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시간의 키스
두 사람은 축제가 벌어지는 왕국을 굽어보면서 왕국의 뒤쪽 흙산을 천천히 오른다. 흥겨운 풍악소리와 노래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전망이 좋은 누대에 올라보니 하늘엔 초승달이 비스듬히 걸렸다. 아득히 먼 남쪽 끝엔 타클라마칸 검은 사막이 있다. 무수한 별들이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반짝거린다. 북두칠성이 기울어지면서 두 사람의 머리위로 은하수를 쏟아 붓는다. 이제 우리는 해동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언제 어떻게 떠나지. 만나기도 어렵지만 떠나기도 어렵다. 공주는 어떻게 왕국을 떠날 수 있을까?
이런 상념에 잠겨 있는 차에 공주는 ‘칼라다다님, 무슨 생각하는지 나는 알아요. 걱정마요. 우리는 떠날 수 있어요.’
‘적당한 때를 기다려 두 분 마마에게 잠시 여행을 다녀올 거라고 말씀드려야죠. 쿠차에서는 장래를 약속한 남녀가 같이 여행하는 것을 허락하는 풍속이 있거든요.’
‘그래요?’
어디선가 여우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칼라무드라가 돌아서면서 순례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칼라다나, 사랑해요‘라고 속삭이면서 입술을 갖다 댄다. 칼라다나는 공주를 껴안으며 달콤하고 깊은 키스를 한다. ‘공주, 사랑하오’ 두 사람의 혀가 입안에서 춤을 추면서 시간을 멈추게 한다. 쿠차의 밤이 깊어간다.
32. 쿠차를 떠나다
이제 떠나야 되는데 떠난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 특히 부모의 슬하를 떠나기는. 왕국의 미래가 공주에게 달려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 공주는 왕국의 기대와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으니.
둘이서 기회를 보다 말하기 좋은 때를 포착하려고 기회를 기다린다. 드디어 한 날 분위기가 좋은 저녁만찬을 마치고 두 사람은 두 분 마마께 아뢴다.
‘저희 두 사람은 이미 예정된 길을 떠나야겠습니다. 저희 앞에 예비된 운명을 찾아 가야하나이다.’ ‘아바마마, 영웅은 자고로 하늘에서 임무가 주어지는 법이죠.’ 그렇지 않아요? 아바마마.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찾았어요. 곧 떠났다가 사명을 완수하는 대로 돌아올께요.‘
왕은 서운하면서도 영웅, 하늘에서 부여받은 임무, 사명감 뭐 이런 수사(修辭)에 감동을 받아 엉겁결에
‘그래 대장부라면 당연히 고향을 떠나 이역하늘 아래서 하늘의 뜻을 따르고 소명 받은 대업을 성취해야지. 우리 공주는 대장부야. 그리고 이런 헌헌장부를 배필로 삼았으니 무어 아쉬울 것이 있겠나? 그래 가라, 갔다가 빨리 돌아오라.’
왕비는 못내 서운하여 눈물을 흘린다.
‘가기는 쉽다만 돌아오기란 어렵다. 가는 사람 많이 봤어도 돌아오는 사람은 드물더구나, 가는 것은 뜻대로 되나 돌아오는 것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사란다. 너희는 쿠차의 미래요, 운명이니 몸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너희는 지존의 몸이다. 너희를 보내고 싶지 않지만 흑방수행의 계시가 있었고, 존자의 예언이 있기에 보낸다. 부디 운명이 너희를 지켜주기를! 사막의 한 가운데 빈자리를 지키고 있을 우리 노부부를 잊지 마라. 일을 성취하는 대로 빨리 돌아와.’
‘자 여기 여비로 장만한 것을 가져가게.’ 황금 50냥 씩 넣은 묶음을 각각 하나 씩 준다. 그리고 깊은 포옹을 한다.
다음날 왕궁을 나서는데 신하와 시녀들이 이별인사를 하러 나와 있다. 아쉬움 마음을 하얀 명주 수건에 담아 목에 걸어준다. 시장을 지날 때 연도에 주민들이 나와서 가는 사람을 송별해준다. 남자는 흰말 여자는 검은 말을 타고 쏜살 같이 달려 돈황으로 달린다.
가자! 해 뜨는 나라 동방으로.
어디선가 쿠마라실라 대사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사실 어젯밤 두 사람은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 대사를 찾아뵈었던 것이다.
‘너희는 무지개가 뜨는 곳 동방의 푸른 나라로 가라. 가서 하늘호수에 경배 드려라. 황금까마귀가 너희를 인도할 것이니라.’
