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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만발(德華滿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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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수님의 깨달음 방 복본의 길은 혼자 수행해서 홀로 가는 외로운 길이 아니라 즐겁게 함께 가는 성스럽고 빛나는 길이다
생명수 추천 0 조회 140 14.01.01 08:20 댓글 4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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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4.01.01 08:26

    첫댓글 갑오년 한 해동안 덕화만발 가족님들 모두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하면 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있는 것이 하늘이 우주에 설정한 장치인 것입니다. 갑오년 한 해동안 덕화만발 가족님들 모두가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14.01.01 15:36

    하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생명수님의 생명수 같은 깨달음의 말씀을 덕화만발 모든 가족들이 시원스레 마시는
    갑오년이 되기를 심축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진리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더욱 정진합시다. 하하하하하하하!

  • 작성자 14.01.01 22:07

    @덕산 저의 글을 생명수 같은 깨달음의 말씀으로 높이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저의 글이 깨달음의 말씀이라기 보다도 덕산님께서 깨달은 분이시기 때문에 깨달음의 말씀으로 높이 평가해주실 수 있었던 것이죠. 깨달은 분들은 무엇을 보더라도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 작성자 14.01.01 22:15

    @덕산 갑오년에 저의 글을 덕산님의 말씀처럼 덕화만발 모든 가족님들이 시원스레 마신다면 그보다 큰 기쁨은 저에게 없을 것 같습니다. 말씀이 일단 밖으로 나아가면 말씀대로 되어진다는 우주의 법칙이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진리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말씀으로 덕산님께서는 말씀공덕을 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14.01.01 22:16

    @덕산 덕산님도 갑오년 한해는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14.01.01 14:41

    고맙습니다. 오늘 공감가는 말씀 많이 경청했습니다.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어느 위치 어느자리에 있건 자비심의 마음이라는데 있어서 찬성합니다. 오늘 진리의 진정한 메시지를 전해주시는 생명수님의 글을 통해서 덕산님의 덕화만발이 진리를 밝히는 불타는 장작이라면 생명수님은 불을 더 활활 불붙게 끼엊는 석유라고 감히 덧붙여도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주위가 환하게 밝아옴을 느낍니다.()

  • 작성자 14.01.01 22:20

    가다오네님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가다오네님께서 갑오년 정초에 올린 저의 글에서 공감을 많이 하셨다니 저도 매우 기쁩니다. 덕산님의 덕화만발을 진리를 밝히는 불타는 장작으로 비유하고 저의 글을 불을 더 활활 불붙게 끼엊는 석유라고 비유하신 가다오네님의 말씀에 대단한 발상의 비유라고 저의 영혼이 감탄했습니다.

  • 작성자 14.01.01 22:27

    원래 이 땅에 오신 성인들은 비유를 통해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경 하나만 보더라도 수많은 비유들이 나오지요. 말씀에서 멋진 비유를 사용하신다는 것은 머리가 유연하고 새로운 발상을 하시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 작성자 14.01.01 22:31

    인연있는 생명말씀을 읽으면 영혼이 밝아오는 것을 느낄 뿐만 아니라 주위가 밝아오는 것을 느끼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읽는 생명말씀이라고 해도 인연없는 생명말씀은 머리가 무겁고 영혼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낄 뿐만이 아니라 주위가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작성자 14.01.01 22:38

    가다오네님과 저의 글은 인연이 깊은 것 같습니다. 인연이 깊은 생명말씀은 매일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인연있는 생명말씀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가벼워지며 영적 갈증이 사라지고 마음에서 행복과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본인에게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됩니다.

  • 작성자 14.01.01 22:37

    저를 기쁘고 행복하게하는 아름다운 댓글을 달아주신 가다오네님께 무한 사랑과 무한 감사 그리고 무한 존경심을 전합니다.

  • 14.01.01 15:40

    하하하하하! 스트레스 푸는 방법!
    젊어 한 때 주색잡기로 청춘을 낭비한 적이 있었죠.
    매일매일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었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주색잡기로 스트레스를 풀 수는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일도양단하고 수행에 적공 적공 대적공하면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아마 청마를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 될 것입니다. 하하하하하!

  • 작성자 14.01.01 20:41

    덕산님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현대인들 중에서 스트레스가 없는 분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스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스트레스의 원인은 자신이 원하는 바와 현실사이에 갭이 존재할 때 생기는 현상입니다.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작성자 14.01.01 20:41

    첫째,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이 충족되지 않을 때
    둘째, 사회 공헌에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세째, 지적 성장의 기쁨을 느끼지 못할 때

  • 작성자 14.01.01 20:42

    네째, 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할 때
    다섯째,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쌓일 때
    여섯째, 원만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인간관계에서 트러블이 생길 때입니다.

