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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방의 약장
(수 9:1-27)
오늘 읽은 여호수아서 9장 말씀 중심으로 <한약방의 약장>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한약방에 가보시면 쉽게 눈에 띠는 것이 있습니다. 약장입니다. 각종 한약 재료들을 넣어놓는 조그마한 서랍들이 빼곡히 들어선 그런 약장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감초라는 이름이 서랍에 쓰여 있으면 감초가 담겨 있고 또 백작약 하면 그 약재가 담겨 있고 오미자, 구자, 당귀, 천궁 이런 약재들이 담겨 있는 서랍들이 있으면 거기에 이름이 다 적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이름을 따라서 행당되는 약재를 넣어 놓고 빼서 약을 조제를 하고 처방을 내리고 하는 것을 우리가 다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아주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그런 본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한약방의 약장을 우리가 마음 속에 염두에 두시면서 한번 하나님의 이름과 신앙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며 은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런 것이지요.
이제 여리고와 아이 성을 진멸했습니다. 요단 강을 건너서 여리고와 아이 성의 위치는 길쭉하게 위에서 요단부터 남쪽 사해 있는데 까지 길게 이루어진 이 가나안 땅의 중부입니다.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이 허리부분입니다.
근데 이제 먼저 남쪽을 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가나안 복지 전쟁이 여리고 성과 아이 성에서 승리로 끝나게 되자 이 소식이 가나안 땅 전역에 미치게 되면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족속들이 다 힘을 합쳐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적대세력을 구축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이스라엘도 들었을 것이에요.
근데 그 중에서 약한 족속 중에 한 족속 기브온이라고 하는 족속이 있었는데 그 기브온 족속들이 이스라엘이 쳐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래도 안 될 것을 알고 가나안 7족속이 연합을 해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려고 하는 그 세력쪽으로 붙지를 않고 이쪽으로 와서 화친을 하려고 합니다.
근데 지금 아이 성을 진멸한 이스라엘이 남쪽으로 진격해 들어가려고 할 때 기브온의 위치가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절박한 심정으로 오게 된 것이죠.
어떻게 화친을 유도해내느냐 하면요, 본문에서 우리가 뛰어넘었습니다마는
4절에 '꾀를 내었다'라고 했잖아요.
무슨 꾀를 내느냐?
이스라엘이 지금 머물고 있는 곳으로부터 아주 아주 멀리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족속으로 위장을 합니다. 그러니까 위협 세력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멀리 있는 족속이라고 하는 것을 확인시켜서 마음을 놓게 해서 위협적인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을 시키려고 거짓을 꾸미는데, 너무 멀리서 출발을 해서 옷이 다 헐고 음식을 갖고 출발을 했는데 그 음식들이 다 썩어서 곰팡이가 날 정도로 멀리 멀리서 왔다는 것을 거짓말로 속이게 됩니다.
일부러 옷을 허름하게 입고 그리고 떡을 일부러 곰팡이를 슬게 해서 그리고 출발을 한 거예요. 바로 가까이에 있었으니까요. 한 3일 길 가서 만날 수 있었던 그런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니까 거짓말을 해서 여호수아와 족장들을 속입니다.
근데 본문에 보면 14절에 '여호와께 묻지 않고' 했다고 해요.
그리고 넘어가면서 18절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고 조약을 맺게 됩니다.
나중에 이 사람들이 거짓말 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께 묻지 않고 한 잘못을 얼마든지 백지화 할 수가 있어요. 이 조약 자체를 파기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 묻지 않은 잘못이니까 회복을 해야 되는데 조약이라는 게 일방적으로 조약을 파기하면 안 돼요. 옛날에 이 조약이라는 것은...
조약을 맺을 때 이랬다 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나귀를 절반으로 잘라서 당나귀의 살을 절반으로 벌려 놓습니다. 그리고 조약 당사자 두 명이 가운데를 지나갑니다.
그러면 무슨 뜻이냐?
이 조약을 먼저 파기하는 자는 당나귀가 반쪽이 돼서 절반으로 나뉘어져서 一刀兩斷이 되어서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약이라는 게 무서워요.
그런데 문제는 이 기브온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호와께 묻지 않은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이 있었으니까 얼마든지 그 잘못을 깨닫고 이 조약을 파기해도 괜찮아요. 이쪽에서 멀리 있는 족속이라고 속였으니까..
