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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인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두고 하는 말이다. 허구의 나라인 웨스테로스 대륙에서 벌어지는 귀족과 영주들의 전쟁 스토리의 완성도에는 장인의 손길이 녹아 있다. 그 정점에 의상감독 미셸 클랩튼이 있다. 사극도 마찬가지다. 방송 한 번 나오면 옷고름이나 복식의 방식을 두고 격론이 벌어진다. 복식 하나하나가 글로벌 한류 팬들에게 한국의 전통적인 미(美)를 알리는 도구다. 그러기에 사극의 복식을 제작하는 의상감독들은 원단 하나 고를 때도 전 세계 수억명의 시청자를 떠올리며 긴장하고 또 긴장한다. 국내 대표 의상감독으로 꼽히는 이진희 의상감독도 그중 하나다. 의상감독은 옷으로 극에 생명력을 더하는 직업이다.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배우 박보검과 김유정이 입었던 옷이나 ‘성균관 스캔들’에서 박유천, 박민영이 입은 옷 등이 모두 이 감독의 작품이다. 그녀의 작업으로 배우들의 옷은 새롭게 태어난다. 2017년 유명 수중사진작가 제나 할러웨이(Zena Holloway)와 제주도 해녀에 모티브를 얻어 함께 작업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붕대 감은 채 의상 공장에 취업한 무대미술 전공생 이 감독은 국립 예술 학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97학번)를 졸업했다. 미대에 간 것은 중학교 시절 은사의 덕분이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학교 선생님은 자신의 부인이 운영하는 화실에 와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라고 제안한 것. 예술고등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워 한예종 무대미술학과에 합격했다. “무대미술은 대본과 연출, 무대조명 등을 모두 고려한 미술이었습니다. 그림만 그려왔기 때문에 적응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학교를 그만두고 순수미술로 가야겠다 생각할 때쯤 수업으로 인형 연극학을 들었어요. 인형이 입는 의상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무한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인형 만들기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휴학하고 프랑스 인형 제작 학교에 지원했습니다. 합격 통지서까지 받았는데 그만 교통사고가 났어요. 고향인 부산 병원에 입원했죠” 사고 때문에 3개월간 꼼짝없이 병원 신세를 졌다. 다리 골절로 많이 움직일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 인형 만들 꿈에 부풀어 있었던 그녀였다. 가만있자니 좀이 쑤셨다. 병원 근처에는 의상학원이 있었다.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담당 의사 몰래 병원을 빠져나갔다. 2개월 동안 치수 측정, 패턴 뜨기, 미싱 기술 등을 익혔다. 다리에는 깁스를 하고 병원복을 입은 채였다. 기초를 어느 정도 익히자 직접 옷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원 후 3개월 동안 집 근처 의상 공장에서 옷을 만들었다. 실력을 인정받아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계속 일하면 디자이너로 키워주고 가게를 내주겠다”는 사장의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학업을 마쳐야겠다는 생각에 3개월간의 공장 생활을 끝내고 복학했다. ◇옷만으로 시공간 담고 이야기 전하는 작업 그 후 이 감독은 학과에서 모집하는 해외교류 프로그램에 합류해 여행을 떠났다. 동유럽 탐방 중 이 감독이 인상을 받은 곳은 체코의 한 전쟁 박물관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총에 맞은 군인의 군복을 전시한 곳이었다. “옷에 생긴 총상 흔적과 흙의 자국 등을 보니 당시 상황이 보였어요. 군복을 입었던 군인이 어떻게 적과 싸웠고 참호를 뒹굴었는지, 그리고 전쟁통에 얼마나 생존을 갈망했는지 등이 머릿속에 떠올랐죠. 옷으로 시공간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에게 직접 옷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보다 극의 형식을 빌려 하나의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1992년 대학로 소극장을 찾았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을 통해 정식 의상감독으로 데뷔했다. 1993년 대학교 3학년 때 만든 ‘앤티크 코리아(Antique Korea)’라는 패션 브랜드를 통해 의상 감독·디자이너·연출가 등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90년대 초반 소극장에서는 편당 100만~150만원씩을 받았어요. 대극장은 300만~500만원이었습니다. 작업 기간이 3~6개월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힘들었죠. 돈을 생각하지 않고 일에 뛰어들었던 젊은 날이라 가능했던 것 같아요” ◇대본 분석이 가장 중요…“작가의 세계관 재현이 관건” 이 감독은 가장 먼저 새로 나온 대본을 받는 제작자 중 한 명이다. 대본을 반복해 읽으면서 이씨는 장면을 상상한다. 대사마다 형광펜을 긋고, 촬영지를 머릿속에 그린다. 대본 분석이 의상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본의 세계관을 구현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 배우 설현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영화 ‘안시성’에서 이 감독의 애를 먹인 것은 일반 병사들의 전투복이었다. 당시 전투복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인도에서 수제로 만든 원단을 수입한 뒤, 밤새 사포질을 해 원하는 질감을 만들었다. 2016년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직접 진주의 한복 공장을 일일이 방문하기도 했다. 때로는 일 때문에 몸이 상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2015년 영화 ‘간신’ 제작 당시 의상을 직접 탈색했다. 처음에는 락스로 하다 나중에는 다른 약품을 썼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문제가 있었던 약품이었다. “9개월간 병원 치료를 받았죠. 하지만 작품을 하다 보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순간이 와요.” 하는 일의 강도, 열정, 창의력에 비해 받는 돈은 상대적으로 적은 직업이라고 이 감독은 말한다. 20년 경력의 의상감독인 이씨의 개런티는 약 1억원이다. “원단 구입비, 염색비, 제작비 등 모든 비용을 이 액수 안에서 사용해요. 제 일을 돕는 어시스턴트 월급도 줘야 하고요. 때로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처음부터 새로 다시 만들다 제작비 이상을 써버릴 때도 있습니다” 의상감독이기 이전에 교육자(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학 외래교수)로서 현 방송 제작 시스템에 대해 고민도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방송 제작 환경이 열악해요. 일상에서 지치고 힘든 시청자에게 활력을 찾게 해주는 것이 방송인데, 정작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이면 되나요? 하루빨리 제작 환경이 좋아져 자신 있게 후배들에게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도전해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misaeng/site/data/html_dir/2018/01/18/2018011801077.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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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즘 우리나라 영화 미술이 정말 발전한것 같아요 . 놀라울 정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