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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 입춘대길(立春大吉)
입춘(立春)은 24절기(節氣) 가운데 상징적으로 새로운 계절의 시작인 봄의 문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역시 정월(正月) 풍속과 함께 다양한 한 해의 복(福)을 기원하는 다양한 풍속들이 있다.
대궐(大闕)에서는 설날에 문신(文臣)들이 지어 올린 연상시(延祥詩: 신년축시) 춘첩자(春帖子), 입춘방(立春榜)-중에서 잘된 것을 선정하여 대궐의 기둥과 난간에다 입춘 첩(立春 帖)을 써 붙였는데, 일반 민가와 상점에서도 모두 입춘 첩을 붙이고 새봄을 송축(頌祝)했다.
{첩(帖)문서} * 입춘 첩(立春帖) 예시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세풍(時和歲豊)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白福來)
고유의 절기(節氣)때 먹는 음식인 절식(節食) 중에 입춘날에 먹는 햇나물 무침이 있습니다. 유래는 경기도 내의 산이 많은 6개의 고을{양평(陽平),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 연천(連川)}에서 움파{동총(冬蔥)}, 멧갓, 승검초{신감초(辛甘草)} 등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내 임금께 진상하고 궁궐에서 겨자와 함께 무쳐 "오신반(五辛盤)"이라 하여 수라(水刺)상에도 올렸습니다. 멧갓은 이른 봄 눈이 녹을 때 산에 자생하는 개자(芥子)로서, 끊는 물에 데쳐내어 초장에 무쳐서 먹는데 몹시 맵고, 고기를 먹은 뒤 입가심으로 좋다. 승검초는 움막에서 기르는 당귀(當歸)의 어린 싹인데, 깨끗하기가 은비녀의 다리 같고, 꿀에 찍어서 먹으면 아주 맛이 좋다.
햇나물 무침을 먹는 이유는 겨우내 결핍된 신선한 야채를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민간(民間)에서도 이를 본받아 입춘절식(立春節食)을 먹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함경도 지방에서 입춘이 되면 나무로 소를 만들어 관아(官衙)로부터 민가(民家)까지 끌고 나와서 돌아다니는 풍속이다.
이는 옛날 중국에서 흙으로 소를 만들어 내보내던 풍속을 모방한 것이고, 농사를 장려하고 풍년(豊年)을 기원하는 뜻을 지닌 것입니다.
입춘(立春) 인(寅), 해(亥). 자(子). 사(巳)일
호랑이 민화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은 세시 풍속뿐만 아니라 민속학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는 날이라 할 것이다. 으뜸 되는 아침'이라는 뜻을 지닌 원단(元旦), 원일(元日)은 우리 전통의 생활 속에서 한 해를 맞이하는 의례(儀禮)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 해의 기원과 길흉(吉凶)을 점쳐보는 소박한 풍속들이 이어오고 있다. 정월 초하루의 다양한 풍속과 행사를 살펴보겠다.
설날 아침 일찍 제물(祭物)을 사당(祀堂)에 진설(陳設)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정조차례(正朝茶禮)라 한다.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께 새해 첫인사를 드리는데 이를 세배(歲拜)라 하고, 어린이들은 설빔으로 새 옷을 입는다.
또한 세배 때 대접하는 음식과 술을 세찬(歲饌), 세주(歲酒)'라 한다.
떡국, 병탕(餠湯) 차례 상에 오르는 대표적인 원일음식(元日飮食)으로 손님 접대에도 쓰이는 세찬(歲饌)이다. 습면(濕麵)'으로도 불리었으며, 세속(世俗)에서 나이 먹는 것을 떡국을 몇 그릇 먹었냐고 하는 것으로 불리었다.
조리과정 멥쌀가루를 쪄서 떡판에 놓고 나무자루가 달린 떡메로 무수히 찧은 다음 손으로 둥글려 기다랗게 늘여 만든 것이 가래떡 백병(白餠)인데, 이것을 얄팍하게 돈 같이 썰어 장국에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후추 가루를 넣어서 먹었다.
시루떡, 증병(甑餠) 새해 제사에 쓰이기도 하고 상(喪) 중의 삭망전(朔望奠)상중에 있는 집에서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지내는 제사)이나 그밖에 아무 때에라도 신에게 빌 때에 올려 사용했다.
{甑(증) 시루, 餠(병) 떡, 奠(전) 제물, 전 올린다.}
조리과정 멥쌀가루와 삶은 팥을 각각 층으로 겹겹으로 깔되 쌀가루를 더 두툼하게 까는데, 시루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혹은 찹쌀가루를 몇 겹 더 깔아서 찌기도 하였다. 나이가 삼재(三災)에 해당하는 사람은 집안 문설주에다 매 세 마리를 그려서 붙여 그 해의 액(厄)을 막는 것이다.
이 삼재의 해에 해당하는 3년간에는 언동(言動)을 조심하고 모든 일에 삼가며 꺼리는 일이 많았다. 삼재란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를 말하거나 병난(兵難), 질역(疾疫), 기근(飢饉)을 말하기도 한다.
새해에 일가친척간이나 친구, 젊은 사람을 만나면 올해는 "시험에 합격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아들을 낳으시오" 등으로 처지와 환경에 알맞은 말을 하는 것을 덕담(德談)이라 한다.
이는 서로 복을 빌고 축의(祝意)를 표시하는 말인 것이다.
