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여명이, 혹은 붉은 노을이 빚어낸 환영이라 해도 믿을 법하다.
중국 간쑤성(甘肅) 장예(張掖)의 대지 위에는 인간의 상상력을 아득히 비웃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푸른 하늘 아래로 뻗은 산등성이마다 붉고 푸르고 노랗고 초록빛의 색채가 거대한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지구가 빚어낸 가장 화려한 팔레트, 바로 칠채산이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색색의 모래알들은 수천만 년 전 고요했던 시대의 비밀을 나직이 속삭이는 듯하다.
이 경이로운 색채의 향연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마법이 아니다.
그 근원을 찾아가려면 지금으로부터 약 2,400만 년 전, 신생대의 어느 시기로 시계를 되돌려야 한다.
그 무렵 이 지역은 거대한 내륙 호수 분지였다.
기후는 고온 건조했고, 주변 산맥에서 흘러든 물은 호수 바닥에 수많은 퇴적물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그때 대지가 품은 광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아 고유한 빛깔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불타는 듯한 붉은빛은 산화철이 풍부한 사암과 역암이 오랜 시간 공기 중의 산소와 맞닿으며 피워낸 열정이었고,
오묘한 초록빛과 회색빛은 산소가 부족한 깊은 호수 바닥이나 늪지대에서 철분이 환원되고
점토 광물과 실리콘 성분이 켜켜이 엉키어 만들어낸 깊은 사색이었다.
여기에 석고와 탄산염 광물이 주를 이룬 노란색과 백색의 여백이 스며들어,
대지는 화려한 채색 속에서도 숨 고를 틈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퇴적만으로는 지금의 칠채산이 될 수 없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로 시작된 히말라야 조산 운동이었다.
이 거대한 지각변동은 수평으로 평온하게 쌓여 있던 지층들을 엄청난 압력으로 밀어 올려 거꾸로 뒤집고,
꺾고, 수직으로 세워버렸다. 대지의 뼈대가 솟구쳐 오른 이후,
오랜 세월 몰아친 비바람과 풍화는 단단하지 못한 지층의 표면을 깎아내렸다.
마치 조각가가 거친 바위를 다듬듯 침식을 거듭한 결과,
지층의 단면이 켜켜이 드러나며 오늘날의 주름진 단애와 능선이 완성되었다.
중국에서는 이처럼 붉은 사암층이 침식되어 만들어진 독특한 지형을 '단하지모(丹霞地貌)'라 부른다.
붉을 단(丹)에 노을 하(霞)를 쓴 이름 그대로 '노을 진 붉은 대지'라는 뜻이다.
지질학자들에게 칠채산은 지구의 역사가 페이지마다 다른 색으로 기록된,
가장 거대하고 완벽한 지층의 도서관인 셈이다.
과학이 대지의 뼈대를 설명해 준다면,
옛사람들의 상상력은 그 화려한 색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아득한 옛날, 하늘의 선녀가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녀가 입고 있던 것은 세상에서 가장 곱고 찬란한 빛깔의 무지개 치마였다.
실수로 치마폭을 산등성이 위에 떨어뜨렸는데,
그 치마가 영원히 썩지 않는 바위로 화하여 오늘날의 칠채산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바람결에 전해진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머나먼 옛날 사나운 용들이 다스리던 거친 협곡이었다.
용들의 격렬한 싸움 끝에 대지가 갈라지고 불길이 치솟았는데,
그 싸움의 흔적과 용들의 기운이 엉키어 대지를 이토록 붉고 노란 찬란한 색채로 물들였다고도 한다.
과학적 진실이 무엇이든,
이 신비로운 색의 파도 앞에 서면 누구나 한 번쯤은
선녀의 치마폭이나 용의 숨결 같은 이야기를 믿고 싶어진다.
지질학적 경이로움과 전설이 물리적 뼈대라면,
그 위에 덧입혀진 인간의 발자취는 칠채산에 깊은 역사적 숨결을 불어넣는다.
간쑤성 장예 지역은 고대 중국과 서역을 잇던 실크로드의 핵심 요충지였다.
기원전 한나라 시절부터 비단과 향신료를 실은 대상들이 낙타의 방울 소리를 울리며 이 거친 대지를 통과했다.
오늘날 그 고요했던 옛길에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광활하고 유기적인 자연을 보호하면서도 많은 이들이 그 감동을 나눌 수 있도록,
공원 안에는 정교한 순환 버스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류장마다 사람들을 태우고 구불구불한 산악 도로를 오르내리는 순환 버스는,
현대의 여행자들이 이 거대한 무지개 파도 속으로 안전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가이드다.
버스 차창 밖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오색빛 능선을 마주할 때마다, 관광객들의 입에서는 저마다 탄성이 터져 나온다.
칠채산의 진정한 마법을 경험하려면 반드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새벽을 맞이해야 한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전망대로 향하는 순환 버스에 몸을 실었다.
동쪽 하늘의 지평선이 서서히 짙은 남색에서 붉은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어둠 속에 거대한 그림자로 침묵하던 칠채산의 능선들 위로 태양의 첫빛이 내려앉았다.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밤새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던 붉고 푸른 지층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일제히 불타오르듯 눈을 떴다.
태양의 각도가 바뀔 때마다 무지개빛 산맥은 금빛, 주황빛, 핏빛 붉은색으로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었다.
바람마저 숨을 죽인 그 고요한 새벽녘,
대지가 태양을 향해 품어내는 벅찬 생명력은 단순히 아름답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전율을 선사했다.
바쁜 현대의 일상을 살아가다 문득 칠채산의 일출과 오랜 세월을 마주하면,
시간의 덧없음과 동시에 생명의 장엄함을 깨닫게 된다.
단 1센티미터의 퇴적층을 쌓기 위해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 단단한 바위가 비바람에 깎여나가기까지 또다시 영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인간의 삶이란 그 거대한 지질학적 시간 속에서 한 줌 모래알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모래알 하나하나가 모여 이토록 눈부신 무지개빛 산맥을 이루었듯,
우리의 삶 또한 세월의 풍파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깊게 새겨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칠채산은 서산으로 넘어가는 석양빛을,
혹은 이른 새벽의 첫 햇살을 받아 더욱 붉고 선명하게 타오르며,
대지가 품은 오랜 세월의 비밀을 고요히 안고 있다.
마실정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