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산속의 자연인, 그 청정원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은
맑고 깨끗한 공기에 대한 그리움으로 더욱 간절합니다.
겨울철의 백패킹은
맑고 깨끗한 공기를 즐기운 최고의 취향일 것입니다.
도심, 그 자체가 환경 오염의 대명사이지만
특히 겨울철의 공기 오염은 건강을 해치는 주범입니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교회를 가는데
정류소에서 승차한 젊은 학생이 옆자리에 앉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다른 빈자리로 가서 앉았습니다.
버스 안의 공기도 좋지 않은데
옷에 베인 담배 냄새는 거의 죽음이었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담배 피우는 사람은
다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역겨운 냄새는
자리를 나란히 이웃할 수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술과 담배 냄새로부터
자유로운 청정한 삶을 살았습니다.
제 주변에는 술 담배를 하는 사람은
완전 아무도 없습니다.
술 담배를 끊게 하거나 아니면 피하여 도망하기 때문에
항상 술 담배의 환경에서 벗어난 청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 앞에서 담배를 피운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친구 한 명이
자취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담배를 사오라고 해서 충격을 받고
내 집에서 담배를 피우고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운 사람없다고 히였더니
밖으로 나가더니 점방에서 담배를 사가지고 와서는
부엌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마루에 앉아서
강한 것은 부러진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는 독실한 크리스챤으로
고등학교 때 이미 고린도전서의 아홉까지 은사를 다 경험하였으며
금요 기도회에 간증하며 다닐 정도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죽을 병에 걸려 몸의 수술을 일곱 번이나 하였고
원래 2년 선배인데 병 때문에 유급하여 동기가 되었습니다.
병의 치료를 위해 기도원을 부지런히 다니다가
소위 말하는 성령의 충만한 영성의 문이 열였습니다.
기도원 신앙의 대명사가 된 친구는
병과 이웃하며 치료하고 세속과도 이웃하며 삶을 치유하였습니다.
점심 시간 떄 늘 성경책을 읽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우정을 쌓았으며
고등학교는 선배인 동기였고 신학은 후배였고 훗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동부 교회 금요 기도회에서 몇 번 만났고
집 앞에서도 우연히 만났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제 앞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여준 친구는
신천의 깡패들 소굴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며 유행가를 부르다가
나중에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노래를 부르며 회개의 기도를 하게 하였고
몸은 종합병원의 항체를 가졌으며 세속의 복음화를 이루는 전천후였습니다.
제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여준 친구는
유연한 삶으로 복음의 실사구시를 구현하였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참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 앞에서 술마시며 담배 핀 이야기를 한 친구가 또 한 명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교회 동기요, 신학동기였습니다.
총신 다닐 때 화장실에서 담배 핀 이야기를 하며
담배 피우는 몇 명이 모여서 뒷산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맥주를 마시면서
인생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상담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소셜네트워크의 온라인 실천자로 소통과 공유의 대명사였습니다.
술 담배에 자유로우면서
삶의 진실한 문제에 정직하였습니다.
결혼식할 때 유일하게 참석한 고등학교 시절 친구요,
또 신학동기였습니다.
결혼할 때 두문불출하고 3년 동안 성경만 읽다가 기도 응답으로 결혼하였기 때문에
신학 동기들은 대부분 결혼하였고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도 연락할 길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잊을 수 없는 두 친구는
술과 담배에 대한 묘한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신학 동료들 가운데 가끔 지난 날 방탕한 생활을 하였던 것을 이야기 할려고 하면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미워할까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동료들은 순진한 저에게 삶을 깨우치기 위해
자신의 많은 경험을 들여 주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층격적인 이야기는 고등학교 때 하숙을 하였는데
그 때 주인 아주머니와 동거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훌륭한 목사가 되었는데
과거를 이야기 한 것을 많이 후회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동료는
대학교 다닐 때 소위 말하는 퀸카와 몇 년 동안 동거 생활한 것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신학을 하면서 헤어지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 목회 사역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만 듣고 좋은 환경에서만 살았는데도
동료들이 들여주는 자신의 경험은 정말 믿음으로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자기를 용서할 수 없는 아픈 이야기를 털어 놓는 동료들......
30년이 지난 지금 카페의 글이 되었습니다.
제자 한 명은 늘 기도로 교제하던 여자 친구를 친한 친구에게 빼앗기고
앞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루 종일 방성대곡하였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교제의 상처는 너무나 컸지만
다 극복하고 좋은 자매 만나 결혼하고 훌륭한 목회 사역을 잘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믿음으로 감당하지 못할 불편한 이야기는
대하소설을 써도 모자랄 것입니다.
누구라도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 자신의 경험은 거룩한 삶, 그 옷의 티가 되고
또 죄인의 괴수, 그 같은 죄의 용서를 받을 허물일 것입니다.
지난 날 사역할 때 자위 문제로 고민하는 고등학교 학생을 상담하였는데
신실한 기독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일곱 번.....잘라야 합니까 죽어야 합니까라며 고민상담을 하였습니다.
훗날 성균관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회계사가 되었습니다.
또 대학생 한 명은 포르노에 함몰되었는데 가장 착한 기독 대학생의 대명사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더럽고 추한 자신을 비관하며 고민상담을 하였습니다.
