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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Seed Money
카페를 나와 민재와 제니가 밤공기를 마셨다. 민재가 시계를 보면서 제니에게 말했다.
“아아~ 벌써 밤 10시가 다 됐네.”
“글쎄, 저녁 7시에 식사 시작했는데 두 시간~ 식사 후 카페에서 한 시간 ~ 정말 시간이 잘 가. 빨리 지난 걸 보니 오늘은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어.”
“그랬다면 함께 한 저녁 시간이 유익하고 좋았던 거네. 아~ 저기. 택시!”
마침 카페 앞에 손님을 내려주던 택시를 민재가 세웠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존과 제니! 둘이 사귀는 사이나 보네. 둘이 서로 Tongue & Groove 하는가 본 데. 부럽다. 누구는 운전하느라 정신없고.”
같은 회사 택시, 제임스가 운전하는 택시였다.
“누구야? 제임스네. 장난이 좀 지나치구먼. 야간 운전 중이네. 우리 좀 태워줘. 제니! 타자고. 집에까지 바래다줄게.
나도 내 차 그대로 두고 이 택시 타고 집에 가려고. 아직 얼굴에 와인 마신 티가 나잖아. 택시 타고 집에 가.”
민재가 제니더러 택시에 타자고 하는데, 제니가 머뭇거렸다.
“아냐. 좀만 쉬면 다 나아질 거야. 그럼 그때 내 택시 타고 갈 텐데. 뭐.”
“제니! 존 말대로 해. 어서 타시라고. 내 두 사람 위해 택시 요금은 free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택시 타 보겠어?
택시 운전사가 조금이라도 알코올 기운으로 차 몰면 안 되지.”
제임스의 제안에 제니가 민재 뒤를 따라 택시에 올라탔다.
“제임스. 고마워. 오늘 보드 멤버 당선 기념으로 동료들과 저녁 먹고 이제 제니랑 남은 거야. 제임스도 나중에 내 밥 한번 살게.”
“존. 고마워. 보드 멤버 입성에 축하해. 이번 보드 멤버로 입성하면 할 일이 많을 거야. 다행히 존, 필립, 키란이 들어가니 기대하는 바가 커.
지금 남아있는 데이비드와 의장 다니엘이 보통내기가 아냐. 다니엘 의장 임기는 1년 남았는데, 이번 세 명이 입성해 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놓아야 해.
다니엘 의장이 3번째 연임 회장이잖아. 1, 2회 때 의장 시절엔 회사를 위해 꽤 열정적으로 일해 좋은 실적도 쌓았거든.
이번 3회 연임하면서부터 다니엘이 딴 주머니를 찼다는 등 소문이 무성하거든. 재정 회계 부문을 잘 파악해봐.
회계 보는 여직원도 한통속이라는 이야기가 돌더라고. 재정 회계 부문을 잘 살려야 돼. 거기서 새면 회사 경영에 타격이 크거든.“
제임스가 존과 제니에게 열변을 토했다. 제임스 말에 민재도 놀랐지만, 제니가 눈을 부릅뜨고 듣다가 제임스에게 물었다.
“제임스. 나, 제니가 그래 봬도 호주 회계사 출신이거든. 듣고 보니 회사 자금 관리 문제가 상당히 진행된 것 같네.
난 회계 장부 보면 새는 돈 줄 빠져나가는 것 바로 알아. 지금 회사 회계 보는 자가 누구인가?"
민재와 제임스가 제니의 날카로운 지적에 깜짝 놀랐다. 제인스가 답했다.
"사라야. 다니엘 사촌 동생이라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꽤 약삭빠르거든. 자기 이익에 엄청 예민하고.“
“그럼 전년도 회사 회계 장부 철을 보면서 확인해봐야겠어.”
“제니. 700명 주주에게 30 페이지짜리 전년도 회계 보고 철 다 배포했거든. 내 집에 있는 것 한 부 복사해서 제니에게 줄 테니까 먼저 살펴봐.”
민재가 흥미롭다는 듯이 제니의 역할에 기대를 걸었다. 제임스 역시 꽤 큰 반전이 예상된다는 듯 흥미를 느꼈다.
제임스가 제니 집에 도착해 그녀를 내려주었다. 존이 사는 곳으로 가면서 둘이 다시 대화를 나눴다.
“제임스가 지난번 임기 2년을 다니엘과 함께 보드멤버로서 일해 봐서 알 거 아냐? 미심쩍은 것이 있다면 알려줘. 수시로. 생각나는 대로.
그걸 토대로 내 작전을 짜 볼 테니까. 토니와 키란과 연합하면 잘못된 관행은 막을 수도 있으니까.”