  • 작성자 14.01.01 20:45

    이러한 스트레스는 주색잡기로는 영원히 해결못하겠죠. 주색잡기는 덕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청춘의 낭비입니다.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이 하늘의 자비심 자리에서 사랑의 실천과 감사생활 그리고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정기적으로 인연있는 생명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 작성자 14.01.01 20:47

    생명말씀도 사람마다 다 인연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원불교의 경전과 인연줄이 닿지않아 원불교 경전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원불교 경전과 인연줄이 닿은 분은 원불교 경전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14.01.01 23:04

    덕산님께서 대단하신 것은 청춘시절 한 때의 주색잡기에서 일도양단의 결심을 하시고 원불교에서 수행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색잡기와 수행이라는 극과 극의 길을 머뭇거리지 않고 선뜻 방향을 바꿀 결심을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심이 아닙니다. 덕산님을 청춘시절 한 때 주색잡기의 길로 하늘(진리)이 몬 것은 하늘(진리)께서 덕산님을 크게 쓰시기 위하여 주색잡기로는 스트레스만 쌓이고 영혼이 메마를 뿐이라는 것을 잠깐 체험시키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14.01.01 21:57

    이미 하늘(진리)께서는 덕산님을 크게 쓰시려고 작정하고 젊어 한 때 잠깐 덕산님을 주색잡기로 내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덕산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수행에 공을 쌓는 것이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임하는 최고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14.01.01 21:58

    「수행에 적공 적공 대적공!!!」이라는 말씀은 리듬이 실려있어 수행하는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갖기위한 구호로도 손색이 없는 너무나 멋진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똑같은 세상에 살더라도 사람마다 다 개성이 다르고 영적 수준이 다 다르기 때문에 수행방법도 사람마다 다 다르고 공을 쌓는 방법도 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 작성자 14.01.01 22:00

    자기 수준에서 수행하고 공을 쌓을 때 마음에 평안이 오며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이죠. 사람은 수행도 적공도 자기의 영적수준에 맞아야 마음에서 평안함을 느낍니다. 자기의 영적 수준에 맞지 않으면 마음에 평안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명말씀도 인연있는 생명말씀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연있는 생명말씀이라는 것은 바로 자기의 영적 수준에 맞는 생명말씀을 말하는 것이죠.

  • 작성자 14.01.01 22:01

    덕산님께서는 원불교의 입문이 덕산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으니 덕산님의 입장에서는 원불교의 수행이 최고의 수행인 것이죠. 그러고 보면 수행도 적공도 상대적인 것이죠. 덕산님께서는 원불교의 도문에 입문하시고 수행생활을 하신 것이 청마를 타고 하늘을 비상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14.01.01 22:02

    그런데 덕산님께서 청마 갑오년을 만났으니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으로 덕산님께는 갑오년 한해 하늘의 큰 축복을 받으시는 천봉덩어리로서의 생활이 기다릴 것 같습니다. 너무나 귀한 댓글을 남겨주신 덕산님께 무한 사랑과 무한 감사 그리고 무한 존경심을 전합니다.

  • 14.01.01 23:04

    @생명수 하하하하하! 저는 원불교만이 진리의 길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또 그래서도 안 되고요!
    다만 원불교가 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게 하였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도나 진리는 보다 넓고 높은 차원의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수님의 깨달음도 소중하고 긍정하며 칭송할 수 있는 것이죠.
    진리는 처처에 있는 것이죠.
    <한 울안 한 이치에 한집안 한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
    이는 우리 2대 종법사님을 역임하신 鼎山宗師님의 <三同倫理>랍니다.
    기회가 닿으면 제가 [원불교 일원상의 진리]를 소개하지요! 하하하하하하!

  • 작성자 14.01.02 00:26

    @덕산 역시 덕산님은 대단하십니다. 원불교에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신 덕산님께서 「원불교만이 진리의 길이 아니다」라는 말씀에서 보름달처럼 둥근 포용력을 봅니다. 그러나 원불교에서 인생을 30여년 바치신 분이 진리관에 있어서 포용적 사고를 하신다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원불교가 포용력이 있는 종교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죠.

  • 작성자 14.01.02 00:53

    @덕산 저는 원불교 진리에 대해서는 접해본 적은 없지만 다른 종교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건전한 종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도나 진리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가장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도나 진리라고 자신있게 말하려면 지금까지 그 어떤 종교들의 진리관보다도 간단하고 명확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서고금의 모든 진리가 녹아 있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진리는 쉬운 말로 표현되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작성자 14.01.02 00:54

    @덕산 그래야 전세계인들의 가슴에도 진리가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한국사람들도 어려운 말로 진리를 표현하면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사실 저의 진리관은 하늘의 자비심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간단해서 이렇게 간단한 것이 도이고 진리라면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의아해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자비심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은 가장 간단한 진리이면서 동서고금의 진리가 이 안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하늘의 자비심 자리에 서면 끝없이 생명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 작성자 14.01.02 00:36

    @덕산 이 우주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주가 복잡하더라도 하늘의 자비심 자리에서 나온 것이 바로 우주인 것입니다. 우리가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 3차원 우주는 전체 우주의 약 4%에 지나지 않습니다. 약 96%의 고차원 물질로 이루어진 우주가 존재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천상계라고 할 수도 있겠죠.

