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원29일 일요일 아침이다. 밤새 바람이 드세더니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바람소리를 듣고 있다. 봄의 새싹들이 좋아하겠다. 봄은 한국에서도 한창이겠지. 떠나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영산강변의 쑥부쟁이도 구절초도 해당화도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겠지.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오늘은 칠라스로 간다. 칠라스는 인도 아대륙(亞大陸)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교역로의 주요 거점 도시였다. 259킬로미터이므로 5시간 이상 달려야 한다. 아침에 한국식 미역국이 나왔다. 내 짐작으론 오뚜기였다. 소박한 메뉴에도 즐거운 대화가 넘치는 식탁이었다. 버스는 9시 반에 호텔을 출발하여 11시에 어퍼(upper) 카츄라 호수의 주차장에 닿았다. 산길로 접어드는 곳에 카츄라 호수가 있었다. 호수 주변을 별장들이 둘러싸고 있어서인지 어딘지 인공 호수의 느낌이 났다. 그래서 다들 수고를 아끼지 않고 위쪽에 있는 호수를 보기 위해 올라가는 모양이다. 꽃피는 마을의 실핏줄처럼 얽힌 돌담 샛길을 지난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보일까 궁금해서 계속 걷고 싶은 길이다. 호수로 가는 길이다. 바위로 덮여있는 곳을 지나면 부드러운 흙길이 나온다. 살구나무와 사과나무의 낙화들이 다시 돌담에서 피어난다. 낙화의 정령들이 살아나서 길을 안내한다. 좁은 밭둑길을 조심조심 지나니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나온다. 나는 개울을 보는 순간 폴짝 뛰었다. 넘고 나서 보니 1미터도 훨씬 넘는 폭이었다. 망설임 없이 뛰었으니 나는 그 순간 무엇에 씌었을 것이다. 길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끝나지 않는 길. 길의 끝에 나무숲에 가린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드벤처’, ‘미지의 세계’, ‘발견’, ‘샹그릴라’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낙원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호숫가를 거닐 것이다. 산들이 골짜기에 눈물을 떨구었다. 눈물방울들이 모여 깊은 눈이 되었다. 청록색 눈동자에 산그늘이 진다. 꽃나무와 초록잎사귀 활엽수들이 눈가 먼지를 핥고 있다. 참 이럴 때는 에이전트의 판단이 맘에 쏙 든다. 떠나기 싫은 여행객을 붙잡기 위해 따뜻한 짜이 한 잔이 나온다. 다들 별 말도 없이 차를 마시고는 제 자리를 찾아간다. 곳곳에 흩어져 자리를 잡고 앉아있기도 하고, 조금씩 움직여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각자 자기만의 시각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나무의자에 앉아 물빛을 보고 있다. 시간이 조용히 호수 위로 내려간다. 나는 그새 물빛에 빠져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 나는 ‘자유’를 느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구름이 산봉우리를 덮고 있다. 바람이 물안개를 거두는 중이다. 유리판을 깔아놓은 투명한 호수 면은 고요하다. 꽃잎들이 훨훨 나비춤을 추며 이리저리 부끄러운 호수를 가려준다. 주차장으로 걸어 나오는데 이웃해서 걷던 일행 한 분이 중얼거린다. “나만 그런가? 떠나기 싫은데요.” 그는 장춘식이다. 버스는 스카르두로 들어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는 중이다. 계곡 물길을 따라가니 내리막길이다. 물살이 급해서인지 들어갈 때보다 물이 크게 불어난 느낌이다. 어제 내린 비에 산 얼음이 녹아 합해진 것일까? 푸른 물이 바위에 깨질 때는 하얀 포말로 변해 날린다. 날이 흐리니 바위와 나무가 무거워지면서 질감이 살아난다. 버스는 해발 2,300미터에서 1,265미터의 찰리스로 달려간다. 계곡이 깊어 어떤 곳은 천 길 낭떠러지에 다름 아니다. 