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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선생의 성도와 기행이적 (第三章. 先生의 成道와 奇行異蹟)
1. 先生이 多年間 客地에 遊歷하사 만흔 經驗을 어드신 後에 辛丑에 이르사 비로소 모든 일을 自由自在로 하실 權能을 엇지 안코는 을 일우지 못할 줄을 다르시고 드대여 全州 母岳山 大願寺에 드 러가 道를 닥그사 七月 大雨 五龍噓風에 天地大道를 다르시고 四 種魔를 降하시니 이에 同寺 主持 朴 錦谷이 모든 便宜를 도앗더 라.
2. 壬寅 四月에 先生이 金溝郡(今金堤郡) 水流面 院坪場에 지나시다가 全州郡 雨林面 夏雲洞 金 亨烈을 만나시니 大抵 亨烈은 前者부터 先生 知面이 잇셧는대 先生의 成道하신 所聞을 듯고 뵈압기를 願하든 次임으로 喜不自勝하야 自家에 顧臨하시기를 懇請하엿더니 同月 十三日에 亨烈의 집에 이르사 곳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君 家에 産氣가 잇스니 니 內室에 드러가 잘 도우라 하시거늘 亨烈 이 內庭에 드러가니 果然 그 妻가 第三子를 分娩하엿더라.
3. 亨烈의 妻가 自來로 産後에는 반다시 腹痛이 發하야 累月을 苦痛하는 例症이 잇서서 復發함으로 亨烈이 크게 근심하거늘 先生이 慰勞 하야 가라사대 今後로는 모든 일에 나를 信賴하고 근심을 노으라 하시거늘 亨烈이 命하신 대로 다만 天師만 밋고 근심을 노핫더니 果然 그 妻의 腹痛이 곳 그치고 그밧게 喘氣와 咳嗽 等 別症도 다 나으니라.
4. 先生이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졔 末世를 當하야 압흐로 無極大 運이 열니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야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 니하야 純潔한 마음으로, 天地公庭에 參與하라. 나는 三界大權을 主 宰하야 造化로써 天地를 開闢하야 不老不死의 仙境을 열어 苦海에 浸淪한 衆生을 건지리라 하시고 일로부터 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天 地公事를 行하실새 亨烈에게 神眼을 열어주사 神明의 會散과 聽令 을 參觀케 하시니라.
5. 여름을 지내실 새 亨烈의 집이 貧寒하야 供餽가 粗略하고 圃園 이 瘠薄하여 蔬菜가 잘 자라지 안니함으로 亨烈이 근심하거늘 先生 이 일너 가라사대 山中에는 別味가 업나니 蔬寀나 잘 蕃殖케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일로부터 약간 심어 두엇든 악마듸 蔬寀가 人工을 加하지 아니하여도 졔절로 잘 蕃殖하야 採之不竭하니라.
6. 六月 어느 날 亨烈을 命하사 耶蘇敎書 一冊을 求하여 오라 하시거 늘 亨烈이 隣里 梧桐亭 金 京安에게서 新約全書 一冊을 비러다 올 니니 先生이 바더서 불살으시니라. 그 後에 亨烈이 先生을 모시고 梧桐亭 車 允必의 집에 가니 京安이 와서 비러간 冊을 돌녀주기를 請함에 亨烈이 對答치 못하거늘 先生이 가름하야 對答하사대 곳 돌 녀주리라 하시더니 마참 한 筆商이 지나거늘 先生이 불너들이사 술 을 만히 주신 後에 그 筆箱을 열어 뵈이기를 請하신 대 筆箱이 곳 열어 뵈이니 新約全書 一冊이 잇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그대는 반다시 耶蘇를 밋지 아니하니 이 冊은 無用이라. 나에게 傳함이 엇 더하뇨. 筆商이 許諾하거늘 先生이 그 冊을 바더서 京安에게 주시 니라.
7. 그 後에 佛書 千手經과 漢字玉篇과 史要와 海東名臣錄과 康節觀梅 法과 大學等 書를 불살으시니라.
8. 九月에 農家에서 麥耕으로 奔忙하거늘 先生이 喟然히 가라사대 이 럿케 辛苦하야 收穫을 엇지 못하리니 엇지 可惜지 아니하리오 하 시거늘 亨烈이, 이 말삼을 듯고 드대여 麥農을 廢하엿더니 癸卯春에 이르러 天候가 順調하야 豊登의 兆가 잇는지라. 金 甫京 等 모든 從徒들과 이웃사람들이 모다 亨烈을 嘲笑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 일은 神明公事에서 決定된 것이니 아즉 結實期에 이르지 못하 야 엇지 豊作을 預斷하리오 하시더니 果然 五月五日 大雨로 因하 야 麥穗가 다 말나서 收穫이 全無하게되고 米價가 高騰하야 一斗에 値 七兩(今金貨一圓四十錢)이 되니 일로부터 모든 사람이 先生 信服하니라.
9. 한 사람이 무러 가로대 今年에는 엇든 穀種을 심음이 조흐릿가. 先生이 가라사대 日本人이 祿을 고 왓나니 日本種을 取하여 심 으라. 生計의 모든 일을 그들에게 順從하라. 祿줄이 라 들리 라. 하시니라.
10. 冬月에 亨烈이 先生을 모시더니 마참 大雪이 나리거늘 亨烈이 엿주 어 가로대 傳說에 宋 尤菴의 居住하는 집웅에는 눈이 싸이지 못하 고 녹는다하니 진실로 天地의 至靈之氣를 타고난 사람이로소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진실로 그러하랴. 이졔 나 잇는 곳을 삷혀보라. 亨烈이 밧게 나가보니 날이 차고 눈이 만히 나려 싸이되 오직 그 집웅에는 一點雪도 업고 맑은 긔운이 하눌에 치어 구름이 가리우 지 못하고 碧空이 通하여 보이더라. 일로부터 亨烈이 恒常 留意하 야 삷히니 언졔든지 그 머무시는 곳에는 반다시 맑은 긔운이 碧空 을 通하야 구름이 가리우지 못하고 비록 큰 비가 오는 에도 그러 하더라.
11. 매양 出他하실 에는 神明에게 治道令을 써서 불살으사 여름이면 바람을 불녀 길에 이슬을 러트리시고 겨을이면 진 길을 얼어 굿 게 하신 後에 말은 신으로 다니시니라.
12. 夏雲洞은 山中임으로 길이 甚히 좁고 樹木이 길에 욱어저 얽히여서 이슬이 만흘 아니라 潦霖이 질 에는 길에 물이 흘너 溪流를 일 우되 先生의 신발은 恒常 乾淨함으로 附近 村民들이 모다 神異히 역이더라.
13. 出他하실 에는 반다시 洞口의 左右側에 雲柱가 놉히 치어 八字形을 일움으로 從徒들이 그 理由를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將門이라 하시니라.
14. 癸卯 七月에 米價가 奔騰하고 農作物에 蟲災가 甚하야 人心이 極히 不安하거늘 先生이 여러 從徒들에게 일너 가라사대 辛丑 以後로는 年事를 내가 맛헛스니 今年의 農作을 豊登케 하야 民祿을 넉넉케 하리라. 하시고 크게 雷電을 이르키시니 일로부터 蟲災가 것치고 作物이 大登하니라.
15. 先生의 親弟 永學이 恒常 道術을 通하기를 熱望하여 先生 發願하 더니 하로는 先生이 한 부채에 鶴을 그려서 永學을 주시며 가라사 대 집에 도라가서 이 부채를 부치면서 七星經을 武曲破軍지 닑 고 니어서 大學을 닑으라. 그러면 道術을 通하리라. 永學이 부채 를 가지고 집으로 도라가다가 鄭 南基(先生의 妻男)의 집에 들니니 南基의 아들이 그 부채의 美麗함을 貪내여 앗고 주지 아니하거늘 永學이 不得已하야 그 事由를 말하고 돌녀주기를 懇求하니 南基의 아들은 더욱 貪내여 주지 아니 함으로 할 일업시 앗기고 도라 가 니라.
16. 그 後에 南基의 아들이 그 부채를 부치면서 大學을 닑음에 문듯 神 力을 通하야 能히 神明을 부리며 물을 려 비를 베푸는지라. 南基 가 깃버하야 그 아들을 敎唆하야 先生의 道力을 앗으라함으로 그 아들이 父 南基로 더부러 夏雲洞에 이르니 先生이 그 일을 알으시 고 南基의 無義함을 지즈사 그 아들의 神力을 다 거두신 後에 돌 녀보내시니라.
17. 甲辰 正月에 白 南信이 官厄에 걸니어 깁히 隱居하야 所措를 莫知 하고 金 秉旭을 통하야 先生 解難하여 주시기를 懇乞하거늘 先生 이 가라사대 富貴한 者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十萬兩(今金二萬 圓)의 證書를 가져오라. 南信이 곳 十萬兩의 證書를 올녓더니 그 後로 南信의 禍厄이 곳 풀니는지라. 先生이 그 證書를 불살으시니 라.
18. 十五日에 先生이 술을 마스시고 혼몽히 주므실 새 張 興海의 幼兒 가 急病이 發하야 瀕死함으로 興海의 父 孝淳이 急히 와서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누어 일지 아니하시고 혼몽中에 冷水나 먹이라 말 삼하섯더니 孝淳이 病兒에게 冷水를 먹임에 곳 死亡하는지라. 孝淳 은 本來 性質이 慓悍하야 府中人이 天動이라고 號하는 터인대 病兒 의 死亡함을 보고 大怒하야 先生을 원망하야 가로대 이는 故意로 藥을 그릇 일러 죽임이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일으키며 말 한마대로 危殆한 病을 곳침은 내가 實見한 바이니 만일 故意가 아 니면 물은 姑捨하고 흙을 먹엿슬지라도 그 神異한 道術로 能히 낫 게 하엿슬것이라하고 드대여 棍棒을 가지고 와서 先生을 亂打하야 流血이 淋漓케한지라. 先生이 비로소 어 이러나시니 孝淳이 先生 을 結縛하야 長房廳으로 갓다가 문득 뉘우친듯이 느며 가로대 이 것이 다 나의 잘못이라. 幼兒가 急病으로 죽엇거늘 엇지 先生을 원 망하리오하고 前交를 回復하기를 請하며 自家로 同行하기를 求하거 늘 先生이 듯지 아니하시고 徐 元圭의 집으로 가서 留하시고 翌日 에 李 直夫의 집으로 가시니라. 대개 孝淳이 先生을 容恕하야 長房 廳으로부터 도라가시게 한 것은 白南信에게 바든 돈 二十萬兩의 證 書가 잇슴을 알고 돈을 要求하려 함이러라.