“잘됐네. 이제 좀 희망이 보이는구먼. 부디, 그렇게 체크해 다니엘 만행을 차단해야지. 사람은 끝까지 잘해야 하는데, 다니엘의 초심이 꽤 많이 변했어.”
존과 제임스가 다니엘과 관련한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았다. 서로가 공감하는 이야기에 고무되었다.
존을 내려주고 떠나는 제임스 택시를 한참이나 바라다봤다. 민재의 생각이 여러 사실을 넘나들었다.
멀리서 보면 그런대로 좋게 보인다. 가까이서 살펴보면 잘못된 것이 꼬이고 얽혀있다. 오클랜드 택시 운영이 딱 그랬다.
50년 전통의 탑 택시 회사로서 남 보기에는 전문성과 택시 운전사 서비스 체계가 뉴질랜드에서 제일 앞섰다.
개인 오너가 없는데도 합리적인 운영으로 잘 계승 발전해 왔다.
최근 들어 약간의 적자운영을 운운하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쓸만한데도 택시 모뎀을 최신형으로 돌연 바꾼 걸 두고도 그랬다.
700대 모든 차에 적용하다 보니 과다 비용 소비라는 지적이 나왔다. 공개 입찰 방식 없이 성급하게 한 업자와 비싸게 계약을 맺었다.
그 비용을 주주(share holder)운전사에게 5년 동안 나눠 부과시키는 방식으로 맺은 것이 불만이었다. 민재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내가 이번 보드 멤버로 입성하게 되었잖아. 보드멤버로서 운전사들을 대표해서 주도적으로 책임 있게 일을 해야 해.”
민재 성격상 그런 불의는 도저히 묵과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해병대 근무 시절, 윗선 상사의 병사들 부식 부정 사건이 문제 된 적이 있었다.
부식 납품 업자와 결탁해 커미션 받고 질 낮은 부식을 반입한 건이었다. 그 문제를 민재가 과감하게 감찰해서 바로잡은 경험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당시, 민재는 상부의 회유와 압박에도 영창 갈 각오로 지혜롭고도 강하게 밀어붙였다. 어디 그 성격이 유야무야하겠는가.
“전투면 전투, 업무면 업무로 군인정신이 투철한 그때 시절로 돌아가면 뭘 못하겠는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해병대의 위상을 보여줄 때가 왔어.”
이번에 보드멤버 임기를 마치고 평 운전자로 돌아오는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민재 뇌리에 떠올랐다.
아이작이었다. 의장 다니엘l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운 키위, 뉴질랜드 현지인 백인이었다.
트래킹을 즐기는 자로서 민재와 베델스 비치에서 산행 중 만난 적도 있었다. 교회에 다니는지, 식사 때마다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도 달리 보였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보드 멤버 중 동조 세력이 부족해 표결 대결에서 줄줄이 뒤로 밀리는 아픔을 겪은 이야기도 언뜻 생각났다.
“제임스와 아이작을 함께 아리랑 가든에 초대해 식사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어. 향후 보드멤버로 일하면서도 여러 자문이 필요할 때도 많을 테니까.”
***
민재가 국내선 공항에서 30 분 기다린 후에 예약 손님을 맞으러 갔다. 북섬 남단 더니든에 출장 다녀오는 Ace Milk, 단골손님 그레이엄이었다.
어제 아침 공항에 데려다줬는데, 다음날 오후 1시에 픽업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4번 출구에서 기다리다 그레이엄의 캐리어를 받아들고 택시로 왔다.
“그레이엄. 얼굴이 아주 밝고 여유가 있네. 어제 출장 일이 잘된 것 같아.”
“존. 보는 눈이 대단해. 존 말대로 어제 더나든 낙농업자들 만나 계약 갱신을 잘 끝냈어. 요즘, 우리 Ace Milk 주문이 전 세계적으로 쇄도하거든.
낙농업자들 추가 확보관리와 물류 운영 시스템 개선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어.“
민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택시를 몰아 푸케코헤 Ace Milk 공장으로 향했다. 마누카우 방향 다리를 건넜다.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초원 목장에 낙농 소 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뉴질랜드 특유의 여유롭고 평화스러운 풍경이었다.
공기 맑고 풀 무성한 뉴질랜드 천연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니, 밀크의 신선도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레이엄. 이런 추세면 Ace Milk 전망이 아주 좋은데. 부러워. 정말.“
“존. 그래서 말인데, 나는 요즘 우리 회사 Ace Milk 주식을 적금 드는 개념으로 사놓고 있어. 경력이 오래된 직원들도 그렇게들 하더라고.
