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4(일) 새벽 4:30분경 일어나 산행채비를 마치고 07:00경 광화문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10:10경 화천읍 낭천산림욕장 입구에 도착한다. 낭천 산림욕장 옆에 있는 화천 화천천에서는
산천어 축제가 열리고 있어 꽁꽁 얼어있는 화천천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무척 소란스럽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는 도로 가장자리에는 화천 산천어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세워 놓은 차량으로
왕복 차량 교행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나 잠시 주차하고 하차하여 휴양림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ㅇ 산행일자 : 2018.1.14(일) 흐림......뉴서울마운틴클럽을 따라서 (4명 : 장성화, 작은별, 월악개, 그리고 나)
ㅇ 산행코스 : 낭천휴양립입구-낭천루-핼기장-절산-상덕봉-헬기장-절산-후덕봉-딴산유원지
ㅇ 산행기록 : 거리(8.13KM), 소요시간(약 4시간 14분, 10:10~14:24), 평균속도(2.2km/h), 고도(저/125m, 고/674m)
(산행기록 : 트랭글)
입구를 출발하여 잠시 지나자 왼쪽에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다
일행은 충혼탑을 지나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휴양림으로 들어선다
처음만난 이정표가 반갑다
휴양림 경사면으로 이어진 눈 쌓인 비포장 도로를 따라 오른다
완만한 경사의 능선길 주변에는 소나무들이 높이 자라고 있어 여름이면 그늘이 되어주기도 하고 향기도 뿜어주어 좋을 것 같다
헬기장과 낭천루 갈림길에서 낭천루 방향으로 진행한다
낭천루 오른쪽으로는 절산에서 북한강으로 뻣어내린 능선 사이로 아리마을 주변들이 뿌연 미세먼지 사이로 내려다 보인다
낭천루 왼쪽으로는 화천읍 중리와 중리마을을 둘러 싼 능선들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낭천 휴양림 입구방향을 바라본다
핼기장 오른쪽 건너편으로 절산에서 북한강으로 뻣어내린 능선이 가까이 보인다
핼기장 한 켠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헬기장 풍경
화천읍에서 올라오신 분에 의하면 화천사람들은 핼기장을 절산이라고 한다고 한다
뒤 따라 온 일핼
나(타잔)도 핼기장 인증샷
곧 이어 따라오신 돈황님
음지에는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상덕봉 정상 도착
상독봉 정상에서 산수화터널(배머리평화터널)로 이어지는 능선
상덕봉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20여미터를 진행하면 서 있는이정표에서 건강샘터 갈림길 방향으로 급경사 비탈면을 따라간다
온 세상이 하얀세상으로 변해 버린 듯 눈이 하얗게 쌓여있는 비탈면을 지난다
생명을 숨긴 채 봄을 기다리는 관목들
선두팀이 지나간 흔적
작은 핼기장 도착
지나 온 능선들은 눈이 하얗게 덮혀있다
절산을 경유했다가 가야 할 후덕봉이 앞으로 보인다
절산 도착
절산의 위치는 네이버 지도와 일치하지 않으나
등고선을 토대로 유추해 보면 이곳이 절산이 맞는 것 같다
후덕봉으로 이어지는 눈 쌓인 능선에는 선두팀의 발자국만...
