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기 영원한 제국 푸른 하늘의 땅 몽골의 대자연에서-- 2006.6.26 ~ 6.30
몽골건국 800주년을 맞아 많은 관광객들이 몽골을 찾고 있다. LG사랑방 산악회는 금년도 해외원정트레킹으로 몽골의 체체궁산(2,256M) 그리고 바이칼호의 볼쉐이까띠(907M)를 선택했다. 여기서는 몽골편을 소개한다.
12시30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몽골항공사(MIAT) 여객기는 3시간반 가량을 날아간 뒤 울란바토르 공항에 내렸다. 울란바토르 공항은 국제공항이라기엔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다. 몽골 8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징키스칸공항으로 개명하였다.영원한 제국 몽골- 한때는 아시아는 물론 유럽까지 호령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이었지만, 이제는 그 흔적이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남은 것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태초의 자연 그대로를 몽골은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문명이 비켜간 태초의 땅 몽골-원색의 파란 물감을 부어 놓은듯 눈부신 하늘, 한없이 넓은 녹색 초원과 그 초원 위를 달리는 말 등은 몽골만이 가진 매력이다. 이렇게 몽골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대자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몽골의 국가적 캐치프레이즈도 `푸른 하늘의 땅` (Land of blue skies)이다.
몽골 사람의 평균 시력은 5.0을 넘는다고 한다. 독수리보다도 멀리 볼수 있다는 말이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하얀 게르와, 고개를 초원에 묻고 풀을뜯는 양떼들... 말을 타고 양떼를 돌보는 몽골인들에게서 사람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지구상에 하나 남은 대자연을 경험 할 수 있다. 푸르른 초원과 눈이 부실 만큼 파란 하늘,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백야 현상.. (밤 11시쯤에 해가 지기 시작한다) 백야의 초원에 지는 붉은 태양과, 금방이라도 쏟아질듯이 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하늘의 별들은 지금까지 경험 하지 못하였던 자연의 신비와, 도시생활에 물들은 현대인들을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게 한다.
4박5일간의 몽골 대자연 탐험은 가슴에 깊은 감동과 아름다운 잔영을 남겼다. 사진을 수백장 남겼지만 그 어떤 사진도 현장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본대로 느낀대로 사진 중심으로 감동의 대자연 탐방을 해보기로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황량한듯한 산야- 과연 어떤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의구심마저 가진다. 인천에서 3시간30분만에 징키스칸 공항에 도착한다. 기내방송으로 몽골어,영어,한국어가 방송된다. 매일 몽공항공이 운행하는데 4월부터 9월까지는 언제나 좌석이 만석이란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징기스칸 국제공항-- 바깥 날씨가 영상22도 요즘이 여행에 가장 좋은 계절이라고- 몽골은 날씨가 고온건조하여 땀이 없고 직사 햇볕만 피하면 시원하다. 하늘은 공해가 없어 파랗고 밤에는 별이 많고 크다. 시내에 들어서니 저 멀리 2차대전 승전국임을 나타내는 승전기념탑이 눈에 들어온다. 보그드 산 정상의 자이승 전승기념관이- 징키츠칸의 초상화가 울란바토르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 있도록 승전기념탑 옆에 그려져 있다.
징키츠칸(1162~1227) 몽골제국의 시조이다. 원래 이름은 베얼즈진 테무진[鐵木眞]이다. 바이칼호 근처 베얼즈진 부락의 추장인 예수가이[也速該]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어려서 아버지가 타타르 부족에게 독살되어 부족이 흩어졌기 때문에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당시 강세를 자랑하던 케레이트 부족의 완칸 아래서 점차 세력을 키워 옛 부락을 되찾았다. 1189년경 몽골씨족의 추대로 '칭기즈칸'이란 칭호를 받았다. 1203년에는 타타르·케레이트 부족을 토벌하여 동부 몽골을 평정했다. 이어 군(軍)을 개혁하여 나이만 부족을 정복하면서 몽골초원을 통일했다. 1206년 마침내 오논 강변에서 몽골제국의 칸에 오르면서 씨족공동체를 해체, 군사조직을 바탕으로 천호(千戶)라고 하는 유목민집단을 95개 편성하였다. 왕에 오른 이듬해에 서하(西夏)를 점령했다.