내 은퇴 시까지 계속 사 모으려고. 은퇴하면 그 주식만 팔아도 은퇴 노후 자금은 충분할 것 같아. 나는 우리 회사 직원이면서 주주, share holder야.
존도 여유 있고, 관심 있으면 우리 회사 주식 사서 10년 아니면 20년 정도 묻어놔 봐. 나처럼 노후에 유용한 은퇴 자금으로 쓰게 말이야.“
그때 진한 장미 향기가 그레이엄으로부터 풍겨 나왔다.
“아, 이건 또 뭐야! 믿고 맡기라는 것인가. 200만 달러 중 1/10은 사회 환원을 위한 종잣돈, Seed Money로 생각해 왔잖은가.
떼어둔 돈 말이야. 그래, 현재 남은 은행잔고 150만 달러 중 한 20만 달러 정도 눈 딱 감고 10년, 20년 묻어 놔봐? 없는 셈치고. 그 때는 유용할 거야."
민재 생각이 여기에 머물자, 그레이엄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나, 뉴질랜드 와서 주식 안 해봤거든. 요즘 Ace Milk 주식 얼마나 하지?”
“2001년 현재 12월, 주당 38센트에 거래되고 있어. 요사이 뉴질랜드 사람들은 주식에 큰 관심이 없더라고. 잘 판단해.
뉴질랜드에서 단기 투자로 수익 실현이 힘들어. 뉴질랜드 국민성만큼이나 느긋해야 해. 우리 Ace Milk 같은 우량주를 여유분으로 오래 가지고 있어 봐.“
민재의 가슴에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얼른 암산으로 한번 계산해 봤다.
‘주당 40센트로 산다고 쳐도 20만 달러를 투자하면 50만 주나 되네. 우~와!‘
민재가 정색을 하고 그레이엄에게 투자 방법을 묻자, 친절하게 알려줬다.
“뉴질랜드 증권사에 찾아가 물어봐. 믿을 만한 직원에게 부탁해 두면 되지. 아 참, 내가 아는 이가 쇼틀랜드 스트리트 K 증권사에 일하거든.
가브리엘이야. 마침 그 명함이 내게 있어. 이거 받아 두고 한 번 찾아가 봐. 내 이름 그레이엄을 대면 친절하게 도움을 줄 거야.”
“내친김에 오늘 가브리엘 찾아가서 투자 상담하고 그레이엄에게 연락할게. 이 고마움의 표시로 꼭 우리 한국 전통 음식점에 그레이엄을 모실게.”
“나야 뭐. 정말 감사하지. 기다릴게. 한국 음식 소문났던데.”
민재가 그레이엄과 헤어지며 손을 흔들었다. 민재 얼굴에 기대와 희망이 그려졌다. 모터 웨이를 달리며, 유리창을 내렸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20년 전으로 회귀한 마당에 달라진 것이 분명해졌다. 그냥 스쳐 지나갈 인연에서도 뭔가 툭 툭 걸러지는 것들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하늘이 준 기회다. 내 하고 싶은 일에 유용하게 잘 써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운전하는 사이, 시내 쇼 트랜드 스트리트에 들어섰다. 그레이엄이 말한 K증권사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20만 달러 여유 자금으로 장기 투자를 한다고요? 그것도 Ace Milk 50만 주를 단계적으로 매입할 거라고요?”
상담해주던 가브리엘이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웬, 이런 대고객이 오셨을까? 하며 반기는 기색이었다. 민재를 VIP로 증권사 사무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차근차근 Ace Milk 주식에 관해 설명을 해주었다. 증권 계정을 만들고 장기 투자 전략을 들려줬다. 뉴질랜드 주식 분석 안내 소책자도 한 권 받았다.
“뉴질랜드 증권 시장이 조용하니 순차적으로 20만 달러 한도 내에서 매입하기로 해요. 10만 주를 먼저 매입하고 나머지는 주식 장세를 봐가면서요.”
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브리엘이 준 증권계약 서류와 Ace Milk 주식 관련 자료를 들고 증권사를 나왔다.
주차장에 댄 택시를 향해 걸어 나오며, 퀸스트리트 데어리 슈퍼에서 Ace Milk 한 병을 샀다.
우유 병마개를 돌려 따서 바로 목에 털어 넣었다. 맛이 참 순했다.
“이제부터 나도 Ace Milk의 주주네. Share Holder! Thanks to God!!!”
올려다 본 뉴질랜드 하늘이 한없이 맑고 푸르렀다.*
11화 끝 (5,543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