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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어느 봄날 베두인 목동인 무하메드와 사촌 두 명이 사해(死海) 북서쪽 해안 주변 절벽에서 잃어버린 염소를 찾기 위해 헤매다 우연히 동굴을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그 안에는 10개의 항아리가 있는데, 한 항아리에서 세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가 나왔다. 얼마 후 무하메드는 다시 그곳에서 네 개의 두루마리를 더 찾아냈다. 모두가 ‘사해 사본’이라 불리는 고대 유대교의 필사본 문헌들이다. 첫 번째 발견된 세 개의 두루마리에는 이사야서 전권, 공동체의 규율서, 그리고 하박국 주석이 쓰여 있다. 두 번째 발견된 네 개에는 이사야서, 감사찬송 사본, 전쟁 사본, 그리고 창세기 외경이 들어있다. 무하메드는 베들레헴의 한 골동품 상인에게 1요르단파운드를 받고 그것들을 모두 팔았다. 당시 시가로 4달러가 조금 넘는 돈이었는데, 7년 후 그중 4개가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25만달러에 거래되었다. 사해 사본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고 성서 고고학자들과 신학자들에게 이 지역 발굴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1947년 11월 29일 유엔이 이스라엘 독립을 선언하자마자 시작된 이스라엘 독립전쟁 때문에 발굴에 착수할 수 없었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지역에 안정이 찾아온 다음에야 비로소 작업에 박차가 가해졌다. 예루살렘의 프랑스 도미니크 수도원 소속 성서 및 고고학 연구소에서는 롤랑 드 보 신부를 앞세워 무하메드가 들어갔던 첫 번째 동굴 주변에 있는 25개의 동굴들을 모두 탐사했다. 그 가운데 11개 동굴에서 900편에 가까운 다양한 문헌들이 더 발견되었다. 모두 기원전 250년에서 기원후 68년 사이에 사막으로 도피한 유대교 에세네파의 쿰란 공동체에서 기록한 고대문서들이다. 그 당시까지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구약성서 사본인 알포레 사본(925년경 기록)과 레닌그라드 사본(1008년경 기록)보다 1000년가량 앞선 것들이다. 이 사본들에는 우리가 지금 보는 구약성서 가운데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기록들이 들어있을 뿐 아니라 성서 주석, 종교적 규율, 기도문, 그리고 위경들이 포함되어 있다.
고 이병철 삼성회장의 질문과 연관해 사해 사본 발견이 가진 의미는 2000년 전 예수와 사도들이 보았던 구약성서의 내용이 지금 우리가 보는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이 문서들이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성서는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또 신약성서는? 우리는 이것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 회장의 질문인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이 하느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에 대한 답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기독교의 기반인 성서의 기원뿐 아니라 권위의 문제까지 함께 묻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당신도 알다시피 구약성서는 본디 유대교의 경전이다. 유대교의 전통적 증언에 의하면 구약성서는 유대민족의 구전 전승들이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400년 사이에 문자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성서학계에서는 문헌 작성 연대를 훨씬 나중으로 책정한다. BC 8세기 말 히스기야(기원전 715~687 재위) 왕의 황금기 때 글의 확산과 서기관들의 수와 활동이 대폭 늘어나 그때까지 구전되던 성서의 기록이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잠언 25장 1절에 있는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라”라는 기록이 그 유력한 증거다. 물론 보다 이후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많다. 이들은 BC 583년에 바빌로니아왕 느부갓네살(기원전 605~562 재위)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로 유배되면서부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성서 기록에 힘쓰게 되었다고 본다.
이 같은 견해들을 집대성한 독일의 신학자이자 19세기 성서비평 연구의 최고권위자인 율리우스 벨하우젠(1844~1918)은 먼저 두 가지 원자료, 즉 신을 ‘야훼’라고 부르는 J문서와 ‘엘로힘’이라고 부르는 E문서가 합쳐졌고, 여기에 D문서(신명기)가 추가되었으며, 마지막으로 P문서(제사장계 문서)가 바빌론 유수 이후에 덧붙여져 오늘날 모세오경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어쨌든 기원전 6세기경부터는 구약성서 각권의 히브리어 필사본들이 두루마리 형태로 돌아다녔는데, 그 가운데 기독교와 연관하여 중요한 것은 BC 3세기에 만들어진 ‘70인역’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약성서 저자들과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이 대부분 사용했던 구약성서였기 때문이다.