청참(聽讖), 초하룻날 첫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 처음 들려오는 말소리로 그 해 1년간의 길흉(吉凶)을 점치는 것이다.
이 때 까지 소리를 들으면, 그 해는 운수 대통하는 것으로 여겨 왔다.
사희(柶戱), (윷점), 윷놀이는 설날의 대표적 민속놀이로 붉은 싸리나무 두 토막을 반으로 쪼개어 네 쪽으로 만드는데, 길이는 세 치 가량이다.
혹은 작게 반쪽의 콩알만큼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윷을 던져서 노는 놀이 이다. '柶'자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비(匕)'의 의미로 특히 네 쪽의 나무라는 뜻에서 사희(柶戱)라고 한다.
사(柶) 윷, 숟가락 윷의 뜻은 우리 나라에서만 사용하며 세속(世俗)에서는 윷을 던져 새해의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대개 세 번 던져서 짝을 지어 64괘(卦)로써 점괘를 알아본다.
나무로 장기 쪽 같이 만들어 거기에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오행(五行)을 새겨 넣습니다. 그것을 함께 던져서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身數)를 점치는 것을 오행점(五行占)이라 한다.
상원절식(上元節食)
약반(藥飯) 대보름 음식 중에 약밥은 찹쌀을 쪄서 대추, 밤, 기름, 꿀, 간장, 잣 등을 넣어 함께 버무린 것으로 제사상에도 올렸다.
유래가 신라(新羅)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풍속이다.
신라 소지왕(炤智王) 10년 정월 보름날 왕이 천천장(天泉亭)에 행차했을 때, 날아온 까마귀가 왕에게 내전(內殿)에서 승(僧)과 궁주(宮主)가 잠통(潛通)하는 것을 알려주었다는 고사(故事)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 풍속에 보름날에 까마귀를 제사하는 날로 정해 약밥을 만들어 까마귀를 제사하는 날로 정해 약밥을 만들어 까마귀를 제사함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한 것이라고 한다.
복리(福裏), 보름날에는 취나물이나 배추 잎, 혹은 김에 밥을 싸서 먹으면서 이를 복쌈이라 했습니다. 보름날 다섯 가지 이상의 곡식을 섞어 잡곡밥을 지어먹는데,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었다. 또 영남지방 풍속에도 이런 것이 있는데, 이것은 제사 밥을 이웃과 나누어 먹는 옛 풍속에 따른 것이다.
액(厄)막이 풍속
작절(嚼癤), 보름날 아침에 밤, 호두, 은행, 잣, 무 등을 깨물면서 "1년 열 두 달 동안 만사(萬事)가 뜻대로 되며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시오."하고 기원을 하는 것이다. 혹은 부럼은 치아를 단단히 하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의주(義州)의 풍속에 젊은 남녀가 이른 아침에 엿을 씹는데, 이것을 '이 굳이 엿'이라 합니다. 이것도 역시 부럼과 같은 의미이다.
이명주(耳明酒), 보름날 이른 아침에 청주(淸酒)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해서 '귀밝이술'이라 한다.
매서(賣暑), 보름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누구든 사람을 보면 째 빨리 부르고 상대방이 대답을 하면 곧 "내 더위 사가라"라고 한다.
이렇게 더위를 팔면 그 해에는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으면 이것을 실없는 장난, 즉 학(謔)이라 한다.
정월 초에 아이들은 연(鳶)에다 집안 식구들의 이름과 각자의 생년월일을 쓰고 "신액소멸(身厄消滅)"이라는 글자를 쓴 연을 띄우다가 보름날 해질 무렵에 연줄을 끊어 날려보내는데, 액을 멀리 보낸다는 의미인 것이다.
답교(踏橋), 보름날 밤에 서울 장안의 많은 사람들이 열운가(閱雲街:종로 네거리)의 보신각(寶信閣)으로 모여들어 종소리를 듣고 각각 흩어져 각처의 다리로 가서 그 다리 위를 거니는데, 이 인파의 행렬은 밤이 새도록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리 밟기는 주로 대광통교(大廣通橋)와 소광통교, 현재의 광교(廣橋), 수표교(水標橋)에서 가장 성행했는데, 사람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어 북을 치고 퉁소를 불기도 하여 매우 소란스러울 정도였다.
이렇게 다리 위를 걸으면 모든 병을 물리치는 액막이가 된다고 생각했다.
민속 차전놀이
다양한 종류의 연(鳶)에 얼레를 만들고 거기에 연줄을 감아 연을 공중에 띄워 바람의 방향에 따라 연을 날린다.
연놀이는 겨울부터 시작하녀 늦봄까지 즐기는 놀이로 우리 나라 풍속에서는 연을 겨울부터 정월 보름까지 날립니다. 속설에 의하면 고려 때 최영(崔瑩) 장군이 탐라(眈羅)를 정벌할 때 연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연을 날리다가 다른 사람의 연줄과 서로 맞걸어 남의 연줄을 끊고서야 이겼다고 좋아하는데, 이것을 연싸움이라 한다. 연싸움을 심하게 하는 사람은 사금파리 가루나 구리 가루를 연줄에다 바르기도 하는데, 그러나 연줄을 거는 방법과 연을 날리는 방법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석전(石戰) 놀이는 서울의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의 삼문(三門) 밖 사람들과 애오개, 아현(阿峴) 사람들이 두 패가되어 몽둥이와 돌을 들고 맞서 만리현(萬里峴) 위에서 함성을 지르며 싸움이 벌어지는데, 패하여 달아나는 편이 지는 것이다. 속설에 삼문(三門) 밖의 편이 이기면 경기지방에 풍년이 들고, 애오개 편이 이기면 다른 지방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안동(安東) 지방에서는 해마다 정월 16일이 되면 안동 부내(府內) 시민들이 시냇물을 가운데 두고 좌우 양편으로 갈라져 돌을 던져 싸워서 승부를 가리는 풍속이 있고, 또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도 정월 보름날에 돌팔매질을 하여 싸우는 풍속이 있다.
