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지리산의 칠흙같은 밤. 여기는 연하천 대피소. 때는 2007년 10월 25일 밤, 밤 8시가 조금 지난 시각. 전기불도 없는 산장안은 캄캄합니다. 20평이 조금 넘는 산장안은 벌써 취침모드입니다. 종일토록 비를 맞으며 산행했을 산꾼들은 젖은 신발과 배낭, 옷가지를 여기저기 풀어놓아 그것들에서 뿜어 나오는 습기와 냄새에다가 30명이 가까운 인간들이 내어놓는 온갖 향기가 뒤엉켜 산장의 공기는 후끈 달아오른 듯 합니다. 마침 코가 좋지 않은 저는 냄새로부터는 그래도 어느 정도 격리되어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숨이 막히는 듯한 눅눅한 공기와 산꾼들이 내뱉는 잠고대와 코로 하는 풀무질 소리에 잠도 못들고 어둠속을 응시하며 눈알을 굴려 봅니다. 눈동자를 굴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머리도 같이 굴러갑니다.
코고는 산꾼들에서 저의 동료들도 제외되지는 않았습니다. 14시간이라는 고단한 산행을 끝내고 지친 몸을 침상에 내던진 동료 우명길군이 제 왼쪽편에서 소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제 오른쪽 자리에선 95kg의 거구인 정병기군이 Mt. Woo에 지지 않을 만큼 풀무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늘 존경하고 저의 사표가 되는 두 동료이지만 이 순간만은 존경의 념을 철회하고도 싶은 반역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고 중심을 보라는 그분의 말씀에 따라 저는 두 사람의 중심만 조사하고 코고는 소리는 잊기로 했습니다. 그분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실천할 수 없는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상황이 안 좋으면 제가 변해야 합니다. 잠은 내일이라도 더 잘 수 있는 것, 이렇게 좋은 장소에 왔으니 눈뜨고 날을 새워도 좋은 추억이지 뭐. 아님 될대로 되라지 뭐. 이렇게 아전인수적 자기합리화에 젖어서 폐쇄공포증과 자신의 무력함을 부정하며 뒤척이는 동안 제자신도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나 봅니다. 아까 마신 소주가 효과를 본 건가요?
까무룩하게 잠에 취했던 저는 제 옆에 어떤 존재의 기척을 느끼고 갑작스럽게 깨어났습니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그 존재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누, 누구, 누구요?’ ‘쉿, 조용히 하시오. 나, 인생이오. 얘기 좀 하러 왔소. 그러니 안심하고 텔레파시 화법으로 이야기 합시다.’
말하는 자의 표정이나 뜻은 정확히 전달되지만 소리는 나지 않는 텔레파시화법은 잠자는 사람들을 깨우지 않고 대화해야 하는 이런 때 사용하기에 제격입니다. 불자들은 연화시중 화법이라고도 하더군요.(저는 특허를 내 볼까 준비 중입니다만)
‘그럽시다. 그나저나 깜짝 놀랬잖아. 그런데 웬일? 설마 지금 떠나자는 얘긴가? 나 아직 준비 안됬는데. 나 천국갈 준비 아직 안됬다구. 근데 거기 가잔 얘긴 정말로 아니지?’ ‘안심하시오. 갈 땐 저도 같이 갈꺼니까. 남자가 겁이 많긴.’ ‘다행이다. 근데 참, 아까. 당신이 내 술 마셨지?’
저는 그제서야 인생이 찾아 온것이 파이널 솔루션(천국행)이 아니라 저를 도와주러(외로운 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온 것을 깨닫고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리고 제 술을 대신 마신 자를 찾아냈다는 사실에 제 자신이 제법 추리력이 있음에 감탄했습니다.
그날 저녁 대피소의 취사장에서 동료들과 같이 지어먹은 맛있는 카레라이스가 저의 최후의 만찬은 아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녀석이 한밤중에 갑자기 들이닥치기 전에 이미 어떤 신호를 미리 보내왔음을 아둔한 저는 그때서야 퍼뜩 깨달았습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그날 저녁 정사장과 나누어 마신 이슬이가 맛이 없고 남의 술 같았다는 말씀입니다.
연하천 대피소의 취사장은 분주했습니다. 저희 넷은 쌀밥을 짓고 봉지에 밀폐포장된 즉석카레를 덥혀서 맛있는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반주로는 제가 무거움을 무릅쓰고 지고 온 17kg의 짐 속에서 나온 네잎짜리 표시가 된 '이슬이' 한 병이 있었기에 정병기군과 제가 냠냠했지요. 서중원군은 피부질환이 있어 노 탱큐. 우명길군은 고급술인 맥주만 마시는 하이브로우한 취향인지라 노 굿. 그런 풍족한 상황에 감사하며 둘이는 ‘건배’하며 잔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술맛이 없었습니다. 목구멍으로 흘려넣는 술이 남의 술같이 느껴지고 제가 마시는 기분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몸에 피가 돌지 않을 때 감각이 없는 살을 우리는 남의 살이라고 하는 것처럼 제가 마시지만 흥취나 맛을 못 느끼고 기계적으로 넘기는 술을 남의 술이라고 해도 되나요? 아까 그 술을 인생이란 넘이 넙쭉 넙쭉 받아 마시며 그가 오늘 밤 저를 방문할 거라는 신호를 보낸거지요.
