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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성론
-은유와 상징의 선명한 이미지
김우연
1. 들어가며
손수성 시인은 1987년에 『시조문학』에 천료 및 1994년에 『매일신문』 및 『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하면서 일찍부터 현대시조단에 큰 기대를 모았다. 그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1996년 제14회 한국시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첫 시조집 『청동의 바람』(2014)은 경주시 교육장을 임무를 마치며 정년퇴임을 기념하며 발간하였다. 교사, 교감, 교장, 장학사, 장학관, 교육장을 역임하면서 학생, 교사 등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아온 손수성 시인이 바쁜 속에서도 시집을 발간한 것은 대단히 축하할 일이다.
이 시집에는 모두 62편의 시조가 실려 있는데, 단시조 4편(6.5%), 연시조 98편(93.5%)이며 주로 연시조 위주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시조 중에서도 3수의 연시조가 28편(전체의 45%), 4수의 연시조가 20편(전체의 32%)으로 나타났다. 62편이란 62세에 정년 퇴임하였으니 정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30여 년 시조를 써 온 손수성 시인이 60여 편의 시조를 내놓은 것으로 보면 과작(寡作)의 시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시조를 한 편 한 편 읽으면서 『청동의 바람』은 우리 시조단에 큰 바람으로 불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 권의 시집에서 한 편이라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이 있다면 시인으로서는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청동의 바람』은 읽어볼수록 새로운 맛이 더해지는 시집이라 어느 한 작품 가편이 아닌 작품이 없었다. 과작(寡作)의 시인이 때로는 낭중지추(囊中之錐)가 될 수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평소 손수성 시인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의 성품과 같이 시에서도 절차탁마하지 않은 작품이 없다. 모든 시조의 한 전범(典範)이 될 이 시집은 그 특징이 어디에서 오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2. 은유와 상징의 시인
『청동의 바람』에 주로 쓰이는 시어들은 ‘하늘’(42회), ‘바람’(22회), ‘꽃’(22회), ‘푸른’(20회), ‘꿈’(15회), ‘세월’(12회), ‘울음’(12회), ‘햇살’(11회), ‘어둠’(11회), ‘삶’(7회), ‘별빛’(4회), ‘눈물’(3회), ‘슬픔’(2회), ‘그리움’(2회), ‘사랑’(1회)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어들을 살펴보면 하늘, 바람, 꽃, 푸른, 울음, 햇살, 어둠, 별빛, 눈물 구체적 시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시어들을 통해볼 때 손수성의 시는 어떤 관념을 관념으로 표현하지 않고 구체적 형상화를 통하여 표현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사랑의 풀 한포기 키울 수 없는 빈 가슴에”(「모래의 시」에서)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이라는 말도 추상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풀 한포기”라고 은유하여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좋은 시는 대체로 좋은 비유와 상징으로 나타난다. 이런 면에서 작품 전편에 은유와 상징으로 처리하되 선명한 이미지들로 두드러지게 형상화하고 있어서 신선함과 감동이 컸다. 또한 이런 잠재력을 가진 시인이 이제야 바람을 일으키며 나타났구나 하는 경이로움과 찬탄을 금할 수 없다.
거주지는 불명인 너는
분명 이승 하늘 아래
푸드득 나래도 치고
울음도 몇 떨궈대며
우리와 동거를 하는
미지의 새 불사조
밤에는 눈을 뜬다
깃죽지를 푸득인다
잠에 빠진 우리네 이마
발톱으로 할퀴어대며
먼 훗날 찾아갈 숲의
푸르름을 잣는다.
네 앉았다 떠난 자리
바람만 이는 길섶에는
약속처럼 떨궈놓은
회한의 풀씨 몇 점
오늘도 가슴에 묻어
싹 틔우며 사느니
빈 가지 위 네 꽁지도
떨고 있을 겨울쯤엔
네 입김 성에 되어
우릴 온통 얼리지만
지금은 너를 보듬고
깃결 낱낱 빗질한다
-「세월」전문
일찍 황진이는 동짓달 밤을 춘풍 이불아래 서러서리 넣었다. 추상적 개념인 시간(밤)을 시각적으로 처리하여 지금까지도 뛰어난 표현으로 손꼽힌다.