충청도 풍속에 동네별로 편을 갈라 동아줄을 서로 힘껏 잡아당기는데, 이것을 줄 싸움이라 한다. 줄 싸움은 줄을 끌어간 편이 이기는 것이며, 그 동네가 풍년을 차지하게 된다. 이것은 지금의 줄다리기 놀이와 같다.
경기지방 풍속도 이와 같았고, 또 승려들도 이 놀이를 했다.
차전희(車戰戱) 춘천(春川)지방 풍속에 동네별로 편을 갈라 외바퀴 수레를 끌고 나와 싸운다. 승부를 겨루어 그 해의 풍년을 점치는데, 쫓기는 편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또 가 평 지방 풍속에도 이와 같은 것이 있다.
갈전희(葛戰戱), 영남지방 풍속에 칡으로 줄을 굵게 꼬아 길이가 4, 50발쯤 되게 만들고 편을 갈라서 서로 잡아끌어 승부를 겨룬다.
역시 이렇게 하여 풍년을 점치는 것이다.
안동지방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부녀자들 중에 늙고 약한 자들이 성 밖으로 몰려나와 마치 생선을 길이로 죽 꿴 형상으로 끊어지지 않도록 길 게 한 줄로 늘어 엎드린 다음 한 어린 소녀를 좌우에서 손을 잡아 붙들어 부축하면서 그 위를 왔다갔다 걷게 하였다.
그러면 어린 소녀가 노래를 부르면서 마치 다리 위를 걷는 것처럼 한다.
그 어린 소녀가 "이것이 무슨 다리인가?" 하고 유창한 가락으로 선창을 하면 엎드려 있는 부녀자들은 일제히 "청계산(淸溪山) 놋다리지" 하고 후창(後唱)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길을 다니듯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왔다 갔다가 하면서 놀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그친다.
기복 풍속 정월 보름날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산에 올라서 달이 떠오르는 광경을 보는 것인데, 남보다 먼저 달을 본 사람이 길하다고 한다.
그리고 달빛을 보고 그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치기도 한다.
달빛이 붉으면 가물 징조이고 희면 장마가 들 징조입니다.
또 달의 둘레가 두터우면 풍년이 들고 얇으면 흉년이 들 징조이며, 차이가 없으면 평년작이 될 징조입니다. 과일나무의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두면 그 해에는 많은 과실이 열린다고 한다.
또 설날에 석류나무의 가지 사이에 돌멩이를 끼우면 열매가 커진다고 한다.
삭일(朔日)-초하루[2月1日]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긴 겨울 동안 쉬었던 노비(奴婢)들이 2월이 되면 이제 농사 준비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노비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하루를 즐겁게 쉬게 하여 노비들에게 주식(酒食)을 베풀고 배불리 먹게 하였다.
이때 노비들은 농악(農樂)을 치며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보냈다.
또한 시절음식인 송편, 송병(松餠)을 노비들에게 그 나이 수대로 나누어 먹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노비(奴婢)의 분류는 본래 '노(奴)'는 사내종이고 '비(婢)'는 계집종을 일컫는 것이다. 고전(古典) 문장에서 노(奴)와 비(婢)의 글자만으로도 성별(性別)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송편, 송병(松餠) 현대에는 중추절(仲秋節;추석)의 대표적 음식으로 송편을 들 수 있지만, 본래 송편은 2월 초하루가 시절음식으로 시작했다.
조리과정, 멥쌀 가루로 반죽을 한 뒤에 콩을 물에 불려서 소{속}을 만들어 넣고 모시조개 같이 빚어서 시루 안에 솔잎을 깔고 그 위에 넣어서 찌는 떡입니다. 푹 익힌 다음 꺼내서 물로 닦고 참기름을 발라서 먹는 것이다.
떡집에서는 팥, 밤, 검은콩, 푸른 콩 등으로 소를 넣거나 혹은 꿀을 섞어 싸기도 하고, 혹은 대추와 삶은 미나리를 넣어서 만들기도 한다.
온 집안을 깨끗하게 쓸고 닦는 대청소(大淸掃)를 하는 날이다.
특히 이때부터 집안까지 노래기, 마륙(馬陸) 마디 발 동물로 길이는 3mm에서 28mm까지 있으며 고약한 노린내를 풍긴다}가 나타나기 때문에 주술(呪術)적인 의미로 백지(白紙)에 다음과 같은 8자의 부적(符籍)을 써서 벽이나 서까래에 거꾸로 붙인다.
영남(嶺南) 지방 풍속에 집집마다 2월 초하루에 고사(告祀)를 지내는데, 이것은 "영등신(靈登神) 모신다"고 하거나 "바람 올린다"라고 하는 풍신제를 의미합니다. 이때 영등신이 무당(巫堂)에게 내리면 그 무당은 동네의 가가호호(家家戶戶)를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그 무당을 불러다가 고사를 지내고 즐겼다.