19. 翌日에 孝淳이 元圭의 집에 가서 先生의 안 계심을 보고 大怒하야 殺人犯으로 逃避하엿다하고 四方으로 搜索하더라. 그에 先生의 省率은 全州郡 亂田面 花亭里 李 京五家 狹室에 移居하엿는대 孝淳 의 家族이 花亭里에 와서 行悖하니라. 金 亨烈은 孝淳의 일을 알지 못하고 先生의 消息을 드르려고 花亭里에 오니 孝淳의 家人이 亨烈 을 結縛하야 元圭의 집으로 가서 先生의 行方을 뭇되 가르키지 아 니함으로 그들은 더욱 憤怒하야 亨烈과 元圭를 無數히 毆打하니라. 일로 因하야 先生의 省率은 泰仁 屈峙로 避禍하고 亨烈은 元圭의 집에서 乘夜逃避하고 元圭는 그들의 連日行悖에 견대지 못하야 藥 局을 廢鎖하고 家眷을 거느리고 益山으로 避禍하니라.
20. 이에 先生이 李 直夫의 집에 머무르시니 直夫의 父 治安이 當年 의 命壽를 뭇거늘 先生이 白紙一枚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고 다시 글을 써서 緊封하야 주시며 가라사대 急한 일이 잇거든 열어보라 하신지라. 治安이 깁히 갈머두엇더니 그 後에 그 子婦가 難産으로 危境에 이르럿슴을 듯고 그 일을 가르치심인가하야 그 封書를 가지 고 간즉 임의 順産하엿거늘 다시 갈머두엇더니 歲末에 이르러 治安 이 病들어 危篤한지라. 直夫가 封書를 여보니 小柴胡湯二貼이라 씨엿거늘 그 藥을 써서 곳 快復되니라.
21. 二月에 屈峙에 계실 새 永學다려 大學을 닑으라 하섯더니 永學이 듯지 아니하고 術書에 沈味하거늘 先生이 喟然히 歎息하야 가라사 대 멀지 아니하야 永學을 訣別하리라 하시고 李 道三을 命하사 "골 폭사장전유초(骨暴沙場纏有草) 혼반고국조무친(魂返故國弔無親)" 이란 一句詩를 永學에게 傳하사 써 戒惧 省悟케 하시되 永學이 종시 省 悟치 아니하니라.
22. 그 後에 永學이 病들어 죽게 되거늘 先生이 드르시고 金 甲七을 다 리고 집으로 가실 새 中途에 한 酒店에 드시니 한 사람이 허리가 굽어서 업듸여 기여 다니거늘 先生이 그 허리를 펴지 못한 理由를 무르시니 그 사람이 對하되 十餘年前부터 곱사가 되여서 고치지 못 하엿나이다 하거늘 先生이 손으로 그 허리를 주물너 펴주시며 가라 사대 謝金 五十兩(今三圓)을 가저오라하시니 그 사람이 瞬間에 허 리를 편 後에 짓버 놀며 가로대 先生은 實로 再生之恩이 잇사오 니 그 恩惠를 報答할진대 山岳이 오히려 가뱌우나 只今 몸에 所持 金이 업사오니 무엇으로 酬答하오릿가. 先生이 가라사대 物品도 可 하니라. 그 사람이 對하되 내가 棺材장사를 하오니 棺材로 드림이 엇더하니잇가. 棺材한 벌 價額이 十五兩 이니이다. 先生이 가라사 대 그도 조흐니 잘 가려두라 하시고 집에 도라가시니 永學이 임의 죽엇거늘 그 棺材를 가져다가 治葬하시니라.
23. 十五日 金 甲七을 다리시고 扶安, 古阜等地를 巡遊하실 새 昏夜에 古阜 黑巖酒店을 지나시니 이에 火賊이 熾盛하야 白晝에 橫行함 으로 巡檢 一人이 微服으로 夜巡하기 위하야 이 酒店에 드럿거늘 先生이 酒婦에게 일너 가라사대 져 사람에게 酒食을 주지 말라. 만 일 酒食을 주엇다가 갑을 밧지 못하면 不贍한 營業에 損害가 아니 냐 하시니 巡檢이 그 말삼에 憤怒하야 先生을 毆打하며 無禮한 말 을 한다고 짓거늘 先生이 우서 가라사대 다 죽은 屍體에게 마져 서 무엇이 압흐랴하시고 밧그로 나가시니 酒婦가 巡檢다려 일으되 져 사람의 말이 異常하니 반다시 무슨 닭이 잇슬지라. 나가서 謝 過하고 그 緣由를 무러보라 하거늘 巡檢이 올히 녁여 곳 先生의 뒤 를 르며 謝過한 後에 緣由를 무르니 先生이 가라사대 今夜에는 事務를 廢하고 다른 곳으로 몸을 避하라 하시거늘 巡檢이 命하신 대로 卽時 몸을 避하엿더니 이윽고 夜深하야 火賊이 몰녀와서 酒婦 를 毆打하며 巡檢의 去處를 무르니 이는 여러 火賊이 巡檢을 죽이 랴고 預約한 일이 잇슴이라. 翌日에 巡檢이 先生의 留하시는 곳을 차져와서 再生의 恩을 感謝하니라.
24. 五月에 先生이 屈峙에 계실 새 甲七이 銅谷으로부터와 뵈이거늘 先 生이 무러 가라사대 너의 地方에 農況이 엇더하뇨. 甲七이 對하야 가로되 旱災가 甚하야 移秧을 못함으로 民心이 騷然하니이다. 先生 이 가라사대 네가 비를 빌러 왓도다. 네게 雨師를 붓치노니 곳 도 라가되 길에서 비를 맛날지라도 回避치 말라. 그것은 네가 天地公 事를 몸에 緣故니라. 甲七이 領命하고 도라갈 새 얼마 아니 가 서 비가 始作하야 頃刻間에 河川이 漲溢하는지라. 일로부터 水量이 充足하야 數日間에 移秧을 맛치니라.
25. 六月에 亨烈을 다리고 泰仁 新培를 지나실 새 그 里中에 엇든 집이 失火하야 모진 바람에 火勢가 猛熱하거늘 先生이 민망히 녁여 가라 사대 져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全洞이 焦土될 것이니 맛불을 노아 求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命하사 섭으로써 불을 피우시니 瞬息 間에 바람이 자고 불이 지니라.
26. 八月 二十七日에 益山 萬中里 黃 士成의 집에 이르시니 마참 엇든 사람이 怒氣를 고 잇거늘 다시 同里 鄭 春心의 집으로 옴기시니 라. 元來 士成의 父 叔京이 全州 龍進面 龍巖里 黃 參奉에게 債務 가 잇섯더니 黃 參奉이 죽은 後에 그 아들이 專人하야 債金을 督促 하며 만일 갑지 아니하면 警務廳에 告訴하야 獄中에다 썩히면서 밧 겟다고 威脅하는지라. 이날 밤에 士成父子가 春心의 집에 와서 先生 뵈입고 이 事實을 告하며 無事하도록 너 주시기를 懇乞하거 늘 先生이 叔京에게 命하사 白木 一疋을 사오라 하사 衣服을 지어 닙으신 後에 叔京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 後로는 근심을 풀라. 일이 順調로 풀니리라. 白木一疋은 곳 債權債務間에 길을 닥는 것이니라 하시더니 그 後에 巡檢이 와서 叔京을 잡어가려 하거늘 叔京이 巡 檢으로 더부러 債主의 집에 가서 償還을 延期하기로 하고 和解를 請하되 債主가 듯지안코 固執하거늘 그 母가 아들을 불너 지저 가로대 저 어런은 네 父親의 친구인대 이졔 獄에 가두려하니 이는 禽獸의 行爲를 하려함이라하고 곳 그 證書를 아서 불살어버리니 債主가 할 일 없서 叔京에게 謝過한 後에 드대여 告訴를 取下하고 債金을 免除하여 버리니라.
27. 九月十日에 咸悅 會仙洞 金 甫京집에 가시니 甫京이 엿주어 가로대 이 附近에는 近日에 盜賊이 出沒하야 밤마다 村落을 刦掠하는대 내 집이 비록 饒足치는 못하나 外間에서는 富豪라 稱함으로 實로 危惧 하와 마음을 놋치 못하오니 請컨대 盜難을 免케 하여지이다 하거늘 先生이 우스시며 그 문 압헤 춤을 밧흐시고 일너 가라사대 今後로 는 마음을 노으라. 盜賊이 졔절로 멀니 가리라 하시더니 果然 그 後로는 盜賊의 자최 업서지니라.
28. 十一月에 全州府에 이르시니 마참 民擾가 이러나서 人心이 洶洶하 거늘 甫京다려 일너 가라사대 金 秉旭이 國家의 重鎭에 處하엿스니 人民의 動搖를 잘 鎭撫하야 써 그 職責을 다하여야 할지라. 그 方 略을 엇더케 定하엿는지 秉旭에게 무러오라. 甫京이 秉旭을 차저 命하신 바를 傳하니 秉旭이 先生 와 뵈입고 가로대 나의 無能으 로는 물틋하는 民擾를 鎭壓할 수 업사오니 오직 先生의 神威만 밋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내가 가름하야 鎭壓하리라 하시고 그날 밤부터 雨雪을 크게 나리시며 天氣를 酷寒케 하시니 防寒의 設備가 업시 露營에 모혓든 群衆은 할 일 업시 解散하야 집으로 도라가고 雨雪은 三日을 繼續함으로 群衆은 다시 모이지 못하고 騷亂은 스 사로 平定되니라.
