坎上兌下 水澤節 (감상태하 수택절) 節 ; 마디 절 [傳] 節은 序卦에 渙者는 離也니 物不可以終離라 故受之以節이라하니라 物旣離散이면 則當節止之니 節所以次渙也라 爲卦 澤上有水하니 澤之容은 有限이라 澤上置水에 滿則不容이니 爲有節之象이라 故爲節이라. 절은 서괘에 환자는 리야니 물불가이종리라 고수지이절이라하니라. 물기리산이면 즉당절지지니 절소이차환야라. 위괘 택상유수하니 택지용은 유한이라. 택상치수에 만즉불용이니 위유절지상이라. 고위절이라. 節卦는 <序卦傳>에 “渙은 離散됨이니, 물건은 끝내 離散될 수 없으므로 節卦로 받았다.” 하였다. 물건이 이미 離散되면 마땅히 節制하여 멈춰야 하니, 節卦가 이 때문에 渙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卦됨이 못 위에 물이 있으니, 못의 용납함은 한계가 있다. 못 위에 물을 둠에 가득차면 용납하지 못하니, 節制가 있는 象이다. 그러므로 節이라 한 것이다. 節은 亨하니 苦節은 不可貞이니라. (절은 형하니 고절은 불가정이니라.) 節은 亨通하니, 괴로운 節은 貞固할 수 없다. [傳] 事旣有節이면 則能致亨通이라 故節有亨義하니라 節貴適中하니 過則苦矣니 節至於苦면 豈能常也리오 不可固守以爲常이니 不可貞也라. 사기유절이면 즉능치형통이라. 고절유형의하니라. 절귀적중하니 과즉고의니 절지어고면 기능상야리오. 불가고수이위상이니 불가정야라. 일이 이미 節制가 있으면 亨通함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節에 亨通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節制함은 適中함을 귀하게 여기니, 지나치면 괴로우니 節制함이 괴로움에 이르면 어찌 항상할 수 있겠는가. 굳게 지켜 항상할 수 없으니, 이는 貞固할 수 없는 것이다. [本義] 節은 有限而止也라 爲卦下兌上坎하니 澤上有水하여 其容有限이라 故爲節이니 節固自有亨道矣라 又其體陰陽各半而二五皆陽이라 故其占得亨이라 然至於太甚이면 則苦矣라 故又戒以不可守以爲貞也하니라. 절은 유한이지야라. 위괘하태상감하니 택상유수하여 기용유한이라. 고위절이니 절고자유형도의라. 우기체음양각반이이오개양이라 고기점득형이라. 연지어태심이면 즉고의라 고우계이불가수이위정야하니라. 節은 한계가 있어 멈추는 것이다. 卦됨이 아래는 兌이고 위는 坎이니, 못 위에 물이 있어 그 용납함이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節이라 하였으니, 節은 진실로 스스로 亨通할 道가 있다. 또 體가 陰爻와 陽爻가 각각 반씩이고 二爻와 五爻가 모두 陽이기 때문에 그 占이 亨通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심함에 이르면 괴로우므로 또 지켜서 貞固히 할 수 없다고 경계한 것이다. 彖曰 節亨은 剛柔分而剛得中할새요 (단왈 절형은 강유분이강득중할새요) <彖傳>에 말하길 “節이 亨通함은 剛爻와 柔爻가 반씩 나뉘고 剛이 中을 얻었기 때문이요, [傳] 節之道 自有亨義하니 事有節則能亨也라 又卦之才 剛柔分處하고 剛得中而不過하니 亦所以爲節이니 所以能亨也라. 절지도 자유형의하니 사유절즉능형야라. 우괘지재 강유분처하고 강득중이불과하니 역소이위절이니 소이능형야라. 節의 道는 스스로 亨通할 뜻이 있으니, 일에 節制가 있으면 亨通할 수 있다. 또 卦의 재질이 剛爻와 柔爻가 나누어 처하고 剛이 中을 얻어 지나치지 않으니, 또한 節이 될 수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亨通한 것이다. ?本義? 以卦體로 釋卦辭라. 이괘체로 석괘사라. 卦體로 卦辭를 해석하였다. 苦節不可貞은 其道窮也일새라. (고절불가정은 기도궁야일새라.) 괴로운 節은 貞固할 수 없다는 것은 그 道가 窮極하기 때문이다. [傳] 節이 至於極而苦면 則不可堅固常守니 其道已窮極也라. 절이 지어극이고면 즉불가견고상수니 기도이궁극야라. 절이 극에 이르러 괴로우면 견고히 항상 지킬 수 없으니, 그 도가 너무 궁극한 것이다. [本義] 又以理言이라. 우이리언이라. 