이는 영등할머니, 영등파(靈登婆)라는 풍신(風神)이 2월 초하루에 지상(地上)에 내려와서 20일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데, 이 영등신이 강림(降臨)할 때 일년 내의 바람재앙, 풍재(風災) 을 면하게 해 달라는 "바람 올린다"
는 의미의 주술적 고사(告祀)를 행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들고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되어 영등신이 내려오는 2월 초하루를 "영등날"이라 하고, 2월달을 "영등달"이라 한다. 또한 제주도의 부락제(濟州道)에도 영등신을 모시는 "영등 굿놀이"를 2월 초하루에 행하였다.
이 날 콩을 볶아 먹었는데, 콩을 볶을 때 "새알 볶아라. "쥐 알 볶아라." 콩 볶아라." 하고 주문을 외었다. 이는 새와 쥐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인데, 역시 무사태평(無事太平)과 풍요(豊饒)를 기원하는 행사다.
인일(人日) - 정월 초이레
조선조 때 임금이 친히 제학(諸學)들을 불러 과거(科擧)를 보라는 칙령을 내렸는데, 이 과거 시험이 인일 제(人日製)이다.
명절(名節) 날 보는 과거 시험은 인일 제로부터 시작해 3월3일, 7월7일, 9월9일에 시행되어 모두 절일제(節日製)라고 한다. 이것은 양수인 홀수의 숫자가 왕성한 날에 행해지는 풍속과 관련이 있는 행사다.
정월 초이레 인일(人日)이 되면 임금이 동인승(銅人勝)이라는 거울을 각신(閣臣)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동인 승이란 작고 둥근 거울인데, 자루가 달렸고 거울 뒤에는 신선이 새겨져 있다.
해일(亥日), 자일(子日), 사일(巳日)
해일(亥日) 정월 첫 돼지날,
자일(子日) 정월 첫 쥐날,
사일(巳日) 정월 첫 뱀날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12지지(地支)의 각 12지수(支獸)의 동물들의 날을 기념해서 행해지는 풍속들이 있는데, 그 중 돼지 날, 쥐 날, 뱀날의 풍속이 대표적인 풍속으로 이어오고 있다.
조선시대 고사(故事)에, 해일(亥日)과 자일(子日)에는 궁중에서 젊고 지위가 낮은 내시{환관(宦官)} 수백 명이 횃불을 땅에 끌면서 "돼지주둥이 지진다", "쥐 주둥이 지진다"하며 돌아다니던 풍속이 있다. 해일(亥日)에 팥가루로 세수를 하면 얼굴이 점점 희어지고 살결이 고와진다 하는데, 이는 돼지의 살결이 검고 거친 데서 그 반대의 뜻으로 이런 말이 생긴 것 같다.
충청도 풍속에서 유되었는데, 자일(子日)에 주민들이 떼를 지어 횃불놀이를 하면서 논과 밭 두렁의 마른풀을 태우는 놀이가 쥐불놀이다.
물론 병충해(病蟲害)의 제거로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 놀이는 정월 보름까지 계속해서 행해져 보름날의 풍속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날은 머리를 빗거나 감지 않았다.
만일 그렇게 하면 뱀이 집안에 들어와 화를 입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경칩일(驚蟄日)
驚蟄은 음력(陰曆) 2월 절기(節氣)로 양력(陽曆)으로는 3월 6일경인데, 1999년에는 양력 3월 6일이고 음력(陰曆)으로는 기묘년(己卯年) 1월 19일이지만 2월 대표 절기(節氣)이고 다양한 풍속이 많아 2월 세시(歲時)에 소개하겠다.
이 무렵은 날씨가 따뜻해져 초목(草木)의 싹이 돋고 동면(冬眠)하던 동물이 깨어 꿈틀대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놀랄 경{驚}과 숨을 칩{蟄}의 명칭이 정해졌다. (驚(경) 놀라다. 蟄(칩) 움츠리다.)
이 날의 풍속(風俗)에는 농촌에서 개구리 정충(精蟲)이 몸을 보(保)한다고 해서 논이나 물이 괸 데를 찾아 개구리 알을 잡아먹고, 흙 일{토역(土役)}을 하면 탈이 없다 해서 담을 쌓거나 벽을 바르는 일을 한다.
또한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집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사라진다고 전한다. 아울러 이 날은 보리 싹의 성장상태로 보리 농사의 풍흉(風凶)을 점쳤다. 그리고 단풍나무를 베어 나무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면 성병(性病)이나 위장병(胃腸病)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식 묘제
명절 날 조상의 산소에 가서 묘사(墓祀)를 지내는 날은 설날, 한식, 단오(端午), 추석(秋夕) 등이지만 절사(節祀)로 가장 성하게 지내는 날은 한식과 추석이다.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祭享)을 지내고, 민간(民間)에서도 조상의 묘전(墓前)에 술, 과일, 포(脯), 식혜(食醯), 떡, 국수, 탕(湯), 적(炙) 등의 제물(祭物)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한식차례(寒食茶禮)라고 한다. 후에 명절제사인 절사(節祀)는 동지(冬至)가 추가되어 다섯 절사(節祀)가 되었다. 이 날은 성묘(省墓)를 하고, 식목(植木)을 하거나 헐은 분묘(墳墓)에 떼를 다시 입히는 개사초(改沙草)를 하는데, 3월에 한식이 든 해는 사초(沙草)를 하지 않습니다. 이는 '삼구부동총(三九不動塚)'이라 해서 '3월과 9월에는 묘소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 데서 연유하였다.
