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강가에 서면
이강은
겨울 강가에 서면
기슭을 나뒹구는 높바람이
날 선 발톱을 키워 살갗을 할퀴고 지나간다
그해 여름 누가 버리고 간
광채 번득이던 언어의 파편들이
멍든 강물 위를 떠다닌다
간간이 터지는 카메라 셔터음은
추위에 언 파란색 웃음을 저장하고
군고구마 두터운 바람 겹겹이 싸
한 입 베어 물면
그러안을 추억도 함께
입안에 가득히 들어온다
인썸니아
감은 눈앞에 섬광이 스치고
어수선한 생각이 몸을 일으켜
허리 꼿꼿이 벽에 기대어 앉는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빈 지면과 눈싸움 시작하면
새벽을 탐하던 쇼팽의 녹턴은
펜 끝이 쏟아낸 첫말을 어지럽힌다
제어할 수 없는 잡념들이
저마다의 구실대로 심장의 끝에 집을 짓고
포도 진액의 힘을 빌려도
답을 얻지 못한 내가
불가역의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불 켠 채로 아침을 맞는다
당신도 그런 적 있나요
당신은
기차를 놓친 낙오자처럼
자정을 맞은 밤이 몸을 움추려
플랫폼에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을 본 적 있나요
당신은
머무는 순간마다 밀집도를 덜어내
헐렁해진 공간에서
영혼 없는 유령처럼 표정 없는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이동해 본 적 있나요
혹은 늙은 역사에 남은 서너 명만이 정적을 두르고
눅진한 여름밤 허기를 그리움으로 채우는 모습을
본 적 있나요
개폐장치를 통과해 나온 사람들은
폐부에 공기를 채우며
잰걸음을 재촉해 사라져가고
빈 거리엔 나 혼자 서 있습니다
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도시의 가장자리를 서성이다가
퀭한 모습의 추억이라 이름 붙여진 놈과 마주하고
무한궤도를 덮은 채 말라버린 붉은 진흙 같은
토박함을 흉내 내던 그 얼굴을 보았습니다
엄마의 노을
엄마의 낡은 꽃치마가
봄바람에 펄럭이자
들판에 꽃들이 춤을 추었다
아침이슬 먹은 들풀을 밟을 적마다
하양 고무신에선
박새 우는 소리가 났다
허리춤에 매달린
생채기 난 엄마의 대바구니에 가득 찬 쑥 향기는
그리움 버무린 고향의 냄새
꺼진 눈가에 노을이 내려앉으면
시린 눈 닦은 손등 젖어오고
빼곡한 들풀을 방석 삼아 주저앉은 엄마가
먼 데 바라보며 엄마를 그리워했다
첫댓글 원고접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