29. 十二月에 院坪에 계실 새 그에 御使 朴 齊斌이 全北 七邑郡守를 罷免하고 將次 全州에 出道하려함에 郡守 權 直相의 地位도 危殆하 게 된지라. 金 秉旭은 當時 全州 陸軍將校로서 權 直相과 友誼關係 가 잇슬 아니라 한 唇齒의 關係가 잇슴으로 그 일을 근심하야 先生 그 對策을 뭇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일은 無事하도록 르리니 근심치 말라 하시더니 그 後에 朴 御使가 權 直相을 罷免하 려고 全州府에 드러오자 마참 朴 御使 免官秘訓이 全州府에 到着 하니라.
30. 乙巳 正月 晦日에 先生이 亨烈로 더부러 扶安 成根里 李 桓九의 집 에 가사 여러날 머무르실 새 桓九가 扶安邑人 辛 元一을 자조 薦擧 하거늘 先生이 元一을 부르시니 元一이 와뵈입고 先生을 自己집으 로 모서다가 供養하니 元一의 父와 弟가 先生을 밋지 아니하고 오 래 머무르심을 슬혀 하는지라. 元一이 請하야 가로대 家親이 本來 漁業을 즐겨하야 해마다 營業하다가 去年에 暴風으로 因하야 큰 損 害를 보앗스니 請컨대 今年에 風災를 업게 하사 漁業을 興旺케 하 여주시면 家親을 爲하야 多幸하겟나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일은 어렵지 안니하니 多益을 어든 後에 돈 千兩을 난호아 오 라. 將次 用處가 잇노라 하시니 元一 父子가 깃버하야 許諾하더니 이 해에 果然 風災가 업고 七山海上에서 元一父의 漁業이 가장 興旺하야 大金을 어든지라. 先生이 元一 父에게 傳人하사 許諾한 돈 千兩을 보내라 하시니 元一의 父가 前約을 어긔고 보내지 아니 하거늘 先生이 元一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는 大人을 欺罔함이라. 내 일은 모든 것을 神明으로 더부러 作定하는 것임으로 한가지라도 사사로히 못하노니 今後로는 君의 父의 漁業이 撤廢케되리라 하시더니 그 後로는 一尾의 魚도 잡히지 아니함으로 드대여 漁業을 廢 止하니라.
31. 三月에 一進會와 全州吏屬이 서로 交爭하야 崔 昌權이 府內吏民을 모아 四門을 堅閉하고 一進會의 入城을 막으며 四方으로 通文을 發 하야 民兵을 募集하야 一進會를 剿滅코져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어렵게 살어난 것이 죽게 되니 救助하여 주리라 하시고 花亭里 李 京五에게 돈 七十兩을 請求하시니 京五가 돈이 업다고 謝絶하거 늘 他處에서 七兩을 辦備하사 가라사대 이 七兩이 能히 七十兩을 代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다리고 全州 龍頭峙 酒店에 이르사 行人을 만히 請하야 술을 먹이시고 조희에 글을 써서 그 집 문 돌져귀와 문고리를 聯結하시더니 이날 夕暮에 이르러 一進會와 吏屬이 和解 하야 四門을 열고 一進會를 入城케 하니라. 이 날에 消費하신 돈이 六兩이라. 先生이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古人은 바독 한 點으로 十萬兵을 물니쳣다하는대 나는 돈 六兩으로 吏會의 交爭을 넛스 니 내가 古人만 갓지 못하다 하시니라.
32. 同日에 火賊이 李 京五의 집을 襲擊하야 돈 七十兩을 奪去하거늘 先生이 드르시고 가라사대 그 돈에 賊神이 犯하엿슴을 알고 活人하 는 일에나 쓰기 爲하야 請求하엿더니 京五가 듯지 안코 업다고 謝 絶하엿다 하시니라.
33. 이 後로 數 朔동안 客望里압 酒店에서 公事를 行하실 새 從徒의 來 往이 頻繁하야 店主 吳 東八이 돈을 만히 모핫더니 그 後에 經用이 不足함을 보고 甚히 冷待하거늘 모든 從徒가 그 無義함을 怒한대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至愚無學한 무리가 엇지 義理를 알리오. 우 리가 만일 그 無義함에 怒하면 그가 반다시 大禍를 바드리니 나의 過次에 德을 흘니지 못하고 도로혀 禍를 치면 엇지 穩當하리오 하시니라.
34. 그 後에 泰仁邑에 이르사 夜半에 여러 從徒를 다리시고 山에 올나 公事를 行하신 後에 일너 가라사대 이졔 大神明이 會集하엿스니 그 解散헤는 慘酷한 膺懲이 잇스리라. 말삼을 맛치시자 문듯 泰仁邑 에서 群衆의 高喊소리가 나는지라. 從徒들이 先生을 모시고 山에서 나려와 事由를 探聞하니 辛 京玄의 酒店이 群衆의 襲擊을 바더 家 藏什物과 酒缸이 모다 破損無遺하엿더라. 元來 辛京玄이 酒業을 經 營함에 邑中 少年의 同情을 어더서 多益을 보앗더니 그 後로 少年 들이 窮乏하여집에 京玄이 甚히 冷待하거늘 少年들이 그 無義함을 怒하야 이럿케 襲擊함이라. 翌日에 先生이 京玄의 집에 가시니 京 玄 夫妻가 號泣하며 他處로 옴기려 하거늘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元來 利害得失이 모두 自身에 잇고 位置에 잇지 아니하나니 이 後 로는 삼가하야 모든 사람에게 溫情을 베풀라. 그러면 前路가 펴이 고 營業이 다시 興旺하리라 하시니라.
35. 그 날밤에 吳 東八의 酒店에는 밧게 우뢰갓혼 소리가 나며 집이 졔절로 드날녀서 밧게 顚覆되고 人蓄과 家産은 아모 傷害가 업는 지라. 東八이 材木을 收拾하야 집을 改築하다가 二回나 거듭 前과 갓치 顚覆됨으로 할 일 업시 工事를 中止하고 依幕을 치고 지내더 니 하로는 엇든 사람이 지내다가 그 景狀을 보고 矜惻히 녁여 自進 하야 겨우 三四時間을 費하야 집을 改築하여주고 賃金도 要求치 안 코 가니라. 大抵 그 改築에는 普通木工 十餘日 품을 要할 工事임으 로 이웃사람은 크게 異常히 녁이되 從徒들은 모다 泰仁 山上에서 말삼하신 일을 生覺하야 그 被禍한 것은 반다시 神明解散時의 膺懲 이오. 다시 그 神奇한 求助를 바든 것은 先生서 矜惻히 녁이사 神將을 보내여 工作케 하심이라고 生覺하니라.
36. 매양 天地公事를 行하실 새 모든 從徒다려 마음을 잘 닥거 압헤오 는 조흔 世上을 구경하라 하심으로 從徒들이 하로밧비 그 셰상이 이르기를 希望하더니 하로는 辛元一이 固請하여 가로대 先生서 天地를 開闢하야 새 世上을 建設한다 하신 지가 임의 日久하오며 公事를 行하심도 累回를 經하엿스되 時代의 現狀은 少豪도 變改함 이 업사오니 弟子의 疑惑이 날로 滋甚하나이다. 先生이시여 하로밧 비 이世上을 뒤집어서 仙境을 建設하시와 남의 嘲笑를 一身에 注集 치 안케 하시고 애닯게 기다리는 우리에게 榮華를 주시옵소서 하거 늘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人事는 機會가 잇고 天理는 度數가 잇나 니 그 機會를 지으며 度數를 運化함이 當然한 일이라. 이졔 機會와 度數를 어기고 억지로 私權을 쓰면 이는 天下에 災를 침이며 億 兆의 生命을 앗음이니 참아 할 일이 아니니라 하시되 元一이 더 욱구지 請하여 가로되 方今天下가 混亂無道하야 善惡을 가리기 어 려우니 맛당히 速히 殄滅하고 새 운수를 열으심이 올흐니이다 하거 늘 先生이 괴로히 녁이사 七月에 元一과 밋 數三從徒를 다리고 邊 山 開巖寺에 가사 손가락으로 물을 어서 扶安 石橋를 向하야 리시니 문듯 그 方面으로 구름이 모아들어 大雨注下하고 開巖寺 附近은 晴朗하더라. 先生이 元一을 命하사 速히 집에 往還하라 하시 니 元一이 承命하고 집에 도라간즉 그 아우의 집이 大雨에 倒壞되 고 그 眷屬이 自己의 집에 모혀잇거늘 元一이 悲慘을 이긔지 못하 야 곳 도라와서 先生 그 事由를 告白하니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開闢이란 이럿케 쉬운 것이라. 天下를 水國化하야 모든 것을 淪沒 케 하고 우리만사라 잇스면 무슨 福利가 되리오. 大抵 濟生醫世는 聖人의 道오. 災民革世는 雄伯의 術이라. 이졔 天下가 雄伯에게 괴 로운지 오랜지라. 내가 相生의 道로써 化民靖世하리니 새셰상을 보 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우니 너는 이졔로부 터 마음을 잘 고치라. 大人을 공부하는 者는 恒常 남 살니기를 生 覺하여야 하나니 엇지 億兆를 死滅케하고 홀로 잘되기를 圖謀함이 올흐리오 하시니 元一이 이 일로부터 두려워하야 無禮한 言辭로 先 生 괴롭게 한일을 뉘웃치고 元一의 아우는 그 兄이 先生 追從 하고 家事를 돌보지 아니함을 뮈워하야 恒常 先生을 詬辱하더니 兄 으로 부터 이 事實을 듯고는 先生 詬辱한 罪의 報應으로 家屋이 倒壞됨이 아닌가하야 일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
37. 그 後에 古阜 立石里 朴 昌國의 집에 이르시니 昌國의 妻는 先生의 親妹라. 마참 벗은 발로 밧게 다니는 것을 보시고 민망히 녁여 가 라사대 이 도랑에 毒蛇가 잇스니 벗은 발을 물면 엇지 하리요 하시 고 길게 휫바람을 부시니 문듯 큰 毒蛇 한 마리가 풀밧흐로부터 나 와서 밋혜 이르러 머리를 들고 가만히 잇더니 이윽고 昌國이 밧 그로부터 들어오다가 毒蛇를 보고 大驚하야 곳 喪杖을 드러 打殺하 거늘 先生이 그 피가 에 잇슴을 보시고 가라사대 이 피를 벗은 발로 밟으면 害가 잇스리라 하시고 親히 그 血痕을 밟아 毒氣를 除 하시니라.