또 이치로써 말하였다. 說以行險하고 當位以節하고 中正以通하니라. (열이행험하고 당위이절하고 중정이통하니라.) 기뻐하여 험함에 행하고 지위를 담당하여 節制하고 中正으로 통한다. [傳] 以卦才言也라 內兌外坎은 說以行險也라 人於所說則不知已하고 遇艱險則思止하나니 方說而止는 爲節之義라 當位以節은 五居尊은 當位也요 在澤上은 有節也니 當位而以節은 主節者也라 處得中正은 節而能通也니 中正則通이요 過則苦矣라. 이괘재언야라. 내태외감은 열이행험야라. 인어소열즉부지이하고 우간험즉사지하나니 방열이지는 위절지의라. 당위이절은 오거존은 다우이야요 재택상은 유절야니 당위이이절은 주절자야라. 처득중정은 절이능통야니 중정즉통이요 과즉고의라. 卦才로써 말하였다. 內卦는 兌이고 外卦는 坎인 것은 기뻐하여 험함에 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기뻐하는 바에는 그칠 줄을 모르고 어려움과 험함을 만나면 그칠 것을 생각하니, 막 기뻐하면서도 그침은 節의 뜻이다. ‘當位以節’은 五가 尊位에 거함은 지위를 담당한 것이요 못 위에 있음은 節制가 있는 것이니, 지위를 담당하여 節制함은 節을 주관하는 자이다. 처함이 中正을 얻음은 節制하면서도 통할 수 있는 것이니, 中正하면 通하고 지나치면 괴롭다. [本義] 又以卦德卦體言之라 當位中正은 指五요 又坎爲通이라. 우이괘덕괘체언지라. 당위중정은 지오요 우감위통이라. 또 卦德과 卦體로 말하였다. ‘當位中正’은 五를 가리키며 또 坎은 通함이 된다. 天地節而四時成하나니 節以制度하여 不傷財하며 不害民하나니라. (천지절이사시성하나니 절이제도하여 불상재하며 불해민하나니라.) 天地가 節度가 있어 四時가 이루어지니, 制度로써 節制하여 재물을 傷하지 않으며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傳] 推言節之道하니라 天地有節이라 故能成四時하나니 无節則失序也라 聖人이 立制度以爲節이라 故能不傷財害民이라 人欲之无窮也하니 苟非節以制度면 則侈肆하여 至於傷財害民矣라. 추언절지도하니라. 천지유절이라 고능성사시하나니 무절즉실서야라. 성인이 입제도이위절이라 고능불상재해민이라. 인욕지무궁야하니 구비절이제도면 즉사치하여 지어상재해민의라. 節制하는 道를 미루어 말하였다. 天地가 節度가 있기 때문에 四時를 이루는 것이니, 節度가 없으면 차례를 잃는다. 聖人이 制度를 세워 節制하였다. 그러므로 재물을 傷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욕망은 무궁하니, 만일 制度로써 節制하지 않는다면 사치하고 방사하여 재물을 傷하고 백성을 해침에 이를 것이다. [本義] 極言節道하니라. 극언절도하니라. 節制하는 道를 極言하였다. 象曰 澤上有水節이니 君子以하여 制數度하며 議德行하나니라. (상왈 택상유수절이니 군자이하여 제수도하며 의덕행하나니라.) <象傳>에 말하길 “못 위에 물이 있음이 節이니, 君子가 보고서 數와 度를 제정하며 德行을 의논한다.” [傳] 澤之容水有限하여 過則盈溢하나니 是有節이라 故爲節也라 君子觀節之象하여 以制立數度하나니 凡物之大小, 輕重, 高下, 文質이 皆有數度하니 所以爲節也라 數는 多寡요 度는 法制라 議德行者는 存諸中爲德이요 發於外爲行이니 人之德行이 當義則中節이라 議는 謂商度(탁)求中節也라. 택지용수유한하여 과즉영일하나니 시유절이라. 고위절야라. 군자관절지상하여 이제입수도하나니 범물지대소, 경중, 고하, 문질이 개유수도하니 소이위절야라. 수는 다과요 도는 벚레라. 의덕행자는 존제중위덕이요 발어외위행이니 인지덕행이 당의즉중절이라. 의는 위상탁구중절야라. 못이 물을 용납함은 한계가 있어서 지나치면 가득차 넘치니, 이는 法度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節이라 한 것이다. 君子가 節의 象을 관찰하여 數와 度를 제정하여 세우니, 무릇 물건의 大와 小, 輕과 重, 高와 下, 文과 質이 모두 數와 度가 있으니, 이는 節制하는 것이다. 數는 多寡이고 度는 法制이다. 