그뒤 금(金)나라로 쳐들어가 1215년 수도 중도(中都:지금의 베이징)에 들어갔다. 1218년 서요(西遼)를 합병하고, 1219년 서아시아의 이슬람 세계 정벌에 올라 1220년 호레즘 왕국을 정벌했다. 다시 카프카스산맥을 넘어 남러시아로 출동하여 1223년 크림을 정복했다. 하지만 1226년 서정에 올랐으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샤머니즘 신자였으나 다른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다. 특히 위구르 문화를 사랑하여 아들들에게 위구르 문자를 배우게 했고, 그것을 국자(國字)로 채택했다. 이 위구르 문자로부터 몽골문자와 만주문자가 생겨났다.
울란바토르 시내를 벗어나면서 보이는 산야와 넓은 초원에는 양떼,소떼, 그리고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캠프촌으로 가는 도중 맑게 흐르는 개천에 미역을 감는 아이들을 본다. 옛날 어린시절의 추억을 더듬는다. 노란 민들레,야생양귀비들이 우리를 반긴다. 온통 들판이 얼록달롣으로 별천지에 온 기분이다. 울란바토르의 부유한 시민들이 일요일이어서인지 고급 승용차로 가족과 함께 야외로 물놀이 온 모습이 눈에 띈다.
몽골은 한국의 7배의 큰 면적을 가지고 있으나 인구는 불과 250만, 인구밀도가 세계최저이다. 90%가 라마불교 신자이다. 30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몽골은 23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국과는 국교를 연지 10년이 된다. 2만명의 한국인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캠프촌을 찾아 / 겔에서 하룻밤을 공항에서 1시간 거리에 캠프촌이 있었다. 숙소는 겔(GERL). 게르 '파오'라고도 부르는 게르는 이동을 자주하는 유목생활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 보니 몇 사람이서 신속하게 조립하고 해체할 수 있다. 게르는 나무 막대기와 펠트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동할 때도 아주 간편하다. 보통 게르는 원통형 벽과 둥근 지붕으로 되어 있다. 벽과 지붕은 버들가지를 비스듬히 격자로 짜서 골조를 만들고, 그 위에 펠트를 덮어씌워 만든다. 입구는 남쪽으로 향하게 낸다. 내부의 구조는 중앙에 화덕, 입구의 정면이난 약간 서쪽에 불단(佛壇), 북쪽에는 의장함·침구·조리용구 등이 놓이게 된다.
뒷산에 올라가 보니 야생화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저녁시간까지 시간이 있어 집사람과 함께 캠프촌 뒷산을 올랐다. 별로 높지 않고 쉽게 오를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있었다. 시계가 좋기 때문에 거리 감각이 다른 것 같다. 야생화 사진 찍느라 힘든 줄도 모르고-- 양고기와 몽골 보드카로 첫날밤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LG식구 외에 다른 참가분들과도 인사시간을 가졌다. 몽골 트레킹에는 모두 31명이 참가하였다. 어두워지려면 밤11시가 되어야 하니 저녁식사라 하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몽골의 아름다운 대자연 풍경이 시작된다. 위도가 높아서인지 백야현상이 있다. 해는 10시경이 되어여 떨어지고 11시가 되어야 깜깜해진다. 밤하늘의 별이 주먹만하다고 하여 밤1시에 일어나 밤하늘을 쳐다 보았다. 누가 뻥을 크게 친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확실히 별이 많다. 이렇게 자연과 가까이 할 기회가 좀처럼 없으니--
새벽4시 프랑스와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다. 이곳 시골 겔에서 한국축구를 볼수 있다니 꿈만 같다. 중국CCTV가 중계를 해 주었다. 멀리 몽골에서 프랑스와 비기는 기쁨을 누렸다. 행복한 날이다. 새벽 6시가 되기 직전이다. 여명의 시간- 태양이 어둠에서 잠이 깨면서 붉은 빛을 발산하고 있다. 드디어 힘찬 태양의 솓구침을 본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겔에서 즐거운 하룻밤 추억을 남긴채 떠날 채비를 차린다.
게 르
체체궁산 트레킹 해발 2256m의 체체궁산 트레킹이 시작된다. 울란바토르를 둘러싸고 있는 몽골의 성산인 체체궁산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출발지부터 지천으로 깔려있는 야생화에 카메라맨들은 정신이 없다. 햇볕이 강해 썬크림을 바르고 긴창의 모자를 쓰고 소매가 긴 티샤츠를 입는 것이 좋다. 날씨는 등산하기에 적당하였다. 몽골은 높은 산이 많다. 4,373m되는 고산도 있고 불과 560m의 낮은 산도 있다.
