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생활 18년의 삶을 '나누기'합니다.
1995년 10월 5일 이후 나는 줄곧 이곳에서 내일을 보며 일을 하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날 김포 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기는 그당시 항공 노선대로 한반도 상공을 지나 대만,홍콩까지 가서 다시 북쪽으로 운항하여 약 4시간(지금은 인천-천진 1시간30분 소요)비행기를 타고 중국 천진(天津) 공항에 내리니 먼지 바람과 함께 풍토에서 솟아 오르는 쾌쾌한 냄새가 진동하는 공항 터미날을 빠져 나와 회사에서 보내준 미니밴에 옷차림새가 조금은 지저분하고 머리도 감지 않은듯한 차림으로 나를 맞아 주기에 그 차를 타고 통통 거리는 도로위를 달릴때 내 눈에 들어오는 거리는 온통 새까맣고 모두가 낯설은 사람과 풍경,정서,거리,환경이었습니다.그때 사실 나는 이보다 앞선 1994년 11월에 약 2주간 업무차 왔었는데 그때와 그날은 1년이 지났는데에도 도시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하지만 지금은 세월이 흘러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국가와 천진시 정부의 사회 간접 자본이 집중 투입 되면서 도시의 여러 환경이 변모해 가면서 새롭게 도시는 탈바꿈 하고 늘 나는 변화와 개혁을 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환경은 점점 좋아지고 개개인의 경제력이 향상 되면서 "사람들의 삶이 이렇게 윤택해 질 수 있구나"라고 많이 느끼게 됩니다.그렇지만 이곳은 주변에 산이 없고 자연 환경이 좋지 않다보니 아직도 바깥 공기가 좋지 않아 이곳에서 오랫 동안 살다 보니 가끔 푸른 하늘,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지는 몇 안되는 날이 오면 내 마음도 같이 좋아지는 습관이 되어 그런 날이 오면 늘 사진에 담아 두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도시 생활 공간의 많은 변화가 있지만 특별히 문화 여가 생활을 하기엔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유명한 산이나 유적지,관광지,공원,거리,휴양지등에 가는 곳 마다 사람이 많아 이것을 피하려면 평일을 이용해야 하는데 모든 여건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천진인구 1400만명)
예전에는 차보다는 자전거가 많았지만 지금은 중국인들도 개인별 수입이 오르고 자동차의 증가와 고급화는 물론 사람들의 옷차림새와 매일 솟아오르는 빌딩과 고층아파트,그린환경과 공원,놀이동산,휴양지,백화점,고속철도와 전철등이 점점 중국 사람들의 삶이 윤택해 지도록 도시는 이렇게 변하고 있고,나는 이 속에서 18년째 살아가고 앞으로도 더 이보다 많은 시간을 더 살아야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선임 주재원이 중도에 중국 업무에 대해서 적응을 못하고 귀국하는 바람에 내가 대신 나오면서 시작한 중국에서의 내 삶은 이곳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정착하는 지금이 마냥 신기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내게 주어진 운명인듯 하다고 여깁니다.이제는 이곳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여 누가 보면 중국의 조선족(朝鮮族,56개 민족중의 하나이며 10대 민족에 들어가며,주로 1900년대초부터 이주한 터전 이었음)을 빗대어 내게 '신선족(新鮮族)'이라고 까지 합니다.
오래 살다보니 천진 만큼은 웬만한 중국인 못지 않게 유명한 여행,식당,상점등의 길을 훤히 알고 "천진 역전의 쥐구멍 숫자까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자가 운전으로 전국 어디를 갈수도 있고,중국어를 습득하여 한자로 되어 있는 글을 읽고 쓰고 말하고,수천가지의 중국 요리를 주문하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중국화 되어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천진은 한국의 생활과는 다른 분명 이질적인 문명과 문화 속에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이러다 보니 누구나 한번쯤 인생에서 외국에서 살아 보는 것도 괜챦다는 생각을 합니다.천진은 지리적으로 한국과 상당히 가깝고 한국인이 약 6만명 살고 있고,조선족은 14만명이나 살고 있으니 가히 한국적인 문화,음식,생활은 물론 학교,한국 방송의 시청이 가능하고 언제난 쉽게 한국을 오갈 수 있어 좋고,흔한 말로 중국어를 몰라도 살 수 있는 중국속의 천진 한국 생활상입니다.
이렇게 살면서도 나는 스스로의 삶에 늘 "신기하다"라는 표현을 자주 하게 됩니다.