나 : 어쩐지 술 맛이 없더라니...당신이 아까 내 술 마셨지? 너 : 그렇소. 난 그저 내가 왔다는 신호만 보낸다는 게 그만 다 마셨지요. 미안해요. 나도 목마릅니다.
(저도 목마르다고? 주제에 술맛은 알아 가지고... 이제 드디어 제 인생과 제가 만난 겁니다. 대화의 기록을 간략히 하기 위해 저를 ‘나’로 표기하고 인생을 ‘너’로 표기합니다.)
나 : 이 야밤에 웬일? 나는 눈을 붙여 두어야 내일 12시간 이상 걸을 수 있는데. 너 : 늘 인생을 찾지 않았오? 그래서 온 거요. 잠보다 백배나 더 중요한 인생이 걸린 건데 잠은 포기하시오.
(인생도 쬐끔은 막무가네이네요. 이 녀석에게 술을 주지 말았어야는데.)
(사실 일주일에 한 번씩 산에 오를 때면 힘든 산행의 틈틈이 인생의 의미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잔머리를 짜내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언젠가 인생이란 녀석을 만나면 한 번 맞짱 떠 보려고 벼르고 있었답니다.)
나 : 좋다. 그렇다면 핵심으로 가자. 요번 대통령은 누가 되냐? 너 : 핵심이 겨우 그거요? 정치적 질문은 삼가시는 게 좋지 않겠오? 그러면 이 성스러운 장소가 오염될 터인 즉... 나 : 어떤 자가 말하길 인간은 정치적 짐승이라 했거늘 넌 인간도 아니냐? 너 : 짐승이 아니라 동물이오. 그리고 난 인격이 있는 인생이오. 인간의 다른 이름이지요. 당신의 말재주에는 내가 졌소. 당신께만 말하리다. 귀를 가까이 가져 오시오.
(그는 남들이 들을세라 제 귀에다 대고 소곤소곤 나지막하게 천기를 누설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는 텔레파시 화법이 아닌 보통화법이었습니다. 그도 중요한 얘길 할 때는 저처럼 보통화법을 쓰나 봅니다.)
나 : 고맙소. 비밀을 깊이 간직하겠소. 그건 그렇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리다. 인생이란 뭐요? 잘 먹고 잘 싸는 거라는 평범한 대답은 필요없오. 너 : 어려운 질문이오. 나도 그 답을 찾느라고 여태까지 당신을 찾아오지 못한 거요.
나 : 사실은 알고 있지? 말해 봐. 너 : 말하리다. 그러나 듣고서 실망하진 마시오. 인생은 대체로 고(苦)요. 원하지도 않는데 태어나서 만나고, 약속하고, 한 때는 눈멀어 사랑하고, 그래서 기다리고. 헛된 희망에 가슴 졸이다가 뜻도 모르는 미망의 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힘없이 떠나 보내고. 기약없는 약속과 허전함에 시달리다가 퇴장의 휫슬이 불면 무대뒤로 사라지는 거요. 산에 올랐다고 희열을 느끼지만 곧 내려가게 되오. 당신의 인생도 예외는 아니오.
나 : 무어라고. 이 놈이! 너한텐 인생이 겨우 그거냐? 지금 한 말 너, 농담이지? 그렇게 힘든 거라면 미쳤다고 태어났겠느냐? 내 이 놈을 그냥....
(저는 흥분한 나머지 제 배낭 속 어딘가에 있을 불란서 상표가 찍힌 라푸마 스틱을 꺼내려고 팔을 뻗었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저는 무언가에 제압 당한 듯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인생이란 놈이 장난쳐서 저의 아드레날린 레벨을 낮추었나 봅니다.)
너 : 흥분을 가라앉히시오. 그리고 나한테 욕하지 마시오. 당신이 저한테 욕하는 건 제 얼굴에 침뱉기요. 그리고 난 당신에게 존대하는데 당신은 왜 말끝마다 날 하대하는 거요. 나 : 이 녀석이 조동이는 살아서. 그래. 그렇담 그건 미안하다.
너 : 당신은 인생을 어떻게 정의 하시오? 나 : 나? 내 인생이 너보다는 낫지. 그분이 그러시는데 그 분의 말씀만 순종하면 부우자 되고 예쁜 여자도 얻고 명품 와인을 마시다가 천당으로 간다고 하더라. 자녀들은 물론 일류대학에 덜컥 붙고 좋은 직장에다 범사가 술술 풀리고...
