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conte)>
『왕 공주병』
靑山 손병흥
가끔씩 우리들 주위에서 안타깝게도 공주병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볼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 들이 간혹 자가당착에 빠져 맹한 표정과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행동으로 우리들 모두를 당황하게 하거나, 아니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등 무미건조한 삶에 활력소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필요악이 될 수도 있다 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아무튼 도처에서 공주병이 나돌고, 어떤 연예인은 이에 질세라 "공주는 외로워" 란 노래로, 짭잘한 재미와 인기를 한 몸에 받았었다는 것도 다들 알고는 있으리라.
이 얘기는 중소규모의 모 회사에서 있었던 공주병에 관한 실제의 사건을 토대로 재구성을 하였다.
사실 미스 황은 그 회사 사장의 친척으로, 훤칠한 키와 날씬한 몸매, 항상 생긋이 웃는 듯한 호감이 가는 인상 이다보니, 그 동안 회사내에선 꽤나 인기가 높았다고 하는데, 다만 한 두 가지 흠이 있다고 한다면 결혼 적령기를 조금 넘긴데다 왕 공주병에 걸린 올드미스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나이를 종잡을 수 없을 정도의 앳된 미모 덕분에, 처음 들리는 거래처 손님들로 부터 아직 까지 꾸준한 인기를 한 몸에 지닐 수는 있었다.
회사 내의 각 과 사무실에 업무용 컴퓨터와 팩스는 구비되어 있었지만, 비용절감과 관리상의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위해서(?) 라는 취지로, 복사기는 달랑 경리과에만 비치되어 있었던게 화근 이었단다.
그 날 따라 평소 생활신조가 '내가 공주라는걸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 였던 당내공(당연히 내가 공주지!) 환자 였던 그녀가, 서류 뭉치를 들고서 필요한 복사를 위해 경리과 사무실 한 켠에 있는 복사하는 곳으로 들렀더란다.
그런데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그날 따라 금년도 신입사원이자 핸썸한 용모의 총무과 총각사원인 김치국 씨가, 복사를 하다 말고는 자꾸만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 봤더란다.
마음속으로 그녀는, '그러면 그렇지. 난 아직 매력 덩어린거야. 그러니 너도 별수없는 남자이군. 지가 미녀한테 안 넘어가고 배겨.'
"김치국 씨.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혹시 뭐라도 묻었어요?"
그녀는 속으로 김치국 씨의 이름 마따나 김치국 부터 마시지 말라는 투로 슬슬 포문을 열더란다.
그러자 머뭇거리며 김치국 씨가 말하길
"저 … 그게, 저 … 반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그녀는
"뭐라구요? 제가 잘못 들었는데…"
그러자 김치국 씨는 거듭 다시 당황스런 모습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저, 반했다구요."
그녀는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마치 용수철에 튕기듯이 다짜고짜 김치국 씨의 뺨을 냅다 올려 붙이며 쏘아대기를,
"아니, 이 남자가. 신입사원이라면 다소곳이 자기 일이나 잘 할 일이지, 언감생심 어디를 넘 보는 거예요. 사람을 뭘로 보는 거예요. 별꼴이야!" 하며 정강이를 뾰족한 구둣발로 인정 사정없이 잽싸게 걷어 차 버리더란다. 그러고도 제 풀에 분을 삭이지 못한 그녀는 복사 할 일도 잊은 채 종종 걸음으로 제자리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하소연을 하며 화를 풀었고, 이후로 총무과 사람들 하고는 절대로 상종도 않겠다는 투의 선언까지 해 버리더란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롱다리를 절룩 거리며 얼굴이 새빨개진 김치국 씨와 고참 여직원이 함께 달려 와서는, 한참 동안이나 아니 그럴 수가 있느냐는 투의 일그러진 표정으로 따지고 드는 바람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오래 도록 종내 고개를 들지 못하더란다.
"저는 미스 황이 그냥 서서 너무 오래 기다리실까봐 미리 생각하여, 아직 반 밖에 복사를 못했으니 좀 앉아서 기다리시는 것이 좋겠다는 순수한 뜻에서, 단지 죄송 스런 마음으로 별 대수롭지 않게 말씀 드렸던 건데…."
풍문에 의하면 그런 무안한 일을 당하고 난 뒤로도 고질 적인 미스 황의 공주병이 비록 그 증세가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도진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아마 이 시대에선 쉽사리 치유하기가 힘든 휘귀한 '난치병' 임은 틀림이 없을 터 였다.
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읍니다.오늘도 건필 하시길.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새봄을 맞아 문운도 가득하시고
행운과 행복도 늘 충만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