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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십자가의 도는 어떤 능력인가?
구원 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고도 그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에 십자가는 그저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우리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렇다면 당신은 십자가의 도가 어떤 능력인지 알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능력을 구체적으오 체험해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어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도가 왜 능력인지 모릅니다.
그냥 십자가일 뿐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기가 예배당이구나 하는 느낌만 들 뿐입니다.
우리는 돈의 능력을 압니다.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돈의 능력을 압니다.
죄가 있어도 돈 있으면 무죄요, 죄 없어도 돈 없으면 유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돈에는 분명히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면 돈의 능력은 알고 십자가의 능력은 모르는 신자라면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니 하나님께서 답답하실 수밖에 없는 노릇이 아닌가요.
능력도 증거도 없이 고작 초등학교 4학년생과 같은 신앙적 회의를 품고 살아가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원한다면 이제 우리의 신앙 기본기를 다시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십자가의 도가 어떤 능력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첫째, 십자가는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한다.
십자가의 도는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게 뭐 대단한 능력이라고, 이런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나 같은 죄인,말할 수 없는 죄인,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 구원 받았다고 기도하고 찬송할 때마다 고백하면서도
누군가 자신의 허물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면 얼마나 화를 내는지 모릅니다.
실제로는 자신이 말할 수 없이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느 정도로 죄인인지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정확히 깨닫게 해 주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보면 무엇이 보입니까?
내 죄를 위해 보배 피를 흘리신 예수님이 보입니다.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비로소 해결 받을 수 있는 내 큰 죄가 보입니다.
이것이 십자가가 말해주는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던진 베드로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아침이 되어 빈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에 올라 해변에 앉은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베드로의 마음에도 놀라운 감동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저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지금은 낮이고 깊은 물에는 고기도 없습니다 라고 대꾸하지 않고 명하신 대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베드로 자신의 배는 물론 요한의 배까지 가라앉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많은 고기를 잡고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는커녕, 예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베드로의 이 고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실 밤새도록 고생만 하고 고기 한 마리 못 잡은 어부가 아침에 뜻밖에 고기를 이렇게나 많이 잡았으면 어떤 반응이 나와야 정상입니까?
횡재를 만났으니 당연히 좋아해야 맞습니다.
예수님을 붙잡고 덕분에 고기를 많이 잡았으니 2대 8로 나눕시다.
앞으로 계속 동업할까요? 라고 사업 제안이라도 했다면 말이 됩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순간, 영의 눈이 뜨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안이 열려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표중입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십자가를 깨달은 성도가 경험하는 첫 번째 은혜는 십자가를 보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산이 얼마나 엄청난 죄인인지 전율에 휩싸일 만큼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게 되면 통회 자복하는 역사부터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만나주시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내 죄악이 내 눈에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한번 진단해보십시오.
당신은 진짜 십자가의 능력을 깨달은 사람입니까?
당신은 다음 질문에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당신 주변에서 당신보다 더 악질인 사람을 본 적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 악질 많아요.
그 사람,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옆집 누구도 그렇고, 직장 누구도 그렇고, 교회의 모 집사도 그래요 라며 대답에 열을 올립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십자가의 능력으로 자기 죄를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보고 눈이 뜨인 사람은 아무도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통해 이미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린 여자가 예수님 앞에 끌려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일 태세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그런 여자는 돌로 쳐서 죽여도 됩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라고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바닥에 뭔가를 쓰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의분으로 가득 찼던 마을 사람들이 슬그머니 돌을 내려놓고 물러난 것입니다.
이 여자는 간음한 죄가 있지만 나도 죄가 있다.
내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나도 똑같은 죄인인데.
그들 안에서 통렬하게 자기 죄를 깨닫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었습니까?
그렇다면 마음속에서 정죄의식으로 가득 찬 돌들이 내려오고, 입에서는 더 이상 남의 말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장본인인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행전 2장 36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둘째, 십자가는 진짜 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십자가의 도는 우리가 어떤 복을 받았는지 깨닫게 합니다.
어떤 성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님 믿었어도 별로 복 받은 게 없습니다.
이 말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믿었는데 복은 받은 것이 없습니까?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복이란 무엇입니까?
몇 년 전 기독교 방송을 통해 어느 목사님의 부뢀절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한 것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아버지로서 존경하며 따르고 아내는 남편으로 극진히 사랑해주며, 많은 교인들이 저를 제법 좋은 목사로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무너진다면 내 생명과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제게는 이런 복된 관계를 단번에 깨뜨릴 수 있는 죄와 허물이 있습니다."
나는 이 목사님이 지금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싶어 좀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동안 제가 지은 죄의 십 분의 일, 아니 백 분의 일이라도 드러나고 공개된다면 그들은 제가 자신들의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목회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저는 순식간에 제가 생명처럼 여기던 것들을 모조리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처럼 치명적인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말씀에 백 번 동의합니다.
자식에게 아버지로서 존경받지 못하고,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사랑받지 못하고, 교인들에게 목사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속죄의 은혜가 가장 큰 복임을 믿습니다.
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도 확실히 믿습니다.
제가 지금 바로 그 믿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복은 속죄함을 받는 복입니다.
세상에서 돈, 명예, 성공을 다 얻었다 해도 숨긴 죄악이 모조리 드러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또 어떻습니까?
나중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갔는데 우리의 지난 과거의 기록이 모두 그대로 있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천국 도서관에 우리의 과거사가 담긴 필름이 전부 보관되어 있다면 아마 모두 자기 필름을 지키느라 아무것도 못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이미 필름이 모두 지워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죄 사함입니다.
"이사야 1장 18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다들 그럴싸하고 멀쩡하게 보여도 그 사람의 과거를 들추고 파해쳐보면 정말 기막힐 것입니다.
우리가 죽은 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심판대 앞에서 그 죄들이 낱낱이 공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악과 허물이 다 씻음을 받아 깨끗해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편 32편 1절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죄 사함의 은혜가 가장 큰 복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님을 믿었어도 받은 복은 별로 없어요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신다면 어떤 심정이실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아들 예수님까지 내어주신 분입니다.
결국 죄의 문제가 모든 문제의 해결입니다.
저주가 해결되었고, 지옥의 두려움이 사라졌고,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셌째,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한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하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고, 그 죄가 모두 사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성도는 이제 십자가의 또 다른 능력을 경험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감격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용납하기 힘든 나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를 지도록 하셨습니다.
죄는 분명히 내가 지었는데 죄값을 자신의 아들에게 담당 시키실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도리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주시다니 이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사야 53장 5-6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다, 다 안다 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믿고 있는지, 정말 알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믿게 된 사람은 얼굴 표정이 다르고 삶의 분위기가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으로 말로만 믿었지 실제로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입증이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일이 잘 풀리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가보다 라고 생각하고, 일이 뜻대로 안 되고 어려우면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확증된 진리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을 십자가를 통해 확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사랑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기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해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정말 믿게 되면 아무리 큰 어려움이 와도 그의 삶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고통과 역경이 하나님 사랑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기적을 일으키는 십자가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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