 짓게 되면 하나님 뜻일 수 있지요.
그런데 집을 전당잡혀라, 대출을 받아라, 이러면서 ‘예배당건축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다’ 하는 것은 100% 이리들이 하는 얘깁니다.
장로님들이 헌금 안 한다고 막 화를 냅니다.
여러분, 장로님들이 헌금을 하고, 안 하고는 하나님 뜻에 달려있는 거고, 나는 장로님들이 가정에 돌아가 직장에 돌아가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도록 그를 양육하면 되는 거예요.
내 스스로가 하늘로 천국으로 만족한 뒤의 이 상태, 이 배불뚝이라야만 참일 수 있는 이 상태는 목사님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일단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죽었다가 다시 삶을 허락해주셔서 살고 있는 자들에게 참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배불뚝이로서 엄마노릇 하는 거예요, 엄마의 옷을 입고 이리로 접근하지 마십시오.
자식을 사랑한다고 그러지요?
천국으로 내 배가 부르지 않은 다음에는 자식을 대하는 모든 엄마의 언어와 행동과 사랑으로 얘기되고 있는 것들이 다 내 배를 채우려는 이리의 포효에 불과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이야기합니까?
하나님으로 천국으로 먼저 배부른 상태가 아닌 배불뚝이가 아닌데 애인을 만나러 갑니까?
이리로 접근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혼이 있고 싸움이 있고 결별이 있는 거예요.
내 배를 채우려고 하는 그 본성이 드러나게 될 때에,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내 배를 채워주지 않는다 이거죠? 그래서 헤어지는 겁니다.
애국자?
여러분, 천국으로 배부르기 전에는 나라 사랑하지 마세요.
그건 내 배 부르자고 하는 거예요.
자연사랑, 동물사랑, 정말 웃기는 얘깁니다.
하나님으로 천국으로 배불뚝이가 되지 않은 자가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 동물 우상화하는 거죠, 우상 숭배하는 겁니다, 동물에게 왜 옷을 입혀요?
개는 개로 키우세요, 개집에서 키우지 왜 침대에 누입니까?
이게 다 자기만족입니다, 개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개를 미장원에 데려가서 털을 박박 깎아가지고 추워서 바들바들 떠는 것 여러 번 봤어요.
학대도 이런 학대가 없죠.
그 다음 구절에 나오는 부분이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렇게 말할 때, 불법을 행한 자들이 어떤 자까지 포함되는가 하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자까지 다 불법을 행한 자로 포함이 됩니다.
이 구절에서 웨이터라는 말이 나옵니다.
웨이터는 주방에서 음식을 가져다가 식당 홀에 있는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는 사람입니다.
웨이터에게 있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불법 중의 불법, 해서는 안 될 일이 뭐냐 하면 주방에서 받아서 홀의 손님에게 가져갈 음식을 도중에 복도에서 먹어버린다든지, 맛을 본다든지, 손가락으로 집적거리는 것,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웨이터노릇을 하는 시간 동안에는 이 홀 안에서 움직일 동안에는 절대로 음식을 먹는 식탁에 앉아서도 안 되고 음식을 먹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이 땅에 산다는 것은 웨이터로 식당 홀에서 일하는 것과 같아요.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먹어서 배 부르려고 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돈이 고픕니까? 그러면 돈이 고픈 게 아니에요, 당신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인 한에는 돈이 고픈 게 아니라 하늘이 고픈 거고 아버지가 고픈 겁니다.
그러므로 하늘로 배를 채워야 되고 하나님으로 배불뚝이가 돼야 되고 승천하신 주님과 만나 배불러져야 됩니다.
절대로 속으면 안돼요.
아무리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웨이터가 그 음식에 손을 대면 안돼요.
그리고 그 음식이 아니라 레스토랑의 주인이 웨이터 일을 하는 나에게 따로 준비한 음식이 있어요, 배부르도록 먹게 해주는 음식이 따로 있어요.
그 음식이 천국이고, 그 음식이 바로 하나님아버지 자신이요, 승천하신 주님입니다.
주님 먹고 배부르고, 하나님 먹고 배부르고…
그 먹는 방법이 주님의 십자가 아닙니까?