그런데 이 본문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어디에 있느냐?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기 때문에 이 조약을 파기를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기브온 사람들이 와서 한 얘기 중에도 어떤 얘기들이 있느냐 하면 여호와의 이름을 우리가 들었을 때에 출애굽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온 그 여호와라고 하는 이름의 여호와의 모든 행적 역사의 모든 이야기들이 다 담겨 있었던 것이에요.
마치 당귀라고 하는 명칭이 써 있는 약재의 서랍을 꺼내면 거기에 약재가 담겨져 있는 것처럼 감초라고 하는 서랍을 꺼내면 감초가 담겨 있는 것처럼 여호와의 이름이 마치 서랍이라도 된 것처럼 이 기브온 사람들의 마음 속에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 출애굽부터 바산 왕 옥을 물리치고 광야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사십 년을 먹이시고 살리시고 그리고 여리고와 아이 성을 무너뜨린 그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이름에 다 담겨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이름을 알고 온 사람들 앞에서 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조약을 맺은 것을 파기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써져있는 그 서랍 안에 들어있는 역사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조약을 맺었다는 것은 하나님 이름이 쓰여있는 그 서랍 안에 그 많은 역사를 근거로 해서 조약을 맺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걸 다 무시할 수 없었던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는 김집사님하고 이집사님이 대화할 때 "아, 하나님이 글쎄 말이야." 이렇게 쉽게 얘기합니다. 김집사님, 이집사님 마음의 서랍 속에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있는 서랍을 열어보면 별게 없을 수 있다는 거예요. 쉽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얘기한 것이죠?
자, 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름이라고 하는 게 여러분 이 귀중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보세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저주까지 합니다.
계집종이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너도 예수라 하는 나사렛 사람과 한패다' 이렇게 얘기했을 때 '난 모른다. 그런 나쁜 사람하고는 관계가 없다' 이렇게 까지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통곡을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음 속에 예수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서랍이 있었을 것이에요.
그 서랍을 열어보니까 삼년 동안 예수님이 자기를 데리고 다니고 먹이시고 가르치시고 그저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그 많은 실수를 다 덮어주시고 그랬던 그 예수님과 함께 했던 시절의 그 기억들 예수님에 대한 경험 예수님에 대한 사랑 예수님이 하신 역사 이 모든 것들이 예수라는 이름이쓰여 있는 자기 마음의 서랍을 꺼내보니까 거기에 가득 담겨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통곡을 하는 거예요.
만약 예수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마음의 서랍을 열어봤을 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예수? 아이, 예수가 뭐야, 예수가 삼대 성인 중 하나지 뭐'
이렇게 쉽게 얘기해 버린다고 해도 아무런 잘못이 없고 뭐 잘못이라기 보다는 마음에 어떤 감정도 생길 수가 없지요. 예수라는 이름의 서랍을 열어보면 아무 것도 없는데 뭐.
믿지않는다는 게 뭡니까?
예수라는 이름의 서랍을 열어봤더니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었어요. 아무런 기억이 없다는 겁니다.
이게 인제 이름과 연관되어 있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서랍장이라서 그 예수라는이름,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름의 서랍을 빼보면 무엇이 담겨져 있는냐 이겁니다. 그 이름을 함부로 어떻게 이동시키고 함부로 말하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느냐 이거에요.
아버지. 다 여러분 아버지가 계시지 않습니까? 육신의 아버지의 이름도 우리가 함자를 말할 때 어떻게 얘기합니까? '저의 아버님 태자 용자 익자십니다' 이거 어려운 거예요. 이름을 이어서 말씀을 못 드려요. 그렇죠? 태자 용자 익자 이십니다 이렇게 말해요. 그 이름 태용익이라고 하는 그 이름, 아버지라고 하는 명칭의 서랍을 열어보면 너무나 많은 기억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보면 우리가 용서를 못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예를 들어서 홍길동이다. 몰라 누군지 전혀 몰라요. 그 사람이 어떻게 됐다, 그 사람이 사기를 당했다 뭐라고 얘기를 해도 우린 마음에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이제 한번 우리의 믿음을 서랍장의 모양을 연상하면서 한 번 돌아봅니다.
여러분!