손수성 시인의 시간에 대한 비유들이 매우 참신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월’의 보조관념은 ‘거주지 불명의 너’ =‘미지의 새 불사조’로 표현한 것이 신선하다. 첫째 수에서는 ‘불사조’가 “푸드득 나래도 치고”, “울음도 몇 떨궈내며”, 둘째 수에서 “밤에도 눈을 뜬다”, “깃죽지를 퍼득인다”,“푸르름을 잣는다”, “발톱으로 할퀴어대며”, 셋째 수에서 “네 앉았다 떠난 자리”, 넷째 수에서 “빈 가지 위 네 꽁지도/ 떨고 있을 겨울쯤엔”이라며 세월을 불사조로 은유하면서 각 수마다 불사조의 동작들을 은유로 처리하되 참신한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생동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내용은 둘째, 셋째, 넷째 수 종장을 보면 희망과 따뜻함이 보인다. 손수성 시인은 「세월」에 나타난 인생관은 항상 긍정적이며 희망적이며 따뜻한 가슴을 느낄 수 있다.
손수성 시인이 시간을 은유하는 방법이 위에서도 독창적이었는데 다음 작품에도 그것이 잘 드러난다.
우리네 세월은 셀로판지 같은 것
하루하루를 그려서 자꾸만 말다보면
사십이 지나게 되면 끝이 절로 말린다네
하루의 끝이 말리어 지난날과 겹쳐지면
고향도 찾게 되고 동창회도 시끌해지고
현재 속 과거가 번져 색채도 아름답다네
세월의 셀로판지는 원통처럼 감기어 가도
이중 삼중으로 뒷그림이 비쳐나와
우리네 세상 그림은 갈수록 그윽하다네.
-「원통처럼 말리는 세월」전문
이 작품에서도 시간을 셀로판지로 은유한 것은 매우 참신하다.. 그런데 그것이 원통처럼 감기어 가고 그 원통이 몇 겹으로 겹쳐진다는 것은 그 상상력이 놀랍다. 셋째 수 종장에 “우리네 그림은 갈수록 그윽하다네”란 말 속에서 따뜻하고 넓은 가슴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먹기 위해 수입해 온 외국산 개구리가
빈 생각의 틈서리로 은밀히 숨어들어
가슴 속
푸른 들판을
온통 오염시켰다.
유년의 내 개울가 참개구리도 참아먹고
성년의 내 보리밭 꽃뱀도 잡아먹고
내 하늘 등에 져 왔던
황소마저 삼켜 버렸다
결국은 청개구리 회환마저도 멸종시키고
어느덧 사방에다 이국종만 번식시킨 채
요즘은 내 머리 속까지
침범해 와 이를 간다.
-「황소개구리」전문
황소개구리를 소재로 시들은 대개 생태의식을 다룰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가지기 쉽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첫 수에서 “빈 생각의 틈서리로 은밀히 숨어들어/ 가슴 속/ 푸른 들판을/ 온통 오염시켰다”라고 하여 우리들의 ‘생각’들이 오염된 현상을 표현하고 있다. 생태문제를 고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문화가 서구화된 것을 비판하며 또 자신을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생태계 파괴 현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시의 의미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유년, 성년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들의 전통 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내 하늘 등에 져 왔던/ 황소마저 삼켜버렸다”라고 은유로 처리하고 있다.
셋째 수에서는 “요즘은 내 머리 속까지/ 침범해 와 이를 간다”라고 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황소개구리를 소재로 하되 독자들이 생태의식을 넘어서 우리의 정신 세계까지 서구화된 것을 은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이처럼 손수성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표현상의 특징은 은유와 상징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쉽게 시를 쓰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직서적인 표현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깊은 사유가 바탕이 되어 시적 형상화에 노력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과작(寡作)의 시인이지만 한 편 한 편 단단하고 고운 빛이 나는 보석들임을 알 수 있다.
수천의 잿빛 거미가
과거 속에서 떨어진다
줄을 타고 낙하하는 공수부대 요원처럼
은밀히 포위를 해 와 우리를 결국 납치한다
머리카락을 헤집고 두개골을 열고 들어 와
흰 뇌의 여기저기 군화 자국을 찍기도 하고
내 의식 후미진 구석에 거미줄을 온통 친다
거미는 폭력으로 일조권마저 약탈하고
우리네 당당한 어깨를 움추르들게 갉아대지만
역사는 영롱한 땀방울을
늘 거미줄 위에 내건다
-「과거 속에 내리는 비」전문
제목부터 상징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비란 대체로 어두운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수에서는 거미가 우리를 납치하였으며, 둘째 수에서는 거미라 두개골을 열고 들어와 내 의식 속에 거미줄을 온통 친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셋째 수에서는 거미의 폭력성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지만 끝내는 “역사는 영롱한 땀방울을/ 늘 거미줄 위에 내건다”고 하여 “영롱한 땀방울”이란 정의, 진실 등을 상징하고 있다.