德行을 의논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둠을 德이라 하고 밖에 발함을 行이라 하니, 사람의 德行이 義에 마땅하면 節度에 맞는다. 議는 헤아려서 節度에 맞음을 구함을 이른다. 溢 ; 넘칠 일 商 ; 장사, 헤아릴 상 初九는 不出戶庭이면 无咎리라. (초구는 불출호정이면 무구리라.) 初九는 戶庭을 나가지 않으면 허물이 없으리라. [傳] 戶庭은 戶外之庭이요 門庭은 門內之庭이라 初以陽在下하고 上復有應하니 非能節者也요 又當節之初라 故戒之謹守하여 至於不出戶庭이면 則无咎也라 初能固守로되 終或?之하니 不謹於初면 安能有卒이리오 故於節之初에 爲戒甚嚴也라. 호정은 호외지정이요 문정은 문내지정이라. 초이양재하하고 상부유응하니 비능절자야요 우당절지초라. 고계지근수하여 지어불출호정이면 즉무구야라. 초능고수로되 종혹투지하니 불근어초면 안능유졸이리오. 고어절지초에 위계심엄야라. 戶庭은 戶 밖의 뜰이요 門庭은 門 안의 뜰이다. 初가 陽으로서 아래에 있고 위에 다시 應이 있으니, 節制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며 또 절의 초기를 당하였다. 그러므로 삼가 지켜서 戶庭을 나가지 않음에 이르면 허물이 없다고 경계한 것이다. 처음에는 굳게 지킬 수 있으나 끝에는 혹 변할 수 있으니, 초기에 삼가지 않으면 어찌 卒(마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節의 초기에 경계함이 심히 엄한 것이다. ? ; 달라질, 변할 투 [本義] 戶庭은 戶外之庭也라 陽剛得正하고 居節之初하여 未可以行하니 能節而止者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호정은 호외지정야라. 양강득정하고 저걸지초하여 미가이행하니 능절이지자야라. 고기상점여차하니라. 戶庭은 戶 밖의 뜰이다. 陽剛이 正을 얻고 節의 초기에 거하여 행할 수 없으니, 능히 節制하여 그치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不出戶庭이나 知通塞也니라. (상왈 불출호정이나 지통색야니라.) <象傳>에 말하길 “戶庭을 나가지 않으나, 통함과 막힘을 알아야 한다.” [傳] 爻辭는 於節之初에 戒之謹守라 故云不出戶庭則无咎也라하고 象은 恐人之泥於言也라 故復明之云 雖當謹守하여 不出戶庭이나 又必知時之通塞也라하니라 通則行이요 塞則止니 義當出則出矣라 尾生之信은 水至不去하니 不知通塞也라 故君子貞而不諒이라 繫辭所解에 獨以言者는 在人所節은 唯言與行이니 節於言則行可知니 言當在先也라. 효사는 어절지초에 계지근수라. 고운불출호정즉무구야라하고 상은 공인지니어언야라. 고부명지운 수당근수하여 불출호정이나 우필지시지통색야라하니라. 통즉행이요 색즉지니 의당출즉출의라. 미생지신은 수지불거하니 부지통색야라 고군자정이불량이라. 계사소해에 독이언자는 재인소절은 유언여행이니 절어언즉행가지니 언당재선야라. 爻辭는 節의 초기에 삼가 지킴을 경계하였다. 그러므로 ‘戶庭을 나가지 않으면 허물이 없다.’고 하였고, <象傳>은 사람들이 말에 집착할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다시 밝히기를 ‘비록 마땅히 삼가 지켜서 戶庭을 나가지 않으나 또 반드시 때의 통함과 막힘을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통하면 가고 막히면 멈춰야 하니, 의리상 나가야 하면 나가는 것이다. 尾生의 信은 물이 닥쳐오는 데도 떠나가지 않았으니, 이는 통함과 막힘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君子는 貞固함을 지키고 작은 信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繫辭의 해석에는 오직 말만 말한 것은 사람에게 있어 節制할 것은 오직 말과 행실이니, 말을 節制하면 행실을 알 수 있으니, 말이 마땅히 앞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泥 ; 진흙, 빠질 니 諒 ; 믿을, 성실할 량 九二는 不出門庭이라 凶하니라. (구이는 불출문정이라 흉하니라.) 