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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남선현문집국역총서 1]서계선생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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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지음 김담수 / 옮김 박미경 | |
발행일 | 2011.04 | |
사이즈 | ||
종류 | 국역해제 | |
페이지 | 215 | |
비고 | 영남선현문집국역총서 | |
가격 | 20,000원 | |
<책소개> 서계 김담수의 시문집. 1781년에 서계 김담수의 7세손인 동엽(東曄)·동익(東翊)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는 문집을 교정한 대산 이상정(李象靖)의 서문과 세계도(世系圖)가 있고, 발문서는 없다. 권1에 시 121수, 권2에 서(書) 16편, 선성잡영서(宣城雜詠序)·의(疑) 각 1편, 권3은 부록으로 행장·묘지 6편, 제문 8편·청천서원봉안문(晴川書院奉安文)·상량문 2편, 상주사림통성주문(尙州士林通星州文), 여지승람중어(輿地勝覽中語), 화암기문중어(華巖記聞中語)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당시의 부패한 정치상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한편, 임진왜란으로 말미암아 황폐된 국가의 처절한 참상을 비분강개한 필치로 읊어 우국충정이 담긴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적인 시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의는 1564년(명종 19) 생원시 때 제출한 답안으로, 제목은 붙어 있지 않다. 사군지도(事君之道)와 성사지도(成事之道)에 대한 글로서,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에 근거한 정통적 유가사상에서 출발해 자신의 신념과 현실적인 개인적 체험을 통해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사군의 도’에 대해 임금에게 충성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옛날 유자(庾子)의 경우처럼 비록 ���금의 명을 받았다 하더라도 스승을 배반하지 않기 위하여 절충적 입장을 취하는 것도 일면의 타당성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성사의 도’에 대해서는 일을 성취해나가기 위해 최상의 수단을 선택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수단의 정당성이 간과되어서는 안 됨을 왕량(王良)이 말을 모는 고사를 예로 들어 서술하였다. 서 가운데 김부륜(金富倫)에게 답한 서한은 시사(時事)를 논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군량미 운반문제와 적세(賊勢)의 동기를 살피는 내용이다
<저자> 저자 서계 김담수(1535 ~1603)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태수(台叟), 호는 서계(西溪). 경상도 성주 출신. 아버지는 참봉 관석(關石)이며, 어머니는 순천박씨로 탄(坦)의 딸이다. 어려서는 조식을 사사하였고, 오건(吳健)에게서 『심경』·『근사록』을 배웠으며, 황준량(黃俊良)에게서 『중용』과 『대학』을 강의받았는데, 모두 지극한 칭찬을 받았다. 김우옹(金宇顒)·정구(鄭逑)와 도의로 사귀었고, 벗을 사귐에서는 어진 이를 가까이하고 선행을 즐겼으며, 모든 행실이 겸손하였다. 특히 지극한 효성으로 명성이 있었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건강으로 과거를 포기하고 두문불출, 경전공부에 정진하였다. 그리고 항상 가내법규를 엄중히 하여 친척간에 친애함과 불의를 행하지 말 것을 강조하여 우애가 돈독하였다. 1591년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선공감참봉(繕工監參奉)을 제수받았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어머니와 함께 가야산으로 피란하였다. 주로 도학을 닦고 후학의 진흥에 힘썼다. 성주의 청천서원(晴川書院)과 상주의 낙암서원(洛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서계일고』 3권 1책이 규장각도서에 전한다.
역자 박미경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국학 진흥원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며, 경북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서계선생일고>, <유연당선생문집>(공역), <초간일기>(공역), <만오선생문집>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맹자를 통해서 본 소식蘇軾과 대진戴震의 성정론性情論 비교와 그 의의」 등이 있다.
<목차> 발간사 - 4 축사 - 6 해제 - 15 서계선생일고서 - 35 서계선생일고 제1권 - 41 시 -41 오언절구 - 41 오언율시 - 43 칠언절구 - 47 서계선생일고 제2권 - 85 서 - 85 의 - 100 서계선생일고 제3권 부록 - 103 행장 - 103 묘지문 - 110 만사 - 115 제문 - 121 청천서원봉안문 - 141 별묘상량문 - 143 재사상량문 - 149 상주사림이 성주 사림에 보내는 통문 - 151 《여지승람》중의 말 - 152 《화암기문》중의 말 - 153 추록 - 154 색인 - 167 영인본 - 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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