공수부대, 군화 등의 용어들이 시적 형상화를 위한 상징어로 쓰이고 있지만 실제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이처럼 손수성 시인은 황소개구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은유와 상징으로 모든 작품을 처리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는 화자가 목소리를 높이거나 직서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관조적인 자세를 취한다. 묘사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시 창작의 바람직한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좋은 비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지만 작품 형상화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용에서도 역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나아가는 자세는 개인은 물론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손수성 시인은 은유와 상징의 시인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읽을수록 깊이가 있고 단단하다. 독자에 따라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난해한 시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시적 형상화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는 시인으로서 정상적인 보법으로 당당하게 걷고 있는 것이다. 손수성 시인인 공사간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아온 삶이 시조에서도 정통적인 보법으로 새롭게 우뚝 솟아난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런 성과가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남몰래 얼마나 시를 갈고 닦아 왔는가를 생각할 때 시인의 참모습을 늘낄 수 있다. 오늘날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카페 등에 너무나 쉽게 여기 저기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하루에도 몇 편씩 쓸 수 있는 시를 등단 시인이 쓰고 있는 것을 볼 때 잡초론을 부정하는 나로서도 참기 어려울 때도 있다. 시를 갈고 닦아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본다.
3. 자아성철의 시
시는 표현과 내용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좋은 시가 될 것이다. 손수성의 시 세계는 어떤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김선굉 시인은『청동의 바람』에 대해서 “손수성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푸른 삶>(「벌초길」)인가 묻고, <푸름이란 무너짐과 싸우는 일>(「돌산」)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시조집 『청동의 바람』을 꿰뚫고 있는 그의 시 정신은 푸른 삶에 대한 질문과 대답으로 요약된다.”고 하였듯이 그는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인임을 알 수 있다.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은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도 함께 나타날 것이다.
『청동의 바람』에서는 자아성찰, 소외층에 대한 애정, 생태의식, 현실 인식, 순수 서정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삶에 대한 자아성찰이 주를 이루고 있다.
누군가 경운기로 벌목 소리를 부리고 있다
잘 벼린 원형 톱날 자정 하늘 높이 들고
모두들 떠나간 들에 구호처럼 채우고 있다
톱날을 곧추세우고 어둠의 가지를 치고 있다
마음 속 튀는 불꽃 하늘을 나는 톱밥
수천의 부리로 내려 겨울의 발등을 쪼고 있다
톱날이 부러지면 가슴의 날 갈아 끼우고
아름드리 어둠을 베며 막힌 길을 열고 있다
쌓이는 톱질 소리로 겨울의 발목을 묻고 있다
이웃해 떨고 있는 키 작은 저 떡갈나무
흔들리는 가지엔 힘살 더러 붙여주고
언 손쯤 녹일 수 있게 흰 옷자락 감싸주고
베면 베는 만큼 열려 오는 이승 벌판
못 박힌 손마디로 새벽 하늘을 일구고 있다
가슴 속 가장 찬란한 봄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청동의 바람」전문
『청동의 바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시어가 ‘하늘’이다. 마지막 수에서 ‘새벽 하늘’은 희망의 상징어로 쓰이고 있듯이 그에게 있어서 하늘은 희망의 상징인 것이다. 우리의 정통 유학에서 하늘은 인간에게 도덕적 가치를 제공하는 근원이었다. 손수성 시인은 하늘은 순수의 세계, 희망의 세계, 우리 삶의 가치의 근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부정이 아니라 긍정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현실의 고단함도 결국 긍정적으로 극복하고 하늘을 닮고자 하는 마음들이 작품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시집의 표제가 된『청동의 바람』은 시인의 생각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첫째 수에서는 경운기 소리에서 벌목 소리가 들린다고 이미지를 연상하고 있다. “모두가 떠나간 들에 구호처럼 채우고 있다.”에서 빈 들에 벌목 소리가 채운다고 하여 희망의 소리로 형상화 되었다. ‘들’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떠나간 농촌의 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넷째 수에서는 “이웃해 떨고 있는 키 작은 저 떡갈나무”에 힘살을 붙여주기도 하고 옷자락을 감싸주기도 하는 것을 통해 볼 때 ‘들’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으로도 읽을 수 있다.