첫 출발은 평탄한 길이다. 워밍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4시간 정도 걸린다. 초원만 있는게 아니다. 암릉 바위지대도 있다.휴식시간에는 철저히 휴식을 가져야 한다. 물론 휴식시간에는 간식으로 에너지 보충을 해야한다. 5월까지도 눈이 발목을 덮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녹지 않은 눈얼음이 카메라에 잡혔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근 4시간이 다 되어간다. 돌탑들이 보이면 정상이 가깝다고 했다. 마치 책을 쌓아 놓은듯한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과연 체체궁산 몽골의 성산으로 숭상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파란하늘 솜뭉치 구름 몽골특유의 민둥산 그리고 의외로 고지의 침엽수 정상의 바위군들 모두가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 놓은 것 같다. 가져간 LG산악회기를 배경삼아 단체사진을 남긴다.
체체궁산이 성산으로 떠받히고 있는 것은 라마불교와 관련이 깊은 것 같다. 전국민의 90%가 라마불교 신자이다. 하산길도 만만찮다. 암릉지대를 잘못 헛 디디면 발목을 다치기 쉽다.하늘 높이 솟은 침엽수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미 고인이 되신 연로 회원께서 단체에 폐 끼치지 않겠다고 먼저 하산을 하다가 길을 잃어, 어떻게 산중의 대통령 별장까지 -일행은 실종신고를 해야 하나 걱정이 태산으로 여행을 중단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저녁시간에 천만다행으로 신원이 밝혀진 선배가 돌아왔다. 아찔했던 기억이 이제 잊혀지지 않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텔레지국립공원에서 사흘째 되는날 다시 겔 생활을 해 보기 위해 텔레지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대략 76km라고 하니 울란바토르에서 가까운 곳이다.도심을 벗어나자 마자 금방 황량한 초원이 펼쳐진다. 이 넓은 평지 초원에 골프장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 텔레지 국립공원에는 2개의 골프장이 있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골프장도 있다고 한다. 가는 길에 한글 안내판이 있어 보았더니 '새마을운동시범마을'이라는 표지판이다. 새마을운동은 세계 곳곳에서 연수를 온다고 하고 그 자체가 수출푸로젝트화 되었다.
오보(우리의 서낭당 같은 곳으로 생각하면 된다. 오보,어워 등으로 발음한다) 휴게소에는 어김없이 돌탑이 있다. 돈,돌을 얹고 기도를 하면서 몇바퀴 돌면 그날 운이 좋다고 한다. 휴게소에는 겔이 있고 양가죽으로 만든 제품이나 슬리퍼와 잡화들을 팔고 있었다.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큰 개천이 있고 나무로 만든 다리를 버스가 건너야 했다. 나무로 만든 다리는 정말 오랫만에 본다. 혹 무너지면 어떡하나 겁이 난다. 오줌을 누고 탈걸--누가 하는 소리에 실감을 하면서 웃음을 터뜨린다. 드디어 텔리지국립공원으로 들어섰다. 산세가 험하고 기암들이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사진을 찍자고 좀 멈추어 달랬더니 나중에 이쪽으로 온다고 한다. 숙소인 겔에 짐을 풀고 국립공원 관광을 시작하였다. 먼저 단체사진부터-
우리 숙소가 있는 곳이 가장 아름다운 지역인 것 같다. 20개의 겔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파란하늘 흰구름, 괴이하게 생긴 바위산, 하얀 만두처럼 생긴 겔, 녹색초원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을 만든다. 겔을 들여다 본다. 겔 속에는 침대가 4조가 있다. 가운데 난로가 있고 나무땔감으로 방을 덥힌다. 하얀 겔과 빨강 지붕의 공동건물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우리가 묵은 겔 뒷편에 식당과 주점이 있어 이곳에서 즐거운 하룻밤의 추억을 만들수 있다.
야생화단지 국립공원내 야생화단지를 찾았다. 노란 풀밭이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온 천지가 야생화인데 이곳을 특별히 야생화단지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노랑민들레가 주류를 이룬다. 형형색색의 할미꽃이 만발해 있다. 우리나라에는 동강할미꽃만이 고개를 빳빳이 든채 꽃이 피므로 희귀종으로 보호를 받는다. 그런데 이곳에는 모든 할미꽃이 동강할미꽃이다. 노랑,빨강,자주 등 색상도 다양하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어머니상의 바위가 시선을 끌었다. 모두 차에서 내려 진기한 바위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감상을 하였다. 또 거북바위는 꼭 찾게 되는 명소로 꼽힌다. 엄청난 크기의 거북바위는 실제 거북이 앞쪽으로 기어 나오는 모습이다. 주변엔 쇼핑겔까지 있는 걸 보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임에 틀림없다. 오후3시부터 한시간은 말타기 시간이었다. 샹그리라 여행시 말타는 기회가 있었지만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말의 성질이나 그날의 콘디션에 따라 까탈스러울 수도 있다,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이 황야의 무법자 같다.