  • 작성자 14.01.02 00:40

    @덕산 그런데 천상계를 표함한 광대한 우주가 하늘의 자비심 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연히 하늘의 자비심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죠. 한마디로 생명자리가 하늘의 자비심 자리인 것입니다. 하늘의 자비심 자리에서는 스트레스가 제로입니다. 세상자리에서는 아무리 배워도 아무리 권력을 쥐고있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지식이 많은 사람들, 권력있는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클 수가 있겠죠.

  • 작성자 14.01.02 00:41

    @덕산 하늘의 자비심 자리가 스트레스가 제로라는 것 하나만 생각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하늘의 자비심 자리로 돌아가야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14.01.02 15:08

    @덕산 그러나 하늘의 자비심 자리가 단순히 스트레스 제로의 자리가 아니라 우리의 근본자라인 순수의 자리, 사랑의 자리, 맑음의 자리, 빛의 자리, 자유의 자리, 평화의자리, 밝음의 자리, 행복의 자리, 성스러움의 자리, 아름다움의 자리, 따듯함의 자리 등인 것입니다.

  • 작성자 14.01.02 15:41

    @생명수 당연히 인류는 하늘의 자비심 자리로 돌아가야합니다. 하늘의 자비심 자리로 돌아가면 하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늘의 자비심 자리가 특정 장소에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우리 주위에 있는 꽃, 구름, 시냇물, 돌, 나무, 귀뚜라미, 개, 고양이, 비둘기 등 모든 것이 하늘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 작성자 14.01.02 15:15

    @생명수 즉 만물이 하늘님의 또다른 모습인 것이죠. 이것을 마음에서 깨닫은 사람은 하늘의 자비심 자리에 거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이것을 마음에서 깨달은 사람은 만물을 하늘님 대하듯 지극정성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이죠. 결국 만물을 하늘님 대하듯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것이 하늘님에 대한 진정한 효도인 것입니다.

  • 작성자 14.01.02 15:22

    @생명수 <한 울안 한 이치에 한집안 한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라는 鼎山宗師님의 <三同倫理>도 만물이 하늘님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수긍할 수가 있겠죠. 일원세계라는 것도 저의 관점으로는 종교를 초월해 하늘님의 자비심 자리에 세운 세계입니다.

  • 작성자 14.01.02 15:31

    @생명수 한 울, 한 집, 한 일터도 표현만 다르지 문맥상으로 보면 지구를 가르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생각을 더 크게 확대하면 우주를 가르킨다고 할 수도 있겠죠. 우주까지는 안가더라도 적어도 인류 각자각자는 인류의 보금자리인 지구를 한 울, 한 집, 한 일터로 생각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 인류는 모두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겠죠.

  • 작성자 14.01.02 15:42

    @생명수 한 권속이나 한 일꾼도 사실 같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권속이라는 표현에서는 인류는 다 같은 식구라는 것을 알게되고 한 일꾼이라는 표현에서는 인류는 아름다운 지구의 건설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아름다운 지구의 건설이라는 공동목표가 인류 각자각자에게 주어져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 작성자 14.01.02 15:38

    @생명수 종합해보면 인류라는 것은 아름다운 지구의 건설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 한 집의 형제자매들인 것이죠. 이러한 것을 인류가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받아들였다면 벌써 평화로운 지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구에 분쟁, 전쟁 등이 계속된다는 것은 가슴에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없어서이겠지요. 가슴에서 받아들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한 이치」인 것이죠. 저는 「한 이치」를 하늘의 자비심으로 해석합니다.

  • 작성자 14.01.02 15:43

    @생명수 인류 각자각자가 하늘의 자비심을 체험할 때 비로서 인류 모두가 하나이고 더 나아가 만물이 하나라는 것을 가슴에서 깨닫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울안 한 이치에 한집안 한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라는 鼎山宗師님의 <三同倫理>를 저는 처음 들어보았는데에 인류 모두가 마음에 새겨들어야할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 14.01.01 19:17

    아~~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저 발이 딛고 있는 땅만 바라볼 뿐입니다.
    이제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 14.01.02 15:44

    항아리님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갑오년 한 해 항아리님께서 발은 땅을 딛고 마음은 하늘을 바라보는 멋진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발은 땅을 딛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보면 이성을 중시한 합리적인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14.01.02 15:46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영성적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 마음은 하늘을 바라보는 멋진 삶이라는 것은 이성과 영성을 조화시키면서 사는 멋진 삶을 말하는 것이죠. 귀한 댓글을 달아주신 항아리님께 무한 사랑과 무한 감사 그리고 무한 존경심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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