둘째 수에서는 벌목할 때 튀는 불꽃과 톱밥이 “겨울을 발등을 쪼고 있다”며 부정적 속성인 겨울이 불러나도록 애쓰고 있다.
셋째 수에서는 겨울을 쉽게 몰아낼 수는 없지만 톱날이 부러지면 새로운 날을 갈아 키우면서 어둠을 베고 있다고 하였다. “가슴의 날을 갈아 끼우고”란 말을 보면 시인의 의지가 부정적인 세상을 극복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넷째 수에서는 결국 이웃해 떨고 있는 떡갈나무를 따뜻하게 감싸는 것이다.
마지막 수에서는 벌목을 할수록 이승 벌판을 넓게 열려지기에 못 박힌 손마디로 계속 벌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새벽 하늘을 일구고 있다”며 희망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가슴 속 가장 찬란한 봄의 씨앗 뿌리고 있다”며 혹독한 겨울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은유와 상징이 결합되어 시적 구조가 단단하며, 시인의 내적 의지를 각성하고 단련하고 있다. 그것은 절망을 아니라 희망의 세계로 가기 위한 노력과 고통들이기에 독자들에게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산다는 건 푸른 빛을
늘 간직하는 일입니다
잡초로 살더라도 하늘은 품어야 한다고
바람 속 흔들릴 때마다 되뇌어야 합니다
때로는 발톱까지도
갈아야 하는 일입니다
매처럼 날카롭게 허공의 심장을 움켜쥐어야
하늘의 핏물이 배어 우리 꽃이 피어납니다
-「하늘매발톱」전문
야생화인 하늘매발톱은 꽃잎의 뒤쪽에 매의 발톱처럼 뾰족하게 돋아나 있다. 그래서 매를 연상시키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첫째 수에서는 산다는 것은 ‘푸른 빛을 간직하는 일→하늘은 품어야 한다→바람 속 흔들릴 때마다 되뇌어야 합니다’라고 ‘푸른 빛’으로 은유되는 삶의 희망, 진실, 목표를 향함 꿈 등을 항상 간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매가 환골탈태하듯이 고통을 참고 발톱을 갈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매철럼 날카롭게 허공의 심정을 움켜쥐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할 때 “하늘의 핏물이 배어 우리 꽃이 피어납니다”라고 하고 있다.
『청동의 바람』에서 ‘하늘’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어라면, ‘꽃’, ‘바람’, ‘푸른’ 등이 20회 이상 자주 등장한 시어이다. 바람은 순간적인 존재라면 ‘꽃’은 열매와 함께 희망과 긍정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으며, ‘푸른’이란 감각어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른 작품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꿈’, ‘별빛’이란 시어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손수성 시인의 시 세계는 희망과 긍정의 세계를 향한 자아성찰과 노력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늘매발톱」을 이 한 작품을 통해 보더라도 손수성 시인의 삶은 얼마나 성실하면서도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엿볼 수 있다. 그러한 그의 삶이 어찌 눈물 없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삶이란 제 눈물을 매달고 있는 것
멍같이 푸른 눈물이 말갛게 될 때까지
남몰래 제 햇살을 찾아
뎁히고 또 뎁히는 것
딱딱한 세월이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제 모든 잎 불사르며 제 몸마저 그을리며
끝없이 눈물을 익혀
제 가을을 기약하는 것
-「감나무의 말」전문
하나의 경구(警句) 같은 시이다. 물론 자신에게 하는 말이지만 독자에게도 깨달음을 주고 있는 작품이다.
푸른 감이 여름의 햇살을 거치고 가을이 되고 잎이 떨어지고 감이 익고 또 홍시가 되기까지 하루 아침에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끝없이 눈물을 익혀/ 제 가을을 기약하는 것” 것이 삶이라는 것이다.
초장에서 “삶이란 제 눈물을 매달고 있는 것”이라고 하듯이 감나무의 푸른 감처럼 푸른 눈물도 세월 속에서 말랑말랑해져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모든 잎 불사르며”라고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로 하기는 쉬워도 실천은 쉽지 않은 것이 아닌가. 손수성 시인의 삶이 얼마나 빈틈없이 최선을 다해왔는가를 느낄 수 있으며 독자의 나태한 마음을 일깨우게 한다.