여러분 마음의 서랍장에 예를 들어 여러분의 자녀의 이름이 써있는 서랍장이 있습니다. 꺼내보시면 많은 것이 들어있을 것이에요. 또 예를 들어 여러분의 중학교 동창생 기억나는 사람 이름이 있을 거예요. 여러분에게는 아련하게 중학교 때 같이 지내던 기억이 몇 개 들어있는 서랍이 있을 것이에요. 여러분의 남편 지금 열어보면 가득 차 있어요. 아내라는 이름이 있는 서랍을 열어보면 가득 차 있어요.
이 한약방의 서랍장 이 약장이 서랍이 몇 개 있는지 아십니까? 제가 들은 것 중에 하나는 249개의 서랍이 있다는 거에요.
우리 마음에도 그런 서랍이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마음에도 그런 서랍이 있을 것 같아요. 250개 정도는 있을 것 같아요.
해마다 서랍이 있을 것이고 뭐 2000년 서랍, 2001년 서랍 그게 한 80개 정도 있을 것이고 팔십 평생 산다고 해도. 우린 아직 나이가 아직 그렇게 안 되니까 삼사십 개 오륙십 개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아무개 친구 뭐 가족 중에서 아빠, 엄마, 자식 이런 서랍들이 다 있을 거에요.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런 250개의 서랍 중에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적혀있고 예수님이라고 하는 이름이 적혀있는 서랍이 같이 끼어있는 것이 신앙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이게 이제 큰일이지요.
여러 250개의 서랍 중에 하나의 서랍을 차지하십니까?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이게 이제 우리가 보통 신앙이라고 해요.
우리의 마음이 똑같이 다 분산이 되어 있는 거예요. 250개로 나뉘어서 자식서랍, 남편서랍, 아내서랍, 직장서랍, 사업이라는 이름이 있는 서랍 서랍마다 보면 다 뭔가 기억과 역사 이런 게 다 들어 있습니다.
이거 신앙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서랍이 신앙의 모습인가?
여러분, 중국에 백안주라는 서랍장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 백안주 혹은천안주라고 불러요. 백안주라고 불리우는 이 서랍장을 약장으로 썼습니다.
이 서랍장의 구조는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요 보면 문이 하나가 있습니다. 큰 여닫이 문이. 그 여닫이 문이 앞에 있고 앞은 잠금니다. 그러니까 금고처럼 사용하는 거예요. 앞에 여닫이 문이 있어서 금고처럼 자물쇠가 되어 있는 것을 열면 그 안에 100개의 서랍장이 있는 거예요. 심지어는 1,000개의 서랍장이 있는 거예요. 백안주, 천안주라고 불리는 서랍장이 있는 거예요.
그 중국의 서랍장이 한국에 오면서 앞에 있던 여닫이 문을 뜯어낸 겁니다. 노출을 시킨거예요. 250개의 서랍을 100개의 서랍, 1,000개의 서랍을 노출되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중국에서 백안주라고 했던 이 서랍, 이게 믿음의 모양이라는 겁니다.
큰 여닫이 문이 하나 있는 그 위에 하나님이라고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이 바로 믿음의 모양이라는 거예요.
노출되어진 250개의 서랍 중에서 자녀의 서랍, 직장의 서랍, 이웃 아무개 집사서랍, 이웃도 여럿 있지 않겠습니까? 김집사 서랍, 이집사 서랍, 서랍마다 다 관계가 있고 기억이 있을 것이에요. 이렇게 250개의 서랍 중에서 어느 한 서랍이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그건 신앙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 백안주처럼 전체로 하나로 되어 있는 통으로 되어있는 여닫이 문 위에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써 있고 그 문을 열면 그 안에 250개의 서랍이 들어 있어서 남편, 아내, 자식, 부모님, 직장, 취미생활 모든 서랍들이 들어있는 거 이것이 믿음의 모양이라는 겁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이 백안주라고 하는 게 금고로 쓰였거든요? 귀중한 물건을 담아두는 건데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름을 통과해서 들어간 뒤에 그러니까 하나님을 먼저 만나고 하나님의 이름이 내 마음 속에서 제일 소중한 것으로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거룩이 뭐라구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분으로 하나님이 만나지고 그리고 그 하나님을 만나고 났더니 갑자기 250개의 서랍이 나타나는데 모두가 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은혜의 서랍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귀퉁이에 있는 그런 서랍장에서는 자녀라고 하는 서랍을 꺼내보면 뭐가 있습니까? 자녀에 대한 역사가 있고 그 자녀에 대한, 하나님이 무슨 감초라도 되듯이 다 같다 끼어 넣는 거예요.