물론 그 이유는 3월은 이미 봄이 되어 싹이 나왔기 때문이고, 9월은 이미 겨울에 접어들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밥을 먹는다>는 한식의 의미로는 이 날은 풍우(風雨)가 심해서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다고 하거나, 다음 유래 고사에서 연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본래는 고대(古代)의 종교적(宗敎的)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 불{신화(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어느 기간 동안 구화(舊火)를 일체 금하던 예속(禮俗)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나라 한식의 시초는 중국 당(唐)나라에서 전래되어 신라(新羅)때부터 전해지는데, 고려시대(高麗時代)에는 대표적 명절로 숭상되었고 조선시대(朝鮮時代)에 들어와서는 그 민속적 권위가 더욱 중시되었다.
농가에서는 이 날 농작물의 씨를 뿌리기도 한다.
찬밥을 먹는다'는 의미의 한식은 유래 고사(故事)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의 충신(忠臣) 개자추(介子推)로부터 유래가 전해진다. 진문공(晉文公)의 망명시(亡命時)에 자기희생(自己犧牲)으로 문공(文公)을 도와준 개자추(介子推)였지만, 진문공의 무심함에 잊혀진 개자추는 금산(錦山)으로 은둔(隱遁)하게 되고, 뒤늦게 후회한 진문공이 개자추를 부르지만 그는 내려오지 않았다. 개자추를 내려오게 하려는 일념(一念)으로 산에 불을 질렀지만 개자추는 검은 재로 변했을 뿐이었다.
뉘우친 진문공은 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이 날이 되면 모든 나라에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밥을 먹으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고사로 전해져 온다. 하지만 개자추(介子推)의 비극적 고사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한식 전후는 매 마른 봄철의 날씨로 인해 산불이 많이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寒食'이라는 두 글자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산불예방에 일조(一助)할 수 있지 않을까?
삼짇날 - 3일(三日):삼질, 중삼(重三), 상사일(上巳日)
삼짇날은 양수(陽數) 중복일 풍속의 하나이다.
음양설(陰陽說)로 숫자는 짝수가 음기(陰氣)이고 홀수가 양기(陽氣)다.
그래서 날짜에 양기가 겹치는 날은 왕성한 양(陽)의 기운이 넘치는 날이기에 예로부터 커다란 명절로 일컬어 왔다.
3월 3일, 5월 5일{단오(端午)}, 7월 7일{칠석(七夕)}, 9월 9일{중양절{重陽節)} 모두 커다란 명절이었다. 특히 3이라는 숫자는 순양(純陽)의 '1'과 순음(純陰)의 '2'가 결합하여 얻어진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진 길수(吉數)로 여겨졌기에, 3월 3일은 만물(萬物)이 소생하는 왕성한 만춘(滿春)의 봄기운으로 인해 야외에서 얻어지는 풍속이 많은 날이다.
근래에 삼짇날을 단순하게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로만 인식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금년 삼짇날은 양력으로 서기 1999년 4월 18일이다.
산이며 들에 만발(滿發)하는 개나리와 진달래는 봄의 절정을 알리는 꽃입니다.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와 반죽해서 둥근 떡을 만들어 참기름을 발라지진 것을 화전(花煎: 꽃부침개)이라 한다.
9월 중양절(重陽節)에 국화꽃으로 찹쌀떡을 만들어 먹는 국화전과 유사한 풍속이다. 화전은 옛날의 오병(熬餠: 지짐 떡) 중의 한구(寒具: 한식(寒食)때 먹는 음식의 한가지로 밀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뛰긴 것)로 전해져 오던 것입니다. 또한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다음 가늘게 썰어서 오미자(五味子) 국물에 띄우고 꿀물을 섞고 잣을 띄운 것을 화면(花麵: 꽃국수)이라 한다.
화면은 혹 진달래꽃을 녹두에 반죽해서 만들기도 하였다.
이밖에 녹두로 국수를 만들고 붉은 색으로 물들여 꿀물에 띄운 것은 수면(水麵)이라 합니다. 화전(花煎), 화면(花麵), 수면(水麵) 모두 봄의 미각(味覺)을 돋아주는 시절음식(時節飮食)이고, 또한 제사(祭祀)에도 사용되었다.
우리 나라 풍속에 기제사(忌祭祀)는 중하게 여기지만 시제(時祭)는 중하게 여지지 않는다. 이는 오랑캐의 비루(鄙陋)한 풍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왕조{조선조} 중엽에 이르러서 어진 선비가 배출되고 사대부 중에 예(禮)를 숭상하는 자가 많아져 비로소 시제(時祭)를 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백성들은 대체로 가난하고 검약(儉略)해서 사계절의 시제를 모두 행하는 자가 드물었고, 봄가을 두 번 행했는데, 봄은 삼짇날에 지내고 가을은 중양절(重陽節;9월 9일)에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삼짇날에는 나비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에 나비 점을 치는데, 호랑나비나 노란 나비를 처음 보면 길조(吉兆)로 여기고 흰나비를 먼저 보면 흉조(凶兆)로 여긴다. 꽃들 사이를 나는 나비에 대한 이야기로는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에 나오는 우주만물의 진리를 엿볼 수 있는 장자의 나비 일화를 떠올릴 수 있다. 삼짇날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윤기가 흐르듯이 아름답다고 해서 부녀자들은 머리를 감는다.