천둥이 친다고 해서 네 몸을 너무 떨지는 마라
바람이 세차다 해서 네 몸 너무 꺾지는 마라
삶이란
울음을 키워
빈 들을 지켜내는 것
네 한 몸 꼿꼿이 세워 온 세월을 고누고 서면
네 꿈의 푸름으로 온 언덕을 뒤덮고 나면
결국은
너도 갖게 될
꽃보다 더 빛나는 칼날
-「갈대에게」전문
첫째 수 종장에서 “삶이란/ 울음을 키워/ 빈들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노래하면서 그의 일관된 삶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둘째 수에서 ‘고누다’는 ‘겨누다’의 방언이다. 종장에서 “결국은/ 너도 갖게 될/ 꽃보다 더 빛나는 칼날”이라고 하여 갈댓잎을 칼날에 비유한 것이다. “꽃보다 더 빛나는 칼날”이라는 이 표현하나 만으로도 손수성 시인은 현대시사에 영원히 빛날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표현을 하게 된 원동력은 그의 진지한 삶의 자세와 깊은 사유라고 본다.
이 작품은 어조가 첫째 수에서 “떨지는 마라”, “꺾지는 마라”라고 명령형으로 끝내고 있다. 시집 전체에서 유일하게 명령형으로 처리한 것이다. 평서형이거나 존대어로 겸손하게 끝맺는 어조에 비해 좀 특별하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는 투이지만 자신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관조적 입장에서 시적 형상화를 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깨우침을 주고 있는 시이다.
이 작품은 갈대는 갈대대로의 삶을 살았을 때 “꽃보다 빛나는 칼날”을 갖게 된다고 하여 자연의 순리를 느끼게 한다. 손수성 시인의 시는 이처럼 긍정의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대상과의 화합을 지향하고 있다.
치환은유가 거느리는 사유는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 추구에 의한 화해의 원리를 담기 마련이며 그것은 유사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병치은유는 서로 다른 사물들의 ‘새로운 결합’이며 조합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것은 자아와 세계와의 대결의 원리를 전제로 한다고 한다. 손수성 시인은 치환은유에 바탕을 두고 있다.
4. 소외 계층에 대한 연민
어쩌면 산마을에서 한숨에 푹 절어서
벼랑 밑 저 세상 뾰족집들 바라보다
차라리 눈을 감는 해
판자 속으로 드는 김씨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주소도 없는 가난을
애들은 하교길에 눈덩이로 불려 와서
습기 찬 판자 아래는
뼈도 시려 녹았다
임대도 못할 땅에 풀잎처럼 돋는 시책
기진한 삶 부여안고 더듬더듬 짚어가는
공사장 주변 어디쯤
떠돌고 있는 이웃
-「민달팽이」전문
민달팽이는 달팽이 중에 집이 없는 달팽이다. 시에 나오는 김씨도 주소도 없는 무허가 건물인 판잣집에 살고 있다. 민달팽이란 제목과 김씨의 유사성이 적절한 비유가 되고 있다. “공사장 주변 어디쯤/ 떠돌고 있는 이웃”이라며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임대도 못할 땅에 풀잎처럼 돋는 시책”이라며 정부의 어떤 시책도 효과가 없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으로 현실성이 강하게 나타난 작품이다. 그래서 비유를 하더라도 직서적인 표현으로 느껴질 정도로 쉽게 이해되고 있다. 시는 꼭 특별한 비유가 아니더라도 시인의 긍정적인 시선, 따뜻한 마음이 공감을 주고 있는 작품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중산층임에도 자신은 중산층이라 여기지 않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40대는 그렇다. 별고생 없이 자라나서 근대화의 땀방울에 동참을 하지도 않고 고생은 별로 하지 않았음에도 열매를 따먹는 데는 혈안이 되어 있어 불평불만이 제일 많은 세대인 것 같다. 인터넷 상에서 한 아내가 39세이며, 남편은 40세의 한 맞벌이 부부는 노후 준비 여력이 없다고 불평이 대단하였다. 월소득 700만원인데 자녀교육비 150만원이 들어서 배고프다고 한다. 제 자식 공부시키겠다니 누가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월 평균 외식비가 110만원이라고 한다. 그러고는 배가 고프다고 한다. 이런 세대가 40전후의 사람들인 것 같아서 씁쓸했다.
