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을 다녀와서...
세상사가 뜻대로 안 풀려 마음도 갑갑하던 차에, 어디론가 가고 싶어
2월1일 아침 5시에 일어났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간단한 등산장비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교대앞으로 갔다.
많은 산악회들이 대한민국의 명산들을 향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백화산, 민주지산, 아.. (이 두 산은 내 고향 영동이다.) 그런데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뿌리 산악회:. 소백산.
나중에 알고보니 산악회 회장님이셨다. “혹시 빈자리 있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아직은 없는데 혹시 기다려보세요.”
8시 출발시간이 다되어 간다.
다시 한번 물었다. “되겠습니까?” “아,예 될것같네요.” 무사히 차에 탔다.
잠시후 차는 출발하고 산대장님들 세분과 산악회원들 나까지 포함에서 48명이 탄 버스는
드디어 교대앞을 출발했다.
자,걱정이다. 엉겁결에 타기는 탔는데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없다.
아,소백산 5년전에 무릎까지 쌓인눈을 헤치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친구와 둘이서
러셀하면서 올라갔던 이후로는 안 가봤는데, 오늘은 대강 나온다고 아이젠, 스페츠, 장갑 등 등 설산산행에 필요한 장비를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다행히 산행대장님의안내말씀으로, 아침식사는 제공이 되고 저녁식사도 제공이 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러나 어쩌랴. 배낭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것을...
걱정 속에 청도휴게소에 도착했다. 아침식사를 하자고 하는데,
일단 식사는 제껴두고 휴게소 매점을 향해 뛰었다.
가는 도중에 아이젠을 파는곳이 있었다. 아이젠을 사고 방한장갑도 샀다.
그리고 김밥이라도 살까하여 매점안으로 들어갔더니 충무김밥이 있기는 있는데,
10분을 기다려야 된단다. 일단 예약을 해놓고 다시 우리 산악회 버스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모두들 아침식사를 다 마쳤다.
다행히 회장님의 배려로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급하게 먹는데,
앞에 있는 김치가 2년 묵은 김치란다. 아..이런꿀맛이 어디 있었겠나.
번개같이 한 그릇 먹고 다시 충무김밥 예약해 놓은 것을 찾으러 달렸다.
김밥을 찾아오는 동안 버스는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차에 올랐다.
드디어 소백산을 향해 출발. 안동 휴게소다. 커피한잔 마시고 풍기에 도착했다.
비로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화장실에 가서 담배한대 피고 오는데,
벌써 회원들 다 출발하고 없다. 시작부터 꼴찌다. 부지런히 올라갔다.
올라가니 앞에 가는 사람의 배낭에 부산 뿌리산악회 리본이 달린것이 보였다.
산행 후미대장님이셨다. 겨우겨우 얻어 탄 버스다.
기존 회원님들에게 민폐는 끼치치 말아야지 하고,
하산장소인 천동주차장까지 4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한다. 나 혼자 같으면 체력도 충분하고 1등도 할 수 있겠지만 같이 간 동료가 운동부족인가 초반부터 영 맥을 못춘다.
손을 잡고, 끌고, 언젠가 티비에서 봤던 꼬리뼈위에 척추밀어주기를 했다.
좀 낫단다. 달래고 구슬러서 일단 계속 따라 부쳤다. 그래도 계속 쳐진다.
후미대장님은 가다가 서서 쳐다보고 가다 서서 쳐다보고 마음이 더 안타깝다.
약 40분정도 오르고 나서 드디어 눈길 시작이다. 아직은 아이젠 착용할 때가 아닌데.
노스페이스 등산화 구입한지가 5년이 넘었더니 바닥이 맨질맨질하다. 엄청 미끄럽다.
진작에 창갈이를 했어야 하는데... 결국은 네발 아이젠을 착용했다.
싸구려는 표가 난다. 고무로 된 것이 자꾸 미끄러진다.
아! 집에 두고온 아이젠 더욱 그립구나. 다시 아이젠 졸라매고
힘들어 하는 동료를 이끌고 밀며 올라갔다. 좋다. 올 겨울 들어서 처음보는 눈이다.
등산로 옆으로는 발을 담그면 무릎까지는 빠지겠다. 그래도 마음은 바쁘다.
옆에 가는 동료가 너무 힘들어 한다. 우짜겠노! 꼴찌는 하지 말아야지.
배는 고프다. 약 2시간 올라가니 저 멀리 하얀모자를 쓴 비로봉이 보인다.