‘스승님, 이제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죠.’ 월광공주가 묻는다.
‘지금이 마지막이다.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가거라, 나의 사랑스런 분신들아. 가서 너희 꿈을 이루라. 너희에게 예시된 운명을 성취하라.’
33. 돈황을 지나며
하루를 꼬박 달려 타클라마칸 사막 가운데 유령처럼 버티고 있는 ‘누란’이란 오아시스에 잠시 들러 목을 축이고 돈황으로 향했다. 모래를 뒤집어 쓴 채 하루를 달렸으니 몸과 마음이 녹진녹진해졌다. 돈황의 명사산 입구에 위치한 페이티엔(飛天)객점에 유하다. 차 한 잔 마시며 객점을 둘러보는데 벽에 이런 낙서 비슷한 글귀가 붙어있다.
<방랑규칙(行脚定)>
같은 여인숙에서 두 번 잠을 자지 말라.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같은 하늘아래 있는 것, 같은 땅위를 걷는 어떤 것도 해하지 말라.
산과 강과 시내와 바위에 깃들어 사는 생명이 있나니 이를 존중하라.
산과 강과 신성한 장소를 방문하라. 하지만 그 장소에 다녀간 흔적을 남기지 말라.
저녁에 반조하고 아침에 관조하라.
동트는 새벽과 해 저무는 황혼에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몸을 쉬어라.
‘칼라무드라, 여기 저 글귀 좀 봐요. 그럴 듯 하죠?’
‘그런데 왜 같은 여인숙에서 두 번 잠을 자지 말라 했을까요?’
‘아마도 매일 다시 태어난 듯 새로운 마음으로 살라는 말이겠지?’
‘칼라다나, 나는 매일 다시 태어난 듯이 당신을 봐요. 당신도 그래요?’
‘그럼요. 공주님. 저는 매일 아침 당신을 발견해요. 잠에서 깨어난 당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 더 없이 행복한 일이예요.
이 광대무변한 시공가운데서 어떻게 저런 아름다운 사람이 나타나 나에게 선물로 주어졌는가 싶으면 신비롭다 할까,
일종의 경외감이 들어요.’
‘칼라다나가 시간의 선물이잖아요? 나는 당신의 선물, 당신의 나의 선물. 시인의 가슴과 종교적인 마음을 지니신 순례자시여. 방을 얻어서 좀 쉬어요.’둘이는 방 하나에 침대가 둘이 놓인 방을 구하여 간단히 씻고 쉬었다.
다음날 복도를 걸어오다가 벽에 걸린 시를 보았다. 소그디언어로 씌어져 있어 공주와 같이 감상한다.
말은 터벅터벅
여백속의 나를 보는모래벌판
‘광막한 모래사막을 터벅터벅 말 타고 가는 나그네여, 세상이 비워진 텅 빈 여백을 가는 나그네 마음이여.
칼라무드라, 나는 이렇게 느껴요.’
그 옆에 또 다른 시가 있어 공주가 읽는다.
비록 추워도둘이서 자는 밤은든든하여라
‘객사의 밤은 추워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든든하도다.
자, 차라도 한 잔 해야죠. 사막의 아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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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위의 <방량규칙>과 시는 일본의 하이꾸 시인 마츠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의 작품으로 여기에 인용하고 문장을 조금 변형했다.* 바쇼오라는 고독한 방랑시인 통해,1. 인간은 근원적으로 얼마나 고독한 존재인가!2. 우리가 마음을 열 때 무심히 넘겼던 자연의 조화가 얼마나 감동적으로 다가 오는가!3. 모든 것이 마침내는 변해가며, 정들었던 것 어느 하나라도 붙들어 둘 수 없는 우리 인생, 그리고 필경은 죽음으로서 퇴장해야만 하는 이 세상살이에서 당신은 어떠한 인생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가?*참고 : 마츠오 바쇼오(松尾芭蕉, 1644~1694)의 하이꾸, 유옥희 옮김, 민음사 ~~~~~~~~~~~~~~~~~~~~~~~~~~~~~~~~~~~~~~~~~~~~~~~~~~~~~~~~~~~~~~~~~~~~~~~~
돈황(敦煌)은 한나라 때부터 서역으로 가는 파발마와 사신, 장사꾼들이 쉬어 가는 역참(驛站)으로 개발되었다.
그때는 모래의 땅, 사주(沙州) 혹은 서쪽의 변경, 서역(西域)이라 불리어졌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계속가면 바로 두 사람이 달려온 실크로드이고, 동쪽으로 계속 달려가면 유멘깐(玉門關)→지유깐(嘉峪關)→주치엔(酒泉)→장예(張掖)→란쪼우(蘭州)→텐수이(天水)→시안(西安)으로 이어진다.