진정 우리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릴 때 이 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것이다. 이럴 때 손수성 시인의 「민달팽이」는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오늘도 사람을 피해
아카시아를 만났습니다
허무 속 잎을 다는 두엄 같은 언어들은
오월의 뿌리를 휘감고 자랑스레 서 있습니다
아카시아 땀방울은 꽃으로 다 피었습니다
가시도 향기 되어 오솔길까지 넘칩니다만
우리는 작은 빗방울에도 마음 하냥 젖습니다
빌딩숲 내여봐도 내 갈 곳이 없습니다
꿈밭을 나는 벌들 하염없이 따라 다니다
지난 날 미결 서류 같은
그림작로 하산합니다
-「젖은 오월-해직된 김씨」전문
우리는 1996년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많은 해직자를 양산하였다. 그 이후로도 회사원의 입장에서는 해직이라는 말이 가장 겁나는 말이 되었다. 첫째 수에서 해직자 김씨는 집을 나와서 사람을 피해 자연인 아카시아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둘째 수에서는 “우리는 작은 빗방울에도 마음 하냥 젖습니다”라고 하여 약자들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잘 형상화 하였다. 결국 김씨는 퇴근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내려온다. 그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다. 노력을 하는 자에게는 최대한 관심을 갖고 일자리를 찾아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치 논리로 인기에만 영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짜로 퍼준다면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그런데도 복지란 미명 아래 암담한 미래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배를 채우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 본다.
5. 생태의식
바다는 모두 떠나고 눈물만이 모여 있었어
높은 굴뚝들의 검은 갈기 사이사이
별빛도 내려와서는 손을 담그지 못했어
잠재운 상처들을 흔들어 깨우는 불빛 아래
녹슨 설움들만 흰 이빨을 드러낸 채
외로이 어둠을 씹어 토해대고 있었어
부서져도 지금쯤은 남아야 할 소금기가
찢긴 옷자락만 더욱 찌들게 만들 뿐
아무도 등을 굽히고 부싯돌 치지 않았어
-「영일만에 갇힌 바다」
“바다는 모두 떠나고 눈물만이 모여 있었어”라고 하며 부정적인 상황으로 시작되고 있다. “검은 갈기”, “잠재운 상처”, “녹슨 설움”, “어둠을 씹어 토해대고” 등은 부정적 속성을 나타내는 말로서 포스코가 위치한 영일만의 환경이 훼손되고 있는 현실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첫째 수에서는 “별빛도 내려와서는 손을 담그지 못했어”, 둘째 수에서는 “외로이 어둠을 씹어 토해대고 있었어” 라고 부정적인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셋째 수에서는 “아무도 등을 굽히고 부싯돌 치지 않았어”라는 말 속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이나 원만보다는 자신도 앞장서지 못하고 있음을 성찰하고 있다. 이런 어조가 오히려 직설적인 비판의 작품보다는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있었어”, “못했어”의 ‘∼어’의 반복으로 운율을 살리고 있다. 시적 자아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환경을 파괴한 주체에 대한 비판을 은근하게 조용히 담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이용하기도 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인 인간에게 환경 파괴의 모든 책임을 돌리고 목소리만 높여서 인간을 극단적인 부정으로 바라보면 오히려 그것도 반생태적이라 한다. 그래서 이런 작품을 쓴다는 것은 깊은 철학과 실천 가능한 행동 위에서 시적으로 접근할 때 공감할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환경에 대한 우리들의 실천을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내일의 안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날마다 구리빛 팔뚝 핏발 선 눈 번뜩이며
하늘 속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은 어부다
낮에는 하늘 바다 은빛 갈치를 잡고
밤에는 어둠 튀기는 등 푸른 생선을 잡고
이따금 붉은 꽃게도 그물 가득 건져올린다
끝없이 건져올린다 저 하늘 고기들을
모래만 남을 때까지 제 만선만을 매일 꿈꾸며
내일의 안부 따위는 아랑곳 않는 어부다
-「제철소 굴뚝은」전문
“제철소 굴뚝은 어부”라는 참신한 은유를 하고 있다. 그 어부는 “핏발 선 눈 번뜩이며” 밤낮으로 쉬지 않고 만선만을 꿈꾼다고 하며 강한 비판 의식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검은 강」에서는 “산마저 지고 가다가 결국 등이 저리 휘어도/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부패의 내음도 아랑곳 않고/ 오로지 네 관자놀이엔 정맥만 살아 꿈틀”이라며 강의 오염을 걱정하고 있는 등 생태의식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6. 현실 인식
어제 신문엔 전경들이 촛불을 둘러싸더니
오늘은 시위대가 전경들을 둘러쌌다
가화(假花)가 꽃잎을 에워싸
산수국이 늘 피는 광장
-「꽃피는 민주주의」전문
1980년대에는 민주화 항쟁을 위해 우리 사회는 많은 투쟁이 있었다. 초장에서는 전경들이 시위대를 강압적인 것을 묘사하고 있다면 중장은 민주화가 된 지금에도 30년 전의 의식 속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은 온갖 선동과 궤변을 일삼아도 생화가 아닌 조화요 거짓꽃(가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손수성 시인은 현실 비판을 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는 자아성찰의 시를 위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현실비판적인 시를 통해서 그의 현실 인식의 일단을 알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1
도토리는 개인을 죽여 집단으로 살지만 떫은 소리로 아우성을 치지 않는다 제 몸을 물에 헹구며 찰진 힘부터 기른다
2
길 옆 코스모스는 무리를 지어 살지만 결코 남이 갈 길을 가로막지는 않는다 남들과 나란히 걸어야 서로가 꽃핌을 알기 때문이다.
