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7:1-15, 아이성의 실패, 21.12.15, 박홍섭 목사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넌 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첫 관문인 여리고 성마저 눈앞에서 기적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경험했습니다. 이 두 번의 승리는 온 이스라엘을 감격과 흥분으로 이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감격 속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이제 가나안의 그 무엇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려고 할 때 전혀 상상하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좌절을 맛봅니다. 바로 아이 성의 실패입니다. 아이 성은 여리고 성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성인데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아이 성 사람들에게 패배하고 36명이 죽고 겨우 도망쳐 나오는 처참한 실패를 하게 됩니다. 이 패배로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 물처럼 되었다고 합니다(5).
이 처참한 패배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1절은 그 원인을 이렇게 밝힙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삼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아이 성의 실패는 전술과 전략의 실패가 아니라 여호와가 진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해 범죄함 때문입니다. 그 범죄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의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어기고 그 물건에 손을 대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간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게 하십니까? 귤 상자 안에 귤이 하나 썩어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빨리 골라서 내 버립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자 안의 모든 귤이 함께 썩어버리는 일은 시간문제입니다. 하나라도 썩은 게 있다면 따로 골라서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귤들을 온전하게 보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 안에 암세포가 하나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최대한 빨리 도려내어서 다른 건강한 세포들을 보호하지 않습니까? 같은 원리입니다. 아간의 범죄는 비단 한 사람의 일탈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해야 할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범죄입니다. 그래서 그의 범죄를 아주 상세하게 다룹니다.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라고 그의 가문을 다 소환하죠. 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집안의 문제이며, 가문의 문제이고 지파의 문제며 나아가 이스라엘 전체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겼나니” 아간 한 사람의 범죄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범죄라고 합니다. 그 범죄는 도둑질의 윤리적 죄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영적, 신앙적 불 경건의 죄입니다. 롬 1:18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임하는데 크게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불 경건이고, 하나는 불의입니다. 불 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린 죄이고 불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죄입니다. 윤리적 죄의 시작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는 불 경건의 영적 죄에서 시작합니다.
아간의 죄는 어디에 해당할까요? 두 가지 다입니다. 물건을 훔친 불의한 도둑질이기도 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린 불 경건의 죄이기도 합니다. 왜 물건을 훔칩니까? 훔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무시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망령된 일이라고 합니다. 망령된 일이란 언약을 주신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의미입니다. 아간의 범죄는 자기 한 사람의 사소한 도둑질이 아니라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 그들과 함께계시는 여호와를 모독한 망령된 일입니다. 아간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해서 눈앞의 금과 은과 외투를 탐내어 훔치고 탈취했지만, 하나님은 아간의 이 행동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독한 언약 파기와 망령된 행동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구성원 하나가 욕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죄가 거룩한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도록 아이성 전체의 패배로 연결시켜 그들을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이 패배의 원인이 되는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고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언약을 파기하고 망령된 일을 행한 죄의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12절이죠.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3절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 제하기 전에는 너희 대적을 당하지 못하리라”
신약의 한 사건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과 유사합니다. 성령으로 태동해서 성령의 역사로 부흥하고 있던 초대교회에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고 인간의 욕망이 끼어든 아나니아 삽비라 사건 아시죠? 바나바가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모습이 부러워서 자신의 재산 전부를 바치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절반을 감추고 절반만 드린 이 부부의 사건은 성령의 감동으로 유지되고 있던 초대교회를 인간적인 동기로 바꾸어놓는 시험의 단초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이 공동체에 퍼져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가 인간의 욕망 공동체로 변질되기 전에 그 죄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성령을 속인 이 부부의 도둑질을 죽음으로 엄벌하시고 경고하셨습니다. 그처럼 아이 성의 패배도 하나님의 역사로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진 기적 이후에 발생한 아간의 망령된 범죄를 일벌백계의 수단으로 삼아 이스라엘을 교훈하여 다시는 이런 죄가 공동체 가운데 발생하지 않도록 경고하신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의 거룩함은 회중 개개인의 거룩함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승리 이후에, 기적 이후에 놀라운 은혜 체험 이후에 마음을 놓는 방심과 교만으로 거룩함이 깨트려져 버리는 이런 실패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무기력하게 패배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숨어있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하십니다. 교회의 힘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가져야 할 힘이 무엇입니까? 다른 힘이 아니라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을 온전하게 흘려 보내주시는 통로입니다. 왜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교회의 크기나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거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거룩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누군가 숨은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며 교회가 그 죄를 분별하여 치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엎드려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옷을 찢고 티끌을 뒤집어쓰고 기도한 것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6-7입니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릎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여호수아가 가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시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지금 왜 패배했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왜 이렇게 무기력해졌고, 왜 여리고 성의 승리가 아이 성의 실패로 바뀌었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휴유증은 너무나 컸고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때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처럼 땅에 엎드려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합니다. 사실은 정탐꾼을 보내기 전에, 혹은 보내고 나서도 하나님 앞에 묻는 이 일을 먼저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의 승리에 도취해서 하나님께 묻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엎드려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왜 이렇습니까?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하나님 앞에 물을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죄를 드러내시고 그 죄를 제거할 수 있게 하십니다.
10-15을 다시 볼까요?“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맛서지 못하리라. 너희는 아침에 너희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 뽑히는 그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그 가족은 그 남자들이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엎드린 여호수아와 장로들에게 아이성의 실패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주십니다.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패배했습니까? 아간의 숨겨진 죄 때문입니다. 이 죄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망령된 일을 행한 이스라엘의 죄였습니다. 이 죄로 이스라엘은 그들과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할 수 없게 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숨겨진 죄를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여호수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장로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그 죄가 너무 중하기에 하나님은 이들이 엎드렸을 때 공동체 가운데 그 죄가 드러나게 하시고 그 죄를 처리할 수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작다고 생각하는 죄, 사소하게 여기는 죄가 교회 전체에 하나님의 부흥을 가로막고 오히려 큰 실패와 좌절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왜 우리가 쓰임을 받지 못합니까? 왜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승리의 통로로 사용되지 못합니까? 다른 이유 아닙니다. 거룩하지 못해서입니다. 지금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아이성 패배의 주범인 아간처럼 죽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들이 방자해지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들의 죽음으로 교회와 공동체의 거룩함을 유지하셨지만, 지금은 죽음 대신 죽음보다 더 중요한 경고를 주십니다. 교회와 공동체 전체에 성령의 감동을 거두어버립니다. 성령의 권능과 능력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죄를 이기는 능력과 예배의 감동과 기도의 감격을 실종시켜 버립니다. 모이는 데 힘이 없게 하십니다. 교회가 무기력하게 됩니다. 죽음보다 무서운 경고입니다. 우리의 목숨보다 귀한 게 성령의 감동입니다. 죄를 이기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것 없이는 살았으나 죽은 것과 같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떠한지요? 우리 공동체는 어떻습니까?
딤후 2:20-21을 찾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오늘 나의 숨은 죄는 무엇입니까? 오늘 내가 깨끗하지 못한 부분은 어디입니까? 다른 사람 탓하기 전에 나의 숨은 죄를 자복하고 나의 더러운 부분을 보혈의 샘에 나아가 씻는 저녁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