九二는 門庭을 나가지 않으니 凶하다. [傳] 二雖剛中之質이나 然處陰居說而承柔하니 處陰은 不正也요 居說은 失剛也요 承柔는 近邪也라 節之道는 當以剛中正이어늘 二失其剛中之德하니 與九五剛中正으로 異矣라 不出門庭은 不之於外也니 謂不從於五也라 二五非陰陽正應이라 故不相從이라 若以剛中之道相合이면 則可以成節之功이어늘 唯其失德失時라 是以凶也니 不合於五는 乃不正之節也라 以剛中正爲節은 如懲忿窒慾, 損過抑有餘是也요 不正之節은 如嗇節於用, 懦節於行이 是也라. 이수강중지질이나 연처음거열이승유하니 처음은 부정야요 거열은 실강야요 승유는 근사야라. 절지도는 당이강중정이어늘 이실기강중지덕하니 여구오강중정으로 이의라. 불출문정은 부지어외야니 위부종어오야라. 이오비음양정응이라 고불상종이라. 약이강중지도상합이면 즉가이성절지공이어늘 유기실덕실시라 시이흉야니 불합어오는 내부정지절야라. 이강중정위절은 여징분질욕, 손과억유여시야요 부정지절은 여색절어용, 나절어행이 시야라. 二가 비록 剛中의 자질이나 陰에 처하고 기뻐함에 거했고 柔를 받들고 있으니, 陰에 처함은 바르지 못함이요 기뻐함에 거함은 剛함을 잃은 것이요 柔를 받듦은 四를 가까이 하는 것이다. 節制하는 道는 마땅히 剛中正을 써야 하는데 二가 剛中의 德을 잃었으니, 九五의 剛中正과는 다르다. 門庭을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니, 五를 따르지 않음을 이른다. 二爻와 五爻는 陰陽의 正應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따르지 않는 것이다. 만약 剛中의 道로 서로 합한다면 節의 功을 이룰 수 있는데 오직 德을 잃고 때를 잃었기 때문에 凶한 것이니, 五에게 합하지 않음은 곧 바르지 못한 節制이다. 剛中正으로 節制함은 분함을 징계하고 욕심을 막으며 過함을 덜고 有餘함을 억제하는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요, 바르지 못한 節制는 吝嗇한 자가 씀을 절약하고 나약한 자가 행실을 節制하는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懲 ; 혼날, 징계할 징 窒 ; 막을 질 嗇 ; 아낄 색 懦 ; 나약할 나 [本義] 門庭은 門內之庭也라 九二當可行之時而失剛不正하고 上无應與하여 知節而不知通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문정은 문내지정야라. 구이당가행지시이실강부정하고 상무응여하여 지절이부지통이라. 고기상점여차하니라. 門庭은 문 안의 뜰이다. 九二가 행할 만한 때를 당하여 剛을 잃고 바르지 못하며 위에 應與가 없어서 節制할 줄만 알고 변통할 줄을 모른다. 그러므로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不出門庭凶은 失時가 極也일새라. (상왈 불출문정흉은 실시가 극야일새라.) <象傳>에 말하길 “門庭을 나가지 않아 凶함은 때를 잃음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傳] 不能上從九五剛中正之道하여 成節之功하고 乃係於私?之陰柔하니 是失時之至極이니 所以凶也라 失時는 失其所宜也라. 불능상종구오강중정지도하여 성절지공하고 내계어사닐지음유하니 실시시지지극이니 소이흉야라. 실시는 실기소의야라. 위로 九五의 剛中正한 道를 따라 節制함의 功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사사롭고 친한 陰柔에게 얽매여 있으니, 이는 때를 잃음이 지극한 것이니, 이 때문에 凶한 것이다. 때를 잃음은 마땅한 바를 잃는 것이다. 六三은 不節若이면 則嗟若하리니 无咎니라. (육삼은 부절약이면 즉차약하리니 무구니라.) 六三은 節制하지 않으면 한탄하리니, 허물할 데가 없다. 嗟 ; 탄식할 차 [傳] 六三은 不中正하고 乘剛而臨險하니 固宜有咎나 然柔順而和說하니 若能自節而順於義하면 則可以无過요 不然則凶咎必至하리니 可傷嗟也라 故不節若이면 則嗟若이니 己所自致라 无所歸咎也니라. 