3
날빛 칼날을 가진 강변의 저 갈대숲도 바람과 마주 서서 다투지 아니한다 자신이 먼저 누워서 바람의 상처를 그윽히 안는다.
-「집단의 힘」전문
위 작품은 손수성 시인의 현실 인식이나 그의 인생관을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우선「집단의 힘」이라는 제목을 보면 우리 사회가 노사 분규를 비롯하여 각종 이익단체들이 선동하여 집단적인 힘을 행사하여 긍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현상들이 난무해 왔음을 우리는 많이 경험 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언론마저도 그러한 횡포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면 법을 무시하고 불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마치 정의로운 행동인 양 비뚫어진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 이 땅에는 암세포처럼 퍼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앞에 ‘집단의 힘’이라는 제목은 통념과는 다른 뜻을 함축하고 있어 반어적인 긴장감을 주고 있다.
<1>에서는 도토리가 묵이 되기까지는 떫은 맛을 버리고 함께 어울려 찰진 힘부터 기른다고 하였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내 탓이라는 생각부터 하라는 것이다. 도토리가 떫은 맛으로 끝까지 아우성 친다면 묵으로 변화지는 못할 것이다.
<2>에서는 아름다운 코스모스 꽃길을 소재로 하면서 꽃길을 남을 가로막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는 내가 살기 위하여 남을 쓰러뜨리는 생존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남들과 나란히 걸어야 꽃핌을 알기 때문”이라며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고 있다.
<3>에서는 날빛 칼날을 가진 갈대숲은 바람과 다투지 않고 자신이 먼저 누워서 바람의 상처를 그윽히 안는다고 하였다. 손수성 시인의 성품은 남과 다투기 보다는 화해와 평화와 사랑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잘 형상화 한 작품으로는 「강물과 모래」가 있다.
「강물과 모래」에서는 “강물과 모래는 서로를 향해 흐르고 있네/ 세월이 강 전체를 하구로 내몰더라도/ 강물은 모래를 안고, 모래는 또 강물을 안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또 「烏道」에서는 “세월마저 바위 등에 칼자국을 그어대지만/ 바위는 허리를 굽혀 어린 게를 감싸안고/벌레는 바위 등에서 그의 상처를 보듬었다// 바위며 게며 벌레가 하나의 섬이 되었다/ 껴안은 마음들이 새가 되고 깃이 되어/ 부서진 파도 소리를 무지개처럼 흩뿌렸다”고 노래하였다.
세월에 바위가 칼자국이 나도 어린 게를 감싸 않고, 벌레도 바위 등에서 그의 상처를 보듬고 있다. 바위는 자신의 고통 속에서도 약한 존재들의 안식처가 되도록 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끝내 하나의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었으니 바로 ‘섬’이다. 그리하여 하나가 된 마음들은 새가 되고 깃이 되어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도 있으며, 파도 소리마저 무지개처럼 흩뿌렸다고 하여 완전한 평화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7. 순수 서정
서정시의 본령은 순수 서정일 것이다. 우리 인간은 남과 더불어 사는 삶도 있지만 홀로 사는 삶도 있다. 남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양보도 하고 희생도 하여야 할 것이며 홀로 사는 삶을 위해서는 기쁨도 눈물도 혼자 조용히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홀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땐 어둠보다는 밝은 추억에 바탕을 두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인 것 같다. 두 삶이 조화로울 때 바람직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골 학교 운동장은 아무리 봐도 큰 저수지
철새들이 날아들듯 나뭇잎이 모여들어
물 위를 헤엄쳐 다녀 물무늬가 일렁입니다
절벅거리는 물소리에 힘살 세웠던 발을 씻으며
둘러선 플라타너스도 빈 손을 털어 보입니다
가슴 속 숱한 철새들 이윽고 풀어 놓습니다.
