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사스의 사람들" 1
2024 예술마당 ‘솔’의
‘코카사스의 인문학’ 답사를 다녀와서
최 재 우
하녀 그루쉐 (Grusche Vachnadze),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대표 희곡 “코카사스의 백묵원”이란 작품 속에서, 반란으로 숨진 총독의 어린 아들을 숨겨 북쪽 산악지역으로 도망친다. 무장 기병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그루쉐는 매우 험준한 지형의 코카사스 산맥 (카프카즈 산맥 )의 산악지역을 힘겹고 아슬아슬하게 넘어간다. 자기 자식이 아닌 어린아기를 구하는 과정에서 "잡혀서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낭떠러지로 떨어셔 죽"음을 택하겠다는 하녀 그루쉐가 보여주는 극중 행동은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을 넘어서 어리석을 정도로 순수한 성품을 낳은 모성이 아니라 기른 모성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여준다.
매정하게 자식을 버리고 도망친 총독부인은 극의 말미에 다시 나타나 뒤늦게 아이의 친 어미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보이는 행동을 통하여 브레히트가 말하고자 하였던 주제는 그 후 세계 곳곳에서 각자의 공연을 만드는 배우와 연출가들이 표현하는 인물들의 캐릭터에 따라 주제가 달라지는 변주가 일어난다.
그리하여 하녀 그루쉐와 총독부인이 아이를 두고 소위 기른 모성과 낳은 모성 사이에서 재판이 벌어진다는 것이 극의 전체적인 줄거리다. 나의 ‘코카사스 인문학 답사’는 이대우 교수(경북대 노어노문학과)의 깊고 풍부한 해설을 따라가는, 아직까지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는 오늘의 그루쉐와 조지아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 - თბილისი)에서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밀리터리 하이웨이를 몇 시간을 달리면 도착하는 산악마을 스테판츠민다에 서면 저 멀리 만년설로 덮힌 카즈베기산 정상부의 하얀 설산이 운무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였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가 묶여서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혔다는 신화 속의 카즈베기 산과 게르게티 트리티니 수도원 (성 삼위일체 수도원), 그리고 산악지역의 스테판츠민다 마을.
바로 그 마을에서 게르게티 수도원이 있는 산으로 가는 도로가 지금은 포장되어 산악택시를 이용해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 있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포장도로의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걸어서 트레킹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희곡 “코카사스의 백묵원”에는 늙은 농부, 젊은 농부, 노동자, 상이군인, 아낙네들, 하녀, 병사, 총독, 살찐 영주, 의사, 건축기사, 몸종, 유모, 요리사, 수사, 거지와 장사꾼 등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공연을 보거나 희곡을 읽으면서 그 많은 인물들이 우리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정서랄까 인간성이랄까 그런 것들이 왠지 한국 사람들 하고는 전혀 질감이 달라서 한국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인물들을 표현해야 할지 깊게 고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번 답사에서 만난 조지아 사람들의 현실적인 인물들은 가상의 공간인 극장의 무대에서 만났던 인물들의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 중 가장 선명하게 인상을 남긴 조지아 사람은 그날 이란 · 러시아 · 조지아 그리고 대한민국의 다국적 답사반을 안내하였던 조지아 청년 이었다. 비록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하루를 온전히 함께한 우리는 강행군한 하루의 일정이 무척 힘들었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함께 대한민국 가수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를 합창하였다. 가난한 화가의 슬픈 사랑을 노래한 러시아 노래로 알려진 이 노래는 본래의 원곡은 국력이 약한 조국의 운명을 노래한 라트비아의 노래 “마라냐가 준 소녀의 인생”이라고 한다. 음악은 인종과 국적을 넘어선다는 말처럼 다국적 답사객들은 이 노래를 각자의 언어로 혹은 허밍으로 함께 따라 부르면서 돌아가는 밤여정의 피로를 달랠 수 있었다.
다국적 답사객들을 안내한 조지아 현지 가이드의 이름은 게오르기였다. 그는 가이드도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있다고자기 소개를 간단히 한 후 조지아 국장 문양을 새겨놓은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보여 주며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한참 조지아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쳤다(?).
조지아의 전설 속 영웅인 성 게오르기우스(영어로는 세인트 조지)는 조지아 국장의 중심 이미지로 사용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십자가창으로 악룡을 물리치는 장면의 조각이나 그림으로 남아있었다. 이 장면은 최후의 만찬과 더불어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작품 소재 중 하나로 우리는 이번 답사에서 방문한 거의 모든 성당 안에서 다채롭게 변주된 다양한 이콘으로 만날 수 있었다 .
성 게오르기우스에서 이름을 가져온 젊은 게오르기는 미니버스 안에서 끊임없이 조국 자랑을 늘어 놓는 "조지아 국뽕" 청년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와인을 제조하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미네랄워터 보르조미의 생산국, 떠오르는 세계 최고의 관광국으로서의 위상, 수 천 년 동안 외적의 침입을 극복한 가장 강인한 민족,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망간 광산 등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은 큰 자부심으로 가득하였다. 연중 카프카스 산맥의 꼬부랑 고갯길을 넘어가는 25톤 덤프트럭이 48,000 여대나 된다는 이야기는 과장이 아닐까 할 정도였지만, 돌아가는 길을 재촉해야 하는 순간에도 단체 촬영을 위하여 버스 기사를 설득해 주는 세심한 배려심을 가졌기도 하였다. 조지아의 국뽕 청년 게오르기는 그날 만만치 않았던 우리의 여정을 안전하게 이끌어 주면서 수백년 전 성 게오르기우스를 각인시켜 주었다.
성 게오르기우스는 성당의 이콘들 속에서 뿐만아니라 트빌리시의 명소인 자유광장 한가운데 우뚝선 거대한 오벨리스크 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악룡을 물리치는 황금빛 게오르기우스는 불의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하는 조지아 사람들의 의지를 보여준 장미혁명을 상징하는 듯 하다.
2003년 11월 손에 붉은 장미를 든 조지아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유광장 성 게오르기우스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부패한 집권세력은 마침내 물러나고 조지아는 민주주의를 되찾았다. 역사는 이것은 장미혁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듬해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그리고 이어진 키르기스스탄의 튤립혁명의 동인이었다고도 한다. 그날의 터질 것같은 긴장감은 한점의 흔적도 찾을 수 없이 오늘의 자유광장은 너무나 평온하게 멀리서 찾아온 답사객들을 무심하게 맞아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