월중풍속(月中風俗)
양춘(陽春)의 3월은 특정한 날의 풍속보다는 한 달 내내 봄을 음미하듯 다양한 풍속(風俗)이 산재한 시기다.
만물이 생동(生動)하는 시기답게 수많은 산해(山海)의 진미(珍味)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시절음식(時節飮食)과 여러 놀이 풍속으로 생동하는 양춘(陽春)의 기운을 발산하는 달인 것이다. 대표적인 몇 가지 풍속을 통해서 봄의 완성을 이루는 3월의 계절을 음미(飮味)해 보시기 바란다.
탕평채(蕩平菜-묵청포) : 녹두로 청포묵을 만들어 잘게 썰고 돼지고기를 미나리. 김과 함께 초장을 쳐서 봄날 저녁에 먹는 음식을 탕평채(蕩平菜)라 하는데, 탕평채는 차게 먹을수록 맛이 좋다고 한다. 근래의 초나물에 녹말 묵을 썰어 넣고 섞은 음식인 묵, 청포(淸泡)와 통용된다.
애탕(艾蕩;쑥국) 봄철들에 무수하게 나는 쑥을 뜯어다 끓이는 국을 애탕(艾蕩)이라 한다.
산병(*산餠:산떡)과 환병(環餠:환떡) 봄철의 떡으로 산 떡과 환 떡이 있습니다. 멥쌀로 작은 방울 모양의 흰떡을 만드는데 그 속에 콩으로 소를 넣은 후에 머리 쪽을 오므린다. 이 떡에 오색물감을 들여 다섯 개를 포개어 구슬처럼 꿴 것이라 해서 산 떡이라 한다.
또는 청. 홍. 백색으로 송편처럼 반달형으로 만들어 작은 것은 다섯 개, 큰 것은 두세 개를 대 꼬치에 꿰어 먹기도 한다. 환 떡은 소나무의 속껍질인 송 기와 제비 쑥을 찧어서 오색의 둥근 모양의 떡으로 만든 것이다.
이 중에서 큰 것을 말굽 떡 마제병(馬蹄餠)}이라고 한다.
소어(蘇魚:)와 제어(*제魚): 3월경에 소어(蘇魚;청어과의 밴댕이를 지칭함, 또는 반지, 근어, 해도어 등으로 불림)는 경기도 안산(安山) 앞 바다에서 나고 제어(*제魚)는 한강 하류 고양(高陽)과 행주(幸州)지역에서 나는데, 사옹원(司甕院) (조선조에 궁중의 음식을 관장하던 관청)의 관리가 잡아서 임금께 진상(進上)을 했습니다. 특히 제어는 위어(葦魚: 세어 또는 싱어로도 불림)라고도 불리면서 횟감으로도 많이 이용하는데, 이것을 파느라고 생선장수들의 왕래가 분주합니다. {*제어의 '제'자는 '此'머리 밑에 '魚'를 쓴 글자. 의미는 '갈치'의 뜻이지만 우리 나라의 '제어'는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서 서식하는 30Cm가량의 칼 모양을 한 은백색의 '웅어{열어, 멸어}를 지칭한다.
주로 봄철에 많이 빚는 맛 좋은 술로 전하는 전통주(傳統酒)는 개인 집이나 술집에서 직접 만들어 전통의 맛을 자랑하는 술들이다.
주명(酒名) 주원료(原料) 및 산지(産地) 비교
과하주(過夏酒)
소주와 약주를 섞어 빚은 술, 주로 여름에 먹음 여름을 잘 견뎌냄
소국주(小麴酒), 찹쌀로 담근 막걸리의 일종 麴(국)누룩
두견주(杜鵑酒), 진달래꽃{두견}을 넣어 빚은 술{진달래술} 鵑(견)두견이
도화주(桃花酒), 복숭아꽃을 넣어 빚은 술 桃(도)복숭아
송순주(松筍酒), 소나무의 새순을 넣고 빚은 술 筍(순)죽순
감홍로(甘紅露), 내릴 때 지 치 뿌리를 꽂고 꿀을 넣어 밭은 붉은 소주로 달고 알 콜 도수가 높음 (평안도) 甘(감)달다
벽향주(碧香酒), 매우 맑고 향기가 좋은 술 (평안도) 碧(벽)푸르다
이강주(梨薑酒), 배 즙과 생강즙을 꿀에 넣어 빚은 술 (황해도) 薑(강)생강
죽력고(竹瀝膏), 푸른 대쪽을 불에 구어서 받은 기름을 죽력(竹瀝)이라 한다. 이 죽력을 넣어 빚은 소주. 생 지황, 꿀, 계피, 석 창포 등을 넣음 (전라도)
계당주(桂當酒), 소주에 계피와 당귀를 넣어 삭힌 술(전라도) 桂(계)계수나무
사마주(四馬酒), 새해 오일(午日: 말날)마다 네 번 거듭 빚어 봄 내내 익힌 술, 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음 午는 12지에 馬 [麴(국)누룩. 鵑(견)두견이. 筍(순)죽순. 露(로) 이슬. 碧(벽) 푸르다. 薑(강) 생강. 瀝(력) 거르다.