‘70인역’은 최초로 번역된 그리스어 구약성서다. 그것은 당시 이집트와 유대땅을 포함한 시리아 일대를 지배했던 프톨레미 2세(기원전 285~247 재위)가 유대인 12지파에서 각 지파당 6명씩 총 72명의 장로를 알렉산드리아로 초빙하여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게 해서 만들어졌다. ‘70인역’에는 히브리 성서에 포함되지 않은 몇 개의 ‘외경’이 들어있는데, 이 외경들은 기원후 90년 유대교 지도자들이 암니아에서 모여 확정한 ‘히브리 성서’에서는 제외되었다. 하지만 4세기경 가톨릭 성인 히에로니무스(345~419)가 그리스어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 성서’에는 7권의 외경이 다시 포함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카르타고 공의회(397년)와 트리엔트 공의회(1545년)에서 공인되어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사용하는 구약성서의 표본이 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히브리 성서의 전통을 따라 이 외경들을 구약성서에서 뺐다. 이것이 오늘날 가톨릭에서는 46권을, 프로테스탄트에서는 39권을 구약성서로 사용하는 까닭이다.
신약성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역사서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나왔다. 이어 이방인 설교에 중점을 둔 ‘마태복음’이 시리아에서 발견되었고, 1세기 말엽에 ‘요한복음’이 에베소에서 나타났다.
이후 다양한 기독교 문서들이 여기저기에서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당시 존재했던 기독교 여러 종파에서는 자기들의 고유한 교리에 합당한 문서만을 골라 편집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이단으로 정죄된 마르시온(85~160년)이다. 2세기 한때 정통 교단을 위협할 만큼 커다란 세력을 가졌던 마르시온은 누가복음과 바울의 10개 서신들만을 정경으로 인정했다. 이에 반발한 폴리카르푸스, 이레내우스 같은 교부들이 이단을 반박하고 정통 신학을 옹호하기 위해 기독교 문서들 가운데 올바른 것을 선별하는 기준을 정하고(‘사도적 전승’이라 한다), 그에 따라 성서의 목록을 확정하는 작업에 나섰다(‘신약성서의 정경화’라 한다).
그 결과 디모데 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등 3개의 목회서신들은 비교적 나중에 바울의 서신으로 인정되어 정경에 포함되었다. 3세기에는 빌레몬서를 비롯 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요한 1·3서, 야고보서, 유다서 등과 바르나바서, 목자, 디다케 등도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에 의해 정경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는 후일 정경성을 인정받지 못해 다시 제외되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신약성경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한 사람은 4세기 말 동방정교의 교부인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295~373)였다. 서방교회는 카르타고 공의회(397년)에서 그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당시의 성서는 오늘날처럼 찾아보기 쉽게 ‘장’과 ‘절’로 구분된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성서를 주간별로 구분해서 낭송하였지만 장과 절로 구분하지는 않았다. 11세기에 훗날 켄터베리 대주교가 된 소르본대학의 랑통 교수가 장 구분을 먼저 완성했는데, 1226년에 파리대학 교수들이 그것을 성경에 적용했다. 절 구분은 훨씬 뒤에 로베르 엔티엔에 의해 이루어졌다. 인쇄공이었던 그는 15세기 도미니크 수도사들이 만든 절 구분법을 사용하여 신구약성서 전체에 절을 표시했다. 신구약성서 모두에 장·절이 붙여져 처음 출판된 것은 1555년에 출간된 스테파누스의 불가타 성서다.
정리하자면, 성서는 어느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책이 아니다. 사도들과 교부들, 그리고 수많은 필사자들이 1000년 이상에 걸쳐 쓰고 고치고 다시 베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요컨대 성서는 세상 그 어떤 책보다 사람의 입김과 손때가 많이 묻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성서를 여전히 신의 말씀이 담긴 성스러운 책으로 권위를 내세운다. 그것이 과연 정당할까?
성서는 신의 말씀인가
기독교가 성서의 권위를 보장하기 위해서 내세운 교리가 있다.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과 ‘성경무오설’이다. 축자영감설은 성서가 비록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고 인간적 기원의 표시들이 지워질 수 없이 각인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신의 말씀, 즉 신의 생각과 의지가 적절하게 표현되도록 성령의 영향 아래 기록되었다는 주장이다. “모든 성경은 신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디모데후서 3:16)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그 근거다. 성경무오설은 축자영감설의 결과로 나온 것으로서 성서 안에는 그릇된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유는 역시 바울의 교훈대로,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히브리서 4:13)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히브리서 6:18) 그렇다 한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신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옮긴 성서의 저자들은 오류를 범할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성서의 저자들이 어떤 ‘인식론상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오류로부터 보호받았다고 답한다. 물론 그 기적을 일으킨 주체는 성령이다.