육삼은 부중정하고 승강이임험하니 고의유구나 연유순이화열하니 약능자절이순어의하면 즉가이무과요 불연즉흉구필지하리니 가상차야라. 고부절약이면 즉차약이니 기소자치라 무소귀구야니라. 六三은 中正하지 못하여 剛을 타고 험함에 임하였으니, 진실로 마땅히 허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柔順하고 和說하니, 만약 스스로 節制하여 義에 순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흉함과 허물이 반드시 이를 것이니, 상심하고 한탄할 만하다. 그러므로 節制하지 않으면 한탄하는 것이니, 자기가 스스로 오게 하였기에 허물을 돌릴 곳이 없는 것이다. [本義] 陰柔而不中正하여 以當節時하니 非能節者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음유이부중정하여 이당절시하니 비능절자라. 고기상점여차하니라. 陰柔로서 中正하지 못하면서 節의 때를 당하였으니, 節制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不節之嗟를 又誰咎也리오. (상왈 부절지차를 우수구야리오.) <象傳>에 말하길 “節制하지 못한 한탄을 또 누구를 허물하겠는가.” [傳] 節則可以免過어늘 而不能自節하여 以致可嗟하니 將誰咎乎아. 절즉가이면과어늘 이불능자절하여 이치가차하니 장수구호아. 節制하면 허물을 면할 수 있는데 스스로 節制하지 못하여 한탄함을 이루었으니, 장차 누구를 허물하겠는가. [本義] 此无咎는 與諸爻異하니 言无所歸咎也라. 차무구는 여제효이하니 언무소귀구야라. 여기의 无咎는 여러 爻와 다르니, 허물을 돌릴 곳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六四는 安節이니 亨하니라. (육사는 안절이니 형하니라.) 六四는 節制에 편안함이니, 亨通하다. [傳] 四順承九五剛中正之道하니 是는 以中正爲節也니 以陰居陰은 安於正也요 當位는 爲有節之象이라 下應於初하니 四는 坎體로 水也니 水上溢은 爲无節이요 就下는 有節也라 如四之義는 非强節之요 安於節者也라 故能致亨이니 節은 以安爲善이라 强守而不安이면 則不能常이니 豈能亨也리오. 사순승구오강중정지도하니 시는 이중정위절야니 이음거음은 안어정야요 당위는 위유절지상이라. 하응어초하니 사는 감체로 수야니 수상일은 위무절이요 취하는 유절야라. 여사지의는 비강절지요 안어절자야라. 고능치형이니 절은 이안위선이라. 강수이불안이면 즉불능상이니 기능형야리오. 四는 九五의 剛中正한 道를 순히 받드니, 이는 中正함으로 節制를 하는 것이니, 陰으로서 陰位에 거함은 正道에 편안함이요 자리에 마땅함은 節制가 있는 象이다. 아래로 初와 應하니, 四는 坎體로 물이니, 물이 위로 넘침은 節制가 없는 것이고, 아래로 내려감은 節制가 있는 것이다. 四와 같은 뜻은 억지로 절제함이 아니요 절제에 편안한 자이다. 그러므로 亨通함을 이룰 수 있으니, 節制는 편안함을 善으로 여긴다. 억지로 지키고 편안하지 못하면 항상 할 수 없으니, 어찌 亨通하겠는가. [本義] 柔順得正하고 上承九五하니 自然有節者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유순득정하고 상승구오하니 자연유절자야라. 고기상점여차하니라. 柔順하면서 正을 얻고 위로 九五를 받드니, 자연스럽게 節制가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安節之亨은 承上道也라. (상왈 안절지형은 승상도야라.) <象傳>에 말하길 “安節의 亨通함은 위의 道를 받들기 때문이다.” [傳] 四能安節之義非一이어늘 象에 獨擧其重者는 上承九五剛中正之道하여 以爲節하니 足以亨矣요 餘善이 亦不出於中正也일새라. 사능안절지의비일이어늘 상에 독거기중자는 상승구오강중정지도하여 이위절하니 족이형의요 여선이 역불출어중야일새라. 四가 節制에 편안한 뜻이 한 가지가 아닌데, <象傳>에 홀로 중한 것을 든 것은 위로 九五의 剛中正한 道를 받들어 節制하니 亨通할 수 있고, 나머지 善도 中正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九五는 甘節이라 吉하니 往하면 有尙하리라. (구오는 감절이라. 