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손주를 품에 안고,
마음 속으로 바라시는 것을 짐작합니다.
"너는 나같이 살지 말고,
고생하지 말고,
튼튼하게,
꽃 길만 걸어라!"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아장아장 걷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집니다.
무릎이 벗겨지고,
예쁜 색갈 빨간 꽃닢이 붙은 게 아니라
피가 흐르고 아파서 웁니다.
"여유 딱해라!"
"후우" 해주십니다.
그러면서 아가는 걷기를 익힙니다.
무릎에 딱지가 생기고,
그 딱지가 떨어지기를 얼마나 했을까요?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한번도 무릎에 상처 안 나본 아기가 있을까요?
몸의 상처만 아니지요.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 뿐입니까?
"엄마!" 말떼기 부터
평생 살아가려면 온갖 짓꺼리 다 익혀야 하려면
그 짓거리가 필요한 문제를 겪어야 했습니다.
아기가 엄마 얼굴 보면서 속내를 보여주고 싶어졌습니다.
기저기 젖어 축축하고 찜찜하다고...
배고파 젖 달라고...
피곤하고 졸려 "자장자장" 토닥거려 달라고...
배 아파,
머리 아파
살살 배 만져달라고,
이마에 시원하게 손 얹어 달라고...
그러려면
제일 먼저 "엄마" 소리내야 하지요.
거의 두살 되도록 말하지 않았던 둘째가 생각납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입을 여니 완전한 문장으로 속내를 보여줍니다.
힘든 걸 많이 참았구나!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오전반 오후반을 돌아가며 하던 시절에 큰 애가 학교 다녔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다녔던 때,
그러니 아직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던 때였지요.
"엄마, 학교 꼭 다녀야 돼요?"
아이가 묻습니다.
꽤 힘들었나 봅니다.
전학 수속 미쳐 못해,
이사하고 몇날 아이 데리러 가보니,
하루 아이가 벌을 서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왜 벌을 섰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리둥절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여섯 해 뿐일까요?
멀리 흩어져 사는 아이들과
주일 밤마다 얼굴보며 skype 합니다.
어제 며누리에게 들었습니다.
열 한살 손녀 아샤와 버스 여행하면서 나눈 이야기였답니다.
우크라이나 난민 아이들이 두명 한 반이 되었답니다.
그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가슴 아픕니다.
그 나이에 6.25를 겪은 나로서는
진짜 그 아픔을 같이 느낍니다.
교통 수단이 없어 한 더위에 마냥 걸어서
경기도 광주 아는 분 댁으로 소개(피난)가던 길,
그 때 네 살이 었던 큰 조카는 이미 세상 떴고,
삼개월 된 셋째를 업고 걸었던 새 언니는 또 어쩌고...
어려움은 우리를 늘 기다리고 있었지요.
아,
며누리와 아샤의 대화를 빼놓을 뻔 했군요.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직업을 가지려면
대학에 가야 하느냐고 묻더래요.
한 두 살때 발레하는 고생물학자가 되겠다던 그 아이가
이제 대학에 꼭 가야하는가를 묻게 되었지요.
글 읽기가 어려웠던 아이이니
초등학교도 이렇게 어려운데...
대학까지?
속이 복잡하겠지요.
그림 그리기,
춤추며 노래하며,
책 읽고,
동무들과 생일 파티하고,
교회에서 밤샘모임도 하고,
축구, 정구, 벽 오르기, 바다 수영까지
온갖 활동을 즐기는 아이가
어른 되려면
어려움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 아이는 다행이
아직 의과대학 준비하는 학원에는 안 가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모두
한번씩 전공을 바꿨다는 이야기도 했답니다.
우리 모람 최 영은선생의 따님이 전공을 바꾸고
첫 학기에 전과목 A학점을 받았답니다.
따님도 우리 젊은이 모임에 중요 멤버입니다.
전공을 바꾼 것 축하한다 했습니다.
아마 그 부모님도 다 기뻐하실 겁니다.
그러려면 아픔이 있었을 겁니다.
아픔이 없었다면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니까요.
우리 모람 가운데 이혼하고 재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아우들이 있습니다.
우리 모람 가운데 몸이 아파 고생하는 아우들도 있습니다.
아픈 것을 그대로 놔 두지 않습니다.
고치려 합니다.
문제를 풀려고 애쓰고 노력하면서
그렇게 풀어가면서
지혜롭게 되고,
바뀌고,
자라고,
영글어 갑니다.
물론
늙어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 평생 아파야 하는 것을 고마워 합니다.
아픔에 쉬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파야
자라고,
바뀌고,
영글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튼튼하게
같이 삽시다.
ㅁㅇㅎ
첫댓글 어제 아버지 뵙고 왔어요. 아버지가 요즘 물을 많이 드시고 싶어하시는데 자꾸 사래 들려 기침을 하시니 의사가 폐로 넘어가 폐렴이 될까 염려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물 드릴때 조심하며 조금씩 드시라고 여러번 말씀드리니 아버지께서 "너무 겁내지 마라"라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평생을 사셨는지 알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