"정말 운명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돌이켜 보면 내 삶의 유년기 10년은 집에서 살았고,청소년기 10년은 소년의집에 들어와서 학문과 인생을 배우고 익혀서 사회에 나와서 10년을 한국 수원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고,그 이후 지금은 중국 천진에서 18년째 정착을 하니 셈을 하면 내 나이가 나오고 내인생이 이렇게 4막에 다 그려지는듯 합니다.
순수하고 마음씨 착한 중국인들이지만 오래전부터 역사적으로 수많은 나라가 100년이 못가서 전쟁으로 인해서 침략과 배격을 당하는 일들이 빈번하여 중국 대륙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씨족을 잇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인들은 뼛속 깊이 박힌 인이 있는듯 많이 조급하고,과시하고,조아리고,간사함이 특히 많고 돈에 모든 것을 걸 정도이고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남에 대한 배려,양보는 보기 드문 것이 특징이라고 단정 지을수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때론 마음이 아픈 일이 자주 생기지만 어떤때에는 중국인들은 알다가도 모르게 상호 우의나 업무적인 협의를 통해 이해 관계가 충분하면 자연적으로 "한번 친구하면 영원히 친구"로 하여 한국인 이상으로 잘 대해 주는 경우도 많아 때때로 대우 아닌 대우를 융숭하게 받을때도 있습니다.덕분에 많은 중국인 지인도 생겼습니다.늘 내가 먼저 그들을 존중하고 베푸는 것이 곧 내가 그들에게 대우 받는 것을 알기에...이또한 중국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18년을 타국땅에서 살았어도 내 삶의 환희는 아직 멀었지만 나로 인해서 한국에서 살지 못하고 이곳에서 살면서 고생한 가족들의 생활 환경이 달랐어도 나는 이또한 가족들에게 어쩌면 좋은 기회를 부여하였고 그속에서 잘 살고 있으니 늘 고맙기도 하고 회사 생활을 하고 사업을 하고 늘 사람들과 함께 하는 내 삶도 '인맥 형성'이 가장 큰 재산이 되어 가니 나도 곧 중년이 되고 내 삶을 돌이켜 볼때 늘 살아 온 날 보다는 앞으로 살 날은 늘 아무도 모르기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에서 늘 긍정적이고 남을 생각하는 것 만큼 내가 남들과 달리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고 여기며 지금의 나를 뒤돌아 보게 됩니다.
"타국 생활이 쉬울까?"
18년 동안 격은 삶의 애환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나도 이러하였는데 한국을 떠나 필리핀,온두라스,멕시코,과테말라,브라질등 타국에 가셔서 신부님의 자선 사업을 하시는 수녀님들의 여러가지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분들의 위대함을 내가 이곳에서 체험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누구보다 크게
수녀님들께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신앙과 기도,애덕,봉사의 힘이 아닐까요?
수녀님들께서는 자신 보다 남을 위해 사시는데 나는 그저 나를 위해 사는 데에도
많이 힘들었음을 압니다..
이렇게 의지 있게 계획을 잘 해서 살아 가도록 가장 중요한 청소년기에 '소년의집'에서 배운
정신적인 교육의 힘과 신앙의 선물을 내 인생에게 주신것을 바탕으로 나의 운명이 이렇게 전개 되었고,평범하지 않지만 그래도 힘들고 어렵게 자란 친구,선후배들도 지금은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삶을 역어 가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또 신기한 것이 우리의 삶이기에 이것은 내 인생을 구원하여 주신 신부님,수녀님들은 위대한 성직자요 교육자라고 여기게 되고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또한 지금의 내 위치에서 이렇게라도 감사히 살아가 가도록 이끌어 주신 그분들에게 어떻게 감사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을까요?
18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지금이 내겐 축복이고 선물이고 삶의 희망이고 내 후손들에게 잘 보존해 줄 가치있는 시간이었다고 여깁니다.지금은 어릴적부터 이곳에서 자라서 성인이 된 두 아이와 10년후 또다시 성인될 막내와 더불어 잘 살아 가도록 많은 관심과 기도를 해주신 어머니 수녀님들이 늘 생각이 나고,지금의 나를 이곳에서 잘 대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감사하다'고 전하는 시간이기에 지금이 좋습니다.
