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3:23-38, 예수님의 족보, 24.4.14, 박홍섭 목사
오늘 본문은 77명의 이름이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로 누가복음의 서론과 본론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합니다. 마태복음이 1장 1절 처음부터 예수의 족보를 언급하면서 시작한다면 누가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 3장의 마지막 부분과 사탄에게 시험을 받는 4장 사이에 의도적으로 이 족보를 배치해서 두 사건의 의미를 연결합니다.
23절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라고 하면서 족보를 말합니다. 그 앞에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까? 주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하늘이 열려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나의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습니다. 물세례를 받아 우리와 같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성부와 성령이 공식적인 인증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는데 누가는 앞으로 행하실 주님의 사역이 어떤 의미와 성격을 가지는지를 족보를 통해 설명합니다.
문제는 이 족보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으로 나오는데 누가복음은 헬리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23). 마태복음은 다윗 이후의 계보를 솔로몬으로 연결하는데 누가는 솔로몬이 아니라 나단으로 연결시킵니다(31).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은 요셉의 혈통을 따라 기록했고, 누가복음은 마리아의 혈통을 따라 배치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법적 계보, 실제 혈통의 족보, 형사취수 제도로 인한 이름의 변경, 양자론 등 여러 해석이 있지만 모두 확실한 성경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분명한 성경적 증거가 없는 내용에 매달려서 그 의미를 억지로 풀려고 하기보다는 이 족보가 강조하는 핵심만 파악하는 것이 지혜롭고 겸손한 성경해석입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에게로 내려오는 하향식 족보였다면, 누가가 소개하는 족보는 예수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에게까지 올라가는 상향식 족보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가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강조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왕적 메시아임을 부각시킨다면,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이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새로운 인류의 조상임을 강조하기 위해 다윗과 아브라함을 넘어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인류의 첫 조상 아담을 넘어 하나님에게까지 올라갑니다.
어떤 의도입니까? 사람들은 예수는 요셉의 아들로만 알고 있는데, 요셉을 낳은 조상을 위로 추적하여 올라가니 다윗이 있고 아브라함이 있고 아담이 있고 하나님이 있습니다. 요셉의 후손처럼 보이는 예수님이 사실은 요한에게 세례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렸던 소리처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아담처럼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로 보내시되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를 통해서 둘째 아담, 혹은 마지막 아담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죄와 사망의 왕 노릇을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 구원으로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롬 5:12-19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러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바울은 누가가 족보로 암시한 하나님의 아들이 요셉의 아들이 되신 이유를 대표의 원리로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표이십니다. 우리를 대표할 뿐 아니라 대신하여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첫 아담이 가지고 온 죄와 사망에서 건져 의와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둘째 아담이십니다. 이어지는 누가복음 4장은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첫 사람이 아담이 실패한 시험을 둘째 아담으로 승리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대표가 되신 주님은 그의 공생애 내내 사탄과 마귀의 권세를 이기시며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고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누가 이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까? 누가가 족보를 통해 말해주는 것처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의 구주로, 나의 왕으로, 나의 대표로 믿어야 합니다.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편입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첫 사람 아담의 후손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죄와 사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창 5:1-31을 보십시오. 아담의 족보입니다. 이 족보를 요약하면 “낳았고 살았고 죽었다”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음이 끝인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인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오면 어떤 특징이 두드러집니까? 마 1:1-16입니다. “낳고, 낳고, 낳고”입니다. 의도적으로 “죽었더라”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가져온 죽음을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으로 바꾸신다는 뜻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가져온 죽음의 한계와 절망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죄 없는 주님이 죄인의 족보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당신의 생애로 율법의 의를 이루시고 십자가로 죄의 삯인 죽음을 해결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가 되기 위하여 부활하여 생명을 주십니다.
누가는 그런 예수님을 족보를 통해 유대인들만 위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이 족보에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름도 다 연약해서 넘어지고 쓰러진 죄인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평범한 죄인들의 역사와 족보 속에 하나님이 아들이 둘째 아담으로 들어오셔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은혜 언약의 중보자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예수 믿고 어디든지 주님과 함께 가면서 주님이 주시는 이 복된 생명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 그리고 이웃들이 이 생명의 족보 안에 들어와 믿음의 계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이루신 구원의 복음을 잘 전하고 가르치고 지키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