너 : 가관이오. 십일조는 하셨수? 그래서 당신의 인생이 그랬소? 나 : 아직은 아니다. 그래도 해석하기 나름 아니냐? 그리고 난 아직도 기다린다. 명품 와인을. 그리고 지리산에 온 김에 그분도 만나고 싶다. 찾아줄래?
너 : 저질스럽소. 실망이오. 당신 교수 맞아? 인생관이 겨우 그거요? 그 따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성스러운 이 산에서 하산하시오.
(인생의 일격에 저는 뜨끔하긴 했지만 저의 못 난 모습을 인정하긴 죽어도 싫었습니다. 알량한 자존심이라고나 할까요.)
나 : 뭐라고 네가 날 비판해. 60 평생 내가 너한테 사 준 술이 얼만데.
(인생에 술 사준다는 얘길 꺼내니 우명길군 얘기가 생각납니다. 그는 술집에 가면 늘 옆에 앉은 자기 인생에게 술을 사 주었는데 술값은 늘 자기가 낸답니다. 이게 맞기는 맞는 야급니까?)
너 : 술값은 김씨들이 내더이다. 김남진군과 김주홍군의 사모님인 김여사. 그리고 지난 번 대취하던 날은 제자가 내고 택시로 집까지 모시고... 나 : 이걸 그냥. 그만두지 못 해? 넌 내 비리나 캐려고 온 거냐? 날 씹어서 좋을게 뭐냐? 제 얼굴에 침뱉기지. 너 : 그말도 맞소. 그만 둡시다.
나 : 그럼 넌 정말 인생이 뭐라고 보냐? 너 : 물 흐르듯이 조용히 사는거요.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 그리고 약속한대로 살되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게 인생이오. 소망이라고도 하오.
(조잡하고 거칠은 저의 조야한 인생관이 저의 파트너인 인생이란 녀석을 꽤나 실망시켰나 봅니다. 우둔한 저이지만 그 넘의 이야기가 사실은 옳다는 걸 꿰뚫어 본 거지요.)
(기나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사실은 침묵은 아닙니다. 옆에 좌청룡 우백호처럼 저를 호위하며 누운 두 사람, Mt.우와 정사장의 풀무소리는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게 있어 누추한 장소를 마다 않고 찾아온 인생과의 조우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그가 저를 평가한 저질이라는 한 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와 닿았고 제가 받은 충격은 정녕 심각했기에 제게 그 소리들이 들리지 않은 것 뿐이었지요. 결국 저는 제 옆에 앉아서 저를 추궁하고 있는 무거운 존재인 인생이란 넘의 야그에 기가 꺾이고 말았습니다.)
나 : 네말이 맞는 것도 같다. 늘 들어 온 좋은 얘기니까. 사실 난 내 인생이 좀 더 화려하길 바랬는데... 너 : 진리는 평범한 곳에 있는 법이요. 마음을 가라앉히시오.
(잘 났어 정말,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걸 참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그가 모욕감을 느낄 터이니까요. 저는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나 : 그래. 다시 물어 보마.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느냐? 너 : 물론이오. 당신도 느끼지 않소. 나 : 이 산엔 구원이 있냐? 너 : 그렇소. 반야봉이 있지 않소.
나 : 카톨릭도 되냐? 너 : 대자대비한 부처님은 차별이 없으시오. 나 : 고맙다. 내일 구원의 배라는 반야용선은 뜨냐? 너 : 떠도 타진 마시오. 당신은 할일이 아직 많지 않소.
나 : 네 말이 맞긴 하다. 그러나 이젠 나도 지쳤다. 그 배를 타고 쉬고 싶기도 하다. 너 : 약한 마음 보이면 싫소. 그리고 저도 당신처럼 존중받고 싶소. 말이나마.
나 : 반말 써서 미안하다. 친밀의 표시로 아시오. 나는 천당가게 예정되어 있소? 너 : 물론이오. 확신을 가지시오.
나 : 어떻게? 너 : 산에 확실하게 다니지 않소. 당신의 산이 당신의 천국이오.
(山卽天國이라! 겨우 그걸 답이라고? 화를 낼 수도 없고...)
(인생과 화해하고, 천국의 약속을 확인한 저는, 그 천국이 산이라는 대답에 미심쩍은 마음이 들고 찜찜하기도 했지만 열네시간이나 걸은 전작이 있었기에 다시 죽음같은 잠의 나락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눅눅한 공기를 한 입 가득히 마시면서 말입니다. 젖은 양말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에 진저리치고 좁은 공간에 갇혀서 폐쇄공포증을 느껴야 할 정도의 열악환 환경이었지만 잠이 주는 카타르시스, 이 넘은 그걸 즐겼습니다. 거기가 마치 천국이나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날 밤 제가 가장 늦게 잠들었기에 저의 풀무질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보고가 안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비밀이 벗겨지지 않은 신비의 인물로 남아 있는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