관광일정이 끝나고 휴식시간에 숙소 뒤쪽으로 산책을 나섰다. 마치 공룡새끼 같기도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E.T 같기도 한 바위가 발걸음을 끌어 당긴다. 숙소 뒤 구릉지는 완전히 야생화천국이다. 야생화단지라는 곳보다 훨씬 종류도 많고-저녁8시인데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저녁식사후에도 너무나 한가하고 자유로운 시간이다.
게르에서 하룻밤을 자다 체체궁산 정상에서
게르에서
야생화 단지
거북바위 양 떼
말타기
울란바토르를 향해 겔에서의 하룻밤을 지내고 울란바토르를 향해 가는 도중 좀처럼 보기 힘든 희귀 새들을 만났다. 오늘 좋은 길상이 있으려나? 차가 멈춘다. 양떼들이 온통 도로를 통째로 점해 버린다. 어쩔수 없는 이곳의 자연순리이다.,조급할 이유가 없다.
울란바토르 관광 울란바토르(Ulaan Baatar)는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다. `Ulaan`은 `붉다`고 `Baatar`는 `영웅`이라는 몽골어다. 몽골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가까운 80만명이 모여 산다. 해발 1500m 안팎의 고원지대로 일교차가 크다. 도시의 중심은 독립영웅인 수흐바토르의 동상이 우뚝 서 있는 수흐바토르 광장이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정부청사, 국회의사당, 독립영웅들의 묘(廟), 국립극장, 오페라하우스, 발레극장 등이 늘어서 있다.
1921년 수흐바토르는 중국으로부터 몽골의 독립을 선언했다. 광장 중심에는 말을 탄 수흐바타르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에는 `만일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노력과 의지가 있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할 것이 없고 배우지 못할 것이 없으며 실패할 것이 없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몽골 민족의 기상이 느껴진다.특히 시내는 한국 자동차 일색이다. 울란바토르 전체 자동차 중 약 80%가 한국산 현대자동차라고 한다. 심지어 한국에서 스쿨버스로 쓰이던 버스들이 글자도 지우지 않은 채 다닌다.게다가 몽골 사람들은 한국인들을 솔롱고스(무지개의 나라) 사람이라며 반갑게 반겨준다. 몽골인들이 13세기 고려를 정복하러 와 무지개를 본 뒤부터 한국은 `무지개의 나라`가 됐다고 한다.반면 중국에 대한 감정은 무척 나쁘다. 원나라가 망한 후 몽골은 중국인들에게 혹독한 통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하고 본격적인 제국의 시대를 연 지 8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여러 가지 대규모 행사가 열린다. 울란바토르에 칭기즈칸의 대형 동상이 세워지고 오는 7월부터는 기마전, 공성전 등 몽골기병의 실제 전쟁 상황을 2시간에 걸쳐 보여주는 대형이벤트도 선보인다고 한다.이 밖에도 울란바토르에서 반드시 둘러봐야 할 명소로는 공룡화석을 전시한 국립역사박물관, 마지막 생불(生佛)의 유물과 그의 절대적인 통치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보그드칸 궁전박물관, 수공예품 박물관, 몽골 라마교의 총본산인 간단사원 등이 있다.
수크바토르광장 울란바타르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바로 이곳에서 1921년 7월 '혁명영웅' 담디니 수크바토르 (Damdiny Sukhbaatar)가 중국으로부터의 80년간의 지배에서 몽고의 독립을 선언했다. 수크바토르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서 있고 지하에는 그의 무덤이 있다. 몽고은 7월21일이 독립기념일이다.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나담축제가 1주일간 열리며 말타기,활쏘기,씨름대회가 열린다. 수크바토르광장의 북서쪽으로 한 블럭 떨어진 자연사 박물관도 역시 방문해 볼만한 곳이다. 이 곳에서는 고대 식물과 동물의 화석을 전시하고 있는데, 무척추 동물에서부터 공룡의 뼈대,고대 포유동물의 잔해 등과 같은 자연의 발달사 동안에 있었던 독특한 전시품들이 모두 있다. 자연사박물관 입구 내부사진은 촬영이 금지되고 있다. 점심시간에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무지개식당에서 한식요리를 먹었다. 이제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한국식당 이 많이 있다. 모처럼 포식했다.