세월도 잎이 말려 바람에 굴러갑니다
그 뒤를 따라 가면 운동장엔 물살이 일고
떨구는 우리네 잎들 물오리되어 첨벙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전문
이 작품은 순수서정시로서 이미지 형상화의 한 전범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라고 본다. 첫째 수에서는 운동장을 저수지로 은유하였으며, 나뭇잎을 철새에 비유했습니다. 손수성 시인의 시에는 대부분 은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서는 직유로써 적절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비유란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적절하게 사용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수에서는 플라타너스 잎을 철새에 비유하였습니다. 첫째 수와 중복되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데 사실은 ‘가을이 깊어지면’의 제목에서처럼 시간이 흘러서 플라타너스가 온통 잎을 다 떨군 것을 나타낸 것이다. 셋째 수에서는 철새에서 물오리로 비유하여 운동장이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요즘 시골학교에는 학생 수가 줄어들어 매우 조용한 곳이 대부분이다. 이런 조용한 학교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희망이 감돌게 표현한 것은 시인의 인생관이 모든 일에 긍정의 세계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본다.
셋째 수에는 특히 낙엽의 잎이 마른 것을 “세월도 잎이 말려”라고 하여 시간에 대한 독창적인 표현들이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종장에서 “떨구는 우리네 잎들”이란 무엇일까. 시골 학교 운동장에서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시절을 회상한 것을 비유한 것이리라. 그리하여 철없던 어린 시절에 뛰어놀던 날들을 “물오리 되어 첨벙입니다”라고 한 것이다.
이 작품도 쉬운 시어들을 사용하면서도 비유와 이미지 형상화를 적절하게 하여 생동감을 느끼게 하고 있는 좋은 작품이다.
8. 나오며
손수성 시인의 첫 시조집 『청동의 하늘』의 발간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동안 기대를 받아왔던 손수성 시인이 이제야 시집을 내었지만 작품을 일어보는 순간 긴장으로 시작하였으며 다 읽고 난 후에 느낌은 충격과 기쁨으로 다가와 읽고 또 읽게 되었다. 어느 누가 우리 국토를 일러 “전 국토가 역사박물관”이라고 했듯이 『청동의 하늘』은 또 하나의 ‘현대시조의 교과서’라 부르고 싶다. 새로운 빛깔로 무지개와 같이 나타난 『청동의 바람』은 그러한 힘이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첫째, 은유와 상징으로 이미지를 독창적이고 적절하게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그의 긍정적이고 치열한 삶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 살아온 모습과 언행이 시에 그대로 나타나 있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긍정에 바탕을 둔 인생관을 바탕으로 모든 일에 꿈, 희망, 별빛을 지향하고 있다.
시의 표현과 내용 중에 어느 한 쪽만 뛰어나도 좋은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시집에는 표현과 내용이 모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다는 건 푸른 빛을
늘 간직하는 일입니다”(「하늘매발톱」에서)
이 한 말 속에는 손수성 시인의 긍정적 삶의 길이 다 담겨 있는 듯하여 종소리처럼 귀에 쟁쟁히 남는다.
끝내는 바람과 싸운 의지로 남고 싶네
이승의 고통 같은 딱딱한 껍질도 벗고
투명한 사리와 같은 영혼으로 남고 싶네
-「벼」일부
“투명한 사리와 같은 영혼으로 남고 싶”다는 손수성 시인은 앞으로 그러한 시들을 뽑아내리라 기대하고 기원한다. 은유와 상징으로 뛰어난 시적 형상화를 한 『청동의 바람』은 현대시조사에 길이 남을 것이며 시조 창작을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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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설 잘 읽었습니다. 이런 좋은 시평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시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시평이 더욱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시와 시평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를 더욱 푸르게 채색하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게 알려지지 않은 좋은 시집들에 대해서 찾아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