38. 十二月에 咸悅로부터 銅谷으로 가실새 길이 심히 질어서 행로가 困難한지라 先生이 「御在函羅山下」라 써서 불살으시니 泥路가 곳 어러서 구더지거늘 이에 말은 신발로 登程하시니라
39. 丙午 正月 三日에 銅谷에 계실 새 여러 從徒에게 一晝夜동안 言語 와 吸烟을 禁하시니라.
40. 五日에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날은 好笑神이 올 것이니 너희는 우슴을 조심하라. 만일 웃는者가 잇스면 이 神明이 公事를 보지 아니하고 도라가리니 그가 한 번 가면 어느 다시 올지 모르 리라 하시거늘 여러 사람이 特別히 조심하더니 밖에 鄭 成伯이 웃음으로 一座가 다 함 웃으니라. 그날 午後에 成伯이 문듯 惡寒 大痛하야 三日間을 委席하더니 先生이 압헤 눕히시고 어르만지시니 곳 나으니라.
41. 銅谷압헤서 酒店營業을 하는 丁 槐山이 極히 貧寒하되 매양 先生을 至誠으로 供待하더니 正月에 先生이 그 집에 들니시니 槐山이 先生 供待하려고 狗湯을 土鼎에 이다가 문듯 土鼎이 여짐에 槐山 의 妻가 落膽하야 울고 섯거늘 先生이 矜惻히 녁이사 辛京元을 命 하사 그의 經營하는 鐵店에서 鐵鼎一座를 가저다 주엇더니 일로부 터 槐山의 家勢가 漸漸 裕足하여지니라. 그 後에 槐山이 泰仁方橋 로 移居할 에 그 鐵鼎을 環坪 鄭 東朝에게 팔엇더니 槐山은 도로 貧寒하여지고 東朝는 裕足하게 되엿슴으로 모든 사람이 그 鐵鼎을 福鼎이라 稱하니라.
42. 하로는 龍華洞 朴 奉敏의 酒店에 이르사 술을 차즈시니 마참 술이 러젓다 하거늘 先生이 술을 비젓든 그릇을 가저오라 하사 물을 채워 부으시고 손으로 저으신 後에 마시시며 여러 從徒에게 난호아 주시니 그 맛이 本來 비졋던 술과 갓흐니라.
43.
44. 하로는 金山寺 靑蓮菴 僧 金 玄贊다려 일너 가라사대 明堂쓰기를 願하나냐 하시니 玄贊이 對하야 가로대 平生至願이로소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러면 밋고 잇스라 하시고 그 後에 金 秉旭다 려 일너 가라사대 明堂을 쓰려나냐 하시니 秉旭이 對하여 가로대 至願이로소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러면 밋고잇스라 하시더니 그 後 數年이 되도록 다시 그에 對한 말삼을 아니하심으 로 兩人은 다만 先生의 만 바라고 잇다가 하로는 秉旭이 엿주어 가로대 前者에 許諾하신 明堂은 언졔나 주려 하시나잇가.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아들을 願함으로 그에 明堂을 쓰엿나니 임 의 發蔭되엿나니라 하시니 元來 秉旭이 無子함을 恨하다가 明堂을 許諾하신 後에 小室을 어더서 아들을 나앗더니 이 일을 일으심 이 라. 秉旭이 甚히 虛誕히 녁이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先天에는 埋白 骨而葬之로대 後天에는 不埋白骨而葬之라 하시니라. 그 後에 玄贊 이 뭇거늘 가라사대 "明堂은 임의 썼거니와 이졔 發蔭이 되엿나 니라." 하시니 大抵 玄贊도 明堂을 許諾하신 後에 退俗하야 娶妻하 고 아들을 나앗슴으로 이 일을 일으심이러라.
45. 金 甲七이 親墓를 緬禮하기 爲하야 모든 器具를 準備하엿더니 先生 이 일너 가라사대 내가 너를 爲하야 緬葬하여 주리라하시고 準備한 棺槨과 모든 物品을 모다 불살니신 後에 그 재를 압내에 버리며 하 눌을 보라 하시거늘 甲七이 命하신대로 하면서 하눌을 우러러보니 문듯 異常한 구름이 北天으로부터 南天가지 첫더라.
46. 十月에 全州府人 文 泰潤이 와뵈이거늘 先生이 그 携帶한 褓子를 보시고 가라사대 이 房은 安閑한 工夫房이라. 속모르는 사람을 그 대로 바더드리지 아니하나니 그 褓를 너뵈이라. 그 가운대 반다 시 戰爭의 張本이 잇스리라. 泰潤이 붓그러운 빗으로 그 褓를 으 니 그 叔姪間에 金錢關係로 爭訟하는 書類가 잇는지라. 泰潤이 엿 주어 가로대 이런 不美한 일이 잇슴으로 先生의 神聖하심을 듯고 解決策을 무르러와서 붓그러운 마음으로 참아 稟達치 못하엿나이 다. 先生이 가라사대 戰爭은 家族戰爭이 큰 것이니 一家의 亂이 天 下의 亂을 러내나니라 하시고 한 封書를 주시며 가라사대 이 封 書를 그대 족하의 집에 가서 불살으라 하시거늘 泰潤이 그대로 하 엿더니 그 後로 果然 和解되니라.
47. 이 달에 辛 元一이 乾材藥局을 배셜하고 貿藥하러 公州令市에 갈 새 先生 와 뵈입고 엿주어 가로대 方今 길이 질어서 行人의 不便 이 極甚하오니 請컨대 公衆의 交通便宜를 爲하야 길을 얼어 굿게 하여지이다 하거늘 先生이 許諾하시고 술을 가저 오라하사 마스시 니 그날 밤 부터 길이 얼어붓허서 歲末지 녹지 아니하니라.
48. 金 益贊을 다리고 全州 細川(세내)을 지나실 새 日人獵師가 雁群이 만히 나려 안즌 곳에 獵銃을 견으고 發射하려 하거늘 先生이 가라 사대 君子不忍見이라 하시고 왼발로 을 한 번 구르시며 서시니 그 獵銃이 發射되지 못하는지라. 獵師는 異常히 녁여 銃을 檢査하 되 理由를 알지 못하고 無數히 힘드리며 헤매든 차에 雁群이 다 멀 리 날러 가거늘 先生이 발을 옴겨 길을 行하시니 獵銃은 그졔야 發 射되니라.
49. 佛可止 金 成國의 집에 머무르실 새 雉群이 만히 덧밧에 나리거늘 成國이 金 德贊으로 더부러 網罟를 만히 만들어 텃밧에 張羅하야 잡으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너히는 잡을 공부를 해라. 나는 살 닐 공부를 하리라. 하시더니 일로부터 雉群은 만히 나리되 한 마리 도 網罟에 걸리지 아니하니라.
50. 佛可止로부터 全州로 向하실 새 東南으로부터 大雨가 모라오거늘 先生이 길 가운대 흙을 파고 춤을 밧허 무드시니 모라 오든 비가 문듯 두 갈래로 난호여 한 갈래는 東天으로 向하고 한 갈래는 西天 으로 向하야 몰려가니라.
51. 黃 應種, 金 甲七을 다리고 院坪을 지나실 새 院坪 압다리를 건너 시면서 왼발로 길을 한 번 구르시고 길가에 서시더니 이윽고 乘馬 客 三人이 오다가 다리 건너便에 이르러 馬足이 에 붓허서 옴기 지 못함으로 御者가 無數히 힘드려 ?다가 할 일업시 멈추고 섯더 니 한 御者가 말곱비를 놋코 다리를 건너와서 先生 절하고 빗겨 서시기를 빌거늘 先生이 우스시며 빗겨서시니 말이 비로소 달녀가 니라.
52. 藥房에 계실 새 하로는 早朝에 해가 ?서 압졔비山 봉오리에 반튼 ? 오르거늘 先生이 여러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러한 難局에 處하야 靖世의 을 품은 者 能히 日行을 멈추는 權能을 가지지 못 하면 不可할지니 내 이졔 試驗하여 보리라 하시고 축인 담배 세대 를 가라 피우시되 해가 山?을 솟아오르지 못하더니 先生이 煙竹을 ?여 ?에 던지시니 해가 문듯 數丈을 솟으니라.
53. 丁未 四月에 古阜 客望里로부터 泰仁으로 가실 새 몬저 辛 元一을 보내사 사관을 定하라 하시고 翌日에 客望里를 나 그 압 酒店에 이르사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나는 여긔서 留宿하리니 너는 몬저 泰仁에 가서 元一과 함 자고 明日早朝에 下馬亭에서 나를 기다리 라 하시니 亨烈이 奉命하고 泰仁에 이르러 元一을 만나서 함 자고 翌日에 元一로 더부러 下馬亭에 이르니 마참 市日임으로 사람이 만히 모아들더라. 先生이 亨烈 元一을 만나서 길가 술집에 坐定하 시고 元一을 불너 가라사대 내가 오날 霹靂을 쓰리니 술을 가저오 라. 元一이 술을 올님에 잔을 잡으사 두어 번 두르신 後에 마스시 니 문듯 바람이 이러나고 暴雨가 쏘다지며 霹靂이 大發하니라. 이 윽고 비가 개이거늘 元 一을 命하야 가라사대 辛 京元의 집에 가면 알 일이 잇스리니 니 갓다오라. 元一이 應命하고 京元의 집에 가 니 마참 나무장사가 비를 避하야 京元의 집에 드러와서 말하되 나 는 오날 놀나운 일을 보앗노라 나무를 지고 오는 길에 老婦와 少婦 가 길에서 싸호는 것을 보앗는대 그 內容을 들은 즉 少婦는 老婦의 子婦로서 乳兒를 난지 七日이 못되야 昨夜에 夫喪을 當한지라. 治 喪도 아니하고 乳兒를 버리고 逃亡함으로 老婦는 少婦를 차 맛나 서 乳兒를 다려다 길으라고 哀乞하되 少婦가 듯지 안코 頡頏하다가 문듯 落雷를 마저서 少婦가 죽엇스니 일로 볼진대 天道가 昭明하다 하거늘 元一이 도라와서 그 들은 말을 告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내 가 오날 아참에 客望里 酒店을 지날 에 한 少婦가 이슬을 며 니 지나가더니 그 後로 老婦가 달녀오며 少婦의 자최를 뭇는 故 로 그 事由를 자세히 들으니 實로 人道上 容恕치 못할 罪惡이라. 하물며 그 作配는 저희들리 지은 것이라 하니 大抵 父母가 지어 준 것은 人緣이오, 스사로 지은 것은 天緣이라. 人緣은 오히려 고 칠 수 잇스되 天緣은 고치지 못하는 것이어늘 이졔 人道에 悖戾하 고 天緣에 沒義하니 엇지 天怒가 없으리오 하시니라.