길하니 왕하면 유상하리라.) 九五는 감미로운 節制이다. 吉하니 가면 嘉尙한 일이 있으리라. [傳] 九五는 剛中正으로 居尊位하여 爲節之主하니 所謂當位以節, 中正以通者也라 在己則安行이요 天下則說從이니 節之甘美者也니 其吉可知라 以此而行이면 其功大矣라 故往則有可嘉尙也라. 구오는 강중정으로 거존위하여 위절지주하니 소위당위이절, 중정이통자야라. 재기즉안행이요 천하즉열종이니 절지감미자야니 기길가지라. 이차이행이면 기공대의라 고왕즉유가가상야라. 九五는 剛中正으로 尊位에 거하여 節의 주체가 되었으니, 이른바 ‘지위를 담당하여 節制하고 中正하여 통한다.’는 것이다. 자신에 있어서는 편안히 행하고 天下는 기뻐하여 따르니, 節制함의 달고 아름다운 것이니, 그 吉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행하면 그 功이 크므로 가면 嘉尙할 만한 일이 있는 것이다. [本義] 所謂當位以節, 中正以通者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소위당위이절, 중정이통자야라. 고기상점여차하니라. 이른바 ‘지위를 담당하여 節制하고 中正하여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甘節之吉은 居位中也일새라. (상왈 감절지길은 거위중야일새라.) <象傳>에 말하길 “감미로운 節制의 吉함은 처한 자리가 中이기 때문이다.” [傳] 旣居尊位하고 又得中道하니 所以吉而有功이라 節은 以中爲貴하니 得中則正矣로되 正不能盡中也라. 기거존위하고 우득중도하니 소이길이유공이라. 절은 이중위귀하니 득중즉정의로되 정불능진중야라. 이미 尊位에 거하고 또 中道를 얻었으니, 이 때문에 吉하여 功이 있는 것이다. 節制함은 中을 귀하게 여기니, 中을 얻으면 正이 되지만 正이 모두 中하지는 못하다. 上六은 苦節이니 貞이면 凶하고 悔면 亡하리라. (상육은 고절이니 정이면 흉하고 회면 망하리라.) 上六은 괴로운 節制이니, 貞固히 지키면 凶하고, 뉘우쳐 고치면 흉함이 없어지리라. [傳] 上六은 居節之極하니 節之苦者也요 居險之極하니 亦爲苦義라 固守則凶이요 悔則凶亡이니 悔는 損過從中之謂也라 節之悔亡은 與他卦之悔亡으로 辭同而義異也라. 상육은 거절지극하니 절지고자야요 거험지극하니 역위고의라. 고수즉흉이요 회즉흉망이니 회는 손과종중지위야라. 절지회망은 여타괘지회망으로 사동이의이야라. 上六은 節의 極에 거하였으니 節制함이 괴로운 자이며, 險의 極에 거하였으니 또한 괴로운 뜻이 된다. 굳게 지키면 凶하고 뉘우치면 흉함이 없어질 것이니, 悔는 過함을 덜어 中을 따름을 이른다. 節卦의 悔亡은 다른 卦의 悔亡과 말은 같으나 뜻은 다르다. [本義] 居節之極이라 故爲苦節이요 旣處過極이라 故雖得正而不免於凶이라 然禮奢寧儉이라 故雖有悔而終得亡之也라. 거절지극이라 고위고절이요 기처과극이라 고수득정이불면어흉이라. 연예사녕검이라 고수유회이종득망지야라. 節의 極에 거하였으므로 苦節이 되고, 이미 過極에 처하였으므로 비록 正을 얻어도 흉함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禮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하여야 하므로 비록 뉘우침이 있으나 끝내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奢 ; 사치할 사 寧 ; 편안할, 차라리 녕 象曰 苦節貞凶은 其道窮也일새라. (상왈 고절정흉은 기도궁야일새라.) <象傳>에 말하길 “‘苦節貞凶’은 그 道가 궁극하기 때문이다.” [傳] 節旣苦而貞固守之則凶이니 蓋節之道至於窮極矣라. 절기고이정고수지즉흉이니 개절지도지어궁극의라. 節制함이 이미 괴로운데 貞固히 이를 지키면 흉하니, 節制하는 道가 궁극함에 이른 것이다. |
출처: 古稀宴때 드릴 冊(2020.02.07) 원문보기 글쓴이: 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