桂(계) 계수나무 ]
서울 풍속에 화창한 날 경치 좋은 물가나 산과 들에 음식을 준비해서 노는 꽃놀이를 화류(花柳)라고 한다. 이 꽃놀이는 본래 3월 삼짇날에 답청(踏靑: 봄에 파란 풀을 밟고 거니는 놀이)하는 풍속에서 온 것으로 필운대(弼雲臺: 현 종로구 필운동)의 살구꽃, 북둔(北屯: 현 성북구 성북동)의 복사꽃,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밖의 버들이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 현대의 봄철 벚꽃놀이는 왜색(倭色)의 잔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전통의 화류(花柳)를 되찾고, 올바른 상춘(賞春)의 자세가 필요하리라 본다.
강릉(江陵)지방 풍속으로 노인을 공경(恭敬)하여 해마다 좋은 계절에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초청해서 명승지(名勝地)로 모셔다가 위안잔치를 벌여주는 것을 청춘경로회(靑春敬老會)라고 한다. 비록 종 노비(奴婢)라 할지라도 70세가 되면 모두 이 잔치에 나오도록 초청을 한다.
어린 소녀들이 풀을 뜯어다가 머리를 땋거나 틀어 올려 낭자(娘子)를 만들고 그것에 나뭇가지를 깎아 붙인 다음 천 조각으로 치마와 저고리를 만들어 입힌 것을 풀각시{초각씨(草閣氏)}라고 한다.
여기에 이부자리와 머릿병풍을 쳐놓고 그것을 가지고 노는 것을 각시놀음[각씨희(閣氏戱)]이라 한다. 일종의 인형극(人形劇) 놀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풀 놀이는 장난감이 없는 시절에 직접 손으로 만들어 놀았던 기지(機智)가 엿보인다. 또한 아이들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었는데, 이것을 호드기{유생(柳笙);버들피리}라고 한다.
초파일(初八日)
석가탄신일(釋伽誕辰日, 욕불일(浴佛日))
初八日{4월 8일}은 불교신도들이 석가의 탄신일로 경축하면서 사찰(寺刹)에 가서 재(齋)를 올리고 연등(燃燈)을 하며 제등행렬(提燈行列)을 함으로써 종교적인 차원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기는 하지만 과거 전통 사회에서는 민간의 행사로 성대한 풍속이었습니다. 전통적 풍속으로서의 초파일 세시(歲時)를 살펴보겠다. [ 燃(연)불타다. 提(제)들다, 끌다 ]
초파일의 연등(燃燈) 행사는 신라 때부터 농사기도와 국가발전을 기원하던 예술제 성격의 연등회(燃燈會) 행사로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궁중의 팔관회(八關會)와 함께 민간의 행사로까지 확대된 연등회(燃燈會)가 거행되어 국가적 차원의 성대한 불교의식(佛敎儀式) 행사로 자리잡게 된다. 연등 행사시기는 신라 때에 정월 보름에 행해지다가 고려 때 계승되어 정월 혹은 2월 보름에 연등회(燃燈會) 행사로 행해지거나 두 차례 모두 실시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초기에 왕실에서 연등회를 베풀기도 했지만 이후 국가적인 행사는 사라지고 민간에서 세시풍속으로 전승됩니다. 현재의 사월 초파일에 연등 하는 풍속은 고려시대 고종대(高宗代)에 최충헌(崔忠獻)의 아들이기도 한 최이(崔怡)가 초파일이 석가의 탄신일이기에 연등 행사도 이 날로 변경했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이 있다.
고려 풍속에 초파일 수십 일 전부터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등간(燈竿: 등불을 달 장대 기둥)에 매달아 깃발을 만들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돈이나 쌀을 얻어 쓴 것을 호기(呼旗)라 하는데, 이 호기의 풍속이 계승되어 초파일 며칠 전부터 민가에서 등간(燈竿)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꿩 깃을 끼워 장식하고 천으로 깃발을 만들어 매답니다. 등간(燈竿)에 등을 다는데, 보통 그 집안의 자녀수대로 등간을 세우고 등(燈)을 달았다가 9일에 그친다.
등(燈)의 종류는 수박, 마늘, 연꽃등의 채과(菜果) 모양 등(燈)과 종, 북, 누각, 화분, 가마, 병, 항아리 등의 기물(器物) 모양의 등(燈), 용, 봉황, 학, 잉어, 거북, 자라 등의 동물(動物) 모양의 등(燈) 외에도 칠성등, 오행 등, 일월등 등의 천문(天文) 모양의 등(燈)과 수복등(壽福燈), 태평등, 만세등(萬歲燈), 남산등(南山燈) 등의 상징적 문자(文字) 의미의 등(燈) 등 아주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등(燈)의 제작은 종이를 바르기도 하고 혹은 붉고 푸른 천을 바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에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데, 고사(故事)의 인물상이나 동물 그림 등을 그려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오색찬란(五色燦爛)한 다양한 모양의 등을 만든다.
연등 놀이를 하는 초파일 저녁을 등석(燈夕)이라고 하는데, 이 날은 전례에 따라 야간의 통행을 허락하며 서울 장안의 사람들은 산기슭에 올라가 달아놓은 등(燈) 구경을 합니다. 혹 악기를 들고 쏘다니거나 등을 들고 돌아다니는 제등행렬(提燈行列)을 하면서 밤새도록 떠들썩하게 그치지 않았다.
연등 놀이가 왕성한 시기에는 낙화희(落火戱)라 해서 일종의 불꽃놀이처럼 등간(燈竿)에 매달린 등 줄 사이에 숯과 사기 파편을 넣은 주머니를 매달고 불을 붙여 터뜨리며 불꽃을 즐기기도 했다.