54. 五月五日 端陽節에 從徒들과 里中人이 聯合하야 先生을 모시고 學 仙菴으로 소창하려 갈 새 中路에 暴雨가 크게 몰녀오거늘 先生이 煙竹으로 모라오는 비를 向하야 한 번 두르시니 문듯 비가 다른 곳 으로 몰녀가더니 學仙菴에 當到한 後에 비가 나리니라.
55. 六月부터 數朔동안 井邑 大興里 車 京石의 집에 게실 새 朴 公又가 從遊하기 一朔前에 川原 市場에서 耶蘇敎人과 交爭하다가 큰 돌에 마저서 가삼가 傷하야 一時 昏倒하엿다가 겨우 回甦하야 數旬間 治療를 바든 後에 겨우 行起는 하되 아즉지 胸部에 손을 대지 못하고 起臥에 크케 苦痛을 感하는 中임으로 그 事實을 先生 告 達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前者에 어느 길가에서 남의 胸部를 처서 死境에 이르게 한 일이 잇스니 그 일을 生覺하야 잘 뉘웃치 라. 네가 몸이 快復한 後에는 加害者를 차저서 죽이려고 生覺하 나 너에게 傷害를 바든 者의 척神이 그에게 붓허서 報復한 바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네마음을 잘 풀어 加害者를 恩人과 갓 치 生覺하라. 그러면 곳 快復되리라. 公又가 그 말삼에 크게 服膺 하야 加害者를 憎惡하든 마음을 풀어바리고 後日에 만나면 반다시 禮待하겟다는 生覺을 두엇더니 數日後에 川原 耶蘇敎會에 十二郡 牧師가 會集하야 大傳道會를 開催한다 하거늘 先生이 公又다려 일 너 가라사대 네 傷處를 낫게 하기 爲하야 十二郡 牧師를 召集하엿 노라 하시더니 그 後 三日만에 公又의 傷處가 全快하니라.
56. 하로는 가물치膾를 올엿더니 先生이 잡수신 後에 門밧게 건이르시 다가 하눌을 우러러보시고 우서 가라사대 그 긔운이 르다 하시거 늘 從徒들이 하눌을 우러러보니 구름과 갓흔 異常한 긔운이 가물치 모양을 일우어 虛空에 서 東天으로 向하여 가더라.
57. 하로는 從徒 五六人이 琴師를 불너서 伽耶琴을 타게 하고 愉快히 놀더니 先生이 禁止하사 가라사대 저 虛空을 보라 나는 모든 일을 함부로 하기 어려우니라. 從徒들이 모다 우러러보니 구름과 갓흔 異常한 긔운이 彈琴하는 形狀과 五六人의 列坐한 모형을 일우어 虛 空에 잇더라.
58. 中伏日에 先生이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늘 電光이 나지 아니하 면 蟲災가 생겨 農作을 害하리니 잘 삷히라 하시거늘 모다 注意하 야 저물도록 삷히되 電光이 나지 아니하는지라. 先生이 하눌을 向 하야 가라사대 天地가 엇지 生民의 災害를 이럿케 도라보지 아니하 나뇨 하시며 말은집을 어서 火爐불에 저서 살으시니 문듯 北方 에서 電光이 發하는지라. 가라사대 北方사람만 살고 他方사람은 다 죽어야 올흐냐 하시니 다시 四方에서 電光이 번적이더라.
59. 하로는 辛 元一, 朴 公又外 三四人을 다리시고 泰仁 살포정에 이르 사 旅舍에 드러쉬시니 문듯 雷聲이 일어나며 電光이 大發하야 집에 나리려하거늘 先生이 虛空을 向하야 지스시니 電光이 곳 그치는 지라. 公又는 先生이 井邑에서 글을 써서 壁에 붓처 雷聲을 大發케 하시고 이번에 한 말삼으로 雷電을 그치게 하심을 보고는 비로 소 先生서 天地造化를 任意로 쓰시는 줄 알고 일로부터 더욱 敬 畏하더니 하로는 先生이 公又다려 일너 가라사대 네가 오래동안 食 告를 잘 하엿스나 이졔 만날 사람 만낫스니 食告는 나에게로 돌닐 지어다 하시니 公又가 더욱 깃버하야 平生所願을 일운 줄 다르면 서 곳 그리하겟나이다라고 對答하니라. 元來 公又는 다른 東學信徒 의 通例와 갓치 "大神師應感" 이라는 生覺으로 食告를 하지 안코 恒常 "하누님 뵈여지이다"라는 祈願으로 食告를 하엿더니 이졔 先 生의 말삼하시는 바를 듯건대 반다시 마음으로 生覺하는 것을 洞察 하심이며 天地造化를 任意로 쓰시는 것을 볼진대 分明히 하누님 의 降臨하심이 無疑하다고 生覺하니라.
60. 하로는 先生이 車 京石에게 일너 가라사대 너는 降靈을 바더야하리 라 하시고 "元皇正氣來合我身"을 닑히시며 房門을 열으시니 京石이 문듯 放聲大哭하다가 이윽고 그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우름은 神明에게 罰을 당하는 소리라 하시니라.
61. 하로는 京石에게 일너 가라사대 너의 先墓 九月山 金盤死雉의 穴蔭 을 옴겨오리라 하시고 京石으로 하여금 舞蹈케 하시고 公又로 북을 치이시니라.
62. 하로는 鄭 南基의 집에 이르시니 南基의 弟가 무슨 일로 父親에게 叱責을 當하고 不遜한 말로 對答한 後에 밧그로 나갓다가 다시 안 으로 向하야 들어오더니 문듯 문압헤 웃둑서서 動作을 못하고 을 흘니며 連하야 소리를 질음에 家人이 驚慌罔措하야 엇지 할 줄을 모르는지라. 이윽고 先生이 도라보시며 가라사대 엇지 그럿케 困苦 를 當하나냐 하시니 그졔야 能히 屈伸하며 精神을 도리키거늘 家人 이 그 緣由를 무르니 對하야 가로대 밧게 精神이 慌迷하며 숨이 막혀서 呼吸을 通치 못하며 骨節이 구더저서 屈伸을 못하엿노라 하 거늘 先生이 무러 가라사대 그에 네 가삼이 답답하더냐 對하여 가로대 甚히 답답하야 暫時라도 견댈 수 업더이다. 先生이 가라사 대 그 所遭로써 네 父親의 가삼을 해아려보아라 너의 父親에게 그 럿케 不敬한 말을 하엿스니 그 가삼이 엇더하엿스랴 今後로는 허물 을 뉘웃처 다시는 그리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63. 十一月에 銅谷에 계실 새 朴 公又가 뵈이려 오는 길에 偶然히 興이 나서 "모시러 가자. 모시러가자. 부처님 모시고 우리 집으로 도라 오자." 라고 노레를 連唱하엿더니 銅谷에 이르러 先生 뵈이니 가 라사대 내가 네 집에 가기를 願하나냐 하시거늘 公又가 깃버하며 가로대 至願이로소이다 하고 先生을 모시고 도라오다가 龍巖里 水 砧幕에 들어 쉬실 새 門을 열고 南天을 바라보시며 놉다 놉다 하시 거늘 公又가 바라보니 구름이 가득 엇는대 하눌이 方席한닙 널비 通하며 바람이 쓸쓸불고 눈이 나리는지라. 先生이 公又다려 일 너 가라사대 나와 親舊로 지내자하시니 公又는 그 말삼이 惶恐하기 도하고 怪異하게도 녁엿더니 가라사대 긔운이 적다 하시거늘 公又- 不知中에 엿주어 가로대 바람이 좀 더 불리이다 하엿더니 果然 바람이 크게 부는지라, 가라사대 나와 親舊로 지내자 하며 긔운이 적다 하시거늘 公又 가로대 바람이 놉하지리이다 하엿더 니 그는 風勢大作하야 沙石을 날니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龍虎 大師의 긔운을 公又에게 붓처 보앗더니 그 긔운이 적다 하시니라.
64. 하로는 公又를 다리고 井邑으로 가실 새 公又다려 "風雲造化"를 心 誦하라 하심으로 公又가 그대로 心誦하다가 문듯 이저버리고 그릇 "天文地理"를 心誦하더니 先生이 도라보아 가라사대 그릇 차지니 다시 生覺하라 하시거늘 公又 놀내여 生覺하니 果然 그릇 차젓는지 라. 일로부터 고처 心誦하며 大興里지 왓더니 이날 밤에 비와 눈 이 섯겨오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네 한 번 그릇 生覺함으로 因하야 天氣가 한글갓지 못하다 하시니라.