그때!! 우리가 꼴찌인줄 알았더니 우리 뒤에도 뿌리 산악회 회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앞만 보고 달렸더니 벌써 우리는 꼴찌를 면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숨 돌리고 잠시 등산로 옆에 눈이 푹푹 밟히는 곳에 방수천을 깔고
휴게소에서 사온 충무김밥을 먹기위해 배낭을 열었다.
웬걸!! 국물이 쏟아져서 충무김밥이 아니고 충무김죽이 되어있었다. 오, 통제라!!
그래도 참이슬 한 병을 나눠먹고 숟가락 젓가락 동원해서 안주삼아 먹으니 꿀맛이었다.
배도 채웠고 또 다시 꼴찌다. 뻘뻘 땀 흘리며 30여분 오르자
백설이 산 가득 채운 비로봉이다. 오른쪽으로는 국망봉이 보이고
왼쪽으로 연화봉, 천문대가 보인다.
그러나 몇 컷 더 찍고 내려가야 된다. 만만치 않다. 내려가는길.
오줌은 마려운데 오줌 눌 곳이 없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참았다.
한참을 내려가니 후미대장님께서 깃발을 들고 서 계셨다.
천문대 쪽으로 가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인 것 같다.
천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유도하기 위해 서 계셨다.
묻는다. “뒤에 일행들 있습니까?” “몇 분이 계시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하고
우리는 내려갔다. 내려오는 길은 더 환상적이었다.
눈이 녹지도 않고 비료포대만 있으면 그냥 썰매타고 내려가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눈이 많았다. 소백산의 상징인 주목 가지 가지에 하얀눈이 얹혀 있는 것을 배경으로
휴대폰으로 사진 몇 장 찍고 오줌도 마렵고 배도 고파서 부지런히 내려갔다.
천동휴게소다. 시간을 보니 늦지는 않겠다.
그래서 사발면과 오뎅을 주문하여 먹으면서 남은 참이슬을 마저 마셔버렸다.
이제는 진짜로 꼴찌다. 아직도 2km나 남았다. 힘들어하는 동료를 다독거리면서
부지런 부지런 내려갔다. 멀리 국립공원 관리소 팻말이 보인다.
아이젠 벗었다. 이제 다왔다. 우리 두사람이 꼴찌인줄 알았다.
그런데 뿌리 산악회 회원이 여섯분이나 더 있었다. 우리까지 포함해서 여덟이다.
드디어 주차장으로 내려가는길. 마음이 한결 편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내려가는 길이 왜그리 멀던고.
버스에서 회장님이 말씀하시기를. 첫 번째 주차장에서 2~3분만 더 내려가면
두 번째 주차장이 있다고 했는데 무려 15분이나 걸린다.
멀리 보인다. 신흥 관광버스.
도착하니, 따끈따끈한 수제비와 막걸리, 과메기, 오징어 숙회, 미나리까지 우리를 반겨준다. 퍼질고 앉았다. 앞에 앉아계신 분이 자꾸 소주를 권한다. 두어잔 마시고 사양했다.
마음 같으면 한 없이 마시고 싶지만 내일을 위하여 참았다.
아이고, 술 먹고 싶어라. 허허허.
그런데 더 기쁜일이 생겼다???. 정리하던 차에 아직도 안 온 사람이 2사람이나 있었다.
이게 왠일이냐. 아, 꼴찐줄 알았는데. 그래도 그 두분 마지막에 오셔서
수제비 맛있게 드시더라.
나의 소백산 산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엄청 대박 즐거운 하루였다.
옳게 인사도 못하고 구포다리 건너서 내렸다.
다음산행에는 준비를 좀 해서 가야되겠다. 뿌리 산악회 산행 진짜 마음에 든다.
선한 인상의 유머많은 회장님.
또 끝까지 우리를 지켜봐주신 후미대장님.
화명동에서 같이 내리신 키가 큰 대장님. 기억에 남는다.
다음 산행에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
첫댓글 글 실감나게 읽었습니다... 준비없이 출발하여 좋은추억 만드셨네요..
뿌리 회장님 유머 좋으시고 음식솜씨도ㅡㅡㅡ;; 돌아보면 아름다운 시간이랍니다//
어쨋든 죄송합니다.맨정신에 뵛어야 되는데..취한척 안취한척 그렇게 그렇게 뵙고 왔습니다.다음산행에도 같이했으면 좋겠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