간단사 - 종교적 억압을 이겨낸 몽골의 유일한 사원 17세기에 설립된 간단사는 라마불교 사원으로 정식명칭은 '간등테그친른 히드'이며 '완전한 즐거움을 주는 위대한 사원'의 뜻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 1930년에 있었던 공산정권의 종교적 억압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사원으로 유명하며 울란바타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라마불교의 대표적 중심사원이기도 하다. 간단사 내에는 24미터의 불상과 몇 개의 작은 절 그리고 학승들이 공부하는 종교대학이 자리잡고 있으며, 약 150 여명의 라마승들이 거주하고 있다. 울란바타르의 중심사원인만큼 연중내내 다양한 종교행사가 열려 볼거리가 많아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사원 내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별도 비용을 지불하면 허용이 된다.
복트칸 궁전(Winter Palace of Bogd Khan) 1893-1903년에 걸쳐 지어졌다. 8명의 복트칸 중 마지막 왕이었던 복트칸 8세가 1924년에 죽을 때까지 20년을 살았던 곳이다. 복트칸이 끝나게 된 것은 공산주의 체제의 몽골 정부가 어떠한 윤회도 금지를 시켰기 때문에 더 이상의 몽골 불교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박물관 영토 내에는 6개의 사원이 있다. 궁전 자체는 외국 고위 인사들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수집하고 있다. 다른 건물들은 또한 저장된 전시품들과 인테리어로 인해 방문할 가치를 지닌다.
왕궁답게 그 규모나 소장품은 어느 박물관에 앞선다. 모두 7개의 절로 이루어진 사원과 겨울 별장이 있는 이곳에서는 또 몽골 불교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여러 칸이 모아온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여러 종류의 동물을 박제한 동물 박제가 특히 볼만하다.
저녁식사전 전통 민속공연장을 찾았다. 전통민속극,음악,무용 등 다양한 푸르그램을 보면서 몽골문화에 젖어드다. 악기도 우리 가야금 비슷한 것도 있었다. 목에서 2중소리를 내면서 구슬프게 악기소리를 만드는 신기한 가수도 인기가 높았다. 몽골전통음악이란 옛날부터 몽골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오는 고유 음악으로, 중세에 다른 민족에게서 전해진 악기와 음악, 몽골지방에 침입한 위구르족 등의 음악 따위를 통틀어 몽골음악이라고 한다.
징기스칸 초상화
수크바토르 광장 광장
징기스칸 동상
수흐마토르 장군 기마동상몽골 불교왕국의 마지막 궁전-복트칸 겨울궁전
몽골 최대 라마불교사원 간단사
국립박물관
징키스칸 복장
징기스칸 초상
후기 한국에서 불과 3시간 거리에 이토록 아름다운 태초의 자연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관광시즌이 4월부터 9월까지 기간이 짧고 특히 겨울 1월말부터 한달간은 영하 45도까지 혹한이 계속되어 화이트월드라 부르는 겨울철에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려도 스키관광이 될수 없다고 한다. 텔레지국립공원에 겔을 하나 임대하여 별장으로 사용했으면 하는 의견이 많았다.
올해는 몽골 건국 800주년이 되는 해로 몽골정부가 관광객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5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것이라 한다. 아마도 한국관광객도 엄청난 숫자로 늘어날 것이다. 한민족의 기원이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서 시작되었다는 바이칼 기원설이 설득력을 지니는 듯 하다. 원래 바이칼도 몽골의 영토였고 이곳의 브리야트족은 몽골족의 하나이다.
몽골은 러시아, 중국의 자치주(내몽골) 그리고 몽골(외몽골)로 삼분 되었지만 그다지 통일의 의지는 없는 것 같다. 금년도에 노무현대통령이 다녀가면서 몽골은 진정 부자나라라고 치켜 세웠다. 그만큼 자원이 많은 나라이기에-앞으로 기업인도 일반 관광객도 많은 출입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까운 그리고 같은 피가 흐르는 동질성을 느끼는 나라에 투자도 방문도 많은 것은 당연하다.
이번 여행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시간의 여유로움 속에 에피소드는 만발하고,아름다운 자연에 취하고 보드카 독주에 취한 즐겁고 영상미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추억의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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