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한수현 선생님과 복지요결을 읽고 경청의 자세를 공부했습니다. 알기는 잘 알지만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당사자분들을 만나는 초입에 배우길 참 잘했단 생각 했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동료들과 함께 권대익 선생님을 따라 마을 인사를 다녀왔습니다. 그 전에 전 직원들과 함께 마을 인사를 다닐 때에 몇 군데 더 가보고 싶었지만 갈 수 없어 아쉬웠는데 한두 군데 빼고는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관리사무소 두 곳과 황제떡볶이, 「우리가 날던 날」을 보며 꼭 한 번 가보고 싶던 빚은 떡집, 김가네 사장님과 핼러윈 파티 때 사진으로 뵈었던 대원각 사장님, 마리카 카페 사장님과 방화지역아동센터 센터장님, 탁구부 회원들께 인사드렸습니다.
황제떡볶이 사장님은 잘 모르지만 분식집에 걸려있던 액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권대익 선생님이 사장님을 기다리고 실습생들이 구호도 외치게끔 하신 이유를 알 듯했습니다.
복지사가 아니어도, 사회사업가가 아니어도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함께 동역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귀한 뜻을 품고 연대하는 사회다움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정운 어르신과의 만남
그동안 틈만 나면 백세운동교실을 들여다봤습니다. 빨간 상의에 새파란 벨벳 바지가 인상적인 이정운 어르신을 뵙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자주 오셔서 운동하신다고 했는데 한 번도 뵙지 못해 궁금했습니다. 원종배 선생님이 자리를 만드셨고 웃음꽃방에서 어르신을 뵐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옛날 전래동화 속에서 재미난 이야기보따리를 한껏 풀어내는 할아버지 모습이 생각납니다. 어쩜 그리 재미지게 이야기하시는지 정신이 홀딱 빠질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르신은 어딜 가나 인기 최고이십니다.
참여하고 이끄는 모임도 많고 요리도 잘하신다니 이정운 어르신은 참 강점이 많은 분이십니다.
원종배 선생님이 업무 때문에 자리를 뜨고 저와 이정운 어르신 둘만 남았습니다. 어르신이 제게 수수께끼를 내셨는데 제가 워낙 넌센스 퀴즈에는 재주가 없는지라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르신은 재미가 없으셨는지 할아버지들 모임에 가려고 하는데 저보고 같이 가겠느냐 물으셨습니다.
‘기회다!’싶은 마음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얼른 따라 나섰습니다. 신나게 복지관을 나왔는데 추운 날씨 때문인지 아무도 안 계셨습니다. 벤치에 어르신과 둘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지나가시던 한 어르신께서 “어이!”하고 이정운 어르신을 부르십니다.
이정운 어르신이 가시자 저도 쪼르르 옆에 붙어 따라갔습니다. 참 감사하게도 어르신께서 저를 소개해주십니다.
“이 선생님은 저기 복지관에서 나오신 분이야.”
물어보지도 않으셨는데 혹시 직원으로 오해하실까봐 얼른 인사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복지관에 공부하러 온 이예쁨입니다.”
저는 보는 둥 마는 둥 하시고 대뜸 이정운 어르신께 돼지고기 좋아하냐 물으십니다. 옆에 말똥말똥 쳐다보고 있던 저를 눈짓하시더니 잠시만 기다리라 하고 집에 다녀오십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정운 어르신께 잔뜩 돼지고기 한 아름 안기십니다. 어르신들의 우정이란 이런 건가 새로운 문화를 경험했습니다.
이정운 어르신은 제게도 돼지고기 한 아름 안겨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어찌할 바 모르고 ‘고맙습니다’ 말씀드리곤 다시 벤치에 앉았는데 갑자기 ‘아나고 회’를 좋아하냐 물으셨습니다.
“아나고요? 아니요, 저 그건 뭔지 잘 모르겠어요.”
“회는 아나고부터 시작하는 거지. 회 좋아해요? 그럼 먹으러 가요.”
“네? 어디를요?”
“우리 집에, 우리 집에 아나고 있어.”
아나고가 뭔지도 처음 듣는데다 갑작스레 집으로 초대해주시니 경황이 없었지만 또 언제 이래보겠나 싶어 어르신을 쫓아갔습니다.
어르신 댁에 들어서자 깔끔하고 정돈된 살림살이들이 보였습니다.