후덕봉에서 딴산유원지로 가는 방향
후덕봉 인증샷
후덕봉을 지나면서 경사가 심한 비탈면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낙엽위로 싼이 쌓여 무척 미끄러워 발걸음마다 조심스러워진다
눈이 하얗게 쌓여있는 바위 틈새에서 자라다가 생을 마친 고사목이 애잔해 보인다
조심 조심
미끄러운 경사진 눈 길은 한없이 이어진다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등록문화재 제100호 화천 꺼먹다리도 내려다 보인다
화천 꺼먹다리는 1945년경 화천수력발전소가 준공되면서 세운 폭 4.8m 길이 204m의 철골과 콘크리트로 축조된
당시 국내 최고의 교량이었다고 한다. 교량 구조는 콘크리트 주각 위에 형강을 세우고
그 위에 콜탈을 먹인 목재를 대각선으로 설치하여 목재부식을 방지한 구조가 안적감이 있는 공법을 사용한 것으로
현대 교량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하며 교량 상판이 검은 콜탈 목재로 되어있어 꺼먹다리라고 물리운다고 한다
딴산유원지 입구 처녀고개 하단부분이 가가워지자 군 시설물들이 설치되어있다
처녀고개 하단부분 도로로 하산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보이는 인공폭포가 설치되어 있는 유원지
딴산정류장 앞 처녀고 입구에 서 잇는 처녀동상
<화천군에서 전하는 처녀고개의 슬픈 전설>
옛날 살랑골에 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는 큰 뜻을 품고 중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청년은 중국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러 다니다가 대가집 처녀와 눈이 맞아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자 깊은 정이 들어서 장래를 약속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의 부모가 조선의 총각과 딸이 사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가 보니 조선의 총각은 공부를 마치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 뻔한 사실이었고,
자신의 딸만 남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처녀의 부모는 살랑골 총각에게 다시는 딸을 만나지 말 라 하였다.
그러면서 더 이상 딸을 만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경고를 했다.
살랑골 총각은 이제 더 이상 중국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
그 총각은 아직 공부를 마치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중국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총각은 처녀에게 편지를 보내서 자신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니
나를 만나려거든 낭천의 살랑골로 찾아오라고 했다. 그러고 총각은 중국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중국의 처녀는 행여나 총각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면서 기다렸으나 더 이상 총각으로부터 연락은 없었다.
처녀는 살랑골 총각과 정이 깊어 도저히 총각을 잊을 수가 없었다.
총각이 없는 세상은 살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처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조선으로 오기로 하였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묻고 또 길을 물으면서 풍산리까지 이르게 되었다. 참으로 먼 길이었다.
이국만리 머나먼 길을 천신만고 끝에 찾아 낭천까지 이른 것이다.
그곳에서는 이제 강만 하나 건너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때 마침 풍산리에 있는 어떤 사람이 갈을 꺾고 있기에 그에게 길을 물었다.
“여기 살랑골이라는 곳을 가려면 얼마나 가야합니까?”라고 했더니,
갈을 꺾던 일꾼은 아무 생각 없이 “예, 구만리를 지나야 살랑골이지요.”라고 대답을 했다.
처녀는 너무나 기가 막혔다. 지금까지 온 길도 이역만리인데 또 구만리를 가야 한다니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녀는 그만 지금 처녀고개가 있는 곳의 병풍바위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처녀는 구만리라는 마을을 지나면 살랑골이라는 것을 모르고 구만 리나 되는 거리를 가야 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총각은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고 처녀가 죽은 곳에 와서 처녀의 시신을 곱게 묻어주었고,
처녀를 생각하면서 평생 장가도 들지 않고 혼자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처녀가 죽었다고 해서 훗날 사람들은 처녀고개라고 불렀다.
나중에 처녀의 넋이 원혼을 풀지 못해서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주민들은 술을 한 잔 먹고 지금 처녀고개에 오면 죽은 처녀의 혼령을 자주 만난다.
군인들은 처녀의 원혼을 무시하고 다니다가 보면 여자가 하얀 옷을 입고 길을 막고 서 있는데,
그 여자를 피하려다 길가 낭떠러지로 차가 구르기도 한다.
또 공사를 하면서 처녀의 원혼을 달래지 않으면 굴삭기의 삽날이 부러지기도 하고,
굴삭기 기사가 아무 이유 없이 죽기도 한다.
그래서 마을 주민과 공사관계자들이 이곳의 공사를 할 때면 반드시 제사를 지내주고 공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딴산 버스 정류장
딴산 유원지 입구
인공폭포와 유원지
인공폭포 빙벽에는 빙벽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깔끔한산행과 깔끔한 후기
탁월하신 산행지 추천하시고 리딩까지 깔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