세상에 대해 죽고 성령의 인도를 기다리는 겁니다.
하늘로 배부르게 해주십니다.
절대로 이 세상에서 돈이 없다고, 건강이 없다고, 자녀의 문제가 있다고, 성공하고 싶다고, 형통하고 싶다고 비전, 꿈 이런 것 얘기하면 안돼요.
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귀신을 쫓아낼 능력을 주시고 기적을 일으킬 권능을 주시고 선지자노릇 하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내 배가 굶주려서 그 모든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다 내 배를 채우는데 사용했습니다.
기적 일으키고 광고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 갑니다.
그리고 기적을 일으키겠다고 플래카드를 내거는 사람들도 이해가 안 가요.
이해가 안 갈 것도 없죠, 기적 능력을 가지고 내 배를 채우겠다고 광고하는 거니까.
노략하는 이리가 그 안에 들어앉아 있는 겁니다.
기적을 수혜 받을 당사자와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기적이라고 하는 음식을 내놓았을 때, 그 사람이 맛있게 먹으면 된 겁니다.
그 기적을 왜 광고하지요? 내 배를 채워야 되니까.
그래서 신명기 13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분명히 다른 신을 섬기도록 이끄는 거짓선지자들에게 기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기사가 일어나고 이적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러면 왜 이런 이적과 기사를 거짓선지자들에게 허락하느냐?
그 다음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우리의 신앙이 진짜 하나님아버지와 천국으로만 배불뚝이가 되기를 원하는 그런 신앙인가를 알아보시기 위해서 하나님아버지만 있으면 배부를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거짓선지자들에게 기적을 허락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허락하신다는 겁니다.
기적이 참선지자의 기준이 아니에요.
기적을 일으켰는데 그 기적을 광고해서 사람들에게 널리널리 알려서 사람들이 많이 오게 하려 한다, 그러면 그는 거짓선지자입니다.
기적을 행하는 거짓선지자예요.
참선지자의 특징은 반드시 배부름에 있습니다.
배불뚝이, 그리고 웨이터입니다.
웨이터는 이 세상에서 절대 그 어떤 것으로도 먹어서 배 부르려 하지 않습니다.
식당 홀에서 무엇을 먹어서 배부르겠습니까? 다 손님들에게 주어야 될 건데…
그래서 아버지 뜻대로 행한다는 것이 불법을 행하는 것과 반대되는 말인데,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
자, 귀신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자기가 먹어버립니다, 자기 배가 고프니까.
아버지의 뜻을 행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이렇게 말해보면 좀 더 구분이 갈지 모르겠어요.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세운 선지자도, 선지자들 중에 주욱 세워놓으면 그 중에 좀 더 무력한 선지자가 있고, 더 능력이 있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좀 더 매사에 실수가 많고 삐걱거리는 선지자가 있을 수 있고, 좀 더 주도면밀한 선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의 특징은 뭐냐?
실수할 수도 있고, 무능할 수도 있고, 병약할 수도 있고, 사도바울도 아테네에서 잘난 척하다 실수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못 분별해서 아시아에서 선교를 그저 미련 곰탱이처럼 밀고나가다가 결국은 막히고 막히다가 꿈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오라는 것을 보고 유럽선교로 바꿉니다.
이렇게 실수할 수도 있어요.
잘못을 범할 수도 있지요,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혹시 죄를 범할 수도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거짓선지자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첫째는 이렇게 실수하고 삐거덕거리고 무능한 그런 차원이 아니라 배고파하는 거예요.
목회현장에서 배를 채우려고 하는 자가 바로 거짓선지자입니다.
목회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목회현장이 없다고 생각할 때 이미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이미 하늘로 배부른 배불뚝이라야만, 그리고 목회현장에 들어가면 그 어느 것도 도저히 배불러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는 상태로 웨이터 노릇하는 것이 참선지자라는 겁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엄마가 누굽니까?
아이에게 웨이터 노릇 하는 거예요.