“우와, 어르신! 정말 깔끔하게 하고 사시네요! 저랑은 비교가 안 되네요.”혼자 사시는 남성분이어서 생각지도 않았는데 놀랐습니다. 원종배 선생님과 말씀하시던 형형색색의 옷이 무엇인지도 직접 보았습니다.
“어르신! 마치 태진아 같으세요! 그래서 월미도 가면 인기스타 되시는 구나, 다들 사인해달라는 이유가 있네요!”
노란색, 핑크색 쨍한 색상의 정장들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모종을 좀 나눠줄까 물으셨을 때 저는 잘 키우고 싶지만 화초 죽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 말씀드렸더니 그럼 안 되겠다 하셨는데 어르신은 화초 키우기도 잘하셨습니다.
집 구경을 하고 있으니 어르신께서 ‘아나고’ 회를 꺼내 쌈과 한 상 차려주셨습니다. 아침에 노량진에서 사왔다며 민물 새우 가득 넣은 매운탕도 끓여 주셨습니다. 뭐 더 줄 게 없나 찾아보시며 선물 받은 차와 양파, 배를 넣은 도라지 즙, 디저트로 그릭 요거트까지 주셨습니다. 레몬청도 직접 담그셨느냐 여쭸더니 레몬청도 싸주셨습니다.
“어르신, 제가 이렇게 얻어먹기만 해서 어쩌지요? 정말 감사해요!”
“에이, 뭐 이런 걸 가지고. 괜찮아요, 괜찮아요!”
2시간 반 가까이 이야기하고 나니 간접표현도 직접표현도 어떤 이야기를 더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졌습니다. 어르신이 약속 있다며 나가자고 하셔서 어르신께 연락드리기로 약속하고 한 가득 음식 보따리 들고 헤어졌습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헷갈릴 정도로 귀한 상 잘 받았습니다. 밖으로도 안으로도 진정한 멋쟁이셨습니다.
이정자 어르신과의 만남
복지관에 돌아와 동료들에게 자랑하고 있는데 소영이에게 메시지 한 통이 왔습니다.
‘예쁨 언니, 이정자 어르신 오셔서 2층 운동실에서 운동하고 계십니다!’
‘어르신이 복지관엔 어쩐 일이시지?’ 혹시나 엇갈릴까봐 부랴부랴 내려가 어르신께 인사드렸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 저번에 뵀던 이예쁨이에요! 기억하시겠어요?”
“아, 예. 기억하고말고요.”
단 번에 기억해주시니 감사했습니다. 어르신은 원종배 선생님 연락을 받고 택배 때문에 시간이 안 맞아 못 만난다 하셨다가 일이 잘 풀려 그 길로 복지관에 오셨다고 합니다. 어제는 낙심된 일이 많았는데 오늘은 한 가득 복이 굴러들어오는 날 같습니다.
이정자 어르신과 두 시간 가까이 마주앉아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르신은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다녀왔다 하셨습니다. 지하철 노선도 꿰고 계신 듯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휠체어를 타고 두바이 여행을 하셨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어르신 나들이에 기대가 크십니다.
어르신은 말씀하시는 중간 중간 제게 시간이 괜찮은지 물으시며 간식도 챙겨주셨습니다. 어르신들은 제게 작은 거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살뜰히 챙기십니다. 어르신들의 어른다움으로 저는 마냥 아이처럼 받고 감사하며 든든한 어르신들 곁을 따릅니다.
홍인혜 어르신, 이정운 어르신, 이정자 어르신. 모두 나들이와 관계에 호의적이시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궁금해 하시는 듯했습니다.
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첫 번째 모임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정운 어르신이 구정 지나고 나들이 가자고 하신 말씀에 실습 기간 안에 해야겠다는 조급함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어르신들께 다음 주 월요일 시간이 어떠신지 여쭈었더니 세 분 다 좋다 하셨습니다. 식사도 같이 하면 좋겠다고 홍인혜 어르신이 말씀하셔서 제가 여쭈어봤습니다.
이정자 어르신이 댁으로 가시고 종례가 끝난 후 원종배 선생님과 상의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잘못한 것 같았습니다.
월요일 몇 시쯤 만날 거며, 식사를 할 거라면 어느 곳에서, 어떤 메뉴로, 식비는 어떻게 충당할지 아무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제가 나서서 월요일에 식사하자고한 제안도 어르신들의 주체성을 침범한 느낌이었습니다.