이 루트를 예로부터 하서회랑(河西回廊)이라 불리었다. 황하의 서쪽 변경지대를 향해 쭉 빠져 나가는 긴 복도라고 해서 이렇게 이름 붙여졌겠다. 당나라의 서울 장안(長安)에서 출발하여 머나먼 모래광야를 지나면 나온다는 서역(西域)은 일반 백성에게는 환상의 영역(illusion field,일루젼 필드)이었으리라. 사람들은 무엇을 찾으려고 서쪽의 프론티어(Frontier,변경)까지 달려오는가? 자기의 욕망과 기대를 변경으로 투사하여 그 무엇을 잡아보려 한다. 잡힐 듯한 ‘그 무엇’은 언제나 잡히지 않는 환영이다. 환영인줄 깨달을 때는 이미 시간의 속임수에 빠진 것이다. 시간은 사람을 속이고 세상을 속인다. 무엇인가가 저 건너편에 있는 줄 알고 미친 듯 달려가 보지만 그 끝은 죽음이다. 시간은 항상 냉정한 결론을 내린다.
모든 것의 끝에는 그냥 끝만 있을 뿐! 앞도 없고 뒤도 없는. 오직 끝!
두 사람은 돈황의 명물 명사산 월아천을 거닐면서 사유한다.
월아천(月牙泉,Crescent Moon Spring)-모래사막의 그리움인가, 달의 눈물인가, 바람의 영혼인가, 이천 년을 마르지 아니한 초승달 샘물. 순례자의 눈길을 적셔주며 아직 집을 떠나지 못한 자를 여기로 불러들이는 신비의 마력을 지닌 유혹의 샘물. 이젠 더 이상 서역 순례자의 풍진을 씻겨 주는 위안의 샘물이 아니라 신비로운 야성미로 왜소한 도회인을 유혹하는 선녀의 날개 짓이다. 명사산에 올라 저 휘몰아쳐 오는 자연 혼의 절규를 들어라. 폭풍의 언어 앞에는 인간의 훤소(喧騷, 시끄러운 지껄임)란 한갓 먼지에 불과하구나.
칼라무드라와 칼라다나는 밟으면 무너져 내리는 모래언덕을 밟고 명사산을 오른다. 발밑이 꺼진다. 올라간 만큼 미끄러져 내려온다. 헐떡이는 심장을 월아천 선녀의 손길에 맡긴다. 모래 위에 눕는다. 나는 '나'를 내려놓고 눕는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버린다. 지금 여기서 한 티끌이라도 '내 것'으로 가진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무엇을 가졌다면 그것을 끌고 매고 지고 가야한다는 말이 되는데, 그것은 버려지지 않는 고통덩어리이다. 그 짊어지고 있는 "나"를 내려놓아라, 인생이라는 짐을 지고가야 된다는 그 '생각'을 내려놓아라. 바람에 날리는 명주실처럼 경쾌하고, 달빛에 물든 가을 하늘같이 서늘하고 평온하리라.
모래 언덕을 걸어 오른다.
모래는 가는 떨림이요, 미세한 흐름이다.
바람이 모래 언덕의 피부 위로 불어오면, 모래알은 일제히 일어나서 소리치며 날아오른다.
우우우 춤을 추며 어디론가 흘러가고자 한다.
바람을 탄 모래는 이미 ‘흐르는 영혼(flowing spirit)’이지 더 이상 땅에 붙잡힌 흙이 아니다.
사실 모래산은 정지한 산이 아니요, 끊임없이 움직이는 파도이다.
움직이는 모래는 곧 시간이다.
그렇다! 시간-무상성(Transiency).
무상한 현상의 찰나적 변화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명사산(嗚沙山).
모래는 운다. 시간의 늪 속으로 모든 생명은 서서히 추락하고야 말기에, 소멸하고야 말 유정(有情)을 위해서 운다.
그러나 천지는 무심하여 온갖 것을 마른 풀잎처럼 다룰 뿐이다.
어찌 대자연이 사람에게만 특별한 인정을 베풀리오.
대자연 그 자신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유희할 뿐이니, 다만 명사(嗚沙)는 모래의 노래, 바람의 노래를 부를 뿐이다.
황혼이 짙게 깔리자 빛과 그림자의 유희 속에서 명사산은 춤을 추며 무위(無爲)의 노래를 부르고, 돈황의 하늘 너머로 사라진다. 천지(天地)가 일사구(一沙丘), 하나의 모래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