65. 戊申 二月에 從徒를 다리고 어대를 가실 새 보리밧가으로 지내시더 니 從徒들이 서로 말하되 此世에 貧富의 差別로 因하야 穀類中에 오직 먹기 어려운 보리가 貧民의 食糧이 되여 먹을 에 恒常 괴로 움이 만흐니 보리를 업세여 버려야 衆生이 괴로움을 免하리라 하거 늘 先生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너희들의 말이 有理하니 보리를 업세 여버리자 하섯더니 四月에 大旱하야 牟麥이 枯死함에 農民이 크게 騷動하는지라. 從徒들이 그 事由를 告하야 가로대 이제 만일 麥凶 이 들면 餓死하는 者가 만흐리이 다하거늘 先生이 지저 가라사대 前者에 너희들이 보리를 업세여 버림이 可하다하고 이졔 다시 麥凶 을 呼訴하나냐. 내 일은 비록 戱談 한 마대라도 度數에 박히여 天 地에 울녀나가나니 이 後로는 모든 일에 실업슨 말을 삼가하라하시고 全州 龍頭峙에 가사 金 洛範을 命하야 거친 麥飯한 그릇과 土醬한 그릇을 가저오라하사 가라사대 窮民의 飮食이 이러하리라 하시고 土醬에 밥을 말아셔 다 잡수시니 문듯 黑雲이 이러나며 비가 나려 서 牟麥이 勃然히 生氣를 어더서 豊作을 일우니라.
66. 公又가 從遊함으로부터 先生의 巡遊하실 에 만히 陪從하엿는대 어대셔든지 머무르시다가 다른 곳으로 나려 하실 에는 밤이면 月暈이 나터나고 낫이면 日暈이 나터나는 것을 微驗 하엿슴으로 어 느 던지 日月暈만 나터나면 出行하실 줄 알고 몬저 신발과 行裝 을 단속하야 命을 기다리면 반다시 불으사 가자 하시며 出發하엿나 니 大抵 先生은 어대를 가시든지 미리 말삼을 아니하섯더라.
67. 하로는 井邑수퉁店에서 留宿하실 새 公又가 侍側하엿더니 李 道三 이 와서 그 이웃 버들里에서 二十歲 된 女子가 범에게 물녀갓다 는 말을 告한대 先生이 公又다려 하눌에 蟲星(俗에 좀성이라함)이 보이는가 보라 하심으로 公又가 나가서 우러러 보고 나터나잇슴을 告하니 先生이 木枕으로 마루장을 치시며 蟲星아 엇지 사람을 害하 나냐 하시더니 翌日에 그 女子가 살어왓는대 衣服은 破裂되고 몸의 傷害는 크지 아니하더라.
68. 天道敎主 孫 秉熙가 敎徒의 信念을 皷舞키 爲하야 湖南各地에 巡廻 할 次로 全州에 와서 머물거놀 先生이 公又다려 일너 가라사대 네 가 全州에 가서 孫 秉熙를 돌녀 보내고 오라 邪說로 群衆을 誣惑하 야 疲弊가 極度에 達하엿스니 그의 巡廻가 不可하니라. 公又가 領 命하고 翌日에 發程하려하다가 다시 命하지 아니하심으로 異常히 녁여 停止하엇더니 數日後에 孫 秉熙가 豫定을 고쳐 京城으로 도라 갓다는 報가 들니니라.
69. 金 甫京이 熊浦에 小室을 두고 本家를 돌보지 아니하거늘 先生이 글을 써주어 가라사대 네 小室을 對하여 불살으라 그러면 조흔 일 이 잇스리라. 甫京이 그대로 하엿더니 박게 淋病에 걸녀서 本家 로 도라와 月餘를 머물럿더니 그 小室이 다른 곳으로 간지라. 先生 이 甫京을 불너 경계하야 가라사대 이졔는 家室이 安靜하야 吉運이 열니리니 本妻를 사랑하야 저바리지 말라 하시고 淋病을 낫게 하여 주시니라.
70. 하로는 龍頭峙 旅舍에서 金 德贊, 金 俊贊 等 數人을 다리시고 公 事를 行하신 後에 마참 雜技軍이 모아들어 윳판을 벌리니 이것은 先生의 一行을 誘引하야 金錢을 앗으려 함이라. 先生이 가라사대 저들의 願을 일우어 줌도 한 解寃이라 하시고 돈 五十兩을 놋코 윳을 치실 새 말삼대로 윳이 저서 頃刻間 에 그들의 돈 八十兩을 다 앗은 後에 품싹이라 하시며 五錢을 남기시고 七十九兩五錢을 돌녀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이 다 不義의 일이니 各히 집에 도라가서 職業을 求하야 安堵하라 하시니 그들이 크게 感服하고 도라가니라. 從徒들이 말삼대로 윳이 지는 法을 무르니 가라사대 던지는 法을 一定하야 變改치 아니하면 그리되나니 이도 한 一心의 法이니라. 일너 가라사대 現今 朝鮮의 情勢는 失業者가 增加하야 賭博으로 業하는 者가 續出하리니 日後에 法禁이 嚴刻하여지면 그들은 饑餓 에 질 수 밧게 업슬지라. 그럼으로 이졔 祿을 붓처주엇노라 하시 니라.
71. 하로는 여러 從徒를 다리고 益山裡里를 지나실 새 津頭에 이르니 船 夫가 업고 배만 잇거늘 先生이 親히 櫓를 저어 건너신 後에 하눌 을 우러러보시고 웃으시거늘 모다 우러러보니 구름과 갓흔 異常한 긔운이 櫓저어 가는 模型을 일우어 徐徐히 가더라.
72. 그 後에 泰仁 今上里에 지나실 새 마참 날이 가무러서 移秧을 못하 더니 東學信徒 柳 漢弼이 그 前日에 구름이 임을 보고 비가 올 줄 밋어 말은 논에 鋤種으로 모를 옴겻더니 이내 비가오지 아니하 야 苗가 말으거늘 極히 焦悶하야 가로대 가뭄이 이럿케 甚하야 雨 意가 업스니 鋤種한 것을 다시 가라서 豆太나 심을 수 밧게 업다하 며 길게 歎息하거늘 先生이 드르시고 가라사대 移種한 것을 가라서 다른 穀種을 심음은 怪變이 아니냐 하시며 柳 漢弼을 압세우고 그 곳에 가사 그 慘狀을 보시고 西天을 向하야 雨師를 부르시니 문듯 黑雲이 피여나며 急雨가 나리거늘 漢弼은 엇진 닭인지 알지 못하 고 다만 預知術이 잇는가 하야 異常히 녁이더라.
73. 六月에 金 秉旭이 委人하야 白 南信의 親墓에 墓賊이 들어서 頭骨 을 盜去하엿다는 事由를 稟達하니 先生이 사흘 밤을 明燭하사 喪家 와 갓치 지내시고 南信에게 傳言하사대 頭骨을 차지려 힘쓰지 말고 幽僻한 곳에 處하야 外人의 交際를 으라. 處暑節에는 盜賊이 스 사로 頭骨을 가저오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사흘밤 徹夜하는 것은 從徒들이 질기지 아니하야 가로대 이갓치 힘을 드리되 當事者 는 모르오니 무슨 功을 알리잇가. 先生이 가라사대 그의 알고 모름 이 무슨 關係가 잇느냐 하시니라. 南信이 命하신 대로 幽僻한 白雲 亭에 處하더니 七月에 그 墓下 洞長이 自發的으로 洞會를 열고 議 論하되 우리가 이 墓下에 居하야 道義上 泛然히 지낼 수 업스니 擧 洞이 出動하야 附近을 搜索하되 만일 頭骨을 찻는 者가 잇스면 墓 主에게 말하야 厚賞케 함이 可하다 하고 洞民을 總動員하야 附近 山麓을 搜索하니 이에 墓賊이 生覺하되 墓主가 安然히 잇서 大金 을 費하야 頭骨을 차지려 하지 아니하니 찰하리 이 機會에 頭骨을 가저가면 盜名도 免하고 相當한 厚賞을 어드리라하고 그 頭骨을 가 지고 洞長에게 가서 告하되 내가 各方에 搜索하여 다행히 차젓다 하거늘 洞長이 그 사람을 다리고 白雲亭에 오니 이날이 處暑節이더 라.
74. 先生이 이날 早朝에 龍頭峙에 가섯더니 金 秉旭이 와서 頭骨차진 事由를 告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盜賊은 엇더케 措處하엿나뇨. 秉旭이 對하여 가로대 警務廳으로 보내엿나이다 하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잘 說諭하야 돌녀 보내는 것이 可하거늘 엇지 그리 하엿 나뇨 하시고 靑依一件을 지어오라하사 불살으시며 가라사대 懲役에 나 處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果然 그 사람이 處役하니라. 從徒들이 반다시 處暑節에 찻게 된 닭을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매양 私 事라도 天地公事의 度數에 붓처두기만 하면 그 度數에 이르러 公私 가 다 함 니나니라 하시더라.
75. 金 德贊이 先生 恒常 倨傲하더니 하로는 公事를 行하실 새 크게 雷電을 發하시니 德贊이 두려워 하야 避席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罪 지은 바 업거늘 엇지 두려워 하나뇨. 德贊이 더욱 惶怯하 야 所措를 莫知하더니 그 後로는 先生을 極히 敬畏하니라.
76. 白 南信의 族人 龍安이 都賣 釀酒業의 免許를 엇고 全州府中에 잇 는 數百 小賣酒家의 家釀을 禁止하니 이에 先生이 龍頭峙 金周甫 酒店에 계실 새 周甫의 妻가 가삼을 치며 가로대 다른 버리는 업고 다만 酒業으로 家眷이 사러 왓는대 이졔 釀酒業을 廢하면 무 슨 버리로 사러가리오 하거늘 先生이 불상히 녁이사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엇지 男將軍만 잇스리오, 맛당히 女將軍도 잇스리라 하시 고 紙片에 女將軍이라 써서 불살으시니 周甫 妻가 문듯 神氣를 어 더서 府中을 돌며 號令하야 頃刻에 數百酒婦를 統率하고 龍安의 집 을 襲擊하야 形勢가 不穩하거늘 龍安이 大驚하야 群衆에게 謝過하 고 都賣經營을 中止하니라.