소밥{소반(素飯)}: 초파일에 느릅떡{유엽병(楡葉餠)},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을 차려 놓고 손님을 천해서 음식을 대접하는데 이를 석가의 탄신 일에 고기 반찬 없는 소 밥이라 한다. 물장구 놀이{수고희(水鼓戱)}: 아이들이 등간(燈竿) 아래에서 물동이에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 띄워 놓고 빗자루로 박아지를 두드리면 단조로운 소리가 나는데, 이를 물장구 놀이라 합니다.
월중풍속(月中風俗)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시작되는 4월은 계절의 미각(味覺)을 신선하게 하는 다양한 시절 음식(時節飮食)이 있고 또한 전래되는 풍속 등으로 다양한 월중 풍속을 지니고 있다. 초파일의 풍속과 함께 4월중의 풍속을 살펴보겠다.
증편, 증병(蒸餠), 찹쌀가루를 반죽해서 조각조각 떼어서 술을 넣고 쪄서 부풀어 오르게 하여 방울 모양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콩을 삶아 소를 만들고 꿀을 섞어 방울 모양의 떡 속에 넣는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대추의 살을 발라 찌는 것입니다. 증편은 당귀의 잎으로 가루를 내어 섞어 푸른 빛깔을 내기도 하는데, 한식 때 밀가루로 증편을 만들었던 풍속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蒸(증)찌다. 餠(병)떡]
화전(花煎): 4월에는 삼짇날의 화전처럼 찹쌀가루에 장미꽃을 섞어 반죽해서 기름에 지져서 먹는데, 기름에 지지기 때문에 유전(油煎)이라고도 한다.
煎(전)지지다, 끊이다.
어채(魚菜), 싱싱한 생선을 잘게 썰어 파, 석이(石耳)버섯, 오이나물과 익힌 전복, 달걀을 부쳐 국화잎을 가늘게 썰어 버무린 다음 기름과 초를 쳐서 시원하게 먹는 것을 어 채라고 한다. [ 菜(채)채소, 안주 ]
고기만두{어만두(魚饅頭), 생선을 두껍고 넓게 잘라 조각을 만들고 그것으로 쇠고기를 싸서 쪄서 초장에 찍어 먹는 것을 고기만두{어 만두}라 한다.
[ 饅(만)만두 cf 鰻(만)뱀장어 ]
미나리강회{근회(芹膾), 미나리를 데쳐서 속에 생고기를 넣고 감싸서 초간장을 찍어 먹는 것은 미나리강회{근회}라 하고 미나리 대신 파를 사용하면 파강회라고 한다. [芹(근)미나리, 膾(회)날고기]
4월 계절에 주로 소녀들과 소년들까지도 들과 길가에 피는 봉숭아꽃을 따다가 백반과 함께 짓찧어서 나오는 붉은 물로 손톱에 물을 들이는데, 이 풍속은 현재까지도 그대로 전해오는 유년시절의 추억을 담은 풍속이다.
단오(端午)의 유래(由來)
端午節{음력 5월 5일}은 동양세계에서 고래(古來)로 지켜온 대표적 명절(名節) 중의 하나로, 특히 양수(陽數)[기수(奇數)로도 표현함]가 겹치는 날[3월3일, 5월5일, 7월7일, 9월9일]의 명절 중 볕이 가장 강하다고 하여 성대하게 풍속(風俗)이 행해지는 날이다. 가정에서는 정갈한 음식을 마련해 단오차례(端午茶禮)를 지내고 여러 가지 풍속 놀이를 하며 하루를 즐긴다.
단오의 의미는 초오(初午)라는 뜻으로 5월의 첫 오일(午日: 말의 날)을 말하고, 수(數)에서 홀수가 음양(陰陽)의 양수(陽數)에 해당하기에 달과 일의 수(數)가 겹치는 날이기도 한 5월 5일이 큰 명절이 되었다.
별칭(別稱)으로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五節), 단양(端陽) 등으로 불리며 우리 나라에서는 수릿날이라고도 불린다.
중국(中國)-시절전래설(時節傳來說), 문헌상에도 고대 한(漢)나라시절부터 단오 풍속의 기록이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5월 5일의 풍속이 생겨난 것은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하는 5월을 맞아 악질(惡疾)이나 액(厄)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예방(豫防) 풍속이 생겨난 것으로 본다.
약초(藥草)나 창포(菖蒲)를 사용하거나 쑥으로 인형(人形)을 만드는 풍속에서 보이듯이 향(香)이 강한 풀이나 약초(藥草) 등으로 액(厄)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명절로 정해진 것이다. 굴원고사설(屈原故事說),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충신(忠臣)이었던 시인(詩人) 굴원(屈原)이 충절(忠節)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임금을 그리면서 유배지(流配地)의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은 날이 5월 5일이었기에 그를 기리는 뜻으로 대나무 통에 쌀을 넣고 소태나무 잎으로 싸서 물 속에 던지던 풍속이 변해 대나무 잎에 싸서 찐 떡을 먹는 풍속으로 발전된 것으로 봅니다.
우리 나라 수릿날, '수리[한자어로는 술의(戌衣)]'의 의미는 '신(神), 상(上), 고(高)'의 뜻으로, 상일(上日), 신일(神日)의 의미를 수릿날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내기 파종(播種)을 끝맺는 5월이면 군중(群衆)들이 모여 하늘[신(神)]에게 제사(祭祀)를 지내고 가무(歌舞)와 음주(飮酒)를 즐겼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