주선과 의도 간의 갈등
어르신들 사이를 주선하고 중매하는 입장과 목적을 이루고자하는 의도가 어르신들의 자주성을 해치지 않았는지 갈등의 기로에 섰습니다.
무조건 내 의도대로 설득한 게 아닌데, 어르신들의 의견을 조합해서 일단 첫 만남은 만들고자 한 건데 고민되었습니다.
“어떤 마음이었어요? 시간에 쫓기듯 조급하진 않았어요?”
원종배 선생님이 물으셨습니다.
“그런 생각도 없잖아 있었어요, 실습 기간 안에 끝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거든요.”
그 부분이었습니다,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는 상황.
원종배 선생님과 마주 앉아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저는 저대로 어떤 게 답일지 답이 없다면 어떤 게 최선일지.
일단은 첫 모임이고 어르신들의 의견을 취합한 부분이니 다시 여쭙기로 했습니다. 먼저 이정운 어르신께 감사인사와 더불어 식당 추천을 부탁드렸습니다.
이정운 어르신은 닭볶음탕을 추천하셨고 다른 어르신들 의견을 여쭌 뒤 다시 연락드리기로 했습니다.
홍인혜 어르신께 연락드렸습니다.
“어르신! 월요일에 식사하자고 하셨는데 제가 이 동네 안 살아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몰라서요, 게다가 복지관에서 예산을 안 준대요. 어쩌면 좋죠?”
어르신은 뭐가 문제냐면서 이번에 내가 사려고 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번엔 내가 사려고 했어, 내가 먼저 시작을 하는 거지!”
어르신이 호탕하게 말씀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어른답게 이끌어주셔서 더 감사했습니다. 어르신께서 월요일 돈가스 사주시기로 했습니다. 이정자 어르신과 이정운 어르신께도 연락드려 자주 모이시는 복지관 1층 웃음꽃방에서 점심시간 전에 만나 뵙기로 했습니다.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애쓰고 걱정하는 마음보다 어르신들이 두 발 걸음 앞서 척척 일을 해주시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저 제겐 감사와 기대만 남았습니다. 다음 만남이 기대됩니다.
첫댓글 “‘기회다!’ 싶은 마음에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얼른 따라나섰습니다.”
“아나고가 뭔지도 처음 듣는데다 갑작스레 집으로 초대해주시니 경황이 없었지만 또 언제 이래보겠나 싶어 어르신을 쫓아갔습니다.”
어르신을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
'당사자의 곳'에서 '당사자의 일상'에서 당사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잘 느껴지네요.
'아나고 회, 민물 새우 가득 넣은 매운탕, 도라지즙, 그릭요거트, 레몬청...'
어르신 인정 듬뿍 받고 왔군요. 좋았겠다. 부러워요^^
'어르신들의 어른다움으로 저는 마냥 아이처럼 받고 감사하며 든든한 어르신들 곁을 따릅니다.'
잘 했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예쁨 학생 잘 하고 있어요.
어르신 만나서 강점을 많이 발견했네요.
이렇게 알아가다보면 적절한 때에, 적절한 구실로 어르신 나들이 더욱 잘 도울 수 있을 겁니다.
어르신의 자주성을 해치고 있진 않는지 고민이 많군요.
어르신이 주체성을 발휘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만나서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사업가는 의도를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이니까요.
식사 모임 제안이 자주성을 해친 일이었을까요?
예쁨 학생이 어르신들 관계 돕기 위해 나들이를 구실로 만나고 있잖아요.
어르신 가운데 한 분이 나서서 모이자고 제안하면 더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예쁨 학생이 모임을 제안해야하지 않을까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어르신이 계시다면 그 역할을 하시게끔, 옆에서 거드는 것도 방법이겠고요.
그새 이정운 님과 이야기 나누며 강점도 발견했네요. 잘했습니다.
이정운 님 둘레사람과도 인사했네요.
이예쁨 학생, 한 걸음 한 걸음 느리지만 잘 가고 있습니다.
이예쁨 학생의 어르신답게 도우려는 귀한 마음 알게 되었어요.
충분히 고민했습니다! 이제 나들이 구실 잘 살려 잘 다녀올 수 있도록
예쁨 학생이 고민한 '의도'를 어르신들께 잘 전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