77. 하로는 從徒들을 다리고 全州 多佳町을 지나실 새 한 喪人이 뒤를 르며 살녀 주시기를 哀乞하며 나지 못하되 先生이 도라보지 안코 가시거늘 從徒들이 민망하야 엿주어 가로대 저 사람이 무슨 일로 저러는지 모르나 그 情狀이 可矜하니 돌녀 보내심이 엇더하니 잇가. 先生이 도라보시고 몸에 가젓든 붓을 여 먹을 찍으사 喪人 의 이마에 한 墨點을 처주시며 가라사대 네 褓子를 저 川邊에 버 리라 하시니 그 喪人이 命하신대로 褓子를 버리고 울며 가거늘 先 生이 가라사대 저 사람이 罪를 만히 지엇스니 졔 罪에 졔가 죽나니 라. 그 褓子는 行妖하는 器具니 몃 時間을 지낸 뒤가 아니면 펴보 지 말라 하시거늘 그 뒤에 從徒들이 褓子를 펴보니 돌을 싼 것이러 라. 그 喪人은 그곳에서 울며 난 뒤로 곳 失性하야 四方으로 여다니다가 몃 칠 後에 죽으니라.
78. 하로는 辛 京元이 急히 사람을 보내여 禀하되 警官의 調査가 甚하 야 날마다 와서 先生의 住所를 뭇나이다. 先生이 來人에게 글을 써 주시며 가라사대 이 글을 京元 에게 傳하야 한 번 보고 곳 불살으 라 하시니 그 글은 이러하니라.
"天用雨露之薄則 必有萬邦之怨, 地用水土之薄則 必有萬物之怨,
人用德化之薄則 必有萬事之怨, 天用地用人用 統在於心,
心也者 鬼神之 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 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 或有惡, 善者師之, 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京元이 奉讀한 後에 곳 불살넛더니 그 後로는 警官의 調査가 그치 니라.
79. 金 秉旭의 差人 金允根이 先生 와 뵈입고 稟하되 近日에 날이 가 물어서 作物이 다 말으오니 先生은 喜雨를 주사 萬民의 焦燥를 눅 키소서. 先生이 德贊을 命하사 그 길으는 家猪一首를 잡어서 烹宰 하야 여러 從徒들로 더부러 함 잡수실 새 밋처 맛치지 못하야 雷 雨가 大作하거늘 允根이 踴躍하야 가로대 先生은 진실로 萬民을 求 活하는 上帝시라 하니라.
80.
81. 泰仁 白巖里 金 明七이 山中 傾斜地를 新墾하야 煙草를 심엇는대 肥料를 施하야 붓을 하엿더니 문듯 急雨가 나림으로 明七이 가삼을 치며 울어 가로대 내 農事는 煙草栽培 인대 施肥培土한 後에 이 럿케 急雨가 나리니 沙汰가 미러 내려서 다버리게 되리라 하거늘 先生이 들으시고 불상히 녁여 가라사대 근심을 풀어라 그 災害를 免케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비개인 後에 明七이 가보니 조금도 被 害가 업고 他人의 耕作은 全部 沙汰의 害를 닙어서 이 해에 煙農이 大凶하니라.
82. 하로는 丁 槐山의 酒店을 지나실 새 마참 古阜禍亂에 知面된 鄭 巡 檢이 이르거늘 先生이 술을 사서 待接하섯더니 날 에 돈 十圓 을 請求하며 족기속에 손을 너어 돈 十兩을 훔처 가거늘 先生이 일 너 가라사대 모든 일을 義롭게 할지어늘 엇지 이럿케 無禮를 行하 나냐 하시더라. 鄭 巡檢이 全州에 가서 다시 書信으로 돈 四十圓을 請求하거늘 先生이 亨烈로 하여금 若干의 돈을 求하여 보내시며 가 라사대 義롭지 못한 사람이라 하시더니 몃 칠 後에 鄭 巡檢이 古阜 로 도라 가다가 井邑 한 다리에서 群盜에게 被殺된지라. 先生이 들 으시고 가라사대 巡檢은 盜賊을 懲治하는 職責을 가젓거늘 도 로혀 非義의 物을 즐기니 盜賊에게 죽음이 當然하지 아니하랴. 이것이 다 神明의 行하는 바니라 하시니라.
83. 하로는 金 永西와 鄭 南基가 와 뵈인 後에 兩人이 서로 私語로 酬 酌하되 南基는 日本語學을 배운 사람을 불어워 하야 가로대 近來에 는 日本語를 通한 사람은 顯達도 쉽고 돈버리도 容易하더라 하며 永西는 俳優를 불어위 하야 가로대 近來에는 劇戱를 잘하여도 돈버 리가 잘되더라 하야 서로 그런 일을 等閑視하엿슴을 後悔하더니 문 듯 南基는 손을 흔들며 流暢한 口調로 日本語를 말하고 永西는 喪 人이라. 喪巾을 흔들며 일어나서 喪服소매로 북을 치는 흉내를 내 이면서 歌舞를 演奏하야 汗出沾背하거늘 一座가 大笑하는지라. 先 生이 웃으시며 가라사대 너히는 早速히 所願을 成就하엿다 하시니 兩人이 비로소 精神을 차려 붓그러워하는지라. 다시 일너 가라사대 大人을 배우는 者 맛당히 마음을 正大히 하야 그칠 곳을 알어야 할 것이오, 한가지라도 分外의 생각을 가지며 실업슨 말을 함이 不可 하다 하시니라.
84. 하로는 孫 秉旭의 집에 가시니 從徒들이 만히 모엿슴으로 秉旭이 그 妻를 식혀서 午飯을 지을 새 日氣가 甚히 더움으로 그 妻가 괴 롭게 녁여 부억에서 홀로 不平한 말을 하엿더니 문듯 와사症이 發 하거늘 黃 應種이 보고 놀내여 先生 告한대 가라사대 이는 不平 한 말을 하다가 竈王에게 罰을 바듬이라 하시고 글을 써주사 秉旭 의 妻로 하여금 부억에 불사르며 謝過하라 하시니 秉旭의 妻가 그 대로 하야 곳 나으니라.
85. 大興里에 졔실 새 公又다려 무러 가라사대 네가 남과 싸홈을 만히 하엿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리하엿나이다 다시 일너 가라사대 네게 豹丹이 들어서 싸홈을 잘하니 이졔 豹丹을 여내고 人丹을 너흐리 라 하시더니 이 後로는 公又의 性質이 溫和하게 되야 싸홈을 즐기 지 아니하고 或 싸홈하는 사람이 잇스면 恐怖心이 생겨서 곳 멀니 避하니라.
86. 八月 어느 날 金 德贊이 先生 엿주어 가로대 오늘 내 妹家에 잔 채가 잇스니 소풍 겸하야 나어가사이다. 가라사대 내술을 몬저 마 시라. 德贊이 가로대 무슨 술이니잇가. 가라사대 좀 더 기다리라 하시더니 이윽고 朴公又가 술과 熟鷄를 가저와서 先生 올니니라.
87. 이해 겨울 어느 날 아참에 大興里로 부터 泰仁 새올 崔 昌祚의 집 으로 가실 새 朴 公又는 해가 올으면 길이 즐가하여 즌 신발을 하 엿더니 先生이 보시고 진 신발을 하엿나냐하시며 손으로 東嶺에 솟 아 올으는 해를 向하야 셰 번을 누르시니 해가 올으지 못하다가 살 포정 旅舍에 들어 쉬시니 그졔야 해가 문듯 놉히 솟아 올으더라.
88. 崔 昌祚의 집에 일으사 霹靂表를 무드시니 즉시 雷聲이 大發하야 天地가 震動하거늘 곳 거드시고 翌日에 銅谷藥房에 이르시니 辛元 一이 엿주어 가로대 震黙大師는 七星을 七日동안 가두엇다하니 올 흐니잇가 가라사대 이졔 試驗하리라 하시고 이날부터 三個月동안 七星을 가두신 後에 가라사대 現世에 天文學者가 만타하되 七星이 나터나지 아니한 일을 發表한 者가 업다 하시니라.
89. 崔 昌祚의 집에서 公又다려 무러 가라사대 네가 눈을 만히 흘겨 보 앗나냐. 對하야 가로대 그러하엿나이다. 다시 일러 가라사대 집으 로 도라가라 하시거늘 公又가 先生 하직하고 집으로 도라올 새 길에서 부터 눈이 가렵고 붓더니 집에 이름에 眼疾이 大發하야 한 달 동안을 苦痛하다가 하로는 밤을 쉬고 일어나니 씻은 듯이 나 엇는지라. 곳 先生 와 뵈이니 가라사대 眼疾로 辛苦하엿나냐. 對 하야 가로대 그러하엿나이다. 先生이 웃으시더라. 元來 公又는 性 質이 慓悍하야 싸홈을 즐기고 눈짓이 곱지 못하더니 일로부터는 性 質이 부드럽고 눈짓이 고아지니라.
90. 公又가 술이 過하야 酒失이 만터니 하로는 先生이 가라사대 네가 술을 즐기니 酒量을 보리라 하시고 술을 만히 주시거늘 公又가 連 하여 바더 마시고 醉한지라. 다시 가라사대 한잔 술밧게 못된다 하 시더니 이 後로는 一二杯만 마서도 곳 醉하야 더 마시지 못하니라.
91. 金 德贊이 그 子婚을 지내려할새 모든 사람이 物品과 金錢으로 扶 助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나는 扶助할 것이 업스니 日氣로나 扶助 하리라 하시더니 이에 天候가 連日 險惡하여 甚히 憂慮하든 中인 대 그 期日에 이르러서는 例外로 溫和하니라.
92. 十一月에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井邑으로 가리니 이 길이 吉行이라. 이 後에 일을 네게 알니리라 하시더니 이날에 車 輪京이 와 뵈입고 高夫人이 眼疾로 苦痛함을 알외니 가라사대 이졔 도라갓 다가 明日에 泰仁 살포정에서 나를 만나라. 輪京이 곳 도라갓다가 翌日에 살포정으로 오니 先生이 아즉 오시지 아니하엿거늘 곳 소루 원 酒店에 이르니 店主가 말하되 先生서 새올 崔 昌祚의 집으로 가시면서 車輪京이 와 뭇거든 그곳으로 보내라 하셧다하거늘 輪京 이 새올로 갈 새 日本兵 數百人이 道中에 留陣하야 居住와 出行理 由를 뭇더라. 새올에 이르러 先生 뵈이니 날이 임의 저물더라. 이 날밤에 輪京을 命하사 밤이 맛도록 자지 말고 밧게 잇어 돌라 하시고 닭의 소리가 난 後에 輪京을 다리고 白巖里로 向하야 나 시니라.