커브 길에서 원심력으로 인해 차체가 계곡 쪽으로 쏠릴 때면 나도 모르게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버스가 낭가파르바트 관측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산은 이틀 전 우리의 염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제2의 관측지점이 또 있다고 하니 희망은 아직 살아있다. 낭가파르바트 산은 파키스탄에서 k2 다음으로 높은 8,126미터이고, 히말라야산맥의 서쪽 지점을 고정해주는 앵커 역할을 한다.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는데, 얼마 못가서 검문소에 걸렸다. 허가서류 검토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부터 경계구역인 듯하다. 2013년 6월22일 낭가파르바트 베이스캠프에서 중국인 3명을 포함한 외국인 등반대 9명과 현지 가이드 등 10명이 살해되었는데, 파키스탄탈레반(TTP)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인 등반대에 대한 테러 발생을 계기로 파키스탄은 이 지역의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총을 맨 군인이 한 명이 우리 버스에 동승했다가 도중에 하차했는데, 가이드에게 확인하니 검문소 교대근무 요원이라고 했다. 중국이 경찰의 나라라면 파키스탄은 군인의 나라다. 버스가 길을 잡고 달리는 사이 그토록 목을 맸던 낭가파르바트가 보인다는 외침이다. 가이드가 차창 너머로 여러 산봉우리들 사이로 솟은 산봉우리 하나를 지목했다. 저 산이 막상 그 산이라니 싱거운 일이 되고 말았다.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런? 밤8시. 칠라스의 샹그릴라 호텔 도착. 호텔 정문에 총을 든 군인이 한 명 서있다. 호텔 정문에 차단기를 걸어놓고 출입을 통제한다. 외출금지. 넓은 방과 큼직한 침대와 대리석 방바닥 그리고 머리장식이 고급스러운 침대. 한 때는 고급 호텔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3센티미터의 무겁고 두꺼운 낡은 이불에서는 먼지 냄새가 풍겼다. 화장실에 물때 절은 수건 두 장과 비누 하나가 있는 오래된 낡은 호텔이었지만 다행히 춥지는 않았다. 그새 우리가 남진을 많이 했다. 나는 정전이 없는 호텔에 감사했다. 늦은 저녁이어서 저녁이 방으로 배달되었다. 한 사람 앞으로 생수 1병과 몽키 바나나 3개와 귤 2개. 원숭이 바나나는 작아도 맛있어야 한다. 그런데 상상했던 맛이 나지 않는다. 귤을 깠다. 손에 과즙이 묻어 귀찮아졌다. 물을 마시고, 잠자리에 드니 10시다. 옆방의 기지개 켜는 소리, 잡담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방음 제로의 호텔 방에서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3월30일 칠라스의 아침에 눈을 떴다. 새소리가 들린다. 아이들 소리와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방문을 여니 호텔 울타리 너머로 강이 흐르고, 강에 잇대어 산맥이 지난다. 룸메이트가 강가에 서있다. 인더스 강의 지류이겠지만 그냥 칠라스 강이라고 부르자. 물살이 급하고 힘차다. 호텔 마당을 경계 짓고 있는 작은 속문을 지나 식당으로 갔다. 식탁과 의자가 낡고 무거워 보인다. 무엇인가 아귀가 틀어져 전체적으로 무질서해 보였으나 나는 그것이 오히려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젊은 배낭 여행자들이 보인다. 저녁 늦게 쓸쓸히 찾아들었다가 아침이면 홀연히 떠나가는 여행자들. 그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가만가만 말하고, 조용조용 웃는다. 어제 밤 오래된 호텔은 그들의 지친 몸을 포근히 감싸주었을 것이다. 흰 죽과 살구 쨈과 꿀과 란과 계란 부침을 접시에 담았다. 쨈은 신선했고, 꿀은 달았다. 나는 짜이 대신 커피를 마셨다. 파키스탄 주방에는 어디를 가든 병에 든 인스턴트커피가 있다. 80년대 우리 식이다. 그 때는 다방에서도 프림 하나 설탕 둘이었지. 지금 나는 블랙이 좋다. 호텔 담장 곁의 나무에 붉은 꽃이 피었다. 꽃잎이 넓은 남방의 화려한 꽃 이름이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었으나 모른다. ‘렌즈’로 알아보니 ‘부겐 베리’였다. 가이드가 마음에 쓰였는지 한참 후에 ‘부겐 윌리아’로 알려주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그의 정성이 고맙다. 