한마디로 성서가 신의 말씀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 기독교가 견지하는 전통적 교리다. 대표적 예로 교황 레오 13세(1878~1903 재위)는 1893년에 발표한 칙서 ‘섭리하시는 신’에서 “교회가 성스러운 것으로, 그리고 정경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책과 각 권 전체는 성령의 구술에 따라 씌어졌다”라고 선언했다. 또한 종교개혁자 칼뱅(1509~1564)도 ‘신앙고백서’에서 “신의 뜻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발언되는 것이다.… 그들의 입은 우리에게 유일하게 참되신 신의 입이다”라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익히 경험했듯이, 기독교 교리들이 가진 근원적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회장도 믿기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에 대한 기독교 측 답이 있다. 무척 오래 되었지만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대답은 2세기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160~230)가 했다. “믿으면 안다”라고! 11세기에는 캔터베리 대주교 안셀무스가 같은 말을 뒤집어 “믿지 않으면 알 수도 없다”라고 반복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알면 믿겠다’는 생각을 가진 일반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자폐적으로 들릴 뿐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성서의 권위 문제에 관해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근대 이후 기독교 내에서도 ‘축자영감설’과 ‘성경무오설’에 대한 이견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성서에 오류가 있는 이유
‘축자영감설’과 ‘성경무오설’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성서의 저자들이 직접 쓴 ‘원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이 발생한 이후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지난 훗날 만들어진 필사본들이다. 당연히 그것들은 원본문의 사본도, 사본의 사본도 아니고 수없이 재필사된 것들이다. 때문에 서로 완벽하게 일치하는 필사본은 하나도 없다.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라 수백 또는 수천 군데나 차이가 난다. 그 이유는 필사자들이 ‘실수로’ 혹은 ‘고의로’ 본문을 여기저기 바꾸어가며 베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사 성서의 원본문이 신의 영감으로 아무 오류 없이 기록되었다고 하더라도 필사본들과 그것을 근거로 한 오늘날 성서 안에는 오류가 없을 수 없다. 구약성서는 말할 것조차 없고 신약성서 안에도 이러한 사실을 증명할 만한 자료들이 숱하게 많다. 그중 한둘만 예로 들면 이렇다.
신약성서를 보면, 누가는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갔다가 불과 한 달 뒤에 바로 나사렛으로 돌아와 정결예식을 행했다(누가복음 2:39)고 하는 반면, 마태는 그들이 이집트로 피신했다(마태복음 2:19~22)고 증언한다. 또 마가는 예수가 유월절 식사를 한 후에 십자가에 달렸다(마가복음 14:12, 15:25)고 하고, 요한은 유월절 식사 전에 예수가 숨을 거두었다(요한복음 19:14)고 말한다. 또 바울은 자기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회심한 후에 곧바로 사도들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누가가 쓴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다마스쿠스를 떠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예루살렘에 간 것으로 되어 있다(사도행전 9:26). 왜 이런 일들이 생겼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실수에서든 고의로든 저자가 잘못 기록했거나 필사자들이 잘못 옮겨 베낀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적어도 오늘날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성서는 성령의 영향 아래 오류가 전혀 없이 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성서는 신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들의 말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성령에 의해 끊임없이 구현되는 신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성서는 신의 말씀인가
당신의 생각을 돕기 위해 연관된 현대 신학자들의 주장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 중 흥미로운 하나가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이 ‘신의 역사’에서 밝힌 견해다. 암스트롱에 의하면, 신 자체에게는 역사가 없지만 성서에 나타난 신은 역사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신에 대한 인간의 관념이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의 역사는 “시대와 변화를 초월하여 있는, 표현 불가능한 신의 실재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 아니라, 인류가 아브라함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을 어떻게 인식해왔는가에 대한 역사”일 뿐이다. 우리가 이런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성서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성서는 시대와 변화를 초월하여 있는, 표현 불가능한 신의 말씀 그 자체가 아니라, 인류가 아브라함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왔는가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이다.
케빈 벤후저를 비롯한 현대 신학자들이 “성서는 신의 말씀 자체가 아니라 ‘인간과의 의사소통 중에 있는’ 신의 말씀”이라고 보는 입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경우 성서는 신의 말씀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과의 소통 가운데 인간에게 이해된 신의 말씀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 설령 저자나 필사자들에 의한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게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성서에 오류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부단히 새롭게 주어지는 현실적 상황에서 성서가 인간과 세계 구원이라는 신의 섭리를 구현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성서가 그 일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신의 말씀이라는 증거이고, 아니면 아니다. 그럼 물어보자. 오늘날 성서는 그 일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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