93. 白巖里 金 京學의 집에 이르사 朝飯을 잡수시고 다시 井邑으로 가 실 새 或 압서기도 하고 或 뒤서기도 하사 四五步를 걸으신 後에 가라사대 이 길에는 外人을 對하는 것이 不可하다 하시고 井邑 老 松亭에 이르사 가라사대 좀 遲滯함이 可하다 하시고 半時辰을 지내 신 後에 다시 나사 그 모통이 큰 못가에 이르니 馬兵이 만히 오 다가 되도라간 자최가 있더라.
94. 거긔서 大興里로 가려면 兩條路가 分岐되야 한 길은 井邑郡을 通過 하는 大路오. 한 길은 狹路라. 輪京이 어느 길로 行할 것을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君子 엇지 狹路로 行하리오 하시고 大路를 取하야 井邑郡을 通過하시니 左右側에 外人의 商店이 만히 잇스되 한 사람 도 밧게 나선 者가 업더라. 大興里에 니르사 高 夫人의 眼疾을 낫 게 하시고 因하야 戊申 臘月 公事를 行하시니라.
95. 하로는 京石의 黑周衣 한 벌을 가저오라하사 닙으시고 內衣를 벗으 신 後에 긴 수건으로 허리를 매시고 모든 從徒에게 무러 가라사대 이러하면 日本人과 갓흐냐. 모다 對하야 가로대 갓흐니이다. 다시 벗으시고 가라사대 내가 幼時에 書塾에서 글 배울 에 한 아해로 더부러 먹희롱을 하다가 그 아해가 나에게 지고 울며 도라가서 다 시 오지 아니하고 다른 書塾에 通學하다가 그 後에 病들어 죽엇는 대 그 神明이 怨恨을 품엇다가 이졔와서 나에게 解寃을 求함으로 엇더케하면 解寃이 되겟나냐고 무르니 그 神明이 내가 日本服을 슬 혀하는 줄을 알고 日服을 닙으라 함으로 내가 이졔 그 神明을 慰勞 함이로라 하시니라.
96. 大興里에서 戊申 臘月公事를 行하시고 巳酉 正月 三日에 官災를 避 하사 白巖里 金 京學의 집으로 가셧더니 泰仁邑에서 京學의 兄이 사람을 보내여 京學을 불너 가거늘 先生이 발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俚言에 발福이라 하나니 모르는 길에 잘 가면 幸이오, 잘못가면 不 幸이라 함을 일음이라 하시고 곧 나사 獨行으로 崔 昌祚의 집에 가셧다가 다시 그 압 松林을 通하야 崔 德兼의 집으로 가서 머무르 시니 모든 사람이 계신 곳을 알지 못하니라. 元來 京學의 兄은 京 學이 術客에게 迷惑하야 家産을 돌보지 아니한다는 말을 듯고 一面 으로는 京學을 불으고 一面으로는 官府에 告하야 術客을 잡어 懲治 하려 함이라. 京學이 집을 나 邑으로 가다가 中路에서 巡檢에게 붓들녀 帶同되여 집으로 되도라와서 先生을 찻다가 업슴으로 崔 昌 祚의 집지 왓다가 찻지 못하고 도라가니라.
97. 五日에 銅谷에 이르시니 數日後에 泰仁으로부터 無事히 된 顚末을 報告하거늘 가라사대 "井邑일은 하로 公事인대 京石에게 맛겻더니 一朝에 으고 泰仁일은 하로 아참 公事인대 京學에게 맛겻더니 一日을 걸녓스니 京石이 京學보다 낫다." 하시고 가라사대 京石 은 兵判가음이오. 京學은 爲人이 直腸이라. 돌니기 어려우니 돌니기 만 하면 善人이 되리라 하시니라.
98. 하로는 公又, 應鐘을 다리시고 泰仁邑 旅舍에 이르사 辛 京元다려 일너 가라사대 오날은 白 巡檢을 만나야 하겟을스니 그를 다려 오라. 말삼이 맛치자 白 巡檢이 그 집 압흐로 지나거늘 京元이 나가서 先 生의 계신 곳을 알니니 白 巡檢이 곳 여 들어와서 先生을 捕縛하 는지라. 先生이 公又에게 命하야 가라사대 네게 잇는 돈 百兩을 내 게 傳하고 崔 昌祚의 집에 갓다오라 하시니 公又가 應命하고 가거 늘 應鍾과 京元을 불너 各히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白 巡檢에게 돈 百兩을 주시며 가라사대 그대를 만나려고 이곳에서 기다린지 오 래엿노라, 이것을 적다고 하지 말고 用에 보태여 쓰라. 白 巡檢이 致謝한 後 捕縛을 으고 물너가니 大抵 그가 先生을 붓드러서 돈 을 앗으려 하는 줄을 알으시고 그 所欲을 채워주심이러라.
99. 하로는 全州 佛可止 金 成國의 집에 계실 새 金 德贊이 侍側하다가 先生의 무슨 말삼 헤 속으로는 실업게 알면서 거즛 應諾하엿더니 다시 일너 가라사대 이졔 龍巢里 金 議官의 집에 가서 자고오라 하심으로 德贊이 應命하고 龍巢里에 갓다가 金 議官집 門압헤서 醉 한 사람을 만나 悖辱을 만히 當하고 憤을 이긔지 못하야 되도라 오 거늘 先生이 門밧게 나서 바라보시고 웃어 가라사대 웨 자지 아니 하고 도라오나냐 하시며 술을 주어 가라사대 사람을 사굄에 마음을 참되게 할 것이어늘 엇지 마음을 스사로 속이나냐 하시니 德贊이 처음에는 先生이 無故히 龍巢里에 보내여 悖辱을 當하게 하신 것을 不平히 녁엿다가 이 말삼을 듯고 비로소 先生의 말삼 헤 속으로 는 실업시 알면서 거짓 應諾한 것을 洞燭하사 실업슨 醉한 사람을 만나도록 懲罰하신 줄을 닷고 일로부터는 더욱 두려워하야 비록 一思一念 이라도 삼가하니라.
100. 六月에 銅谷에 계실 새 從徒들이 오랫동안 날이 가문 것을 걱정하 거늘 先生이 甲七다려 일너 가라사대 淸水一 盆을 길어다 놋코 上 下衣를 벗고 淸水압헤 合掌하고 서 잇스라. 이졔 네게 將令을 붓처 서 西洋으로부터 雨師를 불너 넘겨 萬民의 渴仰을 풀어주리라. 甲 七이 命하신 대로하야 水盆압헤 섯스니 문듯 西天으로부터 黑雲 이 이러나며 大雨滂沱하거늘 이에 命하사 淸水를 쏘다버리고 옷을 닙으라하시며 모든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희들도 잘 修鍊하면 모든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하시니라.
101. 이에 淸州에서 怪疾이 猖獗하고 羅州에도 熾盛하야 人心이 洶洶 한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南北에서 마조 터지니 장차 無數한 生命 이 殄滅되리라 하시고 이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며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代贖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命하사 新衣五件을 急히 지어서 한 벌씩 갈어 닙으시고 泄瀉하여 버리신 後에 가라사대 弱者가 걸 니면 다 죽겟도다하시더니 그 後로 怪疾이 곳 寢息되니라.
102. 매양 月夜에 길을 가실 에 구름이 달을 가렷스면 손으로 달을 向 하여 右旋하야 구름을 둥그럿케 열어 헛치사 달빗을 내빗최이며 目 的地에 達하신 後에 다시 손으로 달을 向하야 左旋하시면 구름이 다시 合하야 原狀대로 回復되니라.
103. 院坪市場 金 京執의 酒店에 단골 主人을 定하시고 오랫동안 逗留하 실 새 누구든지 先生의 말삼을 憑托하야 酒食을 請하면 代金 有無를 不許 하고 다 許諾하더니 泰仁 靑石골 姜 八文이 酒食을 만히 먹은 後에 돈을 携帶한 것을 主人에게 發見되엿스나 先生의 말삼이 잇다고 거즛 憑托하야 돈을 支拂치 안코 갓더니 일로부터 挾滯하야 腸症을 일우어 死境에 이르 거늘 申 京守가 그 事由를 알왼대 先生이 對答지 아니하시더니 그 後에 危急함을 來告하거늘 가라사대 못슬 일을 行하야 神明에게 罪 를 어더 그릇 죽엄을 하게 되엿스니 할 일업다 하시더니 그 後에 곳 死亡 하니라.
104. 從徒들이 매양 근심된 일이 잇슬에 그 事由를 先生 稟告하면 無爲中에 自然히 풀니게 되는대 만일 稟告한 後에도 오히려 근심을 놋치 아니하면 慰勞하야 가라사대 내가 임의 알엇스니 근심하지 말 라 하시니라.
105. 매양 從徒들에게 일을 命하심에 반다시 期日을 定하여 주사 어긔지 안케 하시며 만일 命을 바든 者가 或 그 期日에 日氣의 不調로 因 하야 어김이 잇슬가 念慮하면 先生이 일워 가라사대 내가 너희 에게 엇지 不調한 날을 일너주겟나냐 하셧나니 大抵 先生의 定하여 주신 날은 한 번도 不調한 가 업섯나니라.
106. 매양 從徒를 어느 곳에 보내시되 使命을 말삼치 아니하신 가 만 히 잇셧스나 從徒들은 恒常 그럿케 經驗하엿슴으로 다시 뭇지 안코 命하신 곳에 가면 반다시 무슨 일이 잇더라.
107. 가물 에 비를 주실 새 淸水동우에 小便을 좀 타면 그 비로 因하 여 穀類가 豊穰하고 蟲災가 잇슬 에는 苦草가루를 풀어 너으면 곳 蟲災가 것치더라.
108 더울 에 出行하시면 구름이 日傘과 갓치 太陽을 가리워 볏이 이지 아니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