아무려면! 호텔은 단층건물이다. 마당은 대저택의 그것과 닮아 여유롭고 편안하다. 담장에 덩굴 식물이 자라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더해준다. 그런데 무장군인이 문 앞에 서있다. 그가 웃고 있어서 다행이다. 칠라스는 암각화로 유명해서 ‘노천 박물관’으로 불린다. 고대 상인들이 인더스 강을 건너기 위해 대기했던 도시로 번영을 누렸고, 지금도 KKH의 교통 요충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침에 암각화 장소에 가지 못한다는 공지를 전달받았다. 댐 공사를 하고 있어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제부터 전달된 내용이라 수긍은 하지만, 칠라스는 순전히 암각화 하나 보려고 온 곳이 아닌가. 나는 식당 복도에 걸려있는 암각화 액자를 근접 촬영해 두었다. 바위에 새긴 뿔을 강조한 아이벡스, 사냥하는 사람, 독특한 형태의 스투파, 문자와 도형 등이 이채롭다. 특히 스투파 암각화는 당시 불교의 세력권을 보여준다. 스와트까지는 291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길이 험해 9시간을 잡고 있다. 오늘 일정은 하루 종일 달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더 더욱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예상대로 길은 비포장이었고, 곳곳이 패여 물웅덩이인데다 가파른 절벽 길의 연속이다. 푹푹 빠지는 뻘밭을 엉금엉금 기어간다고나 할까. 버스는 조심스런 태도로 길을 살살 달래며 간다. 버스가 한 번씩 곡예를 부릴라 치면 나도 따라서 몸을 쓰게 된다. 길 가운데 배수가 안 되는 곳으로 토사가 내려와서 곤죽 밭을 만들어 놓았다. 승용차 하나가 갇혀 꼼짝달싹 못하고 주저앉아 있다. 버스가 오후 2시가 되어서야 겨우 진탕 길에서 빠져나왔다. 버스 안에서 마음 졸이며 절벽을 내려다 보던 순간, 계곡의 불어난 물에 당황했던 순간, 아슬아슬 화물차와 교행 하던 순간, 길이 막혀 멈춰서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어느 자연풍경보다 어느 박물관보다 더 큰 감동이었다. 고스란히 버스 이동하며 받은 감동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래서 오늘 여행도 만점이다. 오후 4시 코히스탄(Kohistan)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었다. 길이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버스가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산맥과 계곡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지만, 도로 상태가 나아졌기 때문이다. 도로 양옆의 산 모양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비에 젖은 나뭇잎들이 초록색을 더 진하게 드러낸다. 초록 산의 시작이 반갑다. 샹글라(Shangla) 검문소에서 한참을 지체했다. 여기서부터 경찰 에스코트가 시작되었다. 파키스탄 정부는 현재 아프가니스탄과 국경 분쟁 중에 있다. 정부가 정한 위험지역에 들어오는 모든 외국인과 외국인 차량은 무장군인의 보호를 받게 되어 있다. 군인 두 명이 탄 에스코트 차량이 버스를 선도해 나갔다. 에스코트 차량은 구간을 정해 연속 교대를 했다. 에스코트가 시작된 지점에서 호텔까지는 약 100킬로미터였고, 그 사이 선도 차량은 일곱 번 교대했다. 브르즈 알 스와트 호텔 도착. 아침 8시 반에 출발해서 저녁 8시 반에 도착했으니 딱 12시간이 걸렸다. 버스에서 하루의 반을 보냈는데도 나는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위험한 버스 여행이 주는 긴장감을 한껏 즐겼다는 생각이다.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단톡방에 문자가 떴다. “어머나! 가방에 물이 들어와 다 젖었어요.” 발신인 김순자. 차량 지붕에 실었던 캐리어에 물이 든 모양이다. 아침에 짐꾼들이 가방을 쌓고 그 위에 분명 갑바를 덮었었다. 그런데 내 가방도 룸메이트 가방도 멀쩡하다. 나중에 물어보니 방안의 온풍기로 말렸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