늘 새로운 일이 있고 기회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한 만큼의 은총과 축복이 늘 다가 온다는 진리를 어느정도 알게된 중년의 나이에 접어 들게 되니 지난 세월의 부족함을 알면서도 돌이킬 수 없기에 앞으로의 긴 시간을 내것으로 더 충족 하도록 오늘과 내일을 보며 결코 게으름 피우지 말고 배운대로의 참삶이 곧 내 삶을 평온하고 평화롭게 유유하게 지내게 하고 나의 작은 소망의 행복을 꿈꾸며 언젠가는 나도 내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기에 그 꿈을 실현하는 날을 갈망하며 오늘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인생입니다.늘 감사합니다.
중국 천진 2013년 10월 4일 아침에..
천진의 낙후된 예전 거리(천막 상가,지저분한 거리)
(천진의 대표 음식 ; 고부리 만두-맛의 일품!!)
천진의 대표적인 상징 천탑(420m;세계 4위)
천진 강변(78층 고층빌딩)
천진강변의 변화(인공강이며,예전 이곳은 물이 검은색이었음)
'天津眼' 야경과 낮의 풍경(영국런던을 모방함)
밀레니엄 시계 2000년 1월1일부터 가동
천진의 고급 주택(비버리힐 같은 주택촌이 많다=갑부가 많다)
고층 아파트와 주변의 자연 경관
도심의 거리,빌딩
신축중인 고층 아파트
내 회사 사무실 주변 풍경
다운타운-차가 많고,특히 유명 브랜드의 고급차가 많다.
천진스포츠타운-2013년 10.6~15 동아시아 경기대회 주경기장
천진의 고문화 거리
현대식 백화점 실내-세계 최고급 명품은 모두 있음.
고속열차 운행
지상과 지하로 다니는 전철
잘 단장된 도심의 화단
축구장 4개만한 크기의 수상 공원
명품 아울렛 상가 거리(시외곽 촌에 건립)
100년에 가까운 가톨릭 성당(프랑스 선교사 건립)
중국의 평범한 화장실 문화(칸막이가 없다)
첫댓글 마치 중국 관광을 한 기분입니다.
수상 공원이 생소하고 멋있게 생각되네요.
그리고 인천에서 천진까지 그렇게 가까운 거리인줄 몰랐습니다.
18년이면 이제 거의 중국사람 못지않게 정도 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네 감사합니다..수상공원은 저녁무릅에 가면 특히 정서적으로 좋습니다.
신선족! 힘내시게나..
네..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좋은 성품을 가졌기에 오늘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보스코의 진솔한 삶에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잘 성장하고 배우도록 가르쳐 주시고 기회를 주셨기에 저도 이만큼 성장했습니다...늘 감사함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읽으면서 그 아버지에 그아들, 그수녀님들에 그아들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연세에도 외국살이를 해 내시는 수녀님들이나
용기와 결단으로 외국, 중국에서 18년이나 살아가는 아들네나... 긴 역사와 같은 이야기 잘 듣고 갑니다.
과찬의 말씀..많이 부족하기에 더 노력하고 감사히 여기며 살아갑니다...
잘 읽고, 구경도 잘했습니다.
인생을 참으로 성실히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시는 모습이 자서전(그렇게 느껴지네요.)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가슴이 뭉클합니다.^^
감사합니다.저보다는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은덕을 주시기에 모든 수녀님을 존경합니다.
선교사 못지 않은 체험을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중국의 변화가 실감납니다.
인구가 많으니 한사람 한사람을 경제인력으로 키우면
굉장한 경제력을 갖춘 나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
급속도의 경제성장과 아울러 사회주의 속에서 피폐해진 심성과 영성이 함께 자라야
정말 사람살기 좋은 이웃나라가 될텐데...
7-80년대 우리나라처럼 경제성장만을 목표로 달리다보면
지금 우리나라처럼 인성과 영성이 파괴되어 버리니까요.
그들에게 심성과 영성이 언젠가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으리라 봅니다.
많은 얘기와 비젼을 보여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축복을 빌어드립니다.
과찬의 말씀으로 격려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가장 가까운.이웃 나라 중국이 세계 열강으로.자리 잡아 가는 만큼 우리 나라에도 미치는 경제적 영향이 큽니다.미국,유럽을 볼것이 아니라 중국쪽에 관련된 비즈니스를 하면 더더욱 좋은 장래에 많은 열매들이 잘 되리라 여깁니다.현재에도 중국 전역에 열매 동문이 30여명이 이곳에 진출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을 말해 줍니다..후배들이 학교에서 과정을 통해서 중국어 공부에 매진하면 좋겠어요..인구적으로 볼때에도 1/3이 중국,대만,동남아시아,유럽,미국등에 퍼져 있는 화교들이므로 출신 선후배님들께는 향후 중국 관련 job을 하는 미래 설계를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