또 다른 대학생은 신실한 기독 청년인데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고민상담을 하였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면 대문열자마자 소중병이 날라오고
학교 다니지 말고 돈벌어서 술 사가지고 오라고 날마다 고래고함을 치는데 할 수 있으면 죽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훗날 대학을 졸업하고 경찰관이 되어
민중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의 불행과 욕망의 타락으로 깊이 고민합니다.
바울은 죄인의 괴수로 고민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였습니다.
세상의 타락한 이야기는
지면으로 부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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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이지만 역겨운 담배 냄새를 맡고 교회를 갔는데
날씨가 추운 탓인지 예배실을 따뜻하게 해 놓아 신경이 예민해졌습니다.
이 정도 공기라면 예배 도중 기침을 열 번 정도는 할 것 같아
찬송가 부를 때도 입을 열지 않고 손과 팔을 지압하며 몸을 다스렸습니다.
예배실의 넓고 높은 천장과 좋은 난방 탓에 그나마 다른 실내 환경 보다는 매우 좋지만
공기의 흐름으로 온풍기를 켜고 끄는것도 감지하는 몸의 센스는 예민할 밖에 없습니다.
결국 담임 목사는 헌금 기도할 때
기침을 크게 하였습니다.
강단의 환풍구가 없는 예배실은
실내의 나쁜 공기가 강단으로 쌓이기 떄문에 강단 주변의 공기는 경험적으로 가장 좋지 않습니다.
실내의 공기로 인하여 민감할 때
강단의 설교는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계시의 말씀과 같은 영감적 기도는 아굴의 잠언이요,
기도에 관한 영감적 성찰의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주기도문과 상통하고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 곧 그 공의를 이루는 기도입니다.
거짓 선지자의 헛탄한 묵시는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었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루살렘 거리에서 찾은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는 거짓 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찿은 참 이스라엘 사람 나다나엘은
그 마음에 간사없는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아굴은 기도의 버킷 리스트를 남겼는데
잠언의 생명의 샘과 생명의 나무에 해당하는 하나님과의 영감적 호흡이었습니다.
그런데 "주 안의 부자"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영감적 성찰로 넘치는 아굴의 기도는 제목 그대로 주 안의 부자가 되게 하는 비전의 설교가 되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주일성수의 교조적 삶의 실천은
주 안의 부자로 사는 비결로 강조되었습니다..
아멘으로 화답하는 순전한 성도의 모습은
따뜻한 실내의 공기와 같았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5-9)
기도에 대한 아굴의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종교적 탐욕을 배제한 기도의 바로미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아굴의 기도는 겨울의 맑고 깨끗한 바로 그 청정한 공기요,
거짓 선지자의 허탄한 묵시를 따르지 않고 사이비 신앙을 근절하는 부요한 믿음의 온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는
주 안의 부자, 곧 믿음의 부요를 이룰 것입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가 노변의 상태가 좋지 않아 덜커덩하면
곧바로 마른 기침을 합니다.
덜커덩 하는 순간 가라앉은 먼지가 일고
미세 먼지로 인해 기침을 합니다.
그럴때면 주머니의 껌을 꺼내 씹으면
금방 기침이 멎습니다.
몇 일 전 은행 볼 일이 있어 갔는데
번호표를 뽑고 30여분 기다리는 동안 제채기를 하고 맑은 콧물이 났습니다.
차례가 되어 일을 처리하면서
실내 공기가 너무 안좋다면서 잠깐 기다렸는데 제채기가 나고 콧물이 흐르는 데
하루 종일 어떻게 근무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창구의 직원은 공감하며
비염을 달고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창구에 앉아 있어도 전혀 행복하지 않네요라고 하였더니
맞아요라며 여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집근처의 다이소에 자주 아이쇼핑하는데
10분 정도 있으면 "지금 나가지 않으면 죽는다"는 신호가 옵니다.
다이소의 그 많은 제품 냄새와 겨울철의 히타는
실내 공기 오염의 주요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덧 공기 측정기가 된 몸은
본능적으로 좋은 환경에 머무는 체질을 가졌습니다.
출사를 하거나 산행을 하면 하루 종일 기침을 하지 않은데
시내에 들어 오면 공기의 오염도를 느낍니다.
대구에서는 가장 공기가 맑고 깨끗한 곳은 달비골이요,
가장 공기가 안좋은 곳은 지산동입니다.
대구의 달비골은 지형적으로 산소통이라고 할 정도로 항상 산에서 아래로 바람이 불고
지산동은 도심의 오염된 공기가 쌓이는 곳입니다.
간혹 지인을 찾아 테크노폴리스에 가면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어릴 때 고향의 밤공기와 같이 맑고 청정한 호흡을 느낍니다.
대구의 팔달교를 넘으면
팔공산의 청정한 공기를 느낍니다.
어디를 가든지 본능적으로 느끼는 공기의 청정도는
어느덧 몸의 감각이 되었습니다.
어느 곳이든 겨울철의 실내 환경은
발암물질 가득한 미세먼지 경고수준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집의 청정도는
거의 숲 속의 별장 같아서 마른 기침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편벽나무향과 허브향 가득한 실내 환경은
최고 수준의 청정도여서 향긋한 숲 속의 별장이라 집 밖을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환경을 찾아 머무는 지혜는
건강의 지력이요, 자기애의 미덕일 것입니다.
술 담배 하는 사람과 만나지 않는 실사구시의 삶은
청정도 높은 최선의 선택이요, 최고의 삶인 것 같습니다.
술 담배를 하는 사람 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