아이를 통해서 배불리려는 것이 없어야 아이의 웨이터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을 통해서 배불리려고 하지 않을 때, 이미 하늘로 배부른 자만이 남편에게 진실 된 아내가 될 수 있고 거꾸로도 마찬가지죠.
애인을 사귀어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으로 배부른 자만이 내 애인에게 진정한 애인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겁니다.
나라사랑 하지 마세요! 하나님사랑 해서 하나님으로 배부른 자만이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나라를 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다 제 배불리려는 노략질 하는 이리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먹을까요?
배고픈 상태에서 하는 것은 다 불법이에요, 내 배가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천국으로 배부르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다 불법입니다.
내 배를 채우려고 움직이는 거니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도, 배가 불러야 하나님의 뜻도 명확하게 알아져요.
배가 고프면 다 내 배를 채우려는 말씀으로 들릴 뿐입니다.
어떻게 배불려요?
주님의 십자가가 서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어디에 서있습니까?
이 땅과 하늘의 경계에 서 있어요.
땅이 끝나는 곳이 십자가예요, 그 십자가에서 하늘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은 십자가에서 하늘 사이를 오갈 뿐이지 땅에 내려오면 안돼요.
이 땅에서 마음이 뭔가에 붙어서 그걸 먹겠다고 그걸로 배불리겠다고 쫓아다녀서는 절대로 불법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악한 열매를 맺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에요.
반드시 십자가에서 이 세상에 대해서 죽고 보좌와 승천하신 주님 사이를 왔다갔다 해야 돼요.
우리 마음이 십자가보다 더 내려와서 십자가를 돌아서 이 세상으로 빠져나와서는 안 됩니다.
그게 좁은 길이라고 했어요, 좁은 길.
그렇게 십자가를 붙잡고 이 세상에 대해 죽는 기도와 죽는 말씀을 반복하는 겁니다.
밥 한 끼를 먹으려고 해도, 쌀 씻고, 밥 앉히고, 찌개 끓이고 반찬 만들고, 한 시간은 걸려요.
밥 먹는 시간까지 한 시간 30분은 걸려야 밥을 먹습니다.
급해서 라면을 끓여먹어도 2, 30분은 투자를 해야 먹고 치울 수가 있습니다.
하루 세끼 먹습니다.
하나님 먹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하루 세끼 천국을 드세요!
기껏 5분, 그저 스낵 조금 먹는 것처럼 천국을 먹고 이 세상을 참 신앙인으로 참 목사님으로 살겠다는 겁니까?
중보기도 한답시고 온갖 세상일 다 끌어들여서 그 세상일로 분주한 기도를 드리고 나서 그리고 천국으로 배 부르려 합니까? 안 되죠.
하루 세끼 먹듯이 세 번 기도하면 좋고, 세 번 먹을 때마다 얼마나 시간이 필요합니까?
양심적으로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 밥 먹는 습관을 계산해서 그 정도 기도해 보세요.
그래야 하나님으로 배부를 수 있습니다.
절대로 첫술에 배부르지 않고 문밖으로 나가면서 한 숟갈 먹는 걸로 배부를 수가 없습니다.
자리 잡고 잘 차려서 제대로 먹으세요!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마음에 걸리는 모든 세상 것들에 대해 다 죽고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고 관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고, 그래서 성령의 관문을 통과해서 하늘나라 보좌에 앉으신 아버지와 그 주님으로 배부르고 그리고 눈떠서 세상에 나가면 내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다 만나는 자들을 위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됩니다. 내 배가 부르니까…
산상수훈의 결론이 뭡니까?
배불뚝이 웨이터예요.
오늘 하루 사실 때, 배불뚝이 웨이터로 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기 위해서 이 말씀 듣고 나서 꼭 십자가숟가락으로 하늘나라를 퍼서 먹는 식사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배부를 때까지 드세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천국과 하늘아버지로 배부르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는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 생각 한 조각이 다 불법임을 기억하게 해주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십자가 숟가락으로 들고 배가 부를 때까지 천국을 먹은 뒤에라야 아버지의 뜻도 명확히 알려지고 아버지의 뜻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우리가 오늘 하루 살면서 삶에서 몸소 경험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늘 한결같이 애써주심에 은혜충만입니다.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