그런데 이 백안주라고 하는 서랍장의 모양대로 되어진 신앙심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을 원초적으로 만납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 자신이 좋아서 만나는 거예요.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통과했더니 그 다음에 250개 나오는데 서랍 서랍마다 여는데 자식이라는 이름의 서랍을 여니까 거기에 자식이 은혜의 덩어리로 담겨져 있습니다. 남편이 은혜의 덩어리로 담겨져 있습니다. 아내가 은혜 자체로 담겨져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남편과 아내가 먼저 만납니다. 만난 다음에 문제가 생깁니다. 문제 덩어리지 은혜가 아닙니다. 과제덩어리요 부담덩어리요 내가 해야 될 의무덩어리이지 은혜가 아니에요. 그리고나서그 의무로서의 남편, 과제로서의 아내, 부담으로서의 자녀, 부담으로서의 직장 이런 상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에요.
이건 아니죠.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마음에 하나님의 내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백안주와 같은 신앙 하나님을 먼저 만나고 큰 여닫이 문으로 하나님을 딱 만나니까 하나님 안에 다 있더라는 거예요.
근데 열어보니까 야! 이럴 수가 있나... 250개 전체가 다 은혜가 변형된 거에요.
마치 밀가루 반죽을 해서 도넛을 만들 때 별 모양도 만들고 물고기 모양도 만들고 자동차 모양도 만들고 구멍난 도넛 구멍이 안 난 도넛 이렇게 가지가지 도넛을 만들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250개 서랍이 하나님의 이름이 쓰여 있는 문을 통과하고 하나님을 먼저 만났더니 아무 것도 안 만난 사람처럼 하나님을 먼저 만났더니 250개가 은혜의 밀가루 반죽으로 자녀의 모양으로 되어있고 남편의 모양으로 되어있고 아내 모양 직장 모양으로 되어 있고 원수의 모양으로 되어있고 - 원수를 만나는 것도 은혜에요 - 내 몸에 병이 들었어요. 그것도 은혜덩어리라는 거예요.
모든 현실이 은혜로 빚어진 것임을 하나님 이름이 쓰여 있는 이 여닫이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까 250개의 서랍 모든 이름 이름마다 열어보니까 다 은혜더라 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게 이렇게 귀중한 거라는 겁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 하늘에 소속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이 세상을 살 때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이 내 마음 속에 여호와의 이름이 가장 좋은 것이다. 무엇과 관계하기 전에 먼저 여호와 그 이름으로 지칭되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이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에 담고 하나님을 만났더니 그 하나님을 만난 뒤에 이 땅으로 내려와서 보니까 250개의 삶의 서랍들이 있는데 이름마다 이름마다 원수도 어떤 서랍에는 사기당함이라는 이름이 있을 거 아닙니까? 사기당함 열어보니까 그것도 이제 보니까 또 은혜에요. 하나님을 통과해서 보니까 사기 당했던 그때도 은혜인 거라.
원수도 은혜고 나를 부담스럽게 하는 시어머니도 은혜고 나를 괴롭게 하는 언니도 은혜고 시누이도 은혜고 다 은혜가 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에요.
우리 마음은 한국에 있는 그런 한약 약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국에 있던 백안주가 되어야 돼요.
내 마음은 하나님을 전면적으로 만나고 그러면 하나님 안에 나를 위해 마련하신 250개의 은혜의 서랍들이 놓여져 있는 것이지요.
백안주와 같은 그런 신앙을 가지실지언정 한국에 있는 약장의 그런 신앙, 250개가 있는 중에 하나님의 이름이 어느 한 서랍에 끼어 있는 삶의 한 부분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큰 여닫이문에 있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한 곳에 모아서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면서 250개로 분산되어 있던 내 마음을 다 끊어버리고 오직 큰 서랍 백안주 자체 이름이 써 있는 그 큰 하나님에게 내 마음을 다 드릴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 나가서 오늘 하루의 문을 열어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다 끄집어내는 사람마다 은혜로 가득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0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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